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 군내버스 타는 아이들
― 자리 없으면 씩씩하게 서서

 


  읍내마실을 할 적에는 되도록 장날을 비껴 다닙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여느 때에는 읍내마실을 잘 안 하시지만, 장날이면 으레 군내버스 타고 마실을 다니셔요. 장날에 볼일 본다며 읍내로 나오면 군내버스가 미어터질 만큼 북적거리기도 해요. 읍내로 나갈 적에도,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고단합니다. 그런데 장날이 아니어도 읍내마실 나온 할매와 할배가 많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에서 무거운 짐 짊어지고 아이들 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군내버스 할매는 으레 한 자리에 두 분이 겹쳐 앉습니다. 군내버스 할매는 바닥에도 털푸덕 앉습니다. 군내버스 할배는 겹쳐앉거나 바닥에 털푸덕 앉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이런 날, 아이들도 바닥에 털푸덕 앉을 만하지만, 아이들은 털푸덕 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털푸덕 앉으며 무릎에 앉으라 해도 좀처럼 안 앉아요. 큰아이는 씩씩한지 남우세스러운지 손잡이를 꼭 잡을 뿐입니다. 누나가 이렇게 서면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손잡이를 잡으려 합니다.


  그래, 그런데 손잡이를 잡더라도 한손으로만 잡으며 다른 한손으로 놀지는 말자. 구불구불 시골길 돌아가는 버스이니까 두 손으로 단단히 잡자. 우리 예쁜 아이들은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어엿하고 다부지게 서서 손잡이 잡고도 갈 수 있지?


  할매들이 무릎에 앉으라고 앉으라고 불러도 고개조차 안 돌리며 손잡이만 붙들더니, 할매들이 웃으면서 고놈 참 고놈 참 하다가 나이 몇 살이냐 물으니, “벼리는 여섯 살, 보라는 세 살” 하고 손가락을 꼽으며 알려줍니다. 4346.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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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벼리랑 보라 보며 환하고 즐겁게 웃으시는 할머니들 모습이
와락, 마음에 스며옵니다.
이 아름답고 따스한 사진 보니,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쪼끔 눈물이
나오려 하네요..^^;;;;

숲노래 2013-06-21 07:40   좋아요 0 | URL
에이고, 죄송합니다 (__)

군내버스에서 할머니들 참 고우시고
이야기도 말씀도 좋아요
 

[시골살이 일기 6] 자전거로 다닌다
― 가장 시골스러운 나들이

 


  시골에서 살며 자전거를 즐겨타는 이웃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처음부터 자전거를 좋아하면서 즐겨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전거를 타지 않으니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든,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왔든, 어린 나날부터 자전거와 가까이 지낸 사람일 때에만 자전거를 타요.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오는 이들은 으레 자가용이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겨요. 시골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타며 두 다리로 걷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땅을 제법 넉넉히 장만해서 흙을 좀 일구려는 이들은 짐차를 따로 장만해서 이것저것 실어 나를 때에 쓰겠다고 생각해요. 손수레를 쓰거나 지게를 짊어지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아무리 좋은 뜻과 마음으로 시골에 와서 살겠다 하면서, 기름 먹는 자동차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살피지 못하기 일쑤예요.


  자동차를 아예 안 탈 수 있으면 가장 좋아요. 자동차를 타야 할 때에는 타면 되어요. 그러나 자동차를 늘 타 버릇하는 일은 반갑지 않아요. 왜냐하면, 시골이거든요. 자동차에서는 시골바람도 시골내음도 시골빛도 시골소리도 누리지 못해요. 오직 자동차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멍멍하면서 사람도 풀도 나무도 벌레도 개구리도 숲도 휙휙 지나치기만 해요.


  새와 이웃하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개구리와 어깨동무하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풀을 쓰다듬고 나무를 어루만지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놀려고 시골에서 살아요. 시골스러운 삶 생각하며 저마다 예쁘게 자전거 장만해서 천천히 몰면 좋겠어요. 자전거 발판 천천히 구르며 확 끼치는 산뜻한 바람 맞고, 자전거 위로 노니는 제비와 멧새 바라보면서 구름빛 함께 누려요. 호젓한 들길과 숲길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기지개를 크게 켜요. 우리 함께 가장 시골스럽게 시골에서 살아요. 4346.6.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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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 땅에서 숨을 쉰다
― 두 다리로 밟고 만지는 흙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일하다가 도시에서 죽는 사람이 차츰 늘어납니다. 앞으로는 오직 도시살이만 알고 시골살이는 하나도 모를 아이들과 젊은이들 무척 많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흐름이 되리라 느낍니다.


  시골살이가 아름답고 도시살이는 바보스럽다고 말할 마음 없습니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가장 즐거운 마음 되어 아름답게 살아가면 될 뿐입니다. 다만, 도시는 어떤 삶터이고 시골은 또 어떤 삶자락인 줄 제대로 알아야지 싶어요.


  여름날 도시는 몹시 덥습니다. 겨울날 도시는 매우 춥습니다. 도시는 햇볕을 받아들일 흙도 풀도 나무도 없습니다. 도시는 햇볕을 튕기되 도시 안에서 맴돌게 하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흙땅이 뒤덮인데다가 높직한 시멘트 건물 수두룩하게 있습니다. 여기에 자동차가 끝없이 달립니다. 수많은 기계가 움직이면서 새롭게 후끈거립니다. 도시는 온통 불덩어리라 할 만합니다. 하루 내내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하다 느끼기 어렵고, 에어컨 튼 방에서 벗어나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마는 감옥이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참말, 여름날 도시는 에어컨 있는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지요. 그런데 겨울날에는 난방기 있는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요. 여름이나 겨울이나, 또 봄이나 가을이나, 도시사람은 건물 안쪽에 옹크린 채 지냅니다. 하늘을 못 보고 땅을 못 보며 바람과 냇물과 빗물과 눈송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땅이 숨을 쉽니다. 땅이 숨을 쉬기에 풀과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며 자랍니다. 땅이 숨을 쉬기에 땅속에는 수많은 목숨이 얼크러져 땅이 기름지도록 북돋웁니다.


  사람은 하늘숨과 함께 땅숨을 쉽니다. 하늘숨이란 바람 숨결입니다. 땅숨이란, 풀과 나무가 자라도록 밑바탕이 되는 숨결입니다. 땅숨은 풀과 나무를 살찌워 푸른 숨결 일굽니다. 곧, 사람은 하늘숨·땅숨·풀숨, 이렇게 세 가지 숨을 마십니다. 그리고, 빗방울과 눈송이를 먹거나 시냇물이나 도랑물이나 샘물이나 우물물을 먹어, ‘물숨’ 하나를 더 마시지요.


  시골에서 살든 도시에서 살든, 두 다리로 흙을 밟고 두 손으로 흙을 만질 수 있어야, 더위를 타지 않습니다. 아니, 다리와 손으로 흙을 보듬어야 여름을 한껏 누립니다. 온몸으로 흙을 부대끼며 흙내음 맡을 적에 날씨를 깨닫고 제철을 실컷 즐깁니다. 네 식구 시골에서 살며 가장 즐거운 하나 꼽으라면, 바로 하늘숨·땅숨·풀숨·물숨 싱그러이 누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풀과 흙이랑 놀 수 있어 더없이 좋습니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살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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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 하얀 꽃밭과 나비
― 시골에서 마시는 바람

 


  엊저녁 면사무소에서 마을방송을 한다. 이듬날 아침 일곱 시부터 아홉 시 사이에 ‘전체 방역’을 하니 ‘장독대 뚜껑을 닫’고, ‘창문도 닫’으며, ‘야외활동 하지 말’고, ‘아이들이 바깥에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한다. 고흥군 도화면 사무소에서 마을방송으로 알린 ‘전체 방역’이란 헬리콥터가 마을 휘 가로지르면서 농약을 뿌리는 ‘항공 방제’이다. 요즈음은 이런 ‘항공 방제’를 ‘친환경농약’을 뿌리며 흙일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몹시 궁금하다. ‘친환경’농약이라면서, 왜 장독대 뚜껑을 닫아야 하고 창문을 닫아야 할까. ‘친환경’이라면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고, 아이들이 바깥에 나오지 말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 입으로는 ‘친환경’을 읊지만, 막상 ‘환경과 가깝지’ 않은 농약일 뿐 아니라, 환경을 등진 농약이라고 알리는 노릇이다.


  일본사람 오제 아키라 님이 1980년대에 그린 만화책 《나츠코의 술》을 보면, ‘항공 방제’ 때문에 눈이 먼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항공 방제’를 하다가 헬리콥터가 떨어져 논에 처박히면서, 이 논은 농약덩이가 되어 아무도 이 논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가까이에 오지도 못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항공 방제’를 할 적에, ‘완전 무농약 유기농’으로 벼농사 짓는 이들이 퍽 넓은 논에 비닐을 덮어 농약이 떨어지지 못하게 막는 이야기가 나온다.


  면사무소 마을방송이 나온 이듬날 아침,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불고 빗줄기가 살짝 듣는다. 헬리콥터가 떴을까? ‘항공 방제’ 헬리콥터는 얼마쯤 되는 높이에서 날아갈까? 높은 데에서 날아가더라도 소리가 들릴 텐데 소리가 안 들린다. 바람 많이 불고 빗줄기까지 들으니 취소했을까?


  헬리콥터에서 농약을 뿌리면, 이 농약 때문에 들새와 멧새가 숨이 막히고 눈알이 튀어나오면서 죽는다. 농약 듬뿍 쐰 벌레나 개구리를 잡아먹는 들새와 멧새는 내장이 터지면서 죽는다. ‘항공 방제’는 ‘소리 없는 평화’를 부른다. 아니, 모든 소리가 사라진 숲을 부른다. 레이첼 카슨 님은 1950년대에 “침묵의 숲”, 곧 “소리 없는 숲”을 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10년대인 오늘날까지도 농약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자동차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숨이 막힌다면, 시골에서는 농약사랑에 허덕이면서 숨이 갑갑하다.


  돌울타리 사이로 이웃한 옆집 밭자락에서 하얗게 꽃을 피우며 나부끼는 풀포기를 바라본다. 어떤 씨앗 심어 이렇게 어여쁜 흰꽃 피어 꽃잔치·풀잔치 이루어 놓으셨을까. 하얀 꽃무리 사이사이 하얀 날갯짓 팔랑거리는 나비가 춤을 춘다. 서로서로 예쁘게 어울린다. 하얀 꽃에 내려앉은 나비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사진 몇 장 찍는다. 사진을 큼직하게 키워서 보아도 나비가 어디 깃들었는지 잘 안 보이지만, 흰나비는 흰꽃 사이에서 맑게 빛나는구나. 좋다. 얘들아, 우리 나비 구경하지 않겠니?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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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꽃이 무엇일까요?

appletreeje 2013-06-1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기 나비가 있네요~? ^^
보라빛 꽃송이 위로 사선에요.!! 나비랑 보니 한층 더 좋아요. *^^*

숲노래 2013-06-11 14:58   좋아요 0 | URL
네, 아래에서 오른쪽에 나비가 살짝 깃들었어요.
나비도 꽃도 곱지요.

어떤 나물로 심으신 풀 같은데...
이름은 아직... ^^;;;
 

[시골살이 일기 3] 손 흔들어 버스 잡기
― 네 식구 군내버스 타기

 


  한솥지기 네 사람 살아가는 도화면 동백마을 어귀로 군내버스 두 시간에 한 대쯤 지나간다. 면소재지에서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다. 집에서 마을 어귀로는 1분쯤 걸어가면 되니,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웬만해서는 안 놓치지만, 너무 늑장부리면 놓친다.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놓치면, 면소재지에서 읍내로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이웃 봉서마을까지 걸어간다. 1킬로미터 남짓 되는 길일까. 두 아이를 걸려 바지런히 이 길 걸어가면 십육∼십칠 분 즈음 걸린다. 그런데, 때로는 이렇게 걸어오다가 저 앞에 지나가는 군내버스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놓친 셈이다. 그나마 이곳에서 놓치면 한 시간 즈음만 기다리면 된다.


  어제 우리 네 사람은 마을 어귀 버스를 놓친 다음 봉서마을로 걸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봉서마을을 백 미터쯤 남겼을까. 면소재지에서 나오는 군내버스를 본다. 저 버스를 놓쳐야 해, 잡아야 해? 잡자. 오늘은 잡자. 작은아이를 안는다. 큰아이는 옆지기가 재촉한다. 나는 작은아이를 안고 달리면서 오른손을 크게 흔든다. 군내버스 일꾼이 우리를 보았을까? 부디 보았기를 바라며 달린다. 한낮 여름볕 내리쬐는 시골길에 우리 네 사람 땀 뻘뻘 흘리고 달리면서 손을 흔든다. 우리 네 사람 봉서마을 이십 미터쯤 남기고 군내버스가 슬슬 멈춘다. 보았구나.

 

  큰아이를 먼저 태운다. 작은아이 안은 내가 마지막으로 오른다. 아이들 자리에 앉히고 주머니에서 찻삯을 꺼낸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군내버스에 탄 할매 한 분 “멀리서 달려오느라 욕 보셨오.” 하고 말씀한다. 버스에 탄 할매와 할배도 우리를 보았는가 보다. 어쩌면, 할매 할배가 우리를 알아보고는 버스 일꾼한테 “기사 양반 저그 아 안고 달려오는 사람 있는디, 좀 세워 주소.” 하고 말씀해 주셨는지 모른다. 버스 일꾼은 “저 사람들 또 손 흔들며 달려오네. 시간 좀 잘 맞춰서 일찍 나오지.” 하고 한 마디 하셨을는지 모른다. 아무튼 좋다. 시골에서는 두 다리로 걸어갈 때에 가장 즐겁고, 이렇게 군내버스 잡아서 탈 적에 참 좋다.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 두루 돌면서 아름다운 풀빛 느끼는 마실길이 즐겁다. 군내버스에서는 아이들 노랫소리가 싱그럽다. 아이들이 조금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괜찮다.


  군내버스 손님인 할매와 할배는 이제 서로 낯이 익숙하다. 군내버스 일꾼들도 모두 우리 네 사람을 알 테지. 읍내로 마실을 가며 아이들은 버스에서 떠들고, 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버스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4346.6.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마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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