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창비시선 250
노향림 지음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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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쓰기
[시를 말하는 시 4] 노향림,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 책이름 :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 글 : 노향림
- 펴낸곳 : 창비 (2005.7.20.)
- 책값 : 6000원

 


  새벽 일찍 별을 보고 학교에 가는 대입 수험생 푸름이는 새벽별 학교길을 늘 겪으면서 이러한 삶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누군가는 새벽길을 걸어가며 참말 새벽별을 올려다봅니다. 도시에서는 밤별이고 새벽별이고 구경하기 어렵지만, 저 하늘 어딘가에 별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길을 걸어요. 누군가는 새벽길이건 밤길이건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더라도 하늘을 빛내는 별을 느끼지 않거나 살피지 않아요.


  별을 보고 싶은 사람은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별을 봅니다. 햇볕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도시에서 일하든 시골에서 일하든 햇볕을 누립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루고, 삶을 이루는 대로 사랑을 빚어요.


  하루에 몇 분 해를 쬐더라도 해바라기예요. 하루에 몇 초 별을 본다 하더라도 별바라기예요. 꼭 몇 시간 해바라기나 별바라기를 누려야 즐겁지 않아요. 다문 몇 분이나 몇 초라 하더라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마음그릇이어야 참으로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마음그릇이 아니라면, 하루 내내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리라 느껴요.


.. 충남 당진의 깊은 산골로 / 선산이 옮겨 간 뒤 수북한 잡초 속에 / 몇기의 무덤이 앉아 있다 / 그 발치 아래 자투리땅은 감자밭이다. // 그곳에서 캐낸 감자 한 상자가 / 내가 사는 고층 아파트까지 올라왔다. / 붉은 황토가 묻은 감자알들은 / 임부의 배처럼 튼실했다. / 속에다가 무슨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지 / 모두가 크고 둥글었다 ..  (감자를 삶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지난날을 떠올립니다. 언제나 새벽별을 바라보며 집을 나섰고, 밤별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어느 날 학교에서 생각합니다. 한창 자율학습을 하던 저녁 아홉 시인가 열 시쯤이었을 텐데, 새벽 다섯 시 반에 집을 나서서 밤 열두 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삶이라면, 집에서 보내는 겨를은 고작 다섯 시간밖에 안 될 텐데, 이마저 거의 잠을 잘 뿐,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하고 얼굴 마주치기조차 어렵구나 싶더군요. 이런 삶이 얼마나 내 삶이라 할 만할까 궁금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대학교에 갈 수 있나 궁금했어요. 이렇게 중학생 때부터 집식구 누구하고도 말을 못 섞고 얼굴조차 못 보며 여섯 해 푸른 나날을 보내야 대학교에 간다면, 대학교란 무슨 뜻이나 값이 될까 궁금했어요. 푸른 여섯 해를 오로지 대학입시 시험공부에만 바쳐야 한다면, 이토록 푸르고 싱그러운 나날 내 꿈과 사랑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중학생 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둘레 동무들은 이러한 대목을 놓고 생각을 기울이지 않아요. 마음을 틀 만한 동무일까 여기며 이런 이야기를 살며시 풀어놓고 보면, 다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야, 대학교에는 가야지.’였어요. 그래서, ‘대학교에 꼭 가야 하니?’ 하고 물으면 ‘대학교에 안 가면 어떻게 하려고?’ 하고 되물어요. ‘대학교에 안 간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니?’ 하고 말하면 ‘그건 아닌데.’ 하면서도, ‘내가 대학교에 가지 않으면 너하고 나는 동무가 아니냐?’ 하고 말할 적에는 동무들이 딱히 대꾸하지 않아요.


  모두들 대학바라기가 되도록 길들여지는 나날이라 할까요. 삶바라기가 아닌 대학바라기가 되고, 사랑바라기가 아닌 입시바라기가 되며, 꿈바라기가 아닌 숫자바라기가 되고 말아요.


  교사들이 동무들을 이렇게 내몰았을까 헤아려 보는데, 아마 여느 교사들 또한 스스로 성적바라기나 성과바라기로 구르지 않았으랴 싶어요. 이를테면, 담임을 맡은 이들은 학생 몇을 대학교에 보냈느냐 하는 성적이나 성과나 실적을 바라보았겠지요. 과목 교사는 이녁이 맡은 과목을 배우는 아이들이 시험성적이 얼마나 오르느냐 하는 숫자를 바라보았겠지요.


.. 입주민 환영 플래카드 아래 / 발꿈치 들고 흔들거리던 수국, 부처꽃, 붓꽃들 / 이사꾼들에 짓밟혀 뭉개어졌다. / 빈 터 뒤 휴게소가 저 스스로 뒤집어져 / 폐허이다. / 저 스스로 해체된 슬픔이다 ..  (도원일기)


  햇볕 한 줌 쬘 수 없던 고등학교 수험생으로 지내는 동안 늘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또 대학생 가운데에도 서울에서 제법 이름난 대학교 학생이 되고, 이렇게 둘레 사람 모두 바라 마지 않는 ‘대학생 신분’을 거머쥐는 내가 된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이 신분을 누리거나 펼치거나 쓰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를 마친 뒤에는 ‘졸업장’을 이력서 같은 데에 안 쓸 수 있겠느냐 하고, 또는 대학교를 그만두어 아예 졸업장이 없도록 하며 살아가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다 같이 휩쓸리는 물결이 도무지 내키지 않았어요. 모두들 스스로 생각을 멈추고 대학입시 시험공부만 외우는 모습이 도무지 반갑지 않았어요.


  열다섯 푸름이는 열다섯 푸름이한테 걸맞는 삶과 꿈과 사랑을 배우면서 빛내야 한다고 느꼈어요. 열일곱 푸름이는 열일곱 푸름이한테 알맞는 삶과 꿈과 사랑을 익히면서 빛내야 한다고 느꼈어요. 나는 나이를 하나하나 손으로 꼽으면서 이러한 나이에 들어맞을 만한 삶과 꿈과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했어요. 오직 ‘나’이고 싶지 ‘고2’나 ‘고3’이고 싶지 않았어요. 내 이름으로 내 삶을 누리고 싶지, ‘36번 학생’이나 ‘45번 학생’ 같은 숫자라든지 ‘몇 등 학생’이나 ‘몇 점 학생’이라는 숫자로 나를 부르는 일은 기쁘지 않아요.


.. 바다에 사람을 놓아주는 일이 그의 일이었다. / 죽은 사람들은 왜 바다로 가는 것일까. / 육체에서 영혼에서 벗어나면 사람은 비로소 자유로운 / 물결이 되는 것일까. 바다 깊이 심해어가 되는 것일까 ..  (바닷가에서 보낸 한철)


  시험이란 시험일 뿐입니다. 대학교란 대학교일 뿐입니다. 시험을 치러 성적이 이러하다면 성적이 이러하다뿐, 성적이 사람을 말하지 않아요. 백일장이나 신춘문예 같은 자리가 있어, 누군가 백일장이나 신춘문예에 뽑힌다 한다면, 그저 뽑히는 일일 뿐, 어떤 글잔치 자리에서 글 한 꼭지 뽑힌다 해서 그 글이 훌륭하거나 놀랍지 않을 뿐더러, 그 글을 쓴 사람이 훌륭하지도 놀랍지도 않아요.


  아주 마땅한 소리인데, 글은 그 글을 쓴 사람 삶이에요. 그 글을 쓴 사람 삶은 좋다 나쁘다 가르지 못해요. 멋지다 안 멋지다 금긋지 못해요.


  더 아름답다 할 삶은 없어요. 더 어여쁘다 할 사람은 없어요. 더 아리땁다 할 사랑은 없어요.

  삶이면 다 삶이요, 사람이면 다 사람이고, 사랑이면 다 사랑이에요.


  시험성적이 잘 나온다 해서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대학교에 붙었다 해서 좋은 아이가 아니에요. 스스로 삶을 착하게 일굴 때에 착한 아이예요. 스스로 사랑을 좋게 보살필 때에 좋은 아이예요.


  좋고 나쁨이란 없지만, ‘좋은 나날’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슬기를 갈고닦는 이들은 참말 ‘좋음’을 깨달으면서 누리고 빛내요. 기쁘고 안 즐겁고 하는 금이란 없지만, ‘참다운 기쁨’이란 무엇인가 헤아리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이들은 참말 ‘기쁨’을 알아채면서 환히 밝히면서 누려요.


.. 애기똥풀꽃! 하고 속삭여주자 / 하늘은 어느덧 배경음악처럼 / 은은히 깔리고 미풍에 흔들리는 / 또다른 푸른 커튼이 되어주었지요 ..  (맑은 날)


  삶은 스스로 짓습니다. 내 삶은 내가 짓지, 다른 사람이 지어 주지 않습니다. 밥을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먹고 밥그릇을 스스로 치우듯, 내가 오늘 하루 누리는 삶은 언제나 스스로 짓고 스스로 누리며 스스로 마감해요.


  글은 스스로 짓습니다. 내 글은 내가 짓지, 다른 사람이 지어 주지 않아요. 내가 짓는 삶에 따라 글을 지어요. 내가 짓는 생각에 따라 내 글을 내가 지어요. 누리는 하루에 따라 글이 달라져요. 나누는 사랑에 따라 글은 언제나 달라져요.


  삶짓기를 누가 누구한테서 배우지 못하듯, 글짓기를 누가 누구한테서 배우지 못해요. 소설짓기이든 수필짓기이든 시짓기이든, 어느 누구도 아무한테도 가르치지 못해요.


  가르친대서 배우지 못하는 글이요 꿈이며 사랑이에요. 배우려 한대서 가르쳐 줄 수 없는 글이고 꿈이면서 사랑이에요.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가 온통 글이에요. 똥을 누고 빨래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하루가 온통 글이에요. 아이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업고 들마실을 하고, 아이를 새근새근 재우는 하루가 온통 글이에요.


.. 베란다 화초에 물을 준다. / 물을 흠뻑 받아먹고 / 굶주렸던 화분들이 지상의 풀밭마냥 / 싱그럽다 ..  (살아 있는 날의 슬픔)


  이론이란 허울이라고 느껴요. 글을 잘 쓰는 이론이란 참말 허울이라고 느껴요. 글을 다루는 이론, 이른바 문학비평이나 문학평론이란 모두 허울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스스로 짓는 삶에 따라 스스로 짓는 글이기에, 이러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읽은 글이 어떠한가 돌아보면서 찬찬히 적바림하는 글’ 또한 ‘비평과 평론도 삶을 녹아내어 쓰는 글’이 될밖에 없어요. 독후감이든 비평글이든 서평이든 모두 ‘삶글’일밖에요.


  삶글이란 느낌글이요 생각글이며 사랑글이에요. 삶글을 이론에 맞추어 쓰지 못해요. 이론에 맞추어 쓰는 글이란 삶글이 아니고, 느낌글도 생각글도 사랑글도 아니에요.


  이론에 맞추어 시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주의주장에 맞추어 시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문예사조에 발맞추어 시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러한 싯말은 무슨무슨 이야기를 나타낸다고 하는 비유나 은유 같은 틀에 따라 시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러한 싯말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는 상징이나 반어 같은 굴레에 따라 시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리는 삶을 쓰는 글이에요. 빚는 삶을 쓰는 글이에요. 즐기는 삶을 쓰는 글이에요. 바라보는 삶을 쓰는 글이에요. 어깨동무하는 삶을 쓰는 글이고, 사랑하고 싶으며 참말 사랑하는 삶을 쓰는 글이에요.


.. 바람 한점 없이 놀 꺼진 서녘 하늘 / 이팝꽃 핀 사이 불쑥 얼굴 내민 고봉밥별 / 그 흰 쌀밥 푸려고 깨금발을 내딛었다가 그만 / 돌부리에 넘어지고 말았네 ..  (개밥바라기별)


  노향림 님 시집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창비,2005)를 읽습니다. 시를 쓰는 노향림 님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싯말에 알알이 담는가를 헤아립니다. 작은 시집 한 권에 노향림 님 삶이 얼마나 깃들었을까 헤아립니다. 이 글월 저 글월에 노향림 님이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누리는 삶이 얼마나 스며들었을까 헤아립니다.


  시를 쓰는 사람 스스로 이녁 삶을 사랑스레 담았다고 느끼면, 이녁이 쓴 시는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 스스로 이녁 삶을 고달프게 담았다고 느끼면, 이녁이 쓴 시는 고달프리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삶을 이끕니다. 삶에서 생각이 태어납니다. 생각이 사랑을 일깨웁니다. 사랑이 생각을 길어올립니다. 생각이 꿈을 꽃피웁니다. 꿈결에 따라 생각결이 날갯짓을 합니다.


  해가 들려주는 소리는 깨진 종소리일 수 있습니다. 듣는 사람이 이렇게 느끼면 이러한 소리가 참으로 들려요. 해가 들려주는 소리를 포근한 할머니 밥짓는 소리로 듣는 사람이 있으면, 참말 이러한 소리가 들릴 테지요.


  가슴을 열어 시를 써요. 가슴을 빛내어 시를 써요. 가슴을 살살 어루만지며 시를 써요.


  엊저녁, 다섯 살 큰아이를 품에 안고 한가위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달달 참 밝구나 하고 노래하는데, 보름달 밑으로 살별 하나 반짝 하고 지나갔어요. 마침 큰아이는 다른 데를 쳐다보다가 살별을 못 보았어요. 그런데, 내가 본 빛살이 살별인지, 아니면 지구별 바깥에서 누군가 찾아오며 지나가는 빛꼬리인지는 알 길이 없어요. 그래도, 나는 반짝 하고 빛난 어여쁜 살별이라고 느꼈어요. 보름달 바라보며 큰아이가 착하고 예쁘며 씩씩하다 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지나갔으니, 우리 아이는 한가위 보름달과 함께 이 이야기들을 하나둘 가슴에 품으며 새근새근 잠들었는지 몰라요.


  바야흐로 동이 터요. 뿌옇게 낀 안개가 온 멧자락을 덮어요. 소나무에도 굴참나무에도 잣나무에도 안개가 허옇게 내려앉아요. 오늘 하루는 어떻게 즐길까 하고 생각하며 아침을 열어요. (4345.10.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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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계사 시인선 41
신현림 지음 / 세계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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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를 사랑해
[시를 노래하는 시 30] 신현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 책이름 :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 글 : 신현림
- 펴낸곳 : 세계사 (1994.6.1.)
- 책값 : 5500원

 


  선선한 가을 아침은 따스한 가을볕과 함께 새롭게 열립니다. 가을이 무르익으며, 이제 새벽 다섯 시 반을 지나고 여섯 시 가까울 때까지 퍽 어둑어둑합니다. 여섯 시 반쯤 되어야 비로소 환하게 날이 샙니다.


  저녁에는 다섯 시 즈음 되면 선선한 바람이 감돕니다. 말리는 이불이나 빨래가 있으면 네 시 반쯤 모두 걷어야 합니다. 처마 없는 마당에 두는 물건은 저녁부터 이슬이 내려앉습니다. 아침 아홉 시가 넘어도 밤새 내린 이슬을 맞은 들풀과 나뭇잎마다 물방울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나물비빔을 하려고 들풀을 뜯으며 손끝으로 풀이슬을 느낍니다.


.. 후후 / 당신은 여지껏 환상을 보고 있었다 / 어쩌면 生과 死란 없다 // 홀연히 사라질 나는 / 공중에 불타는 구름막대기 ..  (bottle woman)


  가을볕은 누구만 더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을볕은 시골 들판만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을볕은 도시 한복판 높다란 빌딩숲도 사랑합니다. 고속도로를 누비는 자동차도 사랑합니다. 원자력발전소 지붕과 화력발전소 지붕도 사랑해요. 가을볕은 푸른기와 이은 집도 사랑하고, 천막으로 이은 집도 사랑해요. 누구한테나 골고루 따순 사랑을 드리우는 가을볕입니다.


  가을쑥이나 가을나물은 누구를 더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사람한테만 반가울 가을나물이 아니에요. 도시에서 살림하는 사람한테도 반가울 가을나물이에요. 가을꽃도 가을나무도, 모든 사람한테 고운 빛을 베풀고 싶으리라 느껴요.


.. 제 한 줄의 시가 누군가에겐 동병상련 술이 되게 / 그대 장칼로 내 가슴 거듭거듭 휘저어주시기를 ..  (황혼의 지구병동)


  사랑하기가 가장 쉬우며 즐겁고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사랑받기가 가장 반가우며 기쁘며 좋다고 느낍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할 때에 더없이 빛난다고 느껴요. 이른바 평화도 평등도 민주도 통일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할 때에 천천히 이루어지리라 생각해요.


  미워하기란 참 어렵고 힘들며 괴로우리라 생각합니다. 싫어하거나 못마땅히 여기기 또한 참말 까다롭고 고단하며 슬프리라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삶이란 하루하루 웃음으로 누리는 삶이에요.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란 하루하루 맑고 밝게 일구는 삶이에요.


  가을에는 가을사람이 됩니다. 겨울에는 겨울사람이 됩니다. 봄에는 봄사람 되고, 여름에는 여름사람 돼요. 언제나 가장 좋게 꿈을 꾸고, 늘 가장 살가이 사랑을 키우며, 노상 가장 곱게 말을 빚어요.


.. 금연방송을 비웃는 듯 / 내 앞의 사내가 계속 담배를 피웠다 / 담배연기는 얼어가는 파도처럼 / 머리를 휘감아 죄었다 문득 담배를 / 그의 위법의 법을 숨통을 비벼끄고 싶었다 / 신도림 역을 떠날 때였다 / 하모니카 부는 장님이 오고 있었다 / 껌팔이 소녀가 구호상자 든 노인이 / 허기진 손들이 장례식의 화환처럼 몰려왔다 / 내 것과 다른 가난을 사는 그들이 낯설었다 / 아무도 그들의 가난에 관심갖지 않았다 / 궁핍의 냄새가 지겨웠다 화가 치밀었다 ..  (호소의 表裏)


  가을날 들새는 가을철에 걸맞게 바쁩니다. 겨울날 멧새는 겨울철에 걸맞게 바빠요. 사람들은 가을과 겨울은 어떤 철을 헤아리고 어떤 날씨를 살필까요. 들새한테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온통 다른데, 사람한테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스스로 얼마나 다르다고 느낄까요.


  아침과 저녁이 다를까요. 낮과 밤이 다를까요. 새벽과 어스름이 다를까요. 구름과 햇살이 다를까요. 바람과 무지개가 다를까요. 달과 별이 다를까요.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삶이 한결같이 새로우면서 새삼스럽다고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오늘 하루를 맞이하면서 내 삶을 한결같이 새롭고 새삼스럽게 돌보는 바탕은 어디에 있을까요.


.. 바다는 엄청 큰 가야금이다 / ―둥기당당 두둥기당당― / 젖은 가야금소리 / 어머니 긴 머리칼처럼 진하고 따뜻해라 / 바다란 말처럼 부드러워라 아아 아파라 ..  (나는 물고기가 될테야)


  밥을 합니다. 식구들 먹을 밥을 합니다. 밥상을 차립니다. 식구들을 부릅니다. 밥을 먹는 사람은 밥을 하는 사람 마음을 알까요. 거꾸로, 밥을 하는 나는 밥을 먹는 식구들 마음을 알까요.


  나는 내 살붙이나 이웃한테 말을 건넵니다. 나는 내 말투가 어떠한가를 잘 헤아릴까요. 나한테서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요 마음이며 생각인가를 환하게 깨달을까요.


  밭자락에서 풀을 뜯으며 풀포기한테 고맙다고 말합니다. 너도 먹고 너도 먹어야겠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오래오래 푸르게 자라서 나와 살붙이 모두한테 좋은 밥이 되어 고맙다고 말합니다. 가을 늦게까지, 또 겨울까지, 이 밭자락 풀들이 싱그럽고 기운차게 돋으면 참 기쁘겠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새가 노래합니다. 풀내음이 날립니다. 풀벌레가 속삭입니다. 아이들이 칭얼거립니다. 빨래하고 집일하는 내 발자국 소리가 콩콩 울립니다.


.. 여자인 것이 싫은 오늘, 부엌과 / 립스틱과 우아한 옷이 귀찮고 몸도 귀찮았다 / 사랑이 텅 빈 추억의 골방은 비에 젖는다 / 비오고 허기지면 푸근할 내 사내 체온 속으로 / 가뭇없이 꺼지고 싶다는 공상뿐인 내가 싫다 ..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사랑하기에 오늘 다시금 눈을 뜰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안 사랑한다면 오늘 나는 눈을 못 뜬 채 어디론가 사라질까 가누어 봅니다.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사랑하려는 따스한 넋이기에 새롭게 기운을 차릴 수 있는가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이 모두를 안 사랑하는 차갑거나 매몰차거나 메마른 몸가짐이라면, 내가 발을 디딘 이곳은 무척 쓸쓸하며 어둡겠지요.


.. 그야말로 나는 아름다운 악기가 돼 / 이 모든 것을 사·랑·해라고 노래하면 ..  (철로변의 가을)


  신현림 님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세계사,1994)를 읽습니다. 신현림 님은 1994년에 이 시집을 낼 적과 스무 해 지난 2014년에 서로 어떤 모습일까 그려 봅니다. 다시 스무 해가 지난 2034년이 되면 또 어떤 모습이 될까 그려 봅니다. 1994년에 처음 나온 시집을 2012년에 처음 읽는 나는, 또 앞으로 스무 해 지난 2032년이나 다시 스무 해 더 지난 2052년에 어떤 눈길과 눈빛과 눈높이로 내 삶을 마주할까 그려 봅니다.


  나는 지겨운 이 땅에 불길 활활 오르는 고무신짝 던지는 사람일까요. 나는 즐거운 이 터에 불길 활활 오르는 풀짚으로 불을 밝히며 멧길을 걷는 사람일까요.


.. 밥 한 사발엔 / 해뜨는 바다와 조상의 살냄새와 단비가 / 매일 일하다 저무는 쓰라린 손그림자가 있다 ..  (밥 한 사발)


  나는 내 삶이 지겹거나 따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슬프거나 고단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기쁘거나 놀랍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흐르는 삶이 스며들고, 나부끼는 삶이 노래한다고 느껴요. 푸른 물결 되어 춤을 추고, 파란 하늘이 무지개 되어 손짓을 하는구나 싶어요.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느낄까, 왜 이처럼 생각할까, 하고 돌아보곤 하는데, 온누리에는 딱히 좋음이나 싫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바라봅니다. 좋거나 싫거나로 가를 수 없이, 좋으면서 싫고 싫으면서 좋달까요. 즐거우면서 서운하고 서운하면서 즐겁달까요.


  자전거로 언덕길을 오르며 허벅지가 터질 듯하지만 온몸에 땀이 쏟으면서 즐겁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즐거움을 느끼다가는 허벅지가 터질 듯하며 고단합니다. 마음은 두 갈래가 아니라 하나요, 이때에는 이렇고 저때에는 저렇지 않습니다. 늘 똑같이 움직여요. 그래서, 진보와 보수라든지, 왼쪽과 오른쪽이라든지, 어떻게 가리거나 따질 수 있을까 알쏭달쏭하다고 느껴요. 지구별에서 왼쪽으로 왼쪽으로 왼쪽으로 가면 어디로 갈까 싶고,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또 어디로 갈까 싶어요. 어디로도 안 가고 한 자리에 있대서 ‘한 자리(중립)’가 아니라, 왼쪽에서 볼 때에는 오른쪽이 되고, 오른쪽이 볼 때에는 왼쪽이 돼요. 한편, 나와 얼굴을 마주한 아이는 나한테 왼쪽이 아이한테 오른쪽이요, 아이한테 왼쪽이 나한테 오른쪽이에요.


.. 북풍이 거칠게 몰아친다 / 나는 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 깨닫기 위해 시를 쓰는지 몰라 ..  (북풍과 은장도)


  신현림 님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아무것 아닌’ 숨결일까 궁금합니다. 또는, 아무것 아니기에 모든 것일까 궁금합니다. 깨달으려고 시를 쓰는 사람은 없지 싶어요. 깨닫기에 시를 쓰고, 시를 쓰다가 깨닫지 싶어요. 깨달으려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겠지요. 깨닫기에 살아가고, 살아가며 깨달아요. 깨달으려고 밥을 짓지 않고, 깨닫기에 밥을 지으며, 밥을 지으며 깨달아요.


.. 결혼해서 애를 낳아봐야 인생을 안다구요? / 당신은 인생 좀 아세요? ..  (활짝 핀 살코기의 공허함을 아세요?)


  아이들이 개구지게 놉니다.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마음껏 놉니다. 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넣는다면, 나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개구지고 얼마나 힘차며 얼마나 맑은 넋인가를 낱낱이 깨닫지 못했으리라 생각해요. 하루하루 새롭게 살아가는 아이들 모습에 비추어 내 삶을 헤아리고, 내 삶에 비추어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요.


  저녁거리로 텃밭에서 돗나물을 큰아이하고 뜯습니다. 내 손은 아이 손이고, 아이 손은 내 손입니다. 아이가 뜯는 돗나물은 싱그럽게 바구니에 담기고, 내가 뜯는 돗나물 또한 싱그럽게 바구니에 담겨요. 이 돗나물은 벌써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집 밥거리가 됩니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며 줄기를 뻗는 돗나물을 날마다 이곳저곳 돌아보며 조금씩 뜯어 먹습니다. 돗나물은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돗나물이 돼요.


  쑥을 뜯을 적에도, 모시풀을 뜯을 적에도, 부추풀을 뜯고 까마중풀을 뜯으며 망초풀을 뜯을 적에도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으레 망초풀을 어찌 먹느냐고 하지만, 나는 ‘왜 못 먹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왜 못 먹을까 하고 생각한 지 퍽 오래 흐르고서야 비로소 망초풀 한 닢 뜯어 잘근잘근 씹었고, 망초풀은 망초풀맛이 나네, 하고 생각하면서 나물비빔을 하거나 풀물을 짜서 먹습니다.


.. 우리는 탐구하지 않을 때 시간을 잃어버린다 / 밭갈고 씨뿌리는 농부의 손길을 배우지 않을 때 / 내 안에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 없을 때 / 시간을 잃어버린다 / 우리가 저 강물 저 나무그늘에게 고마워할 때 / 세월의 무덤에 환한 창문을 보리라 / 더 이상 시간을 놓치진 않으리라 / 강렬한 오늘을 살기 위해 나는 사랑하련다 / 내 가족과 벗들을 겨울이 오는 도시를 / 내게 주어진 상황과 고달픔을 / 서럽게 죽고 사는 모든 것을 안으련다 ..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창문, 입시생을 위해)


  이제 물을 덥힙니다. 큰아이를 씻길 생각입니다. 작은아이도 같이 씻길까요. 그러고 나서 나도 씻을까요. 나는 내 몸을 씻으며 빨래를 할 수 있겠지요. 날마다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이렇게 조금씩 손빨래를 하면 빨래가 천천히 알맞게 마르고, 굳이 기계빨래를 하지 않아도 좋아요. 날마다 틈틈이 물을 만지면서, 이 물방울이 내 몸과 내 삶에 얼마나 고마우며 즐겁고 반가운가 하고 생각해요. 물을 만지고 물을 마셔요. 물을 다루고 물로 씻겨요. 물을 헤아리고 물을 누려요.


  물을 따숩게 덥히며 내 마음을 따숩게 덥힙니다.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녀온 다음 찬물로 내 몸을 씻으면서 머리를 시원하게 식힙니다. 좋은 마음이 되고 착한 머리가 되며 슬기로운 몸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맑은 눈길이 되고 밝은 눈빛이 되며 고운 눈높이가 되자고 생각합니다.


  씻기 앞서, 두 아이는 또 개구지게 놉니다. 아마, 씻고 나서도 다시금 개구지게 놀겠지요. 말끔히 씻은 다음에도 땀을 낼 테고, 이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흐르며 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클 테며, 나 또한 아이들 곁에서 사랑이 무엇인가 그리면서 크겠지요. 이 모두를 사랑하는 하루란 밝고 따스합니다. (4345.9.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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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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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글쓰기
[시를 말하는 시 3]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책이름 :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글 : 허수경
- 펴낸곳 : 문학동네 (2011.1.20.)
- 책값 : 8000원

 


  어떻게 살아가는 재미로 시를 쓸까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는 사랑으로 시를 쓸까 헤아려 봅니다.


  누군가는 시를 머리로 쓰겠지요. 누군가는 시를 이리저리 글과 지식을 엮어서 쓰겠지요. 누군가는 살아가는 하루가 고스란히 시로 태어나겠지요. 누군가는 꿈꾸는 삶이 하나둘 시로 거듭나겠지요.


  시 아닌 다른 글이라 해서 이러쿵저러쿵 찧고 빻듯 쓰지 못합니다. 시험문제를 만들면서 문제 글을 쓸 적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글을 만들거나 쓰지 못합니다. 아이들마다 따분하다고 일컫는 ‘교장선생님 아침모임 말씀’이라 한들 아무렇게나 만들거나 써서 읽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내놓는 글이나 경찰총장이 내놓는 글이나 대법원 판결글이라 해서 아무렇게나 만들거나 쓰지 못해요.


  그리운 벗한테 띄우는 글월을 아무렇게나 꾸미거나 쓰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어버이한테 띄우는 글월을 아무렇게나 짜깁기하거나 쓰지 못합니다. 반가운 옆지기한테 띄우는 글월을 아무렇게나 때우거나 쓰지 못합니다.


  어떤 글이라 하더라도 내 모든 삶을 기울여서 씁니다. 어떤 글이라 하더라도 내 모든 마음이 찬찬히 스며듭니다.


.. 유전인자 관리하던 실험실도 잠기고 그 안에서 태어나던 늑대들도 잠기고 / 나의 도시 나의 도시 울고 그 안에서 그렇게 많은 전병이나 만두를 빚어내던 이 방의 식당도 젖고 ..  (나의 도시)


  밤과 새벽에 빗줄기가 들었습니다. 밤에는 잠결에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마당에 뭐 내놓아서 비에 젖을 만한 무언가 있나, 하고. 없지? 하고 생각하며 다시 차분히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새벽에는 잠결에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새벽에 비가 와서 마당이 젖으면 빨래를 해서 널기 나쁜데.


  하늘에 낀 먼지를 씻고, 나무들 잘 자라라며, 비가 내려요. 하늘을 덮은 때를 벗기고, 풀들 잘 크라며, 비가 찾아와요.


  사람들은 나무와 이웃하면서 비를 즐깁니다. 사람들은 풀과 벗삼으며 비를 누립니다.


.. 차비 있어? / 차비는 없었지 / 이별은? / 이별만 있었네 ..  (수수께끼)


  오늘은 모처럼 빨래기계를 씁니다. 여러 날 바깥마실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빨래감이 많습니다. 내 어버이와 옆지기 어버이, 곧 아이들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만나러 멀디먼 길을 버스와 기차에서 시달리느라 모두들 고단하고 지칩니다. 손빨래를 하며 몸을 풀고 마음을 가다듬을 만합니다만, 오늘은 늦잠을 자고 싶어요.


  늦잠을 자더라도 새벽에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게으름을 부리더라도 아침에 마른표고버섯 냄비에 넣고 물에 불립니다. 음성 할머니가 표고버섯을 손수 길러 따고는 예쁘게 말려서 봉지에 담아 주셨습니다. 마른표고버섯을 한손으로 움켜쥐어 냄비에 넣으며 내 할머니 손길을 떠올립니다. 내 할머니는 어떤 마음을 이 표고버섯에 담아서 기르고 따서 갈무리했을까요. 어떤 꿈을 지으면서 이 표고버섯을 예쁘게 말리셨을까요. 내 할머니가 품은 마음과 빚은 꿈은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솔솔 스며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별도 구워 먹으리라 했어요 / 70년대 초반 / 가장 어린 나 가운데 하나가 별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 뒤에서 내려다보면 먹다 만 고구마 형상이었어요 /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곰별자리였어요 ..  (고구마별)


  먼 바깥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택시길에 참으로 홀가분합니다. 기차길을 끝내고 버스길을 끝낸 우리 식구는 읍내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옵니다. 짐이 무겁고 몸이 무거우며 군내버스가 끊기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택시를 타는 사람은 으레 할머니랑 할아버지라 하지만,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굴리지 않으니 즐겁게 택시를 탑니다. 굳이 우리가 자가용을 몰 까닭은 없으니까요. 애써 우리가 자가용을 굴리느라 이쪽에 마음을 기울일 까닭은 없으니까요.


  택시에서는 에어컨 아닌 창문바람을 쐽니다. 오랜만이로구나 싶습니다. 여러 날 기차와 시외버스에서 에어컨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창문바람이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택시는 고흥읍을 벗어나 포두면을 달립니다. 포두면을 벗어나 도화면으로 접어듭니다. 포두면을 달릴 적까지도 창밖 풀숲에서 풀벌레 노랫소리를 못 듣습니다만, 도화면으로 접어드니 바야흐로 풀벌레 노래잔치입니다. 달리는 택시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가 온몸과 온마음으로 훌훌 스며듭니다.


  눈을 틉니다. 귀를 틉니다. 마음을 트고 몸을 틉니다. 그동안 갇히거나 막히거나 닫힌 구멍을 틉니다.


.. 석유를 찾기 위해 피곤한 사내들이 바닷속으로 철의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구멍을 뚫어야 지속되던 문명이 있었다고, 우주의 먼 곳에서 우주의 역사를 기록하던 빛이 있었다 // 콩나물시루도그곳에두었어요어떤콩은썩어서뿌리조차아기처럼젖을보채다잠이들었지만 ..  (오후)


  옆지기는 아이들을 씻깁니다. 나는 배앓이를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차리기 힘들 듯해 읍내 중국집에 들렀는데, 옆지기가 건넨 찬콩국수 가락이 속에서 부글거리며 괴롭힙니다. 찬국수도 동치미도 안 받는 내 배는 여러 날 바깥밥·바깥바람에 휘둘리다가 마지막에 찬기운 머금은 국숫가락을 만나니 펑 하고 터진 듯합니다.


  아이고 배야 하며 똥을 누다가 문득, 이렇게 뱃속을 시원스레 털면 한결 느긋하게 잠들면서 새 하루를 반가이 누리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배앓이는 나를 보살피려고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은 몸을 씻고 나서도 뛰어놉니다. 아이들도 고단한 몸일 텐데, 새롭게 땀이 돋을 만큼 뛰어놉니다. 참 놀라운 아이들이네, 하고 생각하다가, 나도 아이들 나이였을 적에는 그야말로 놀라운 아이들답게 끝없이 놀고 뛰고 날고 기며 살았잖니, 하고 떠오릅니다.


  놀 수 있을 때까지 놉니다. 놀다가 까무룩 잠들 때까지 놉니다. 놀 수 있는 모든 힘을 씁니다. 놀다가 까무룩 잠들도록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놉니다.


.. 무리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무리에 속할 이들의 안녕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살아남기 위한 미덕. 흩어지면 육식동물의 표적이 되므로 우리라는 종이 이 지상에서 태어나던 처음부터 배려라는 미덕을 우리는 본능처럼 갖는다. 그 본능은 인간이 우리를 사육화했던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  (카라쿨양의 에세이)


  시를 쓰는 마음을 헤아립니다. 아이들과 같은 넋이 되어 시를 쓰는 이라면, 아이들이 온힘을 다 내어 놀듯, 온힘을 다 내어 시 한 줄을 쓰겠지요. 아이들 보살피는 어버이와 같은 넋이 되어 시를 쓰는 이라면, 아이들 노는 양을 말끄러미 지켜보며 하루를 더 기운내어 열고 누리듯, 씩씩하고 다부지게 시 한 줄을 쓰겠지요.


  어느 넋이 좋고 어느 넋이 나쁘다고 따질 수 없습니다. 그저 저마다 스스로 즐기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가난을 즐기고 재산을 즐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쳇바퀴를 즐기고 한갓짐을 즐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바쁜 톱니바퀴를 즐기고 따사로운 사랑을 즐깁니다. 즐기는 결이 고스란히 시로 태어납니다. 즐기는 꿈이 하나하나 시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즐기는 넋이 시나브로 시라는 옷을 입고 환하게 빛납니다.


.. 아마도 내가 당신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잠 속에 든 당신 옆에 내가 누워 있겠는가. 이제 당신을 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  (여기는 그림자 속)


  허수경 님은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문학동네,2011)이라는 시집 하나 내놓습니다. 책이름에 ‘빌어먹을’이라니, 스스로 무엇을 ‘빌어먹을’이기에 이렇게 시를 내놓을까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참말 허수경 님으로서는 ‘빌어먹을’밖에 없어 이렇게 시를 쓰고 시집을 내겠지요. 스스로 ‘차가운 심장’이라 느끼며 삶을 맞아들여 누리니까 ‘차가운 심장’ 이야기를 시로 쓰고 책으로 내겠지요.


.. 저녁에 흙을 돋우다가 나비를 보았네 / 저녁에 흙을 부드럽게 만져 / 막 나오는 달리아를 편하게 하려다가 / 나비를 보았네 ..  (저녁에 흙을 돋우다가)


  허수경 님 스스로 흙을 만질 때에는 ‘흙을 만지는’ 시를 씁니다. 허수경 님 스스로 누군가와 헤어질 때에는 ‘헤어지는’ 시를 씁니다. 눈물을 흘리는 날에는 ‘눈물 흘리는’ 시를 씁니다. 공항에 머물 적에는 ‘공항에 머물던’ 시를 써요.


  더 좋은 삶이란 없고 더 나쁜 삶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일 뿐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이 스스로 즐기는 시로 태어납니다.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기에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는 시를 쓰겠지요. 그리운 누군가를 잊기에 ‘그리운 누군가’를 잊는 시를 쓰겠지요.


  나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랑 복닥이면서 요모조모 살림을 꾸립니다. 곧, 내가 시를 쓸 적에는 고즈넉한 시골마을 삶을 드러내고, 두 아이랑 복닥이는 사랑을 드러내며, 요모조모 꾸리는 살림을 빛냅니다. 그래요, 나는 이 삶을 좋아하기에 이렇게 살아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마음껏 누리면서 내 웃음꽃을 이곳에서 길어올려요. 내가 바라는 꿈은 내가 좋아하는 삶터에서 누리는 이야기 그대로 이루어져요. 시를 쓰는 사람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4345.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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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민음의 시 142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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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깨문 복숭아
[시를 노래하는 시 29] 신달자, 《열애》

 


- 책이름 : 열애
- 글 : 신달자
- 펴낸곳 : 민음사 (2007.10.12.)
- 책값 : 7000원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복숭아를 깨물어 먹습니다. 맛나게 깨물어 먹습니다. 두 아이는 능금도 깨물어 먹습니다. 어금니까지 곱게 난 큰아이는 복숭아도 능금도 혼자서 척척 잘 깨물어 먹습니다. 어금니가 아직 돋지 않은 작은아이는 앞니로 깨물 수는 있으나 제대로 씹지 못합니다. 어버이가 오물오물 씹어서 숟가락에 받은 다음 건네야 먹을 수 있습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밥을 먹습니다.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을 쥡니다. 큰아이는 제 밥그릇에 담긴 밥을 푸고, 제 국그릇에 담긴 국을 뜹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입으로 씹은 밥을 먹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숟가락에 국을 뜨거나 국그릇을 들고 입에 대 주어야 국을 마실 수 있습니다. 돌을 지나면서 물잔을 혼자 들고 마실 수는 있는데, 스스로 알맞게 맞추지는 못해 물을 왈칵 쏟곤 합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 하는 양을 바라보며 저도 혼자 숟가락을 들고는 밥을 푸고 싶습니다. 작은아이는 스스로 국을 뜨고 싶습니다. 숟가락을 들어 이리저리 휘젓습니다. 밥상은 이내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지르면서 숟가락질을 익히고 젓가락질을 익히는걸요. 두 아이 나란히 온 방에 온갖 것을 늘어놓으면서 놀고, 이렇게 놀면서 크는걸요.


.. 나 알몸으로 누워 산을 받아들이면 / 산 하나 품어 나오리 ..  (저 산의 녹음)


  아이들이 복숭아를 잘 먹고, 옆지기와 나도 복숭아를 잘 먹으니, 우리 집 어느 한켠에 복숭아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복숭아를 먹으며 씨앗이 나올 적에 심어야지 생각하는데, 으레 잊고는 그냥 버립니다. 나물비빔을 좋아하면 텃밭에 온갖 푸성귀가 자라도록 해서 즐겁게 뜯어서 먹으면 됩니다. 옥수수를 좋아하면 밭 가장자리에 옥수수를 줄줄이 심으면 됩니다. 고구마를 좋아하면 조금 너른 땅뙈기를 마련해서 고구마줄기를 하나씩 묻으면 돼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심습니다. 목련도 심고 장미도 심으며 동백도 심습니다. 양파를 잘 먹으면 양파를 심습니다. 마늘을 좋아하면 마늘을 심어요. 양파나 마늘이 돈이 될 만하니 심는다 하면 쓸쓸합니다. 돈을 벌어 어떤 즐겁고 좋은 일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할 때에는, 돈만 벌어서는 부질없으리라 느껴요. 즐겁게 돈을 벌고 즐겁게 돈을 쓰며 삶을 즐겁게 누릴 때에 아름다운 하루가 된다고 느껴요.


  두 아이 노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지켜봅니다. 두 아이는 끝없이 놉니다. 쉬지 않고 놉니다. 등판이 땀으로 젖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흐릅니다. 콧잔등에 땀이 맺힙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놀이에 빠지니 좋고, 놀이에 흠뻑 빠져 즐거우며, 놀이에 온통 사로잡히니 재미나는구나 싶어요.


.. 아무 미련 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는 모습 편안하다 ..  (코스모스 영가靈歌)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싫어할 만한 일을 굳이 하지 않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좋아할 만한 일을 합니다. 달갑지 않은 일을 즐거이 하려는 아이는 없습니다. 못마땅하거나 안 내키니는 일을 애써 하려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가장 즐거우며 재미나고 신나는 일을 합니다. 아이라면 마땅히 스스로 가장 좋아하며 사랑하고 멋진 일을 해요.


  그런데, 어른도 아이와 마찬가지예요. 스스로 가장 즐겁다 여길 일을 할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가장 재미나다 여길 일을 해야 재미나요. 스스로 가장 좋아한다고 여기는 일을 해야 좋겠지요.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마음이 될 일을 할 때에 사랑을 나눌 수 있어요.


  좋아하지 않는데 돈을 벌 수 있어 한다면 얼마나 고될까요. 사랑하지 않으나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찾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북돋우는 일을 누립니다.


.. 그 똘똘하고 뿌듯한 하늘이 다섯 살이 되는 새해에도 나는 그저 /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세뱃돈 줄게 고추 좀 보자 / 강아지가 물고 갔음 어째 좀 보자 한 번만 보자 보채는 나에게 / 이놈 눈 딱 부라리고 날 쳐다보며 하는 말 / 할머니는 변태야! ..  (변태)


  아직 쉬를 옳게 가리지 못하는 작은아이는 곧잘 이불에 쉬를 눕니다. 이불은 쉬로 젖으니 틈틈이 햇볕에 말리고, 퍽 자주 빨래합니다. 이불 빨래를 손으로 하기도 하지만, 빨래기계를 장만한 뒤로는 빨래기계한테 맡깁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제금난 지 열일곱 해인데, 빨래기계는 제금난 지 열일곱 해째에 비로소 장만했습니다. 올봄까지 이불도 기저귀도 모두 손수 빨래했어요.


  이불을 꾹꾹 발로 밟으며 빨 적에, 기저귀와 숱한 옷가지를 손으로 복복 비비며 빨 때에, 가만히 생각에 젖습니다. 이 옷을 입고 이 이불을 뒤집어쓰는 살붙이는 하루를 즐겁게 누렸을까. 정갈히 빨아서 예쁘게 갠 옷을 입을 살붙이는 새 하루를 새로운 넋으로 맞이할까.


  새로운 날은 참말 새롭습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오늘과 같은 하루도 없습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즐겁게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궂은 일이 잦았건 기쁜 일이 넘쳤건, 하루는 하루대로 반갑다고 여깁니다.


.. 아파트 일 층인 내 방 창에는 / 녹음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 사월부터 연둣빛 땡땡이 무늬가 어른거리더니 / 서너 달 지나며 창은 짙푸린 비단으로 출렁거렸다 ..  (바라본다는 것)


  이제 유월과 칠월에 이은 여름철 팔월이 저뭅니다. 꼭 달력 날짜 때문은 아니나, 팔월 막바지, 이른바 늦여름에 이르면 밤날씨가 살짝 서늘합니다. 팔월 삼십일 밤, 곧 팔월 삼십일일로 넘어서는 밤에는 집안 온도가 26도로 내려옵니다. 오월이 끝나고 유월로 접어들 적부터 본 적 없는 온도입니다. 구월 어귀에 비로소 후끈후끈 무더운 밤이 사라집니다. 바야흐로 가을일까요.


  들판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벼는 누렇게 익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휘젓고 지나갔어도 씩씩하게 서며 누렇게 익습니다.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몰 때면 으레 곳곳에서 메뚜기를 봅니다. 아, 메뚜기로구나.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곳 시골마을은 지난해까지 풀약을 꽤 많이 쳤다는데, 올해부터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며 이제껏 치던 풀약을 꽤 많이 줄였다고 해요. 그러나 풀약을 아예 안 치지는 않습니다. 치기는 치되 좀 적게 칠 뿐입니다.


  풀약을 아예 안 친다면 메뚜기를 더 많이 만나겠지요. 풀약이 없는 논이랑 밭이라면 사마귀와 여치와 풀무치와 방아깨비 모두 마음껏 노닐겠지요.


  개구리가 살아가니 뱀도 살아갑니다. 뱀이 살아가니 소쩍새도 살아갑니다. 들쥐가 살고 까마귀가 삽니다. 숱한 멧새와 들새가 살아갑니다. 멧비둘기와 참새는 아직 덜 여문 나락 알을 먹고 싶어 자꾸 들판으로 내려앉습니다. 모두들 제 밥을 찾습니다. 저마다 제 삶을 누립니다.


.. 강의실은 구 층에 있었다 / 지하 삼 층 차고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 한순간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일이 / 나에겐 예삿일이다 / 높은 곳을 죽 올라가는 그 재미로 / 계단을 잊은 지 오래다 ..  (버들잎 강의)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하던 나이였을 적을 곧잘 되새기곤 합니다. 내 어릴 적 내 어버이는 방학 때면 나와 형을 데리고 시골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내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였기에 아버지는 여름과 겨울에 긴 방학을 맞습니다. 방학철이면 으레 시골집에서 열흘이든 스무 날이든 묵습니다. 시골집에서는 시골 할머니가 차리는 밥을 먹습니다. 시골집에서는 시골 이웃을 만나 시골살이를 누립니다.


  이때 나는 메추리가 알을 낳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고, 메추리알이 왜 메추리알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시골집 사촌형을 따라 메추리집을 털 적에 어미 메추리가 빽빽 울면서 우리 머리에 똥을 지르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도시에서 먹는 메추리알은 플라스틱 꾸러미에 촘촘히 놓이는 알인데, 이 메추리알이란 메추리가 낳는 제 새끼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했어요. 다른 목숨을 내가 먹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닭우리에서 닭이 낳은 알을 꺼낼 적에도 달걀이란 목숨이지 그냥 먹을거리가 아니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갓 낳은 말랑말랑하며 따스한 목숨을 먹으면서 내가 오늘 하루 또 신나게 뛰놀 기운을 얻는다고 느꼈어요.


  바람소리를 떠올립니다. 시골마을은 온통 바람소리입니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떠올립니다. 시골마을은 온통 풀벌레 노랫소리입니다. 그래, 이때 메뚜기가 보이면 곧장 잡아서 병에 모으거나 밟아서 죽이라 했어요. 메뚜기가 벼를 다 갉아먹는다 했으니까요. 애꿎은 메뚜기는 도시 아이 하나 잘못 만나 애꿎게 숨을 잃습니다. 방아깨비와 사마귀를 나란히 한손에 잡아 애꿎게 싸움을 붙입니다. 방아깨비가 파르르 떨고 사마귀가 먹이를 잡으려고 안달하는 기운이 손가락을 거쳐 마음속 깊은 데까지 쩌렁쩌렁 울립니다. 내가 무얼 보자고 이런 짓을 하나.


  방아깨비를 잡아 손가락 사이에 끼면, 그야말로 방아를 찧습니다. 한참 방아를 찧다가 똥을 지립니다. 똥을 지리면 그제서야 놓아 주는데, 똥까지 지린 방아깨비는 기운을 잃어 풀숲에서 거의 꼼짝하지 못합니다. 방아 찧는 모습을 구경한다며 넋을 잃은 어린 나는, 방아깨비가 똥을 지려 놓아 준 다음,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풀숲에서 천천히 숨을 잃는 모습을 보며 또 생각합니다. 내가 무얼 알자고 이런 짓을 하나.


.. 나는 문득 /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얀 밥을 짓고 싶어 ..  (우리들의 집)


  길을 가다가 뒤집어진 벌레를 보면 그냥 지나치려 하다가도 우뚝 멈춥니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벌레가 이 손가락을 붙잡고 일어서도록 합니다. 물에 빠진 무당벌레를 건져 풀숲으로 옮깁니다. 거미줄에 갓 걸린 나비나 잠자리를 보면 거미줄을 스윽 끊습니다. 거미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거미줄을 새로 치겠지요. 그래도 거미야 미안하구나. 너한테 걸맞는 다른 먹이를 기다리렴.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엊그제 우리 집 시멘트블록담 한쪽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시멘트블록이 고샅길에 흩어졌기에 한쪽으로 치우는데, 시멘트블록 안쪽 구멍에 개미집이 있더군요. 수만에 이르는 개미는 집을 잃었다며 아우성입니다. 네 녀석들이 이 속에서 또아리를 트느라 시멘트담이 허술해졌을까.


  빨래대를 받치려고 마당에 놓은 큰돌을 옮길 적에도 개미집을 봅니다. 그저 큰돌 밑일 뿐인데, 이곳을 저희 집으로 삼는 개미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흙땅 돌밑에 집을 지어야지, 시멘트바닥 돌밑에 어설피 집을 꾸리면 어떡하니.


..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쓸어내리는 것을 / 자위행위라고 말합니다만 / 나의 손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 내 손이 내 몸의 성감대를 찾아가는 것을 / 내 손이 내 몸의 흐느끼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 야릇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  (손)


  옆을 돌아보면 모두 내 이웃입니다. 둘레를 살펴보면 모두 내 동무입니다. 이웃집도 이웃집이요, 풀과 나무와 꽃도 이웃입니다. 무화과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모두 이웃입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모과나무 모두 동무입니다.


  맑게 갠 파란 빛깔 하늘을 흐르는 티없이 하얀 구름도 내 이웃입니다.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도 내 동무입니다. 우렁차게 우는 매미와 숱한 풀벌레도 내 이웃입니다. 조잘조잘 지저귀는 들새와 멧새 모두 내 이웃입니다.


  저마다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저마다 좋은 밥을 생각합니다. 저마다 좋은 하루를 빚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 날을 마주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새 이야기를 꾸립니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오늘은 어떤 밥을 차릴까. 오늘은 아이들이랑 무얼 하면서 놀까. 복숭아는 다 먹었는데 어떤 열매를 장만해 볼까. 산들산들 부는 아침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 나는 너에게 지금도 내가 아는 귀여운 / 여자의 이름을 달아 주고 싶은데 / 사랑을 축하하며 / 예쁜 꽃다발을 가슴에 안겨 주고 싶은데 / 세상의 정보를 가장 먼저 주우려고 / 컵라면을 손에 든 채 / 너는 밤새 컴퓨터 화면만 뜨겁게 마주하고 있다 ..  (딸의 하이힐을 수선하며)


  신달자 님 시집 《열애》(민음사,2007)를 읽습니다. 한자말로 된 책이름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열애’가 뭘까?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국어사전에는 두 가지 한자말이 나옵니다. 먼저, ‘悅愛’가 있고, 말뜻은 “기쁜 마음으로 사랑함”입니다. 다음으로, ‘熱愛’가 있으며, 말뜻은 “열렬히 사랑함”입니다. ‘열렬(熱烈)’은 또 뭔가 싶어 국어사전을 새삼스레 뒤적이니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이나 태도가 매우 맹렬하다”라 합니다. 그러면 ‘맹렬(猛烈)’은 또 뭐람? 다시 국어사전을 뒤적여 “기세가 몹시 사납고 세차다”라는 말뜻을 얻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열애’란 “기쁜 사랑”이나 “뜨거운 사랑” 둘 가운데 하나가 되겠군요.


  아무튼, 나는 둘 다 좋습니다. 사랑은 기뻐서 좋습니다. 사랑은 뜨거워서 좋습니다. 나는 둘 모두 좋습니다. 기쁘게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뜨겁게 불을 피워 둘레를 따사로이 살찌울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나는 내가 받는 사랑으로 따스한 나날입니다. 나는 내가 주는 사랑으로 따스한 나날입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따스하고, 사랑을 주면서 따스합니다. 따스한 사랑을 느끼기에 싯말이 태어납니다. 따스한 사랑을 나누기에 시노래를 짓습니다.


  사랑이 있어 시를 씁니다. 사랑을 느껴 책을 읽습니다. 사랑을 꿈꾸어 삶을 짓습니다. 사랑을 노래해 밥을 나눕니다. 사랑을 어깨동무하며 지구별이 따사롭습니다. (4345.8.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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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세탁 애지시선 12
박영희 지음 / 애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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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밥을 먹는다
[시를 노래하는 시 28] 박영희, 《즐거운 세탁》(애지,2007)

 


- 책이름 : 즐거운 세탁
- 글 : 박영희
- 펴낸곳 : 애지 (2007.5.10.)
- 책값 : 8000원

 


  저녁에 두 아이 재우고 나서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느긋하게 책을 조금 읽다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저녁은 더없이 조용합니다. 두 아이는 새근새근 자는데 머리카락과 팔뚝 언저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에 틈틈이 부채질을 해서 땀을 식힙니다. 내 몸에도 부치고 아이들 몸에도 부칩니다. 날마다 몇 차례씩 아이들 씻기고 나도 씻습니다. 씻을 적마다 손빨래를 합니다. 기계빨래를 할 만하지만, 더운 여름날은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에 옷가지를 적신 다음 비누를 문지르고, 복복 비벼서 헹굴 무렵 다시 몸에 물을 붓고 씻으며 빨래를 북북 밟아 헹구면 한결 시원합니다. 물은 적게 쓰면서 몸을 씻고 빨래까지 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래저래 물을 자주 만지니 손에서 물기 마를 틈이 없습니다. 손이 조금 보송보송해질라면 작은아이가 쉬를 누어 기저귀를 갈거나 걸레로 방바닥을 훔칩니다. 오줌을 훔친 걸레는 그때그때 새로 빨래합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아이들 씻기고 보면 하루 내내 물이랑 산다 할 만합니다. 손에 물기가 가시지 않으니, 종이로 빚은 책은 펼칠 엄두를 못 냅니다.


.. 된장에 찍어먹으면 딱 좋을 / 풋고추 대롱대롱 달려있고 // 긴 싸움 이겨낸 늠름한 얼굴로 / 석편아짐 좋아하는 가지 몇 실하게 매달려있고 // 찬바람 불면 할마씨들 입맛 돋울 / 대추알들 따글따글 열려있고 ..  (장마 지나간 옥상)


  사내와 가시내가 평등과 평화를 이루어야 아름답다 하는 오늘날이지만, 어느 집으로 마실을 가더라도, 찻상이든 밥상이든 으레 가시내가 차립니다. 사내가 찻상이나 밥상을 차리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서로 집일을 하면서 함께 찻상이나 밥상을 내오는 일 또한 몹시 드뭅니다.


  우리 집으로 마실을 오는 손님은 언제나 아이 아버지인 내가 차리는 밥상을 받습니다. 나는 바지런히 도마질을 하고 밥이랑 국을 끓이며 반찬을 올립니다. 온몸에 땀이 흠씬 돋으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새 없습니다.


  내가 밥상을 맛나게 잘 차리는지 그닥 맛없게 차리는지 잘 모릅니다. 즐겁다 싶은 밥상인지 그저 그렇다 할 밥상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밥을 차리면서 내 가장 좋은 기운이 서리도록 하고 싶다 생각합니다. 내 가장 고운 사랑으로 차려야 나도 식구들도 즐겁게 먹고 즐겁게 기운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먼먼 옛날 옛적 살림집 어머니들은 ‘언제나 밥상 차리기를 도맡’으면서도 밥 한 그릇 한 번 잘못 내오면 꾸중을 듣거나 쫓겨난다 했어요. 숱한 집일을 도맡으면서도 어쩌다 한두 차례 무언가 잘못을 하면 꾸지람을 듣거나 쫓겨난다 했어요. 참으로 수많은 어머니들이 아버지들한테 두들겨맞았어요.


  어느 날 문득 생각합니다. 옛날 옛적 어머니들은 ‘소박 맞는다’고 했으나, 나는 ‘이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참말이지,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돌보며 밭일까지 다 하는데, 가시내를 그토록 못살게 굴거나 모질게 대접하던 가부장 봉건 사회란 얼마나 끔찍한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 옮겨가는 자리마다 꽃 피어나신다 ..  (어머니)


  가부장 봉건 사회 그늘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여느 살림집에도, 국회의사당에도, 여느 회사나 공공기관에도, 학교에도, 온통 가부장 봉건 사회 그늘이 드리운다고 느낍니다.


  왜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걷지 못할까요. 왜 서로 사랑하는 꿈을 꾸지 못하나요. 왜 서로 아끼며 보살피는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가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갈려야 할 까닭은 없어요. 모두 같은 사람인걸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쪽은 키가 작고 저쪽은 키가 클 테지요. 그런데, 내가 ‘눈을 뜨고’ 바라보면 키가 크거나 작지, 내가 ‘눈을 감고’ 마주하면 키란 덧없어요. 얼굴도 몸매도 덧없어요.


  어른도 어린이도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목숨이에요. 저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착한 꿈빛이에요.


.. 가만, 저 하모니카는 내 눈에도 익다 / 정 노인은 저 하모니카 덕에 세상구경 / 여러 번 했었다 / 합주단 만들어 여수로 대구로 서울로 대전으로 / 교회초청으로 청주까지 다녀왔었다 / 그러나 예약해 두었다는 호텔에서 잠은 자지 못했다 / 가는 곳마다 퇴짜를 놓았다 / 그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이었다 ..  (소록도, 그 섬의 죽음)


  내가 눈 아닌 마음으로 마주하고, 귀나 코나 입 아닌 마음으로 다시금 마주한다고 하면, 누구보다 나부터 내 생각과 삶이 달라지리라 느껴요. 참말 이런 울타리 저런 그늘을 뒤집어씌운 채 바라보지 말고, 꾸밈없이 마주하면서 가장 깊고 너른 마음과 마음으로 마주한다고 하면, 언제나 나부터 새롭게 거듭나는 예쁜 사람이 되리라 느껴요.


  내가 나이면서 내가 나인 줄 모르는 까닭은 참다운 나를 생각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구나 싶어요. 내가 나인 줄 옳게 깨닫고 내가 나로구나 하고 슬기롭게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는, 참말 늘 환하게 웃고 밝게 말하며 싱그러이 움직이는 목숨이 되리라 느껴요.


  좋아하는 빛을 누리려고 지구별에 태어났어요. 사랑하는 길을 걸으려고 지구별에 왔어요.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해맑게 빛나려고 지구별에서 살아가겠지요. 흐뭇하게 손을 맞잡으면서 아리땁게 노래하려고 지구별 사람이 되었겠지요.


.. 불도저 지나간 자리는 잡초만 무성하고 / 담배를 꺼내 문 아버지는 / 멍하니, 앞산만 건너다 보시고 / 어쩔끄나 어쩔끄나 이 노릇을 어쩔끄나 / 불도저 지나간 바퀴자국 없애느라 / 어머니는 뼈마다 앙상한 몸으로 / 자근자근 옛 집터를 고르고 계셨습니다 ..  (그 자리)


  아침 햇살 곱게 받는 마당 가장자리 풀포기를 바라봅니다. 이웃 아저씨는 이 풀포기 잎사귀를 보고는 처음에 수박풀이라고 말했는데, 하루하루 흐를수록 ‘어쩐지 수박풀 같지는 않은데’ 싶었습니다. 잎사귀 커지고 꽃이 피며 암꽃이 아물며 열매 맺는 모양새를 보아 하니, 오이도 아니요 아무래도 수세미 같구나 싶습니다.


  꽃잎이 노랗기로는 호박이랑 오이랑 수박이랑 수세미랑 한 갈래예요. 모두 꽃이 소담스레 큼지막합니다. 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춥니다.


  그나저나 우리 집 마당 한켠에서 수세미는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합니다. 수세미 씨앗을 꽤 곳곳에 뿌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 포기만 자랄 줄 몰랐어요. 아니, 마음으로는 예쁘게 심고는 잊었달까요. 내가 잊은 한 가지를 이 풀포기는 예쁘게 떠올리고는 날마다 고운 봉오리를 보여준달까요.


.. 한 두둑에서는 속이 들고 / 그 옆 두둑에서는 철이 든다 // 한 두둑은 한 겹 한 겹 속이 차고 / 옆 두둑은 쑥쑥 밑이 든다 ..  (무와 배추)


  노란 꽃봉오리 곁에는 하얀 꽃봉오리가 가득합니다. 부추꽃입니다.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날마다 신나게 부추풀을 꺾어서 나물비빔을 먹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한 끼니만큼 그때그때 꺾어서 먹었어요. 오늘은 이쪽에서 꺾고 이듬날은 저쪽에서 꺾고 하면서 먹었어요. 꺾인 부추풀은 이내 새 잎을 올렸고, 새 잎이 어느 만큼 길고 굵어지면 다시 꺾었어요.


  그런데 이 부추풀은 끝까지 씩씩하게 새 잎을 올려요. 그러고는 이렇게 꽃대까지 올린 다음 몽우리를 맺고, 몽우리를 터뜨려 하얀 꽃봉오리를 활짝 베풉니다.


.. 동이나 호, 명함을 모르고 찾아 갔다가는 / 이게 누구네 동네고 저게 누가 사는 집인지 헛갈려 알 수 없는 것이다 ..  (시집)


  좋은 밥을 먹습니다. 좋은 꽃을 봅니다. 좋은 바람을 쐽니다.


  바람이 조용한 한여름 아침나절, 좀 덥구나 하고 생각하니 쏴아 하고 바람이 불며 후박나무 잎사귀며 부추풀 꽃잎이며 건드립니다. 이웃집 밭뙈기 고구마잎을 건드리고 옆집 무논 볏포기를 건드립니다.


  바람은 어떤 빛깔이거나 무늬이거나 냄새인지 느낄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 바람은 들을 지날 때에는 들바람이 되어 들내음을 베풀어요. 바람은 멧골을 지나며 멧바람이 되어 멧내음을 베풀어요. 바람은 바다를 지나며 바닷바람이 되어 바닷내음을 베풀어요. 바람은 밭뙈기 사이를 불며 밭바람이 됩니다.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며 나무바람이 됩니다. 풀 사이를 흔들고 지나며 풀바람이 돼요.


  부추풀을 건드리는 바람은 부추바람입니다. 후박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은 후박바람입니다. 빨래줄을 건드리고 빨래를 건드리는 바람은 빨래바람입니다.


  바람결에 온갖 냄새가 담깁니다. 바람결에 온갖 무늬가 그려집니다. 바람은 하늘빛을 새삼스레 바꾸어 놓습니다. 구름은 하얗기도 하고 잿빛이기도 합니다. 같은 하양이더라도 다 다른 하양입니다. 바람은 구름 모양을 끝없이 바꾸어 놓습니다. 바람은 따숩다 못해 뜨거운 햇살을 받는 풀포기를 하나하나 건드리면서 이 더위에 더욱 씩씩하게 크라며 기운을 북돋웁니다.


.. 시간이 너무 짧다 / 그 많은 역들은 어디에 몸을 숨긴 걸까 // 술래가 보이지 않는다 / 이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역도 그리 많지 않다 / 저 여승무원은 안전할까? ..  (KTX를 탔다)


  박영희 님 시집 《즐거운 세탁》(애지,2007)을 읽습니다. 빨래는 즐겁습니다. 밥도 즐겁습니다. 아이도 즐겁고, 옆지기도 즐겁습니다. 그야말로 모두 즐겁습니다.


  하루 품삯 5만 원짜리 일도 즐겁고, 품삯 따로 받지 않는 집일도 즐겁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를 바라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어쩜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겠느냐 싶으나, 두 아이와 살아가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사람은 몸뚱이에도 밥을 넣지만, 마음에도 밥을 넣어요. 사람은 몸으로도 밥을 먹으나 마음으로도 밥을 먹어요.


  몸으로만 밥을 먹고 마음으로는 밥을 안 먹는다면, 사람 스스로 곧은 사람으로 사랑스레 살아가지 못해요. 곧, 밥을 먹고 사랑을 먹습니다. 국을 먹고 믿음을 먹습니다. 반찬을 먹고 꿈을 먹습니다. 이윽고, 밥을 나누고 사랑을 나눕니다. 국 한 그릇 서로 나누고 믿음 한 자락 골고루 나눕니다. 반찬 한 점 다 함께 나누며, 꿈 한 꾸러미 다 같이 나눠요.


.. 새들은 대체 어디까지 쫓겨난 것일까? ..  (그 산에는 새가 울지 않는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랑을 빚습니다. 사랑을 생각하기에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사랑을 일굽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젖을 물고 잠듭니다. 어머니젖은 몸을 살찌우는 밥이면서 마음을 보살피는 사랑입니다. 식구들은 서로서로 밥상 앞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음을 살찌웁니다.


  들새는 들에서 들밥을 먹고, 멧새는 메에서 멧밥을 먹습니다. 사람이 있고, 들이 있으며, 새가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풀이 있으며, 벌레가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숲과 바다와 하늘이 있습니다. 저마다 예쁜 밥을 먹으며 예쁜 목숨을 아낍니다. (4345.8.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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