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헌터
이반 로딕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을 찍는 예쁜 길
 [찾아 읽는 사진책 71] 이반 로딕, 《페이스 헌터face hunter》(윌북,2011)

 


 사진을 찍는 길이란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글을 쓰는 길이란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길도, 노래를 부르는 길도, 연극을 하는 길도, 하나같이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면서 일구는 길 또한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랑스러운 짝꿍을 만나 아이들을 낳고 함께 살아가는 길 또한 내가 살아가는 길이에요. 밥을 차리는 매무새라든지 집안을 쓸고닦는 일 또한 내가 살아가는 길이에요.

 

 읽을 만하다 싶은 책 하나를 살피는 몸짓이든, 책 하나를 찾아서 손에 쥐어 넘기는 몸가짐이든, 언제나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을 하고, 살아가며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합니다. 내 모든 모습은 내가 태어나서 이제껏 살아온 발자국입니다.

 

 내가 무엇을 배운다 할 때에도 내가 여태 살아온 흐름에 맞추어 배웁니다. 내가 살아온 발자국을 거슬로 배우지 못합니다. 새롭게 배운다거나 새삼스레 거듭나고 싶다면, 내가 살아온 길을 고쳐야 합니다. 내 삶자락을 새롭게 고칠 때에 나는 새로운 사진결 글결 그림결 노래결을 피웁니다. 내 삶자락을 새롭게 고치지 않고서는 새로운 넋이나 꿈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지식을 쌓는대서 달라지는 삶이 아닙니다. 내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서 삶을 뜯어고칠 때에 비로소 달라지는 삶입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다 하는 꿈이 없으면서 삶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 어떻게 꿈을 이루고 싶다 하는 뜻이 없으면서 삶이 아름다울 수 없어요.

 

 이반 로딕 님 사진책 《페이스 헌터face hunter》(윌북,2011)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이반 로딕 님은, ‘길거리 멋쟁이’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반 로딕 님은 ‘길거리 멋쟁이’를 사진으로 찍을 뿐이지만, 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은 저마다 달리 느껴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패션사진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얼굴(초상)사진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사진으로 받아들일 만하고, 누군가는 도시에서 멋을 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는다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러니까, 《페이스 헌터face hunter》에 담긴 모습은 사진입니다. 패션이나 작품이나 예술이나 상업이나 다큐가 아닌 사진입니다.

 

 “나는 패션잡지 편집자들이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서 재미없는 직업모델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지구를 반 바퀴씩 날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만약 나처럼 일한다면 훨씬 쉬울 텐데 말이다. 훌륭한 도시로 여행을 가서 그 동네에 사는 아름다운 멋쟁이를 찾아낸 다음 그녀를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아이들에겐 사탕을 주면서 저리 가라고 하고 미끄럼틀을 타고 논다. 그런 다음 셔터를 누르면 된다(172쪽).”는 말을 헤아립니다. 이반 로딕 님은 길거리 멋쟁이를 사진으로 담을 테니, 이 사진은 아무래도 패션잡지에 실릴 만하겠지요. 아무래도 패션잡지를 자주 들추고, 패션잡지 편집자를 자주 만날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쓰면서 ‘재미없는 직업모델’을 찍는 이는 패션사진가만이 아니에요. 다큐사진을 하든 얼굴사진을 하든 무슨 사진을 하든, 웬만한 사진쟁이는 으레 틀에 박힌 사진찍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삶을 느끼지 못합니다. 곁에서 언제나 어깨동무할 사랑스러운 벗을 깨닫지 못합니다. 꿈을 함께 나누고 사랑을 나란히 즐길 이웃과 동무를 좀처럼 알아채지 못해요. 인도·티벳·네팔·몽골로 가야 비로소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나라로 찾아가 이러한 나라 아이들 웃는 모습을 담아야 다큐사진이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야만 전쟁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미국으로 가야만 현대사진을 배우지 않습니다. 유럽으로 찾아가야만 예술사진을 느끼지 않아요.

 

 “때로는 한 도시에서 5시간을 헤매고도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할 때가 있다. 정말 놀라운 걸 보지 못했을 때이다. 마침내 찍을 사람을 찾았을 때 나는 사진의 구도를 잡으려고 한다. 보통 주변을 조금 돌아보면서 적당한 배경을 찾는 것이다. 말하자면 즉흥적인 연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256쪽).”는 말을 돌아봅니다. 참으로 놀라운 모습은 내 마음밭에서 싹틉니다. 참으로 놀라운 모습을 느끼며 알아채는 결은 내 가슴속에서 샘솟습니다. 나 스스로 놀랍도록 아름다이 살아가는 나날일 때에야 비로소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어여삐 꾸리는 삶일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서 어여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사진기로 담을 모든 빛줄기는 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려요.

 

 “상업적인 사람들이 하도 거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바람에 21세기에는 더 이상 사진에서 무엇이 진정한 포즈인지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것만은 거짓이 아니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 ‘하트를 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278쪽).”는 말을 생각합니다. 참다운 사진은 참다운 삶에서 비롯합니다. 착한 사진은 착한 삶에서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사진은 아름다운 삶에서 스며나옵니다. 사진을 찍는 한길을 걸어가려 한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삶길을 걸어가려 하는가부터 짚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사람들하고 어떤 사랑을 나누는 삶을 일구려 하는가부터 살펴야 해요. 삶길을 튼튼하고 씩씩하게 붙잡은 다음에 사진길을 튼튼하고 씩씩하게 붙잡습니다. 삶길을 이루는 사랑길을 어여삐 보살피거나 돌볼 줄 안 다음에 사진길을 이루는 손길을 어여삐 보살피거나 돌볼 수 있어요.

 

 “수많은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들이 자석에 끌리듯 브랜드를 좇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브랜드를 입고 있어요?’라고 묻는다.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난 쇼핑 안내서를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18쪽).”는 말이 좋습니다. 인도에서 찍든 티벳에서 찍든 네팔에서 찍든 몽골에서 찍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찍든 인천에서 찍든 강릉에서 찍든 영월에서 찍든 고흥에서 찍든 여수에서 찍든 대단하지 않아요. 대통령을 찍거나 군수나 시장을 찍는대서 보잘것없지 않습니다. 내 어버이를 찍든 내 아이를 찍든 하잘것없지 않아요. ‘누구를 찍었나’에 앞서 ‘사진을 찍었나’를 살피면 됩니다. ‘어떻게 찍었나’에 앞서 ‘어떤 삶을 어떻게 느끼며 찍었나’를 헤아리면 됩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나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느끼면 넉넉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하고 얼크러지면서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사진을 담으면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내 꿈을 살아내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는 예쁜 길은 내 꿈을 살아내는 예쁜 길입니다.

 

 나한테 빛나는 사랑을 알아차려 주셔요. 나한테 값진 꿈을 붙잡아 주셔요. 나한테 소담스러운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놓아 주셔요. 사진을 이루는 싹은 내가 꾸리는 오늘 하루 조그마한 삶을 밑거름 삼아 돋습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 페이스 헌터face hunter (이반 로딕 글·사진,박상미 옮김,윌북 펴냄,2011.6.15./17800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1-12-13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표지부터 <사토리얼리스트>랑 매우 비슷하네요. 번역자도 같고요. 소개글 찾아 읽어보니 사토리얼리스트의 작가와 쌍벽을 이루는 사람이라네요.
남이 하지 않는 방법이더라도 자기 뜻을 소신있기 펼치는 사람이 귀하지요. 그런 뜻을 알아볼 수 있는 눈들을 그래도 아직 여기 저기 많이 살아있다고 믿어요, 역시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요.
작가는 자기 뜻을 사진으로 나타내고 저는 그의 작품을 보며 이 사람은 이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헤아리고. 저에게 사진책을 보는 재미는 그런데 있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1-12-13 08:11   좋아요 0 | URL
사진을 자연스럽게 잘 찍었어요.
사토리얼리스트하고 거의 비슷하지만
퍽 달라요.
사토리얼리스트보다 이 책이 한결 낫구나 싶어요.

다만,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번역`을 안 하다 보니...
`사토어쩌구`이든 `페이스어쩌구`이든
한국말로 번역을 해야지요 -_-;;;;

사진을 좀 많이 좋아하면서 사진쟁이로 한길을 걸어가려 하는 사람이라면
찬찬히 돌아볼 만하다고 느끼는 책입니다~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 워홀에서 히틀러까지, 688명이 말한 사진
전민조 지음 / 포토넷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64] 전민조,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야기를 빚습니다. 네 이야기나 남 이야기 아닌 내 이야기를 빚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내 얼굴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으레 내 모습 아닌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습니다. 그러나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는 사진쟁이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빚습니다.

 네 모습이나 남 모습을 찍는 사진이라지만, 언제나 내가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내가 느끼는 모습이요, 내가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누가 나한테 사랑해 달라 바라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사랑이 샘솟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누가 나한테 사랑을 베풀었기에 고스란히 사진으로 돌려주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쟁이 전민조 님이 쓰고 엮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는 모두 육백여든여덟 사람이 사진을 놓고 읊은 말마디를 그러모읍니다. 육백여든여섯 가운데에는 사진쟁이가 있고, 그림쟁이가 있으며, 영화쟁이가 있습니다. 사진하고 동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회사를 꾸리는 사장이 있고, 모델이나 글쟁이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든,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사진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서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나오미 해리스/34쪽).”는 말처럼, 사진쟁이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내가 나누고픈 이야기를 스스로 빚고, 내가 배우고픈 이야기를 기쁘게 배웁니다.

 “사진의 주제는 사진보다 더욱 중요하다(다이안 아버스/49쪽).”는 말마따나, 무엇을 찍느냐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사진이냐 아니냐, 사진문화냐 아니냐, 사진예술이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역사에 남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내가 무엇을 왜 찍느냐 하는 대목을 살필 노릇입니다.

 “대부분의 전쟁 사진가는 전쟁을 즐기고 있다(도널드 맥콜린/66쪽).”는 말 그대로, 전쟁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전쟁을 즐길밖에 없습니다. 알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알몸을 즐깁니다. 패션사진을 하는 사람은 패션을 즐깁니다.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은 다큐멘터리 주제를 즐깁니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날을 즐깁니다.

 “일상의 순간들이 바로 진실의 순간이다(레이몽 르파르동/82쪽).”는 말대로, 어느 하루이고 나한테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내가 누리는 삶이 참다이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맞이하는 나날이 나한테 가장 기쁘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빛나는 내 삶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가에게는 비밀이 있다. 너무 따지지도, 너무 집착하지도 않고서 단지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다(마릴린 리타 실버스톤/125쪽).”는 말을 돌이킵니다. 내 이야기를 담는 사진이기에 내 이야기를 내 결대로 보듬습니다. 내 걸음을 내 다리힘대로 걷습니다. 내 꿈을 내 마음밭대로 일굽니다.

 “초상 사진은 모델을 보여주어야지, 사진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강조해서는 안 된다(매리 앨런 마크/138쪽).”는 말을 곱씹습니다. 얼굴을 찍는 사진은 얼굴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골목길을 찍는 사진은 골목길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지리산을 찍는 사진은 지리산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대서 사진이지 않습니다. 훌륭한 재주를 선보인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빼어난 글솜씨로 문학이 태어나지 않거든요. 훌륭한 붓질로 아름다운 그림이 태어나지 않아요. 값진 사진기나 사진장비는 덧없습니다.

 “사진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어야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이다(보리스 미하일로프/163쪽).”는 말을 가만히 짚습니다. 스스로 사랑이 우러나오는 삶이 아니라면, 사진쟁이로서는 사진기를 들지 못합니다. 스스로 사랑이 우러나올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이 우러나오지 않으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사랑이 우러나와야 비로소 내 살붙이들 아침저녁을 차립니다. 사랑이 우러나오는 삶이기에 내 살붙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사진가로 볼 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모든 나라들은 자신의 나라가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얀 아르튀스 베르트랑/249쪽).”는 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한국은 한국입니다. 일본은 일본입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입니다. 미국은 미국입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배우든 프랑스에서 사진을 배우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일본을 사진으로 담든 미국을 사진으로 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무엇이요, 내가 사랑할 이야기가 어떠하며, 내가 사진으로 나눌 이야기는 어떻게 가꾸는가를 생각하며 느껴야 합니다.

 “특정한 시간에 당신의 마음을 비추는 것, 당신은 그것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조지 타이스/350쪽).”는 말이 좋습니다. 나는 내가 보는 모습만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가 못 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곧, 아는 대로 사진으로 담지 않아요. 지식에 따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낸 발자국만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가 온몸으로 부딪히거나 부대낀 나날 그대로 사진을 찍어요.

 “마음이 움직여야만 사진기를 든다(토몬 켄/403쪽).”는 말이 아름답습니다. 값진 장비나 값나가는 장비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두말할 까닭 없어요. 마음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짝꿍입니다. 마음으로 아끼는 내 꿈이요 삶이에요.

 “내가 찍은 최고의 인물 사진은 내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의 사진들이었다(펠릭스 나다르/416쪽).”는 말이 올바릅니다. 유섭 카슈 같은 사람이 ‘잘 찍은’ 사진은 이름난 사람들 얼굴이 아니에요. 유섭 카슈 스스로 ‘잘 알려고 애쓴’ 사람들 얼굴입니다. 마음을 열어 다가섭니다. 마음을 적셔 껴안습니다. 마음을 담아 마주합니다. 마음을 기울여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사진쟁이한테 사진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살림꾼한테 집일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흙일꾼한테 흙이 모든 삶을 말해 줍니다.

 나는 어디에 선 나일까요. 나는 무엇으로 내 삶을 말할 만할까요.

 한국땅에서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같은 책이 태어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다만,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에는 나라밖 사진쟁이 이야기만 실립니다. 나라안 사진쟁이 이야기를 담은 다음 책을 기다립니다. (4344.12.5.달.ㅎㄲㅅㄱ)


―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전민조 글·엮음,포토넷 펴냄,2011.10.1./24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사상 - 사진시대총서 1
임응식 지음 / 해뜸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사진삶과 사진꿈 읽기
 [찾아 읽는 사진책 70] 임응식, 《사진사상》(해뜸,1986)



 사진책을 힘껏 펴내려 하던 ‘해뜸’ 출판사가 처음 내놓은 책은 임응식 님이 쓴 글을 엮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해뜸,1986)입니다. 사진쟁이 임응식 님은 머리말에서 “본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사진학 강의를 하면서 제일 답답하게 느낀 것이 외국 사진가들의 경력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리 나라 말로 소개던 것이 전혀 없다시피 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쓰게 된 것이다.” 하고 밝힙니다. 2011년이라는 해에 생각한다면, 2011년이라 해서 나라밖 사진쟁이나 사진밭이나 사진책을 알뜰히 들려주는 마땅한 책이 제대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럭저럭 살피거나 돌아보도록 돕는 책은 제법 있어요.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을 그러모은 책이라든지, 매그넘 사진책이라든지, 드문드문 태어나곤 합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쓰는 여러 가지 교재가 한국말로 옮겨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직 한국사람 눈썰미로 바라보거나 살피면서 적바림하는 ‘사진으로 세계 흐름을 읽고 세계 문화를 돌아보는 이야기책’은 없어요. 임응식 님이 내놓은 ‘서양 사진쟁이 소개하는 책’은 “사진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 이름 말마따나 ‘사진 넋’이나 ‘사진 생각’이나 ‘사진 얼’을 밝히는 사진비평이나 사진이론을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임응식 님은 《사진사상》에서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서양 사진쟁이를 소개합니다. 얼마 앞서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라는 책은 사진쟁이뿐 아니라 사진과 얽힌 688 사람이 사진을 바라보며 들려준 이야기를 담아요. 숫자만 헤아려도 놀랍지만, 숫자에 담은 알맹이를 돌아보면 훨씬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1986년과 2011년 사이에는 새로운 사진쟁이도 많이 태어났고, 자료를 모으기에도 한결 나았을 테며, 인터넷이 있기에 조금 더 널리 돌아볼 만했으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1986년이라는 해, 한국땅 사진밭을 살필 때에, 서양 사진쟁이 쉰 사람 삶과 넋과 사진을 간추려 들려주는 《사진사상》은 한국에서 무척 앞선 책이요 돋보이는 책이며 값진 책입니다. 이 같은 책이 있어 이 나라 사진문화를 북돋우는 밑힘이 더욱 단단해졌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사진사상》은 ‘세계 사진쟁이’를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사상》이 다루는 사진쟁이는 모두 ‘서양 사진쟁이’입니다. 일본 사진쟁이나 아시아 사진쟁이나 중남미 사진쟁이나 아프리카 사진쟁이는 다루지 않습니다. ‘서양에서 엮고 서양에서 내놓는 사진역사책’에 으레 이름이 적히는 서양 사진쟁이만 다룹니다.

 그래도 이만 한 책이 나온 일은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그저 한 가지 토를 단다면, 1986년에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더라도 2011년에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 싶고, ‘온누리를 대표하는 사진쟁이’를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려 할 때에도 ‘서양 사진쟁이’만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는 틀을 살포시 딛고 서야 한다고 느껴요.

 덧보태자면, ‘세계 사진 넋’이나 ‘세계 사진 흐름’을 읽는 한편, ‘한국 사진 넋’과 ‘한국 사진 흐름’을 나란히 읽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무척 대단하다 싶은 책이기는 한데, 이 책도 일본 사진쟁이를 옳게 다루지는 못합니다. 퍽 많이 다루기는 했으나, 일본이 사진문화와 사진흐름에 이바지한 수많은 열매를 제대로 싣지는 못했어요. 무엇보다 ‘사진길을 걷는 한국 사진쟁이’ 열매는 한 가지조차 싣지 않았어요.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세계 편’이고 ‘한국 편’을 따로 내놓을는지 모르지만, 따로 내놓으려 한다면 책이름부터 나중에 따로 나올 ‘한국 편’ 이야기가 묻어나도록 했겠지요. 곧, 예나 이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에서 한국넋을 북돋우는 한겨레 사진길을 예쁘게 돌아보지는 못합니다. 사진기라는 연장이 처음 서양에서 태어났다지만,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에요.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를 서양에서 만들었대서 이 탈거리를 즐기는 사람은 서양 넋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연필을 누가 만들었든, 전깃불을 누가 만들었든, 셈틀을 누가 만들었든, 찬찬히 기릴 수 있는 노릇이지만 대단하거나 대수로이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이 알뜰히 잘 써야 해요.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맨 처음 누가 만들었는가를 따지며 기릴 수 있을 테지만, 바로 오늘 내가 밭자락에서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옳게 쓰느냐가 훨씬 대단하고 대수롭습니다.

 나는 내 사진길을 처음 걷던 1998년부터 《사진사상》을 읽었습니다. 일찌감치 판이 끊어진 책이니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사상》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읽던 《사진사상》은 겉이 하얀 빛이었는데, 그러께에 겉이 푸르스름한 새로운 판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겉이 푸르스름한 판이 처음 나온 판이더군요. 그래서 헌책방에서 새롭게 장만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찬찬히 되읽습니다. 철지났다든지 해묵었다든지 할 수 있는 《사진사상》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 사진밭을 알뜰히 일구며 한삶을 바친 임응식 님 넋과 숨결과 땀방울’을 느낄 수 있거든요. 참말, 책끝에는 ‘임응식 해적이’와 ‘임응식이 사진과 얽혀 쓴 글 표’가 찬찬히 붙습니다.

 《사진사상》이라는 책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이라고 합니다만, 책을 몇 차례 찬찬히 읽고 나서 느끼기로는, 아무래도 “임응식이 읽은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이로구나 싶어요. 여러모로 이름난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을 돌아보는 임응식 님은 당신 사진삶과 사진꿈과 사진넋과 사진길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사랑스러웠는가 돌이킵니다. 오랜 나날 사진과 함께 살아온 당신 삶과 꿈과 넋과 길은 얼마나 즐거웠는가 되뇝니다.

 한국에서 오래도록 사진길을 걸어간 어르신들이 당신 사진삶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느낍니다. “아무개가 좋아하는 사진”이라는 책이름을 붙여도 되겠지요. “아무개가 사랑하는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보고 배운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곁에 두는 사진”이라든지, 어느 이름이든 좋습니다. (4344.11.30.물.ㅎㄲㅅㄱ)


― 사진사상 (임응식 글,해뜸 펴냄,1986.5.25./판 끊어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 읽는 CEO - 한 장의 사진에서 배우는 통찰의 기술 읽는 CEO 4
최건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사진비평·사진교육·사진책
 [찾아 읽는 사진책 69] 최건수, 《사진 읽는 CEO》(21세기북스,2009)



 사람들은 사진기는 쉽게(라고 말하기는 좀 알맞지 않을 듯하지만, 그래도 쉽게) 장만합니다만, 사진책은 쉽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참말 쉽게) 장만하지 않습니다. 사진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진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기 이야기를 찾아 읽거나 나누거나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사진책 이야기를 찾아 읽거나 나누거나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면서 사진책을 장만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놓고 할 말이 없습니다. 사진책을 안 읽는대서 사진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려는 사람은 아주 마땅히 사진책을 장만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책(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을 장만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책(글로 이야기를 빚는 책)을 장만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책(노래가 담긴 이야기보따리, 곧 노래테이프나 노래시디나 노래파일)을 장만합니다. 내가 내 그림을 사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에,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담아 좋아할 만한 다른 그림을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만나요. 내가 내 글을 사랑하면서 글을 쓰기에,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실어 좋아할 만한 다른 글을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만나요.

 글을 읽듯 그림을 읽습니다. 만화를 읽듯 사진을 읽습니다. 노래를 읽듯 춤을 읽습니다. 사랑을 읽듯 사람을 읽습니다.

 최건수 님이 내놓은 《사진 읽는 CEO》(21세기북스,2009)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 읽는 CEO》는 사진비평과 사진교육 사이에 선 ‘자기계발책’입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을 이루자’고 하는 줄거리로 엮은 책입니다. 사진이야기를 놓고 자기계발책을 쓸 수 있구나 하고 놀랄 만한데, 오늘날 어디에나 사진이 두루 쓰이는 모습을 돌아본다면, 이만 한 사진책은 진작 나왔음직합니다. 좀 늦었달까요. 퍽 더디달까요.

 청소기 광고이든 화장품 광고이든 사진을 씁니다. 이름난 야구선수이든 이름 덜 난 핸드볼 선수이든 사진에 찍혀 신문에 기사로 실립니다. 삼성이라는 회사 이재용이라는 사람이든, 이웃 동네 할아범이든 기자한테든 아들내미한테든 사진으로 찍히기 마련입니다. 찍힌 사진을 읽을 때에 찍는 사진을 읽고, 보이는 사진을 읽을 때에 보는 사진을 읽어요.

 이리하여 “이런 류(더글러스 던컨)의 사진가들은 카메라의 셔터가 고장 날 정도로 많이 찍는다. 이들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살고 있는 사진가들이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카메라가 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 자연히 카메라도 기동성이 좋은 것을 애용한다. 다음으로는 중형부터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서 천천히 느리게 찍는 유섭 카슈 같은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찍기 전에 찍어야 할 셔터 찬스가 이미 마음속에 그려져 있다. 예견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철저히 사전 준비를 하고 한 번의 기회에 결정적으로 셔터를 누른다(301쪽).” 같은 이야기를 알뜰히 싣는 사진책 《사진 읽는 CEO》입니다. 온통 사진에 둘러싸였으면서 사진을 못 느끼거나 못 알아채는 사람들한테 ‘마치 나 스스로 최고경영자인 듯 여기’면서 내 둘레 사진부터 찬찬히 읽어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이 따로 없으니, 작은 곳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바라보든 큰 곳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바라보든,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눈길로 곱게 바라보며 느끼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최건수 님은 “윤주영의 경우는 단순히 취미와 도락으로 사진을 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이 넘볼 수 없는 자신의 또 다른 성 하나를 쌓은 것이다(110쪽).” 하고 말합니다. 이는 사진밭에서만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어느 갈래 어느 밭에서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취미와 도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취미와 도락으로 글을 쓰면서 문학상 받거나 문학기금 타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취미와 도락으로 쓴 글은 아름다움이나 즐거움하고는 동떨어져요. 삶을 바쳐 누리는 사진이 될 때에 아름다운 사진이요 즐거운 사진입니다. 삶을 바쳐 누리는 일이 될 적에 아름다운 일이면서 즐거운 일이에요.

 사진은 “빛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사진 찍는 자의 몫이다(228쪽).” 하는 말처럼, 빛을 잘 알고 읽을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그러나, 빛을 잘 안다는 일이란 빛크기나 빛세기나 빛줄기를 읽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빨주노초파남보를 가르거나 존 시스템을 헤아린대서 빛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빛이란 내 삶이면서 목숨이에요. 내 삶과 목숨을 얼마나 옳게 읽느냐에 따라 사진읽기와 사진찍기가 달라져요.

 요즈음 한국땅 사람들은 한여름과 한겨울을 잘 몰라요. 한여름과 한겨울을 잘 모르니 사진 또한 잘 몰라요. 한여름 땡볕이 있어 곡식이 잘 여물어요. 한겨울 강추위가 있어 잔벌레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서 거름이 돼요. 1도만 높아져도 날이 몹시 가물어 곡식이 타들고 말아요. 1도만 낮아져도 날이 몹시 썰렁해 곡식이 얼어죽고 말아요.

 빛이란 온 목숨을 살리는 숨결이에요. 빛이란 내 삶을 가꾸는 따순 손길이에요. 빛 한 줄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나날이고, 빛 한 모금에 기대어 예쁜 꿈을 꾸는 오늘이에요. 사진이란 빛을 사랑하는 이야기이고, 빛을 사랑하는 이야기란 삶을 사랑하는 한길이에요.

 그런데 《사진 읽는 CEO》에서 최건수 님은 “사진 분야에서 제일 접근하기 쉬운 분야가 다큐멘터리 분야라 할 수 있다(110쪽).” 같은 말을 톡톡 내뱉습니다. 이처럼 생각하는 일을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습니다만, ‘가장 쉬운 사진 갈래’나 ‘가장 어려운 사진 갈래’는 있을 수 없어요. ‘가장 쉬운 글쓰기’나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있을 턱이 없어요.

 동시나 동화가 더 쓰기 쉬운 글이 되지 않아요. 다큐사진이 더 찍기 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글은 모두 같은 글이에요. 사진은 다 같은 사진이에요. 옳고 착하며 예쁘게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길을 못 찾는 오늘날 사람들은, 옳고 착하며 예쁘게 삶을 꾸리는 길을 못 찾는 사람들이에요. 먼저 내 삶부터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때에 사진 또한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수 있어요.

 한국땅 사진비평을 읽으면,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삶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국땅 사진교육을 들여다보면,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삶을 교수나 교사 스스로 일구지 않을 뿐더러, 이러한 삶을 가르치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내지 못하니 스스로 가르칠 수 없고, 스스로 살아내지 않으니 스스로 배울 수 없겠지요.

 하나하나 짚자면, 최고경영자가 되어서야 사진을 읽는다면 참 늦습니다. 아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누구나 내 삶을 일구는(경영) 사람입니다. 누구나 여느 내 삶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안철수 님이 내 수수한 삶을 일구거나 사랑해 주지 않습니다. 박원순 님이나 이명박 님이 내 자그마한 삶을 일구거나 사랑해 주지 않아요.

 지식이나 이름값으로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힘줄이나 돈줄로 읽는 삶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 하나로 이야기를 할 때에 태어날 사진비평이요, 오로지 사랑 하나로 나누려 할 적에 샘솟는 사진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책은 사랑을 사진으로 담아 엮는 책입니다. (4344.11.2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골목길 사진과 골목건축 기록
 [찾아 읽는 사진책 47] 임석재,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2006)



 대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면서 서울 시내 이곳저곳 다리품을 팔며 사진을 찍어 글을 쓴 다음 책으로 내놓는 임석재 님이 2006년에 선보인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을 읽었습니다. 2006년에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어쩌면 골목길과 골목사람과 골목동네 보는 눈썰미가 이토록 얕을 수 있나 싶어 슬펐습니다. 2010년에 다시금 살피고 올 2011년에 찬찬히 되읽으면서 찬찬히 헤아립니다. 임석재 님 《서울, 골목길 풍경》은 책이름에 ‘골목길 풍경’이라 적었으나, 어느 사진도 ‘골목길 풍경’이 아닙니다. 사진쟁이 김기찬 님이 내놓은 《골목안 풍경》은 책이름 그대로 김기찬 님 사진삶이 ‘골목 안쪽에 깃드는 풍경’을 사랑하는 넋이 고스란히 담겨요. 그러나, 건축쟁이 임석재 님 《서울, 골목길 풍경》은 책이름만 ‘풍경’이자 ‘골목길’일 뿐, 막상 이 책에 실은 이야기는 모조리 ‘골목건축 기록’입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서울, 골목길 풍경》을 쓴 임석재 님은 260쪽에 이르러 비로소 ‘골목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길 사진’ 한 장 보여줍니다. 이때부터 서너 장쯤 ‘골목길 사진’을 보여줘요. 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 사진을 보여주는 자리에서는 글도 남다릅니다. “이 길을 걸으면 기분이 참 좋다(262쪽).” 하고 말해요.

 《서울, 골목길 풍경》은 279쪽으로 끝납니다. 건축쟁이 임석재 님이 겨우 ‘골목길 사진’을 느낀다 싶을 때에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제부터 무언가 이야기가 피어날 만하다 싶더니 그만 끝장입니다.

 임석재 님은 “살아 있는 생명의 아름다운 소리다. 거슬리게 크지도 않고 힘없이 작지도 않은 알맞은 크기의 소리들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길에 듣기 좋게 메아리친다(201쪽).”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골목동네 사람들 소리란 어떤 소리인가를 또렷하게 밝히지는 못해요. 골목건축을 살피러 다리품을 파는 학자답게 바지런히 기록을 합니다. 기록을 하느라 바빠 여느 골목사람처럼 골목동네에서 깃들어 살아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아요.

 곧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책은 “이 동네도 언젠가는 불도저로 밀리고 아파트 투기에 휩쓸 것이다. 단순히 내 개인사를 넘어, 기록을 해 두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95∼96쪽).”는 말마따나, ‘골목건축 기록’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임석재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시에 깃든 골목동네 가운데 몇 곳을 골라 ‘건축 기록’을 하자는 틀에서 골목동네를 살핍니다.

 왜 기록을 해야 할까요. 기록은 어떤 값을 하나요.

 두 아이를 낳아 옆지기와 살아가는 나는 네 식구 한삶을 기록해야 하나요. 네 식구 한삶을 사진이나 글로 적바림(기록)하는 일은 얼마나 값이 있나요.

 아니, 나는 내 아이들과 옆지기를 사진이나 글로 적바림해야 한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옆지기이기 때문에 저절로 사진을 찍고 아주 마땅히 글로 써요. 마음으로 새기는 아이들 삶과 옆지기 나날입니다. 마음으로 담는 아이들 목소리와 옆지기 노래예요.

 어느 누구도 이녁 아이들과 옆지기 삶을 적바림해 놓으려고 사진첩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이녁 아이들과 옆지기를 사랑하는 결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을 느끼기에 열 일을 젖히면서 사진첩을 마련합니다.

 그러니까, 임석재 님은 《서울, 골목길 풍경》 같은 책을 내놓을 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 “서울, 골목건축 기록”처럼 책이름을 붙여야지요. 골목길 삶과 사람과 이야기를 생각하던 사람이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책이름을 보고 이 책을 골라 장만한다면 참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밖에 없습니다. 골목삶과 골목빛은 한 가지도 스미지 못하는걸요. 온통 건축 이야기인데, 책이름 어디에도 ‘건축 연구 보고서’인 줄 밝히지 않아요. ‘건축 논문’인 책인데, 책이름과 머리말과 맺음말에는 마치 논문이 아닌 듯 껍데기를 씌워요.

 이야기 아닌 논문인 《서울, 골목길 풍경》이기 때문에, 건축쟁이 임석재 님은 골목동네 삶자락을 잘못 읽고 맙니다.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온통 ‘골목사람 삶하고 동떨어진 눈길로 내려다보는 슬픈 몸짓’투성이입니다. 몇 가지만 짚습니다.

 ㉠ “골목길이란 무엇인가. 친숙하고 누구나 다 아는 단어인 동시에 아스라한 추억의 단어다 … 물리적 관점에서 ‘아늑함’은 휴먼 스케일의 개념을 내포한다(7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길이 왜 추억이지요? 임석재 님이 다닌 골목동네 사람들한테 골목길은 ‘오늘 삶’, 이른바 ‘현실’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추억을 들이밀어서는 어떠한 이야기 하나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골목길이 ‘친숙’하다고 말할 자유는 있습니다만, 무엇이 어떠할 때에 ‘친숙’인지 궁금합니다.

㉡ “우리는 골목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이다(10쪽).” 하고 말하는데, ‘우리’라는 낱말을 덜어 주십시오. ‘우리’가 아니라 ‘나(임석재)’라고 밝혀야 옳습니다. 곰곰이 짚거나 찬찬히 헤아리지 않은 사람은 건축쟁이요 공무원이며 정치꾼이자 개발업자입니다. 골목사람은 늘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골목길은 삶터요 삶입니다.

㉢ “주의하라는 안전신호일 수도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읽히기도 한데, 아마 단순하게 반복되는 지루함을 덜어 주기 위한 배려인 듯하다(25쪽).” 하고 말하는데, 시멘트 계단에 형광페인트를 바른 까닭은 깊은 밤에 등불 빛살이 어둡거나 잘 안 들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이든 젊은 사람이든 시멘트 계단에 무릎이 부딪히거나 넘어지기 쉬워, 부디 잘 다니라는 뜻입니다. 형광페인트를 바르며 숫자를 적는 뜻은 밤에는 집집이 비슷비슷 보이니 숫자를 덧적으면 알아보기 한결 수월합니다. 술 한잔 알딸딸히 마신 분이라면 엉뚱한 집에 잘못 들어갈 수 있으니, 이런 숫자는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 “가게 앞에 평상을 깔아 놓고 테이블도 놓았지만 사람들은 물건만 사서 쌩하니 가 버릴 뿐 모이지 않는다(32쪽).” 하고 말하는데, 바쁜 사람은 그냥 지나칩니다. 아니, 다른 볼일 볼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모든 사람이 평상에 앉지 않아요. 평상에 앉는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임석재 님부터 평상에 앉으면 됩니다. 사람이 모이니 평상이 생기지, 평상이 있는데 사람이 안 모인다는 말은 앞뒤가 어긋날 뿐더러, 밑삶을 등지는 소리입니다.

㉤ “창과 문이 아무렇게나 뚫린 듯하면서도 구성미가 뛰어나다(39쪽).” 하고 말하는데, 사람들 살림집에 창과 문을 아무렇게나 뚫는 일은 없습니다.

㉥ “건축 전공자처럼 골목길의 공간적 우수함을 짚어내지는 못했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 앞에 모여 앉아 담소하는 다정스러운 모습이나 주고받는 이런저런 얘기 속에는 골목길의 의미를 정의해 줄 수 있는 키워드 같은 단서들이 있었다(146쪽).” 하고 말하는데, 학자들은 ‘골목길의 의미를 정의해 줄 수 있는 키워드’를 모르겠지요. 그리고, 이 열쇠말을 모르면서 ‘골목길의 공간적 우수함’을 짚는다고 해 보았자 무슨 훌륭함을 짚으려나요. 집과 삶과 사람과 길을 하나도 모르면서 무슨 건축 연구나 학문을 할 수 있나요.

㉦ “구성미는 문 몇 개가 어우러지면서 종합적 합으로 분할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몬드리안의 구성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문의 숫자는 많지도 않다 … 그러나 이것들이 내놓는 구성미는 절묘하다(184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집을 지은 사람은 몬드리안을 모르며 알 까닭이 없습니다. 몬드리안이 없어도 사람들은 골목집을 지어 골목동네를 이룹니다. 몬드리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예부터 사람들 살림집 나무문살 창호종이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몬드리안이 한국땅 살림집 나무문살을 보고 나서 ‘몬드리안 구성미’를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일, 골목길 사는 사람이 하루를 보내면서 한다고 하는 일은 분명히 시시한 것들이다. 이런 시시한 일 하나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무척 길다. 이러다 보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한두 시간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다 보니 무료함과 권태에 대한 면역력이 강해지고, 동네 경치를 즐길 여유도 생긴다. 느림의 미학이다(264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길이 시시한데 뭣 하러 다니는지 아리송합니다. 시시하니 심심하고, 심심하니 게으를까요. 학자들이 골목길 삶터를 가리켜 ‘느림의 미학’ 같은 그럴싸한 이름표를 갖다 붙이는 일은 참말 자유이기는 하나, 참말 골목길을 아름다이 바라보려는 뜻, 그러니까 ‘골목길 풍경’을 들려주고 싶으면, 제발 골목동네에 자그마한 살림집 하나 얻어서 열 해쯤은 살아 보셔요. 몸소 골목동네 사람, 그러니까 골목사람이 된 다음에 천천히 골목이웃으로 녹아들면서 골목길 빛살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셔요.

 학자나 학생 들은 으레 다리품(답사)을 팔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문화유적지를 다니고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다리품을 팝니다. 어떤 이는 한두 번 다리품을 팔고 나서 보고서나 연구서를 내놓습니다. 어떤 이는 수십 수백 차례 다리품을 팔고 나서 보고자료나 연구자료를 내놓아요. 그런데, 어떤 논문이나 책이라 하든 다리품을 천 번 만 번 판다 해서 제대로 바라본 이야기가 되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천 번 다리품을 팔 때보다 한 번 살아갈 때 한결 깊고 넓게 느끼니까요.

 바라본대서 알 수 없습니다. 바라볼 때에는 내 지식에 따라 내가 받아들인 모습만 생각하고 맙니다. 살며 느껴야 비로소 속알맹이를 짚어요.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림을 꾸리면서 사랑하는 나날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알아채려 힘쓰지 않는다면, 임석재 님이 앞으로 내놓을 책이든, 다른 사진쟁이가 골목길을 ‘바라보’거나 ‘들여다보’며 내놓을 책이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그칩니다. 유홍준 교수 답사기하고 다를 구석 없습니다. 답사기는 구경한 이야기로 끝나지, 살아가는 사랑이나 믿음이나 꿈으로 이어지지 못해요.

 잘 생각하고 깨달아 주기 바랍니다. 전쟁터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가 전쟁터를 답사해서 길을 잘 익히면 되겠습니까. 전쟁터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는 목숨을 내놓는 군인하고 똑같이 사진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아가 죽곤 합니다. 죽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길 풍경’ 사진이라고 밝히려는 책이라 한다면, 아주 마땅히 골목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다른 아무것도 쓸모없습니다. 학위도 학벌도 돈도 값진 장비도 덧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이라면 똑딱이로 찍든 1회용 필름사진기로 찍든, 그야말로 ‘골목을 말하고 밝히는 참답고 착한 사진’을 이룹니다.

 이 느낌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밝히는데, 2006년 봄에 이 사진책 《서울, 골목길 풍경》을 보고 나서 참말 속에서 불길이 치솟더군요. 이렇게 골목동네 터전을 깡그리 짓밟듯 얕잡을 수 있나 싶어 슬프더군요.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살아가는 인천 골목동네 삶자락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기로 다짐했습니다. 2010년 가을에 시골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는 이제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더는 못 찍습니다만, 2006년 4월부터 2010년 가을까지 날마다 이백 장 남짓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빚었어요. 내 삶터요 내 보금자리이며 내 이야기터이자 내 사랑터를 느끼며 살을 섞은 빛느낌을 지난 2010년 여름에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았습니다. 가만히 돌이키자니, 임석재 님이 《서울, 골목길 풍경》을 내놓지 않았으면 나는 골목길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생각할 일이 없었을 테고, 인천 골목동네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일굴 일 또한 없었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나한테는 고마운 책인 《서울, 골목길 풍경》입니다. (4344.11.25.쇠.ㅎㄲㅅㄱ)


― 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사진·글,북하우스 펴냄,2006.3.30./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