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의 아이》 다섯째 권을 앞에 놓고

 


  여러 해에 걸쳐 찬찬히 이어진 만화 이야기 하나 다섯째 권으로 마무리된다. 바닷마을에서 아이들이 바닷내음과 바닷소리와 바닷노래를 누리면서 밝히는 바다빛을 들려주는데, 마지막 권에서는 어떤 내음과 소리와 노래를 조곤조곤 속삭일 수 있을까. 바다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바다에서 살아갈까. 바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바다 곁에서 지낼까. 바다하고는 동떨어진 채 말로만, 지식으로만, 학문으로만, 책으로만, 기사로만 마주하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까. 바다와 한몸이 된 채, 바다와 한마음이 되는 빛을 어느 만큼 아끼거나 사랑할 수 있을까. 바다에는 ‘바다 아이들’ 있고, 들에는 ‘들 아이들’ 있다. 아스팔트길과 시멘트집에는 ‘아스팔트 아이들’과 ‘시멘트 아이들’이 있을까. 만화책 《해수의 아이》 다섯째 권을 앞에 놓고 이제부터 읽으려 한다. 4346.10.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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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하나와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찾아와서 여러 책방에 들른다. 이곳에 들러 이 책들 만나고, 저곳에 들러 저 책들 마주한다. 문득 낯익은 이름 하나 보여 그림책 하나 집어든다. ‘모그’라는 이름이 낯익다. 책등에 적힌 작은 글씨를 따라 책을 꺼낸 뒤 책겉을 보는데, 아, 그래,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 뒷이야기이다. 그래, 이렇게 뒷이야기가 있네 하고 재미있게 들여다본다. 이 그림책 그린 분은 맨 처음에 ‘고양이 모그를 만나 함께 살 수 있던’ 이야기를 그렸다. 아마, 이녁 나라에서는 모그 이야기를 더 많이 그려서 내놓았겠지. 한국에서는 모그 이야기는 꼭 한 권만 나왔다. 그러고 나서 2005년에 《모그야, 잘 가》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모그 이야기가 나왔구나 싶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오래 사랑받지 못했다. 그만 판이 끊어졌다.


  모그 이야기를 처음 내놓은 출판사에서는 왜 뒷이야기는 이어서 내놓지 않았을까. 이분 그림책이 그닥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 그림책 《모그야, 잘 가》를 읽어 보았으면 알 텐데 몹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림결이 보드라울 뿐 아니라 줄거리가 탄탄하다.


  고양이 모그가 나이를 많이 든 뒤 조용히 숨을 거두고 나서 식구들이 어떤 마음이 되었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삶을 만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참 딱하다. 이 그림책이 새책방 책시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 참 딱하다. 다른 출판사에서 애써 내놓아 주었으나 썩 잘 안 팔리니 쉬 판을 끊은 듯하다.


  어쩌겠는가. 사라지는 책은 사라지겠지. 그렇지만, 헌책방이라는 책터가 있어 이 책 고맙게 만나 읽는다. 새책방에서는 사라지지만, 헌책방에는 곧잘 들어올 테며, 이 책을 장만한 우리 집에는 우리 아이들 언제까지나 이 책을 누릴 수 있다. 4346.10.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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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20 11:44   좋아요 0 | URL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 저도 참 즐겁게 읽었어요~
<모그야 잘가>는 못 읽었는데 이 책도 참 좋을 듯 합니다.
<친구 거위 찰리>도 좋았지요~~
그림책을 읽으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숲노래 2013-10-21 08:05   좋아요 0 | URL
appletreeje 님은 이 그림책들 아시는군요~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이분 그림결과 이야기가
참 예쁘다고 생각해요~
 

http://jeonlado.com

 

전라도닷컴

 


  전라도에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가 있다. 책이름에 ‘닷컴’을 붙여 영 못마땅하지만, 이 잡지가 나올 무렵에는 이런 이름 붙이기가 바람처럼 불었다. 아마 요즈음 이러한 잡지가 나온다면 이런 이름을 붙이지는 않으리라.


  이름은 쓰면 쓸수록 자리잡고 굳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낯설게 여기더라도, 쓰면 쓸수록 어느새 스며들고 녹아든다. 새로 짓는 낱말도 사람들 입과 손을 거치면서 차츰 자리를 잡는다. 어느 낱말은 끝끝내 자리를 못 잡기도 하지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오랜 나날 수많은 사람들 입과 손을 거쳐 다듬고 깎고 고치고 손질한 낱말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잡지 《전라도닷컴》 2013년 9월치에 우리 집 ‘책순이’ 이야기가 실렸다. 9월이 저물고 10월로 접어들 무렵, 잡지 《전라도닷컴》 누리집(http://jeonlado.com)에 ‘책순이’ 이야기가 돋보이도록 다시 실린다. 우리 집 ‘책순이’ 삶을 늘 사진으로 찍어서 갈무리하는데, 우리 집 아이들 모습 가운데 “책 읽는 모습”을 맨 먼저 바깥으로 선보여서 ‘책순이’가 되었다. 앞으로 책순이뿐 아니라, 꽃순이·놀이순이·밥순이·시골순이·자전거순이·밭순이 같은 이야기도 하나둘 선보일 수 있겠지.


  그런데, 《전라도닷컴》을 보았다는 곳에서 곧잘 연락이 온다. 우리 집 책순이 이야기를 방송으로 찍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 이렇게 손사래치고 저렇게 손사래치다가 곰곰이 생각한다. 전라도에서 나오는 신문과 잡지 가운데 이렇게 방송국 사람들 끌어모으는 매체가 있을까 하고. 서울에 있는 책방에서 《전라도닷컴》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은데, 참 용하게 이 잡지를 지켜보거나 살펴보는 사람이 있구나 싶기도 하다.


  경상도에서는 어떤 잡지가 있을까? 강원도나 충청도나 경기도에는 어떤 잡지가 있을까? 제주도에는 어떤 잡지가 있을까? 저마다 이녁 고장을 빛내거나 밝히는 잡지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 식구 전라도로 삶터를 옮기면서 《전라도닷컴》을 정기구독 했다. 전라도에서 나오는 신문 가운데 정기구독을 하는 신문은 없다. 전라도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처음에는, 가끔 면사무소에 들러 ‘전라도 일간신문’과 ‘농민신문’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여러 달 지나고 보니, 전라도 신문 가운데 읽을 만한 신문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두어 달은 한 주에 한 차례쯤 면사무소로 신문 읽으러 가다가, 차츰 뜸해졌고, 이제는 면사무소 마실을 안 한다. 면사무소 발길을 끊은 지 한 해가 넘는다(고흥으로 와서 산 지 두 해째이다).


  서울과 인천에서 살 적에도 중앙일간지나 지역일간지가 나라 이야기나 지역 이야기를 골고루 싣지도 못하고 살뜰히 담지도 못한다고 느꼈다. 전라도로 와서 사는 동안에도 지역신문이 막상 지역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지 못한다고 느낀다. 신문들은 하나같이 돈을 벌려고 지역 정치꾼과 장사꾼한테 기댄다. 지역사람을 만나거나, 지역 이야기를 넓고 깊게 다루려는 움직임을 못 보여준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이 몫을 톡톡히 한다. 모르는 노릇인데, 경상도나 경기도나 충청도나 제주도에서 이만큼 하는 매체는 없지 싶다.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전라도닷컴》만큼 깊고 넓게 두루 사람들을 만나 오순도순 도란도란 조그마한 이야기를 곱게 여미는 매체는 아직 없다고 느낀다.


  어제 낮, 방송국에서 또 전화가 온다. 〈인간극장〉을 찍는 곳이라고 한다. 〈인간극장〉을 찍는다는 곳에서 온 연락은 열흘쯤 앞서도 손사래를 쳤고, 두 해 앞서도 손사래를 쳤으며, 네 해 앞서도 손사래를 쳤다. 돌이켜보니 두 해에 한 번씩 연락이 오는 셈이네. 어제 낮에 전화를 건 분은 열흘쯤 앞서 전화를 건 분과 다르다. 알고 보니, 〈인간극장〉을 찍는 다큐팀이 두 곳이란다.


  서재도서관에서 ‘곰팡이 핀 책꽂이’에 한창 니스를 바를 때에 전화가 와서, 한손으로는 전화를 받고 한손으로는 니스를 발랐다. 47분 동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동안 아이들은 개구지게 뛰어놀며 전화 소리가 안 들리도록 노래한다. 전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운 뒤 나도 곯아떨어졌는데, 새벽에 부시시 일어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는 시골사람 삶과 꿈과 넋을 잘 살펴서 담으려고 애쓰는 매체이면서, 시골에서 시골빛 사랑하는 사람이 제대로 알려져서 씩씩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징검다리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동이 튼다. 곧 아이들 깨어나 놀 때가 다가오는구나. 4346.10.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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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05 11:36   좋아요 0 | URL
<전라도닷컴> 누리집에 들어가 '책순이, 책읽는 시골아이'를 보니 한층 더
반갑고 즐겁고 예쁘네요~^^
책아이들이 재밌고 즐겁게 책보고 노는 모습들이 아주 예뻐요~
늘 함께살기님 서재에서 보던 모습인데도 왠지 더 새로운 듯 싶습니다.^^
<전라도닷컴>을 보니 오순도순 도란도란 좋군요.
즐찾을 해놓고 종종 즐거운 이야기 들으러 가야겠습니다~

숲노래 2013-10-05 17:06   좋아요 0 | URL
전라도닷컴에 저희 식구 이야기가 연재로 나오지는 않고
한 번만 나와요 ^^;;;

아무튼, 잡지 구독 안 하시는 분들도
잡지에 실리는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퍽 많이
인터넷방, 그 누리집에서 보실 수 있어요.

더 재미난 이야기는 잡지에만 실리지만,
맛보기로 누리집에 올려 주는 이야기도
참 좋다고 느껴요.

저는, 이런 이야기가
전라도에서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과 전국 어디에서나
잡지와 매체에서나 방송에서나
오순도순 아름답게 나올 수 있기를 빌어요.
 

종이접기책

 


  옆지기를 만난 뒤 종이접기책을 산다. 큰아이가 태어나고서 종이접기책을 새로 장만한다. 작은아이가 태어나고 큰아이가 아주 느리게 한글을 익히는 요즈음 종이접기책을 새삼스레 사들인다. 옆지기와 둘이 살 적에는 일본에서 나온 ‘오리가미(일본 창작 종이접기)’책을 사기도 했고, 큰아이가 여섯 살을 지나가는 이맘때에는 나중에 한글을 깨치면 스스로 즐겁게 보며 놀라는 뜻에서 한글로 된 종이접기책을 마련한다.


  나도 어릴 적에 종이접기를 몹시 좋아했는데, 할 줄 아는 종이접기는 몇 가지 없었다. 어머니한테서 배운 한두 가지 종이접기를 하다가, 내 나름대로 요모조모 머리를 굴려 새롭게 무언가 접으려 했는데 잘 안 되었다. 그래도, 나는 나대로 종이접기를 하곤 했는데, 종이접기책이 있는 동무가 책을 보며 이것저것 곱게 접으면 부러워서 책을 빌려 달라 하는데, 도무지 빌려주지 않는다. 살짝 보자고 해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 아이는 종이접기책이 없이 종이접기를 못 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종이접기책을 신나게 사서 알뜰살뜰 갖추어 놓으니까.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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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9-26 12:13   좋아요 0 | URL
저두요~ ㅎㅎ 친구들이랑 종이접기 참 많이 했었어요.^^

숲노래 2013-09-26 19:00   좋아요 0 | URL
참말, 예전에는 종이가 없어 어떤 종이로도 종이접기를 했는데
요새는 종이가 예쁜 것 참 많아요.
 

박근혜와 임수경

 


  헌책방 책시렁에 두 사람 책이 나란히 꽂힌다. 하나는 서슬퍼런 1970년대 군사독재이자 유신독재 불바람을 타고 나온 《새마음의 길》이라는 책이요, 다른 하나는 1990년에 나온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이다.


  두 가지 책은 나란히 꽂힐 만한가? 두 가지 책은 나란히 꽂혀도 될 만한가? 나는 이쪽도 잘 모르겠고, 저쪽도 잘 모르겠다. 서슬퍼런 군대 총칼과 권력 주먹질로 꽁꽁 짓밟으면서 읊던 ‘새마을’과 ‘새마음’이 얼마나 참다운 빛줄기가 되었을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민간인’은 왜 남녘에서 북녘으로 가면 안 되고 북녘에서 남녘으로 오면 안 되는지 잘 모르겠다.


  정치권력자가 휘몰아친 새마을운동에 따라 이 나라 모든 마을에 농약과 텔레비전과 시멘트와 석면과 비닐이 퍼졌다. 정치권력으로 내세운 새마음운동에 따라 이 나라 아이들은 반공과 애국에 한몸 바치도록 닦달받았다.


  생각해 보면, 독재권력자도 어머니 사랑을 받아 태어난 목숨이다. 어머니 사랑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태어나지 못한다. 어머니 사랑을 먹으며 아이들이 자라고, 이 아이들은 꿈과 사랑을 아름답게 품는다. 어머니가 아이를 둘 낳을 적에 두 아이가 서로 다투며 고개 홱 돌린 채 다투기를 바랄까. 열 아이 낳으면 열 아이 모두 애틋하며 그립기 마련인 어머니이다. 다 다른 길을 걷고 다 다른 꿈을 품을 아이들이지만, 다 같은 사랑이요 다 같은 빛이 되기를 바랄 어머니이다.


  《새마음의 길》은 누가 읽은 뒤 헌책방으로 들어왔을까. 수만 수십만 권 엄청나게 찍어서 골골샅샅 기관과 학교에 뿌렸기에 아직까지도 책이 남아돌아 헌책방마다 그득그득 있을까.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는 일찌감치 불온도서가 되어 새책방 책시렁에서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는데, 어떤 손길을 타고 잘 살아남아 이렇게 헌책방 책시렁에 곱다라니 꽂힐 수 있을까. 앞으로 쉰 해 뒤, 박근혜 임수경 두 사람 모두 흙으로 돌아간 뒤에 이 책들 어떤 손길을 탈 만한지 궁금하다. 4346.8.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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