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도서관


 제주 책밭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11.30.)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2010년 11월에 제주마실을 한 뒤 2019년 11월에 아홉 해 만에 제주마실을 합니다. 2010년에는 우리 책숲을 새터로 옮기도록 도운 분들 손길에 힘입어 네 사람이 함께 제주를 다녀오면서 〈책밭서점〉에서 살뜰한 아름책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뒤로 좀처럼 비행기삯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우리 책숲을 도우려는 분들이 마련해 준 비행기삯으로 혼자 제주를 다녀오면서 아주 살짝 〈책밭서점〉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비행기표나 길손집에 머무는 삯은 도움을 받았으나 책을 장만할 돈은 없다시피 했어요.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형한테서 도움을 받은 살림돈 가운데 조금 책값으로 돌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배운 바가 있어‘하루 한 끼도 안 먹기’를 할 줄 아니, 석 달쯤 안 먹기를 하면(제 밥값은 석 달 동안 0원 쓰기) 이럭저럭 책값을 맞출 만하려나 하고 어림했어요. 그렇지만 도무지 책값을 댈 길이 안 보여서 장만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사진으로만 담은 책이 수두룩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농업 교과서’이며 ‘1940년대 문세영 조선어사전’을 장만할 밑돈을 마련하자고 생각합니다. 숲노래 사전이며 책이 널리널리 사랑받아서 새로운 밑책을 장만할 밑돈을 모으고, 우리 책숲도 둘레 삽질에서 홀가분한 길을 찾아야겠지요.


  책숲 옆마당에 건축폐기물을 석 달 넘게 부린 분들이 또다시 길을 없앴더군요. 적어도 길이라도 내놓으라고 말하면 며칠 뒤에 길을 내놓다가, 또 며칠 지나면 그곳에 새 건축폐기물을 붓고, 또 이 대목을 따지면 며칠 뒤에 길을 내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건축폐기물을 붓더군요.


  11월 29∼30일, 하루치기로 짧게 제주마실을 하는 길에 ‘김영갑두모악갤러리’도 아홉 해 만에 찾아갔습니다. 아홉 해 만이었는데, 그새 너무 엉성해졌다고 느꼈습니다. 김영갑두모악갤러리가 갓 연 2002년에 이곳에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때 김영갑 님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걸상에 앉아서 손님을 하나하나 ‘마음눈’으로 바라보면서 ‘예까지 와 줘서 고맙네이. 고맙네이.’ 하고 속으로 눈물젓는 속삭임을 들은 적 있어요. 2010년을 지나 2019년에 이른 오늘, 꽤 쓸쓸합니다. 돌보는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손길이 아닐 적에는 무엇이나 어디나 누구나 빛을 잃을 테지요. 돌보는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손길이 될 적에 비로소 무엇이든 어디이든 누구이든 빛이 날 테지요. 제주라는 고장을 밝히는 ‘책밭’이 있듯, 우리 책마루숲은 앞으로 어느 고장에 새로 깃들든 ‘책숲’으로, 또 ‘숲놀이터’로 푸르게 서는 길을 그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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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11.24.)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혼자 유자알을 썰어서 재우는데 어느덧 큰아이가 다가와서 “나도 썰어 봐도 돼요?” 하고 묻습니다. “손을 씻고서 도마를 놓고 칼을 놓고서 하셔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했을까요. 한낮에 걸린 해가 어느새 기울려 합니다. “아, 다리가 저리다.” “힘들면 이제 그만 하고 쉬셔요.” 나중에 곁님도 거들어 제법 많이 썰어서 재웁니다. 그러나 딴 유자를 다 썰어서 재우지는 못합니다. 힘을 짜내어 더 할 수 있으나 멈추고 부엌을 치웁니다. 이러고서 얼마 뒤 곯아떨어지는데, 우리 집 나무한테서 얻은 유자이기에 맨손으로 만져도 즐겁고, 껍질째 얼마든지 즐길 만합니다. 그동안 유자씨를 오독오독 씹을 생각을 못하다가 곁님이 한 톨을 씹으며 하나도 안 시다고 하기에 ‘그런가?’ 하고 생각하며 씹으니 참말 시지도 않고 단단하지도 않습니다. 하기는. 유자씨는 유자를 썰며 잘 썰리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유자씨 한 톨을 씹어서 먹으니 갑자기 졸음이 오더군요. ‘유자씨에 이런 구실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잠을 푹 자고플 적에 유자씨 한두 톨쯤 먹으면 깊이 잠들는지 모르겠네’ 하고도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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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슬아슬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11.19.)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여수로 두걸음째 찾아갑니다. 고흥에 보금자리를 옮기고 얼마 안 되어 한걸음을 한 뒤 얼추 아홉 해 만입니다. 곁님 동생이 세 아이를 이끌고 여수마실을 하면서 쉬고 우리 집 아이들을 보고 싶어하기에 즐거이 마실합니다. 두 시간 남짓 걸리는 시외버스에서 노래꽃을 석 자락 쓴 뒤 무릎셈틀을 꺼냅니다. 그런데 무릎셈틀이 먹통입니다. 어젯밤 큰아이가 문득 말하더군요. “아버지가 요새 작은 컴퓨터를 안 써서, 작은 컴퓨터가 심통이 났어. 나 좀 써 달래.” 이렇게 마실길에 나서면 집셈틀은 쉬고 무릎셈틀을 쓸 텐데, 꽤 오래 마실길에 안 나선 터라 큰아이 말마따나 무릎셈틀이 단단히 골이 났나 봐요. 불은 들어오지만 글판이 안 먹힙니다. 이 아이, 무릎셈틀이 왜 이러시나 싶다가 서둘러 손전화를 켜서 여수 시내에 셈틀을 고치는 곳이 있는가를 알아봅니다. 마침 버스나루 가까이에 있습니다. 셈틀집에서 우리 무릎셈틀을 살피더니 ‘기판 갈기’를 해야 한다면서 적어도 ‘30∼54만 원(헌것은 30만 원, 새것은 54만 원쯤)’이 든다고 알려줍니다. 이 무릎셈틀을 세 해쯤 앞서 장만할 적에 120만 원을 치렀지 싶은데, 기판 값이 엄청나군요. 무릎셈틀을 손보거나 새로 장만할 살림돈까지는 아니기에 아찔? 또는 아슬아슬? 살짝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만, 앞으로 무릎셈틀을 쓰지 말고 연필로 수첩에 손으로만 쓰며 일하란 뜻인가 싶기도 하더군요. 두 아이 겨울옷하고 곁님 겨울옷을 여수에서 장만합니다. 짐이 한결 늘어납니다. 인천 사는 형이 옷값을 보내 주어서 고마이 장만했습니다. 낮나절 드디어 곁님 동생이 이끌고 온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곁님 곁지기도 한자리에 모입니다. 저녁까지 느긋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밤에 슬쩍 무릎셈틀을 켜 보니 글판이 먹힙니다. ‘이제 골부림이 풀렸나?’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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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큼큼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11.17.)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다가 사라진 자리에 포근한 바람이 흐릅니다. 늦가을이 되고, 첫겨울에 이르면 남녘이 얼마나 폭한 고장인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유자나무 곁에서뿐 아니라, 유자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도 향긋한 기운이 퍼집니다. 이 기운으로 겨울을 넉넉히 나라는 뜻일 테지요. 책숲 둘레에 건축쓰레기를 쌓은 이들이 길을 살짝 내놓았습니다. 길을 살짝 냈지요. 이뿐입니다. 억새가 춤추는 하얀 빛살을 바라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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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첩을 접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11.12.)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강원도 원주에서 찾아오실 손님을 헤아리면서 책숲을 치우는데, 여태 어디로 사라졌는지 못 찾던 여러 가지를 갑자기 찾았습니다. 2010년에 인천을 떠나기로 하면서 ‘작은 인천사람으로서 이 고장 발자취와 얽혀 남긴 작은 살림’을 100 가지 간추려서 조촐히 펼친 적 있어요. ‘인천 서민 살림 전시회’였다고 할까요. 1980년대 국민학교 성적표나 건강기록부라든지, 식물채집 방학숙제 표본이라든지, 한일은행 저금통이라든지, 인천 토큰이라든지, 1990년대 첫머리 중·고등학교 가정통신문이라든지, 백일장 알림종이라든지, 어머니하고 신문배달을 하며 쓰던 종이라든지, 자잘한 생활기록입니다. 이런 예전 살림 가운데 1993년에 손으로 적바림해 놓은 ‘헌책방 다녀온 이야기’ 한 토막, 1995년에 대학교에서 ‘헌책방 순례 모임’을 꾸리려고 용을 쓰면서 학과방에 붙였던 알림종이까지, 새록새록 지난걸음이 떠오르는 것을 담은 상자를 열 해 만에 찾아냅니다. 원주 이웃님은 전남 광주에서 하룻밤 볼일을 보시고서 해질녘에 고흥에 닿았습니다. 책숲 옆마당에 더미로 쌓인 건축쓰레기에다가, 길을 움푹 파 놓아 드나들기 어렵게 해 놓은 모습을 함께 보시며, 고흥군청이 이곳에 하는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녁에는 아이들하고 나란히 고흥읍으로 나갑니다. 저녁자리를 조촐히 누리면서 사근사근 이야기꽃을 폅니다. 작은아이는 원주 이웃님 모습을 그림으로 살뜰히 담아 주었어요. 이제 작은아이는 “난 사람을 못 그려.” 같은 말을 안 합니다. 작은아이는 저한테 반가운 이웃을 만나면 슥슥 ‘얼굴그림’을 멋들어지게 그려 주어요. 큰아이는 멧자락이 밤마다 눈을 뜨면서 사람을 지켜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도란도란 들려주고 들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북돋우니 더없이 즐거워, 오늘은 수첩을 접습니다. 말모으기 수첩도, 생각모으기 수첩도, 옆에 고이 두면서 별빛을 바라보는 저녁이 흘렀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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