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아이 17. 2013.10.29.

 


  마을 어귀에 있는 군내버스 타는 곳 옆에 선 느티나무에 노란 물 마알갛다. 고운 빛이 감도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바라보다가, “얘들아, 여기 느티나무 노란 물 들었어.” 하고 알려준다. “그래?” 하며 나무한테 다가선 큰아이가 제 키높이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벼리야, 그 아이는 꽃이 아니라 가지야. 가지를 잡아뜯으려 하면 아프지. 예쁘다고 쓰다듬어 줘야지.” 은행나무보다 먼저, 다른 어느 나무보다도 일찍, 노랗게 노랗게 물드는 느티나무는 날마다 노란 물 새삼스럽게 달라진다. 가을을 알리면서 가을빛 즐기도록 이야기하는 느티나무로구나 하고 느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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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2 10:31   좋아요 0 | URL
아~정말 가을빛이 물씬 담겨있는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도 가을나무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와 노는 벼리와 보라도
예쁜 가을아이네요~

사진에서 환한 가을빛이 제게까지 왔습니다~*^^*

숲노래 2013-11-02 12:26   좋아요 0 | URL
다른 풀은 아직 시들려면 멀지만
느티나무는 나무 가운데에서도
감과 함께
참 일찍 물이 드는 나무예요~

hnine 2013-11-02 20:10   좋아요 0 | URL
색이 변하는 걸 '물들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왜 '물든다'고 할까요.
'물'이라는 말은 훨씬 넓은 의미로 쓰이나봐요. '빛'이 그런 것 처럼.
한자는 모르겠고, 영어에서는 없는 우리말이 가지는 특성중 하나가 아닐까 해요.

숲노래 2013-11-03 02:51   좋아요 0 | URL
예부터 옷에 '물'을 들였어요.
숲에서 나오는 잎과 꽃으로 물을 들였어요.
꽃물과 풀물을 들였어요.
제주에서는 감물도 들였어요.

그러니, 우리 겨레한테는 '물들이다'가 '빛들이다'와 똑같은 뜻으로
오래도록 삶에 뿌리내렸으리라 느껴요.
 

꽃아이 16. 2013.10.24.

 


  마알가니 하얗게 꽃을 피우는 탱자나무이다. 이 탱자나무에 탱자꽃이 지면 천천히 열매를 맺는데, 동글동글 야무지게 단단한 알 하나 노랗게 익는다. 데굴데굴 굴리면서 놀 수 있고,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고운 내음 듬뿍 누릴 수 있다. 우리 서재도서관 한켠에서 자라는 탱자나무에 탱자알 몇 달린다. 늘 지나다니며 바라보기만 하다가 노란 빛깔 아주 해사하게 환할 즈음 톡톡 따서 큰아이 손에 얹는다. 탱자알 따는 내 손과 탱자알 받은 큰아이 손에 탱자내음 물씬 감돈다. 입으로 베어물며 먹어도 즐거운 열매가 있고, 이렇게 손에 쥐어 놀면서 어여쁜 열매가 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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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15. 2013.10.13.

 


  후박나무 가랑잎 가운데 샛노랗게 물든 잎사귀 하나 주워 귓등에 꽂는다. 귓등에 노란 후박잎 하나 꽂고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보여주겠다면서, 한창 마당에서 동생하고 재미나게 놀더니 마루문 열고 들어선다. 오른머리를 보여주면서 빙그레 웃는다. 네 동생도 머리카락 더 자라 너처럼 길 때에는 너희 둘이서 가랑잎놀이도 꽃놀이도 함께 즐길 수 있겠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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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14 20:38   좋아요 0 | URL
아 이젠 후박나무 잎사귀가 샛노랗게 물들었군요!
샛노란 후박나무 잎사귀를 귓등에 꽂은 벼리의 모습이
아주 예쁩니다~*^^*

숲노래 2013-10-15 07:29   좋아요 0 | URL
샛노랗게 물든 뒤 떨어지는 잎사귀는 몇 없는데
아이가 그 잎을 잘 찾아서 귀에 꽂고 놀았어요~
 

꽃아이 14. 2013.7.24.

 


  꽃대 껑충 자라 아이들 키뿐 아니라 어른들 키만큼 오르고 나서야 꽃송이 벌리는 꽃이 있다. 꽃대 땅바닥에 붙듯이 살짝 돋고는 나즈막하게 피어나 아이도 어른도 쪼그려앉아 가만히 고개를 숙여야 들여다볼 수 있는 꽃이 있다. 키다리 나리꽃을 만난다. 키다리 나리꽃과 마주하는 아이는 키도 손도 안 닿는다.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싶으나, 꽃내음을 맡고 싶으나, 도무지 안 된다. “얘야, 꽃대를 살며시 쥐고 가만히 당겨 보렴. 꽃대가 안 부러지게 살살 당기면 돼.” “그래?” 꽃대를 살그마니 붙잡아 저한테 당기는 아이가 꽃송이를 들여다보다가 꽃내음을 맡는다. “알겠니? 싱그러운 여름빛이 바로 이 꽃송이에 깃들었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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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13. 2013.8.30.ㄴ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찾아들면서 꽃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그러나, 여느 사람들 눈에 잘 안 뜨이는 꽃은 언제나 피고 진다. 이를테면, 모시꽃·고들빼기꽃·부추꽃·까마중꽃을 비롯해 조그마한 풀꽃이 늦여름과 첫가을에 한창이다. 벌써 벼베기를 마친 논이 있기도 한데, 조금 늦게 벼를 심은 논에서는 이삭이 패면서 벼꽃내음이 물씬 풍기기도 한다. 큰아이는 무슨 꽃이 있나 두리번두리번 논둑과 풀밭을 살피다가 발그스름한 열매를 찾는다. 무슨 풀이 맺는 열매일까? 빛깔 곱다 하면서 아버지한테 달려와서 보여준다. 그러고는 입에 넣어 씹는데, “아이, 써.” 하고 소리를 내며 뱉는다. 아직 덜 여물었는지 몰라, 덜 여물면 열매는 떫거나 쓰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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