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18. 잔소리를 하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를 한창 하던 1999년에 첫 이야기꽃(강의)을 폈다. 하루 두 시간 이야기로 그날 20만 원을 받았고, 새뜸나름이 일삯이 31만 원이었으니 목돈이다. 그때 나로서는 석 달치 책값을 번 셈이었다. 그날부터 오늘 2025년 6월 18일까지 이야기꽃을 꽤 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야기를 멈추고서 잔소리를 했다.


  나는 혼자 말하기를 안 바라기에, 듣는 사람이 문득 말을 터뜨리면 기꺼이 기다리며 듣는다. 오늘은 초등3∼4년 어린씨가 수다조차 아닌 ‘함부로’를 10분쯤 이으시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러고서 30분 동안 아뭇소리를 내지 말라 이르고는 잔소리를 나지막히 들려주었다.


  장난을 넘어설 만큼 마구 구는 아이를 보면, 집에서부터 사랑받지 못 하느라 쌓인 불길이 대단하다. 그래서 5분쯤은 불풀이를 해도 넉넉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혼자 10분 넘게 불풀이라면 학교에 다닐 까닭이 없다. 일자리를 찾아서 집을 일찌감치 떠나야지. 또는 엄마아빠한테 큰소리를 쳐서 아이 스스로 저희 집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는 집에서 엄마아빠한테 큰소리로 “난 사랑받으려고 태어났어! 난 시달리거나 따돌림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어!” 하고 외칠 노릇이다.


  나는 이미 어릴적에 우리 아버지한테 이렇게 외쳤고, 틈틈이 외쳤으며, 우리 아버지가 여든 살이 넘어도 철이 안 들기에, 아버지란 나한테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타이르거나 달래며 함께 살림을 지으려 하기에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란 살림소리이다. 잔소리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속없이 겉치레로 흐르더라. 오늘날 숱한 사람들은 잔소리를 못 견뎌 하는데, 그만큼 안 배우겠다면서 철없이 구는 짓이다. 잔소리를 받아들여야 철이 들면서 스스로 배운다.


  큰소리는 와장창 허물고서 아예 새로 세워야 할 때에 터뜨린다. 다시 태어나야 하기에 호통치며 꾸짖는다. 큰소리는 바로 어른과 어버이가 아이한테서 들어야 한다.


  시골아이가 걸어다니기를 빈다. 서울아이도 걸어다니기를 빈다. 아이들이 안 걸으니 도무지 철이 안 든다. 어른이란 몸이지만 땀내며 걷는 일이 사라지니, 몸뚱이는 크고 나이는 많지만 철없이 굴며 나뒹군다. 그대가 어른이라면 자가용을 버리든지 적게 타든지 자주 걷고 자전거를 타며 땀을 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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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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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17. 어떻게 쓰나요



  누구나 이웃님이라고 여긴다. 내가 쓴 책을 사주는 분도 안 사고 안 읽는 분도 다 다르게 이웃님이다. 내 책을 사주는 분을 만나면 그곳에서 바로 바람과 해와 별과 비와 흙과 풀과 꽃과 나무와 나비와 벌레한테 묻는다. “오늘 마주하는 이분한테 어떻게 넉줄글을 적어서 건네며 함께 즐거울까?”


  마음으로 묻고서 마음으로 듣는다. 마음으로 들으면서 마음으로 쓴다. 마음으로 읽고 새기고 나누고 문득 눈을 감는다. 어느 이웃숨빛이 나한테 목소리를 들려주었을까. 나는 어느 이웃숨빛하고 속으로 마주했을까.


  오늘 이곳을 쓴다. 오늘 만나는 하늘빛을 쓴다. 오늘 너랑 나는 눈빛으로 읽고 듣고 말하고 쓴다. 어제부터 이은 마음을 쓰고는, 이제부터 걸어갈 마음을 쓴다.


  어느 말에든 마음을 담으니, 어느 곳에서 어느 이웃님을 만나서 어느 말을 나누든, 스스로 눈을 뜨고서 함께 길을 연다. 고흥읍 나래터로 나와서 책을 부치고서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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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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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13. 열두걸음



  걷거나 달릴 적에, 처음에는 “하나둘!” 하고 센다. 이윽고 “셋넷!”을 센다. 이제 “일고여덟!”을 거쳐서 “열다섯열여섯!”을 센다. 발걸음이 자리를 잡으면 “서른둘!”로 건너고 “예순넷!”을 지나서 “온스물여덟!”을 헤아린다. 이렇게 차츰 곱셈으로 이으면 팔다리에 온몸을 곧게 펼 만하다.


  어릴적에는 두 무릎이 안 붙었다. 이런 다리는 못 고치거나 돌봄터에 몸을 맡겨서 오래오래 다듬어야 한다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나는 곧게 펴는 몸과 뼈야.” 하는 말을 여덟 살부터 읊었다. 열세 살에 이르러도 등과 몸과 뼈는 썩 안 바뀐 듯했다. 그러나 말부터 나를 다독이면서 날마다 팔다리에 등허리에 손발과 손발가락에 끝없이 주무르고 쓰다듬었다.


  열다섯 살에 힘살질(근력운동)을 너무 모질게 하다가 외려 갈비뼈가 주저앉으면서 밑쪽이 톡 불거지듯 튀어나왔다. 문득 내가 스스로 바보같아서 불길이 솟았지만, 처음부터 새로 다스리기로 한다. 이렇게 스무 살을 넘기고 서른 살을 넘나들면서 두 무릎이 닿고, 어려서 휜 채 나온 등뼈를 폈다. 갈비뼈는 아직 지켜보는데, 굽은어깨도 어느새 폈고, 종아리랑 팔뜩은 ‘등짐힘살’과 ‘두바퀴힘살’과 ‘걷기힘살’과 ‘아기안기힘살’이 붙었다. 어릴적에는 “넌 팔뚝도 다리도 젓가락 같네. 그렇게 뼈만 있어서 어떻게 걸어?” 같은 놀림말을 늘 들었으나, 이제는 아예 들을 일이 없다.


  나는 내 몸을 늘 새로 짜맞추려고 등짐을 지고서 걷거나 두바퀴를 굴린다. ‘걷는읽기’와 ‘걷는쓰기’도 스스로 몸을 되찾으며 살리려는 몸짓이다. 손빨래를 서른 해 남짓 잇는 살림살이도 스스로 살리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길이다.


  열두걸음에 맞추어서 열두꽃 이야기를 쓴다. 한 꼭지만 쓰려다가 어느덧 열한 꼭지에 이른다. 마지막 섣달꽃은 새해로 넘어가는 길목꽃이다. 한 달에 한 가지 꽃 이야기만 적을까 싶다가, 그달그달 모든 풀꽃나무를 적을까 하다가, 굳이 이러지 말자고 생각한다. 철빛을 풀어내는 달빛을 녹여내어 날빛과 하루빛과 오늘빛을 노래하면 넉넉하다고 본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살리거나 스스로 죽인다. 안 서두르면, 아니 내가 나를 나로서 바라보며 사랑하면 된다.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기에 스스로 살린다. 누구나 스스로 안 사랑하기에 스스로 죽인다. ‘스스로 좋아하’니까 오히려 스스로 목을 조인다. 좋고싫음이나 좋고나쁨으로 자꾸자꾸 가르는 탓에, 언제나 스스로 조이고 좁히고 조르고 졸졸 좇다가 그만 우리 숨결을 스스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오늘도 책등짐이며 저잣등짐을 묵직하게 지면서 걷고 달리고 선다. 팔뚝과 어깨에까지 책짐에 저잣짐을 얹고서 읽고 쓰면서 걷는다. 바깥일과 저잣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두 아이가 마을앞에 마중을 나온다. 마중을 안 나오는 날에는 집에서 다들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오순도순 논다. 반짝이는 여름걸음을 쉬고서 등허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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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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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15. 밤길을 그리는



  달날에 고흥군 영남면 어린배움터에서 어린씨랑 노래쓰기(우리말로 시쓰기)를 편다. 아침부터 펴는 일이기에, 해날인 오늘 부산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사상나루로 달린다. 부산·순천·벌교·고흥읍까지 다 다른 시외버스를 갈아타서 밤에 마지막으로 택시를 부르는 길이다.


  버스에서 읽을 책을 빼놓는다. 버스에서 쓸 글도 헤아린다. 아침부터 속을 비웠고, 이제 길님(운전사)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어젯비는 하늘을 말끔히 씻었다. 오늘바람은 하늘을 정갈히 털었다. 크고작은 책짐을 기쁘게 나르자고 여긴다. 한 발짝씩 떼면 된다. 한 걸음씩 나아가면 즐겁다. 읽고 쓰고 듣고 보고 나누는 사이에 모두 부드러이 풀린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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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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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13. 논틑밭틀



  고흥살이 열다섯 해를 돌아보니, 버스때를 앞두고서 늘 밭게 움직였다. 오늘도 밭게 길을 나선다. 논틑밭틀로 걸으려다가 그냥 큰길을 따라서 걷는다. 시골 큰길이란 두찻길이지. 이 만해도 크다. 이 만한 길에도 뱀과 개구리와 새와 사마귀와 지렁이와 들고양이와 들개와 고라니와 멧돼지와 나비와 벌과 갖은 이웃이 뻥뻥 치여죽는다.


  간밤에 내린 비는 길주검을 달래었을까. 짙구름을 올려다보며 질빵을 조이고서 달린다. 옆마을 버스나루에 닿아서 숨을 고른다. 땀을 훔치고서 노래 한 자락을 쓴다. 시골버스에 타고서 마무리한다. 두 꼭지를 새로 쓰고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미닫이를 열고서 들바람을 쐰다.


  오늘 시골제비는 어떤 노래와 춤으로 배웅하려나. 읍내 버스나루에서 부산버스를 기다린다. 부산에 닿으면 어느 곳을 들러서 〈책과 아이들〉로 걸어갈는지 헤아려 본다. 요즈막에 사들인 책이 집에 자꾸자꾸 더미를 이루지만, 부산마실을 하는 길에 책집마실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늘 부산버스에서는 꽃글(동화) 한 자락을 매듭지으려나. 오늘 매듭을 못 짓더라도 신나게 쓰자. 새벽에 길을 나설 즈음에, 우리집 앵두나무에 맺힌 이슬이랑 빗물 한 방울을 아침밥으로 삼았다. 옆마을로 달려가는 길에 쐰 새벽바람 한 줄기로 낮밥을 삼으련다. 곧 해가 나면서 날이 개려나 싶다. 다시 비를 뿌릴 수도 있지. 어떠한 하늘이어도 반갑다. 씩씩하게 걷고 달리고 쉬고 쓰고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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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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