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4 부릉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빛꽃을 찍고, 잠을 자고, 책값에 보탤 뜻으로 부릉이(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만, 이밖에 우리 삶터를 헤아리려는 뜻이 더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부릉이를 덜 몰면 길이 그만큼 홀가분할 뿐 아니라, 마을이 조용하고 깨끗해요. 이 땅에 부릉이가 하나라도 적다면 그만큼 찻길을 덜 늘려도 좋으며, 어린이가 뛰놀 빈터나 풀밭을 건사할 만합니다. 사람들이 부릉이를 두셋이나 여럿 거느리지 않고 하나만 거느리면, 그만큼 살림돈을 넉넉히 다스릴 테니, 이 살림돈으로 이웃사랑을 펼 만하고, 아름책을 장만할 만하고, 값이 제법 된다 싶은 말꽃(사전)을 갖출 만하겠지요. 온누리 이웃님이 부릉이를 건사하지 않고 갈무리하는 살림돈으로 땅을 장만해서 나무를 심으면 좋겠어요. 살림돈이 퍽 넉넉하다면 골목집이나 시골집을 한 채 장만해서 ‘작은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꾸리거나 ‘작은 마을책집’을 차려 볼 만합니다. 부릉이 하나를 거느리려면 일꾼 한 사람을 거느리는 만큼 돈이 든다지요. 이 돈이라면 마을숲이나 마을책집이 태어날 밑천이에요. 곳곳이 부릉이로 넘치기보다는 곳곳에 마을쉼터가 늘고 마을책터가 피어나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부릉이 하나를 줄이면 마을이 새롭게 자라날 만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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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 등짐



  “웬 등짐이 그렇게 커요? 멧골을 오르셔요? 한참을 밖에서 지내는 사람 같아요. 안 무거워요?” “책집에 가는 등짐이에요. 무릎셈틀(노트북)에 책을 짊어지지요. 즐겁게 장만하는 책은 안 무거워요. 신나게 곁에 둘 책인걸요. “에, 저는 들지도 못하겠던데, 거짓말이죠?” “참말이에요. 저는 책을 무겁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이를 안거나 업으면서 ‘얘야, 네가 무거워서 안기 힘들어.’ 하고 여기거나 말하지 않아요.” “아.” “사랑하는 아이를 안거나 업듯, 사랑할 책을 장만해서 등에 짊어지고 집으로 간답니다. 그래서 등짐은 되도록 크고 좋은 녀석으로 장만해요. 이 등짐 저 등짐을 써 보고서 알았어요. 작거나 값싼 등짐은 어깨끈이 풀어지거나 끊어질 뿐 아니라 구멍이 나더군요. 이 등짐은 50만 원이 넘는 값을 치렀는데, 열 해 넘게 짊어지면서 두 벌을 맡겨서 어깨끈을 손질했답니다. 제대로 지은 것을 제값을 주고 장만하면 잘 고쳐 줘서 오래오래 쓸 만하고, 등이 한결 좋아요.” 책을 담아서 지기에 어울리도록 짓는 등짐이 드뭅니다. 책을 스물이나 서른, 때로는 마흔이나 쉰을 담고서 뛰거나 달려도 튼튼한 등짐이 드물어요. 두툼한 끈을 겹으로 댑니다. 애쓴 등짐을 쓰다듬습니다. 책을 담는 새로운 제 몸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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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서른 해를 

우리말과 책과 마을책집 이야기를 쓰며

살았습니다.


여태 쓴 책 이야기만 해도

종이책으로 1000이 훌쩍 넘을 만큼 잔뜩 있으나

오늘부터 새 꼭지를 쓰려고 합니다.


책을 노래하는 글에 얼핏설핏 곁들이기도 하고

누가 물어보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하나로 제대로 묶은 적은 없지 싶습니다.


그래서 '책하루'란 이름으로

여태까지 '책하고 사귄 삶'을

단출히 갈무리할 생각입니다.


마음으로 누려 주셔요.

고맙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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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 몰지 않는다



  “책을 그렇게 많이 사는데, 자동차를 몰면 좀 낫지 않아요?” “부릉부릉 몰면 틀림없이 안 짊어지고 다닐 테니 가볍거나 수월할는지 몰라요. 그러나 손잡이를 잡으면, 책을 못 읽고 글을 못 쓰고 빛꽃(사진)을 못 찍고, 졸릴 적에 잠들 수 없어요.” 책을 산다고 해서 끝이지 않습니다. 읽으려고 사는 책이니, 산 책은 책집을 나서며 걸을 적부터 읽습니다. 저는 걸으면서 읽고, 버스나 전철을 타면서도 읽습니다. 기다리면서도 읽고, 자다가도 읽습니다. 손잡이를 쥐면 책을 못 읽어요. 더욱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사람인 터라, 새말을 떠올리거나 들으면 바로 글꾸러미에 적어야 하는데, 손잡이를 쥐면 못 쓰지요. 요새는 아이들하고 이웃님하고 나눌 노래꽃(동시)을 쓰기도 하니, 더더구나 손잡이는 손사래칩니다. 저는 책집·자전거·우리 아이·인천 골목 이렇게 넷을 빛꽃으로 담습니다만, 걷다가도 문득 찍을 모습이 있으니, 부릉이 손잡이는 잡을 수 없어요. 그리고 바깥마실을 다니면서 고단하면 자야 할 텐데, 손잡이를 쥔 채 잘 수 없어요. 다섯째를 보탠다면, 부릉이 값으로 책을 장만할 생각이요, ‘자동차 보험료·기름값’을 댈 돈이라면 책을 얼마나 신나게 마련하며 즐거울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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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 모름투성이



  모름투성이인 터라 이 책도 저 책도 안 가리고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이이는 왼날개라서 안 된다’라든지, 저 책을 읽으면 ‘저이는 낡은 사람이라 안 된다’고 손사래치는 이웃이 많았는데, 이 모든 말을 귓등으로 넘기고서 어느 책이건 안 가렸습니다. 배우려고 읽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무슨 꿈을 키우는 삶을 어떻게 가꾸려 하는가를 헤아리려고 온갖 책을 스스럼없이 읽었어요. 이이가 저지른 잘못이 수두룩하더라도 이이가 쓴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엿보면서 ‘이이가 말하고 삶이 어긋난 대목’이 언제부터였는가를 짚고, ‘나라면 말하고 삶을 어떻게 하나로 가꾸는 숲길이 될까?’ 하고 생각했어요. 아마 모름투성이 아닌 앎투성이인 삶길이라면 굳이 이 책 저 책 찾아다니면서 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르기에 누구한테서나 배웁니다. 모르기에 어디에서나 배웁니다. 모르기에 책뿐 아니라 별빛·들꽃·나무·새·풀벌레·씨앗·바람·구름·눈비·냇물·숲한테서도 배웁니다. 모르기에 자전거뿐 아니라 자동차한테서도 배워요. 모름투성이인 제 모습이 창피하거나 싫지 않습니다. “전 아직 몰라요. 전 오늘까지 이만큼 배웠어요.” 하고 말합니다. 이러며 새롭게 책 하나를 더 쥡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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