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12] 여름날 저녁 일곱 시
― 따사로운 바람이 좋아

 


  아침부터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낮 네 시 무렵까지 네 차례 물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커다란 고무통을 놓고 물을 채우지요. 아이들은 삼십 분 즈음 물놀이를 하고는 몸이 차다며 밖으로 나와 알몸으로 평상에서 뛰다가 마당 한쪽에 펼친 천막에 들어가서 놉니다. 이러다가 밥을 먹고, 또 물놀이를 하고, 다시 평상으로 알몸 되어 올라선 다음 천막에 들어가서 놀지요. 한참 놀면서 졸린 낯빛이기에 낮잠을 재우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더 놀고파 합니다. 이러다가 작은아이는 더는 견디지 못하겠는지 아버지 품으로 안겨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큰아이는 만화책을 한 시간 즈음 보더니 작은아이 곁에 눕습니다. 이렇게 두 아이를 눕히니 겨우 홀가분한 몸 되는데, 아버지라 해서 쇳몸은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 나란히 누워 책을 조금 넘기다가 슬며시 눈을 감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눕지만, 아이들이 자다가 뒤척이면 이불을 여미고, 쉬 마렵다 낑낑대면 안아서 쉬를 누입니다. 파리가 달라붙으면 파리를 쫓습니다. 나는 같이 누웠어도 잠을 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녁 일곱 시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 아이들 깨어나면 무엇을 먹이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천천히 지는 긴 여름해를 내다보다가, 낮에 넌 빨래가 마당에 그대로 있습니다. 안 걷었구나.


  빨래를 하나하나 걷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었는데 빨래에 이슬 기운 스미지 않습니다. 여름빨래는 이렇군요. 봄과 가을에는 다섯 시를 넘길 수 없는 빨래요, 겨울빨래는 네 시를 넘기지 못합니다. 봄가을에는 다 안 말랐어도 네 시 즈음 걷어야 하고, 겨울에는 세 시 즈음 걷어서 집안으로 들여야 해요.


  햇살도 바람도 구름도 나뭇잎도 좋습니다. 한낮에는 퍽 후끈후끈 달아오르지만, 마룻바닥에 엎드리거나 누우면 참 시원합니다. 마루에서 풀잎과 나뭇잎 춤추는 소리를 들으면 호젓합니다. 여름이더라도 해가 오래도록 하늘에 걸리고, 해가 오래도록 걸리더라도 저녁 다섯 시를 지나면 햇살이 뜨겁지 않으며, 예닐곱 시에는 슬몃슬몃 마실 다니기 좋아요.


  하루가 긴 여름입니다. 하루가 밝은 여름입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 실컷 뛰노는 여름입니다. 처마 밑에 빨래를 놓아도 보송보송 마른 채 걱정없는 여름일는지 모릅니다. 온갖 목숨이 저마다 기쁘게 노래하는 여름입니다. 사람도 멧새도 개구리도 풀벌레도 푸나무도 서로서로 사랑스레 어우러지는 여름입니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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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11] 늘 듣는 소리
― 맑은 노래를 누리는 삶

 


  인천에서 살며 옆지기를 만나 짝을 짓고 아이를 낳아서 돌보던 어느 날, 옆지기가 ‘전철 복복선 지나가는 소리’ 때문에 도무지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 망설이다가 민원을 넣었습니다. 민원을 넣은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눈이 펑펑 쏟아진 날 ‘소음공해 측정’을 한다면서 공무원 두 사람이 왔어요. 어쩜, 다른 날도 아닌 눈이 펑펑 쏟아져서 전철이 가장 느릿느릿 지나가는 날 왔을까요. 그런데, 눈이 펑펑 쏟아져서 전철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데에도 데시벨 측정으로 110이라는 숫자가 나왔지요. 이때 공무원들은 120인가 130을 넘어야 민원으로 받아들여 피해보상을 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참 어이가 없었어요. 당신들 스스로 느끼지 않느냐고, 이렇게 눈 때문에 천천히 달리고, 눈에 소리가 묻히는 날 아닌, 여느 때에 소음측정 다시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어요.


  여느 때라면 얼마나 높은 숫자가 나왔을까요. 전철 복복선이니까, 두 대가 마주 지나갔을 적에, 또 빠른전철이 나란히 지나갔을 적에는 얼마나 높은 숫자가 나왔을까요.


  우리 식구는 인천을 떠났고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식구가 인천을 떠났어도 기차길 옆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식구가 나온 그 옥탑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더군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참으로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풀내음을 맡으면서도 즐겁고, 바람과 햇살로도 즐거운데, 다른 무엇보다, 귀를 시끄럽게 찢는 소리 아닌, 멧새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나뭇잎과 풀잎과 잠자리와 나비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하루 내내 들으면서 지내니 즐거워요.


  이런 소리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요. 주파수를 똑같이 맞춘 소리를 노래로 만들어 들려준다 하더라도 이런 즐거움 누릴 수 있을까요. 마을 할매 할배 들은 손전화 아무 때나 터뜨리지 않으니, 손전화 기계로 시끄럽게 할 사람 없습니다. 장사하는 짐차 지나갈 적에 몇 분쯤 시끄럽지만 이내 사그라듭니다. 우리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자동차는 몹시 적어요. 군내버스는 마을 어귀로 하루에 여덟 대만 지나갑니다.


  맑은 물과 싱그러운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과 짙푸른 푸나무를 누릴 수 있는 데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데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여기에 고운 소리 흐른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아니, 다른 것 모두 좋은데 시끄러운 소리로 귀를 찢는다면, 물이 맑고 바람이 싱그러우며 햇살이 따사롭더라도 살기 힘들리라 느껴요. 곰곰이 생각하면, 물이나 바람이나 햇살이나 푸나무 어느 한 가지가 없거나 모자라다 하더라도, 소리가 귀를 찢으면 사람들이 살아가기 너무 힘겹거나 고단하지 싶어요.


  소리를 들으며 삶을 생각합니다. 노래를 헤아리며 삶을 살찌웁니다. 이야기를 읽으며 하루를 빛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어떤 말마디를 들려주는가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마디로 하루를 새로 짓는가 곱씹습니다. 며칠 앞서부터 저녁이면 마당에서 몹시 큰 개구리 울음소리 들려서, 설마 황소개구리인가 했는데, 저녁나절 보니, 그냥 참개구리였어요. 참개구리 한 마리 우리 마당과 텃밭 사이를 오가며 지냈더군요. 좋은 하루가 저물며 맑은 노래가 흐르고, 아이들은 새근새근 잘 잡니다. 4346.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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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10] 바다에서 책을 읽는
― 마음을 쉬면서 다스리는 하루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운 뒤 면소재지에 갑니다. 우체국에 들러 책을 부칩니다. 면에 있는 빵집에 들러 빵 두 꾸러미를 장만합니다. 집에서 나올 적에 물을 넉넉히 챙겼습니다. 작은아이는 어느덧 새근새근 잠들었어요.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씩씩하게 함께 갑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시골길 달리는 내내 이런 얘기 저런 노래 들려줍니다.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쉬잖고 조잘조절 떠들기 때문에, 고단하게 오르막을 오르더라도 새삼스레 힘을 내어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집에서 나와 이십오 분쯤 지나니 발포 바닷가에 닿습니다. 이 바다는 저 멀리 태평양 보이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입니다. 물결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모래밭으로 내려갑니다. 큰아이는 낮잠을 건너뛰며 샛밥을 먹었지만,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 앉아 자느라 샛밥을 안 먹었습니다. 두 아이를 부릅니다. “벼리야, 네 동생은 안 먹어서 배가 고파. 좀 무얼 먹고서 놀자.” 모래밭에서 흙 파고 뒹굴던 아이들이 올라옵니다. 빵과 과자를 풀어 놓습니다. 밥을 든든히 먹고 나온 마실길이지만 두 아이 모두 바지런히 집어먹습니다. 아이들이 빵과 과자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책을 꺼냅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다문 한 쪽이라도 읽고 싶어 책 한 권 가방에 넣었어요.


  아이들은 먹느라 모래밭에 내려갈 생각을 안 합니다. 스무 쪽 즈음 읽고서 자전거수레에 책을 올려놓습니다. 함께 모래밭으로 내려갑니다. 나뭇가지를 셋 줍습니다. 아이들한테 하나씩 건네고, 나도 하나를 쥐어 모래밭에 그림과 글씨를 그립니다. 한참 그림놀이 글놀이 하다가 서로 손을 잡고 바닷물에 발을 담급니다. 물결이 밀려들어 발가락을 간질입니다. 물결은 내 무릎 언저리를 맴돌지만, 이 물결은 아이들 옷자락을 모두 적십니다. 아이들은 옷자락 젖으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천천히 걷고, 다시 이쪽으로 천천히 걷습니다. 한참 거닐며 물결하고 놉니다.


  바닷가를 스치는 자동차 더러 있고, 두어 대쯤 발포 바닷가에 서지만, 물결소리만 귀로 들어옵니다. 두 눈은 물결만 바라보고 온몸은 물결을 느낍니다. 크게 기지개를 켭니다.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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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9] 시골길 걷기
― 가장 즐거운 마실

 


  가장 즐거운 나들이는 걷기입니다. 걸어서 다니는 나들이가 가장 즐겁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 때에는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 천천히 느낍니다. 논을 보고 밭을 보며 풀숲을 봅니다.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며 먼 멧골을 봅니다. 하늘과 구름과 해를 봅니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를 보지요.


  두 다리로 천천히 걷기에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걷는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깜냥껏 신나게 뛰어놉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뛰고, 거리끼지 않으며 달립니다.


  갑작스레 온 나라에 ‘걷기 바람’이 불면서 관광길을 곳곳에 큰돈 들여 우지끈 뚝딱 하고 만드는데, 사람이 거닐 길이란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이 거닐 길은 오직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보금자리와 마을이 있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숲과 들로 이어지는 풀섶입니다.


  바닥에 아스콘이나 돌을 깔아야 하지 않습니다. 울타리를 세우거나 전망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 길로 몇 킬로미터, 저 길로 또 몇 킬로미터, 이렇게 나누어 길을 닦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걷는 길에 표지판이나 알림판 있을 까닭 없습니다. 그저 걷는 길이요, 걷다가 느긋하게 쉬는 길입니다.


  풀숲에 앉으면 되지요. 바위에 앉으면 돼요. 나무 밑에 앉으면 되고, 모래밭에 앉으면 돼요. 따로 걸상을 마련해야 할 곳은 버스터나 기차역입니다. 이런 데에는 걸상을 넉넉히 마련해서 퍽 많은 사람들이 다리도 쉬고 짐도 내려놓기 좋도록 해야 합니다. 공원에 따로 걸상이 있지 않아도 돼요. 다만, 비 내린 뒤에는 풀밭에 앉기 어려울 수 있으니, 비를 그을 만한 자리에 걸상을 둘 수 있겠지요. 이런 걸상은 모두 나무로 짜면 됩니다.


  혼자서도 걷고 아이들하고도 걷습니다. 씩씩하게 걷습니다. 한 시간쯤 가볍게 걷습니다. 두 시간도 이럭저럭 즐겁게 걷습니다. 걷다 보면, 아이들이 힘들어 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한 아이씩 안거나 업으면 돼요. 작은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걷고, 큰아이가 안기거나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걸어요.


  아이들은 즐겁게 걸어가면서 다리에 힘을 붙입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걷고 뛰고 달리고 날면서 마을과 보금자리를 넓게 껴안습니다. 아이들은 활짝 웃으면서 걷는 내내 바람과 햇살과 흙과 빗물과 냇물과 풀과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시나브로 느낍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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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8] 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
― 아이들과 자전거 타고 바닷가로

 


  고흥에 보금자리 마련해서 처음 살아갈 적에는 아직 길이 익숙하지 않아 택시를 곧잘 탔지만, 택시로 이곳저곳 다니고, 군내버스로 이 길 저 길 지나가면서 차츰 길을 익힙니다. 어느 만큼 길이 눈에 익으면 자전거로 달립니다. 혼자서도 달리고, 수레에 아이들 태워 함께 달립니다.


  군내버스나 택시로 다닐 적에도 길눈을 여러모로 익히지만, 자전거로 달릴 때처럼 훨씬 잘 익힐 수는 없습니다. 참말 자전거로 이 길 저 길 막다른 데까지 다니다 보면, 지도책에조차 안 나오는 작은 샛길까지 몸으로 헤아리며 살필 수 있어요.


  우리 집에서 발포 바닷가까지는 7킬로미터입니다. 면소재지 택시를 부르면 네 식구 칠천 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까지 헤아리면 만사천 원에 바닷가마실 누려요.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끌며 달리면, 가고 오는 데에 오십 분쯤 들입니다. 가는 길에는 조금 더 빠르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들과 노느라 다리힘이 조금 빠지니 더 품을 들입니다.


  한여름 휴가철에는 바닷가마다 도시사람으로 북적입니다. 도시사람은 전남 고흥 바닷가라 하는 참 먼 데까지 놀러옵니다. 아무래도 큰도시하고 가깝거나 제법 이름난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릴 테니까, 이렇게 깊고 외진 시골 바닷가까지 애써 찾아온다 할 수 있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한테는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바닷가라 할 테지만, 도시사람한테는 무척 한갓지며 고즈넉한 바닷가라 할 만하거든요.


  우리 식구는 아무 때나 바닷가로 마실을 나옵니다. 한겨울에도 첫봄에도 늦가을에도 자전거를 몰아 바닷가마실 누립니다. 우리 식구 말고 아무도 없는 너른 바닷가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모래밭에서 뒹굴며, 바닷물에 몸을 적십니다. 시골에 살기에 바다는 언제나 우리 차지입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분들은 물결 넘실거리는 바다 한복판을 누리고,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살림 꾸리는 우리들은 마음 내킬 적에 언제라도 바닷가를 한껏 누립니다.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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