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 - 도시공원 생태 이야기 철수와영희 어린이 교양 3
정병길 지음, 안경자 그림 / 철수와영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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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45



‘식알못’이던 아저씨가 들려주는 푸나무 이야기

―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

 정병길 글·안경자 그림

 철수와영희, 2018.7.7.



남방부전나비는 어떻게 이 공원에서 잘 살고 있는 걸까? 아마도 녀석이 의존하는 식물이 흔한 괭이밥이라서 그런 것 같아. 괭이밥을 본 적 있니? 괭이밥은 공터, 콘크리트 블록 사이, 시멘트 바닥의 깨진 틈 등 도시의 버려져 있는 공간에서도 잘 자라는 흔한 풀이야. (39쪽)



   ‘식알못’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살짝 놀라다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식알못’이라니, 이런 재미난 이름을 생각해 낸 분은 얼마나 즐겁게 하루를 맞이할까요? 그러나 스스로 ‘알못’인 터라 ‘잘알’이 되고 싶어 애를 쓰시지 싶어요.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정병길, 철수와영희, 2018)를 쓴 정병길 님은 오랫동안 식알못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식알못인 이녁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고 여겨 꾸준히 푸나무를 배우려 애썼고, 아직 ‘식잘알’은 아니라 하더라도 제법 푸나무를 잘 아는 어른으로 달라졌다고 합니다.


  도시공원 생태 이야기를 다룬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어른이 아닌, 아이들한테 풀이며 꽃이며 나무하고 얽힌 살림살이를 즐겁고 슬기롭게 들려주는 어른이 되려고 애쓰면서 알아낸 이야기를 다룹니다.



뚜렷한 정답은 없지만, 사람에게도 해로울 수 있는 농약을 쓰는 것은 점차 줄여 나가야겠지? 오래된 좋은 숲의 생태계가 어떻게 각각의 생물을 조절하는지를 배워야 해. 예를 들어, 한 종의 식물만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겨. (48쪽)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뭇잎을 뜯어서 씹어 보는 친구가 있구나. 별맛이 안 나는 데다가 떫기까지 하다고? 나뭇잎이 만든 단맛은 포도당인데, 양이 적은데다가 식물을 노리는 동물들이 많기 때문에 먹기 거북한 물질도 함께 만들어 놓아서 그래. (64쪽)



  책을 읽으며 우리 집 마당이나 뒤꼍이나 가까운 숲을 떠올립니다. 괭이밥이 자라는 언저리에서 곧잘 남방부전나비를 보았는데, 서로 얽히는 사이였군요. 떫구나 싶은 맛이 나는 나뭇잎에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네요. 그런데 나뭇잎은 떫기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살짝 떫으면서도 달달한 맛이 있어요. 이때에 달달한 맛이란 나뭇잎이 햇볕을 보며 스스로 빚은 포도당인 셈이로군요.


  나뭇잎이나 나뭇줄기를 살펴서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나뭇잎 생김새나 두께나 부드러움이나 털을 살펴서 나무마다 다른 잎결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맛보기가 있습니다. 나뭇잎을 천천히 조금씩 씹으면서 잎마다 다른 맛을 느껴 볼 만해요. 이러면서 나무가 자라 온 삶을 잎맛으로 새삼스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쑥잎을 덖어 쑥차를 마실 적에도, 꽃잎을 쪄서 꽃차를 마실 적에도 그렇지요. 풀 한 포기하고 꽃 한 송이가 자라던 들이나 밭이나 숲을 돌아보면서 싱그러운 냄새와 맛을 생각할 만하구나 싶어요.



광합성이 중요해. 지구에서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거든. (67쪽)


광합성은 분명히 놀라운 현상이야. 그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마치 식물의 잎이 햇빛을 연료로 돌리는 공장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70쪽)



  광합성이란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고 합니다. 나뭇잎이나 풀잎이 햇볕을 받아서 새 숨결을 짓는 일이란 엄청난 공장하고 견줄 만하다고, 아니 엄청나게 크거나 많은 공장을 훨씬 웃도는 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더 생각해 보니 ‘광합성을 하는 풀이나 나무’는 우리한테 먹을거리를 베푸는 셈이로군요. 햇볕을 받지 않은 먹을거리란 이 지구에 없겠지요? 해가 사라지면 지구는 바로 깜깜히 얼어붙을 테니까요.


  나물이나 열매를 먹는 살림이란 어떻게 보면 햇볕을 먹는 셈입니다. 광합성을 먹는다고 할까요. 즐겁게 광합성이란 일을 한 풀하고 나무한테서 고마운 숨결을 나누어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염생 식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금기를 극복하며 살고 있어. 물이 통과하는 막을 사이에 두고 농도가 진한 액체와 묽은 액체가 있으면 농도가 진한 쪽으로 물이 이동해. 이를 삼투압 현상이라고 하지. (122쪽)


씨가 있는 야생의 바나나라면 새가 서로 다른 바나나꽃을 오고가며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바나나 씨앗을 만들었을 거야. 그리고 동물이 과일을 먹고 씨앗을 퍼뜨리겠지? 무서운 곰팡이들이 바나나의 뿌리를 시들게 하더라도 다양한 바나나 중에는 분명히 곰팡이 균을 이겨낼 바나나가 있을 거야. 반면 오늘날의 바나나 농장에는 같은 품종의 바나나가 무척 넓은 면적에 심겨 있어. (136∼137쪽)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는 식알못에서 식잘알로 거듭나려고 힘쓴 어른이 익힌 이야기를 아직 ‘식알못인 어린이·푸름이’한테 쉽고 부드러이 들려주는 얼거리인데, 다음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짚어 줍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몰랐거나 엉성하게 알았던, 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푸나무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능금나무에 벌이나 벌레가 찾아드는 까닭, 봄에 피어나는 꽃하고 봄꽃이 필 무렵 맞추어 깨어나는 풀벌레, 서로 짝꿍 사이인 애벌레하고 풀잎·나뭇잎, 철 따라 새로 어우러지는 풀하고 벌레, 꽃이 피기 앞서 잎은 어떤 모습인가, 빛과 볕을 먹는 푸나무라면 우리는 푸나무를 거쳐 빛과 볕을 먹는 얼거리, 푸나무가 좋아하는 온도, 뿌리와 줄기, 씨앗을 퍼뜨리는 슬기로운 나무, 열매를 맛있거나 맛없게 내놓는 까닭, 사막에 피는 꽃, 메마른 땅을 바꾸는 풀 같은 이야기를 다루어요.


  여러 이야기 가운데 무화과나무하고 무화과말벌하고 얽힌 이야기가 저로서는 매우 재미있고 반가웠어요. 그동안 ‘맛있는 무화과알’하고 ‘맛없는 무화과알’이 왜 갈리는가를 몰라서 궁금했는데, 무화과말벌이 꽃가루받이를 해 준 무화과알이 맛있고, 무화과말벌이 없는 비늘집에서 키운 무화과알은 맛없었더군요.



무화과 열매로 깊이 들어가는 무화과말벌은 안전해. 무화과나무는 열매의 입구를 짝꿍 동물인 무화과말벌의 머리 모양과 같게 만들었거든. 다른 기생말벌은 머리 모양이 맞지 않아서 무화과 열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146쪽)



  책 끝자락에서는 ‘유전자를 건드린 푸나무를 한 곳에 잔뜩 심어서 농약과 기계와 비료를 쓰는 현대농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어린이·푸름이한테 넌지시 묻습니다. 아름다운 숲에는 온갖 풀하고 나무가 어우러지는데, 사람이 따로 짓는 논밭에는 으레 한 가지 남새나 곡식이나 나무만 자란다면, 이때에 ‘한 가지 남새나 곡식이나 나무’는 병해충을 어떻게 견디거나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어요.


  이 대목에서 더 살핀다면, 한 가지만 잔뜩 심는 곳에 병해충이 들끓고 괴롭다고 하듯이, 우리 삶터도 모든 것을 똑같은 틀에 가두려 하면 여러모로 서로 힘들거나 무너질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어우러지기에 함께 즐거울 수 있고, 함께 즐겁기에 다 다른 숨결이 서로 돕고 아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 다른 사람을 똑같은 틀에 가두려 하면 참으로 괴롭거나 아프겠구나 싶어요.


  식알못하고 식잘알 사이를 생각해 봅니다. 식알못에서 식잘알로 거듭나는 길에는 푸나무뿐 아니라 우리 곁이나 둘레를 더 눈여겨보거나 찬찬히 살피는 눈길이 되리라 봅니다. 우리가 식잘알이 되어 우리 곁 풀이나 나무를 상냥히 돌아보는 눈썰미를 키운다면, 풀이나 나무만 잘 알 뿐 아니라, 우리 삶터를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슬기도 새삼스레 알아내거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잘알은 ‘삶잘알(삶을 잘 아는 사람)’도 되겠지요? 2018.7.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푸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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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고래 도감 딩동~ 도감 시리즈
김현우 지음 / 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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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43



고래랑 함께 사는 지구는 더 아름답다

― 딩동∼ 고래 도감

 김현우

 지성사, 2018.5.31.



현재 고래는 전 세계예 약 90여 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다에 사는 대형 고래 9종, 중형 고래 13종, 돌고래류 13종 등 모두 35종이에요. 이 중 돌고래가 가장 많으며, 동해에 참돌고래 2만5천여 마리, 서해에 상괭이 1만4천여 마리, 낫돌고래 1만3천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지요. (5쪽)



  《딩동∼ 고래 도감》(김현우, 지성사, 2018)을 읽다가 문득 놀랍니다. 지구라는 별에 모두 아흔 가지에 이르는 고래가 살고, 한국에만 해도 서른다섯 가지에 이르는 고래가 사는군요. 더욱이 이 고래 가운데 참돌고래나 상괭이가 만 마리가 넘게 바다에서 헤엄을 치네요.


  땅을 딛고 산대서 바닷속을 모른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래가 제법 많이 있는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만 한 숫자라지만 지난날에는 훨씬 많았을 수 있어요. 오늘날에는 줄어서 이만큼이요, 또 줄어서 서른다섯 가지 고래‘만’ 살는지 모릅니다.



[참고래] 대왕고래 다음으로 커요. ‘참’은 ‘진짜’, ‘으뜸’이라는 뜻이래요. 커다란 입으로 작은 물고기 떼나 크릴을 물과 함께 삼킨 뒤 물은 수염으로 걸러 보내고 입안에 남은 먹이만 삼켜요. (10쪽)


[브라이드고래] 이 고래를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참고래와 닮았지만, 머리 위에 줄 3개가 볼록 튀어나왔지요. 등지느러미가 낫 모양으로 등 한가운데에 솟아 있어요. 먹이를 먹을 때 턱 아래 주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요. (12쪽)



  《딩동∼ 고래 도감》은 모두 서른 다섯 고래를 시원스레 담은 사진으로 보여주는 작은 도감입니다. 지은이는 한 해 가운데 백 날을 배에서 살면서 고래를 비롯한 바다 이웃을 마주한다고 해요. 바다를 돌보는 길이 뭍을 돌보는 길이요, 바다하고 뭍을 곱게 돌보는 길이 지구라는 별에서 사람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여기는 삶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다하고 맞닿은 숲을 마구 파헤치고 난 뒤에 바다에서 물고기가 씨가 말랐다고 해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숲이 사라졌다’고 해서 왜 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지는 줄 몰랐답니다. 그러나 바닷가 숲이 아름답고 기름지게 있어야, 이 숲흙이나 숲기운이 바다로 시나브로 흘러들어서 바다에 사는 작은 목숨붙이를 살찌우고, 작은 목숨붙이 이를테면 플랑크톤이 널리 살아야 온갖 물고기도 두루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갯벌을 섣불리 메우는 바람에 지표온도가 뒤틀리고 말아, 겨울 낮에 햇볕을 그러모을 너른 바다나 뻘이 사라져서, 겨울에도 포근한 남녘 바닷가 나무가 그만 쉽게 얼어죽기도 한다더군요. 바닷물이나 갯벌은 바다살림뿐 아니라 뭍살림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뭍살림이나 숲살림은 바다살림이나 갯벌살림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더군요. 우리가 뭍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바닷속에서 고래살림으로 크게 뒤틀릴 수 있습니다.



[이라와디돌고래] 미얀마(옛 이름 버마)의 ‘이라와디 강’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주로 동남아시아 강 하구와 바다에서 살지요. 머리가 둥그렇고 주둥이가 짧아요. 등지느러미가 작고 끝이 둥근 삼각 모양이에요. (60쪽)


[흰고래] 북극 바다에 살아가기 알맞게 온몸이 눈처럼 흰색이에요. 입을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표정을 짓지요. 러시아어로 흰색을 뜻하는 ‘벨루가’라고도 해요. 등쪽이 약간 불룩하지만 등지느러미는 없어요. (64쪽)



  아이들하고 《딩동∼ 고래 도감》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읽는 뜻을 헤아려 봅니다. 듬직하거나 멋있어 보이는 고래를 두 눈으로 즐기려고 이 도감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지구라는 별을 이루는 이웃살림을 더 깊거나 넓게 살피려는 뜻을 바탕에 깔 적에 한결 즐거웁지 싶습니다. 사진으로만 멋진 고래를 만나기보다는 이들 고래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터전일 적에, 우리 사람도 뭍에서 더욱 즐거우면서 푸르고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줄 생각해 본다면 좋겠어요.



[대왕고래(Blue whale)] 그동안 ‘흰긴수염고래’로 불린 것은 일본 이름(白長須鯨)의 한자를 그대로 번역하여 붙였기 때문이다. (6쪽)



  고래 도감을 지은 김현우 님은 책머리에서 ‘흰긴수염고래’라는 이름을 둘러싼 수수께끼 한 가지를 밝힙니다. ‘흰긴수염고래’라는 이름은 일본말을 그대로 옮겼기에 ‘대왕고래’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래 갈래를 살피면 ‘북방긴수염고래’나 ‘남방긴수염고래’가 있어요. 그리고 이 도감에도 실린 ‘브라이드고래’라든지 ‘이라와디돌고래’를 생각해 봅니다. ‘흰긴수염고래’는 참말로 일본 이름을 그대로 옮기기만 했을까요? 몸집이 가장 크다는 이 고래는 겉모습이 참으로 ‘희고 길디긴 수염’이 잘 보입니다. 이 이름을 일본에서 먼저 붙였다고 하더라도 낡은 일본말이라기보다 일본 학자가 고래를 잘 살펴서 제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브라이드’나 ‘이라와디’ 같은 말이 고래 이름으로 붙듯이, 또 러시아에서 ‘벨루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고래를 한국에서는 ‘흰고래’라 하듯이, 고래 이름을 둘러싸고도 조금 더 너그럽고 차분하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커다란 고래를 굳이 ‘대왕(大王)’이라는 한자말 이름으로 고쳐야 하기보다는 ‘으뜸고래’나 ‘엄청고래’나 ‘큰몸고래’ 같은 이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영어 이름(Blue whale)을 고스란히 따서 ‘파랑고래’라 해도 되겠지요. 2018.6.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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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꼬리투구새우가 궁금해?
변영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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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41


3억 5천만 해를 살아온 작은 이웃
― 긴꼬리투구새우가 궁금해?
 변영호
 자연과생태, 2018.6.4.


투구새우 화석은 3억 5000만 년 전 고생대 석탄기 독일 지층에서 처음 나왔고 그 뒤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도 나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생김새가 같습니다. (10쪽)


  《긴꼬리투구새우가 궁금해?》(변영호, 자연과생태, 2018)라는 책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긴꼬리투구새우’라는 이름은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들었습니다. 지구별에 몇 없는 화석생물이라고 하는군요.

  긴꼬리투구새우라는 작은 이웃은 언제쯤 알려졌을까요? 이 작은 이웃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3억 5000만이라는 해를 가로지르는 동안 생김새가 똑같은 민물새우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3500만 해 동안 똑같은 생김새라고 해도 놀랍다 할 만하고, 350만 해 동안 똑같은 생김새라고 해도 놀랍다 할 만합니다. 참말로 이 기나긴 해에 걸쳐 지구별 온갖 목숨붙이는 저마다 생김새가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놓고 보아도 꾸준히 조금씩 거듭났습니다. 사람이 오늘날 같은 생김새로 살기까지 여러 모습을 거쳤다지요.

  그런데 우리 몸을 놓고 보면, 1900년대 첫무렵 한겨레 모습하고 2000년대 한겨레 모습조차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지난 백 해에 걸쳐 몸이며 살결이며 키이며 제법 달라졌어요. 우리는 사람몸이 3억 5천만 해를 지나면서 하나도 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긴꼬리투구새우가 발생하는 시기는 모내기철입니다. 남부 지방에서는 5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보이고, 이모작으로 모내기가 늦을 때는 7월 하순까지 보입니다. (38쪽)

전혀 다른 쪽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긴꼬리투구새우가 갑자기 많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여겨보니 눈에 많이 띄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 사실 긴꼬리투구새우는 옛날부터 우리 논에서 살아온 생물입니다. 어쩌면 그간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48쪽)


  한국에서는 2000년대 뒤부터 비로소 긴꼬리투구새우를 눈여겨보았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이 같은 작은 민물새우가 있는 줄 느끼거나 알아차리거나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긴꼬리투구새우가 논이나 둠벙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긴꼬리투구새우를 비롯한 작은 목숨이 우리 삶터에서 어떤 이웃으로 지내는지는 앞으로 차근차근 더 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쉽게 헤아릴 만하지 싶어요. 오랜 나날 우리 곁에서 조용히 이웃으로 지내온 작은 목숨이 있기에, 이보다 큰 이웃목숨이 있습니다. 이보다 큰 이웃목숨이 있어, 이보다 큰 이웃목숨이 있고요. 흔히 먹이사슬이라 일컫지만, 먹이사슬이기보다는 이웃숲 또는 숲이웃이라 할 만하다고 봅니다. 숱한 작은 이웃이 있어 논이 한결 푸르고 들이 한결 싱그러우며 마을이 한결 아름다워요.


긴꼬리투구새우 몸은 매우 복잡한 구조여서 목숨을 걸고 탈피합니다. 탈피는 물 흐름이 없고 오염되지 않은 논에서 이루어집니다. 부화한 유생은 1일 간격으로 탈피하고 자랄수록 탈피하는 간격이 뜸해집니다. 한 달 사이에 15번 이상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72쪽)


  《긴꼬리투구새우가 궁금해?》는 이제까지 긴꼬리투구새우를 살피면서 밝히거나 알아낸 이야기를 조곤조곤 다룹니다. 이름에 ‘새우’라는 말이 붙었기에 여느 새우하고 어떻게 다른가라든지, 이 작은 새우에는 눈이나 코나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구별에 몇 갈래나 있는지, 한국에서 처음 눈에 뜨인 때라든지, 어디에서 볼 수 있고, 어떻게 알아보는지, 왜 논에만 살고, 보호종인지 아닌지, 기나긴 나날을 똑같은 생김새로 살아온 수수께끼라든지, 알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낳고 어떻게 깨어나는지, 긴꼬리투구새우가 좋아하는 논이 따로 있는지 같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한국에서 연구 논문은 1992년에 처음 나왔다 하고, 1991년에 삼천포에서 처음 보았다 하는데, 2001년에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 되었고, 2007년에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복원 사업을 했으며, 2012년에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에서 풀렸다고 합니다.

  논에서 긴꼬리투구새우를 찾고 싶다면 동글동글 퍼지는 작은 물결을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동그라미로 퍼지는 작은 물결이 있다면 바로 그곳에 긴꼬리투구새우가 있을 만하다고 하는군요.


긴꼬리투구새우는 논에서 다양한 자세로 헤엄을 치며 특히 배영을 자주 합니다 … 배영은 먹이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써레질과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긴꼬리투구새우 먹이인 유기물, 수초 등이 많이 떠 있습니다. 그래서 먹이를 더욱 먹기 쉽도록 몸을 뒤집어서 헤엄칩니다. 또한 막 탈피를 끝내고서 쉴 때도 누워서 헤엄칩니다. (89쪽)


  《긴꼬리투구새우가 궁금해?》를 쓴 분도 말씀하지만, 우리는 1990년대에 이르도록 이 작은 논이웃을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무렵까지 온통 기계화·도시화·현대화를 바라보며 달렸어요. 논에 어떻게 하면 농약을 더 쳐서 더 많이 거두느냐에만 매달렸습니다. 제비도 거미도 개구리도 메뚜기도 눈여겨보지 않았어요. 이동안 긴꼬리투구새우는 모진 터전을 견디어 냈다고 할 텐데, 3억 5천만 해에 이르는 나날 가운데 어쩌면 바로 이때가 긴꼬리투구새우한테 가장 힘들었을는지 몰라요.

  긴꼬리투구새우는 살아갈 터전이 안 좋다면 알에서 안 깨어난 채 고이 잠들면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알인 채 열 몇 해를 거뜬히 버틴다고 해요. 어쩌면 열 해뿐 아니라 스무 해나 서른 해를 거뜬히 버틸는지 모릅니다.

  긴꼬리투구새우는 우리가 수수하면서 아늑한 들살림이 되기를 기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계 움직이는 소리만 흐르는 들이 아닌, 농약바람만 춤추는 시골이 아닌, 흙지기가 흥얼흥얼 부르는 노랫소리가 흐르는 들이 되고, 아이들이 논둑이며 논물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시골을 기다릴는지 몰라요. 참말로 이 작은 새우를 비롯해 맹꽁이도 지렁이도 꿩도 다슬기도 개똥벌레도 아이들한테 반가운 동무입니다. 씩씩하게 뛰노는 아이하고 즐거이 일노래를 부르는 어른을 바라면서, 또 지켜보면서, 그 기나긴 나날을 우리 곁에서 살아왔을 수 있습니다. 2018.6.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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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견 만세 - 저마다 생애 최고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노견들에게 보내는 찬사
진 웨인가튼 지음, 이보미 옮김, 마이클 윌리엄슨 사진 / 책공장더불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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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9



늙은 곁짐승은 늙고 느려서 사랑스럽네

― 노견 만세

 진 웨인가튼 글·마이클 윌리엄슨 사진/이보미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8.2.25.



“렉시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렉시 덕분에 우리는 항상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가죠. 침 질질 흘리고, 원반 물고 밥그릇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이 아이에게 우리가 뭘 더 바라겠어요?” (24쪽)



  곁에서 늘 상냥하게 지켜보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면서 넉넉한 품이 됩니다. 곁에서 언제나 활짝 웃으며 뛰노는 아이는 어버이한테 더없이 반가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이 되고요. 그렇다면 곁에서 내내 지켜보면서 함께 지내는 개나 고양이 한 마리는 어떠할까요?


  예전에는 개를 놓고서 따로 ‘반려견’ 같은 말을 안 썼습니다. 개는 그저 ‘개’였어요. ‘집개’라고조차 안 했어요. 집에서 함께 지내는 개라면 그냥 개요, 집 아닌 바깥에서 개 스스로 살 적에는 ‘들개’라 했습니다.


  고양이는 웬만해서는 사람손을 안 타려 했으니 집에서 지내는 고양이는 따로 ‘집고양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두고는 ‘들고양이·도둑고양이’ 같은 이름이 있었으며, 요새는 ‘길고양이·마을고양이·골목고양이’ 같은 이름을 새로 받습니다.


  요새 ‘반려동물·반려견·반려묘’ 같은 이름이 새로 나오는데, 가만히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개·집고양이’라고만 해도 되고, 새 이름을 지어 주어도 되어요. 이를테면 우리 곁에서 늘 사랑스레 어우러지는 개요 고양이인 만큼, ‘곁개·곁고양이’라든지 ‘곁짐승’ 같은 이름을 써 볼 만합니다.



입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행크의 피부 밑 여기저기에서 작고 딱딱한 덩어리가 발견돼 병원을 찾았다. 수의사가 메스로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냈는데 비비탄 총알이었다. 배, 가슴, 머리, 귀 등에 수백 개가 박혀 있었다. “행크는 큰 지혜를 가진 달라이 라마 같아요. 저는 행크가 사격 연습용으로 살았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행크는 그걸 다 참고 맞은 거잖아요.” (60쪽)



  사진책 《노견 만세》(진 웨인가튼 글·마이클 윌리엄슨 사진/이보미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8)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늙은개’를 다뤄요.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지내고서 어느덧 흙으로 돌아갈 나이가 된, 참으로 늙어서 눈이 흐리거나 침을 흘리거나 못 달리는 개가 줄줄이 나옵니다.


  멋스럽거나 대견하거나 놀랍게 보이는 개가 아닌,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사람들 곁에서 언제나 한집지기로 지내 온 개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이들 개는 어느덧 나이가 들었을 뿐, 곁개로 두는 사람들한테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보인다고 해요. 아니, 이들 늙은 곁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이가 한참 든 이 곁개가 예전에는 엿볼 수 없던 무척 깊은 기운을 나누어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곁개하고 지낸 사람들은 ‘어린개’였을 적에도 이 개가 팔팔하면서 철모르는 모습이 반가웠고 사랑스러웠다고 말하는데, 이 개가 늙어서 기운을 못 쓰는 요즈음에는 새롭게 반가우면서 사랑스럽다고, 엉성하거나 느리거나 잠만 자는 모습에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삶을 배울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잘 달리지 못해도, 아니 아예 달리지 못해도, 밥을 먹다가 자꾸 흘려도, 짖을 힘도 없이 오래도록 잠만 자더라도, 곁개가 ‘우리 집에 함께 있는 나날’이 얼마나 고마우면서 따사로운 일인가 하고 한목소리로 말해요.


  아기가 집에 처음 태어나서 자랄 적을 떠올려 봅니다. 아기라는 숨결 하나는 온 집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아기가 자라 아이가 되고,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며, 어른은 더더 자라서 늙은 몸이 된다고 해요. 자, 이때에, 늙은 몸인 사람은 집안에서 어떤 기운이 될까요?


  예전에는 ‘늙은이’를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오래도록 살아오며 마음 가득 넉넉히 슬기를 품은 ‘늙은 사람’은 젊은 사람하고 어린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몫을 맡았고, 말을 가르치는 몫도 맡으며, 몸으로는 일을 못해도 차근차근 풀어내어 알려주는 몫을 했어요. 그리고 어렵거나 벅찬 고빗사위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두려움이나 걱정은 떨쳐도 된다’고 하면서 마음을 달래거나 다스리는 몫을 맡았지요.


  늙어서 몸을 못 쓰는 사람뿐 아니라, 늙어서 몸을 못 다루는 개도, 우리 곁에서 새롭게 슬기로운 마음을 북돋아 주지 싶습니다. 곁사람도 아름답고, 곁개도 사랑스럽지 싶습니다.



제이크는 사진이 뭔지 모른다. 인간처럼 사진을 보며 달콤쌉사래한 추억에 잠기지도 않는다. 젊을 때에 비해서 늙더니 추레해졌다느니 하는 말도 듣지 않는다. 개는 늙어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니까. (142쪽)



  사진책 《노견 만세》는 책이름처럼 “늙은개 멋져!”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다만, 개는, 늙어서 얌전히 쉬는 개는, 사진이 무엇인지 모를 만해요. 누가 사진을 찍든 말든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는 늙을 적까지 곁에서 숱하게 찍어대는 사진을 지켜보다가 ‘이제 그만 좀 찍을 때 아닌가?’ 하고 여길는지 몰라요. 그러면서도 ‘이 늙은 개인 모습도 찍을 만하다고 여기면 얼마든지 찍어 보쇼?’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요.


  지는 꽃도 피는 꽃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지는 해도 뜨는 해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모든 목숨은 저마다 뜻있으며 사랑스럽습니다. 모든 넋은 저마다 따스하면서 넉넉하고요. 우리 곁에 있는 고운 숨결을 하나하나 짚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아이들은 새 아침에 더 씩씩하게 뛰어놉니다. 늙은 개는, 늙은 곁짐승은, 새 아침에도 어제 못지않게 느릿느릿 굼뜬 몸짓일 텐데, 아이들은 ‘늙었다 젊었다 어리다’ 같은 나이가 아닌, 곁에서 함께 지내는 ‘이름’을 부르면서 환하게 노래하리라 생각해요. 노래하며 맞이하는 하루이고, 노래하면서 가꾸는 살림입니다. 2018.6.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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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신 -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
카노 유미코 지음, 임윤정 옮김 / 그책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140


거룩한 몸한테 밥 한 그릇 바칩니다
― 채소의 신
 카노 유미코/임윤정 옮김
 그책, 2015.4.13.


“요리는 채소의 생명을 빌려 완성하는 거예요!” 나는 요리교실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33쪽)

직접 만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성격도 생활도 변화하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51쪽)


  우리 몸은 늘 바뀝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어제하고 오늘 사이에 먹은 밥에 따라 바뀐다고 해요. 여기에 어제하고 오늘 마신 물하고 바람에 따라 바뀐다고 합니다. 어제하고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또 어떤 몸짓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바뀐다고 합니다.

  《채소의 신》(카노 유미코/임윤정 옮김, 그책, 2015)은 밥짓기를 다루는 책이면서, 밥에 얽힌 몸하고 삶하고 넋을 함께 들려주는 책입니다. 고기밥을 먹을 적에만 다른 목숨을 먹지 않고, 풀밥을 먹을 적에도 다른 목숨을 먹는다고 찬찬히 밝힙니다. 그리고 풀이든 고기이든 우리는 늘 다른 목숨을 밥이라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니, 기쁘게 맞아들이고 고맙게 받아들이자고 이야기해요.


레시피를 기록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요리 자체를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지구에는 형태를 남기지 않은 예술이나 문명이 분명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로 인식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DNA에 새겨지고 후세에 전해져 지구의 기억으로써 확실하게 남아 있다. (88쪽)


  생각해 보면 책이름에 적힌 “채소의 신”이란, 우리한테 밥이 되어 주는 모든 목숨은 하느님이란 뜻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는다면, 우리 몸은 ‘닥치는 대로 들어온 목숨’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사는 몸짓이 되기 쉽다고 해요. 우리가 먹는 밥을 ‘안 좋은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 몸도 안 좋은 쪽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채소의 신》을 엮은 분은 손수 밭에서 기른 남새를 손수 손질해서 손수 밥을 지을 적에 가장 맛날 뿐 아니라, 몸도 이러한 밥을 가장 반긴다고 히야이해요. 손수 기른 남새를 쓸 수 없을 때에는, 또 남이 기른 남새 가운데 농약이나 비료를 잔뜩 친 남새를 써야 할 때에는, 손수 기른 남새보다 더 마음을 쏟고 사랑을 담아서 밥을 지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가끔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친 채소를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농약 채소보다 더 사랑을 담아 요리를 하려고 신경을 쓴다. (181쪽)

요리를 마무리할 때는 양념을 넣어 간을 맞춘 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빛과 함께 사랑의 향신료를 듬뿍 뿌려줄 것을 권한다. 사랑은 채소의 영양이나 맛처럼 사람이 정해 놓은 지식이나 감각을 넘어선 곳에서 마법을 부린다. (183쪽)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이 있어요. 미워 보이는 아이한테 더 사랑스레 다가선다는 뜻이에요. 미워 보이는 아이일수록 사랑을 덜 받은 아이인 만큼, 우리가 더 사랑스레 다가서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손수 지은 남새가 아닌, 비료하고 농약에 찌든 남새라면 더 사랑을 담아 밥을 지을 적에 우리 몸이 반기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라면을 먹거나 햄버거를 먹을 적에도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우리 몸에 다르게 스며들겠지요. 손수 지어서 살뜰히 차린 밥상이라지만, 즐겁지 않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우리 몸은 이 밥을 반기기 어려울 테고요. 


“채소 하나하나, 저마다 갖고 있는 매력은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차고 넘칩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매력을 아직 다 알지 못할 거예요.” (143쪽)

초등학생 시절, 눈길 닿는 곳마다 논밭이 펼쳐지는 풍경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었다. 봄이 되면 분홍색의 연꽃 밭이 펼쳐졌고 여름이면 초록색 융단처럼 변했다가 가을에는 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새해가 되면 수확한 쌀로 떡을 만들고 짚은 새끼줄로 엮어서 대문에 걸어두었다. (173쪽)


  남새 하나를 고이 여겨 살뜰히 다루어 밥 한 그릇을 짓고자 하는 분은 우리한테 더 나은 밥차림이나 더 멋진 밥차림이나 더 좋은 밥차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책 《채소의 신》에는 밥차림 사진이나 그림이 하나도 없어요. 오직 글로만 밥차림을 이야기합니다.

  덧붙여 밥짓기를 배우기 앞서 ‘밥을 왜 짓는가’, ‘밥을 왜 먹는가’, ‘밥을 누구하고 먹는가’, ‘밥을 먹고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려는가’, ‘밥이 되어 주는 풀이나 고기란 무엇인가’, ‘밥을 짓는 사람을 어떻게 마주하는가’ 같은 대목에 더 마음을 기울여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채소님’을 먹는 우리 누구나 ‘사람님’이 될 수 있기를, 풀님을 먹든 고기님을 먹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님이 되기를 바라는구나 싶어요.


사람의 몸은 본래 신전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성해서 우주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신성한 신전에 공물을 바치는 것과 같다. (189쪽)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 다음 아이들하고 둘러앉습니다. 아이들한테 말을 겁니다. “우리가 숟가락을 쥐어 뜨는 이 한 술은 우리 몸이 된단다. 웃으며 먹는 밥은 우리한테 웃음이 되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먹는 밥은 우리한테 노래가 된단다. 우리는 오늘 어떤 밥을 먹을까? 우리는 오늘 어떤 밥을 먹으면서 우리 몸을 어떻게 새로 바꾸는 하루를 누릴까?”

  《채소의 신》을 쓴 분이 책끝에 적은 말을 되새깁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몸짓이란, 거룩한 하느님인 우리 몸한테 사랑을 바치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2018.5.2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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