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17] 개구리와 모기
― 친환경농약이란

 


  농약을 치느라 논에서 개구리 사라지면, 시골집 텃밭과 꽃밭과 마당에서도 개구리가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 집안 풀밭에서 산다는 모기들 잡아먹을 개구리가 없는 셈이니, 개구리 없어지면, 사람들은 모기약에 파리약에 온통 약범벅이 됩니다.


  논에서 개구리가 없어지면, 개구리만 없어지지 않습니다. 잠자리도 나란히 없어집니다. 잠자리도 모기와 파리를 즐겨 잡아먹는데, 잠자리가 나란히 없어지면 그야말로 모기약에 파리약으로 온 집안을 채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비도 깃들지 못해요. 제비가 깃들지 못하는 시골에서는 온갖 벌레가 날뛸 테지요. 온갖 벌레 잡아먹는 제비가 없으니, 사람들은 다시금 모기약이며 파리약이며 벌레약이며 뿌려대고 맙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 여러 날 항공방제 이루어졌습니다. 항공방제를 했다는 고흥군 농협에서는 친환경농약을 뿌렸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친환경농약 때문에 개구리가 대단히 많이 죽었어요. 나비와 잠자리도 참으로 많이 죽었어요. 사람한테는 나쁘지 않다는 친환경농약이라고 밝히지만, 개구리와 나비와 잠자리가 죽는다면, 이러한 농약은 사람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개구리와 나비와 잠자리가 죽고 말아, 제비와 해오라기가 찾지 않는다면, 이러한 시골은 사람이 얼마나 살 만한 터가 될까요.


  개구리가 없으면 뱀이 먹이 찾기 어렵습니다. 뱀이 살기 어려우면, 뱀을 잡아먹을 소쩍새도 살기 어렵습니다. 벼멸구 잡겠다며 농약을 치면, 개구리뿐 아니라 수많은 목숨이 함께 죽습니다. 잠자리와 나비도 죽고, 미꾸라지가 죽습니다. 다슬기와 개똥벌레가 죽습니다. 게아재비와 물방개도 나란히 죽습니다. 아주 스스로 죽음을 부르는 셈입니다. 살자고 치는 농약이 아니라, 죽자고 치는 농약이에요.


  농약은 땅속으로 스밉니다. 농약 머금은 흙은 시름시름 앓습니다. 농약은 흙을 아프게 하면서 땅밑으로 흐르는 물로도 스밉니다. 사람들은 농약 기운 머금은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먹고 맙니다. 사람들은 농약 기운 스민 물을 마십니다. 여기에다가, 농약내음 물씬 나는 바람을 마셔야지요.


  ‘친환경’ 이름만 붙이면 될까요. 벼만 살리고 다른 목숨은 모조리 죽이는데 ‘친환경’이란 무엇일까요. 4346.7.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13-07-19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속으로 스미는 농약, 끔찍합니다.

숲노래 2013-07-20 00:01   좋아요 0 | URL
도시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
시골에서는 농약,
바로 이 두 가지가
우리 삶을 옥죄는 참 크나큰 수렁입니다..
 

[시골살이 일기 16] 시골 돌아와 살아나다
― 도시 다녀오면 따분한 아이들

 


  이틀을 경기도 일산과 서울에서 보낸 아이들이 사흘째 저녁 드디어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두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서울을 다녀옵니다. 옆지기는 미국으로 배움길을 떠난 터라, 아이들은 아버지하고 시골에서 지냈고, 아버지가 이리 가거나 저리 갈 때마다 언제나 함께 움직입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저희 마음껏 뛰고 달리고 소리치고 노래하고 뒹굴면서 놉니다.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은 이리로도 달리고, 저리로도 구릅니다. 아이들은 옷에 흙이 묻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마을 빨래터에서건 논도랑에서건 웅덩이에서건 철벅철벅 뛰면서 물투성이가 됩니다. 들꽃을 꺾어 머리에 꽂거나 반지를 만들며 놀고, 꽃다발을 한아름 안으며 달리기를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시외버스를 몇 시간 타고 기차를 또 몇 시간 타다가는, 전철과 택시를 자꾸 갈아타야 하니 아주 힘들밖에 없습니다. 버스에서건 기차에서건 전철에서건 택시에서건, 아이들은 ‘얌전히’ ‘꼼짝 말고’ ‘입을 다물면서’ ‘뛰지 말고’ ‘목소리 낮추어’ ‘아무것이나 만지지 말며’ 잔소리를 들어야 해요. 시골집에서는 무엇이건 신나게 즐기면서 누리던 아이들이지만, 도시에서는 어디에서고 홀가분하게 뛰놀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처럼 도는 아이들이 왜 ‘죽이고 죽는 게임’에 빠져들고 ‘죽이고 죽는 영화와 만화’에 젖어드는지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너무 짓눌리고 끔찍하게 억눌린 나머지, 아이들은 몸이 갇히고 마음이 갑갑해요. 놀지 못한 채 ‘학습’만 하다 보니, 아이들은 슬프고 괴롭지요. 이 가녀린 도시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를 내며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말아요. 이 불쌍한 도시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를 내며 거친 말씨와 막말을 따르고 말아요. 장난감 총으로 노는 아이들이 되지요. 동무를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때리면서 히죽히죽 웃어요.


  아이들이 아이답자면 아이로서 해맑게 웃고 노래면서 뛰놀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래, 우리 집 두 아이는 사흘째에 이르러 시골집으로 돌아오니, 읍내에서 시외버스 내리고 택시를 불러 느즈막한 저녁에 비로소 집과 가까워지자 뒷자리에서 뒹굴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웃고 떠듭니다. 이틀 동안 꽁꽁 갇히거나 묶인 굴레를 벗어던집니다.


  살아나는구나. 아이다운 빛으로 살아나는구나. 살아나며 웃는구나. 스스럼없이 웃고, 거리낌없이 노래하면서 아리따운 이야기를 우리 집과 마을에 흩뿌리는구나. 4346.7.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7-1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와 보라와 함께살기님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밤 지금 이 시간은 정말 너무나 꿀맛,같은 포근하고 좋은 밤이겠지요~^^
안녕히 주무세요~*^^*

숲노래 2013-07-16 05:59   좋아요 0 | URL
힘겹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이들 모두
아침에 즐겁게 일어나기를 빌어요... 에구..
 

[시골살이 일기 15] 고샅길에서
― 두 아이 함께 바라보는 마을

 


  마실을 나가려 할 적에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섭니다. 아이들은 저 앞에서 콩콩 달립니다. 우리 집 앞 고샅길에서 마을 어귀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지만, 아이들은 이 내리막이 익숙합니다. 마을 할매나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 넘어질라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걱정없이 달립니다. 가끔 이 길에서 털썩 소리 내며 넘어지곤 하지만,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고샅길이 흙길이라면 넘어져도 무릎 까질 일 거의 없지만, 이제 흙길로 된 고샅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운기를 모는 마을 할배로서는 시멘트길이 낫다 여기고, 또 도시로 간 이녁 딸아들이 자가용을 몰고 오니 시멘트길로 닦여야 번듯하다고 여깁니다.


  고샅길이 흙길이었을 적에는 아이들 누구나 작은 돌멩이 주워 흙바닥에 금을 그으며 놀았습니다. 도시에서도 골목길이 아직 흙바닥이었을 적에는 누구라도 조그마한 돌멩이 주워 흙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네모를 그립니다. 작은 동그라미 그리면 구슬치기 놀이를 한다는 뜻이거나 땅따먹기를 한다는 뜻입니다. 큰 동그라미를 그리면 잡기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네모를 그리면 땅밟기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이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나 골목과 고샅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바꾸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골목과 고샅이 흙길이면서 자동차 거의 안 다닐 적에는 골목도 고샅도 온통 아이들 차지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이를 안 가르쳐 주어도 스스로 놉니다. 아이들은 책에서 배운 적 없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어도 스스로 놉니다. 흙바닥이면 놀이바닥이고, 흙길은 놀이길입니다.


  시멘트 부은 논밭에서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습니다. 흙으로 된 논밭일 뿐 아니라, 곱고 고소한 흙으로 이루어진 논밭일 때에 쌀이든 보리이든 감자이든 무이든 배추이든 싱그럽고 알뜰하게 거두어들입니다. 시골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고 시골 밭둑을 시멘트로 덮더라도, 논바닥과 밭바닥은 언제까지나 흙바닥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시멘트로 덮인 고샅길과 골목길도 흙길로 돌려놓아야겠지요. 앞으로는 이 나라 어른들이 바보스러움을 깨닫든, 이 나라 아이들이 자라 ‘어른들 바보스러움’을 무너뜨리거나 달래면서, 지구별에 아름다운 흙길, 흙터, 흙밭, 흙누리 이루는 사랑을 펼쳐야겠지요.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14] 빨래순이 되어
― 마을빨래터라는 곳

 


  마을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마을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마을 이웃은 이제 없기에, 마을빨래터를 아이들과 치우면서 물놀이를 합니다. 집집마다 따로 물꼭지를 내고, 집집마다 빨래기계 들였으니, 마을빨래터는 모양만 남은 셈입니다. 마을에 젊은 사람 없고, 할매들은 손빨래를 하기 벅차겠지요. 주말이나 명절에 젊은 사람 찾아오더라도 손으로 빨래를 거들 이는 없으리라 느껴요. 마을빨래터는 들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매나 할배가 손발을 씻고 연장을 닦는 곳일 뿐입니다.


  지난날 마을사람 복닥복닥 모여 손으로 옷가지를 비비고 헹굴 적에는 마을빨래터에 물이끼 낄 날이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전기 없어도 물이 흐르고, 기계 없어도 몸으로 움직이며, 아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쉬던 빨래터는 시나브로 휑뎅그렁하게 바뀝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다른 마을도 빨래터는 휑뎅그렁합니다. 빨래를 하지 않는 빨래터는 차츰 빛을 잃습니다. 빨래를 할 사람이 사라지고, 물놀이를 할 아이들 없는 빨래터는 쓸쓸합니다.


  집안에 빨래기계 들여놓고 단추 한 번 척 누르면 되는 오늘날입니다. 문화가 발돋움했는지, 문명이 뻗어 나가는지, 빨래를 맡아서 해 주는 기계는 집안일을 크게 덜어 준다 할 만하겠지요. 그런데, 빨래기계 나타나 전기와 물을 듬뿍 쓰는 한편 화학세제 널리 퍼지면서, 땅도 물도 더러워집니다. 빨래기계 나타나 마을사람들 빨래터에 모일 일 사라지면서, 마을에 이야기와 노래가 사그라듭니다. 아이들이 더는 빨래터에서 놀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따로 수영장에 갑니다.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마을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어냅니다. 아이들과 함께 솔로 빨래터 바닥을 박박 문지릅니다. 한참 쓸고 문지르니 맑은 물이 졸졸 흐릅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빨래터를 너른 놀이터 삼아 온몸 흠뻑 적시며 놉니다. 배가 고프도록 놀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시늉을 합니다. 아이들이 조물딱조물딱 비비고 헹구는 시늉을 하고서 “빨래 다 했어.” 하고 말하면 이 옷가지를 받아 내가 다시 비비고 헹군 다음 물을 죽죽 짭니다. 빨래를 다 마친 옷가지를 작은 통에 담습니다. 청소 연장을 잔뜩 짊어지니, 큰아이가 빨래바구니를 들어 줍니다. 아버지는 빨래돌이 되고, 큰아이는 빨래순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 빨랫줄에 척척 넙니다. 4346.7.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13] 볼그스름 익는 매화나무 열매
― 햇살 머금은 맛

 


  이웃들은 매화나무 열매가 푸르딩딩할 적에 바지런히 땁니다. 아직 제대로 크지 않은 푸른 매실을 한 꾸러미 두 꾸러미 따고, 모자라다 싶으면 읍내에서 몇 꾸러미씩 사들입니다. 매화 열매인 매실에다가 설탕을 푸대로 장만합니다. 그러고는 ‘매실 효소’를 담근다고 바쁘셔요.


  우리 집은 매화나무에 맺힌 열매가 푸르딩딩할 적에는 그대로 둡니다. 매화 열매 스스로 가장 굵게 익을 때까지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이 매화 열매가 볼그스름한 빛 감돌면서 노랗게 익도록 기다리지요. 효소로 담가서 물을 마셔도 좋다 할 테지만, 이보다는 오래오래 햇살과 바람과 빗물을 받아먹으며 잘 익은 매화 열매를 하나둘 톡톡 따서 그날그날 먹고 싶어요.


  매화나무 열매를 따서 먹으면, 참말 매화나무 열매 맛이 납니다. 살구도 아니요 오얏도 아니며 복숭아도 아닙니다. 매화나무 열매는 꼭 매화나무 열매 맛이 나요. 오얏처럼 달지 않고, 복숭아처럼 시원하지 않습니다. 살구처럼 상큼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오얏처럼 끝물에 신맛 감돌지 않아요.


  볕이 잘 드는 가지 쪽에서는 벌써 노랗게 익으려 하고, 볕이 덜 드는 가지 쪽은 아직 푸른 빛깔입니다. 볕 잘 드는 쪽부터 하나씩 따서 먹으면, 어느새 볕 덜 드는 가지 쪽 열매도 익을 테지요.


  여름날 두고두고 즐기는 열매입니다. 한여름에 하나씩 맛보면서 싱그럽고 맑은 기운 누리는 열매입니다. 햇살을 머금은 열매에서는 햇살맛이 나고, 바람을 들이켠 열매에서는 바람내음이 나며, 빗물을 마신 열매에서는 빗소리가 흐릅니다.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