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7
이형주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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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3



가장 비싼 루왁 커피는 ‘가장 끔찍한’ 동물학대

―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이형주 글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6.11.30. 14000원



  저는 커피를 안 마시기 때문에 원두커피를 어떻게 볶거나 갈거나 내리는지 모릅니다. 커피마다 붙은 이름을 모를 뿐더러 ‘루왁 커피’라는 이름을 몰라요.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책공장더불어,2016)라는 책을 읽으며 ‘루왁 커피’라는 이름을 비로소 압니다. 이 지구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다는 ‘루왁 커피’에서 ‘루왁(luwak)’이 ‘말레이사향고양이’를 가리키는 인도네시아말인 줄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 책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는 왜 ‘루왁 커피’를 마시는 일이 “사향고양이 눈물을 마시”는 일이라고 적을까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약 200개의 사자 농장에서 6000∼8000마리의 사자가 사육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야생에 서식하는 사자 2300마리의 몇 배가 되는 숫자다. 이렇게 농장에서 길러진 사자들은 1년에 800∼1000마리가 사냥꾼의 총구에 목숨을 잃고 만다 … 아프리카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관광산업 중 사냥이 차지하는 부분은 2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 보츠와나에서 자연경관을 관광하고 야생동물을 촬영하는 생태관광은 1년에 15억 달러의 수익을 얻었고, 보츠와나 전체 고용률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6만 9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19∼20, 23쪽)



  사향고양이 이야기에 앞서 아프리카 사자 이야기를 읽어 봅니다. 책 첫머리에는 ‘아프리카에서 사냥 관광으로 죽는 사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프리카에는 ‘통조림 농장’이 있다고 해요. 이곳은 통조림을 빚어서 파는 농장이 아니라, 들에서 달리는 사자를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는 곳이라고 해요. 사냥꾼이 좁은 우리를 슬슬 돌아다니면서 총으로 사자를 쏘아 죽이도록 하는 농장이라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사냥 관광’입니다. 범하고 사자는 들판에서 힘이 세기로 이름이 높은데, 이 힘센 사자를 울타리로 빙 두른 작은 곳에 가두어 사람들이 낄낄거리면서 총을 쏘아대어 사자를 죽이는 ‘스포츠’를 즐긴다는군요.



1980년 20마리에 불과하던 중국의 사육 호랑이 수는 30년 만에 6000여 마리로 늘어났다. 전 세계의 야생 호랑이 개체 수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다. 그러나 30년 가깝도록 야생으로 돌아간 호랑이는 단 한 마리도 없다 … 호랑이술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입장료를 내고 이곳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관광객은 불법적으로 야생동물을 도살, 가공해 판매하는 산업을 유지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42, 48쪽)


투우 경기에 나오는 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코에서 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힘이 세고 폭력적인 야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불안한데다 이미 당할 대로 당한 고문으로 아프고 지쳐 있는, 극도로 겁에 질린 동물일 뿐이다. (67쪽)



  중국에서는 수천 마리에 이르는 범을 ‘사육 농장’ 또는 ‘공원’에서 기른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체험 관광’처럼 꾸미지만, 속으로는 뼈랑 고기를 얻으려고 하는 곳이라고 해요.


  한국에서도 ‘범뼈를 갈아서 빚은 약’이 인기가 높아요. 틀림없이 한국에서는 자취를 감춘 범인데, 이 숲짐승을 좁은 곳에 수천 마리나 가두어서 뼈랑 고기를 얻는다고 합니다. 더욱이 중국에 있는 ‘범 사육 농장’을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은 한국 관광객이라고 해요.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를 읽어 보면 한국사람 이야기는 더 나옵니다. 곰 쓸개를 얻으려고 하는 한국사람 이야기가 나오고, 마구 죽여댄 하프물범 주검을 왕창 사들여서 ‘오메가3’라는 약을 만든다는 한국사람 이야기가 나와요.



돌고래 사냥을 유지하는 것은 전시용 돌고래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 때문이다. 고기로 유통되는 죽은 돌고래는 원화로 약 40만 원선에 거래되지만, 산 채로 잡아 훈련시킨 돌고래는 2억 원을 호가한다 … 돌고래가 한때 가졌던 가족, 바다, 자유, 삶. 갖고 있었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돌고래 사냥. 이 슬픔의 과정을 현장에서 본다면 전통이라는 이유로 혹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 예쁘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돌고래 사냥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99, 102쪽)


사향고양이가 들에서 따 먹은 커피 열매는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위산과 효소의 작용으로 단백질이 분해되어 배설되는데 이 배설된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가 ‘루왁’ 커피다 … 자기 몸보다 조금 큰 공간에 갇혀서 강제로 급여되는 커피 열매만 먹고 배설하는 일이 전부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향고양이들은 정신적·육체적 질병에 시달린다. (122, 124쪽)



  270쪽에 걸쳐 스물네 갈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입니다. 이 지구에서 ‘수많은 들짐승을 괴롭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스물네 갈래로 간추려서 보여줍니다. 사자를, 돌고래를, 범을, 코뿔소를, 투우장 소를, 악어와 뱀을, 코끼리를, 낙타를, 사향고양이를, 곰을, 범고래를, 상어를, 하프물범을, 라쿤과 여우를, 오랑우탄을, 개를, 북극곰을 사람들이 얼마나 괴롭히면서 죽이는가 하는 대목을 낱낱이 들려줍니다.


  자, 이제 ‘사향고양이 커피’가 왜 끔찍한 ‘동물학대’인가를 살펴봅니다. ‘루왁 커피’ 그러니까 ‘사향고양이 커피’는 밤에만 돌아다니는 숲짐승인 사향고양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열매 가운데 하나인 커피 열매에서 나온다고 해요. 사향고양이는 커피알(커피 열매)을 통째로 삼키고, 이 커피알은 사향고양이 몸을 거친 뒤에 똥으로 나오는데, 사향고양이 뱃속을 거치는 동안 ‘뭔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 맛이 다른 커피알에서는 찾아볼 수 없도록 놀라워서 그렇게 비싸게 팔린다고 해요.


  사향고양이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이 얼마 없을 적에는 인도네시아사람이 손수 사향고양이 똥을 거두어서 커피알을 추려냈다지만, 요새는 사향고양이를 우리에 가두어 커피알만 먹여서 똥으로 내놓도록 한대요. 사향고양이는 밤에만 돌아다니지만, 한낮에도 먹이를 오직 커피알만 먹이는데다가 ‘체험 농장’까지 꾸리면서 사향고양이는 끔찍하게 시달린다고 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쓸개즙을 얻기 위해 곰을 기르는 것이 합법인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뿐이다. (133쪽)


상어 사냥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상어 지느러미를 채취하는 과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도적이기 때문이다. 지느러미에 비해 상어고기에 대한 수요는 적기 때문에 어부들은 뜨겁게 달구어진 칼로 지느러미만 자른 후 상어를 바다에 던져 버린다. (168쪽)



  가장 비싼 커피는 사향고양이를 ‘가장 끔찍하게 괴롭히며’ 얻는다고 해요. 우리는 커피나무에 맺히는 열매로만 커피를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뭔가 남다른 커피를 맛보고 싶어서 사향고양이를 이렇게 모질게 괴롭혀야 할까요?


  한국에서는 이제 사라졌다지만, 중국에서는 엄청나게 많다는 ‘곰 농장’에서는 곰을 좁은 쇠우리에 가두어 놓고 몸에다가 호스를 꽂아서 쓸개에서 물을 빼낸다고 합니다. 곰은 나서 죽을 때까지 좁은 쇠우리에 꼼짝달싹 못하는 채 드러눕히면서 쓸개즙을 사람한테 빼내 주어야 한대요.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하려고 고기잡이는 상어를 잡아서 지느러미만 자른 뒤 바다에 집어던진답니다. 지느러미가 잘린 상어는 헤엄을 칠 수 없기에 그대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데, 지느러미만 잘렸기에 목숨은 붙었다지요. ‘산 채로 지느러미만 빼앗긴 상어’는 몇 날 며칠을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도살된 하프물범은 다 어디로 갈까? 창피하게도 우리나라와 중국이 거의 유일한 무역 상대국이다. 우리나라는 모피를 만들고 남은 기름과 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한국으로 수입된 물범기름은 건강보조제 오메가3의 원료로 쓰인다. (180쪽)



  저는 커피도 안 마시지만, 상어 지느러미 요리도 안 먹고, 쓸개즙도 안 먹으며, 오메가3도 안 먹습니다. 이러다 보니 이런 여러 가지가 어떻게 나오는가를 하나도 몰랐습니다. 제가 이런 것을 안 먹으니 이런 것이 나오는 얼거리를 그저 모르는 채 살아갈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제 살림하고 동떨어졌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거나 모르쇠로 지낸다면 이 바보스럽고 끔찍한 얼거리는 조금도 안 바뀌리라 느낍니다.


  제가 돌고래쇼나 코끼리쇼를 안 본다고 하더라도 돌고래와 코끼리를 괴롭히는 끔찍한 짓을 모른 척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동물원에 안 가고, 동물원에 북극곰이나 낙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하더라도, 들짐승과 숲짐승을 괴롭히는 이 모진 사회 얼거리를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에요.



모피 때문에 해마다 수천만 마리가 넘는 동물이 목숨을 잃고 있따. 그중 85퍼센트는 공장식 모피 농장에서 사육되고 도살된다. 가장 많이 사육되는 동물은 밍크이고 그 다음이 여우다 … 모피 농장에서 길러지는 동물은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도살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하던 동물들은 마지막으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 법적으로 허가된 도사라방법이라 해도 편안한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 일산화탄소와 그 혼합물을 사용하여 질식시키는 방법, 입이나 항문, 생식기 안에 전깃줄을 집어넣고 전류를 흐르게 해 도살하는 전살법, 약물로 근육을 마미시켜 죽이는 방법 등이 쓰인다. (186, 187, 188쪽)



  추운 곳에서 사는 북극곰이 너무 더운 한국 같은 곳에서 갇혀 지내느라 몸에 ‘녹조류’가 생긴다고 합니다. 감옥처럼 꾸민 동물원은 꼭 있어야 할까요? 감옥처럼 꾸민 동물원에 북극곰이나 펭귄을 가두어 이들이 ‘죽는 날’까지 죽음과도 같은 끔찍한 삶을 보내도록 해야 할까요?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를 쓴 이형주 님은 피아노 연주자였으나, 한국에서 동물학대가 얼마나 끔찍한가를 깨닫고는 동물보호 일을 한다고 합니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를 보면 “내가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이 다른 생명과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뒤표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쌀밥을 먹든 고깃국을 먹든 우리는 다른 목숨을 받아들입니다. 감 한 알도 목숨이요, 달걀 하나도 목숨이에요. 채식이든 육식이든 잡식이든 언제나 다른 목숨을 우리 몸으로 받아들여서 우리 목숨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즐겁게 누리는 밥은 즐거운 몸으로 거듭나고, 마구잡이로 먹어치우는 밥은 마구잡이와 같은 몸으로 거듭나요. 그러니 무엇을 먹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너른 숲과 땅과 바다와 들’을 정갈히 건사하면서 아름답게 아끼는 마음이 되어야지 싶어요.



정말 코끼리를 사랑한다면 코끼리 등에 타거나 코끼리가 등장하는 공연을 보는 대신, 코끼리 보호소를 방문해 보자. 동물과의 교감은 단지 동물과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고통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나와 같은 생명체임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교감이고 동물사랑이다. (159쪽)


야생에서는 25년 정도 사는 고릴라가 40살까지 천수를 누리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니 행복한 삶을 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2살 때 눈앞에서 가족이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 철장에 갇혀 40년 가까이 산 삶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30쪽)



  우리더러 ‘200년을 살도록’ 해 준다면서 좁은 우리에 가둔다면 어떠할는지 궁금합니다. 백 해를 살기 힘든 사람을 이백 해를 살도록 해 준다면, 우리로서는 감옥도 마다 하지 않을 만할까요?


  닭도 돼지도 소도, 개도 고양이도 말도, 코끼리도 돌고래도 넙치도, 참말로 우리하고 똑같이 ‘목숨’이라는 대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억눌리는 목숨이나 억누르는 목숨이 없이 서로 고이 어우러질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사람과 짐승 사이에서도, 그리고 사람과 푸나무 사이에서도 서로 아낄 수 있는 따사로운 숨결이 흐를 수 있기를 빌어요.


  평화롭게 가꾸는 살림으로 평화롭게 짓는 밥 한 그릇일 때에 우리 몸에 평화가 흐릅니다. 사랑으로 짓는 삶으로 사랑스레 짓는 밥 한 그릇일 때에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너른 사랑이 이루어져요. 이제 ‘사향고양이 눈물’이 아닌 ‘커피’를 마실 수 있기를, 또 ‘이웃 목숨을 괴롭히는 손아귀’가 아닌 ‘이웃을 아끼는 손길’로 이 땅을 보듬을 수 있기를 애타게 바라며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를 덮습니다. 2017.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본문사진은 제가 찍었고, 다른 사진은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습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저작권이 있는 사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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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승. - 네 발 달린 도반들과 스님이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
진엽 글.사진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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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1



사형이 ‘개똥 줍는 스님’이라고 놀린다

― 개.똥.승.

 진엽 글·사진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6.11.13. 12000원



  스님 한 분이 개를 기른다고 합니다. 이 스님은 개를 기르니 늘 개똥을 줍는다고 합니다. 이 스님하고 함께 지내는 사형은 ‘개를 기르는 스님’을 보고 “개똥 줍는 스님”이라면서 놀린다고 합니다.


  개를 기르는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개똥을 주으니 ‘개똥을 줍는’ 모습이 맞습니다. 개똥을 주으면서 스님으로 지내니까 “개똥 줍는 스님”이 맞습니다. 개똥 줍는 스님은 이녁이 개하고 함께 살면서 배우고 느끼고 나누고 함께한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개.똥.승.》(책공장더불어,2016)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 한 아이가 (개) 선우에게 돌을 던진 모양이다. 다른 아이가 돌을 던지면 개가 아프다고 친구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던지는 아이와 말리는 아이. 던지는 아이는 어떤 아이며 또 말리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19∼20쪽)



  개한테도 사람하고 똑같이 ‘목숨이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한 아이가 돌을 던진다고 합니다. 개한테 돌을 던진 아이 곁에 왜 개한테 돌을 던지느냐고 말리는 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한 아이는 거의 아무 생각이 없이 개한테 돌을 던지면서 ‘괴롭히는’ 짓을 하는데, 괴롭히는 줄 안다면 아이로서 받은 생채기 때문일 터요, 괴롭히는 줄 모른다면 참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노릇일 테지요.


  거꾸로 개가 사람한테 돌을 던진다면, 우리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요? 개를 비롯한 온갖 짐승을 괴롭히거나 들볶는 우리 사람들이 거꾸로 개를 비롯한 뭇짐승한테서 돌을 맞거나 들볶이거나 시달린다면, 참말로 우리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달걀이 아이들의 식탁 위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찾아봤다. A4용지 3분의 2 크기도 안 되는 공간에 갇혀 기계처럼 알을 낳는 닭들. 이랬구나. 달걀을 생산하는 닭의 삶이란 것이, 소와 돼지의 삶이, 다른 생명들의 삶이. 몰랐다. 내가 먹지 않고, 내가 입지 않는다고 귀는 열려 있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고, 눈은 뜨고 있었지만 보려 하지 않았다. (34쪽)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는 묶인 개가 없었다.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 모이면 집개들도 함께 나와서 겅중겅중 뛰놀았다. 아이들은 모두 이웃집 개의 이름을 알았고, 우리 개 남의 개 구분 없이 밥을 먹었다. (42쪽)



  고기도 달걀도 안 먹는 스님은 ‘달걀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가 흔히 쉽게 먹는 달걀이 어떻게 나와서 가게에 놓이는지를 까맣게 몰랐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해요. 혼자 고기나 달걀을 안 먹는대서 ‘공장 축산’에서 시달리는 닭이나 돼지나 소나 온갖 짐승까지 모르쇠로 지냈구나 하고 깨달았대요.


  오늘날 손수 닭을 치는 집은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날 손수 돌보는 닭한테서 알을 조금씩 얻어 알뜰히 여기는 집은 얼마나 될까요? 손수 닭을 기르지 않기 때문에 닭이 낳는 알뿐 아니라 닭 몸뚱이로 얻는 살코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까맣게 모르는 우리 모습은 아닐까요? 집집마다 손수 닭을 키울 적에는 조류독감 걱정 따위는 없었을 텐데, 값싸고 손쉽게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는 달걀이나 닭고기가 되면서,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조류독감을 비롯한 무시무시한 ‘새로운 현대 사회 질병’이 퍼지는 셈이 아닐까요?



“우리가 스님이지, 선우가 스님은 아니지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내가 만든 잣대로 모든 것을 맞추려 했을까. 나는 스님이기도 하지만 선우의 보호자이기도 하니 잘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더 이상 고민할 게 없었다. (55쪽)


아침에 공양을 마치면 똥 봉투를 들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보물찾기를 하는 냥 마당 이곳저곳에서 개똥을 찾는다. 찾은 똥을 살피면서 아이들 건강 상태를 가늠한다. 누가 속이 안 좋은지, 누가 변비인지 알아보는데, 신기하게도 딱 보면 누구 똥인지 알 수 있다. 이건 선우 똥, 이건 파랑이 똥, 이건 오페라 똥. 사형이 ‘개똥 줍는 스님’이라고 놀린다. 그 말이 싫지 않다. 개똥을 줍는 스님. (70쪽)



  《개.똥.승.》을 쓴 진엽 스님은 이 책에서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개 한 마리를 곁에 두고 살면서 이 개가 자라는 흐름을 살피며 새롭게 배운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던 개가 앓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 끝에 다부진 어른 개가 되고, 이윽고 새끼를 낳는 어미로 살며, 새끼랑 어미가 오붓하게 함께 지내는 모습까지 두루 지켜보는 동안 ‘목숨 하나란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가’를 깨우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님은 고기나 달걀을 안 먹지만, 개를 생각해서 달걀을 마련하여 먹입니다. 스님은 고기나 달걀을 입에 안 대지만, 새끼를 밴 어미 개를 헤아려서 고깃국을 끓입니다. 나중에는 고기를 쓰지 않되 개뿐 아니라 아이들한테도 몸을 살찌울 수 있을 만한 국을 끓여냅니다.



“파랑이는 친구 있어요?” 파랑이는 친구는 없고 가족이랑 같이 산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있어야지요. 파랑이는 친구가 없으니까 내가 친구 해 줄래요. 파랑이한테 꼭 전해 주세요.” 아이는 신신당부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116쪽)


잘 도착하셨는지 묻는 전화 너머 어머니가 우신다. 이틀 집을 비웠더니 눈 내린 마당에 고양이 발자국이 빼곡하단다.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겠냐고, 배도 많이 고팠을 텐데 얼른 밥을 해서 고양이들 먹인다고 전화를 급히 끊으신다. 고양이 덕분에 혼자 계신 엄마가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고, 인적이 많지 않은 곳인데 말벗도 생겨서 참 고맙다. (176∼177쪽)



  나그네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주는 사람은 길을 잃은 짐승한테도 먹이를 나누어 줄 줄 압니다. 이웃을 따스히 헤아리는 사람은 사람 곁에 있는 떠돌이 짐승도 따스히 살필 줄 압니다.


  스님을 낳은 늙은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마을고양이(길고양이)한테 밥을 챙겨 주신다고 합니다. 모처럼 어머니가 시골집을 하루 비우고 스님을 만나러 마실을 했다는데, 하룻밤 집 바깥에서 지내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니 눈 덮인 마당에 고양이 발자국이 빼곡했대요. 스님 어머니는 마을고양이를 먹이려고 바쁘시대요.


  아마 스님은 이녁 어머니한테서 ‘이웃사랑’을 물려받았지 싶어요. 낯을 아는 이웃만 돕는 사랑이 아니라, 낯을 모르는 이웃도 기꺼이 반가이 도울 줄 아는 사랑을 물려받았을 테지요. 따스하고 너른 사랑을 물려받은 숨결이기에 이러한 손길로 작은 짐승이며 마을 아이들한테도 포근하며 곱게 마음을 나누어 줄 만하리라 느껴요.


  작은 그릇 하나에 밥 몇 술을 덜 수 있으면 돼요. 작은 손길로 사랑을 가만히 나눌 수 있으면 돼요. 우리를 살리고 서로서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곱고 따스하며 조그마한 사랑에서 비롯하지 싶어요. 개랑 똥이랑 스님(승)이 어우러져서 《개.똥.승.》이 태어났듯이, 우리 삶자리 어디에나 ‘이웃·사랑·살림’이 어우러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12.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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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새 도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생물 3
최순규 지음 / 자연과생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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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2



‘살코기 아닌 이웃’인 새를 사랑하는 길

― 화살표 새 도감

 최순규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6.12.12. 22000원



  아무리 도시가 커지더라도 우리 곁에 있는 새가 있습니다. 도시가 너무 커진 탓에 삶터를 몽땅 빼앗길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은 새가 있습니다. 하늘을 날며 바람을 가르는 새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몸소 날아오르지는 못하더라도 비행기라는 기계를 만들어서 새처럼 마음껏 이리저리 다니기도 합니다. 우리가 새를 보지 못하거나 알지 못했다면 하늘을 나는 꿈도 못 꾸었으리라 느껴요.


  최순규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서 빚은 《화살표 새 도감》(자연과생태,2016)을 보면서 아직 우리 곁에 새가 이렇게 많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비록 열 해쯤 앞서하고 대면 크게 줄었고, 스무 해쯤 앞서하고 대면 대단히 줄었으며, 서른 해나 마흔 해쯤하고 대면 엄청나게 줄어든 새일 텐데, 작으면서 야무진 《화살표 새 도감》에 나오는 새는 제법 많다고 할 만해요. 더욱이 이 도감은 ‘우리 눈앞에 살짝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새를 한결 쉽게 잘 알아보도록 화살표로 콕콕 짚으면서 알려주기도 합니다.



예전에 황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던 텃새였으나 인구 증가와 산업화로 인해 습지가 부족해지면서 절멸했고, 지금은 아무르 강 유역 중국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철새로 날아와 천수만, 영암호, 남해안 일대에서 보인다. (30쪽)


(매 무리는) 높은 곳이나 공중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급강하해 땅 위에 있는 설치류, 새, 곤충 등을 잡아먹는다. 대부분 살아 있는 먹이를 사냥하며, 다리가 약해 빠르게 먹이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먹이의 목을 물어뜯어 순식간에 죽인다 … 매 무리도 대부분 먹이사슬 최상위에 위치해 환경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려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42쪽)



  《화살표 새 도감》은 먼저 ‘물새’하고 ‘산새’를 가릅니다.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새랑, 숲을 좋아해서 숲(산)에 깃드는 새를 나누어요. 이 나눔법을 보니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참말로 새는 물가나 바닷가처럼 ‘물이 있는 곳’에서 사는 새가 한 갈래요, 숲에 깃들어 나무에 둥지를 짓고서 먹이를 찾는 새가 다른 한 갈래라고 할 만합니다.


  물새 갈래에서는 다시 아비·논병아리·가마우지·기러기·갈매기·백로·저어새·물떼새·도요새·황새·두루미·뜸부기·물총새·물까마귀·할미새·종다리로 가르며, 이 갈래에서도 조금 더 잘게 가르기도 합니다.


  산새 갈래에서는 수리·매·올빼미·꿩·까마귀·비둘기·두견이·딱따구리·직박구리·지빠귀·찌르레기·때까치·파랑새·후투티·쏙독새·팔색조·여새·제비·칼새·개개비·솔딱새·박새·동박새·오목눈이·동고비·되새·참새·멧새로 가르며, 이 갈래에서도 찬찬히 더 가르기도 해요.



(올빼미 무리는) 첫째날개깃 끝은 다른 새와 달리 아주 미세하게 갈라졌으며 이 부분으로 공기의 흐름을 제어해 비행할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다. 눈도 다른 새와 달리 얼굴 정면에 있어 사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44쪽)


(꿩 무리는) 대부분 수컷 하나에 여러 암컷이 모여서 번식하고 보통 알을 12개 정도 낳아 암컷이 품는다. 부화한 새끼는 깃털이 있으며 바로 걸을 수 있어 둥지에 머물지 않고 어미를 따라다닌다. 씨앗이나 열매, 곤충 등을 먹지만 주로 식물성을 먹기 때문에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소화가 덜 된 배설물을 다시 먹는 경우도 있다 … 꿩의 평균 수명은 27년 정도로 알려졌다. (46쪽)



  여러 갈래로 나눈 이름만 보아도 새를 살피기에 훨씬 수월하구나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여러 갈래로 나눈 이름에서 ‘사람들한테 익숙하거나 흔하구나’ 싶은 이름이 꽤 많지 싶어요. 비록 오늘날에는 바닷가나 냇가나 숲으로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새일지라도, 숱한 새는 이 지구에서 알뜰살뜰 살림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웬만한 새는 이름이 ‘한국말(토박이말)’이에요. 그만큼 새는 한겨레하고 오래도록 이웃으로 지내면서 어우러진 숨결이라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곁에서 늘 지켜보며 옛사람 나름대로 재미나고 사랑스레 이름을 붙여 주었으리라 느껴요. 이처럼 붙인 이름이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서 입을 타고 흐르면서 오늘날까지 이었으리라 생각해요.


  나중에 새 학자가 붙인 이름도 있을 텐데, ‘나그네새’나 ‘철새’나 ‘텃새’나 ‘길잃은새’ 같은 이름을 헤아려 보면 이 나라에서 새를 얼마나 곁에 두고서 살피는가 하는 대목을 엿볼 수 있기도 해요. 철을 살피는 철새요, 텃밭이나 텃논처럼 새 나름대로 저희 삶터를 한곳에 뿌리내리는 모습으로 텃새라 이름을 붙였으니, 그만큼 새는 한겨레하고 가까운 사이라 할 만해요.



(뻐꾸기 무리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자신의 새끼를 키우게 하는 습성(탁란)으로 유명하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이 무리의 40% 정도만 이런 습성이 있다 … 뻐꾸기 무리가 큰 소리를 내니 보기 쉬울 것 같으나 울창한 숲 속에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개체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번식기 이후에는 소리 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더욱 보기 어렵다. (52쪽)


제비는 양 극지방과 대양의 작은 섬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번식하며,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의 난대와 열대 지역에서 겨울을 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도 월동개체가 확인되었다. 제비는 인가 주변에 살면서 번식했던 둥지를 이듬해에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다시 돌아오는 비율이 10% 이내로 높지 않다. (64쪽)



  닭도 새입니다만, 요즈음은 닭이 새라고 하는 대목을 거의 잊고 살지 싶습니다. 꿩과에 드는 새인 닭일 테지만, 이제는 닭을 거의 닭우리에 가두어 알하고 살점을 얻는 고기로 여기거든요. 더구나 집에서 닭을 치는 일은 거의 사라졌고, 으레 가게에서 사다 먹기만 하지요. 오늘날 우리는 닭고기나 닭알(달걀)을 엄청나게 먹는데, 너무 커지고 만 ‘공장 축산’은 조류독감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새한테서 새다움을 빼앗은 탓에 사람들한테 무서운 병이 생기는 셈이라고 할까요. ‘산 목숨’을 아주 좁다란 우리에 가두어 햇빛조차 못 쬐도록 하면서 알하고 살점을 더 많이 뽑아내도록 닦달을 한 탓에 새(닭)한테도 사람한테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싶어요.


  이 때문에 ‘공장 축산’으로 기르는 닭도 난데없이 죽어야 하지만, 물가나 숲에서 조용히 사는 새도 피해를 입습니다. 예부터 사람이 새를 비롯한 수많은 들짐승이나 멧짐승하고 어깨동무를 하던 얼거리를 그만 깨뜨린 나머지, 사람도 새도 고단한 살림이 되지 싶어요.


  도시를 짓더라도 조금 더 작게 지을 수 있고, 발전소나 공장도 더 크기를 줄이면서 깨끗한 시설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닭우리를 크게 짓더라도 닭이 조금 더 ‘나은’ 터전에서 자라도록 바꿀 수 있어요. ‘생산·소비·경제’라는 이름을 벗고서 ‘삶·어울림·마을’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본다면, 사람한테도 새한테도 아름다운 터전으로 거듭날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화살표 새 도감》 같은 상냥한 책 한 권을 손에 쥐고서 아이들하고 ‘우리 곁에 있는 아름다운 새’를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먹이(알과 고기)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하고 지구에서 함께 사는 이웃’으로 새를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16.12.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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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
라오 핑루 글.그림, 남혜선 옮김 / 윌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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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2



눈물 한 방울 남기고 떠난 예순 해 사랑지기

―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

 라오 핑루 글·그림

 남혜선 옮김

 윌북 펴냄, 2016.9.30. 14800원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하루를 함께 있거나 한 달을 같이 있어도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샘솟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하루도 괴로울 테고 한 달이나 한 해쯤이라면 그야말로 고달프리라 생각해요.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예순 해를 함께 산다면? 예순 해라는 나날을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따사로운 숨결로 지낼 수 있다면?



소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내가 부모님 밥을 퍼 드렸다. 가족들이 가르쳐 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종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식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릇에 밥을 남겨서도 안 되고 밥알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26쪽)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창밖으로 학교에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며 노는 계집종 아이가 보였는데, 그렇게 즐거워 보이더라나. 부러워 죽겠는데 그렇다고 어쩔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업이 끝나면 둘이 같이 집에 갔다고 한다. (67쪽)



  라오 핑루라는 할아버지는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윌북,2016)라는 책을 쓰고 그립니다. 이녁하고 예순 해를 하루처럼 한마음으로 살아온 곁님 ‘메이탕’하고 얽힌 삶과 살림과 사랑을 글하고 그림으로 함께 엮어서 책으로 남겨요.


  이 책을 보면, 먼저 라오 핑루 할아버지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떤 어린 나날을 보냈는가 하는 대목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이야기를 붙입니다. 다음으로 이녁하고 예순 해를 함께 살아온 메이탕 할머니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떤 나날을 보내다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대목을 그림하고 글로 엮습니다.


  라오 핑루 할아버지는 ‘사진을 안 찍었’어도 사진처럼 또렷하게 지난날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에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고 해요. 사진으로 찍기는 했으나 모두 불태워야 했거나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사진에 앞서 마음에 깊이 남은 삶’이었기에 알뜰살뜰 그림으로 빚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오른쪽 아래로 열 걸음 근처에 엎드려 있던 4반 반장 리아수이가 포탄에 맞아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맑고 구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다시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푸른 산으로 가득했다. 난 포성 속에서 갑자기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기가 내 무덤 자리가 될까?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무성하게 우거진 푸른 숲속에서 죽으니 그래도 의미는 있겠구나.’ (93쪽)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얼마나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난 화가가 아니라서 못 그리겠어!’ 하며 한발을 빼지는 않을까요. ‘사진으로 안 찍어 놨는데 어떻게 그림으로 그리니?’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는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화가나 작가가 아니기에 그림이나 글을 못 그리거나 못 쓴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화가가 아니어도, 또 사진으로 안 찍어 놓았어도, 누구나 우리 지난날을 그림으로 새롭게 그릴 만하지 싶어요. 바로 라오 핑루 할아버지가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라는 책으로 잘 보여주거든요.


  그림을 배워야 그리는 그림이 아니요, 글을 익혀야 쓰는 글이 아니라고 해요. 예순 해를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던 마음을 차곡차곡 떠올리고 되짚기에 참말로 또렷하게 떠올라서 그릴 수 있고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해요.



내가 노동 개조를 받으러 떠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출판사 인삭과에서 아내를 찾아와서는 나와 ‘확실히 선을 그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메이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메이탕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바람을 피웠으면 일찌감치 이혼했겠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도 아니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뭘 훔치고 마음대로 가져가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이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이혼을 해요?!” (236쪽)



  어릴 적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서 배운 살림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으면서 이녁 아이들한테 물려주었고, 이 살림을 고스란히 그림하고 글로 새로 엮는 라오 핑루 할아버지입니다. 일본군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살아난 이야기, 한 중국이 두 중국으로 갈리면서 ‘노동개조’를 받아야 하던 이야기, 스무 해가 넘는 노동개조가 드디어 끝나서 아이들하고 곁님 품으로 돌아가서 오붓하게 하루를 보내던 이야기, 그리고 곁님 메이탕이 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 똑 흘리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 이야기, 이렇게 숱한 이야기가 라오 핑루 할아버지 마음을 고이 적시면서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라는 책에 흐릅니다.



메이탕이 떠났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아들, 딸들은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문밖을 서성거렸다. 유일하게 줄곧 옆에 있었던 순쩡이 알려주었다. 메이탕이 정확히 오후 4시 23분에 떠나갔노라고. 젊어 연애할 적에 둘 다 먹고살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때 메이탕이 내게 말했었다. 둘이서 조용한 시골로 들어가 땅뙈기 하나 마련해 무명옷 입고 푸성귀 먹으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286쪽)



  작은 땅뙈기를 일구면서 무명옷을 손수 지어 입고, 푸성귀를 손수 길러 먹으며, 그야말로 수수하게 짓는 살림이란 참으로 조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중국이라면 베이징)에 굳이 가서 살아야 하지 않고, 드높은 이름을 날려야 하지 않으며, 어마어마한 돈을 모아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라오 핑루 할아버지하고 메이탕 할머니 마음자리에는 서로 아낄 줄 알고 서로 헤아릴 줄 알며 서로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랑이면 넉넉하다고 해요. 하루를 살든 예순 해를 살든 언제나 따사롭고 넉넉한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수 있으면 된다지요.


  웃음 한 번 지으며 하루가 즐겁습니다. 눈물 한 방울 남기며 긴 삶을 고이 내려놓습니다. 웃음 한 번 짓기에 사랑스러운 살림을 짓는 기운이 납니다.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기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남기며 새로운 길을 나섭니다. 라오 핑루·메이탕 두 분이 예순 해를 사랑으로 지으며 살아온 나날은 이녁 아이들을 비롯해서 이 책을 읽는 우리들한테 아주 수수하면서 예쁜 이야기 씨앗을 심어 주리라 봅니다. 2016.11.1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그림(본문그림)은 윌북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기에 이 글에 고맙게 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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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 양철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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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9



기저귀도 달거리천도 손빨래하는 사내

―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글

 류동수 옮김

 양철북 펴냄, 2016.9.7. 14000원



  지난 2009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플라스틱 행성〉이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4년에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오늘날 지구에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쏟아져나오는가를 다루고, 이 플라스틱을 기업과 정부가 얼마나 많이 쓰는가를 보여주며, 지구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이 이 플라스틱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는가를 밝힌다고 해요.


  오스트리아에서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린 어느 날, 수수하게 살림을 꾸리던 부부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하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이들하고 얘기를 나누었대요. ‘영화를 본 일’로 그치지 말자고, ‘우리 집부터 플라스틱을 없애야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막상 ‘우리 집 플라스틱 없애기’를 하자니 밑도 끝도 없었다지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플라스틱을 얼마나 많이 썼는가’를 날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지요. 게다가 플라스틱을 따지고 보니 ‘자동차’는 몇 가지 쇠붙이를 빼고는 온통 플라스틱이었대요. 자가용을 안 타려 해도,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도 플라스틱이 엄청나게 쓰이니, ‘플라스틱 없이’ 살자면 자전거만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야만 했대요.



우리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믿을 만한 정보를 확보하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즉 어디서 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또 어떤 재료 속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알아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만일 우리가 어느 슈퍼마켓에 가서 판매직원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실례지만 이 맥주병 마개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혹시 무슨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 건 아닌가요?” 판매직원의 뜨악해 하는 표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45∼46쪽)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님이 쓴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양철북,2016)는 글쓴이 말을 따르자면 ‘오스트리아에서 아주 수수한 아줌마 아저씨’가 아이들하고 함께 ‘플라스틱을 어떻게 줄이면서 없애는 살림’을 꾸릴 수 있는가를 적은 책입니다. 자연이나 생태에 좀 눈길을 두기는 했어도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던 수수한 사람들이요, 여느 회사원이자 여느 살림꾼으로 여느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녁은 처음에는 ‘수수한 집’에서 ‘수수한 살림’을 가꾸면서 어느 만큼 ‘플라스틱 없는 삶’이 될 만한가 궁금했답니다. 얼마든지 잘 할 만했다고 여겼대요. 그런데 막상 플라스틱이 없이 살려고 하니, 저잣마실을 가 보고서 아무것도 못 샀대요. 친환경이라든지 생태를 헤아린다는 제품조차 비닐로 포장을 하고, 생협매장에서도 거의 모두 비닐로 포장을 해 놓았으며, ‘비닐로 포장을 안 한 물건’을 거의 볼 수 없었대요.


  페트병이야 안 쓰기는 쉽지만, 맥주 뚜껑 안쪽에까지 플라스틱이 깃들었다지요. 손전화 기계도 온통 플라스틱이지요. 반찬을 담는 그릇도 플라스틱 아닌 유리나 스텐을 찾기 어려웠고, 애써 유리나 스텐 그릇을 찾아내어도 뚜껑은 온통 플라스틱이었다지요. 셈틀도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볼펜이나 만년필 껍데기까지, 잇솔이나 치약 튜브도, 샴푸를 담는 통도, 비누를 담는 껍데기도, 어디를 보아도 온통 플라스틱투성이였으니, 기막힐 뿐 아니라 코도 입도 눈도 막힐 노릇이었다고 합니다.



슈퍼마켓에서 마주치는 플라스틱의 홍수는, 꼭 그런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법한 채소 및 과일 코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기농 과일이나 채소를 왜 굳이 비닐로 포장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73쪽)


시어머니는 느긋하게 반응했다. “네 말이 맞구나. 요새는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 많기도 하지.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잖니. 그때는 포장이 다 뭐냐, 죄다 그냥 팔았지.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았단 말이지.” (93쪽)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신 분처럼 우리 집에서도 ‘플라스틱 안 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셈틀 글판도 플라스틱이고, 아이들하고 흔히 쓰는 연필도 ‘그림이나 무늬’가 들어간 연필은 ‘플라스틱(석유 원료)으로’ 그림이나 무늬가 들어가기 미련이에요. 아이들이 쓰는 공책조차 ‘코팅 없는’ 공책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고, 우리가 흔히 읽는 책도 겉그림(표지)을 플라스틱 코팅을 하기 마련입니다. 책에 깃든 사진이나 그림도 ‘플라스틱(석유 계열) 잉크’로 찍기 마련이지요.


  이 책을 쓰신 분은 ‘플라스틱 안 쓰는 살림’을 꾸리려 하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안 할 수 있어서 한숨을 돌려요. 무엇인가 하면 ‘종이기저귀’를 안 써도 되기 때문입니다. 세 아이가 있으나 세 아이 모두 기저귀를 떼었다고 해요.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우리 살림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오로지 천기저귀로 키웠습니다. 천기저귀를 쓰신 분은 알 텐데, 천기저귀로 아이들 똥오줌을 가리려면 돌이 될 무렵까지 날마다 서른∼마흔 장을 갈아야 합니다. 이 말은 날마다 서른∼마흔 장을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아기만 천기저귀를 대면 될까요? 아니지요. 아기를 낳은 어머니도 달거리대(생리대)를 화학종이 아닌 천으로 써야지요. 아기 오줌기저귀뿐 아니라 어른 달거리천도 ‘화학소재 종이’가 아닌 ‘천’으로 써야 몸을 아끼는 길이 되니까요.


  나는 지난 열 해 동안 이런 손빨래를 열 해 즈음 해 왔습니다. 틀림없이 손이 제법 가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빨래를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살림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느껴요.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절약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절약 가능성은 정말 과감히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앨 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232쪽)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품은 너무 많은데 품질은 너무 시원찮다. 하지만 더 주된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너무 많이, 너무 값싸게 옷을 사는 건 아닐까. (280쪽)



  적잖은 사람들은 우리 살림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되묻습니다. 우리라고 플라스틱이 아예 없는 살림은 아닙니다만, 줄이거나 안 쓰거나 없애려 하면 얼마든지 줄이거나 안 쓰거나 없앨 수 있어요. 기저귀도 달거리천도 ‘아버지(사내)’가 손수 빨래를 해서 말리고 개며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집안이 더욱 넉넉하면서 평화로울 만해요.


  집안이 넉넉하면서 평화로울 수 있으면, 마을살이도 넉넉하면서 평화로운 길로 갈 테고, 나아가 나라살림도 달라질 만하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이 나라 ‘아버지(사내)’들은 아기 기저귀하고 곁님(가시내) 달거리천을 손수 조물조물 빨래하고 삶으면서 ‘살림짓기’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이럴 때에 비로소 평화와 평등이 무엇이요 어떻게 이루는가를 몸으로 깨달을 테니까요.


  우리 집에서는 설거지나 빨래를 할 적에 비누나 세제를 안 씁니다. 이엠발효액을 씁니다. 이엠발효액도 집에서 손수 마련합니다. ‘비닐 아닌 종이에 담긴 세제나 비누’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스스로 지어서 쓰면 ‘종이 포장 물건’을 애써 안 찾아도 됩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수수한 집안에서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한 다짐을 이루기가 얼마나 까마득하면서 어느 모로는 재미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이 책을 쓴 분이 ‘집에서 손수 짓는 살림’까지 말하지는 못해요. 우리가 플라스틱 무덤에 둘러싸이는 까닭은 집에서 손수 짓는 살림하고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밥도 옷도 집도 집에서 스스로 지을 수 있다면 플라스틱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알맞게 쓰면 좋을 자리’에는 알맞게 쓰면서 더욱 즐거운 살림이 될 만합니다.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면, 학교나 사회에서 성교육을 할 적에 ‘성’을 넘어서 ‘살림’도 함께 가르쳐야지 싶어요. 아기를 낳고 집일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내와 가시내 모두 기저귀와 달거리천을 손수 마련해서 손수 빨래하도록 가르치고 이끌 수 있으면 ‘플라스틱 말썽’뿐 아니라 ‘즐거이 짓는 삶’을 한결 깊고 넓게 돌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2016.10.3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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