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 -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의 실전 노하우
아라이 요시미 & 가가미야마 에츠코 지음, 최성현 옮김, 가와구치 요시카즈 감수 / 정신세계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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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9



“열 해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옛말을 곱씹다

―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

 아라이 요시미·가가미야마 에츠코 글

 최성현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2017.1.31. 22000원



  우리 옛말을 생각합니다. “열 해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어요. 이 옛말을 조금 더 헤아리면 “열 해이면 숲이 바뀐다”라든지 “열 해이면 숲이 된다”로 생각해 볼 만합니다.


  이런 생각이 요새 문득 들어요. 저는 도시를 떠나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 깃든 지 2017년 올해로 일곱 해째입니다. 일곱 해쯤 땅갈이를 안 하고 뒤꼍을 묵히면서 지켜보니 ‘땅이 어떻게 살아나는가’ 하는 얼거리가 살짝 보입니다. 앞으로 세 해를 더 지켜볼 수 있다면 ‘왜 예부터 열 해를 말했는지’ 환하게 알아차리리라 느껴요.


  다만 누구나 땅뙈기를 열 해씩 묵히기란 만만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땅 한켠은 갈아서 이것저것 심으며 돌볼 수 있어요. 그리고 땅 한켠은 그대로 두면서 열 해쯤 어떤 풀이 나고 지는가를 살필 뿐 아니라, 땅이랑 흙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몸으로 배워야지 싶습니다.



논밭이 있는 생활, 대자연 속에서 그 은혜들 가운데 사는 시골 생활은 참으로 즐겁고 뜻깊다. 마음을 담아 보살핀 채소가 저절로 자라는 걸 보며 날마다 감동한다. 아침 해에 두 손을 모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밭에 가면, 잘 자란 잎사귀 속에서 여기저기 드러내는 꽃봉오리 또한 감동이다. (8쪽)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정신세계사,2017)은 아주 뜻깊은 ‘자연농 길잡이책’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이 태어나도록 자연농을 일군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은 농약 안 쓰고 비료 안 쓰고 비닐 안 쓰는 시골살이를 하는 동안 다음처럼 두 가지 일을 겪었다고 해요.


  첫째, ‘세 해 동안 논은 다 죽었다’고 합니다. 둘째, ‘열 해 동안 논밭에서 잘못을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농약이나 비료나 비닐이 없이 땅을 짓던 지난날에는 ‘누구나 다 알고 슬기롭게 흙을 살렸’습니다만, 일본이든 한국이든 ‘근대 농법’이 스며들면서 ‘예전에는 누구나 다 알던 흙살림’을 이제는 ‘누구나 다 모르는’ 얼거리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래서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은 열 해에 걸쳐 논은 세 해 동안 다 죽이면서 배우고, 밭은 열 해 동안 잘못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배웠다고 해요.



풀이나 벌레, 소동물이 나고 죽고, 그 자리에 쌓여가며, ‘주검의 층’이 생기고, 거기에 미생물이 활동하며, 더욱 생명력이 넘치는 땅으로 바뀌어 간다. (15쪽)


갈면 일시적으로 흙이 부드러워지지만 곧바로 딱딱해집니다. 그러므로 한 번 갈면 다시 갈아야만 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 자연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도 간다거나 비료를 준다거나 하지 않는데도 나무는 크게 자라고 이윽고 숲이 되고, 산채나 버섯 따위가 해마다 돋아난다. (16쪽)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지켜지고 있을 때는 병도, 해로운 벌레도 생기지 않는다. (17쪽)



  ‘자연농’이란 ‘갈지 않는 흙살림’입니다. 우리는 쉽게 ‘자연농·유기농·화학농(관행농)’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은 모두 일본에서 들어왔어요. 일본에서 ‘농법’을 놓고 붙인 한자말 이름을 한국에서 고스란히 받아들였지요.


  이 세 가지를 한국사람이 쉽게 알아듣도록 고쳐 본다면, ‘흙살림←자연농’, ‘거름짓기←유기농’, ‘농약짓기←화학농(관행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농은 흙을 살리는 시골살림이에요. 유기농은 거름을 쓰는 시골살림이지요. 화학농은 농약이며 기계이며 비료이며 비닐을 잔뜩 쓰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흙살림을 하면서 거름을 내어 흙을 더 북돋울 수 있어요. 거름짓기인 유기농을 하는 분 가운데에는 비닐이나 비료를 함께 쓰는 분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에 바탕이 된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 자연농은 열 해 동안 쓴맛을 본 끝에 실마리를 얻었다고 해요. 이 대목에서 ‘기적의 사과’를 짓는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일본 할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기적의 사과’는 자연농처럼 능금밭에서도 농약뿐 아니라 비료도 안 쓰고 풀을 그대로 두되 한 번쯤 살짝 낫으로 쳐 주기만 하면서 지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흙을 살리면 능금나무는 저절로 살아난다지요. 그런데 이 놀라운 능금밭을 일군 일본 할아버지는 아홉 해 동안 쓴맛을 보았다고 해요. 열 해째에 이르러 ‘흙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키가 큰 풀이 나는 곳은 기름지다. 이런 곳에서는 양분이 많이 필요로 하는 가지, 양파, 양배추, 배추, 브로콜리, 옥수수, 호박 등이 잘 자란다. (23쪽)


농사란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고,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작물의 생명 활동을 비롯하여 논밭 안의 온갖 생명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 자연농의 큰 매력이다. (26쪽)


밭을 벌거숭이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건조와 가뭄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고, 물을 줄 필요가 없어진다. (29쪽)



  짧지 않은 나날을 쓴맛으로 보내면서 온몸으로 배운 끝에 내놓은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인 터라, 이 책은 아주 쉽고 부드럽게 흙살림을 알려줍니다. 다만 이 책은 흙살림을 이야기해요. ‘농업이라는 산업’을 다루지 않습니다. 흙을 지어서 ‘자연농 곡식이나 남새나 열매로 돈을 버는 길’을 다루지 않습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어디에서나 우리가 즐겁게 흙을 살리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흙을 살리면서 마음을 살린다고 해요. 흙을 살리기에 마을이 살아난다고 해요. 흙을 살리는 동안 숲이 함께 살아나고, 흙을 살리는 사이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살가이 어우러지는 잔치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흙살림이라면, 또 자연농이라면, 그리고 시골살림이라면, 바로 여기에 뜻이 있다고 느껴요. 더 많은 돈을 벌자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먹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자는 흙살림(자연농)이에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손수 지을 수는 없으나 하나씩 새롭게 배우지요. 이동안 기계나 석유나 문명에 기대지 않고도 즐거운 살림을 아이한테도 물려주고 어른 스스로도 씩씩하게 서자는 뜻을 밝혀 주어요.



풀은 이유가 있어서 거기 나는 것이다. 필요가 없어지면 다른 풀로 바뀌어 간다.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풀은 자유롭게 잎을 내고, 땅속으로 뿌리를 뻗고, 공기 중이나 땅속에서 영양을 모으고, 그 자리에서 썩어 가며 생명을 늘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풀은 되도록 베지 않고, 가능한 한 그 자리에서 일생을 마치게 한다. (35쪽)


새가 작물을 먹어버리면 속이 상한다. 하지만 새는 벌레를 잡아먹어 밭의 조화를 찾아 주는 역할도 한다. (56쪽)



  새로 맞이하는 봄에 쑥을 뜯습니다. 쑥을 뜯는 밭은 바로 농약 한 방울 안 친 자리입니다. 농약을 마구 친 자리에서는 쑥을 못 뜯습니다. 겨우내 농약을 뿌린 마늘밭 언저리에서는 쑥을 못 뜯어요. 멧골에 들어 나무를 캐는 까닭은 멧골에는 아무도 농약을 안 치기 때문입니다.


  시골살림을 꿈꾸는 이웃님이라면, 또 도시에서 싱그러운 숲정이를 바라며 아기자기한 마을살림을 바라는 이웃님이라면, 이 어여쁜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을 곁에 두고서 즐겁게 흙살림을 배워 보시면 좋겠어요. 맨손으로 만질 수 있는 흙, 맨발로 디딜 수 있는 흙, 바로 이 흙에서 씨앗이 자라고 우리 보금자리가 싱그럽게 깨어나요.


  그런데 한 가지, 이 책이 아쉬운 대목은 있습니다. ‘누른다’나 ‘다지다’라고 하면 되는데 ‘진압한다’라는 일본 한자말을 씁니다. ‘갈다·안 갈다’라 하면 되는데 ‘경운·무경운’이라고 적어요. ‘씨뿌리기’를 ‘파종’으로 적지 않아도 되고, ‘씨앗받기’를 ‘채종’으로 적지 않아도 돼요. 흙살림을 처음 마주하는 분한테는 꽤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본 한자말은 다음 쇄에서 찬찬히 걸러내 준다면 더 좋겠어요. 2017.3.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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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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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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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 - 우리나라 멸종 동물 22종 이야기 철수와영희 어린이 교양 2
이주희 지음, 강병호 그림 / 철수와영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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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8



‘세계에 딱 하나만 살아남’은 고흥 좀수수치

― 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

 이주희 글

 강병호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7.3.3. 13000원



  한국에서 범은 처음부터 깊은 숲이나 멧골에서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조선 무렵부터 나라에서 범사냥에 앞장서고 논밭을 늘리려 하면서 범은 사람한테 쫓겨 깊은 숲이나 멧골로 숨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서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겠지요. 깊은 숲이나 멧골에서는 제아무리 범이라 하더라도 수풀을 헤치며 다른 짐승을 사냥하기에 수월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냇가처럼 제법 넓게 트인 자리가 있어야 범처럼 커다란 짐승이 펄쩍 뛰어오르면서 다른 짐승을 사냥하기에 수월하겠지요.


  한국에서 범은 일제강점기에 씨가 말랐어요. 그러나 조선 끝무렵에 범은 어느새 100마리 즈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경주에서 마지막 범이 잡혔다고 합니다만, 이에 앞서 한국사람 스스로 범을 수도 없이 잡아대었다고 해요.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 새로 서면서 경국대전이라는 법에서까지 해마다 범을 1000마리는 잡아야 한다고 밝혔고, 범을 잡는 공공기관까지 세웠다는군요.



삼국 시대나 고려까지만 해도 불교가 나라의 종교라서 살생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 동물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어. 그래서 호환이 생겨도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호랑이를 잡으려 하지 않았어. 불교에서는 사람의 영혼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잖아. 동물들이 죽은 뒤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다른 동물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거지 … 조선의 지도자들은 호랑이와 표범 같은 맹수를 해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했어.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나라에서 앞장서서 대대적으로 범을 잡기 시작했어 … 범은 점차 물가에서 쫓겨나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야 했어. 호랑이가 깊은 산에 산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건 이 때문이야. (16∼17쪽)



  이주희 님이 쓴 《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철수와영희,2017)는 한국에서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만한 스물두 가지 목숨붙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호랑이와 표범’, ‘곰과 여우’, ‘수달과 담비’, ‘꽃사슴과 산양’, ‘물범과 물개’, ‘수리부엉이와 독수리’, ‘따오기와 뜸부기’, ‘구렁이와 남생이’, ‘맹꽁이와 금개구리’, ‘꾸구리와 좀수수치’, ‘소똥구리와 장수하늘소’ 이렇게 두 가지씩 묶어서 왜 사라졌거나 사라지려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스물두 가지 목숨붙이를 다루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제 눈에 도드라지게 보입니다. 전남 고흥에서 사는 ‘세계에 딱 하나만 있다’고 하는 좀수수치입니다. 제가 바로 이 전남 고흥에서 살거든요.


  좀수수치는 미꾸리를 닮은 나룻이 있는 작은 민물고기로, 1995년에 학계를 거쳐 처음 알려졌다고 해요. 1995년이면 전남 고흥은 아직 ‘나로 우주센터’를 짓기 앞서예요.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오는 네찻길이 안 뚫리던 무렵입니다. 그러나 그 뒤 고흥은 나로 우주센터를 짓기로 했고, 벌교에서 고흥읍을 거쳐 녹동과 나로로 이어지는 넓은 찻길을 새로 닦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온 나라에 ‘4대강 막삽질’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고흥이라고 하는 작은 고장에서는 ‘하천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냇물이나 골짜기를 삽차로 파헤쳐서 시멘트를 들이붓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 시멘트 막삽질은 2017년 요즈음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에는 여우가 한 종류만 살아서 반달가슴곰을 그냥 ‘곰’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여우를 그냥 ‘여우’라고 불러 왔어. (28쪽)


곰을 복원하고 있는 지리산에서는 곰 때문에 농작물 피해를 입거나 양봉하는 벌통이 훼손되는 일로 농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 그렇다면 곰을 아예 없애버리는 게 나을까? 너희라면 어떻게 하겠니? (32쪽)



  범이 사라지고 늑대가 사라지며 여우가 사라진 이 나라 들이나 숲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범이나 늑대나 여우한테 잡아먹히던 작은 짐승이 들끓습니다. 숲에는 먹이사슬이 있기에, 이 먹이사슬에 맞추어 서로 알맞게 어우러져요. 이 먹이사슬 얼거리와 숲 얼거리를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깨고 말았습니다. 기껏해야 백 해쯤 되는 짧은 나날에 이 얼거리를 조각조각 깨었어요. 게다가 이처럼 먹이사슬과 숲 얼거리를 깨는 흐름은 아직도 이어집니다.


  새로운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큰 발전소는 아직도 더 늘어나려 합니다. 새로운 군부대나 군사기지에 미사일기지까지 더 늘어나려 합니다. 도시는 자꾸 커지기만 합니다. 줄어드는 시골에는 도시에 들이지 않는 위험·위해시설이나 큰 화력발전소를 세우려고 합니다. 이 나라 어느 곳이든 깨끗하거나 조용하거나 정갈하거나 아름답게 지키려는 몸짓이 자꾸 수그러들어요. 그나마 설악산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놓이는 일은 막았다지만, 국립공원에조차 케이블카를 놓으려는 ‘개발 이익 본능’은 잠들지 않아요. 지난 2016년에 태백산도 국립공원으로 되었는데, 앞으로는 국립공원이 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울는지 몰라요.



최근에 연구자들이 조사해 보니까 우리나라에 사는 담비들이 1년 동안 멧돼지 1만 마리, 고라니 1만 마리 정도를 잡아먹는다는 거야. 이쯤이면 생태계 조절 능력이 호랑이나 표범에 버금간다고 볼 수 있지. (42쪽)


수달은 물가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굴이나 수풀에다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끼를 기르는데, 하천 환경이 변하면서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 버린 거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생태 하천을 만든다고 하면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깔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시설들을 설치하는데, 그런 곳은 이름만 생태일 뿐 생태와 거리가 멀어. (45쪽)



  수많은 목숨붙이가 죽거나 사라지는 까닭을 살피면 막개발을 첫손으로 꼽을 만한데, 이에 못지않게 ‘농약’이 큰 말썽거리입니다. 여기에 ‘비닐’하고 ‘플라스틱’을 손꼽을 만해요. 크고 작은 짐승과 새와 물뭍짐승이 농약에 시달리다가 죽거나 사라집니다. 숱한 짐승과 새와 물뭍짐승에다가 물고기가 비닐하고 플라스틱 때문에 목숨을 잃습니다. 태평양 어느 곳에 끔찍한 ‘비닐·플라스틱 섬’이 있다지요?


  여기에서 찬찬히 짚어야 하는데, 농약이나 비닐이나 플라스틱은 짐승이나 새나 물뭍짐승이나 물고기만 죽이지 않아요. 사람도 죽여요. 뒤늦게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자연농이라는 말이 불거지면서 농사법이 달라지려는 까닭도 ‘농약에 찌든 먹을거리’는 사람한테까지 매우 나쁘기 때문입니다.


  우리 밥상에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올라오면 어찌 될까요? 우리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못 먹습니다. 잘못해서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삼켰다가는 큰일이 나요. 그렇지만 고추밭이나 마늘밭을 비닐로 드넓게 씌우고 말아요. 한겨울에 비닐집을 크게 지어 딸기를 석유를 때며 키워요. 우리 스스로 제철을 잃고 ‘돈 될 농업’에 기울어지면서 그만 ‘들짐승이 한국에서 사라지도록 내모는 짓’뿐 아니라 ‘사람 스스로 앓거나 다치거나 아프는 길’로 가고 말아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흔하고 세계적으로 보면 고라니는 매우 귀한 동물이야. (56쪽)


생각해 봐! 국립공원이고 천연기념물이며 생태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높다고 세계가 인정한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버젓이 설치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은 다른 곳에 케이블카나 이와 비슷한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니! (63쪽)



  고라니는 한국에서만 흔해 보일 뿐,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짐승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져서 ‘아끼며 지키는 짐승’인 고라니라지만, 한국에서는 총으로 쏘아죽이거나 그물로 사로잡아 죽이려 해요.


  사람들은 도시에서 비둘기를 닭둘기라는 이름으로 놀리지만, 비둘기는 사람 때문에 보금자리와 숲을 빼앗겼어요. 아스라히 먼 옛날까지 아니어도 고작 백 해 앞서만 헤아리더라도, 서울 한복판에도 나무가 우거지고 숲정이가 있었기에 비둘기는 이런 데에서 느긋하게 살았어요. 사람들은 도시를 개발하면서 새한테 한 번도 안 물어보았어요. 소똥구리한테도, 하늘소한테도, 풍뎅이한테도, 도롱뇽한테도 참말 한 번도 안 물어보았습니다. ‘너희 보금자리를 밀어내어 사람 보금자리를 늘리려 하는데 괜찮니?’ 하고 물어보지 않았어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따오기와 뜸부기의 먹이가 되는 물속 생물들이 줄어들었어. 또 수달이나 맹금류가 줄어든 이유와 마찬가지로 농약으로 널리 쓰인 DDT 같은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이 먹이를 통해서 따오기와 뜸부기의 몸에 쌓여 갔어. (95∼96쪽)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변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던 꾸구리의 대구모 서식지였는데, 4대강 사업으로 이포보와 여주보가 들어서면서 물 흐름이 멈추고 여울이 사라지면서 꾸구리도 자취를 감췄어. (133쪽)



  《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에서도 밝힙니다만 경기 여주는 4대강 막삽질이 닿으면서 꾸구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런 4대강 막삽질은 여주시에 도움이 될까요? 여주시가 4대강 막삽질을 안 받아들이면서 ‘꾸구리 보금자리’를 지키면, 오히려 사람들은 ‘꾸구리를 보려’고 ‘생태관광’으로 여주시를 찾아가지 않을까요?


  전남 고흥도 이와 매한가지라 할 수 있어요. 건설업자 배를 불리는 하천정비사업은 이제 그칠 노릇이에요. 세계에 오직 한 곳 한국에, 게다가 한국에서도 고흥에만 살아남은 좀수수치라고 한다면, 고흥군 행정은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지 싶어요. 세계에 오직 고흥에만 있는 좀수수치를 보러 고흥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숲살림 마실 정책’을 펼 만합니다. 사진기조차 내려놓고 두 손에 연필하고 종이만 쥔 채, 가벼운 차림새로 숲으로 천천히 들어가서 작은 냇물에 사는 좀수수치를 만나도록 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좀수수치가 살아갈 만한 아름다운 숲을 고흥 같은 지자체에서 지키거나 건사할 수 있다면, 좀수수치가 아니어도 아름드리 숲하고 바다를 누리려고 ‘생태관광’이나 ‘도보관광’을 하려는 발길이 늘어나리라 생각해요.



새들이 사라지는 건 그만큼 우리 주변의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 새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곧 사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분명해지겠지. (89쪽)


좀수수치는 1995년에야 세상에 알려졌어. 우리나라에서도 전남 고흥 반도와 여수, 그리고 그 주변의 섬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다 보니, 학자들이 잘 몰랐던 거지. 좀수수치는 우리나라에 사는 민물고기 중에서 서식 범위가 가장 좁은 물고기야. 아마 세계적으로 봐도 좀수수치처럼 서식 범위가 좁은 물고기는 드문데, 그만큼 아주 희귀하다고 할 수 있지. (136쪽)



  새가 살아갈 만한 곳은 사람도 아름답게 살아갈 만한 곳입니다. 개구리나 좀수수치가 살아갈 만한 곳은 사람도 즐겁게 살림을 지을 만한 터입니다. 담비와 수달이 노니는 곳은 사람도 사랑스레 삶을 이룰 만한 자리입니다.


  이 땅에서 크고작은 목숨붙이가 사라진 까닭은 ‘사람만 잘 살려’는 생각 때문이었을 텐데, 이제 지난 백 해를 곰곰이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사람만 잘 살려 하는 정책으로 참말 사람이 잘 살 수 있었는가 하고 말이에요. 사람도 숲도 뭇목숨도 다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일 때라야 비로소 사람도 즐겁게 잘 살 만한 곳이 아닌가 하고 되새겨 보아야지 싶습니다. 2017.3.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저작권자 분들한테 허락을 받아서 보내 주었기에 실을 수 있습니다 *



노루 - 최태영

산양 - 이용욱

뜸부기 - 권경숙

구렁이 - 김현태

호랑이 - 강병호

좀수수치 - 전형배


좀수수치 분포지도 - 전형배/위키트리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82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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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아 떠나는 루와 파블로의 세계 여행 한울림 생태환경동화
시릴 디옹 외 지음, 뱅상 마에 그림, 권지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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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7



‘내일’을 생각한다면 지식을 버리고 살림을 지어요

― 내일

 시릴 디옹·멜라니 로랑 글

 뱅상 마에 그림

 권지현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2017.1.26. 13000원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내일’을 두 가지로 바라봅니다. 하나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돈을 잘 버는 길을 가르치는 내일입니다. 다른 하나도 똑같이 ‘잘 먹고 잘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은 같으나 살림을 함께 지으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내일입니다.


  어른이나 어버이가 아이를 가르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아요. 그러나 바라보는 눈길이 다를 뿐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이 있고, 스스로 우뚝 설 줄 아는 살림짓기를 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이 있어요.



선생님은 우리에게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공기가 나빠서래요. 교실에만 있어야 한다는 말에 우린 투덜거리기 시작했어요. (10쪽)


난 아빠에게 왜 사람들이 공기를 오염시키고 가축을 죽이는지 물었어요. 아빠는 그것이 ‘환경 문제’인데,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뿐만이 아니래요. 야생에서 죽어 가는 동물도 많다는 거예요. 지난 40년 동안 사냥이나 어업 때문에 죽기도 하고, 슈퍼마켓 같은 대형 건물이나 도로를 짓느라 숲을 밀어 버리면서 야생 포유류의 서식지가 사라지는 바람에 … (14쪽)



  프랑스에서 나온 청소년 인문책 《내일》(한울림어린이,2017)을 읽습니다. 시릴 디옹·멜라니 로랑 님이 글을 쓰고, 뱅상 마에 님이 그림을 그립니다. 굵고 짧게 이름이 붙은 《내일》은 바로 ‘내일’을 어떻게 맞이하도록 살아갈 생각인가를 묻고, 함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 첫머리를 보면 열두 살 아이가 학교에서 ‘운동장에서 놀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잔뜩 투덜거리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주인공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투덜거린다고 해요. ‘공기가 나빠’서 바깥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니 왜 그러한 줄 모르는 채 투덜거리기만 했대요.


  가만히 보면 한국에서도 요새는 이런 일이 퍽 흔합니다. 다만 도시에서 그러지요. 시골에서는 미세먼지라든지 공해라든지 매연 때문에 바깥에 나돌지 말라고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이라면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나 폐기물처리장이나 골프장이나 큰 공장이나 큰 축사 곁에서는 아무도 놀지 않아요. 이런 데에는 누가 ‘가지 말라’고 하기 앞서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날 저녁, 난 (9살짜리 동생) 파블로에게 선생님과 아빠가 해 준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파블로는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그럴 만도 해요. 9년 동안 살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 테니까요. 우리는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아무 생각 없이 팔짱만 끼고 있는 어른들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 (16쪽)


“루, 파블로. 좀 비켜 줄래? 텔레비전이 안 보이잖아.” 엄마가 불평을 했어요. 이게 말이나 돼요? 이런 상황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려고 하다니요! “엄마 아빠한테 할 말이 있어요. 이제부터 파블로랑 나랑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할 거예요.” 엄마 아빠가 우리를 얼마나 비웃었는지는 말 안 할래요. (18쪽)



  《내일》에 나오는 열두 살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한테서 ‘공기가 나빠진 까닭’을 듣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한테 여쭈어요. 아버지는 열두 살 아이한테 ‘공기가 나빠진 까닭’을 들려주기는 하는데 그뿐입니다. 여느 날처럼 회사 일을 하고 집에서 컴퓨터를 붙잡으며 저녁에 포도술을 마시며 텔레비전을 볼 뿐입니다.


  열두 살 아이는 잔뜩 뿔이 납니다. 학교 선생님조차, 집에서 아버지랑 어머니조차 ‘이토록 공기가 나빠졌’는데 아무런 손을 안 쓰거든요. 게다가 ‘환경 문제’에 (프랑스사람) 거의 모두 마음을 안 쓴다고 한 마디를 하고는 이녁 스스로도 마음을 안 써요.


  자, 이때에 이 아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선생님도 어버이도 마음을 안 쓰니 아이로서 아무것을 못 한다고 여겨서 이 아이는 ‘내일’을 내팽개쳐야 할까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환경 문제 지식’만 머리에 외운 뒤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돈을 버는 회사 일만 하면’ 될까요?



“작물을 심고 농약을 뿌리는 게 농사라고 생각하면 안 돼. 그런 게 아니라서 농사가 재미있는 거라고! … 우리가 농사짓는 방법이라면 기계 대신 100만 명은 고용할 수 있어요. 게다가 농부는 훌륭한 직업입니다. 하루 종일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 흔히 사람들은 그런 대규모 농장에서 나는 작물이 우릴 먹여살리는 줄 착각하죠. 저도 예전에는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전 세계 식량 소비량의 70퍼센트는 이곳 같은 작은 농장에서 생산된 거예요. 대규모 농장에서는 주로 가축 사료용 곡물이나 산업용 곡물을 많이 생산하거든요.” (32, 33∼35쪽)



  청소년 인문책 《내일》에 나오는 열두 살 아이는 아홉 살 동생한테 ‘환경 문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홉 살 동생은 누나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대요. ‘아홉 해를 살며’ 이토록 끔찍한 일은 처음이라면서, 가만히 팔짱을 낄 수 없노라 외칩니다.


  이리하여 두 아이는 몸으로 나서기로 해요. 맨 처음 두 아이가 한 일은 집에서 ‘포도술을 마시며 텔레비전만 보는’ 아버지하고 어머니 앞을 막기입니다. 두 아이는 아버지랑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그만 보고 술도 그만 마시도록’ 막았대요.


  자, 이쯤에서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우리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이들한테 ‘환경 문제 지식’만 알려주거나 ‘환경 문제를 다룬 책’만 사다가 읽히면 될까요?


  아니면 어버이로서, 또 어른으로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작은 하나부터 바꾸거나 고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할까요?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작은 하나부터 바꾸거나 고치는 길을 아이하고 함께 하면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살림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왜 다른 나라들은 덴마크를 따라 하지 않아요?” “왜 안 해, 하지……. 조금……. 그런데 우리가 쓰는 에너지가 워낙 많아서 생산량이 따라갈 수 없을 거야.” “그럼 덜 쓰면 되잖아요!” (44쪽)


“결국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동물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는 건 돈을 더 벌기 위해서란 말이죠?” (59쪽)


“네가 체인점에서 물건을 사면, 네 돈은 이자를 받는 주주에게 가는 거야. 주주는 그 돈을 은행에 맡기고. 하지만 지역 사람이 운영하는 독립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그 돈은 고스란히 지역에 남아 지역 경제가 튼튼해지지.” (71∼72쪽)



  우리한테는 두 가지 ‘내일’이 있습니다. 오늘하고 똑같이 쳇바퀴를 돌듯이 맞이하는 내일이 있어요. 오늘하고 다르게 한 걸음 내딛는 내일이 있어요.


  아이들한테 어떤 내일을 물려주면 좋을까요? 아이들한테 핵발전소하고 핵폐기물처리장을 물려주면 아이들이 고맙게 여길까요? 아이들한테 골프장이나 커다란 축사랑 댐이랑 송전탑을 물려주면 아이들이 기쁘게 여길까요? 아이들한테 으리으리한 축구장이나 야구장이나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물려주면 아이들이 즐겁게 여길까요? 아이들한테 자동차하고 도시를 물려주면 아이들이 반갑게 여길까요?


  아이들한테 비정규직을 물려주고 싶은지 어른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국가보안법이나 분단이나 차별이나 따돌림을 물려주고 싶은지 어른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막개발이나 막삽질을 물려주고 싶은지 참으로 어른 스스로 물어야지 싶습니다.



(핀란드에서) 우리는 다른 교실에도 들어가 보았어요. 아이들은 우리와 똑같이 수학·역사·문법을 배우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과목도 많이 배우고 있었어요. 뜨개질과 바느질, 옷 만들기, 나무와 금속·가죽 다루기, 물건 만들기, 빨래하기, 정리하기, 청소하기, 요리하기, 그림 그리기, 악기 다루기 같은 거였어요. (88쪽)



  학교에서는 수학이나 역사나 문법도 잘 가르칠 노릇입니다. 여기에 뜨개질이나 옷짓기나 나무나 쇠붙이 다루기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핀란드 학교뿐 아니라 한국 학교도 밥짓기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비질이나 걸레질을 가르치며, 설거지 깔끔하게 하기라든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악기를 켜는 삶도 가르칠 수 있어야지요.


  시험점수로 따지는 입시지옥을 그만두고 참다운 배움마당이 되어야 할 학교라고 생각해요. 자격증이나 졸업증은 없어도 되니, 학교마다 자격증이나 졸업증은 없애고서 살림짓기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살아가는 즐거움을 가르치고, 어깨동무하는 기쁨을 배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한테 ‘내일’이란 새롭게 내딛는 한 걸음일 테니까요. 쳇바퀴나 맴돌이질이 아닌, 삶을 사랑으로 가꾸어 서로 환하게 웃음꽃을 피우는 길을 걸어야 평화와 평등과 민주를 참답게 이룰 테고요. ‘내일’을 생각해서 이제부터 하나씩 바꾸어야지 싶어요. 어리석은 대통령도 바꾸고, 어리석은 제도나 법도 바꾸며, 어리석은 학교도 뜯어고치고, 어리석은 모든 것이 슬기로운 살림이 되도록 바로세워야지 싶습니다. 2017.2.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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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일지
지율 지음 / 사계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1



이제 막삽질 대통령은 그만!

― 지율 스님의 산막일지

 지율 글·사진

 사계절 펴냄, 2017.1.16. 15800원



  작은 스님 한 사람이 있습니다. 키도 몸도 작은 스님은 작게 살림을 지으며 작은 길을 걸었습니다. 작게 길을 걷다 보니 작은 이웃을 봅니다. 작게 짓는 살림길에서 만난 작은 이웃은 무척 사랑스러웠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작은 스님은 작은 이웃한테 마음을 주었고, 작은 이웃은 작은 스님 마음을 받아서 제 삶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꿈을 키웠습니다.


  어느덧 열 몇 해가 지난 어느 때 이야기입니다. 작은 스님은 우람하고 빠르며 비싼 것이 가로지르려고 하는 작은 산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 작은 산에서 사는 작은 도롱뇽을 보았습니다. 한국에는 모두 네 가지 도롱뇽이 사는데(도롱뇽·제주도롱뇽·고리도롱뇽·꼬리치레도롱뇽), 이 가운데 하나인 꼬리치레도롱뇽입니다.


  그무렵 한국 정치나 경제나 사회에서는 서울하고 부산을 아주 빠르게 한 줄로 곧게 이어 달릴 수 있도록 하려는 데에 힘을 쏟았습니다. 천성산쯤이야, 도롱뇽쯤이야, 작은 스님 한 사람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자 할배는 “어이 좋다”고 한잣말을 하시더니 산능선까지 올라가서야 지게를 내리신다. 할배가 멈춘 ㄱ곳은 커다란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져 있다. 할배는 낫으로 잔가지들을 쳐내고 나무를 톱으로 지게에 싣기 좋게 자르신다. (23쪽)


바람은 몇 가지로 다른 소리를 낸다. 하나는 산언덕을 치고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철썩이며 방문 앞에서 포말로 부서지는 소리이다. (28쪽)



  《지율 스님의 산막일지》(사계절,2017)는 지율 스님이 천성산 도롱뇽하고 벗이 되어 이 삶자락을 앞으로도 정갈하게 지켜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하다가 몸이며 마음에 너무 깊이 생채기를 입고 깃든 두멧마을에서 적은 일기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천성산을 지켜 주지 못했고, 도롱뇽도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2004년 즈음 대통령 자리에 있던 분이나, 대통령 뜻을 받아서 지율 스님을 만났던 비서실장이나, 모두 지율 스님한테 거짓말을 했습니다. 말바꾸기도 했어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노라며 밥굶기싸움을 그쳐 달라고 했을 적에, 지율 스님은 곧이곧대로 믿고 밥굶기싸움을 그쳤지만, 막상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슬그머니 건너뛰었어요.


  정부로서는 작은 산이나 꼬리치레도롱뇽은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루 빨리 서울하고 부산 사이에 고속철도를 놓아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경제가치를 드날리는 데에만 마음을 썼어요.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어떤 숲이 있는지, 어떤 멧골이 있는지, 어떤 이웃이 있는지, 어떤 숨결이 사는지 거의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마당가에 있는 오래된 우물을 청소하려고 덮어두었던 뚜껑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도롱뇽 서너 마리가 물밑으로 숨어드는 것을 본 것이다. (37쪽)


불을 피우고 나무를 아끼는 것도 지혜이다. 큰 솥에 물을 끓이고 작은 솥에 밥을 하고 부지깽이를 놓아 국을 끓인다. (45쪽)


식물도감을 펴 들어 보지만 도감에는 오늘 본 풀들의 반도 없다. 오히려 밭을 매고 계신 할매에게 물으니 척척 대답하신다. 벌구다대, 보리강갱이, 꼬지기, 피당가리, 물에독새가시, 산나락냉이, 소엉겅퀴, 피다이, 밥부재나물, 미치광이 배추, 울릉도 나물 ……. (88쪽)



  도롱뇽 바라보기가 슬프고 두려워지고 만 작은 스님은 천성산에서 밀려난 뒤 찾아든 멧골마을 허름한 양철지붕 집 마당에서 뜻밖에 도롱뇽을 다시 만납니다. 그저 포근히 작은 스님을 받아 준 깊은 멧골마을인데, 오래 묵은 낡은 우물 한켠에 도롱뇽이 알을 낳았대요.


  비록 도롱뇽은 고속철도 등살에 삶터를 빼앗겼어도, 도롱뇽을 비롯한 수많은 짐승과 벌레와 푸나무가 밀려나거나 죽음길로 가야 했어도, 작은 멧골마을 작은 마당 작은 우물에 도룡뇽 몇 마리가 헤엄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옥이 할배는 늘 달고 다니시던 참전 용사 배지를 옷에서 떼시면서 “이제 생각해 보니 동포끼리 싸우고 받은 부끄러운 훈장이었다”고 하셨다. 오십 년 만에 찾아온 회한이다. (120쪽)


지난달 소 장사가 찾아와 3년 정도 기르던 암소를 팔 때, 할아버지가 소 등을 쓸어 주며 무슨 말인가 한참을 주고받고 나오시기에 내가 여쭈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이렇게 인연 지어졌으니 이해하여 달라고.” (140쪽)



  도롱뇽은 한국에서 없어져도 될까요? 도롱뇽 보금자리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될까요? 도롱뇽도 작은 산도 작은 마을도, 그러니까 조용하고 정갈한 시골마을을 조용하고 정갈하게 건사하면서 아끼려는 마음이 없는 정책은 어떤 길로 나아갔을까요?


  그예 고속철도 공사를 처음 계획대로 밀어붙인 정부는 고속철도를 얻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잃습니다. 숲도 잃고 마을도 잃으며 도롱뇽도 잃습니다. 고속철도를 얻으려고 막개발을 밀어붙인 정부에 이어 들어선 새로운 정부는 온나라를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도록 시멘트 공사로 갈아엎습니다. 이른바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벌인 ‘4대강 죽이기’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자리에 서려고 하는 분들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일꾼한테 한 표를 주어서 뽑는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멘트를 들이부어 공사판을 벌이는 경제성장 정책으로 일자리를 새로 마련하겠다고 밝히는 정책은 우리한테 어떤 보람이나 기쁨이나 열매를 주었을까요?


  고속철도 공사를 하면서, 4대강 시멘트 공사를 하면서, 또 수많은 공사를 하면서 ‘삽질’ 일자리는 늘어날 테지요. 그러나 한 가지 공사가 끝나면 ‘삽질’ 일자리는 모두 사라집니다. 더욱이 삽질을 하는 동안 땅을 파헤쳤으니 땅이 제힘을 되찾기까지 오래 걸립니다.


  우리는 어떤 정치 지도자를 바라야 좋을까요. 우리한테는 어떤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할까요. 우리는 정치 지도자에 앞서 우리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농사짓는 것을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보니 농사는 배워서 짓는 것이 아니라 지으면서 배우는 것이다. (149쪽)


어르신들은 ‘애기 며느리 밥풀꽃’을 ‘송이를 부르는 풀’이라고 부르신다. 산중턱 이상 되는 큰 소나무 그늘 아래서 많이 피기 때문이다. 또한 송이는 밤나무에 밤이 터질 때, 쑥부쟁이꽃이 피기 시작할 때, 감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나기 시작한다고 하신다. (217쪽)



  지율 스님은 멧골마을에 깃들어 ‘산막일지’를 쓰면서 할매하고 할배를 마주합니다. 처음에는 흙살림을 배워 보려는 생각이었지만, 이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이내 깨달았다고 합니다. 배워서 지을 수 없는 흙살림이요, 그예 몸으로 마음으로 흙을 부대낄 적에 저절로 배우는 살림인 줄 깨달았다고 해요.


  나무하는 할배를 따라 숲으로 들어갑니다. 나물하는 할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갑니다. 언제나 숲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마을에서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양철지붕을 달싹이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손수 밥을 지어서 먹고, 손수 반찬을 차려서 먹습니다.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면서 사람과 삶과 살림과 사랑이 마을에서 어떻게 피어나는가를 처음부터 다시 헤아리면서 배웁니다. 《지율 스님의 산막일지》는 이 나라가 막개발이나 막공사로 치닫는 자리에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 바라본 작은 이웃들이 일깨운 슬기를 하나하나 갈무리한 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들이 날아와 양철 지붕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었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숲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시간입니다. 이 눈 뜨임은 자연의 시간이며 우주의 시간이라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280쪽)



  지율 스님은 천성산 도롱뇽하고 벗이 되려고 하면서 우리한테 물었어요. 무엇을 보고 어느 길로 달리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지율 스님은 멧골마을에서 살다가 낙동강 곁으로 옮겼습니다. 2004년 언저리에는 고속철도를 비롯한 막개발 막공사를 일삼은 정치권력이 있었다면, 그 뒤를 이은 정치권력은 낙동강·한강·금강·영산강뿐 아니라 온 나라 냇바닥을 들어내어 시멘트를 퍼붓는 막개발 막공사를 끔찍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내성천을 지켜 보려고, 내성천에서 물고기가 마음껏 헤엄치도록 해 주고 싶어서, 부디 ‘대통령 잘못 뽑은 사람들’이 대통령은 잘못 뽑았어도 우리 보금자리를 스스로 잃어버리지 말자고,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되찾자고 하면서 냇바람 부는 곳에 섰어요. 다시 길에 서고, 다시 삽질에 맞서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낙동강을 비롯한 모든 물줄기에는 시멘트가 가득 쌓였지요. 전남 고흥 같은 작은 시골도 골짜기마다 시멘트차가 올라가서 골짜기를 갈아엎고 시멘트를 부었답니다.


  2017년에 우리는 대통령 한 사람을 탄핵해서 새로 뽑을 수 있을까요? 대통령 한 사람을 새로 뽑는다면 어떤 정책을 펼치는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요? 예전 대통령처럼 막개발 막삽질을 그예 밀어붙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할는지요? 공사판 일자리만 마련하려는 대통령을 다시 뽑을는지요? 이 나라에 평화와 민주가 뿌리내리도록 하면서 참다운 살림을 슬기롭게 가꿀 일꾼을 비로소 뽑을는지요? 작은 스님이 멧골에서 띄운 글월을 마음으로 새기며 읽을 줄 아는 심부름꾼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군수도 되고 공무원도 될 수 있기를 빕니다. 2017.2.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글에 붙인 사진은 사계절 출판사에 연락해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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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매미 생태 도감 한국 생물 목록 22
김선주.송재형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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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5



매미는 4월에도 11월에도 노래합니다

― 한국 매미 생태 도감

 김선주·송재형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2.6. 15000원



  김선주·송재형 두 분이 엮은 《한국 매미 도감》(자연과생태,2017)을 읽기 앞서까지 한 가지가 궁금했어요. 이른봄이나 늦가을에도 틀림없이 매미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알기로는 매미가 이른봄이나 늦가을에 ‘안 울 텐데’ 싶었어요.


  《한국 매미 도감》을 읽으니 머리말에서 매미는 한여름에만 울지 않는다고 똑똑히 밝혀 줍니다. 매미마다 갈래가 다르기에 4월에도 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11월에도 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매미가 여름을 대표하는 곤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도 매미가 나타나 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여름인 6∼8월에 여러 종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니 그럴 만도 합니다. 4월 하순에는 세모배매미가 모습을 내밉니다. 보름쯤 더 지나 5월 중순이 되면 이제는 풀매미가 나타납니다 … 8월 하순부터는 가을을 주 무대로 살아가는 늦털매미가 나타나 11월 초순까지도 울어댑니다. (4쪽)



  김선주·송재형 두 분은 매미가 좋아서 퍽 오랫동안 매미를 살피면서 온 나라를 누빈다고 합니다. 아직 살피지 못한 매미를 살피러 길을 나서고, 매미마다 이 나라 어느 곳에서 깨어나 힘차게 노래하는가를 알아보고 싶어서 길을 떠난다고 해요.


  《한국 매미 도감》은 두 분이 오랫동안 골골샅샅 누비면서 만난 매미를 사진하고 글로 살뜰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나라 온갖 매미를 두 분 땀방울로 엮은 책만 펼쳐도 환하게 만날 수 있어요.


  땅에서 나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요. 나무줄기를 붙잡고 허물을 벗으며 천천히 새 몸이 나오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요. 허물을 벗은 나무가 천천히 몸을 말리면서 날개가 돋는 모습을 만날 수 있지요. 날개를 말끔히 말린 매미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느긋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요.



매미아과는 날개돋이에 2시간 이상이 걸리고 몸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수 시간이 걸리는 반면, 좀매미아과는 그 절반인 1시간 정도면 날개돋이가 완료되고 몸도 빠르게 말라서 그 장소를 신속하게 벗어난다. (15쪽)


(참깽깽매미는) 다른 매미에 비해 행동이 민첩하지 못해서 천적인 새의 공격에 취약한 편이다. 물까치, 곤줄박이, 박새 등에게 포식당하는 장면을 흔히 보았으며, 수풀이 우거진 낮은 곳에서 우는 개체를 보면 새에게 공격을 당해서 날개나 다리를 잃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37쪽)



  나비는 허물을 벗으면서 날개를 말려요. 매미도 날개를 말린대요. 그러고 보면, 나비나 매미는 옛 몸을 녹여서 새 몸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엉금엉금 기던 몸을 송두리째 녹여서 새 몸이 되는 동안 흠뻑 젖거든요. 마치 옛 몸을 몽땅 녹여서 아주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다고 할까요.


  우리는 나비나 매미를 바라보면서 ‘날개돋이’라는 말을 써요. 날개 없이 땅바닥을 기던 몸에 날개가 돋아서 하늘을 날기에 ‘날개돋이’라 해요. 이런 나비나 매미를 지켜보면서 ‘거듭난다’고도 할 만하겠지요. “거듭 태어나는” 몸이니까요. 꽤 오랫동안 땅바닥을 기거나 잠자거나 풀잎을 타던 몸으로 한 번 태어났다가, 하늘을 날면서 맛난 물(나뭇물이나 꿀물)을 먹는 몸으로 새롭게 한 번 태어나요.



(애매니는) 밤에 가로등 불빛 아래로 온 개체를 쉽게 볼 수 있으며, 불빛으로 인해 낮으로 착각하고  우는 것도 자주 보인다. 우리나라 매미 중에서 가장 현란하게 울며, 새소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듣기 좋다. (88쪽)


세모배매미의 실체를 확인학기 위해 수 년간 강원 평창 대화면 일대를 탐사한 결과, 많은 개체숙가 서식하는 곳을 발견했다. 산중턱, 해발고도 500m 부근에 키 큰 나무로 둘러싸이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 풀이 무성한 양지바른 무덤가로, 풀매미와 서식지가 겹치는 경우가 많으며, 주로 이 무덤가 주변의 키 큰 나무에서 우는 것을 확인했다. (94쪽)



  오늘날 우리는 열두 가지에 이르는 한국 매미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열두 가지라고 하는데 백 해나 이백 해 앞서는 몇 가지 매미가 있었는지 알기 어려워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사라진 매미가 있을 만해요. 매미를 아끼는 학자나 매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 매미를 낱낱이 헤아리기 앞서 자취를 감춘 매미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나마 열두 가지 매미도 앞으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한국은 아직 온 나라가 수많은 개발과 공사로 끙끙 앓거든요. 이만큼 발돋움했어도 개발이나 공사가 끊이지 않아요. 자동차가 이토록 많고, 공장이나 발전소가 이다지도 많은데 또 뭔가를 자꾸 지으려고 숲을 허물고 마을을 밀어요. 깨끗하며 아름다운 전기를 얻도록 하는 길보다 숲과 마을을 밀어내거나 망가뜨리는 커다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사업만 자꾸 불거져요. 고속도로도 더 늘어날 낌새이고 고속철도도 자꾸 늘어나기만 하지요.



저희에게는 큰 즐거움을 준 매미가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매미가 우는 이유, 매미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매미와 사람 간 유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5쪽)



  매미가 사라지는 곳에서 사람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즐겁게 살 만할까 모르겠습니다. 매미가 우렁차게 노래하는 곳일 때에 사람도 아름답거나 즐겁게 어우러지는 마을살림을 이룰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매미가 넉넉하게 살기에 사람도 넉넉하게 살 수 있지 싶어요. 온갖 매미가 저마다 기쁘게 날개돋이를 하면서 노래할 수 있는 터전이라면, 이러한 곳에서 우리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기쁜 삶을 지을 만하리라 봅니다.


  《한국 매미 도감》에 나오는 이쁘고 멋진 매미를 이 도감에서만 구경하지 않고, 우리 둘레 어디에서나 반가이 맞이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애벌레일 적에 땅속에서 느긋하게 지내고, 땅밖으로 나와서 나무줄기를 타고 오를 적에는 씩씩하게 노래하는 매미를 고이 마주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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