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1
앤드류 웨이슬리 지음, 최윤희 옮김 / 도서출판 가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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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책 읽기 126



소비자를 멈추고 생산자(지음이)가 돼 보자
―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
 앤드류 웨이슬리 글
 최윤희 옮김
 가지 펴냄, 2015.3.25. 13500원


  무엇을 먹느냐는 무엇을 하며 사느냐 하고 이어지지 싶습니다. 하루하루 매우 바쁘게 사는 사람은 손수 밥을 지어 먹을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밥을 손수 지어서 손수 차려 먹을 겨를에 다른 일을 하는 쪽이 보람이 있다고 여길 수 있어요. 밥짓기보다는 일이 더 뜻있거나 값있다고 여길 수 있지요.

  이때에는 남이 지어서 차리는 밥을 사다가 먹기 마련입니다. 제법 커다란 회사에는 구내식당이 있고, 커다란 공공기관이나 회사 둘레에는 밥집이 무척 많아요. 일터에서 손수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 손을 빌려서 사다 먹습니다. 많은 사람이 먹을 밥을 잔뜩 지어야 하는 일꾼(식당지기)은 날마다 엄청나게 많은 밥을 지어야 하니, 이 일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데에는 마음을 쏟기 어려워요.

  밥짓기를 할 겨를이 없는 전문직 일꾼이 있고, 전문직 일꾼한테 밥을 차려서 주는 전문직 식당지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식당지기한테 밥감(식재료)을 대주는 일꾼이 있고, 땅에서 손수 먹을거리를 돌보아 거두는 일꾼이 있어요. 이들은 서로 만날 길이 없지만 늘 서로 이어집니다.


수확이 한창 진행되는 시기에는 의료혜택이나 안전수칙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문으로는 ‘은폐된’ 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고도 했다. 노동자들이 장갑이나 다른 보호 장치를 착용하지 않은 채 맨손으로 과일이나 채소를 따다가 피부질환이 생겨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모두 과일과 채소에 뿌린 농약과 다른 화학약품들 때문이다. (52쪽)

농약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기 때문에 음식에 남아 있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과 달리, 물로 씻거나 껍질을 벗겨도 잔류농약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잔류농약은 보통 과일과 채소 내부까지 깊숙히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67쪽)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가지,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앤드류 웨이슬리 님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소비자 자리에 있는 이들이 잘 모르는 뒷모습을 차근차근 밝힙니다. 전문직으로 일하느라 막상 스스로 먹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태껏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린 대목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가게에서 손쉽고 값싸게 살 수 있는 먹을거리가 누구 손으로 태어나는가를 보여줍니다. 도시에서 소비자가 손쉽고 값싸게 살 수 있는 먹을거리를 거두는 손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억눌리거나 짓밟힌 채 살아간다는 대목을 낱낱이 밝히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소비자는 무농약인가 저농약인가 친환경인가 유기농인가 자연농인가를 따지면 그만일 수 있지만,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농장에서 이주노동자는 아주 적은 일삯을 받고서 일할 뿐 아니라, 때로는 목숨을 잃고 때로는 두들겨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아주 아슬아슬한 터전에서 온갖 농약과 항생제와 화학약품에 둘러싸인 채 보호장비가 거의 없는 맨몸으로 일한다고 하지요.


미국은 정신적인 면에서나 재정적인 면에서 대규모 기업식 농업의 고향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식품 회사 몇 곳의 근거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은 새롭고 더 급진적인 농부 집단이 종래의 기업식 농업에 저항하며 쟁기질을 시작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80쪽)

육류의 생산 및 가공이 우리 삶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만약 당신이 공장형 축산 농장 근처에서 살고 있다면 매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고 실제로는 지구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 (85쪽)


  가끔 방송에 잡힐 때가 아니면, 오늘날 도시 사회에서는 ‘공장형 축산 농장’이 어떤 모습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주 막혔어요. 단단히 틀어막지요. 사람들이 닭이나 달걀을 값싸게 사다 먹도록 하려고 닭을 어떻게 키워서 어떻게 죽이는가를 제대로 살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소나 돼지를 어떻게 키워서 어떻게 죽이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코기가 되어 주는 짐승만 빽빽히 갇힌 채 사료만 먹지 않아요. 곡식과 남새와 열매도 좁은 곳에 빽빽히 심어서 햇볕을 못 보는 채 비료와 농약을 먹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쌀은 논에서 해를 보고 바람을 마시지만, 웬만한 남새와 열매는 비닐집에 갇힌 채 해도 바람도 비도 모른 채 자라요. 공장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늘 고달프고, 공장 같은 농장에서 자라는 나무도 언제나 시달립니다.


콩, 특히 유전자조작 콩을 기업 규모로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살충제와 농약에 의존해야 한다. 환경운동가들은 공중 살포한 농약이 많은 농촌 지역에서 중요한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가축과 야생동물의 목숨을 빼앗으며, 토종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경고한다. (104쪽)

젖소든 염소든 젖을 얻으려면 어미에게서 새끼를 떼어내야 합니다 …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대형 사육업체 중 단 한 곳에서만 염소를 방목해서 키웁니다.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산양유 대부분은 자연의 풀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공장식 축산 농장 안에서 자란 염소에게서 짜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0쪽)


  사람들이 손수 먹을거리를 짓지 않는 살림을 잇는 동안에 사람들은 스스로 땅하고 멀어집니다. 전문직 일터가 커지는 동안 도시하고 시골은 자꾸 벌어지고, 쌀나무인지 고추나무인지 모르는 어른이 부쩍 늘어나요. 풀 한 포기조차 먹지 못한 채 젖만 내놓는 젖소가 많은 터라, 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은 풀을 먹은 씩씩하고 튼튼한 소한테서 얻은 젖이 아닌, 사료와 항생제만 먹어대는 소한테서 뽑아낸 젖을 먹는 셈이지만, 이를 깊이 살필 틈이 없어요.

  너무 바쁘기 때문에 손수 밥짓기를 못하니, 땅짓기는 아예 엄두를 낼 수 없는 문명사회 터전입니다. 너무 바쁜 전문직에 몸을 담느라, 시골지기가 제대로 거둔 먹을거리인지 아닌지를 살필 틈이 없어요. 더 값싸면서 부피가 많은 먹을거리를 찾는 손길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대로 가도 될까요? 우리 사회는 이처럼 전문직 얼거리로 흘러도 좋을까요? 어느 땅에서 어떤 이웃이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어떤 일을 하여 거둔 먹을거리인지 하나도 모르는 채 더 값싼 것만 찾아도 즐거울까요? 우리가 사는 땅이 잔뜩 망가지면서 우리 이웃들이 모진 푸대접과 막대접에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안 쳐다보아도 아름다운 삶이 될 만할까요?


(소규모 전통) 농부들은 농약을 아예 쓰지 않거나 거의 뿌리지 않고 나무에 물도 거의 주지 않으면서 기계를 적게 사용해 올리브를 키운다. 땅에 떨어진 올리브를 손으로 수확해 맷돌이나 압착기로 갈아 기름을 짠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농가들은 이제 대량생산된 값싼 기름을 찾는 수요에 떠밀려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181쪽)

영국에서 해마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수평아리 3000만∼4000만 마리가 독가스를 마셔서 죽거나 산 채로 전기분쇄기 속으로 던져져 목숨을 잃는다고 추산됩니다. 이는 ‘합법적인’ 행위입니다. 사실 생명을 쓰레기 취급하는 이런 끔찍한 행위 없이 달걀 산업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187쪽)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라는 작은 책이 내놓을 수 있는 길은 아주 작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은 길이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어요. 우리가 소비자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비자 자리에 서더라도 더 값싼 것이 아닌 제대로 된 것을 찾는 손길이 된다면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책하고 짝을 이루는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패션》은 옷을 둘러싸고 이 지구별이 얼마나 고단할 뿐 아니라, 큰 농장 일꾼은 얼마나 힘겨운가를 다룹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손수 겪어 보아야지 싶어요. 돈으로 사다가 먹기만 하는 살림을 넘어서 손수 지어서 먹어 보는 살림이 되어 보아야지 싶습니다. 조그마한 마당이나 텃밭을 마련해서 우리 손으로 씨앗을 심어 거두는 길을 갈 수 있어야지 싶어요.

  바쁘다는 말은 이제 접어야지 싶어요. 바쁜 쳇바퀴를 멈추고, 이웃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기쁨을 나누는 길로 넘어갈 수 있어야지 싶어요. 바쁜 쳇바퀴에 갇힌 채 소비자로만 머물기보다는, 넉넉하게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새로운 살림을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네,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건강한 전통 빵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빵에 들어가는 재료가 간단하기 때문이지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입니다. (191쪽)

차든 커피든, 신선한 과일주스든 탄산음료든, 심지어 와인이나 맥주, 사과주이든지 간에 윤리적인 소비자라면 자신이 마시는 것들에 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 있다. (203쪽)


  아이들하고 손수 빵을 구워서 먹어 보면 아이들은 빵맛이 다른 줄 압니다. 아이들하고 손수 밀반죽을 해서 국수를 삶아서 먹어 보면 아이들은 국수맛이 다른 줄 알아요. 아이들하고 우리 집 마당이나 밭에서 열매를 거두어 효소를 담그거나 그 자리에서 바로 깨물어 먹어 보면, 아이들은 바깥에서 사다 먹는 열매가 얼마나 밍밍한가를 온몸으로 알아요. 집에서 아이들이 심부름을 하면서 함께 지은 밥이 가장 맛있는 줄 바로 아이들이 압니다.

  우리는 예부터 누구나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였어요. 우리는 오늘날에도 누구나 소비자이면서 생산자가 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다 지을 수 있으면 아주 훌륭할 텐데, 아주 작은 것부터 손수 짓는 살림을 해 보면, 바로 이 작은 살림 하나가 사회를 바꾸는 밑힘이 되리라 봅니다.

  빈터나 주차장을 텃밭이나 꽃밭으로 바꾸어 봐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익혀 봐요. 가게에서 사다 쓰기만 하는 삶을 가끔 멈추고 느긋하게 집에서 뚝딱뚝딱 두 손으로 지어 봐요. 우리는 모두 지음이(짓는 사람·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음님(짓는 님·생산자)이 될 수 있습니다. 손수 짓는 사람이 온누리를 바꿉니다. 2017,6.1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환경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그림은 본문그림으로, 가지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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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그림일기
이새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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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7



마을고양이하고 나눈 작은 그림꽃

― 고양이 그림일기

 이새벽 글·그림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7.5.3. 15000원



  아침에 일어나서 앞밭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옆구리가 물어뜯긴 채 배를 훤히 드러내고 죽었거든요. 몇 해쯤 살아온 개구리일까 하고 어림해 봅니다. 우리 집에 사는 멧개구리 여러 마리는 퍽 커요.


  멧개구리는 농약 없이 짙푸른 숲을 이루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고 느낍니다. 어른 주먹보다 커다랗기에 열 해는 넉넉히 살았지 싶은데, 아무래도 마을고양이한테 목숨을 잃었지 싶어요. 우리 집에 사는 구렁이한테 목숨을 잃었다면 통째로 잡아먹혔을 테니까요.


  마을고양이는 들쥐나 생쥐도 잡지만, 개구리나 두더지를 잡기도 합니다. 작은 개구리는 통째로 삼키는 모습을 더러 보는데, 꽤 커다란 개구리는 아무래도 통째로 삼키기 어려우니 옆구리만 물어뜯고 그만두었지 싶어요.



3월 16일, 팔이 엄청 저리지만 이 순간 장군이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12쪽)


3월 25일, 겨우내 멈췄던 장군이의 아침 마당 산책이 재개되었다. 장군이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나가자고 조르지만 인간은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우리가 내려가면 달려나오는 흰둥이 줄 밥도 만들어야 한다. 이부자리 정리하고 꾸물대는 동안 장군이는 앞발로 열심히 문을 긁으며 인간을 재촉한다. (20쪽)



  마을고양이한테 우리 집은 겨우내 따스한 보금자리 구실을 합니다. 평상 밑이건 광이건 자전거수레 밑이건 보일러실 옆이건, 마을고양이는 이곳저곳 두세 마리씩 차지해서 눌러앉습니다. 볕이 좋은 날에는 모과나무 밑이나 감나무 밑이나 무화과나무 밑이나 매화나무 밑에서 볕바라기나 그늘바라기를 해요. 돌울타리에 올라타고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멧새 노랫소리를 따라 고개를 까닥거리는 모습도 자주 보여줍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으려는 마을고양이입니다만 우리가 가끔 먹이를 접시에 담아서 물그릇이랑 마당에 놓으면 열 마리 즈음 찾아와서 배를 채워요. 들넋인 마을고양이가 ‘쥐나 다른 여러 작은 짐승 사냥’을 하는 몸짓을 잃지 않도록 먹이를 가끔 맞추어 내놓습니다.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난 뒤 여러 해를 살아가는 어느 마을고양이는 우리 손을 타지 않아도 우리하고 매우 가까운 자리에까지 찾아와서 낮잠을 즐기곤 해요. 어느 날은 섬돌에서 낮잠을 자다가 제 발에 밟혀서 서로 놀라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 손은 안 탄다’고 하더라도 곧잘 ‘발에 밟히’니까, 발은 ‘탄다’고 할 만할 수 있습니다.



4월 15일, 흰둥이는, 싸울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온몸을 던져 싸워서, 영역싸움이 심해지는 봄에는 정원에 있는 작은 화분을 모조리 쓰러트려 놓는다. (26쪽)


6월 4일, 버리려고 내놓은 바구니를 흰둥이가 맘에 들어한다. 바구니를 못 버리게 됐다. (41쪽)


7월 2일, 더워서 앞머리를 묶으면, 어김없이 장군이가 물어뜯는다. (82쪽)



  이새벽 님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붙인 《고양이 그림일기》(책공장더불어,2017)를 읽으면서 마을고양이나 들고양이가 사람하고 어울리는 살림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마을고양이는 마을에 살아 마을고양이입니다. 들고양이는 들넋을 지키는 고양이라는 뜻입니다.


  지난날에는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을 아주 널리 썼어요. 집에서 사람하고 살면 ‘집고양이’요, 집고양이가 아닌 채 숲에서 조용히 살 적에는 ‘들고양이’이고, 마을 언저리에서 살며 먹이를 찾을 적에는 ‘도둑’이라는 낱말을 앞에 붙이곤 했어요.


  이제는 ‘도둑 + 고양이’ 같은 말마디를 쓰는 분은 매우 줄었다고 느낍니다. 개한테는 ‘도둑개’라 하지 않고, 새한테도 ‘도둑새’라느니 ‘도둑비둘기’라는 이름을 안 써요. 오직 고양이한테만 얄궂게 ‘도둑’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7월 3일, (꽃나무) 뿌리를 잘 내리려면 통풍이 잘 되고 그늘진 곳에 화분을 두어야 해서 파라솔 탁자 아래에 두면, 궁금한 장군이가 꼭 몇 개씩 넘어뜨린다. (85쪽)


7월 31일, 말을 하지 않고 외출하면 귀가한 뒤 장군이에게 혼난다. (131쪽)



  사람하고 한집에서 살지 않는 고양이는 어떤 넋이거나 목숨일까요. 이들 고양이는 왜 사람하고 한집에서 살지 않으면서 사람 사는 마을이나 집 언저리를 맴돌까요. 사람들이 먹는 밥을 넘보려는 뜻일까요. 사람 사는 마을이나 집에서는 ‘고양이한테 먹잇감이 되는’ 쥐나 작은 짐승을 한결 손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일까요.


  시골에서는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이기에, 이곳에 살짝 깃드는 고양이는 ‘마을고양이’라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크고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서 고양이는 도시에서 지붕이나 골목이나 담을 타고 다니기에 ‘골목고양이’라고 느껴요. 시골에서 마을고양이를 마주하거나 도시에서 골목고양이를 만나면 으레 일이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곤 해요. 이러면 고양이도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저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사람이 눈을 굳이 돌리지 않으면 고양이는 사람을 퍽 오래 바라보지요. 바삐 돌아다니던 길이었으면 고양이가 먼저 눈을 돌리고 제 갈 길을 가지요. 바쁜 일이 없으면 고양이는 사람이 눈을 돌려서 떠날 때까지 조용히 바라봅니다.


  서로 다른 목숨이 서로 다른 눈길로 말없이 바라볼 적에는 무척 고즈넉하구나 싶어요. 고양이 눈망울에서 내 모습을 읽고, 고양이는 내 눈망울에서 제 모습을 읽을 적에, 우리 사이는 몸은 다르지만 목숨은 같은 결이라는 대목을 어렴풋하게 느껴요. 때로는 고양이가 입을 벌려 어떤 소리를 들려주어요. 이때에는 마음으로 고양이가 어떤 말을 하려는가 하고 헤아리면서 저는 저대로 입을 벌려 고양이한테 말을 건넵니다.



8월 10일, 친해지고 얼마 되지 않아 흰둥이가 내 등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렇겍 좋은가 싶었으나 그게 아니라 적이 너무 많다 보니 그 녀석들이 절대 공격할 수 없는 곳에서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우는 것이었다. (140∼141쪽)


10월 6일, 장군이는 찻길 옆에, 몸에 작은 바큇자국이 난 채로 울고 있었다. 나는 바로 녀석을 안아들어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엑스레이 결과 폐손상이 있었고, 곧 숨을 멈추려고 해서 약물로 떠나려는 장군이를 한 번 붙잡았다 … 나는 허리를 굽혀 장군이 몸 위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지금껏 수만 번을 그랬던 것처럼. 장군이는 짜증을 멈추고 편안해 하다 눈을 감았다. (221쪽)



  《고양이 그림일기》를 빚은 이새벽 님은 고양이라고 하는 ‘다르면서 같은’ 목숨을 곁에 두되 얽매지는 않습니다. 한집에서 사는 식구일 수 있고, 곁에서 마주보는 동무일 수 있습니다. 남남이되 이웃이라 할 만하고, 서로 쓰는 말이 달라도 마음으로 알아보고 알아차리는 사이라 할 만해요.


  《고양이 그림일기》는 대단한 이야기를 그리지 않습니다. 곁에서 살뜰히 돌보되 서로서로 제 삶을 짓는 둘 또는 셋이서 새삼스레 길어올리는 작은 이야기를 그립니다. 수수한 하루를 수수하게 글로 옮기고 수수하게 그림으로 담아요. 늘 비슷해 보이는 듯해도 늘 다른 하루를 스스럼없이 글로 옮기고 꾸밈없이 그림으로 옮깁니다.


  이러던 어느 날 ‘장군이’라는 고양이가 그만 일찍 숨을 거두어요. 몸에 작은 바큇자국을 남긴 채 이승을 떠나지요. 작은 고양이한테 바큇자국을 남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자동차이든 오토바이이든 자전거이든, 다른 목숨을 밟고 지나가면 다 느끼기 마련일 텐데, 어쩌다가 고양이를 바퀴로 밟아야 했을까요.


  그렇지만 바큇자국 임자를 찾을 길은 없고, 찾을 겨를이 없습니다. 마지막 숨을 가쁘게 쉬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콩콩거립니다. 동물병원에서도 달리 손을 쓸 수 없는 짧은 겨를이 지나갑니다. 고양이 장군이는 이새벽 님 얼굴 기운을 느끼면서 비로소 모든 시름과 짜증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12월 7일, 흰둥이가 자주 장군이가 묻힌 자리 위의 담장에 있다. 장군이가 저기 있는 줄 알아서, 담장에 앉아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271쪽)



  이새벽 님한테 찾아온 마을고양이 또는 골목고양이 또는 들고양이 한 마리는 마치 들바람처럼 가볍게 머물다가 떠납니다. 이 고양이가 떠난 자리에 다른 마을고양이 또는 골목고양이 또는 들고양이가 넌지시 깃듭니다. 이 고양이는 앞으로 얼마나 이녁 곁에서 들바람 같은 이야기를 피우는 이웃이자 동무이자 한식구로 지낼까요. 이 고양이는 앞으로 어떤 들꽃 같은 하루를 함께 나누는 숨결로 살아갈까요.


  괭이밥꽃이 이곳저곳에 조그맣게 돋습니다. 시골 마을 한쪽에서도 피는 괭이밥꽃이요, 도시에서 골목 빈틈을 찾아 피는 괭이밥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살림을 이루면서 하루를 일굽니다. 수많은 고양이가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사람들 곁을 맴돌거나 어슬렁거리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든 없든 들꽃은 들이며 마을이며 골목을 밝히는 작은 이웃입니다. 아끼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들고양이는 마을 한쪽에서 조그맣게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상냥한 이웃입니다. 작은 이웃을 마주보며 상냥하게 눈길을 보내는 분들은 꾸준히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단비가 내리는 날, 우리 집 마을고양이는 평상 밑에 깃들어 빗소리를 들으면서 낮잠을 누립니다. 2017.6.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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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물속생물 도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생물 4
권순직.전영철.김명철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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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4


‘4대강 되살리기’ 정책은 언제 나올까?
― 화살표 물속생물 도감
 권순직·전영철·김명철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5.8. 16000원


  2017년 5월에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섭니다. 우리가 그동안 촛불 한 자루를 들면서 예전 대통령과 그분을 둘러싼 잘잘못을 따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나라도 삶도 살림도 모두 바로서면서 아름다운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촛불 한 자루를 들던 많은 분들은 낡은 정치가 사라지기를 바랄 뿐 아니라, 일본 후쿠시마에서 엿보았듯이 ‘탈핵을 바탕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기를 얻는 정책’을 바라기도 했고, ‘4대강 막삽질’이 저지른 끔찍한 환경재앙을 다독이며 이 나라 물줄기가 제자리를 찾도록 하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고 한 달 즈음 지나도록 아직 ‘4대강 막삽질 되돌리기’라든지 ‘핵발전소 없는 깨끗하고 좋은 전기 정책’ 같은 이야기는 안 들립니다. 머잖아 이러한 이야기가 들리면서 비로소 이 나라가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물질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많은 사람이 망설임 없이 물과 공기라고 답할 것이며, 물이 없다면 우리는 당연히 며칠밖에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4쪽)


  사람은 누구나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우리 몸은 2/3를 물로 이루니 물이 없으면 죽어요. 우리가 먹는 밥도 ‘물 성분’이 많아요. 반찬도 이와 같지요. 우리는 물기 없는 것은 못 먹어요. 우리는 물을 비롯해서 ‘물 성분으로 이룬 것’을 먹으면서 살아요.

  그리고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과학 연구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숨을 1초만 안 마셔’도 우리 몸은 바로 죽어요. ‘숨’이 아닌 ‘독가스’나 ‘방사능’을 마셔 본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때에도 죽어요. 우리는 이 바보스러운 독가스나 방사능 잿더미를 숱한 전쟁이나 핵무기나 후쿠시마에서 버젓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전기를 쓸 수밖에 없는 문명사회라는 핑계에 붙들린 나머지, 깨끗하고 좋은 살림으로 가꾸는 길로는 좀처럼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합니다.

  예전 대통령 한 분이 밀어붙인 ‘4대강 막삽질’은 ‘일자리 만들기’라는 허울좋은 핑계도 있었어요. 냇물을 억지로 바꾸고 시멘트를 들이부으면 관광자원도 되고 물도 더 많이 쓸 수 있으며 생태환경에까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고 했지요. 이제는 이 말이 모두 거짓인 줄 드러났지요.


우리는 학교에서 하루살이, 잠자리 등에 대해 배우지만, 이들이 물속에서 유충으로 오랫동안 사는 반면 물 밖에서 성충으로 살아가는 시기는 아주 짧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저서성 대형무척춛동물이 다양한 물환경에 적응해 살며, 이들은 우리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5쪽)


  권순직·전영철·김명철 세 분이 함께 빚은 《화살표 물속생물 도감》(자연과생태,2017)을 읽으면서 새 대통령이 언제쯤 ‘4대강 막삽질 되살리기’를 밝히려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책 《화살표 물속생물 도감》은 ‘4대강 막삽질’이 우리 물줄기와 삶터를 얼마나 어떻게 망가뜨렸는가를 다루지 않습니다.

  생태환경 전문가 세 사람은 우리 물줄기에 깃들어 사람하고 오래도록 이웃이 되어 살아온 숱한 물속생물을 찬찬히 마주하고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깨끗한 물을 마시고 깨끗한 터전을 가꾸며 깨끗한 살림을 짓자는 이야기를 살뜰히 들려줍니다. 우리가 이웃 물속생물을 찬찬히 살피면서 어깨동무할 적에 우리 삶자리는 한결 아름답고 깨끗하며 사랑스레 거듭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요.


북미가 원산지인 큰빗이끼벌레는 우리나라에서 1998년 처음으로 보고된 외래종이다. 따뜻한 수온에서 활발하게 증식하므로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전국의 하천이나 호소(늪과 못)에서 군체를 관찰할 수 있다. 최근에는 대규모 하천사업 시행으로 강의 유속이 느려지고 정체되면서 큰빗이끼벌레가 더 빈번하게 발견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40쪽)


  우리는 큰빗이끼벌레가 춤추는 흐린 물에 둘러싸여서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는 살림을 이어야 할까요? 우리는 강우렁이, 쇠우렁이, 곳체다슬기, 물달팽이, 대칭이, 두드럭조개, 산골조개, 참재접, 풍년새우, 긴꼬리투구새우, 줄새우, 가재, 가는무늬하루살이, 맵시하루살이, 콩알하루살이, 방울하루살이, 노란실잠자리, 참별박이왕잠자리, 꼬마물벌래, 소금쟁이, 애반딧불이 같은 숱한 물속생물을 이웃하는 살림을 누려야 할까요?

  도시에서는 가게 어디에서나 페트병에 담은 ‘먹는샘물’을 팔아요. 이 ‘먹는샘물’은 아주 깨끗한 땅밑이나 바다밑에서 길어올린 맑은 물이에요. 댐으로 가둔 곳에서 퍼 온 물이 아닙니다. 수도관을 타고 흐른 물이 아니에요. 아름다운 숲이나 정갈한 바다에서 흐르는 물이지요.

  ‘먹는샘물’을 따로 페트병에 담아서 마시는 나라살림이 아닌, 이 나라 어느 곳에서나 냇물이 맑게 흘러서, 깊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도 ‘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을 만한 나라살림이 되는 길을 이제부터 열어야지 싶어요. 멀디먼 시골이나 깊은 숲까지 찾아가서 ‘약수’를 긷지 않고도, 마을을 가로지르는 물줄기가 아주 깨끗해서 누구나 멱을 감고 물을 길어서 먹을 수 있는 나라살림이 되어야지 싶어요.


이매패류는 전 세계적으로 300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주요 분류군은 홍합과, 석패과, 재첩과, 산골과 등이 있다. (42쪽)

환형동물의 지렁이류는 우리나라에 100여 종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담수환경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서식하는 지렁이 무리는 실지렁이속이며, 이 분류군은 세계적으로 약 14종이 보고되었다. (43쪽)


  우리는 물속생물로 무엇이 있는지 너무 모르지 싶습니다. 늘 물을 마시지만, 정작 물이 언제 깨끗한지 모르고, 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깨끗한지도 너무 모르지 싶습니다. 우리 몸이 2/3가 물인 줄 잊고서 살아가는지 모르지요. 이 지구에서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나라가 퍽 드문 줄 모르며, 이 맑은 물줄기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엄청난 돈을 퍼부어서 망가뜨린 줄 아직 제대로 모르지 싶어요.

  물을 살리는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바람을 살리는 정책으로도 나아가지 못해요. 미세먼지는 중국에서만 날아오지 않아요. 한국에 있는 수많은 발전소와 고속도로와 찻길과 공장에서도 생겨요. 맑은 물줄기가 사라지고 너른 갯벌이 사라지면서 미세먼지가 늘어요. 숲과 시골이 줄어들고 도시가 커지면서 미세먼지가 늘어요. 작고 이쁜 삽질이 아니라, 마구 파헤치기만 하면서 시멘트를 들이붓는 삽질인 탓에 미세먼지가 늘어요.

  《화살표 물속생물 도감》 같은 작고 알찬 생태도감을 챙겨서 냇가나 골짜기로 마실을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속생물이 거의 안 보이는 곳은 왜 안 보이는지를 생각하고, 숱한 물속생물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왜 이 물속생물을 찾아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새 대통령뿐 아니라 새 총리나 새 비서실 일꾼도, 이 같은 생태도감을 곁에 두고서 우리를 둘러싼 ‘사람이웃’하고 ‘생명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이 되기를 빕니다. 2017.5.2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환경책 읽기)

* 글에 붙인 사진은 자연과생태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본문그림을 한결 나은 해상도로 받아서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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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 -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 미야자와 겐지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우연 그림, 차주연 옮김 / 달팽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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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6



돼지가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

 미야자와 겐지 글

 이우연 그림

 차주연 옮김

 달팽이출판 펴냄, 2016.12.5. 11000원



  저는 요즈음 호밀밭을 아침저녁으로 돌아보면서 이 호밀을 언제쯤 낫으로 석석 베어서 즐겁게 가루를 빻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지난가을에 우리 집 뒤꼍에 호밀씨를 뿌렸고, 이 호밀씨는 겨울을 씩씩하게 나고선 봄에 무럭무럭 올라와서 여름을 앞두고 어른 키를 훌쩍 넘도록 자랍니다.


  땅을 안 갈고 씨뿌리기만으로 땅심을 북돋우고 호밀이 잘 자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지켜봅니다. 이 호밀을 즐거이 거두면 호밀은 호밀대로 가루가 되어 줄 테고, 줄기는 줄기대로 밀짚으로 삼을 수 있어요.


  지난날 누구나 땅을 지어서 살림을 가꿀 적에는 씨앗을 뿌리고 나서 열매를 얻을 뿐 아니라 짚을 함께 얻었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엉이라든지 짚신이나 새끼는 모두 짚입니다. 하나는 밥이 되고 다른 하나는 살림이 된달까요. 오래된 이엉이나 짚신이나 새끼는 땅에 놓아 주면 비바람과 햇볕에 삭을 뿐 아니라 풀벌레가 갉으면서 새롭게 흙으로 돌아가요.



“곰아, 나는 네가 미워서 죽인 것이 아니란다. 나도 먹고살려면 너를 쏴야 해. 죄가 되지 않는 다른 일을 하면 좋겠지만 밭은 없고 나무는 높으신 양반들이 차지하고 마을로 나가 봐도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으니 …… 할 수 없이 사냥을 하고 있단다. 너도 곰으로 태어난 게 업보라면 나도 사냥꾼인 것이 업보다. 곰아, 다음 생에는 곰으로 태어나지 마라.” (14∼15쪽)



  우리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흔히 ‘쓰레기 없던 살림’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지난날 누구나 땅을 지을 적에는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다고 느껴요. 버릴 것이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밥으로 삼거나 옷으로 깁거나 집으로 짓지요. 모두 살림살이예요. 오늘날 우리는 땅을 짓기보다는 돈을 벌어서 살림을 꾸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벼나 보리나 밀 같은 곡식을 비롯해서 배추나 무나 상추나 당근 같은 남새를 굳이 심어서 돌보아 거두지 않더라도 가게에 가서 손쉽게 돈으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살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돈으로 살림을 꾸릴 적에는 늘 쓰레기가 생겨요. 무엇보다 ‘밥찌꺼기·밥쓰레기(음식물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오지요.


  게다가 도시에서는 쌀뜨물조차 흙한테 돌려주지 못해요. 개수대를 거쳐 하수구로 버리고 맙니다. 시든 배춧잎이라든지 감자껍질을 땅한테 돌려주지 못해요.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려야 합니다.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오늘날에는 우리가 손수 땅을 짓지 않으면서 쓰레기가 자꾸자꾸 불어요. 앞으로 이 쓰레기는 어찌해야 할까요.



“해님, 해님, 부디 저를 당신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타죽어도 괜찮아요. 저처럼 못생긴 새라도 탈 때는 작은 빛을 내겠지요? 부디 저를 데려가 주세요.” 가도 가도 해님은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점 작아지며 멀어져가던 해님이 말했습니다. “쏙독새로구나. 그래, 무척 괴롭겠구나. 다음에는 밤하늘의 별에게 부탁해 보렴. 넌 낮에 활동하는 새는 아니잖니.” (42∼43쪽)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달팽이출판,2016)를 읽습니다. 일본에서 꽤 옛날에 나온 작품입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은 언제나 땅을 사랑하고 바람을 아끼며 해와 별을 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작은 풀벌레하고 벌나비를 사랑하고 숲짐승을 아끼며 이웃하고 오순도순 짓는 살림을 그리는 이야기를 펼쳤지요.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는 사람 눈길로만 이야기를 펼치지 않습니다. 곰 눈길로도, 돼지 눈길로도, 멧새 눈길로도, 이 지구라는 별에 깃든 수많은 목숨들 눈길로도 이야기를 펼칩니다. 우리들 사람을 둘러싸고서 수많은 목숨이 있다는 뜻을 조용조용 밝혀 줍니다.



‘이 세상은 정말이지 너무도 괴롭구나. 정말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야.’ 돼지는 산책 중에 채찍을 맞으며 절실히 생각했다. “이제 슬슬 쉬어 볼까요?” 조수는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 똑똑한 대학생 여러분, 이런 산책이 재미있겠는가?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운동도 뭣도 아닌데 말이다 … 사환이 커다란 솔로 돼지의 몸을 깨끗이 씻겨 주었다. 돼지는 솔을 흘끗 보더니 꽥꽥 소리를 질렀다. 돼지털로 만든 솔이었기 때문이다. 돼지가 아우성치는 동안 몸은 새하얘졌다. “이제 돌아갈까요?” 조수가 다시 한 번 찰싹 채찍으로 때렸다. (68. 78쪽)



  돼지는 사람한테 먹히려고 자란다고 합니다. 소도 이와 같아요. 닭도 이와 같지요. 틀림없는 목숨인데 그저 먹히려고 자랍니다.


  먹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우리가 벼나 감자를 심을 적에도 먹으려고 심습니다. 즐겁게 먹고 배불리 먹으면서 새롭게 일하고 살림하며 꿈을 이루려고 하는 하루입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무엇을 몸으로 받아들여서 무엇을 이 몸으로 하려고 하느냐 하는 이야기로 이어지지 싶어요. 아름답게 돌보아서 거둔 먹을거리로 밥을 짓느냐, 아니면 어떻게 돌보는가를 하나도 모르는 채 그냥 돈만 치러서 사다가 먹느냐는 사뭇 다를 만해요.


  그런데 미야자와 겐지 님은 우리한테 새삼스레 묻습니다. ‘잡아먹히는 삶이 되려고 자라는 돼지가 사람한테 안 잡아먹히고 싶다고 말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우리에서 자라는 돼지가 ‘사람말’을 배워서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알아들을 뿐 아니라, 돼지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잡아먹히지 않을 권리’를 밝힌다면 이때에 우리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요.



“인간의 마음이 점점 인간에 가까운 존재에서 먼 존재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괴로운 일은 감각이 있는 존재에게도 역시 괴로운 일이고, 인간에게 슬픈 일은 강약의 차이는 있더라도 역시 모든 동물에게 슬픈 일입니다.” (126쪽)



  한겨레도 다른 겨레도 산 목숨을 잡아서 밥으로 삼을 적에는 언제나 비손을 했습니다.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밥이 되어 주는 산 목숨 모두한테 고맙게 고개를 숙였어요. 절을 했지요.


  사람은 고기도 먹고 풀도 먹으며 열매도 먹습니다. 사람은 고기한테도 풀한테도 열매한테도 늘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사람말을 못하는 짐승이라기보다, 사람말을 했다가는 너무도 괴롭거나 슬픈 짐승이리라 느낍니다. 사람말을 못하는 풀이라기보다 굳이 사람말을 안 하는 풀이지 싶습니다.


  여느 짐승들을 보면, ‘먹지 않을 적’에는 잡아죽이지 않습니다. 잡아서 먹어 목숨을 이어야 할 때에만 비로소 다른 짐승을 잡아죽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지난날에는 꼭 밥으로 삼아야 할 적에만 사냥을 하거나 땅을 지었어요. 오늘날에는 꼭 밥으로 삼지 않아도 될 자리에서도 사냥을 한다든지 땅을 망가뜨려요. 너무 돈만 생각하느라 숱한 짐승을 괴롭히고 드넓은 들이나 숲을 파헤칩니다.



“물고기가 죽는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물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물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물고기가 기뻐할지 어떨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차피 죽음을 당할 운명이니 우리가 죽여 주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이 물고기를 잡지 않으면 바다가 물고기로 넘칠 거라는 계산도 하지만, 그런 어림셈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141쪽)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는 소리 높여 다그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아주 넌지시 묻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앞길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갈고닦을 뜻인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밥을 먹으려 하느냐고 물어요. 우리 스스로 어떤 삶을 가꾸려 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땅짓기를 할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하면 되어요. 우리는 평화로운 살림짓기를 할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제부터 전쟁무기와 군부대를 차츰 줄이면서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관광지로 꾸며야 관광할 만한 곳이 되지 않아요. 우리는 4대강 막삽질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끔찍하거나 아픈 짓이었는가를 곁에서 지켜보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토록 엄청난 돈을 들여서 그토록 엄청난 땅이며 물줄기를 파헤친 뒤끝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토록 엄청난 돈은 평화와 평등을 이루는 아름다운 살림을 가꾸는 데에 써야 하지 않았을까요? ‘막삽질 일자리 만들기’는 이제 그치고, ‘아름다운 흙살림 일자리 나누기’를 할 때가 아닐까요?


  숲은 숲 그대로 아름답기에 숲으로 찾아가서 마음을 쉬고 몸을 쉴 만해요. 냇물은 냇물 그대로 사랑스럽기에 냇물로 찾아가서 마음을 달래고 몸을 달랠 만해요. 마을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며 삶과 꿈을 살리는 길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즐겁게 땅을 짓고 삶을 지으며 사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온누리 아이들이 품을 수 있기를 바라요. 2017.5.2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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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집시 - 피폭하청노동자의 기록
호리에 구니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 무명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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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3


에너지 먹고 쓰레기 낳는 원전을 멈추자
― 원전집시, 피폭 하청 노동자의 기록
 호리오 구니에 글
 고노 다이스케 옮김
 무명인 펴냄, 2017.3.11. 15000원


  한국에 원자력발전소는 스물다섯 곳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다섯 곳을 새로 더 짓는다고 합니다. 2017년 5월에 스물다섯 곳 가운데 스무 곳이 움직이고, 다섯 곳은 ‘계획예방정비’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계획예방정비’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또렷하게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계획예방정비’를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는지 낱낱이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1979년에 일본에서 나온 책 하나가 있기에 이를 어렴풋하게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가 ‘미래에너지 대안’이라고 떠들썩하던 무렵, 이 원자력발전소가 참말로 앞으로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길’이 될 만한가 궁금해 하던 한 사람이 ‘원자력발전소 노동자’로 들어가서 일했다고 해요.

  원자력발전소에서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또렷하게 밝히지 않는데다가, 어떤 터전에서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도 낱낱이 안 밝히는 터라, 스스로 ‘원자력발전소 노동자’가 되어 일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내가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고개를 숙이자 그 역시 가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꾸벅했다. 아무래도 이 ‘꾸벅’으로 내 고용이 결정된 것 같다. 신원이나 경력을 물어보지도 않는다. 정말로 어이없는 ‘면접’이었다. (16쪽)

뒤이어 바로 니시노 씨가 나왔다. 그의 얼굴을 덮은 수건은 물론 코 주변과 볼, 눈가 등이 마치 먹칠이라도 한 듯이 시커멓다. 아마도 내 얼굴도 몹시 지저분할 것이다. 목이 따끔거린다. 코를 풀었더니 검게 윤이 나는 작은 금속조각들이 나왔다. (29쪽)

3시 휴식시간 때, 니시노 씨랑 화장실에 갔다. 문 두 개를 지나오다 왼쪽에 통유리창 방―원전의 ‘두뇌’인 중앙제어실이 있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다채로운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들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계기를 마주보고 있다. 그것과 유리 한 장으로 나뉜 복도를 꾀죄죄한 넝마쪽을 얼굴에 감고 먼지투성이 작업복 차림의 우리가 어슬렁거린다. 참으로 대조적이다. (32쪽)


  2017년에 한국말로 나온 《원전 집시, 피폭 하청 노동자의 기록》(무명인 펴냄)은 제법 오래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호리오 구니에 님은 1978년에 ‘하청 노동자’가 되어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늘 녹초가 되었기에 일기를 남기기란 무척 어려웠다고 하지만, 1978년 9월 28일부터 1979년 4월 19일까지 일고여덟 달에 걸쳐 일기를 남겼습니다.

  책은 1979년에 일본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일본 원전에서 ‘피폭 하청 노동자’로 일한 사람은 숱하게 많다는데, 이 가운데 글로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남긴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해요. ‘글로 일기나 수기를 남길 만한’ 사람은 ‘원전 하청 노동자’로 일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몸을 써서 하루하루 가까스로 먹고살던 이들이 일본 사회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했다고 할 수 있을 테고요.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매한가지이지 싶어요. 한국에는 스물다섯 곳에 이르는 원전이 있는 만큼 그동안 원전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하청 노동자가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를 텐데, 이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얼마나 방사능을 뒤집어썼는가를 찬찬히 밝히는 자료는 좀처럼 찾아볼 길이 없다시피 합니다.


“관리구역에서 밖으로 나올 때 몸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지 않았는지 어떤지를 검사하는 핸드풋모니터라는 기계가 있거든요. 몸 어딘가가 오염됐으면 불이 켜져서 샤워로 씻어내야 하는데, 최근에 무려 15∼16번이나 불이 켜졌다는 남자가 있었어요. 아무리 씻어도 나갈 수 없자 그 남자, 결국 울어버렸어요. 하하하……. 네 번 켜졌다는 사람은 많은데. 아무래도 15번이니까. 그놈이 ‘이젠 관리구역엔 두 번 다시 안 들어가고 싶어’ 그랬더라고요. 그 남자요? 글쎄, 요새 안 보이네요.” (46쪽)

마침 그때, 간전의 젊은 감독이 찾아왔다. 사쿠라이 씨와 사와다 씨는 감독과 눈이 맞았는데도 인사도 하지 않고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분명히 그들은 이런 열악한 작업을 시키는 간전 직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모토카와 씨가 물 세척에 대해 감독에게 말했다. “글쎄요, 물로 씻는다 …… 준비할까요?” 정말로 미덥지 못한 말투로 그런 말을 남기고, 탱크 안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 젊은 감독은 가 버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57쪽)


  《원전 집시》를 쓴 일본사람은 ‘정검’ 때 ‘원전 청소’를 합니다. 일본 원전에서 일컫는 ‘정검’이라는 말은 ‘정기 점검’이고, 이를 한국 원전에서는 ‘계획예방정비’라고 일컫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전을 한 번 돌린다고 해서 쉬지 않고 돌릴 수 없는 노릇이기에, 틈틈이 발전소를 멈추어 청소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정검·계획예방정비’를 할 적에 ‘청소’를 하는 이들은 장비를 갖추더라도 언제나 몸뚱이를 움직여서 발전 설비에 들어갑니다. 아주 좁은 곳에 들어가서 엉거주춤한 몸짓으로 여러 시간을 땀으로 흠뻑 젖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일해야 한다고 해요. 여기에 방사능이라는 ‘눈에 안 보이는’ 위험을 늘 두려워하면서 일한다지요.

  반면마스크이든 전신마스크를 뒤집어쓰고서 일할 적에는 뒤뚱거리는 몸짓으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방사능 위험이 크기 때문에 산소를 넣어 주는 줄을 길에 매단다지요. 이 산소줄은 ‘전기로 움직’이는 터라, 방사능이 가득한 곳에서 일하다가 전기가 툭 끊어지기라도 하면 대단히 아찔하다고 해요.

  이때에 ‘피폭 하청 노동자’는 두 가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지요. 하나는 ‘숨이 막혀서 죽느냐’요, 다른 하나는 ‘방사능을 잔뜩 들이마셔서 죽느냐’라고 해요.


작업 설명을 해 준 직원은 “쓰레기를 단순히 태우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래 봬도 설계가 매우 어렵다”라며 이런 이야기를 해 줬다. “이 장치의 제일 중요한 점은 사실 연기예요. ‘태울 때에 발생하는 연기를 어떻게 눈에 안 보이게 할 것인가’라는. 연기를 대기 중으로 방출할 땐 야외 공기랑 한 번 섞어요. 그때 외기 온도랑 습도를 어떻게 계수화시키는지가 문제예요.” (85쪽)

계획선량이 애초의 10밀리렘에서 3배인 30밀리렘으로 인상됐단다. 실제로 맞은 선량이 계획선량을 넘으려 하면, 그 노동자를 작업에서 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획선량을 올려 버리다니. (93쪽)

증가 일로를 걷는 폐기물. 막대한 관리 비용. 그래서 등장한 것이 ‘폐기물 소각시설’이다. 드럼통 발생량이 이전보다 30∼50%나 줄어든다는 이 장치는 관리하는 쪽에겐 바로 ‘구세주’다. 그러나 노동자에겐 노동량과 피폭량을 늘리는 ‘죽음의 신’이다. (97쪽)


  일본도 한국도 원자력발전소가 ‘아주 안전하다’고 홍보를 합니다. 이 홍보비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습니다. 두 나라 모두 같습니다. 안전하다는데 왜 홍보비를 그토록 많이 쓸는지 아리송하지만, 말 그대로 ‘아주 안전하다’고 하기에 홍보비를 대단히 많이 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원전 집시》를 읽어 보면, ‘전력회사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원전에서 피폭을 하며 하청으로 청소를 하는 노동자’는 언제나 아주 ‘안전하지 않은’ 터전에서 일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위험한 곳에 늘 들어가야 하고, 고작 10분 만에 ‘하루 피폭 최대치’를 넘기는 바람에 더 일을 못 하는 날이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피폭 하청 청소 노동자’로 일하려고 원전 시설에 들어갈 적에도 방사능 검사를 받지만, 하루 일을 마치고 원전 시설에서 나올 적에도 방사능 검사를 받는데, 일하면서 입는 옷이나 장비는 언제나 방사능으로 더럽혀지기 마련입니다.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면서 나오는 폐기물만 방사능으로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원전에서 청소를 하는 노동자가 다루거나 입는 모든 옷이나 장비도 방사능으로 더러워진다지요.


미하마원전에서도 이와 같은 처리를 하고 있을 터이다. 세탁폐액은 ‘안전을 확인’하고 나서 바다로 흘려보낸다지만,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방사능에 대한 것뿐이지 합성세제의 ‘독’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109쪽)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가족들한테 나중에, 10년이나 20년 뒤엔 엄청난 일이 생길 수도…….” “맞아, 만약에 나한테 그런 아기가 나오면…….” “어떻게 할래?” “나, 아마, 그 아기, 죽일 거야.”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농담이 아니라, 어쩌면 그런 애를 낳으면 죽이라는 법이 생길지도 몰라. 왜냐면 우리 후손들이 자꾸 그러면 나라도 곤란하잖아.” (124쪽)

“글쎄, 의사는 불렀을 수도 있는데 구급차는 불렀을까? 도쿄전력은 구급차 함부로 안 부르거든.” “왜?” “왜라니? 병들거나 다치거나 해서 구급차를 부르면 신문사 같은 데서 눈치챌까 봐 그러는 게 아닐까? 대부분 (병든 이나 다친 이를) 회사 차로 병원까지 데려가거든.” (149∼150쪽)


  《원전 집시》를 보면 사내들(거의 시골 아저씨)이 무거운 장비를 입고 찬 채로 청소를 합니다. 가시내들(거의 시골 아주머니)은 ‘방사능에 더러워진 옷을 빨래하는 일’을 맡는다고 합니다. 방사능에 더러워진 옷에서 방사능을 씻어내야 하기에 화학세제를 들이붓다시피 쓴다고 해요. 이렇게 해도 ‘되쓸’ 수 없는 옷이나 장비는 드럼통에 담아서 폐기물처리장으로 보낸다지요. 옷이나 장비를 빨래하며 나온 ‘엄청나게 센 화학세제가 섞인 물’은 바다로 고스란히 들어간다고 합니다.

  원전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는 이를 얼마나 알까요? 원전 정규직 노동자는 손수 청소를 하지 않을 터이니 이 대목을 하나도 모르면서 계기판만 만지작거리지는 않을까요? 원전 정규직 노동자는 ‘피폭량이 거의 없는 아주 안전한 터전’에서 일하지만, 원전 비폭 하청 노동자는 ‘어마어마한 피폭량에 온몸이 흠뻑 젖은 아주 무시무시한 터전’에 내몰린 삶인 셈이 아닐까요?

  더욱이 원전 부지에서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을 적에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기가 몹시 어렵다고 합니다. 바깥 언론이나 시민한테 알려지지 않도록 안에서 입막음을 한다고 해요. 《원전 집시》를 쓴 분은 어느 날 갈비뼈가 부러질 만큼 다쳤으나, 하청업체 사장은 이를 감추고, 하청업체 위에 있는 다른 하청업에에서도 이를 쉬쉬했다고 해요. 막상 ‘정규직 노동자’를 거느린 ‘도쿄전력’에서는 피폭 하청 노동자가 다치는지 안 다치는지조차 모르는 일이 흔하고, 이를 안다고 해도 ‘회사 차’로 ‘아는 병원’에 조용히 데려다줄 뿐이라고 해요.


원자로 건물과 비교해 터빈건물 안은 선량이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개인방사선경보기도 울리지 않는다. 그만큼 작업시간이 길어진다. 그동안 반면마스크를 쓴 채로 있어야 한다. 숨이 막히고 머리도 아프다. 초기엔 부지런히 마스크를 썼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목에 매달고 있을 뿐이다. 나도 결국 그들처럼 하는 경우가 늘었다. (159쪽)

“산재로 하면 노동기준감독국 출입조사가 있잖아. 그렇게 되면 도쿄전력에 사고가 있었다는 게 들켜 버리거든. 그게 좀 곤란해. 그래서 말인데, 어쨌든 치료비는 다 회사에서 부담하고 쉬는 동안에도 일당을 줘. 그러니까 그걸로 양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어때?” (174쪽)


  아침저녁으로 원전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가용이나 버스나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니, 원전을 돌리려고 수많은 사람이 ‘기름을 태워서’ 출퇴근을 하는 셈이라고 해요. ‘기름을 태워서 전기를 얻으며 기계와 설비를 돌리’는 얼거리라고 해요.

  일본이나 한국 모두 원전은 ‘깨끗하면서 돈이 적게 들고 공해가 없는’ 전기를 얻도록 한다고 홍보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무엇이 깨끗할까요. 방사능에 더러워진 일옷이나 장비를 엄청난 화학세제로 빨아서 입히고, 이 화학세제가 잔뜩 섞인 물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원전 설비가 깨끗할는지요.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자동차를 몰고서 원전을 오가는 얼거리가 돈이 적게 들거나 공해가 없는 발전 설비가 될 만한지요. 피폭 하청 청소 노동자가 긁어내거나 닦아낸 방사능 폐기물이나 쓰레기는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될는지요.

  무엇보다도 정규직하고 하청을 갈라서, 피폭량이 거의 없는 정규직하고 다르게 피폭량이 엄청난 하청 노동자 인권·생존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요.


쓰루가원전 입장 시 ‘순계수’는 242였다. 그럼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682카운트나 되는 방사성물질을 몸속으로 섭취한 셈이다. (267쪽)

중앙제어실에서 계기류를 감시하고 스위치를 누르는 전력회사 직원은 그 중의 극히 일부며, 인원수도 노동양도 하청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원전은 하청노동자라는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원전으로 가동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현장의 최전선으로 몰려 방사능투성이가 돼서 일하는 것을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고는 원전을 말할 수 없다. (271쪽)


  1978∼79년에 ‘간사이전력 미하마 핵발전소’와 ‘도쿄전력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일본원자력발전 쓰루가 핵발전소’에서 일한 일본사람은 지치고 다치며 괴로운 몸을 더 버티지 못하고 일고여덟 달 만에 피폭 하청 노동자 노릇을 그만둡니다. 이러고서 이때 겪은 일을 갈무리해서 책으로 엮습니다. 글쓴이는 일고여덟 달을 일했을 뿐이지만, 이곳에서 열 해나 스무 해를 일한 피폭 하청 노동자가 매우 많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피폭 하청 노동자로 일한 사람 숫자는 수십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폭 하청 노동자로 일했을까요? 이러한 통계나 자료는 있을까요? ‘정검·계획예방정비’를 할 때뿐 아니라 여느 때에 발전소 시설을 살피거나 건사하며 피폭자가 되는 노동자한테 이 나라는 무엇을 해 주었을까요?

  원자력발전소는 처음 지을 적부터 돈이나 품이 어마어마하게 들 뿐 아니라, 이 발전소를 돌릴 적에도 돈이나 품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목숨이 다한 뒤에 방사능을 줄이는 데에도 돈이나 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요. 더욱이 한 번 발전소가 선 마을은 다시 깨끗하거나 아름다운 고장으로 되자면 얼마나 긴 나날이 걸려야 할는지 알 수조차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맞은 방사선량조차 들을 수 없으며, 다시 말해 그런 피폭데이터들을 모두 원전 추진세력들만 손에 쥐고 있는 셈입니다. (283쪽)

핵발전소에서 일한 이들 중 몇 사람은 그곳에서 일했다는 것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노동이 필요한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 책임이다. 그런데 핵산업만 없애면 되는가? 차별구조가 계속되는 한 다른 산업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305쪽)


  새롭게 대통령 자리에 서서 나라를 이끌 분은 원자력발전소(또는 핵발전소)를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바로 이 원전을 모두 멈출 만한 슬기와 생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원자력발전소에 들이붓는 어마어마한 돈을 이제 멈추고, 이 어마어마한 돈을 집집마다 ‘깨끗한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는 길로 돌릴 만한 슬기와 생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제는 정치 지도자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적게 사는 외딴 시골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정책은 하루 빨리 멈추어야 합니다. 원자력발전소가 깨끗하거나 안전하다면 서울이나 부산 시내 한복판에 세워야 할 노릇입니다. 이 발전소가 안 깨끗하고 안 안전하기에 사람이 아주 적게 사는 외딴 시골에 지어요. 더욱이 바다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는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원전 집시》라는 책에서 ‘도쿄전력’ 직원 입을 빌려서 밝히기도 하는데 ‘눈에 안 보이는 연기’로 내보내는 방사능도 있다(85쪽)고 해요.


지금까지 일련의 열교 작업 경험을 통해 나는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됐다. 그 중 하나가 ‘원전 설계엔 정기점검(청소) 작업이 고려되었는가?’라는 것이다. (63쪽)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전이라고 하지만, 과연 원전 자체를 움직이는 데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해야 할까.’ (200쪽)


  외딴 시골에 커다랗게 발전소를 짓기에, 도시까지 무시무시한 송전탑을 수없이 때려박습니다. 고장마다 전기를 자급하도록 하는 정책이 서지 않으니, 집집마다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를 쓰도록 하는 정책을 세우지 않으니, 전기는 마치 권력처럼 됩니다. 대형발전소는 송전탑으로 이어지고, 대형발전소와 송전탑은 ‘발전소 설계수명’을 마치면 모두 ‘시멘트 쓰레기 + 방사능 쓰레기’가 됩니다.

  발전소를 짓고, 발전소를 돌리고, 발전소를 청소하고, 송전탑을 짓고, 발전소 터와 송전탑 터를 강제수용하며 마을사람을 괴롭히고, 나중에는 엄청난 쓰레기가 생기고, 이러면서 돈은 돈대로 엄청나게 쓰는 이러한 전기(에너지) 정책은 나라살림에 하나도 이바지를 못 하리라 느낍니다. 발전소 일자리라든지 피폭 하청 청소 노동자 일자리는 안 마련해도 됩니다. 일자리를 늘리려 하지 말고, 깨끗하고 안전하며 넉넉한 살림이 피어나는 마을살림을 이루도록 마음을 쏟아야지 싶습니다.

  더욱이 피폭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바꾸어 준다 한들 말썽거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전에서 뽑아내는 전기에 기대지 않는 정책을 하루 빨리 세워야지 싶어요. 피폭자를 끝없이 쏟아내는 우악스러운 ‘일자리 얼거리’도 하루 빨리 끝내야지 싶습니다. ‘탄핵 다음에 탈핵’이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정권교체 다음에 자급자족’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2017.5.1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책에 실린 사진하고 그림을 '무명인'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서 얻어
  이 자리에 고맙게 함께 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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