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시렁과 신문종이



  헌책방지기는 으레 신문종이를 모은다. 신문종이를 버리는 헌책방지기는 없다. 신문종이는 그대로 두어 묵히기만 해도 먼 뒷날 재미난 읽을거리가 되기 일쑤이기도 하지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는 책을 묶거나 꾸릴 적에 ‘책이 안 다치도록 감싸는’ 보드라운 종이가 되기도 한다.


  신문종이는 매우 얇다. 그런데 이 얇은 종이를 한 겹 댈 적과 한 댈 적은 사뭇 다르다. 얇은 신문종이를 대기에 책이 덜 다치거나 안 다친다. 책시렁에는 얇은 신문종이를 한 겹 깔면서 좀이 안 슬거나 벌레가 안 꼬인다. 책도 먼지를 덜 탄다.


  책시렁 바닥에 놓여 열 해나 스무 해쯤 ‘바닥종이’ 구실을 한 신문종이는,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는 재미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드러난다. 마치 옷장 서랍 바닥에 깐 신문종이와 같다고 할까. 옷장 서랍 바닥에 깐 신문종이가 오래되면 그냥 버릴 수 있지만, 부들부들해진 신문종이를 햇볕에 곱게 말린 뒤 찬찬히 넘기면, 열 해나 스무 해, 때로는 서른 해나 마흔 해마저 묵은 옛이야기를 아스라이 떠올릴 수 있다. 4348.4.29.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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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랑 책이랑



  책방이 있어 책이 있다. 책방이 없으면 책이 없다. 이제 인터넷이 크게 발돋움하니, 책방이 없어도 책이 있을 수 있다. 책방은 없어도 인터넷을 켜면 책을 장만할 수 있다. 이러한 얼거리라면, 앞으로 ‘책’이 없이 글씨와 디지털파일만 있어도 ‘읽을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리라 느낀다. 종이신문은 벌써 ‘인터넷에서 읽는 글’로 빠르게 넘어간다.


  그런데 종이책은 종이신문과 달리 ‘인터넷에서 읽는 글’로 쉬 넘어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은 한 번 슥 스치고 훑는 읽을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 세 번 되읽는 생각이자 이야기를 담는 책이고, 두고두고 갈무리하면서 마음에 되새기는 숨결인 책이기 때문이지 싶다.


  책방이 있어 책이 있다. 책방을 가꾸는 손길이 있어서 책을 짓는 손길이 있다. 책을 짓고 책방을 가꾸는 손길이 있으니, 책을 읽는 손길하고 책방마실을 하는 발길이 함께 있다. 4348.4.2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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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튀어나오는 책



  책 한 권이 살짝 튀어나온다. 책꽂이가 빽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살짝 튀어나오지 않았으리라. 책방지기는 책꽂이에서 책이 한 권이라도 튀어나오도록 꽂지 않는다. 책방지기는 책꽂이에 책을 가지런히 꽂는다. 너무 빽빽해서 빈틈을 만들지 못하면 책을 눕혀서 올리거나 책꽂이 앞에 탑을 쌓는다. 헌책방 책꽂이에서 살짝 튀어나온 책이 있다면, 책손이 어느 책 하나를 뽑아서 살핀 뒤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하는데, 도무지 도로 꽂아 놓을 재주가 없어서 이렇게 해 놓았다는 뜻이다. 책방지기는 이런 책을 보면 책꽂이에 빽빽하게 있는 책들을 두 손으로 탁탁 치고 퉁겨서 조그마한 틈을 만들고, 작은 틈 옆에 있는 책 두 권을 살짝 뽑아서 한 권을 사이에 꽂고는 한 번에 큰힘을 모아서 툭 쳐서 집어넣는다. 4348.4.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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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5-04-01 17:22   좋아요 0 | URL
저처럼 손끝이 야무지지 못한 책손의 저지레인가 봅니다. 빼기는 뺐는데...내 재주로는 들어가지 않아서 난감할 때가 많아요..누군가 꽂아놓은건데..내손으로는 왜 안되는 것인지 늘 미스터리였는데...`틈을 만드고 두 권 사이에 끼워 한꺼번에 밀어넣는` 전문가적 노하우가...!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저렇게 해놓고 뒤돌아설때 툭 튀어나온 책이 `정말 이러기야??` 하고 뒤통수에다 궁시렁거리는거 같아서 참 미안한 기분이 들었어요^^ 남들 사이에서 너무 튀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건 책도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저때문에 다시 꽂아야하는 분께도 미안하고...미안해하면서도 슬쩍 줄행랑 칠수밖에 없는 제 모습을 들킨것 같아 멋쩍고..또 반갑기도 합니다!!

숲노래 2015-04-01 18:35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나오기에
저도 재미나게
사진 한 장을 찍고
이런 사진을 놓고
글을 붙여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으니,
삶이란 참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

풀꽃놀이 2015-04-01 19:02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글을 보면서 제가 느꼈던 흐믓함의 정체가 이것이었나봅니다!!
삶이 참 아름답구나~~
이런 깨달음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5-04-01 20:02   좋아요 0 | URL
풀꽃놀이 님이 멋진 댓글을 달아 주셔서
저도 더욱 즐겁게 삶을 헤아려 볼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
 

헌책방에서도 스마트폰 계산기



  스마트폰으로 숫자를 더하거나 뺄 수 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여느 계산기보다 화면이 한결 넓어서 스마트폰으로 더하기나 빼기를 하면 한결 보기 나을 수 있다. 헌책방지기기 책값을 셈한다. 책손은 책방지기 옆에서 책값을 어찌 셈하는지 지켜본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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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으로 이룬 골목



  책방으로 이룬 골목에 들어서면 여기를 보아도 책방이고 저기를 보아도 책방입니다. 책방골목에 책물결이 흐릅니다. 어느 책방에 깃들어도 책내음이 가득 번집니다. 이곳에서는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고, 저곳에서는 책 열 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읽을 책을 손에 쥘 수 있고, 앞으로 보름이나 한 달쯤 넉넉히 즐길 만한 책을 가슴 가득 안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책방골목으로 찾아가서 바지런히 온갖 책을 그러모을 수 있습니다. 책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읽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 테니까요. 오늘 읽을 책과 함께 먼 모레에 느긋하게 읽을 책을 알뜰살뜰 장만합니다. 새로 나오는 책도 장만하고, 판이 끊어져서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춘 책도 장만합니다.


  작은 책방에서는 책꽂이 앞에 서서 가만히 책을 바라봅니다. 큰 책방에서는 골마루를 천천히 거닐면서 책을 바라봅니다. 작은 책방에서 작은 책꽂이에 알차게 간추려서 꽂은 책을 바라봅니다. 큰 책장에서 너른 책꽂이에 넉넉하게 건사한 책을 바라봅니다. 어느 책이든 내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내 마음길을 따사로이 비추어 줍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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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03-30 11:39   좋아요 0 | URL
보수동인가요?? 이제 웬만한곳은 헌책방 골목이 없어지는것 같다군요ㅜ.ㅜ

숲노래 2015-03-31 00:09   좋아요 0 | URL
헌책방골목은 부산에만 있어요.
다른 곳은 `골목`이 아니고 `거리`인데,
책방거리가 `출사지`는 되어도 `책나들이터`로는
좀처럼 거듭나지 못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