미요리의 숲 2 - 완결
히데지 오다 글.그림 / 삼양출판사(만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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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리의 숲

ミヨリの森, 2007



  만화책과 만화영화로 나온 《미요리의 숲》을 보면, ‘미요리’라는 아이는 어릴 적부터 ‘숲지기’라는 이름을 받았다. 숲은 언제나 미요리한테 이야기를 건네면서 함께 놀았고, 미요리 또한 숲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즐겁게 어우러졌다. 그러면, 미요리는 왜 숲지기가 되어야 했을까. 미요리에 앞서 누가 숲지기 노릇을 했을까.


  미요리는 즐겁게 살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어머니한테도 아버지한테도 사랑받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동무가 없다. 미요리는 도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 채 마음에 깊디깊이 생채기를 받기만 한다. 이러다가 아버지한테서도 어머니한테서도 버림을 받다싶지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진다.


  누구한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마음을 열 생각이 없는 미요리이다. 그런데, 미요리는 저를 이끄는 숲에 한 발짝씩 내딛고, 숲에 두 발짝 세 발짝 내딛으면서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드라운 숨결과 같이 생각을 빛내는 길로 접어든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가르면서 스스로 물이 되고 비가 되고 가람이 되고 바다가 되어 보면서, 삶과 지구별과 사랑이 어떻게 맺고 이어지는가를 온몸으로 깨닫는다.


  미요리에 앞서 할머니가 숲지기였다. 할머니는 미요리한테 숲지기를 물려주고 싶었다. 미요리는 할머니가 예전에 숲지기였음을 알아차린다. 모든 실마리를 푼 미요리는 드디어 웃음을 되찾는다. 숲에서 노래하면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시골에서 지낸다. 할머니가 물려준 숲에서 가장 빛나는, 아니 스스로 빛나는 꽃아이, 시골아이, 숲아이가 된다. 4347.7.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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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립 Bleep - 일상의 현실을 바꾸는 무한한 가능성의 발견
윌리암 안츠 외 지음, 박인재 옮김 / 지혜의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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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까 (양자물리학과 마음)
What The Bleep Do We Know!?, 2004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면서 생각한다. 오늘 이 영화를 이렇게 한 번 보는데, 앞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여러모로 생각을 건드리는 대목이 나오지만, 생각을 건드리는 이야기보다는 뭐라고 할까, ‘영화 보는 재미’를 돋울 만한 대목이 더 자주 나오는구나 싶다. 그래도 거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여자가 깃들려 하는 깊은 숲속 아름다운 풀빛과 하늘빛은 더없이 사랑스럽다. 어쩌면,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에서는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모습 하나를 빼고는 내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없을 수 있구나 싶다. 누구라도 저렇게 아름다운 숲에 깃들면 ‘사랑을 생각해서 삶을 사랑스레 지으며 웃’지,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동무를 밟고 올라서려는 생각을 터럭만큼도 안 하겠다고 느꼈다. 생각해 보라. 오늘날 사람들은 영화 〈다빈치 코드〉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 아름답고 멋진 숲에 깃들지 못한다. 쳇바퀴처럼 회사원 노릇을 하고, 쳇바퀴처럼 은행계좌 월급을 받는다. 쳇바퀴처럼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전철로 회사와 집을 오갈 뿐이며, 쳇바퀴처럼 아파트에 기대어 살아갈 뿐이다.

  영화 〈What The Bleep Do We Know!?〉는 한국에서 디브이디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2010년에 책으로 나왔다. 디브이디로 이 영화를 찾기는 어렵지만, 유투브에서는 이 영화를 손쉽게 찾아서 볼 수 있다.

  양자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야기란 무엇인가.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학교와 회사와 공공기관과 언론과 논문에서도 이러한 대목을 밝히지 않는다. 마음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있는가? 삶을 노래하는 학교가 있는가? 사랑을 밝히는 회사가 있는가? 꿈을 꾸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언론이나 논문이 있는가?

  생각이 삶을 짓지만, 생각을 하자면 먼저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가려는 길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느끼고, 바라보면서 느낄 때에 비로소 천천히 알아차릴 수 있으며, 보고 느끼며 알아차릴 때에 삶으로 지을 생각을 마음에 심을 수 있다.

  영화 〈What The Bleep Do We Know!?〉는 여러 차례 본다. 틈틈이 새롭게 본다. 내 생각을 찬찬히 다스리려고 본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에서 누리는 빛을 슬기롭게 가다듬어 즐거운 노래가 되면서 푸른 숲을 가꾸는 산들바람이 되기를 꿈꾸면서 본다.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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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빙화
양립국 감독, 우한 외 출연 / 에이스필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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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빙화

魯氷花 The Dull-Ice Flower, 1989



  영화 〈로빙화〉는 대만 이야기를 보여준다. 대만 시골마을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려 하는 두 아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를 저어 가람을 가로질러야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시골마을 아이들이 마음속에 꽃빛을 담고 꿈을 꾸는 이야기를 밝힌다.


  아이들은 ‘화가’가 될 생각이 없다.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어떤 직업인’이 될 생각이 없다.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를 즐겁게 노래하면서 꿈을 꾸고 싶다. 언제나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를 기쁘게 사랑하면서 어깨동무하고 싶다.


  옆에서 가르쳐 주기에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빛을 그릴 때에 그림이다. 책이나 지식으로 알려주기에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스스로 길어올리는 빛을 담을 때에 그림이다.


  가난하다는 두 아이네 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차밭에 농약을 못 뿌린다’고 걱정한다. 벌레를 잡으려면 농약이 있어야 한단다. 돈 많은 땅임자한테서 돈을 빌려 농약을 뿌릴 적에 환하게 웃는 사람이 바로 가난한 집 아버지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찻잎을 마시는데, 찻잎에 농약을 뿌리면 어찌 될까. 이런 잎사귀를 어떻게 먹겠는가.


  예나 이제나 차밭뿐 아니라 논밭에 농약을 뿌리는 지구별 농업이다. 농약이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사회가 길들인다. 학교는 아이들이 농사꾼이 안 되도록 길들인다. 학교는 도시 아이는 도시에서 지내게 밀어붙이고, 시골 아이는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도록 몰아세운다.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울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까.


  영화 〈로빙화〉에 나오는 작은아이 고아명은 삶빛을 누리기에 삶그림을 그린다. 누나와 아버지하고 지내는 삶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는다. 아마, 누나 고차매도 삶빛을 그림으로 담을 줄 알 테지. 다만, 시골마을 학교에서 이러한 그림을 알아보는 어른은 없다. 교사도 어버이도 이웃 어른도 안 알아본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 노래가 없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울까. 노래를 담지 못하는 그림은 얼마나 빛이 날까. 노래가 드리우지 않는 학교요 마을이며 살림이라면, 우리한테 어떤 삶이 될까.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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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로 만든 집
아샤 메니나 외, 마이클 레삭 / 폰즈트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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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로 만든 집

House Of Cards, 1993



  마음을 읽는다면 서로 아프거나 힘들거나 슬플 일이 없다. 서로 마음을 못 읽는다면 자꾸 지치고 괴로우면서 고단한 일이 많다. 마음을 읽도록 삶을 배우면 날마다 새로운 빛을 누리면서 즐거운 일을 찾는다. 마음을 읽도록 배우지 못하고 삶도 배우지 못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빛을 누리기란 어렵다.


  학교란 어떤 곳인가. 학교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은 저마다 무엇을 배워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 어른은 아이가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는가.


  마음으로 삶을 지으려는 아이와 만나려면 교과서 지식이나 학문 정보가 아닌 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려는 아이와 이야기하려면 전문가나 지식인이나 학자나 상담원 같은 사람이 아닌 동무로서 아이와 어깨를 겯을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카드로 만든 집〉에 나오는 아이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자꾸자꾸 생각한다. 생각과 생각 끝에 길을 찾으려 한다. 이와 달리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 ‘꿈’이 아닌 ‘밑바닥’만 보여주려고 한다. 아이와 함께 꿈을 찾는 길로 나아가기보다는 아이가 ‘꿈’에서 내려와 ‘밑바닥’에 머물면서 저(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 지내기를 바란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버지가 죽어서 없으니 못 만난다고 알려주는 일이 사랑인가. 꿈이란 무엇인가. 아이가 아버지를 마음으로 사귀거나 만날 수 있는 길을 가로막거나 닫는 일이 꿈인가.


  집은 카드로도 짓는다. 집은 돈으로도 짓는다. 집은 흙이나 돌이나 나무로도 짓는다. 집은 사랑으로도 짓는다. 집은 꿈으로도 짓고, 마음으로도 짓는다. 집은 나 스스로 품는 가장 따사로운 생각으로 짓는다. 4347.7.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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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섬 슈트
스즈키 오사무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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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섬★수트
ハンサム★ス-ツ Handsome Suit, 2008


  아이들과 영화 〈핸섬 수트〉를 본다. “잘생긴 옷”이라니, 어떻게 옷이 잘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영화에 붙은 이름 그대로 “잘생긴 옷”이 있단다. 사람 얼굴은 못생겼다 하더라도 옷은 잘생긴 터라, 온갖 사람을 홀리는 옷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사내는 늘 생각한단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내는 언제나 얼굴 때문에 걸린다고 여긴다. 예쁜 가시내이든 안 예쁜 가시내이든 누구나 이녁 얼굴 때문에 이녁을 안 좋아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참말 그러할까? 참말 사람들은 얼굴 때문에 누구를 좋아하거나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겉으로 보자면 그러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만 마주하면서 서로 겉삶만 읽을 수 있다.

  달리 생각하면, 사람을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으로 읽을 줄 안다면, 우리들 누구나 겉이 아닌 속을 살피거나 읽거나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영화 〈핸섬 수트〉에 나오는 사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 이녁 마음씨를 읽지 않고 생김새로만 다가온다면 기쁠까? “잘생긴 옷”을 입고 돌아다닐 적에 둘레 사람이 ‘겉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받으면 기쁠까? 마음을 읽지 않는 이웃이 겉치레로 다가오는 일이 이녁 삶에 어떤 기쁨이나 노래나 웃음이나 보람을 선물할 만할까?

  사랑은 얼굴 생김새나 몸매나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처럼, 삶도 얼굴 생김새나 몸매나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책 한 권도, 글 한 줄도, 그림 한 장도, 노래 한 가락도, 늘 겉모습이나 겉치레가 아닌 마음씨와 알맹이로 이루어진다. 4347.7.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아쉽게도 이 영화는

디브이디가 아직 나오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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