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당나귀 벤야민
한스 림머 지음, 레나르트 오스베크 사진, 김경연 옮김 / 달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이랑 따사로이 어우러질 삶이란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7 : 레나르트 오스베크, 《내 당나귀 벤야민》(달리,2003)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에 아이가 하고픈 그대로 바라보아야 할는지 가만히 지켜보아야 할는지 생각해 봅니다. 다칠 만한 무언가를 한다면 말려야 할 텐데, 아이가 만져서 다칠 만한 무언가라 한다면 어른이 만질 때에도 썩 좋다 할 만하기 어려운 한편, 집에 둘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러한 무언가를 만지기 앞서까지 제대로 못 느끼면서 집에 그대로 두지 않느냐 싶어요. 꼭 아이가 만져서 다칠 만하거나 뭔가 말썽이 생길 만할 때에 깨닫습니다.

 생각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야 비로소 사람이라 할 텐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돌아볼 때면, 나는 내 하루를 얼마나 생각하며 지내는가 싶어 슬픕니다. 오늘 하루는 무엇을 했을까요. 어제 하루는 어떤 나날이었는가요. 다가올 새날은 어떤 일을 치러야 하나요.

 아이가 물려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면 어버이로서 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하는 일부터 옳게 할 만해야 합니다. 아이가 곁에서 거들어도 괜찮을 뿐 아니라, 아이를 불러 거들라고 시킬 만해야 합니다.

 새 보금자리를 얻어 손질하면서 생각합니다. 한동안 비었을 뿐 아니라, 늙은 할머님 한 분 살던 때에도 집이 거의 버려진 듯 있었기에 손 가는 데가 많으며, 치우고 버릴 것이 많습니다. 케케묵은 벽종이를 긁어서 벗기고 새 벽종이 바르기 앞서 매캐한 먼지를 쓸고 닦으며 치우는 일부터 만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러한 일을 아이를 불러 거들라고 시킬 수 있을까요. 아이뿐 아니라 옆지기한테 먼지구덩이에서 함께 일하자고 할 수 있는가요.

 먼지구덩이에 홀로 들어가 먼지더미를 혼자 들이마십니다. 나 홀로 하자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견디자고 헤아립니다. 이 먼지를 둘이나 셋이 마실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 홀로 하는 일이라지만, 나부터 할 만하지 않은 일을 힘들게 하는 셈입니다. 나 혼자 고단한 굴레를 짊어지면서 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니, 이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식구와 살가이 부대끼기는 어려운 꼴입니다.

 지나고 돌아보면 아련한 옛일이 될까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면서 며칠이나 한두 달을 보내면 되나요.

 문득 내 손금을 들여다봅니다. 손바닥에 새겨진 금 셋 가운데 목숨줄 하나만 바라봅니다. 나는 목숨줄 하나만 읽을 줄 안다고 느끼지만, 어쩌면, 나는 목숨줄 하나만 읽도록 나 스스로를 길들이지 않나 싶습니다. 세 가지 금을 모두 읽을 줄 안다고 여기며 살아가면, 내 삶을 나 스스로 알맞게 다스릴 수 있지 않나 하고 느낍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든지, 안 아픈 채 오래 살아야 한다든지 하지 않아요. 알맞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갈 만큼 돈을 벌면 되고, 몸이 아플 일이 없도록 내 일과 놀이를 맞아들일 줄 알면 돼요. 손금읽기란 내 삶읽기이면서 내 앞날읽기예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운가를 톺아보는 일이에요.

 1960년대에 처음 나왔고, 2003년에 한글판으로 옮겨진 사진책 《내 당나귀 벤야민》(달리,2003)을 읽습니다. 나어린 아이가 도시에서 시골로 삶터를 옮긴 다음 당나귀 한 마리를 만나 살가이 사귀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꾸밈없이 찍은 사진인지, 꾸며서(연출해서) 찍은 사진인지 좀 알쏭달쏭합니다. 이야기를 이루려고 이래저래 사진을 갖다 붙이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빠하고 당나귀하고 나는 마을로 돌아왔어요. 나랑 아빠랑 엄마가 사는 마을은 지중해의 어느 섬에 있답니다. 전에는 큰 도시에서 살았어요. 그곳에는 자동차와 전차, 빌딩밖에 없어요. 나비며 알록달록 돌멩이들, 뱀, 고기잡이배 같은 건 없어요. 당나귀도 없고요. 나는 이곳이 훨씬 좋아요(11쪽).” 같은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젖습니다. 도시에는 당나귀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당나귀가 없고 당나귀를 부릴 일이 없는데, 당나귀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이야기책이나 사진책이 나와서 읽힙니다. 도시에는 나비가 살지 못하는데, 도시 아이들은 나비 그림책을 읽거나 나비 다큐멘터리를 봅니다. 도시에는 자동차와 건물밖에 없으나, 도시 아이들은 자동차 다큐멘터리나 건물 그림책을 읽지 않아요. 도시 아이들한테 건물짓기를 가르치는 어른은 없습니다. 도시 아이들이 자동차 그림책이나 만화영화를 본다 하지만, 자동차 얼거리를 속속들이 배우는 일이란 없습니다. 자동차가 일으키는 배기가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가르치는 사람은 없고, 자동차를 만드는 동안 공해가 얼마나 생기는가를 깨닫는 어른은 없습니다.

 돌멩이 없는 도시입니다. 모래나 흙 없는 도시입니다. 뱀이나 개구리조차 없는 도시입니다. 파리랑 모기는 많은 도시예요. 그래, 바퀴벌레도 많겠지요. 그런데, 정작 파리랑 모기랑 바퀴벌레 이야기를 동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으로 엮는 도시사람은 없어요. 모두들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쓰고 그리며 찍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삶이면서 막상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노래하지 않아요. 기계와 전자제품으로 둘러싸인 삶이면서 이들 기계와 전자제품을 꿈꾸지 않아요.

 사진책 《내 당나귀 벤야민》을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가끔은 산책을 해요. 나는 벤야민에게 우리 마을 골목들을 알려주어요. 우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길도 알려주고요(22쪽).” 같은 대목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간다면,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아이인데, 이 아이 삶은 당나귀하고 놀거나 바닷가로 가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데에서 살아간다는 일이나 놀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애써 도시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당나귀랑 만날 까닭이 없어요. 이런 삶, 이런 나들이, 이런 줄거리라면, 그냥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나면서 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를 떠나 살아가는 아이가 당나귀 하나를 만난 놀라움과 새로움을 ‘놀라운 사진’과 ‘새로운 사진’으로 보여주어야지요.

 당나귀랑 아이를 예쁘장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사진 노릇을 못 합니다. 흙을 밟고 풀하고 사귀는 사진이 아니라, 집안에서만 당나귀를 쓰다듬는 사진만 잔뜩 집어넣으면, 이 또한 시골 당나귀 사진책답지 못합니다.

 책 하나 꾀한 뜻은 나쁘지 않습니다. 사진 찍은 솜씨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책 하나를 일구는 사랑을 더 살피지 못했고, 사진 하나로 이룰 사랑이 무엇인가를 더 돌아보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함께 읽을 사진책이란, 아니 아이들과 즐거이 읽을 책이란, 아이들이랑 따사로이 어우러질 삶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요. (4344.11.4.쇠.ㅎㄲㅅㄱ)


― 내 당나귀 벤야민 (레나르트 오스베크 사진,한스 림머 글,김경연 옮김,달리 펴냄,2003.6.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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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 - 참다운 평화를 위한 길
나가쿠라 히로미 글.사진, 이영미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무지개빛으로 바라보면 무지개빛 예쁜 아이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8 : 나가쿠라 히로미,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서해문집,2007)



 무지개빛으로 곱게 보듬은 사진이 담긴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서해문집,2007)을 읽습니다. 일본 사진쟁이 나가쿠라 히로미 님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바자라크 멧기슭에 자리한 자그마한 학교 한 곳을 여러 해 드나듭니다. 멧골학교 아이들하고 사귀고, 멧골학교 아이들 어버이하고 만납니다. 온통 무지개빛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서 무지개빛 넋을 선물받고, 이 고운 선물을 사진 몇 장에 담아 책으로 그러모읍니다.

 사진책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다큐사진을 찍는다는 분들은 으레 까망하양 사진을 즐겨찍는데, 까망하양으로 찍을 만한 사진이 틀림없이 있을 테지만, 구태여 까망하양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왜 까망하양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가를 아주 또렷하게 살피면서 알아야 해요. 온 넋과 삶과 꿈이 무지개빛인 사람들과 보금자리를 까망하양 빛깔에서 어떻게 살리거나 살찌울 수 있는가를 환하면서 맑게 깨우친 다음 까망하양 사진을 찍어야 해요.

 사진쟁이 나가쿠라 히로미 님은 “교실에는 창문도 없고 문도 없다. 무더운 날에는 호두나무 잎을 스쳐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상쾌하다. 추운 날에는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이따금 방목하는 소가 들어와 수업이 중단된다(8쪽).” 하고 말합니다. 나가쿠라 히로미 님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에 실린 사진에는 호두나무 잎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이 함께 깃듭니다. 추운 날 매서운 바람이 함께 서립니다.

 멧기슭에 자리한 멧골학교 아이들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저마다 연장 하나씩 들고 맨손으로 눈을 치웁니다. 아이들이라서 집안에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와 똑같은 일꾼입니다. 이 아이들은 학교로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가지 않습니다. 한두 시간쯤 걸어서 찾아가고, 한두 시간쯤 걸어서 돌아옵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 가벼이 걷는데, 집에서도 늘 서서 일하고 멧자락을 탑니다. 노상 해를 바라보고, 늘 해를 머리에 입니다. 구리빛 아이들은 멧골을 흐르는 물을 떠서 마셔요. 구리빛 아이들은 멧골물을 물지게를 져서 집으로 날라요. 저희 먹을거리를 저희가 일굴 줄 알고, 저희 먹을거리를 이웃과 동무랑 살가이 나눌 줄 알아요. 그러니까, 이 모든 모습과 이야기와 삶이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에 차곡차곡 담기니까, 나는 이 사진책을 읽으면서 아프가니스탄 멧골짝 아이들 꿈을 조용히 그립니다.

 덧바르려 하지 않는 사진이기에 덧바르며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숨기거나 감추려 하지 않는 사진이므로 숨기거나 감추듯 읽을 일이 없습니다. 무언가 그럴듯한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는 사진인 만큼 티없으면서 산뜻한 꿈결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진이란 이렇지요. 무지개빛으로 바라보면 무지개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웃음을 읽을 수 있어요.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눈물을 무지개빛 손길로 쓰다듬을 때에 무지개빛으로 고운 사진 하나 태어나요.

 “밀 수확이 끝나는 6월, 이어서 옥수수를 심는다. 추수로 바쁜 시기에는 아이들도 학교를 쉬고 집안일을 돕는다 … 가축을 부리고, 가래질을 하고, 잔일을 하느라 꼬질꼬질하고 갈라져 터진 아이들의 손. 그것은 다부진, 노동하는 손이다(35∼36쪽).” 하는 이야기처럼, 아이들 손은 꼬질꼬질하고 갈라져 터졌다 말할 만하지만, 어느 아이나 이와 같은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꼬질꼬질한 손’이 아니라 ‘멧골짝에서 살아가는 손’이에요. 흙을 만지는 손이니까 흙빛 손이에요. 하늘과 햇살을 먹으며 살아가니까 하늘과 햇살 기운 듬뿍 밴 얼굴이에요.

 아이들 삶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란, 아이들 귀여운 얼굴을 귀엽게 담는다든지 가난한 삶을 가난하게 담는 일이 아니에요. 아이들 삶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일이에요. 아이들이랑 먹을거리 하나 나누고, 아이들이랑 품 함께 들여 일을 하고, 아이들이랑 이불조각 나누어 덮는 일이 아이들 삶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에요.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망설일 까닭이 없어요. 무엇을 찍어야 하나 걱정할 일이 없어요. 애써 웃음짓게 하면서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고, 굳이 어두운 낯빛을 사진으로 담아야 하지 않아요.

 사진쟁이는 “20년 이상이나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전교생(170명 안팎) 중 48명이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컸다(65쪽).” 하고 말합니다. 한 집에 너덧 아이가 있다 하니까, 작은 멧골학교 아이들 집안에서 남자 어른 한 사람쯤은 전쟁통에 목숨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슬픈 아픔을 떠올리면, 아프가니스탄 멧골학교 아이들은 어둡고 퀴퀴하거나 서늘한 빛이 어린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그러나, 어려운 이웃은 어려운 이웃대로 서로 돕고, 조금 나은 이웃은 조금 나은 대로 나누면서 살아가겠지요. 돈을 더 번대서 더 나은 삶이 아닙니다. 돈을 적게 번대서 더 나쁜 삶이 아닙니다.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에 즐거운 삶입니다. 사랑을 나누지 못할 때에 괴롭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고된 삶입니다.

 나가쿠라 히로미 님은 아프가니스탄땅에서 ‘사랑을 나누는 무지개빛 삶’을 ‘무지개빛 아이들’을 만나면서 깨닫습니다. 즐겁게 깨닫고 신나게 깨달으면서 가슴 벅차게 솟는 따사로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옮깁니다. 부자 나라 일본이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가여이 여겨 돕는 일이 아닌, 사랑어린 손길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는 징검돌을 사진 한 장으로 놓습니다. 사진은 무지개가 됩니다. (4344.11.3.나무.ㅎㄲㅅㄱ)


―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 (나가쿠라 히로미 사진·글,이영미 옮김,서해문집 펴냄,2007.6.20./1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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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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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나날 품을 들여야 할 골목길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66] 김기찬,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2011)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골목동네를 찾아와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빛살과 그림자를 어떻게 가누느냐에 따라 ‘내 눈에 비치는 골목동네 모습’뿐 아니라 ‘내가 찍은 사진에 그려지는 골목동네를 바라볼 다른 사람이 느낄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골목길을 끼는 골목동네 작은 집에서 살던 사람은 압니다. 골목동네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사람치고 ‘골목사람 삶과 넋과 꿈을 사랑스레 헤아리거나 어깨동무하며 사진기를 손에 쥐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를. 거의 언제나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 눈길과 마음길과 손길’로 사진기를 다룰 뿐, 정작 골목사람 삶과 넋과 꿈에 함께 젖어들면서 어깨동무하려 하는 사진쟁이는 아주 드물어 ‘사진기 어깨에 걸친 사람만 보면 얼마나 진저리쳐지는가’를.

 1938년에 태어난 김기찬 님은 2005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골목안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은 모두 여섯 권 내놓았고, 《잃어버린 풍경》과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도 하나씩 내놓았습니다. 김기찬 님 사진은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모을 만하다 할 텐데, 《골목안 풍경》은 이름 그대로 ‘서울 골목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풍경)’을 담아서 나누는 사진이야기입니다. 2011년 8월,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2011)이라는 이름을 달고 두툼하며 값싼 사진책이 새롭게 나옵니다.

 김기찬 님은 “어릴 적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다(33쪽).”고 말합니다. 아름다이 아로새겨진 옛이야기란 바로 ‘풍경’입니다. 지난날 김기찬 님 아름답던 나날을 돌이키면서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왜냐하면, 지난날 김기찬 님 어린 삶이 가난했건 가멸찼건, 집이 작았건 컸건, 식구와 형제가 많았건 적었건, 어찌 되든 김기찬 님 마음과 몸에 아로새겨진 어린 나날 이야기는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이 아름다움을 찾아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김기찬 님이 아주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 먹고사는 걱정이나 입에 풀칠할 근심이 없이 자랐다면, 값지며 좋다 하는 옷을 아무렇지 않게 사다 입는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김기찬 님은 어린 나날을 어떻게 떠올릴 만했을까요. 아니, 굳이 어린 나날을 떠올리거나 어린 나날을 아름다이 떠올리거나, 어린 나날을 아름다이 떠올리며 오래오래 사진길 걸을 생각을 했을는지요.

 나는 1998년에 사진을 처음 배울 무렵 헌책방에서 김기찬 님 《골목안 풍경》 사진책을 곧잘 마주했습니다. 사진을 아직 모르던 이때에 《골목안 풍경》은 퍽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무렵은 대학교 앞 신문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한 달에 삼십이만 원으로 배움값이랑 책값이랑 살림돈을 대던 때라, 헌책방에서 《골목안 풍경》을 1만 원에 팔아도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눈으로 훑기만 했어요. 1999년 여름에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어 들어간 다음부터는 판끊어진 《골목안 풍경》은 헌책방에서 장만하고, 새로 나오는 《골목안 풍경》은 새책방에서 마련했습니다. 《잃어버린 풍경》과 《역전 풍경》도 따끈따끈하게 나왔을 때에 곧장 마련했어요. 이들 사진책은 처음 나올 때에 곧바로 마련하지 않으면 어느새 판이 끊어지거든요.

 사진길을 처음 걸을 때에 만난 김기찬 님 《골목안 풍경》은 ‘앞으로 내 사진감으로 구태여 골목길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이 만하게 나오는 골목길 사진책이 있으니, 나는 나대로 내 사진감인 헌책방을 놓고 헌책방 사진이야기를 일구면 넉넉하리라 느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대체 인간의 체취를 찾을 길이 없다. 대신 마드리드의 뒷골목이나 멕시코 외곽에 오래된 도읍의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홍미진진한 이색 풍물이 그 나라의 진정한 얼굴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김형국,234쪽).”고 하듯, 김기찬 님은 골목길에서 사람내음과 사랑내음과 살내음을 느낀다면, 나는 헌책방에서 사람내음과 사랑내음과 살내음을 느낍니다.

 이러다가 지난 2007년에 내 살림터를 인천으로 다시 옮기면서 비로소 ‘인천 골목길’을 내 사진기로 담아 보았습니다. 2010년에 충청북도 멧골자락으로 살림터를 옮긴 뒤에는 음성 읍내 골목길을 내 사진기로 담아 보았어요. 올 2011년에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살림터를 옮기면서 고흥 시골마을을 내 사진기로 담아 봅니다.

 내 나날을 하나하나 돌이킵니다. 나 스스로 맨 처음에 내 사진감으로 ‘골목길’을 붙잡지 않은 까닭은 오직 한 가지였다고 느낍니다. 나 또한 인천 도화동 624번지에서 태어나 자란 골목사람이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고향마을 인천을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교 둘레에서 살았고, 대학교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간 다음에는 서울 종로구 평동 골목 기스락에서 살았어요. 이렇게 서울에서 지내던 때에는 ‘서울집’이라기보다 ‘헌책방 많은 서울’이라는 데가 내 삶터라고 여겼어요. 나는 인천사람이고 책을 읽는 사람이며 헌책방 책쉼터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아주 마땅히 내 사진감이자 글감은 ‘헌책방’이 될밖에 없어요.

 곧, 2007년에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뒤에 골목동네 한켠 조그마한 옥탑집에서 두 해 반을 살고, 다른 골목동네 한켠 오래된 벽돌집 2층에서 한 해 즈음 사는 동안에는 내 사진감이 ‘(인천) 골목길’로 새로워져요. 이렇게 될밖에요. 내 삶터가 달라졌으니 내 사진감이 달라질밖에요.

 김기찬 님은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늘 골목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일하곤 했다. 그런데 몇 해 지나지 않아 할머니를 영정 속에서 볼 수 있었다(385쪽).” 하고 말합니다.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 전집》을 차근차근 들여다본 분이라면 문득 느끼리라 보는데, 김기찬 님이 담은 ‘서울 골목길’은 그야말로 좁습니다. 그야말로 좁을 뿐 아니라 빈터가 아주 드뭅니다. 모든 길바닥이 시멘트로 깔리고, 작은 풀씨나 풀꽃이나 나무 하나 자랄 틈바구니가 없어요. 드문드문 스티로폼 꽃그릇이나 헌 플라스틱통 꽃그릇을 구경할 수 있지만, 비어서 헐리는 집이 없어 조그마한 텃밭이나 꽃밭 한 자락 마주하기란 몹시 힘들어요. 왜냐하면, 서울은 땅값이 아주 비싼데다가 사람이 워낙 넘치듯 많아, 골목동네에서도 ‘빈터’가 생길라치면 어김없이 사람 하나 누일 방 하나 뚝딱 섭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나중에 옆지기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살던 골목동네는 《골목안 풍경 전집》에 나오는 ‘서울 골목길’하고 사뭇 달라요. 인천 골목동네는 서울 골목동네하고 크게 달라요. 서울은 사람들이 온 나라에서 모여드는 곳입니다. 인천은 사람들이 온통 서울로 빨려드는 곳입니다. 일터를 서울에 두고 새벽과 밤마다 지옥철에 시달리는 데가 인천입니다. 이른새벽을 지나 밤이 될 때까지 온통 고요하고 썰렁한 인천 골목동네입니다. 그런데 이 썰렁한 인천 골목동네는, 서울로 빨려든 사람을 뺀 다른 사람들, 이른바 ‘나머지’ 사람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고요한 삶터’를 빛다르게 일구어요. 길바닥 한켠 시멘트나 거님돌을 깨고는 밑바닥 흙을 손바닥으로 보듬어 텃밭이랑 꽃밭을 일굽니다. 시멘트로 깔린 골목길과 당신 살림집 시멘트 담벼락 사이에 길다랗고 좁다란 텃밭이나 꽃밭을 만듭니다. 버려진 통이나 그릇을 하나하나 여러 열 해에 걸쳐 그러모아 새롭게 텃밭이나 꽃밭을 삼습니다. 이웃집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비고 만 집이 헐리거나 스스로 무너지면, 이웃집이 서울로 떠나 비고 만 집이 쓰러지거나 스스로 허물어지면, 이렇게 빈 자리 시멘트 찌끄러기와 돌조각을 바지런히 골라 집터 가장자리에 빙 둘러 울을 낮게 쌓으며 텃밭으로 새로 일굽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어디에서나 ‘빽빽한 집들 틈바구니에 어김없이 깃든 텃밭’을 만날 수 있어요. 벽돌로 지은 2층 골목집에서 살던 때에는 1층 집임자 할아버지가 새벽 대여섯 시부터 집 안팎을 비로 쓸고 낮에 또 한 번 쓸며 저녁에 다시금 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어느 골목동네 어느 골목집이든 눈을 비질하는 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았어요.

 김기찬 님은 “이 집을 계단집이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들이 많이 모여들어 정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오른쪽에 앉아 이가 아프신지 인상을 쓰고 계신 분이 왕초 할머니시다. 이곳에 모이는 분들 중에 연세가 제일 많아 왕초 언니라고도 했다 … 11년 후, 그동안 왕초 할머니와 나는 많이 친해졌다. 왕초 할머니가 사진 촬영하는 나를 놀리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55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 틀림없다 싶은 이야기입니다. 김기찬 님은 오래도록 다리품을 팔아요. 아니, 다리품을 판다기보다 오래도록 골목동네 사람들하고 이웃으로 지내요. ‘이웃으로 지내기’에 자주 찾아와서 인사를 여쭙니다. 이웃으로 지내니까 꾸준히 찾아와서 말을 섞고, ‘기념사진’을 찍어서 베풉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살던 지난날, 나날이 골목동네 허물어 아파트 올려세우려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정책 탓에 ‘쓰러지고 퀘퀘하며 지저분한데다가 어두운’ 골목동네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개발정책에 쓰려는 공무원이 퍽 자주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골목동네 사람으로서 날마다 골목길을 거닐면서 골목가게를 드나들고, 골목길 저잣거리에서 장보기를 하며, 무럭무럭 크는 아이 손을 잡고 골목마실을 즐겼습니다. 나 또한 골목동네 사람인 만큼 골목꽃 내음을 아이랑 함께 느끼고, 우람하게 자란 골목 감나무이든 골목 대추나무이든 골목 호두나무이든 골목 복숭아나무이든 참 예쁘다고 느끼면서 아이한테 감꽃과 대추꽃과 복숭아꽃부터 감 열매랑 대추 열매랑 복숭아 열매가 맺히는 모습까지 두루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이하고 골목마실을 하면서도 ‘재개발 때문에 사진 찍으러 다니슈?’ 하는 핀잔과 따가운 눈길을 잔뜩 받아야 했어요.

 김기찬 님은 “골목에 들어서면 늘 조심스러웠다. 특히 동네 초입에 젖먹이 아기들을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동네에서 쫓겨나기 알맞은 행동이었다. 사실 젊은 엄마들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내 나이도 오십이 넘어서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590쪽).” 하고 말합니다. 참말 옳은 말입니다. 나는 서른을 좀 넘긴 나이에 골목길 사진을 찍으며 ‘나이가 어려 꽤 힘들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젊다 해서 골목길 사진을 못 찍으란 법이란 없어요. 나이가 어리거나 젊으면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결대로 골목길을 새삼스레 바라보고 느끼면서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다만, 나어린 사람이 여느 골목사람이랑 이웃이나 동무로 사귀며 지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나어린 사람은 나어린 때이니까 몇 차례 드나들며 사진찍기를 하겠구나 하고 여기거든요. 나이 조금 먹으면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골목동네를 다시 안 찾아오겠거니 하고 여기거든요.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이 오래도록 골목마실을 한다거나 한결 푸근하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나어린 사진쟁이한테 골목 할매나 할배는 으레 ‘자네가 아직 젊으니까 좋아(예뻐) 보인다고 말하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나이든 사람한테는 ‘나이든 사람이 어린 나날 옛이야기 서린 모습을 찾으러 왔나 보다.’ 하고 여겨 버릇합니다. 젊은 사람이 골목동네를 날마다 몇 시간씩 거닐면서 사진을 찍으면 ‘젊은 양반이 뭐 할 것이 없어 이런 동네에서 사진을 찍나?’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곤 합니다. ‘사진으로 뜻을 이루거나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려면 골목동네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니까 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나이든 사람한테는 ‘나이들어 돈벌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하니 이렇게 사진을 찍으러 다닐 수 있다.’고 여기곤 해요.

 젊은 사진쟁이한테 골목길 사진이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구경꾼으로 사진을 찍으려 할 때에는 쉽지 않습니다. 작은 ‘골목집’을 얻어 젊은 ‘골목사람’으로 지내는 동안 ‘골목마실’을 날마다 마음껏 누리면서 ‘골목가게’에 드나들고 ‘골목고양이’랑 눈인사를 나눈다면, 골목동네에서 피어나는 어여쁜 빛깔이 시나브로 내 몸과 마음으로 짙게 스며든다고 느끼리라 믿어요. 작은 골목집 한 곳에서 두서너 해쯤 달삯을 내고 지낸다면, 두서너 해 뒤에 다른 골목집 한 곳에서 또 두서너 해쯤 달삯을 내고 산다면, 두서너 해 지나고 나서 또다른 골목집 한 곳에서 다시금 두서너 해쯤 달삯을 내고 살아간다면, 김기찬 님은 《골목안 풍경》 사진이야기로 사진꽃을 피운 결하고 나란히 놓을 아름다운 ‘골목삶 사진책’ 하나 싱그러이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오랜 나날 품을 들였기에 내놓을 수 있는 《골목안 풍경 전집》입니다. 오랜 나날 사랑을 들이면 온 나라 골목동네마다 모두 새로우면서 다 다른 빛줄기 감도는 따사로운 골목길 사진책이 골고루 태어나리라 믿어요. (4344.10.29.흙.ㅎㄲㅅㄱ)


― 골목안 풍경 전집 (김기찬 사진,눈빛 펴냄,2011.8.27./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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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0-3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사진을 보니 지금과는 무척 다른 느낌을 주는군요.불과 얼마전 일일텐데 정말 많이 바뀐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1-10-31 02:59   좋아요 0 | URL
서울에서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서울을 벗어나기만 하면
인천에서든 부산에서든 목포에서든
또 다른 동네에서든
어렵잖이 만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답니다..
 
임진강 -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지음 / 역사만들기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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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61] 황헌만,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는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을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들입니다. 이른바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사람은 사람다울 때에 아름답고 자연은 자연다울 때에 빛납니다. 멧자락은 멧자락대로 살리고 물줄기는 물줄기대로 살려야 어여뻐요. 삽차·밀차·시멘트·쇠붙이 들을 쓰면서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은 물줄기를 살리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들여 돈을 쓰는 일이 될 뿐이에요. 아마 관광지 만드는 일은 될 수 있을 테지만, 사랑스럽거나 따사로운 물줄기를 누리는 일은 되지 못해요.

 하나하나 돌이키면, 물줄기가 물줄기다울 수 없는 이 나라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태어나서 자라지 못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병원에서 사랑 아닌 의료처방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기 너무 힘듭니다. 아니, 아이들을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낳아 어루만져야 하는 줄을 모두 잊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무턱대고 예방주사와 항생제를 놓을 뿐 아니라, 갓난쟁이한테 쓰는 종이기저귀라든지 가루젖은 아기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데, 널리 만들고 널리 팔며 널리 써서 널리 쓰레기를 낳습니다. 종이기저귀와 가루젖을 만들기까지 공장을 얼마나 돌리며 쓰레기가 태어나고, 종이기저귀를 쓰고 가루젖을 먹인 다음 쓰레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어버이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막상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아이들 삶에 어떤 빛줄기가 되는 슬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는가를 헤아리는 어버이는 드물어요. 이에 앞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아이들하고 무엇을 하면서 나누어야 하는가를 찬찬히 짚지 않습니다. ‘유아발달’이나 ‘지능발달’이나 ‘정서순화’ 따위가 아닌 ‘어린이 삶’과 ‘사람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지 않아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하나같이 바쁩니다. 모두들 너무 바빠 아이들을 집에서 어여삐 사랑하거나 아끼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익히며 자라야 아름다운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돈은 벌지만 삶은 나누지 못하고, 돈은 쓰지만 사랑을 꽃피우지 못합니다.

 삶이 없는 자리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먼 뒷날 대학교에 가서 사진학과를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사진배움길을 떠난다 해서 훌륭한 사진쟁이 하나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사랑을 꽃피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진기를 손에 쥔들 붓을 손에 쥔들 자판을 손에 쥔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을 빚을 수 없습니다.

 토목공사가 없어도 금강은 금강입니다. 토목공사가 없을 때에 금강은 금강입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없어도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따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을 때에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뛰놀 밑터를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없어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쥔 사진쟁이가 찍어야 이루어진다 할 테지만, 사진·사진기·사진쟁이 하나 없어도 삶은 삶이요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림쟁이 있어 그림을 거룩하게 빚어야 어떤 문화나 예술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글쟁이 있어 글을 놀랍게 일구어야 어떤 역사나 사회가 거듭나지 않아요.

 사진은 없어도 됩니다. 삶이 있으면 되고, 사랑이 있으면 됩니다. 삶이 있을 때에는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딱히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삶이 있으면서 사진과 그림과 글이 있어야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보람이나 뜻이 있어요. 다시금, 사진은 없어도 그만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되고, 삶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랑이 따숩게 숨쉴 때에는 춤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따로 값이나 빛이 없어요. 사랑이 펄떡펄떡 숨쉬면서 춤과 노래와 영화가 있어야 춤과 노래와 영화가 값이며 빛이 있어요.

 황헌만 님이 빚은 사진책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을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이만 한 사진책 하나 태어나서 임진강 물줄기를 적바림할 만한 뜻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 애써 이만 한 사진책까지 하나 빚어야 할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황헌만 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1년. 나는 허공을 나는 새와 대화를 하고, 허공을 가득 메운 역사와 호흡했으며, 임진강만이 알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황헌만 님은 꼭 한 해 네 철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새를 담고 하늘을 담습니다. 임진강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러나, 사진책 《임진강》에 ‘이야기’가 담겼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사진책 《임진강》에 어떤 ‘삶이 깃든 이야기’와 무슨 ‘사랑이 어린 이야기’를 담았을는지요.

 황헌만 님은  “황헌만이 할 수 있는 임진강 사진. 황헌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임진강 이야기. 그것은 우리 땅의 숨소리라고. 임진강은 우리 땅의 숨소리다. 그 숨과 함께 살아 흐르는 이 땅의 역사를, 이 땅의 자연을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황헌만 님은 황헌만 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제 깜냥껏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에요.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황헌만 님이 배병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배병우 님이 강운구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으며, 강운구 님이 김지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다가, 김지연 님이 임응식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모두들 당신 삶결에 걸맞게 사진을 찍어요.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하는 길을 걷는 나날을 삶자락 하나로 갈무리하면서 사진으로 빚어요.

 황헌만 님은 “사진가로서 갖춰야 할 사명감. 내 나이 60을 넘어서면서 갖는 나의 화두. 이 땅을 본 감동을 황헌만 식으로 기록하여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임진강》은 ‘황헌만 님이 느낀 감동’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사진책 《임진강》은 이 대목에서 비롯해서 이 대목에서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이 대목에서 그치고 맙니다.

 왜 임진강을 사진으로 적바림해야 하나요. 황헌만 님 삶에서 임진강은 무엇인가요. 역사이니 숨소리이니 우리 땅이니 사진 사명이니 하는 말마디에 앞서 ‘사진삶’과 ‘사진사랑’으로서 무슨 뜻과 꿈과 넋으로 임진강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두툼하고 무거우며 커다란 사진책 《임진강》을 읽는 내내 어느 대목 어느 글 어느 사진에서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이 예순은 대수롭지 않고, 사진쟁이 한길 또한 대단하지 않아요. 이제 막 사진기를 손에 쥐고 임진강을 고작 며칠 둘러본 다음 사진을 찍는다 해서 임진강 ‘참모습 참사랑 참삶’을 못 본다 할 수 없어요. 임진강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바라보며 임진강 어귀나 둘레에서 뿌리내려 살아야 비로소 임진강을 온몸으로 느낀다 할 수는 없어요.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글쟁이가 없어도 삶은 언제나 적바림됩니다. 그림쟁이가 없어도 삶은 노상 그려집니다.

 흙을 일구는 일꾼 손마디에 아로새겨지는 삶입니다. 그물을 붙잡는 일꾼 팔뚝에 적바림되는 삶입니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밥상을 차리는 살림꾼 볼우물에 그려지는 삶입니다.

 삶을 헤아려 주셔요. 삶을 사랑해 주셔요. 내 삶을 따사로이 보듬어 주셔요. 내 사랑을 넉넉히 나누어 주셔요.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빛을 모두어 빛을 뿌리는 처음과 끝은 ‘삶사랑’ 하나입니다. (4344.10.23.해.ㅎㄲㅅㄱ)


―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사진,역사만들기 펴냄,2011.3.14./6만 원)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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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woo Chun : Versus - 천경우 작품집
천경우 지음 / 이안북스(IANNBOOKS)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사진이 되기, 예술이 되기, 이야기가 되기
 [찾아 읽는 사진책 48] 천경우, 《Photographs》(IANN,2011)


 마을 이장님 댁에서 하룻밤을 지냅니다. 우리 네 식구는 충청북도 멧골자락 작은 집을 떠나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작은 집으로 옮기기로 합니다. 마땅한 빈집과 빈터를 찾는 동안 마을 이장님이 도와줍니다. 가을걷이를 하는 바쁜 때이지만 저녁나절 짬을 내어 도와주시고, 저녁밥과 잠자리까지 내어줍니다.

 새벽 네 시 십오 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짙게 드리운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시골고양이 여러 마리가 고샅길을 조용히 거닙니다. 따로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없으나 고양이가 이렇게 마을 한식구로 지낸다고 합니다. 마을에 쥐가 없답니다.

 한창 가을걷이를 하고, 온 길바닥에 나락을 넙니다. 드나드는 자동차란 군내버스 말고는 거의 없기에 찻길은 차 한 대 지나다닐 자리를 빼고는 온통 나락누리입니다. 막 거둔 노란 나락으로 예쁜 노란누리를 펼칩니다. 노란 빛깔 흙내음이 물씬 퍼집니다. 내가 선 동백마을이나 이웃 신기마을이나 봉서마을이나 봉동마을이나 한결같이 나락내음과 흙내음입니다. 부디 나락베기와 나락말리기가 다 끝날 때까지 빗방울이 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나락을 벤 자리는 벼포기만 몽땅하게 남습니다. 벤 벼포기는 네모낳게 말아 주는 기계가 척척 네모반듯한 덩이를 내놓기도 하고, 흙일꾼 할매와 할배가 집집마다 다른 모양새로 짚뭇을 삼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는 분 가운데에는 이 짚뭇 모습이 재미있다 여겨 온나라 다 다른 짚뭇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다니기도 합니다. 한 마을 짚뭇만 보더라도 얼마든지 다 다르고,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마다 햇살에 따라 느낌과 모양과 빛깔이 다릅니다. 온나라 짚뭇을 들여다보려 한다면 수만 수십만 짚뭇에다가 때와 철과 날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릴 테지요.

 새벽 네 시 반, 마당에 있는 물꼭지로 낯을 씻고 머리를 감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마당을 휘 둘러봅니다. 달은 구름에 가리고, 마을 고샅 여기저기에 걸린 작은 등불이 내는 빛을 받은 바지랑대와 빨랫줄에 하얀 빛가루가 내려앉습니다. 달빛가루만큼은 아니지만 달빛가루와는 또 다르게 고즈넉하면서 눈부시며 어여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집 즐거이 마련할 수 있으면 우리 집에는 어떻게 빨랫줄을 잇고 바지랑대를 걸칠까 하고 꿈을 꿉니다. 충청북도 멧골자락은 아침저녁으로 퍽 서늘해 풀벌레소리 일찌감치 잠들었으나, 전라남도 시골자락은 아침저녁에도 풀벌레소리 가늘게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반쯤 되는 숫자는 서울과 서울 둘레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전남 고흥이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어 회사를 다니는 이가 퍽 많습니다. 해남이, 강진이, 보성이, 순천이, 화순이, 담양이, 나주가, 구례가, 곡성이, 남원이, …… 고향이지만, 이 고향을 등지고 커다란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한 자리를 얻어 돈을 버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나는 잘 모르지만, 고흥이나 해남이나 강진이나 화순이 고향이요 당신 어버이가 예부터 흙을 일구고 살아가는데 당신은 서울이나 서울 둘레에서 사진찍기를 하면서 꿈이나 뜻을 펼치는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사진이라는 문화를 빛내고 사진이라는 예술을 살찌우며 사진이라는 열매를 거두자면, 시골마을에서는 할 수 없고 큰도시에 깃들어야 한다고 여길 만할 테니까요.

 사진삶을 일구려는 이들은 으레 서울로 모이고, 서울에서도 강남으로 모입니다. 으레 뉴욕이나 파리를 꿈꾸며, 때로는 베를린이나 도쿄를 찾습니다. 런던이나 산티아고로 발길을 옮기는 이도 있겠지요. 암스테르담이나 오슬로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사진빛을 보듬고자 고흥이나 통영이나 고성이나 문경이나 부여에서 살림집을 건사하면서 살아가는 이는 쉬 찾아보지 못합니다. 사진길을 걷고자 군산이나 김해나 밀양이나 상주나 홍천이나 횡성에서 뿌리를 내리며 마을 이웃을 사귀려는 이는 좀처럼 만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찍는 사진이고, 사람을 찍는 사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찍는 사진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찍히는 사진입니다. 내 삶과 네 삶이 어우러지는 사진입니다. 내 꿈과 네 꿈이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내 사랑과 네 사랑이 하나되는 사진이에요.

 천경우 님 사진책 《Photographs》(IANN,2011)를 들여다봅니다. 뿌옇게 보이는 사진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천경우 님이나 다른 예술비평가가 적바림한 글을 읽지 않고서는 이 사진을 읽어낼 수 없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천경우 님은 당신 사진책 이름을 ‘Photographs’라고 붙이는데, 사진을 보여주는 사진이기에 사진책 이름이 이와 같은지, 사진은 사진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사진책 이름이 이러한지, 사진으로는 사진을 할 수밖에 없어서 사진책 이름을 이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은 사람들과 함께하는가요. 사진은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는가요. 사진은 사람이 빚어서 사람이 즐기거나 누리는가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살아가며 다 달리 사진을 누립니다. 《Photographs》 또한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에 따라 태어난 다 다른 사진책 가운데 하나예요. 더 돋보이지 않으며 덜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 눈부시지 않으며 좀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더 빛나지 않으며 썩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저 천경우 님 삶·넋·말만큼 길어올린 이야기가 담긴 사진책 하나입니다.

 내가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녔다면, 내가 나라밖에서 사진을 배웠다면, 내가 내 사진을 ‘사진 주류한테든 비주류한테든 알리려고 서울에서 사진잔치를 연 적이 있다’면, 내가 내 사진을 서울에 있는 미술관이나 전시관이나 박물관에 팔았다면, 내가 내 사진을 나라밖으로 알리려고 힘썼다면, 나도 천경우 님처럼 사진을 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사진강의를 듣지 않았으며, 나라밖 사진잔치를 열지 않았습니다. 오직 내가 살아가는 작은 골목동네와 시골마을에서 사진잔치를 조그맣게 엽니다. 내가 찍은 내 사진은 나한테 사진으로 찍힌 이들한테 나누어 줍니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챙기거나 간직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사진은 예술이 되어야 하나요. 사진에는 어떠한 이야기를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삶을 일구면서 담아야 하는가요.

 나는 내 삶이 좋습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합니다. 나는 내 삶에 따라 내 사진을 누립니다. 이제 곧 동이 트겠군요. (4344.10.13.나무.ㅎㄲㅅㄱ) 



― Photographs (천경우 사진,IANN 펴냄,2011.6.10./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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