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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8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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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98

 


평화란, 전쟁이란, 삶이란
― 히스토리에 8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12.30.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13)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에우메네스 서기관’ 눈길로 그리는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어느덧 싸움터 한복판입니다. 한쪽은 싸움을 일으키려는 싸움이요, 다른 한쪽은 싸움을 막으면서도 새롭게 싸움을 일으키려는 싸움입니다. 저쪽에서 들어오는 싸움을 막아내면서 한동안 평화를 지킨다고 할 만하지만, 평화를 지키는 동안에도 저쪽을 찬찬히 노리면서 전쟁을 치르려고 군인을 키우고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저쪽 또한 싸움을 마치며 한동안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는 듯하지만, 언제나 군대와 전쟁무기를 잔뜩 갖추어 어느 나라로든 쳐들어가서 무언가 사로잡거나 빼앗거나 거머쥐려 합니다.


  전쟁을 벌여 이웃나라 사람을 노예로 사로잡아야 돈을 법니다. 돈을 벌면 이 돈으로 군인을 더 늘리고 전쟁무기를 더욱 갖춥니다. 돈을 벌어야 군대와 전쟁무기를 둔 도시를 먹여살립니다.


  사회 얼거리가 전쟁을 벌여야 굴러가도록 되었으니, 언제나 전쟁을 생각합니다. 젊거나 힘세다는 사내는 온통 전쟁터로 나가야 하니, 도시 사회를 이루는 곳에서 아이를 낳거나 돌보거나 가르치는 몫을 오직 가시내가 맡습니다.


  전쟁이 있어야 도시가 굴러갑니다. 전쟁을 해서 이겨야 도시가 살아납니다. 전쟁을 하지 않거나 전쟁에서 지면 도시는 무너집니다.


- “이 말 좀 빌려 갈게.” “왜? 어디 가려고?” “본영! 왕에게 진언 좀 하고 올게!” (33쪽)
- ‘스키타이 측의 강경한 자세. 비잔티온 앞바다에서의 마케도니아의 패전 사실을 알고 얕잡아보고 있는 것이 명명백백하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뿐.’ “스키타이의 보물은 강건한 육체와 용기, 그리고 양질의 말뿐이라는군. 하면 어쩔 수 없지. 그것들을 챙겨 돌아가는 수밖에.” (110∼111쪽)

 


  지난날에는 이렇게 전쟁을 벌여 나라를 먹여살렸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서로 총칼을 들이대어 죽이는 짓은 애써 벌이지 않으나, 돈을 숫자놀음으로 툭탁거리면서 싸웁니다. 지난날에는 젊은 사내를 전쟁터로 끌여들였다면, 오늘날에는 젊은 사내와 가시내 모두 ‘숫자놀이 싸움터’로 끌여들입니다. 회사원과 공무원이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공장 노동자가 되도록 닦달합니다. 밥을 얻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최저 한도’로 맞춥니다. 적어도 ‘식량 주권’을 외칠 수 있어야, 돈으로 이웃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일 적에 바가지를 덜 쓸 테니까요. 식량 주권이 없으면 이웃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일 적에 엄청나게 바가지를 쓸 테니까요.


  조금만 생각해도 누구나 알 수 있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는 시골사람 1%이고 도시사람 99%인데, 도시사람이 100%가 되면,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칠레나 미국이나 캐나다나 에스파냐나 호주에서 곡식과 고기와 열매를 값싸게 팔 까닭이 없어요. 안 팔 테지요. 석유값은 아주 싸지만 물값은 아주 비싼 중동 나라를 헤아리면 돼요. 물 한 잔을 퍽 비싼값 치러 사다 마셔야 하는 여러 유럽 나라를 떠올리면 돼요.


  이 나라에서는 아직 곡식이나 물이나 열매나 고기 값이 퍽 싸요. 왜냐하면, 시골사람이 1%는 남았거든요. 앞으로 이 1%마저 무너지면 도시사람은 돈을 더 악착같이 벌도록 톱니바퀴가 되어야 합니다. 이 1%조차 사라지면 도시사람은 돈을 엄청나게 벌어도 늘 조마조마한 채 살아야 합니다.


- “아테네군의 시민군과는 대조적으로 마케도니아군은 평소에도 훈련에 전념하는 직업군인. 백병전에 들어가면 아네테 측이 불리해져. 즉, 이게 바로 아네테군의 정공법인 거야.” (59쪽)
- “한쪽 노가 전부 다 부러졌어.” “응. 그 충격으로 선내에서 노 젓던 사람들도 많이 다쳤을 거야. 대단한 평화주의자인걸.” (75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은 만화책 《히스토리에》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전쟁터에서 머리를 빠르게 돌릴 줄 아는 ‘에우메네스 서기관’이라는 사람 위인전을 보여줄 생각일까요? 아마, 아닐 테지요. 위인전으로 그리려고 이 만화를 그릴 일은 없겠지요.


  평화롭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하나도 평화롭지 않은 문명 사회, 전쟁을 벌이지만 하나도 전쟁 같지 않은 문명 얼거리, 평화와 전쟁이 뒤죽박죽 얽힐 뿐 아니라, 이 틀이 사라지면 권력도 돈도 이름도 도시도 모두 사라지고 마는 흐름 들을 넌지시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요. 우리 사회는 평화로운가요. 우리 사회는 참말 평화라고 할 만할까요. 우리 사회에 있는 엄청난 군대와 전쟁무기는 무엇일까요. 왜 군대를 두고 왜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거나 사들일까요. 도시는 왜 스스로 먹을거리를 일구지 않으면서, 자꾸 이웃나라에서 돈을 들여 먹을거리를 사들일까요. 뜻있는 이들은 이웃나라에서 사들이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농약이나 비료나 방부제나 항생제가 많이 깃드는가를 알 텐데, 막상 이런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도 도시에서 텃밭 일구기조차 거의 안 하고, 시골로 삶터를 옮길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뜻없는 이들이야 권력자나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휩쓸린다 하더라도, ‘뜻있는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아리송합니다.

 


- “내용은 이상입니다! 그럼 이만!” “잠깐! 지금 이거, 정말로 아탈로스 장군의 지시냐?” “네? 전 서기관 에우메네스! 워낙 긴급한 사태라 전령을 맡았습니다! 따지고 드는 건 적을 격퇴한 후에 얼마든지 하시죠!” “……. 미안하다.” (181∼183쪽)


  만화책에 나오는 ‘에우메네스 서기관’은 어떻게 해야 이녁 목숨을 건사할 수 있을까요. 이녁은 왜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도시로 나와서 전쟁터 한복판에 설까요. ‘평화주의자가 벌이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하나로 평화롭지 않은 전쟁놀이’와 맞서는 또다른 ‘평화로운 전쟁’을 하고 싶을까요. ‘평화로운 전쟁’을 끝내면 그야말로 평화로운 나날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평화를 생각할 때에 평화입니다. 사랑을 생각할 때에 사랑입니다. 평화를 생각하며 평화로이 살림을 꾸려야 비로소 평화입니다. 사랑을 생각하며 사랑으로 살아갈 때에 바야흐로 사랑을 나눕니다.


  전쟁을 생각하면 언제나 전쟁입니다. 도시사람 출퇴근은 전쟁이고, 도시사람 영업과 매출은 전쟁입니다. 도시사람 육아와 복지 또한 전쟁이요, 도시사람 교육과 문화마저 전쟁이에요. 모두 숫자놀음이면서 전쟁입니다. 전쟁 틈바구니에서 전쟁만 떠올리는 사람들한테 《히스토리에》는 어떤 이야기책이 될 만할까요. 4346.12.3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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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1
후지무라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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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97

 


남다른 빛이 흘러
―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1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송수영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6.15.

 


  남다른 빛이 흘러 사랑이 됩니다. 똑같은 빛이 흘러도 사랑이 될 텐데,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른 꿈을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마음자리로 스며드는 남다른 빛 한 줄기 있어 사랑을 느낍니다.


  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거나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랑이든 따사롭습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사랑은 포근합니다. 남쪽이건 북쪽이건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든 사회주의 사회이든, 사랑은 다를 일이 없습니다. 군인이 정치꾼 명령을 받고 서로 치고받으며 죽이는 북새통에서도 사랑은 언제나 똑같아요.


  온누리에 골고루 드리우는 햇볕처럼 모든 사람한테 따사롭게 비추는 사랑입니다. 모든 풀한테 똑같이 찾아드는 햇볕처럼 모든 사람한테 아름답게 스며드는 사랑이에요.


- ‘그래도 솔로 경력은 물론 처녀 경력도 33년이라는 걸 알면, 다들 기겁하겠지. 33년이나 되다니.’ (8년)
- “아, 안녕.” “어젯밤부터 계속 헤어지잔 얘기로 다투느라 힘들어 죽겠어요.” “그런 일로 죽으면 쓰나.” “풋. 아오이시 씨는 참 특이한 것 같아요.” (16∼17쪽)
- ‘남자의 마음을 공부하고 계속 관찰하면서 난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사귈 거라면 성실한 사람을 만나야 해. 마음이 착하고 거짓말 안 하고, 여자를 소중히 여기고, 도박도 안 하고, 씀씀이도 헤프지 않고, 대범하고 …….” (18쪽)

 


  학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니, 오늘날과 같은 제도권 학교 울타리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랑을 가르치지 않을 뿐더러, 사랑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입시지옥인 학교에서 어떻게 사랑을 가르치나요. 아니, 사랑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할 교사가 있을까요.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아이한테 ‘얘야, 우리 교과서는 좀 덮고 사랑을 생각하자.’ 하고 이야기할 어버이가 있을까요. ‘얘야, 너 대학교는 안 가도 되니까, 참다운 사랑부터 제대로 알자.’ 하고 아이 손을 붙잡을 어버이가 있을까요.


  대학교는 안 가도 됩니다. 대학교에 안 간대서 죽는 사람 없습니다. 대학교에 안 가더라도 굶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안 들어갔기에 일자리 못 얻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모르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학력이 높고 재산이 많으며 이름값이 높다 한들 삶이 재미나지 않아요. 사랑을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둘레 이웃이나 아이한테 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 마음밭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하루를 누리지 못해요.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은 사랑으로 짓습니다. 우리가 입는 모든 옷은 사랑으로 깁고 손질하며 빨래합니다. 우리가 잠자고 쉬는 모든 집은 사랑으로 마련하며 돌보고 가꿉니다.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요. 사랑이 있어야 아이를 낳지요. 사랑이 있을 때에 어머니가 뱃속에 아기를 열 달 동안 고이 품어요. 사랑이 있기에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사랑이 즐겁기에 아이와 하루 내내 살을 부비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요.


- ‘아오이시 하나에, 33살 생일에 처녀딱지를 떼어버렸다. 아마도. 말도 안 돼. 띠동갑인 연하남이랑, 이런 식으로, 게다가 거의 기억도 없는 상황. 나 진짜 바보 아냐?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첫 경험. 그 경험을 했는지 어땠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끝내다니.’ (46∼47쪽)
- “안경 벗고 먹는 게 낫지 않아요?” “응.” “전 안경 안 쓴 아오이시 씨가 더 좋아요.” (74쪽)
- ‘기분이 이상해. 지금까지 최대한 다른 사람한테 기대지 않고 살아왔는데, 타노쿠라가 다정하게 대해 주니까 응석을 부리고 싶어진다. 역시 남자친구는 특별한 존재구나.’ (101쪽)

 

 


  사랑이 없는 채 찍는 영화가 재미있을까요? 사랑이 없는 채 만드는 연속극이 아름다울까요? 사랑이 없기에 상업영화가 됩니다. 사랑이 없으니 표절을 하거나 도용을 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점수를 매기지 않아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몽둥이나 회초리를 들지 않아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사랑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어른은 아이들한테 사랑으로 가르칠 뿐, 손찌검이나 몽둥이질이나 체벌 따위를 하지 않아요.


  사랑이 없는 어른이 정치 얼거리를 아무렇게나 세운 뒤에 입시지옥을 세웁니다. 사랑을 모르는 어른이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면서 제도권교육 울타리에서 ‘학습시장 돈벌이’를 합니다. 사랑하고 등진 어른이 아이들을 ‘인적 자원’이라 여깁니다.


  어느 아이든 부속품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아요. 어느 아이든 공무원 부속품이나 공장 부속품이나 회사 부속품이 아니에요. 어느 아이든 사랑을 받아서 태어난 뒤, 사랑을 누리며 살아갈 숨결이에요.


  책은 안 읽어도 됩니다. 사랑으로 쓴 책이 아니라면, 굳이 책을 읽을 까닭 없어요. 책은 몰라도 됩니다. 사랑을 담은 책이 아니라면, 애써 책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온통 시험지식만 가득한 교과서를 왜 아이 손에 쥐어 주나요? 사랑을 들려주고 속삭이며 꽃피우는 이야기 그득한 아름다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야지요.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아이하고 나란히 앉아서 도란도란 웃음꽃 지으면서 아름다운 책을 읽어야지요.


- ‘처음으로 남자한테 생일 축하를 받았다. 호텔에 처음 가서 처음으로 남자 옆에서 눈을 떴다. 오늘 하루 난 수많은 첫 경험을 했다. 앞으로 난 이 일을 몇 번이고 떠올리겠지? 몇 번이고.’ (84∼85쪽)
- ‘몇 번이고 그날 밤 일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이번 일도 그럴지 몰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면, 이게 진짜로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면, 무조건 뛰어드는 수밖에 없어.’ (86∼87쪽)
- “날 위해서 돈을 안 썼으면 해서.” “그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지. 자기가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든, 당신을 위해 쓰든, 그건 그 사람 마음이잖아? 자기가 연상이니까, 혹은 자기가 돈이 더 많다고 그러는 건, 결국 그를 무시하고 있다는 거야. 그 사람도 상처받았을걸.” (161∼162쪽)

 

 


  후지무라 마리 님 만화책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서른세 살 아가씨는 사랑을 꿈꾸지만 서른세 살이 되기까지 사랑을 만나지 못한 채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아니, 사랑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다 할 만하고, 스스로 사랑으로 깊이 파고든 적 없다 해야 옳겠지요. 스스로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내는 이래야 해’라든지 ‘이쯤 되는 자격은 있어야지’와 같은 껍데기를 스스로 세우는 바람에 사랑하고는 만나지 못했어요.


  누구라도 그래요. 사랑은 얼굴로 하지 않아요. 사랑은 목소리로 하지 않아요. 사랑은 은행계좌나 자가용으로 하지 않아요.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함께할 수 있어요.


- ‘연애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구나. 지금까지는 나 혼자 그 시간을 다 썼는데. 하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아.’ (114쪽)
- ‘다정하기도 하지. 하지만 난 타노쿠라랑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진짜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140쪽)


  남다른 빛이 흘러 사랑이 됩니다. 남다른 빛이란, 남보다 더 많은 어떤 물질이 아닙니다. 남다른 빛이란, 나를 나답게 아끼는 빛입니다. 나를 나답게 바라보면서 살가이 어루만질 수 있는 손길입니다. 나를 나답게 마주하면서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삶을 바라는 꿈입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사랑이 싹틀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나라 누구나 착한 사랑을 속삭일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나라 사람뿐 아니라, 풀과 꽃과 나무도 사랑스레 뿌리를 내리고 사랑스레 활짝 잎사귀 벌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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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텐파리스트 1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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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94

 


만화가 아주머니네 아이
― 엄마는 텐파리스트 1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12.25.

 


  12월 25일 아침,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나옵니다. 모처럼 군내버스를 함께 탑니다. 큰아이는 혼자 앉고, 작은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앉습니다. 큰아이는 군내버스에서 쉬지 않고 입을 놀립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똑같이 따라합니다. 마을 어귀에서 읍내까지 20분 달리는 군내버스에서 두 아이는 내내 수다쟁이가 됩니다.


  두 아이는 집에서 놀 적에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립니다. 조잘조잘 종알종알 손도 몸도 발도 입도 쉬지 않습니다. 몸으로만 놀지 않고 입으로 함께 놀아요. 입으로 놀면서 눈은 이것저것 바지런히 쳐다봅니다. 아이들 마음도 하늘을 날거나 물속을 가르거나 구름을 타면서 새털처럼 가볍겠지요.


- ‘죄송합니다. 솔직히, 애 키우는 걸 너무 쉽게 봤어요!!’ (9쪽)
-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페트병 하나 들고 신나게 노는 아들. 어째서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것은 갖고 놀지 않는 주제에 이런 일용품, 주위에 널린 재활용 쓰레기 같은 것을 갖고는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는 걸까요.’ (37쪽)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오늘인데,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어린 나날을 누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오늘 내 곁에서 놀듯이, 나는 우리 어버이 곁에서 놀았어요. 우리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놀듯이, 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새 놀이를 스스로 만들며 놀았어요.


  큰아이는 낮잠을 거르며 놀고픈 마음입니다. 낮잠을 잘 틈이 아쉽다 여기는지 몰라요. 나는 큰아이 나이만 하던 때를 떠올리지 못하지만, 우리 큰아이 못지않게 낮잠을 꺼리면서 놀지 않았나 싶어요. 저녁에 스르르 곯아떨어지도록, 밥상맡에서 밥을 먹다가 곯아떨어질 만큼, 밥을 먹으면 아무것도 못할 만큼 곯아떨어지도록, 이렇게 바깥에서 동무들하고 개구지게 뛰어놀았으리라 생각해요.


  아이가 낮잠 없이 놀겠다 할 적에 말리지 못합니다. 달래고 다독여 보기는 하지만, 아이가 안 자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낮잠을 꼭 챙겨요. 작은아이는 낮잠을 안 자는 날에 얼마나 골을 부리는지 작은아이 스스로 더 힘들어 한다고 느껴요.


  작은아이 얼굴에 졸음이 가득 피어나면 슬슬 달래며 품에 안습니다. 품에서 벗어나 더 놀겠다면 더 놀라 합니다. 더 놀다가 스스로 힘들면 품에 안을 적에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때에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요. 졸음이 그득 밀릴 무렵 보드랍게 부르는 노래는 아이가 느긋하게 꿈나라로 가도록 재촉합니다.


- ‘이렇게 동동거리는데도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 달에 10일 정도는 부모님이 도와주러 오십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부모님의 고마움! 그동안 불효만 해서 정말 죄송해요! 고짱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면 행복해 보입니다. 할머니가 지어 주신 맛있는 밥을 매일 먹을 수 있지, 할아버지는 목욕하면서 실컷 놀아 주시지. 그야말로 완벽한 왕자님 상태!’ (55쪽)

 


  온몸을 내맡긴 아이는 걱정이 없습니다. 저를 안고 재운 어버이는 저를 가장 포근하면서 따사롭게 보살펴 주리라 믿습니다. 한동안 고요하게 품에 안았다가 이윽고 잠자리로 옮겨 이불을 덮어 주리라 믿습니다. 나는 아이들 믿음대로 품에 아이를 포근히 안았다가 잠자리로 살며시 옮깁니다. 이불을 가만히 덮어 줍니다. 가슴을 토닥이며 보드라운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내 목소리가 아이들한테 달콤한 꿈밥 또는 잠밥이 되기를 빕니다. 아이를 재우는 내 목소리가 다시 내 마음으로 울리면서 내 삶은 언제나 즐거우며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시리얼,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만 신나게 그리던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인데, 어느 때에 혼인을 합니다. 혼인을 하고도 신나게 만화를 그렸는데, 어느 때에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며 돌보지만, 주마다 다가오는 마감에 허덕이면서 다시금 신나게 만화를 그려요.


  만화를 그리며 아이를 돌본달까요, 아이를 돌보며 만화를 그린달까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기 힘든 삶입니다. 만화에도 나오지만 다달이 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열흘씩 ‘아이와 놀아’ 주고 ‘밥을 지어’ 주러 찾아옵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주마다 마감을 맞추어야 하는 만화를 그릴 수 없다고 합니다. 아마, 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찾아오는 날에 만화가 아주머니는 밤샘을 하며 만화를 그리겠지요.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와 지낼 수 없고, 아이를 바라볼 수 없으며, 아이하고 알콩달콩 재미난 이야기를 엮을 수 없겠지요.


- “2, 2층까지 있는 이 넓은 약국에? 기저귀가 없다?” “아, 네. 저흰 취급하지 않거든요.” … ‘취급 좀 하라고!!’ (57쪽)
- ‘주위 선배들의 도움과 격려 속에 그럭저럭 매일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역 앞에서 난생 처음 보는 아줌마가, ‘타월 천은 더워서 한여름엔 입히면 안 돼!’라며 막무가내로 옷을 벗기지 않나. 모임 중에 아이를 좋아하는 편집장님이 고짱을 봐주지 않나. 고짱이 태어난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갖가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다 멋진 추억들이에요.’ (122쪽)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에는 골을 때리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를 이렇게 돌보거나 기르면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아주머니로서 아이와 살아가며 겪거나 부대끼는 이야기만 그득 싣습니다. 옳은 육아법이나 바른 육아법이나 재미난 육아법이란 아무것도 없어요.


  따지고 보면 그렇지요. 이렇게 해야 아이를 잘 돌보는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저렇게 해야 아이가 잘 크도록 하는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길이 다르고 누리고 싶은 빛이 달라요.


  무엇보다,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릴 때에 재미있어요.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그린다기보다, 아이와 지내며 빙그레 웃던 이야기를 그리면 재미있어요. 아이와 살다가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 이야기를 그리면 재미나요.


  기저귀를 빨면서, 젖을 물리면서, 아이를 재우면서,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아이와 마실을 다니면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같이 씻으면서, 꽃밭 앞에 앉아서 꽃놀이를 즐기면서, 날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이야기 샘솟습니다.


  남이 아닌 내가 누리는 이야기가 있어요. 다른 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 사랑을 기다리거나 바라는 아이가 있어요. 따순 사랑을 받으면서 따순 사랑을 새삼스레 돌려주는 아이가 있어요.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기면 한결 수월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만큼 아이와 누리는 겨를은 사라집니다. 아이와 누리는 겨를이 사라지면 아이와 일구는 이야기가 줄어들겠지요. 아이와 누리는 겨를이 줄어 함께 나눌 이야기가 적다면, 아이가 무럭무럭 자란 뒤에도 아이하고 웃음꽃 피울 만한 이야기를 찾기는 어려워요.


  사람이 낳은 아이가 무척 오랫동안 어버이 손길을 많이 타야 하는 까닭을 곰곰이 짚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왜 사람 아기는 이토록 손이 많이 가야 할까요. 왜 사람 아이는 이렇게 오랜 나날 지켜보고 보살피며 사랑해야 맑고 예쁘게 자랄까요.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에 나오는 아이는 더없이 개구쟁이인데, 아마 만화가 아주머니가 이 아이만 하던 어릴 적에도 더할 나위 없는 개구쟁이요 말괄량이로 놀지 않았나 싶어요. 즐겁게 놀고 신나게 사랑하면서 예쁜 이야기 길어올립니다. 4346.12.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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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92

 


살아가는 뜻과
― 자두치킨
 마르잔 사트라피 글·그림
 박언주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012.2.20.

 


  밤하늘 별을 볼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즐거운가 하고 되뇝니다. 아마 옛날에는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1950년대쯤이어도 서울에서 밤별을 실컷 보았으리라 생각해요. 1910년대 서울에서도, 1800년대 한양에서도 밤별은 아름다운 빛이었으리라 느껴요. 다만, 예나 이제나 서울보다는 시골에서 밤별이 그득그득 쏟아졌겠지요. 시골에서도 더 깊은 시골은 밤별이 훨씬 쏟아졌을 테지요.


  오늘도 한겨울 밤별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아이들 밤오줌을 누인 뒤 오줌그릇을 비우려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밭자락에 스윽 아이들 오줌을 뿌립니다. 나도 밤오줌을 눕니다. 이렇게 별빛 가득한 밤이기에 한결 포근하면서 아늑하다고 느낍니다. 이처럼 별빛 밝은 밤이니 더욱 따사로우면서 고즈넉하다고 느낍니다.


  낮에는 햇볕을 누릴 적에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밤에는 달과 별을 누릴 적에 기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여름에는 풀벌레와 개구리 노래를 누리면서 즐겁습니다. 겨울에는 바람과 구름 노래를 누리면서 기쁩니다.


- “자네 상태가 별로인 것 같은데. 자네도 한 번 말해 봐. 이런 시국에 잘 지낼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5쪽)
- “이제 연주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타르는 세상에 없었다. 나세르 알리 칸은 죽기를 결심하고 침대에 누웠다.” (15쪽)


  시골에서 살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라면 좀 다릅니다. 읍내와 면소재지는 도시하고 똑같아요. 시골 읍내도 도시와 똑같이 낮에 햇볕 아닌 자동차를 더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시골 면소재지도 도시와 똑같이 밤에 달빛과 별빛 아닌 건물과 등불을 더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서는 조금만 걸어서 나가면 들이 있고 숲이 있어요. 냇물과 바다가 있기도 해요. 스스로 마음을 먹으면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서 살더라도 언제나 푸른 바람과 맑은 빛을 누립니다. 스스로 마음을 먹으면 도시에서 살거나 일하더라도 틈틈이 푸른 바람과 맑은 빛을 누려요.


  먼저 마음으로 달빛을 받아들이기에 삶에서 달빛을 누립니다. 언제나 마음으로 별빛을 꼬옥 껴안기에 삶에서 별빛을 누립니다. 스스로 삶에서 받아들이거나 껴안지 못하면 달빛이나 별빛은 스며들지 못해요. 스스로 생각하고 찾으면서 아끼려 할 적에 조물조물 사랑씨앗 뿌리내리면서 튼튼하게 자라요.


  살아가는 보람은 남이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은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빚습니다. 별빛은 내 눈으로 바라봐요. 남이 보아 주지 않아요. 달빛은 내 눈을 떠야 볼 수 있어요. 남이 알려줄 수 없어요.


  싱그러운 바람은 스스로 마음을 열 때에 느낍니다. 푸른 숲은 스스로 두 다리로 걸어서 찾아가야 누립니다. 맛난 밥은 스스로 떠서 먹어야 즐겁습니다. 맛난 밥은 스스로 지어서 차릴 적에 한결 맛납니다.


- “나랑 카드 할래요?” “근데, 아가야. 아빠가 좀 피곤해서 말이야. 이리 오렴. 카드보다는 오늘 학교에서 뭐 했는지 아빠한테 이야기 좀 해 줄래?” “받아쓰기에서 18점 받았어요.” “와, 정말 잘했네!” “엄마는 안 그래요. 그 정도로는 부족하대요.” (19쪽)
- “나랑 지금 보러 가지 않을래, 형?” “말했잖아. 죽을 거라고.” “형 타르 이야기 들었어. 형수님이 부쉈다며.” “네가 그냥 온 건 아니라고 짐작했어.” “그게 뭐가 중요해? 나한테 중요한 건 형수님도, 타르도 아냐. 바로 형이라구.” “너만 그렇게 생각하지.” (31쪽)


  마르잔 사트라피 님 만화책 《자두 치킨》(휴머니스트,201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민주도 평화도 평등도 자리잡지 못하는 이란 사회에서 아름다운 교육이나 사랑스러운 문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예술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곰곰이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만화책 《자두 치킨》에 나오는 아저씨는 왜 곁님과 아이들을 놓고 홀로 ‘죽을 생각’만 할까요. 왜 이녁은 스스로 삶을 짓지 못할까요. 곁님이 악기를 망가뜨렸기에 더는 노래를 켤 수 없는가요. 이란에 둘도 없는 악기라 한다면, 다른 악기를 켜는 길을 걸을 수 없는가요.


  어느 모로 보면, 삶을 누리기로 다짐하는 마음처럼 죽음으로 달리기로 다짐하는 마음이기에 스스로 빛을 찾는다고 느껴요. 살아갈 뜻을 스스로 찾듯이, 죽을 뜻을 스스로 찾는다고 할까요. 살아가며 마음에 담는 빛을 스스로 찾듯이, 삶을 마치고 죽음으로 달리려는 빛을 스스로 찾는다고 할까요.


  스스로 죽음길로 달려간 예술가는 이녁대로 이녁 삶을 지었습니다. 곁님이 죽음길로 가고, 아버지가 죽음길로 간 뒤, 곁님과 아이들은 곁님과 아이들대로 새로운 삶길을 걷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고 다른 목숨이에요. 식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이 길을 갔기에 다른 식구도 꼭 이 길을 가야 하지 않습니다. 식구 가운데 누군가 저 길을 갔으니 다른 식구도 저 길을 굳이 가야 하지 않아요.

 

 

- “밥맛을 잃었어. 미각도 기쁨도 모두. 다 당신 탓이야!” (39쪽)
- 나세르 알리 칸은 자기가 나흘 후에 죽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지 못했다. 더 오래 살아 아들과 그 손녀 이야기까지 알았다면, 분명 암에 걸렸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최악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54쪽)


  우리 집 마당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후박나무는 뿌리가 땅밑에서 옆으로 퍼지기도 하면서, 이 뿌리에서 새 줄기가 올라오곤 합니다. 흙 위쪽으로 솟는 줄기만 보면 마치 다른 나무인 듯 보이지만, 막상 땅을 파면 똑같은 뿌리에서 줄기만 따로따로 위로 솟곤 합니다.


  새로 오르는 줄기를 쳐야 굵은 줄기가 더 굵고 튼튼하게 자랄까 싶기도 하지만, 새로 오르는 줄기를 선뜻 치지 않습니다. 굵은 줄기는 굵은 줄기대로, 새로 오르는 새로 오르는 줄기대로 씩씩하게 자라면서 나중에 한 덩이로 얽히리라 느껴요. 작은 줄기들이 서로 얽히고 기대면서 튼튼하고 예쁜 나무빛을 이룬다고 느껴요.


  겨울에 잎을 떨구는 후박나무가 아니라, 겨울에도 잎을 잔뜩 매다는 후박나무예요. 한 해 내내 잎사귀를 매달면서 퍽 무겁다고 할까요. 잎사귀 많이 매달면서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린다고 할까요. 큰줄기 둘레로 작은줄기 자꾸 오르는 까닭이 있다고 느껴요. 그러니 섣불리 새 줄기를 자르지 못해요. 새로운 줄기가 하나둘 모이면서 서로 버티도록 돕고, 새로운 줄기가 하나둘 모이면서 한결 우거지고 짙푸른 빛을 뽐내는 후박나무가 아니랴 싶어요.


- “내가 이혼했을 때 오빠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 줬죠. 난 그런 오빠를 잠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가족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빠가 날 어떻게 보호해 줬는지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네가 씩씩했기 때문이지.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어.” “그렇게 말하지 마, 오빠. 오빠 아니었으면 이혼 따윈 꿈도 못 꿨을 거야.” “네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사는 걸 난 정말 원하지 않았어. 네 인생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는 게 정말 싫었거든.” “오빠가 옳았어요. 난 지금 행복해요.” “그런 말 들으니 정말 기쁘구나. 적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인간이었다는 말이니까.” (72쪽)


  사람들은 서로 기대어 살아갑니다. 혼자 꿋꿋하게 살아간다고 말할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 깊은 두멧자락이나 숲속에서 맨손으로 집을 짓고 옷을 기우며 밥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든 서로 기대어 살아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대지 않더라도, 사람과 벌레는 서로 기댑니다. 사람과 나무가, 사람과 풀이, 사람과 흙이 서로 기댑니다.


  도시에서 돈을 엄청나게 벌더라도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 기대지 않는다면 굶어죽어요. 도시에서 권력을 엄청나게 누리더라도 시골숲에 나무가 우거지지 않으면 숨막혀 죽어요. 도시에서 이름값 떨치는 지식인이나 작가로 지내더라도 시골 멧자락 나무와 풀 기운 받는 싱그러운 물 흐르지 않으면 목이 타서 죽어요.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숲과 함께 숨을 쉽니다. 이웃과 함께 살림을 꾸리고, 숲과 함께 밥을 먹어요.


  살아가는 뜻이라면 사랑하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살아가는 길이라면 사랑하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사랑하기에 살고, 사랑하기에 꿈꿉니다. 사랑하기에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며, 사랑하기에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만화책 《자두 치킨》에 나오는 예술가 아저씨가 스스로 죽음길로 달린 까닭은, 어릴 적부터 사랑을 느낀 적이 없을 뿐더러, 나이든 뒤에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랑을 불러내지 못했고, 스스로 사랑을 가꾸지 못했어요. 사랑이 없으니 삶은 언제나 죽음과 같았겠지요. 사랑을 못 느끼니, 이녁한테는 죽음이야말로 가장 값진 삶이 되었겠지요. 4346.12.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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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2-2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등을 보니 만화책치곤 얇아보이네요^^ 내용은 묵직해 보입니다만^^

숲노래 2013-12-25 10:31   좋아요 0 | URL
만화책 전문 출판사였으면 이렇게 얇은 책에 '센 값'을 붙이지 않았을 텐데,
만화책 전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 값이 퍽 세답니다.

종이 두께를 조금 줄이면 한결 나았을 텐데, 이 만화책은 종이가
조금 두껍기는 해요. 쪽수가 얼마 안 되는데...
 
키친 Kitchien 3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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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91

 


밥을 짓는 꿈
― 키친 3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0.6.24.

 


  꿈속에서 밥을 짓습니다. 꿈이 아닌 삶에서도 아침저녁으로 늘 밥을 짓는데, 꿈속에서까지 밥을 짓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지난밤 꿈속에서, 나는 대학생도 아니면서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는 사람들 집에 놀러가서 엉망진창인 부엌을 치우고 밥다운 밥을 그때그때 지어서 차려 놓고, 마치 우렁각시처럼 그 집을 빠져나옵니다.


  지난밤 밥짓는 꿈을 꾸면서, 문득 속으로 내가 무얼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꿈 아닌 삶에서 우리 집 부엌은 얼마나 말끔하게 치우며 살아가나 하고 돌아봅니다. 설마, 앞으로 열 몇 해쯤 뒤 우리 아이들이 대학생 되어 이렇게 아무렇게나 지내는 자취집으로 찾아가서 밥을 지어 준다는 뜻이려나? 밥을 할 줄도 모르고, 국을 끓일 줄도 모르며, 하다 못해 달걀을 부칠 줄도 모르는 대학생을 바라보면서, 혀를 끌끌 차지는 않아요. 빙그레 웃으며 ‘누구나 이쯤 할 수 있어.’ 하고 얘기합니다. ‘자, 이걸 봐 봐. 이렇게 하면 돼. 어렵지 않아.’ 하고 알려줍니다.


  꿈을 꾸면서도 내가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었나 하고 되새깁니다. 그래, 이렇게 보드랍게 말하면 누구나 보드랍게 받아들일 테지, 참말 나는 이렇게 즐거이 노래하며 밥을 지을 적에 스스로 예쁜 삶 짓겠네 하고 느낍니다.


- ‘한 해 묵음 김장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푹푹 끓인 김치찌개. 그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는 줄 알아! 동료 유학생들 사이엔 금기시되는 몇 가지 사항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늘과 김치를 먹지 말 것. 특유의 강한 향이 몸에 남아 현지인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나도 너네들 시낸와 꼬락내가 얼마나 싫은 줄 알아? 너희도 어디 한번 당해 봐라! 난 먹을 거다! 코리아푸드, 김치찌개!’ (8∼9쪽)
- “하지만 짜고 느끼한 아메리칸 푸드는 도무지. 알잖나, 패스트푸드. 다들 그런 음식만 매일 먹고 살아가고 있으니, 전통음식이 있고 또 그걸 먹을 수 있는 우리들은 행운아인 건가?” (13∼14쪽)

 

 

 

 


  등허리가 뜨끈뜨끈합니다. 잠에서 깹니다. 보일러가 많이 돌아갔나? 바깥은 아직 깜깜하지만, 시곗바늘은 여섯 시 반이 넘습니다. 오늘은 꽤 늦잠을 잤습니다. 마당을 내다봅니다. 어젯밤 뿌옇게 날리던 싸락눈이 모조리 녹았습니다. 그나마 어젯밤은 밤이니 눈 모양으로 조금 쌓일 듯 내렸을 테지만, 아침이 되면서 비로 바뀐 듯합니다. 어젯밤에 잠들며 아침을 두근두근 기다릴 아이들일 텐데,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마당을 내다본다면 얼마나 서운해 할까요.


  찬바람 휭휭 부는 마당을 바라보면서 ‘밥짓는 꿈’을 다시 떠올립니다. 내 꿈에 나온 모습이지만은 않다고 여깁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 되는 이 가운데 밥짓기와 빨래하기와 청소하기를 알뜰살뜰 할 줄 아는 푸름이는 거의 없으리라 느껴요. 대학생 아닌 재수생이 되어도 똑같아요. 스스로 밥 차려 먹고 집안 말끔히 치우고 빨래 착착 하면서 입시공부를 새롭게 하는 재수생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고등학교 마친 뒤 바로 공장이나 회사에 들어가는 푸름이 가운데 집살림 알차게 여미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다들, 고등학교를 마치기까지 집에서 밥짓기를 배우지 않아요. 공장이나 회사에 바로 들어가더라도,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과 학교만 뱅뱅 돌아요. 요새는 그나마 도시락조차 안 싸고 학교급식을 먹으니, 아이들이 손수 도시락을 쌀 일조차 없어요. 집에서는 으레 어머니가 차린 밥을 먹을 테지요. 어머니가 빨래한 옷을 입을 테지요. 푸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어머니가 치운 방에서 걸레질과 비질 어떻게 해야 정갈한지 하나도 못 보고 모르는 채 자라겠지요.


- “애 셋이나 키운 거. 손주가 다섯이나 있는 거. 다 꿈처럼 느껴진단 말이여. 꿈. 1년에 뭐 며칠이나 봐? 꼬마들 앞세우고 우르르. 한, 하루나 이틀 왔다가 바로 또 싹 사라져. 그러고 가면 내가 혹시 손주들을 꿈에서 본 게 아닌가, 그런단 말여.” (21∼22쪽)
- “군대 간 남자한테서 여자 뺏는 게 인간이 할 짓이냐! 이 나쁜 새끼야! 너도 군대 와서 눈물 질질 짜며 화장실에서 초코파이 씹어 봐야 내 심정 이해할 거다! 이 새끼야!” “나, 면제야.” (37쪽)


  예부터 집집마다 손맛을 물려주었어요. 예부터 아이들은 어버이 밥맛을 물려받았어요. 그리고, 어버이 일머리와 일매무새를 물려받습니다. 어버이가 집을 가꾸고 살림을 돌보는 넋을 차근차근 물려받아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으며 하루하루 자랍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나누면서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대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고, 취업을 잘 해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름답게 자라고, 사랑스레 크며, 즐겁게 살아갈 아이들입니다.


  밥집에서 사다 먹으면 되는 밥이 아니에요. 가게에서 사다가 먹으면 되는 주전부리가 아니에요. 내 몸을 헤아려 나한테 가장 알맞고 반가운 밥을 찾아 누릴 아이들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지을 아이들입니다.

 

 

 

 

 


- “뭐, 몰랐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 엄마한테 못한 일, 동생 구박한 거. 친구들 무시한 거. 정말 웃기게, 다 후회된다. 후회하러 군대 왔나, 거참.” “저도 군대 와서야 알았습니다. 부실한 군대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10분 휴식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소녀시대가 얼마나 예쁜지.” (44∼45쪽)
- “미안, 아밋. 난 좀더 여행길에 집중하고 싶어. 긴 여행중엔 무거운 카펫을 사지 않는 것처럼, 여행자에게 연애는 너무 무거운 짐일 테니까. 그저 이 차이 한 잔 정도의 따뜻한 기억만 가져가는 게 바로, 여행자 스타일이야.” (57쪽)


  조주희 님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0) 셋째 권을 읽습니다. 조주희 님 만화책에는 남다르거나 놀랍다 싶은 밥 이야기는 흐르지 않습니다. 엄청난 밥솜씨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요. 1등을 겨루는 밥솜씨꾼 피 튀기는 싸움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둘레 어디에서나 들을 만하고 볼 만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누구나 흔히 먹는 밥, 어디에서라도 으레 겪거나 만날 만한 밥을 조물조물 매만져서 이야기 한 가락으로 들려줍니다.


  그렇다고 애틋한 추억에 기대어 눈물을 짜게 하지 않아요. 아련한 옛 생각에 젖도록 이끌면서 억지 웃음을 쥐어짜지 않아요. 어제와 오늘이 곱게 이어지고, 오늘과 모레가 나긋나긋 이어져요. 삶을 이루는 밥 한 그릇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붙안는 이야기를 만화로 빚습니다.


- “그렇게 회사만 알고 살아온 내 인생이건만, 결국 쫓겨나다니. 지금 난 정체성을 아예 잃어버린 거지. 모두 부질없어. 자넨 이 기분을 알겠나?” “부장님, 이 막걸리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저 멍청이 신입 따위에게 내 자리를 내준 건가?” (63쪽)
- ‘엄마는 조십스럽고 안타깝게 납득을 하곤 했다.’ (99쪽)
- ‘자전거를 탄 동생은 바람처럼 나를 앞질러 멀리 멀리 돌아오곤 했다. 내가 보지 못한 세계를 다른 속도로 느낀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건 마음속이 아득해지도록 먹먹한 느낌. 그때부터 동생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듯 동생과의 공감을 포기해 버렸는지 모르겠다.’ (133쪽)


  이 나라 아이들 누구나 밥을 즐겁게 짓는 꿈을 꿀 수 있기를 빌어요. 밥 한 그릇이 되는 쌀이 어떻게 자라고, 볍씨에서 쌀알이 되기까지 따사로운 햇볕과 시원한 빗물과 싱그러운 바람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곰곰이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아름다운 밥 한 그릇 지어, 아이들 스스로 먹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불러 함께 나누며,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도, 이웃과 동무한테도, 풀과 나무한테도, 작은 벌레와 짐승한테도 골고루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꿈을 꾸면서 자라요. 꿈을 먹으며 자라요. 꿈을 나누며 사랑해요. 꿈을 가꾸며 스스로 빛이 되어요. 4346.12.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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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친>을 내내 보고는 싶었지만, 여태 못 보았어요~
함께살기님께서 올려주신 사진과 느낌글 읽고 있으니 와락~ 더 보고 싶네요~
1월에는 느긋히 앉아서 즐겁게 읽어야겠습니당~*^^*

숲노래 2013-12-20 16:59   좋아요 0 | URL
7권이 끝이라
저희는 야금야금 보아요.

1권 본 뒤 거의 한 해만에 2권 보고,
또 반 해쯤 지나 3권과 4권을 보고...
이제 세 권 더 보면
마지막이라 아쉽고 아쉽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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