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지에 핀 꽃 삶의 시선 14
조혜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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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이 시를 써야 아름답다
― 조혜영, 《검지에 핀 꽃》

 


 - 책이름 : 검지에 핀 꽃
 - 글쓴이 : 조혜영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5.1.5)
 - 책값 : 5000원

 


 문학은 작품으로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이름난 이가 새롭게 펴낸 글이라 하더라도, 이녁이 쓴 글에 힘이 빠지거나 맥알이가 없거나 풋풋함과 튼튼함이 사라지면, 이러한 글은 읽거나 읊을 맛이 사라져요. 글재주는 남고 울림은 사라진다고 하겠습니다.


.. 노동과 시를 바라보는 눈에도 /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게야 /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줄곧 / 시를 써온 한 시인에게 / 유명한 평론가에 교수는 / 일하면서 시 쓰기는 /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며 / 시 쓰는 일과 노동자의 삶은 /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고 감탄 연발이다 ..  (편견-노동시)


 나는 이름값으로 쓰는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손재주로 쓴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목소리로 외치는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이름표나 딱지를 붙인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돈을 버는 시를 읽지 못합니다.

 

 어쩌면 나는 시를 읽는 생각이 좀 한쪽으로 치우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시를 읽으며 내 생각이 어느 한골로 치우쳤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나는 내 삶으로 시를 읽을 뿐이니까요. 나는 내가 일구는 삶에 비추어 누군가 쓴 시를 읽으니까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러 가지 치우친 생각(편견)이 있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나 장애인이나 여성이나 학력 낮은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을 치우친 눈길로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곰곰이 따지면, 하나하나 돌아보면, 이러한 눈길이나 이러한 생각은 딱히 치우쳤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꾸리는 삶에 따라 바라보는 눈길일 뿐이거든요.

 

 성차별을 하는 사람은 입으로만 성차별을 하지 않아요. 삶으로 성차별을 합니다. 이주노동자를 깔보는 사람은 입으로만 이주노동자를 깔보지 않아요. 이녁 삶으로 이주노동자를 깔봐요. 장애인 권리나 여성 권리를 생각하거나 아끼거나 돌보는 사람은 목소리로만 아끼거나 돌보지 않아요. 삶으로 예쁘게 얼싸안거나 어깨동무하면서 아끼거나 돌봐요.

 

 다시금 곰곰이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문학을 옳게 못 바라보지 않나요. 사람들은 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잊거나 잃지 않나요.

 

 문학은 글 잘 쓰는 사람이 써야 하지 않아요. 시나 소설은 글쓸 겨를이 많은 사람이 써야 하지 않아요. 전문가라든지, 대학교수라든지, 평론가라든지, 글재주꾼이 써야 하는 문학이 아니에요. 일하는 사람이 일하는 삶을 담는 글이면 돼요. 살림하는 아줌마가 살림하는 나날을 글로 펼치면 돼요. 흙을 만지는 일꾼은 시골자락 흙삶을 글로 보여주면 돼요. 기름밥 먹는 일꾼은 기름밥 먹는 나날을 고스란히 글로 꽃피우면 돼요.


.. 요즘 세상에 / 결핵이 무슨 병이냐고 / 보건소에 가 약이나 갖다 먹으라는데 / 나는 그 결핵에 걸렸습니다 ..  (흔적)


 말하듯이, 살아가듯이, 일하듯이 쓰는 시입니다. 구김살이 있을 까닭도 없지만 꾸미거나 감추거나 보탤 까닭이 없이 쓰는 시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1970년대에 첫 시집을 내놓을 때에 “못난 놈은 못난 놈끼리 논다” 하고 노래했던가요? 그래, 못난 놈은 못난 놈대로 못난 동무하고 놀면 돼요. 가난한 놈은 가난한 놈대로 가난한 동무하고 놀면 돼요. 사랑을 찾는 이는 사랑을 찾는 이대로 사랑을 찾는 동무랑 놀면 돼요. 아름다운 나날 꿈꾸는 이는 아름다운 나날 꿈꾸는 이대로 아름다운 나날 꿈꾸는 동무랑 놀면 돼요.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착하게 살아가고픈 이와 동무를 삼으며 어울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하며 살고픈 이를 벗으로 여겨 예쁘게 어울리고 싶습니다.

 

 좋은 꿈으로 좋은 삶 일구고 싶어요. 좋은 꿈으로 좋은 삶 일구는 시를 읽고 싶어요. 좋은 꿈으로 좋은 삶 일구는 시를 읽으며 내 보금자리를 고이 보듬고 싶어요.


.. 공공기관에 와서 공공근로를 하면 / 공공연하게 비웃음 받을 수 있지 // 할머니는 너무 늙었어 / 노인네들은 집에 가서 애나 보지 / 젊은애가 아직 워드도 할 줄 모르고 / 재주가 없으면 이쁘기나 할 것이지 / 차 심부름이나 시켜야지 뭐 // 공공근로 주제에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네 / 사내자식이 대학까지 나와 가지고 / 에-라이 돈이 아깝다 / 공무원 월급 깎더니 / 필요도 없는 공공근로 보내서 골칫거리야 / 뭐 시켜먹을 일이 있어야지 ..  (공공근로 1)


 경상도 안동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권정생 님은 으레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공책에 적으면, 그게 바로 시인데, 어머니들이 그걸 모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 얘기를 권정생 할아버지를 뵐 적마다 들었고,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글에서 곧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권정생 할아버지를 곁에서 모셨거나 가까이 섬겼다고 하는 분들 가운데 당신 아이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적바림하면서 시꽃을 피운다든지, 당신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찬찬히 적바림하면서 시열매를 맺는 모습을 아직 못 봅니다.

 

 아, 그러고 보면, 참말 그러고 보면, 나한테는 내 아이가 있지만, 나는 내 어머니한테는 아이예요. 나는 내 어머니 앞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이야기가 곧장 시꽃이 되는 셈이에요. 내가 내 어머니하고 주고받는 말마디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싯말이에요. 내가 내 아버지하고 나누는 말마디는 고스란히 말꽃이요 말열매요 시꽃이며 시열매예요.

 

 그러니까, 공공근로 일자리 하나 얻어 공공기관에 드나들면서 그곳 공무원들이 뇌까리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받아적을 때에도, 이러한 말마디는 고스란히 시가 돼요. 삶이 말이고, 말이 삶이에요. 삶이 시요, 시가 삶이에요.


..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 그들의 자질구레한 업무를 하나 둘 / 공공근로에게 공공근로로 시킨다 / 커피 타기, 해묵은 서류정리, 지하실 쓰레기 분리 / 국장님 담배심부름이 시간을 채워간다 //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 공공근로가 없으면 / 하루 종일 허둥대고 몸도 따라 바쁘고 / 공공근로를 기다리며 손부터 마비되어 간다 / 공공근로를 파견하지 않을 때는 정부를 탓하고 /무능한 정부 탓하며 시간을 보낸다 ..  (공공근로 3)


 이 땅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를 써야 맞아요. 이 땅 모든 일꾼들, 이를테면 흙일꾼과 기름밥 일꾼을 비롯한 모든 일꾼들은 글을 써야 옳아요. 내가 일하면서 보고 듣고 겪고 부대낀 이야기를 꾸밈없이 쓰면 돼요. ‘시적 자아’라든지 ‘모티브’라든지 ‘시적 구성’이라든지 ‘언어기교’ 따위는 몰라도 돼요. 아니, 이런 겉치레를 끼워붙이면 시하고 동떨어져요. 이런 자질구레한 껍데기를 들씌우면 글이 되지 않아요.

 

 부풀리는 글은 부풀린 풍선이지, 시라 할 수 없어요. 감추는 글은 감춘 고쟁이가 되지, 글이라 할 수 없어요.

 

 시금털털하면 시금털털한 맛이 나는 시예요. 수수하면 수수한 멋이 나는 시예요. 투박하면 투박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시예요. 맛깔스러우면 맛깔스러운 이야기 살가운 시예요.

 

 따분한 삶을 그리는 따분한 시가 있겠지요. 오순도순 웃음꽃 피는 삶을 그리는 시가 있을 테지요. 아프거나 슬픈 삶을 그리는 시가 있어요. 즐겁거나 가슴 벅차는 삶을 그리는 시가 있어요.

 

 애써 머리로 지어야 시가 되지 않아요. 억지로 글을 짜맞추어야 시가 되지 않아요.

 

 운율을 살펴야 시가 되지 않아요. 연과 줄을 나누어야 시가 되지 않아요.

 

 글자를 알맞게 줄여야 시가 되나요. 길이가 짧아야 시가 되나요.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나와야 시를 쓸 수 있나요. 누군가한테서 문학수업을 받거나 문학강의를 들어야 시를 쓸 만한가요.

 

 내 삶이 있을 때에 시를 써요. 내 삶을 누리면서 시를 써요. 내 삶을 사랑하면서 시를 써요. 내 삶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날을 하루하루 곱새기면서 시를 써요.

 

 내 삶을 돌아보고 내 마음과 생각을 찬찬히 되짚으면서 시를 씁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길과 꿈과 일을 돌아보면서 시를 씁니다. 내 사랑을 다스리고 내 이야기를 갈무리하면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어요.


.. 한때 노동운동을 하다가 / 한때 학생운동의 기수이다가 / 한때 혁명전선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다가 // 지금 어디서 다 무얼 할까 // 누구는 정계에 진출해 꿈을 펼치고 / 누구는 지자체에 출마해 시의원 되고 / 누구는 벤처하고 누구는 판사 되고 / 하다못해 대학시간강사나 고액과외 선생이라도 하는데 / 누구는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되어 / 젊은날 청춘시절 무용담 섞어 큰소리라도 쳐보는데 // 너는 뭐냐! ..  (포물선-병렬이 3)


 조혜영 님 시집 《검지에 핀 꽃》(삶이보이는창,2005)을 읽습니다. 검지에 꽃이 피었다는 시를 읽습니다.

 

 명월리 응기,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둘레에 있는 수많은 이웃, 회사일과 집회로 고단한 남편 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쓴 시를 읽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나대로 살아갑니다. 다들 무언가를 생각하고 어떤 삶을 꾸립니다.

 

 “당신이 왜 총을 맞고 포탄에 쫓겨 / 산천을 떠돌아야 했는지도 모른 채 / 평생을 혼자 짊어지고 온 / 분단의 그 고통 잊고 / 오래오래 사셔야 할 텐데(어떤 명예회복)” 하는 노래에는 조혜영 님 어떤 삶 한 자락 담았겠지요. “병원 문 앞에 도착하면 / 나도 모르게 부산을 떤다 / 어제처럼 대답 없는 엄마가 / 아기천사처럼 누워 있다 / 노동을 잃은 살결이 너무 뽀얗다(증후군)” 하는 노래에는 조혜영 님 또다른 어떤 삶 두 자락 담았겠지요.

 

 조혜영 님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떠한 나날 어떠한 삶을 누렸을까요. 나를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떠한 꿈 어떠한 사랑을 빛냈을까요.

 

 쓸쓸히 떠나는 어버이인가요. 고단히 살아온 어버이인가요. 조혜영 님 어버이는 나한테 어떤 이웃일까요. 내 어버이는 조혜영 님한테 어떤 이웃일까요.


.. 아직도 밤새워 회의하는 조직이 있어? / 문학회가 글은 뒷전이고 / 매일 회의다 사업이다 매달리니 발전이 없지 / 어디 그래 가지고 문단에서 알아 주기나 한대? / 그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자 문학을? / 얼마 전 한 선배가 술김에 한 말이 / 불현듯 떠올랐지만 / 찬바람에 오줌 털 듯 진저리치며 / 다시 집으로 간다 ..  (단잠)


 발전이 없으면 어떻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면 어떱니까. 누가 알아주지 못하면 어떻고 밤새워 모임을 하면 어때요. 글 하나 제대로 써내지 못하면 어떻고, 책 하나 번듯하게 못 내면 어떻겠습니까.

 

 서로 부대끼며 착하게 살아왔어요. 서로 복닥이며 예쁘게 살아가겠지요.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이냥저냥 부대끼며 착하게 살아가면 되는걸요.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땀흘려 일하면 넉넉한걸요. 없는 틈을 쪼개든, 있는 겨를을 나누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잘난 손놀림으로 글을 빛내든, 어수룩한 손재주로 글을 매만지든, 하나도 대단하지 않아요. 그저 내 삶과 내 넋과 내 꿈을 시라는 글줄에 실을 수 있으면 즐거워요.

 

 사람들 앞에 널리 내보이려고 시를 써도 돼요. 혼자 용두질하듯 혼자 읽고 혼자 웃거나 울어도 돼요. 답답하니까 갑갑하니까 슬프니까 괴로우니까, 이 가슴을 뻥 뚫고 싶어 시를 써요. 즐겁거나 기쁘거나 보람차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널리 나누고 싶어 시를 써요.

 

 할 말이 많아, 온갖 말을 시로 써요. 못할 말이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털어놓듯 시를 써요. 옆지기한테 이야기하듯 시를 써요. 거울을 보며 나랑 이야기하듯 시를 써요.

 

 이렇게 쓴 시는 어디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중·고등학교 권장도서 목록’이나 ‘대학생 교양도서 목록’에 끼지는 못하겠지요. 이름난 평론가들 글도마에 오르지 못하겠지요. 이름난 문학잡지 서평에서 다루지도 않겠지요. 중앙일간지라는 ‘서울’신문이라든지, 서울하고 멀찍하게 떨어진 시골신문이라든지, 책소개 한 줄로라도 이야기되지 못하겠지요.

 

 시집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고 조용히 덮습니다. 나는 얄팍한 사랑시를 그리 안 좋아하기에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나는 귀청 따가온 노동시를 그닥 안 좋아하기에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나는 돈내음 그윽한 베스트셀러 시집을 썩 안 좋아하기에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나는 평론가들 추천이나 비평에 따라 시집을 읽지 않으니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마음을 담고 삶을 노래하며 나과 이웃을 사랑하는 수수하고 투박한 시가 좋습니다. 꾸밈과 거짓과 부풀림과 치우침하고는 처음부터 사귀지 않는 정갈한 시가 사랑받을 수 있는 날을 빌면서 조그마이 옹크린 시를 좋아합니다.

 

 푸근하게 감도는 따스함 어우러진 시집 한 권 읽으면 마음이 넉넉합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지 모르나, 푸근하게 감도는 따스함이 어우러지는 싯말 사이사이, ‘문학다이 꾸미는 말’이 보여 아쉽습니다. 아마, 아직 어쩔 수 없겠지요. 시를 읽는다는 사람들이나 시를 말한다는 사람들은 이런 ‘문학처럼 보이려고 꾸미는 말’을 좋아하거나 반길 테니까요. 온누리가 온통 ‘뭣처럼 보이려고 꾸미는 판’인데, 이러한 말마디 한두 대목 시집 한켠에 슬쩍 스밀 수 있을 테니까요.

 

 아이들이 읊는 말은 아이들 스스로 아이들 삶을 얼마나 꾸밀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삶을 스스로 꾸미면서 말을 지을까 궁금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읊는 말은 꾸미는 말인지, 꾸밈없이 터져나오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이웃 아이들이 외는 말은 꾸미는 말인지, 꾸밈없이 샘솟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 때문에 물든 말인가요. 그러면, 어른들 말은, 어른들이 흔히 쓰는 말은, 어디에서 어떻게 물든 말이 될까요. 어렵거나 딱딱한 어른들 말은 어디에서 어쩌다가 그 모양으로 물든 말이 되나요. 책을 읽어서? 무슨 학습을 하느라? 무슨무슨 집회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내 삶을 사랑하는 결대로 말하면 좋겠어요. 내 삶을 사랑하고 싶은 몸짓대로 말하면 기쁘겠어요. 내 삶을 사랑하는 살붙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말하면 예쁘리라 믿어요. 내 삶을 사랑하는 내 손길이 내 이웃이랑 동무 삶을 나란히 사랑하는 손길로 이어지며 아리따이 말하면 더없이 즐거우리라 믿어요.

 

 일하는 사람이 시를 쓰면 어여뻐요. 일하는 사람이 흙일을 하든 기름밥 일을 하든 집안일을 하든, 스스로 사랑하는 일이면서 아이들과 함께 할 만한 일을 웃음꽃이랑 눈물꽃 함께 나누면서 시를 쓰면 어여뻐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일이면서, 내가 내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만한 일을 환하게 누리면서 시를 쓰면 어여뻐요.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일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다면,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 쓰는 시는 어여뻐요. 공장 일꾼이 공장 일거리를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다면,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 쓰는 시는 어여뻐요.

 

 함께하는 삶이고, 함께하는 사랑이에요. 함께 쓰는 시이면서, 함께 읽는 시예요. (4338.3.14.달./4345.1.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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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함께 아프고, 함께 살며
[시를 노래하는 시 10]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책이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글 : 박경리
- 펴낸곳 : 마로니에북스 (2008.6.22.)
- 책값 : 9000원

 


 배앓이로 스물네 시간 남짓 뒹굴었습니다. 이제 배는 엊그제처럼 당기거나 쑤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말끔하지는 않아, 자주 쿡쿡 쑤십니다. 배앓이가 조금 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옆지기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이렇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무얼 잘못 먹고 어떻게 잘못 움직여 속이 이토록 쓰리고 얹혔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옆지기 아버님은 갑자기 속이 얹혔을 때에 말이 나오지 않으나 성을 내면서라도 손가락을 따 달라고 하셨다는데, 나는 그저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린 채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또 이렇게 바보스레 몸앓이를 치르면서, 내 옆지기는 하루 한 해 온삶 어떤 몸으로 아픈 속을 달래며 지내는가를 생각합니다. 나는 고작 하루이틀쯤 배앓이로 꼼짝을 못하며 드러눕다가 모로 눕다가 엎드리다가 무릎 꿇고 엎드리다가를 되풀이할 뿐인데.

 

 저녁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밀린 기저귀 열두 장을 빨고, 둘째를 먼저 씻긴 다음, 첫째를 씻깁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차곡차곡 빨래합니다. 내 몸이 힘들다고 아이들 씻기기까지 못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막상 내 몸을 씻지 못하지만, 내 몸을 못 씻는 채 여러 날 보내더라도 아이들 씻기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듭니다.


..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산다는 것)


 빨래기계 없이 살아가고 싶지만, 빨래기계를 들여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손수 빨래하는 삶이 나쁜 나날이 아니지만, 스스로 이 일 저 일 마음을 쓰거나 품을 들이며 몸이 지치고 만다면, 애써 손수 빨래하는 삶이 되더라도 즐겁거나 보람찰 수 없구나 싶습니다. 그래, 하느님은 나를 빨래하며 삶을 보내라고 낳지 않았겠지요. 돈벌이를 하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고, 이맛살 찡그리며 살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며, 바보스레 살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지요. 참답고 착하며 곱게 살아가라는 내 목숨일 텐데, 자꾸자꾸 이 셋을 놓치거나 잊거나 저버린다면, 내 목숨을 다시 이어 하루를 새로 살며 무슨 뜻이 있고 어떤 사랑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나저나 나는 왜 빨래기계 없이 살아가려 했을까요. 어느덧 이런 생각마저 잊은 채 살아가는 나날이 아니었는지요.


.. 그러나 어머니는 / 딸이라 섭섭해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  (20쪽)


 배가 아프며 아이를 낳지 않은 몸이기에 아이들을 덜 사랑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내 몸속에 아이를 담고 열 달을 살아내지 않았으니 아이들을 덜 사랑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언제나 ‘아이가 될 씨앗’을 몸속에 담으며 살아가는 만큼, 오늘 하루 무얼 보고 무얼 들으며 무얼 하고 무얼 누리는가 하는 삶이 고스란히 내 씨앗에 스며드는구나 싶어요. 이러한 흐름과 씨앗과 삶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내 몸부터 옳게 아끼지 못하고, 내 몸부터 옳게 아끼지 못하는데, 내 곁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을 옳게 아끼지 못하겠지요.

 

 그러니까, 이제까지 나는 내 몸속에 깃든 ‘아이가 될 씨앗’을 올바로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채지 않았습니다.

 

 늦게까지 잠들지 않으려 하면서 더 놀겠다는 아이한테 윽박지르듯 어서 안 자고 뭐 하니, 하고 나무란대서 아이가 잠들지 않습니다. 너 몸이 힘들지 않니, 살살 달래고 품에 따스히 안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노래 들려줄 때에 시나브로 잠듭니다.

 

 내 몸이 숱한 일을 치르며 고단하기에 날선 말이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내 몸이 무거운 일을 짊어지며 힘겹기에 골 부리는 말이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하루하루 즐거이 누릴 마음이 못 되니까, 자꾸 날서거나 골 부리는 말이 삐져나와요.

 

 무슨 꿈으로 기운을 내고 어떤 사랑으로 삶을 일구는가를 살피지 않는다면, 온통 부질없는 일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삶을 밝히고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함께하는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저 덧없는 하루하루입니다.


..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 서억서억 톱을 움직이며 /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 밭을 맬 때도 /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  (여행)


 살고 싶은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리며 살아야지요. 어찌저찌 되기를 빌면서 기다리거나 손을 놓는 삶이 아니라, 어떠한 그림으로 그리는 내 좋은 삶이 되도록 해야 할까를 되뇌며, 나 스스로 힘을 내야 합니다.

 

 이냥저냥 걷다가 뜻밖에 보배를 손에 쥐는 삶이란 없어요. 생각없이 살다가 난데없이 찾아오는 선물이란 없어요. 삶을 지어 삶을 누리고, 사랑을 지어 사랑을 누려요.

 

 나는 무슨 삶을 짓고 어떤 사랑을 짓는 나날인가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무런 삶도 사랑도 안 지으면서 선물을 받으려 하는 나날이 아닌가 뉘우칩니다. 그야말로 번드레하게 말만 그럴듯하고, 막상 내 자리 내 터 내 사람들을 아끼는 일은 없이 수렁에서 헤매는 몸짓이 아니냐 싶어 부끄럽습니다.


..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 개미 쳇바퀴 돌 듯 /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  (바느질)


 소설쓰는 박경리 님이 남긴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2008)를 읽습니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싯말을 읽으면서, 이 싯말은 하나하나 산문하고 같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싯말이라는 틀이지만, 따로 시를 쓰는 시가 아니라, 하나둘 털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갈무리하는구나 싶어요.

 

 할 까닭이 없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할 까닭이 있는 말을 합니다. 살아가며 나눌 사랑을 생각하고, 살아가며 누릴 보람을 생각하며, 살아가며 흘릴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 다시 태어나면 /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 깊고 깊은 산골에서 / 농사짓고 살고 싶다 / 내 대답 // 돌아가는 길에 /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 왜 울었을까 ..  (일 잘하는 사내)


 아이들 옷가지를 중천장에 줄줄이 넌 방에 앉습니다. 동이 틀 무렵이면 이 옷가지와 기저귀는 다 마르겠지요. 빨래기계 장만하면서 내 일을 줄여 내가 고단하게 보내는 나날을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인터넷을 뒤져 빨래기계가 얼마나 하고 크기는 얼마만 한지 살핍니다. 읍내에 있는 대리점에 가서 물건을 보아야 할는지, 인터넷으로 장만해야 할는지 생각에 잠깁니다. 어차피 똑같은 물건일까 궁금하고, 통에 이불을 어느 만큼 넣을 만한가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만할까 궁금합니다. 빨래기계를 들이면 씻는 자리는 얼마나 좁아질까 헤아립니다.

 

 그러나 이보다 다른 한 가지 생각이 오래오래 떠돕니다. 배앓이를 하며 뒹구는 동안 나는 생각도 일도 무엇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플 뿐입니다.

 

 아픈 몸으로 스스로 손가락을 따지 못합니다.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지 못합니다. 갓난쟁이를 안아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손발과 몸뚱이 모두 차가우니 물을 만지기 싫습니다. 빨래는커녕 설거지를 꿈꾸지 못합니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어 방과 마루를 쓸고 닦자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 꿈에서 깨면 /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  (어머니)


 내가 아플 때에 아픈 사람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내 몸으로 찾아온 이 아픔이 가시고 난 뒤, 내 둘레 아픈 사람들 삶을 얼마만큼 헤아리거나 보듬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문득, 내 어린 나날 내 어머니는 몸이 아픈 적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플 때에 어떻게 하루하루 살림을 일구었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어린 나날 얼마나 몸앓이를 했을까 되새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 떠올리면서, 이 아이들이 몸앓이를 하면 나로서는 얼마나 힘이 들거나 벅찰는지 돌이킵니다. 씩씩하게 놀고 튼튼하게 밥먹는 아이들일 때에 얼마나 고마우며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픈 사람한테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시킬 수 없어요. 아픈 사람이 무얼 바라는가를 묻고 들으면서 이것저것 차근차근 챙길 수 있어야 해요. 먼저 할 일을 살피고, 즐거이 함께 할 일을 찾아야 해요. 내 몸뚱이를 움직여 어느 일을 할 수 있는가 가늠하면서, 하루하루 알맞게 일거리를 잡아야 해요.


.. 각기 다르게, 그러나 모두 한길을 가는 / 목마른 삶의 모습을 / 생각하는 밤이 그 얼마인가 ..  (어머니의 사는 법)


 소설쓰는 박경리 님은 눈이 가물가물해지고 손아귀에 힘이 빠질 무렵 이 싯말을 내놓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눈이 한결 밝고 손아귀로 호미를 힘껏 쥘 무렵에는 다른 싯말을 내놓고 다른 소설말을 들려주었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글 한 줄 쓰다가 가슴이 쑤셔 끄응 하고 웅크리는 모습을 헤아립니다. 호미질 한 번 하다가 가슴이 갑갑해 끄응 하고 옹크려 앓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골방에서 글줄 붙잡으면 가슴이 더 쑤실는지 모릅니다. 흙을 밟으며 쟁기질을 하면 가슴이 조금씩 뚫릴는지 모릅니다. 골방에 너는 빨래도 하루 지나면 마르겠지만, 햇살 내리쬐는 마당에 너는 빨래는 햇살과 바람과 풀내음을 머금으며 한결 보송보송 마릅니다.


.. 밥을 예쁘게 자시던 노인네는 / 장날이 되면 소금으로 양치질하고 / 얼굴은 수건으로 빡빡 닦고 / 얹은머리를 한 뒤 / 열다섯 새 고운 베옷으로 갈아입고 / 작은 지게를 진 머슴새끼 앞세우며 / 출타하는 뒷모습이 훤칠했다 ..  (친할머니)


 갓난쟁이는 어머니가 곁에 없으면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버지가 곁에서 살가이 안고 살뜰히 달래며 사랑스레 재우곤 했다면, 어머니가 곁에 없더라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텐데 싶습니다. 포근하게 품에 안고, 넉넉하게 손을 잡으며, 싱그러이 눈을 마주치는 어버이 노릇을 얼마나 했나 하고 곱씹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바라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얼마나 살피는 내 하루일까요. 한 집에서 얼크러지는 살붙이들 몸과 마음을 어느 만큼 헤아리는 내 하루일까요.


.. 뙤약볕 아래 / 밭을 매는 아낙네는 / 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온 밭을 끌어안고 토닥거린다 ..  (92쪽)


 삶이 사랑스레 있고서야 글 한 줄 태어납니다. 삶을 사랑스레 돌보고서야 글 한 줄 거듭납니다. 삶을 사랑스레 함께하는 옆지기와 아이들을 생각하고서야 글 한 줄 여밉니다.

 

 호미질을 하지 않으면서 호미질 이야기를 글로 담지 못합니다. 살붙이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붙이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엮지 못합니다. 그저 멀거니 구경하는 듯한 이야기만 끄집어낼 뿐입니다.

 

 내 삶이 구경하는 삶이 아니라면, 내 옆지기와 아이들을 옳게 좋아하며 예쁘게 어깨동무하고 싶은 삶이라면, 나는 오늘 다시 잠자리에 누울 때에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빌어야 할까요.


..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 목이 메이게 척박했던 시절 / 그래도 나누어 먹고 살았는데 ..  (까치설)


 소설쓰는 박경리 님 시집을 다 읽고 덮습니다. 박경리 님이 한 땀 두 땀 일구며 보낸 나날을 찬찬히 갈무리한 시집을 마저 읽고 덮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흙, 사랑하는 호미, 사랑하는 연필과 종이, 사랑하는 꿈과 마음과 별이 있으니, 이렇게 싯말 하나 내놓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싯말 내놓는 사람 삶이 이러하다면, 싯말 듣거나 읽으며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가요. 마냥 듣기만 하거나 그저 읽기만 해도 홀가분할까요. 스치고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여도 될까요. 눈에 담고 마음에 담는데, 온몸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에 무엇이 있을까요.


.. 거대한 산업 / 어디로 가나 세상 구석구석 / 광고의 싸락눈 안 내리는 곳이 없다 //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 붓고 / 인력을 쏟아 붓고 / 시간을 쏟아 붓고 / 그것으로 먹고산다 / 그것으로 돈 벌어 부자가 된다 / 그것은 정치 전략의 요체가 되었다 // 그것으로 먹고사는 함정에서 / 사람들은 빠져나갈 수가 없다 ..  (소문)


 함께 아프고,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즐겁고,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함께 밥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혼자 시시덕거린다면 내 삶도 우리 삶도 아닙니다. 홀로 앞장서기만 한다면, 홀로 내닫기만 한다면, 내 삶부터 될 수 없고 우리 삶은 도무지 아니에요.

 

 바보스러운 몸짓 말 마음 모두 버립니다. 아니,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아니, 버리지도 내려놓지도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몸짓 말 마음 모두 붙잡습니다. 아니,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아니, 붙잡지도 쓰다듬지도 않습니다. 그예 즐거우며 예쁘게 누릴 삶을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 사랑스러운 몸짓이요 말이며 마음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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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11 11:36   좋아요 0 | URL
박경리도 박경리지만 리뷰가 참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래서 배앓이는 나은 거죠? 왜 그랬을까요?ㅠㅠ

숲노래 2012-01-11 16:58   좋아요 0 | URL
아직 멀었어요 ㅠ.ㅜ

하루나 이틀을 더 묵어야 할 듯해요...
에궁... ㅠ.ㅜ
 
망가진 기타 삶의 시선 21
서정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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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같은 사랑으로 시를 쓴다
[시를 노래하는 시 9] 서정민, 《망가진 기타》

 


- 망가진 기타
- 글 : 서정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6.12.19.)
- 책값 : 6000원

 


 서정민 님 시집 《망가진 기타》(삶이보이는창,2006)를 언제 처음 읽었는가 돌아봅니다. 다 읽고 나서 왜 그때에 느낌글을 안 썼는지 헤아립니다. 글쎄, 모르겠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은 군이지만, 이 군은 국회의원이 따로 없습니다. 이웃한 보성하고 한동아리로 묶어 국회의원 한 사람을 둔답니다. 어엿하게 군이라지만, 보성과 고흥이 한동아리로 묶인다면, 나날이 젊은이 빠져나가고 아이들 줄어드는 고흥은 머잖아 보성에 스며들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순천과 보성과 고흥을 하나로 묶을는지 몰라요. 요즘 이곳저곳에서 떠도는 광역시처럼.

 

 편지를 부치러 면내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갑니다. 우체국 문닫기 앞서 아슬아슬 편지를 부치고 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고흥군 도화면 우체국 일꾼들이 이 마을에서 살지 않고 저기 순천부터 찾아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아하, 순천 분들이 예까지 오시는구나.

 

 그러고 보면, 우리 면 우리 리 보건소에서 일하시는 분도 고흥사람은 아닙니다. 이웃한 다른 면 다른 리 보건소, 아니 보건지소로군요, 보건지소 일꾼들 가운데에도 고흥사람은 찾아보기 힘든지 모릅니다. 다들 순천이나 광주에서 이곳까지 일하러 찾아와 사택에서 살거나 출퇴근을 하는지 모릅니다.


.. 집에서 가장 멀리 도망친 곳 / 60번 버스 타고 여행을 가듯이 / 8년 반 동안 다닌 학교 / 술 먹으면 집에 오기 싫던 창원대학교 ..  (창원대학교 1)


 우리 네 식구 새 보금자리를 찾아 고흥으로 오며 ‘문닫은 학교’를 하나하나 알아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에 있는 문닫은 학교까지는 못 갔고, 거의 모든 학교를 다 돌아보았습니다. 이때에 고흥에 있는 문닫은 학교마다 사택이 참 많고 잘 지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고흥에서도 깊이 들어가는 더 외진 시골마을 학교일수록 사택이 크고 넓습니다. 거금도에서 문닫았다는 초등학교에는 사택 숫자만 해도 예닐곱 채쯤 되었고, 예닐곱 채에는 스무 사람 남짓 먹고자도 될 만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면내에 볼일을 보러 다닐 때에는 도화중학교랑 도화고등학교 옆을 지납니다. 면내 중·고등학교 옆을 지날 때면, 학교 울타리 유자나무 곁에 있는 3층짜리 사택 건물을 바라봅니다. 중학교랑 고등학교는 사택 건물이 아예 3층이라, 그러면 이 사택에는 교사가 몇 사람쯤 살려나. 정작 고흥군 도화면에서 나고 자란 교사는 거의 없이, 모두들 순천이니 여수이니 보성이니 광주이니 담양이니 나주이니 …… 하면서 다른 데에서 찾아오는 교사들인지 궁금합니다. 순천에서 고흥으로 일하러 많이 온다 하는데, 고흥 젊은이는 거꾸로 순천으로 나가서 살고, 순천 젊은이는 외려 고흥으로 일하러 오는 셈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 내 힘으로 돈 벌면 / 마음 놓고 술 한번 대접해야지 생각하던 곳 ..  (까페 블루)


 나는 잘 모르지만, 면사무소 일꾼들 가운데에도 고흥 아닌 순천에서 자동차 몰고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많을는지 모릅니다. 면사무소에도 사택이 따로 있는지 모릅니다. 공무원 아파트나 빌라가 있는지 모릅니다. 도화면 도화초등학교에도 어김없이 사택이 있을 테지요. 시골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면내 곳곳에서 띄엄띄엄 살아가는 시골집 아이들을 태워 오고 태워 모시는 작은버스가 있습니다. 어쩌면 교사들도 이렇게 밖에서 끌어오고 밖으로 돌려보내는 얼거리인지 모릅니다.

 

 순천은 언제부터 군이 아닌 시였을까요. 여수나 광양은 언제부터 군이 아닌 시였을까요. 보성은 사람들 숫자가 줄어들까요. 장흥은 어떠할까요. 해남이나 강진이나 완도나 진도는 어떠할까요. 젊은이는 왜 자꾸자꾸 도시로 몰려야 할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더라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얻어야 하는데, 왜 자꾸자꾸 도시로 빨려드나요.


.. 물오른 버들가지 꺾어 만든 피리를 / 봉곡시장까지 들고 와 불었지 ..  (신포나루)


 시집 《망가진 기타》를 읽습니다.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는 서정민 님은 나와 내 식구들처럼 나이를 더 먹지 않습니다. 태어난 해 또렷한 만큼 숨을 거둔 해 또렷합니다.

 

 서정민 님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서정민 님은 그만 고꾸라져서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깊은 밤에 깬 둘째는 아이 어머니가 잘 다독여 다시 재웁니다. 예쁘게 안아 자장자장 노래하는 어머니를 바라볼 때마다, 아버지인 나는 왜 이렇듯 예쁘게 안으며 자장자장 속삭이는 어버이 노릇을 하지 못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자꾸자꾸 이렇게 생각하니까 자꾸자꾸 이런 사람으로 굳어질까요. 서툴거나 어설프더라도 자꾸자꾸 사랑스레 말하고 따스하게 손을 내미는 어버이 노릇을 한다면, 내 아이와 이웃 아이 누구한테나 맑고 밝은 이야기 나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 낼 모레면 서른 / 벌써 배가 나오기 시작한 내 친구야 / 북면 막걸리 떨이 진국 / 연극 얘기 우리 얼굴이 / 앞산 노을보다 더 익었다 ..  (노을-철에게)


 나보다 일찍 태어난 서정민 님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나이 마흔을 앞두고 부르는 노래를 시 하나로 갈무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요, 나이 마흔에 부르는 노래를 예쁘게 즐겼겠지요. 그러나 서정민 님은 나이 서른 앞두는 노래까지만 부르고 그칩니다. 서른너덧 서른대여섯 즈음 달리다가 그만 마흔 고개 앞에서 폭 스러집니다.

 

 이제 서른여덟 나이를 맞이하는 나는 마흔 고개를 바라봅니다. 어두운 방, 이불을 뒤집어쓴 고단한 몸을 끙끙거리며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자꾸자꾸 바보스레 들여다보지 말자고, 나 스스로 자꾸자꾸 착하게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내 몸을 더 따사로이 일으켜 내 몸을 한결 따사로이 아끼자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아낄 때에 옆지기와 아이들을 아낄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마구 굴릴 때에 그만 옆지기와 아이들한테까지 막된 소리나 몸짓이 튀어나옵니다.

 

 나이 마흔에도 오늘 하루 고마웠습니다, 하고 노래를 불러야지요. 나이 쉰에도, 나이 예순에도, 나이 일흔에도, 아, 오늘 하루 사랑스러운 옆지기와 아이들 꿈을 함께 먹고 함께 키우면서 기뻤어요, 하고 노래를 불러야지요.


.. 달력 젖히면 살아온 날들 / 꽃 피고 눈 내렸다 ..  (달력)


 나는 꽃과 같은 서른여덟입니다. 옆지기는 꽃과 같은 서른셋입니다. 아이들은 꽃과 같은 다섯이요 둘입니다. 저마다 보람찰 새해요, 서로서로 애틋할 새해입니다.

 

 오늘은 하루 네 차례 빨래를 하느라 그만 저녁짓기 할 기운을 잃었습니다만, 새해에는 하루 다섯 차례 빨래를 하더라도 저녁짓기 또한 신나게 할 수 있는 기운을 내 몸에서 스스로 찾아서 솟구치도록 하자고 다짐합니다.

 

 사랑도 믿음도 꿈도 이야기도 빛줄기도 웃음도 내 마음에서 자라요. 슬픔도 미움도 시샘도 짜증도 성냄도 두려움도 괴로움도 내 마음에서 태어나요.

 

 나는 사랑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나는 믿음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나는 꿈나무를 심고 싶습니다. 나는 이야기잎을 틔우고 싶습니다. 나는 빛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고 싶습니다.


.. “얘야, 옷에 감물 들면 잘 안 진다.” / 어머니 말씀 / 그 후로도 몇 개나 더 먹었을까 / 문학이니 이념이니 목 매던 풋감들 / 편한 갈옷은 못 되고 / 군데군데 얼룩으로 남은 풋감물을 아직도 벗지 못했다 ..  (풋감)


 서정민 님은 시집 하나 《망가진 기타》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았습니다. 다만, 숨을 거둔 다음 내놓았기에, 서정민 님 살아숨쉬던 때에는 이 시집을 만지며 노래할 수 없었어요. 흙으로 돌아간 다음 넋으로 이 시집을 누립니다. 흙에서 되살며 넋으로 이 시들을 우리한테 나누어 줍니다.

 

 시집을 다시 읽고 다시 덮으며 생각합니다. 나도 이렇게 시집 하나를 내고 싶구나, 나는 씩씩하게 흙땅에 두 다리를 세우며 밭뙈기 일구는 몸뚱이로 시집 하나를 누리고 싶구나, 하고 꿈꿉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나눌 시집을 하나 얻고 싶습니다. 우리 옆지기하고 나눌 시집을 하나 누리고 싶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꿈을 담은 시집을 얻고 싶습니다. 참다이 살림 돌보는 사랑을 실은 시집을 누리고 싶습니다.


.. 장사익이 노래하네 / 사랑은 행복, 사랑은 불행이라고 / 나는 노래하고 싶네 / 몸이 행복, 몸이 불행이라고 ..  (빛과 그림자)


 좋은 눈물로 시를 씁니다. 좋은 웃음으로 시를 씁니다. 좋은 술잔으로 시를 씁니다. 좋은 밥그릇으로 시를 씁니다.

 

 서정민 님, 활짝 웃는 얼굴 사진 담은 시집 하나 즐겁지요?


.. 호떡이거나 핫도그면 또 어떠리 / 그렇게 시를 쓸 수 있다면 / 그런 자세로 살 수만 있다면 // 어느 후미진 골목에 / 삼류 시들을 펼치고 서 있다가 / 팔리지 않아 무거운 리어카를 / 그대로 이끌고 돌아와도 좋겠어 ..  (붕어빵)


 서정민 님 시집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예쁘게 노래할 동무가 남녘땅 곳곳에 두루두루 있으리라 생각해요. 《망가진 기타》 한 권 책시렁에 살며시 얹으며 고향마을에 곱게 뿌리내리는 젊은 넋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돈벌러 멀리멀리 자가용 모는 사람 아니라, 삶을 짓고 사랑을 짓는 고향마을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집숲을 돌보는 고운 사람이 꼭 있으리라 생각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는 시골마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시골마을에 늙은이만 남기고 젊은이는 도시로 간다지만, 오래지 않아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나가떨어지거나 지치거나 슬프거나 사랑을 잃은 나머지, 서로 어깨동무하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나누는 웃음누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펼치면서 아름다운가 하는 슬기를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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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증보판 창비시선 20
신동엽 지음 / 창비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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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어느 날 쓴 글을 이래저래 많이 다듬어서 비로소 올립니다 ^^;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꽂는 대통령 바란 시인
[시를 노래하는 시 8]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책이름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글쓴이 : 신동엽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79.3.30)
 - 책값 : 5000원

 


 시를 읽습니다. 찬찬히 읽습니다. 덜컹거리는 전철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소리내어 읊기는 어려워, 속으로 읽습니다. 시는 눈으로만 읽어서는 맛보기 힘듭니다. 소리내어 읊을 때 ‘아!’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마음으로 가만히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술을 많이 마신 날은 속이 쓰립니다. 이놈 술을 작작 마셔야 할 테지만, 들이부으며 어질어질하는 느낌이 좋아서 붓고 또 붓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부터 쓰린 속을 달래며 배를 쓰다듬기도 하고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기도 합니다. 엎드려 속을 달래다가 문득 생각나는 한 가지가 있어 신동엽 님이 남긴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손에 쥡니다.


.. 강산은 좋은데 /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 다 자셔놔서 없다 ..  (발)


 “강산은 좋은데”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다 자셔” 놔서 “없다”고 하는 말 한 마디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 발자취를 안다면 말입니다. 이 나라 발자취를 모른다면 그저 가벼운 입놀이로 느낄 테고요.

 

 그런데 술로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며 왜 이 시가 떠올랐지? 다시 책장을 넘깁니다.


.. 또 어느 날이었던가. 광화문 네거리를 거닐다 친구를 만나 손목을 잡으니 자네 손이 왜 이리 찬가 묻기, 빌딩만 높아가고 물가만 높아가고 하니 아마 그런가베 했더니 지나가던 낯선 여인이 여우 목도리 속에서 웃더라 ..  (진이의 체온)


 “빌딩만 높아가고” “물가만 높아가고” 하니 “손이 찹”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이 찬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우 목도리 속에서 웃는 여인”이 있습니다. 1960년대엔 여우 목도리라면 2000년대엔 무엇일까요? 1930년대엔 또 무엇이었을까요? 2020년대나 2050년대에는 무엇이 되려나요? 차가운 손보다도 마음이 더 차가워집니다.

 

 그나저나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린 녀석이 이 시를 왜 읽지? 술이 덜 깬 탓인가? 술이 안 깬 탓인가?


.. 몸은 야위었어도 /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  (빛나는 눈동자)


 그래요. 몸은 야위어도 넋은 빛나야지요. 마음은 빛나고 가슴도 빛나서 우리가 품는 꿈과 생각도 빛나야지요. 하루 세 끼니 먹지 못하고 두 끼니만 먹어도, 한 끼니만 먹어도, 밥굶기를 밥먹듯 해도 마음은 빛나야지 싶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이 시를 읽고 싶었구나.

 

 그렇지만 내 눈빛은 어떠한가. 내 눈빛은 얼마나 맑은가. 아니, 술을 마셨대서 눈빛이 흐리멍덩할 수는 없어. 술이 다 깬 나는, 아주 말짱하다는 나는, 자전거를 타고 대여섯 시간 쉬지 않고 달리며 땀을 흘리는 나는,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이며 내 마음 흔드는 책을 찾겠다고 용쓰는 나는, 얼마나 맑은 눈빛인가.

 

 국민학생 때, 나를 만나는 이웃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너 참 눈이 맑구나.” 하고 얘기했는데. 나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선 나날부터, 또 고등학생으로 뒹굴던 나날부터, 군대에서 죽을 뻔하던 나날부터, 대학교 그만두고 신문딸배를 하고 출판사 일꾼으로 지내던 나날부터, 아니 어쩌면 먼먼 옛날 옛적부터 흐리멍덩한 눈빛은 아니었을까.


..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 진달래, 개나리, 복사 ..  (아사녀)


 봄이 오는 바람결과 꽃내음은 독재자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는 봄을 못 오게 할 수 없습니다. 1억 원을 내밀며 노동조합에서 나오라고 검은 뒷꿍꿍이를 할 수는 있다지만, 100억 원을 주든 1000억 원을 던지든 봄마다 피어나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피어나는 곧은 바람·꿈·생각·사랑을 돈이든 이름이든 힘이든 어느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꺾거나 막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바보스레 방바닥에 엎드린 엉거주춤한 꼴로 생각에 잠깁니다. 나부터 기쁘게 품을 마음이란 “어느 누가 막아도 오고야 마는 봄” 같아야지 싶어요. 억만금을 주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큰 이름과 많은 돈과 드센 힘을 안겨 주어도 손사래칠 수 있는 마음, 시나브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며 잎이 지는 아름다운 철과 같은 마음, 이런 마음이어야지 싶습니다.


.. 노오란 무우꽃 핀 / 지리산 마을. / 무너진 헛간엔 / 할멈이 쓰러져 조을고 ..  (풍경)


 노란 무꽃을 볼 수 있는 눈이 좋아 신동엽 님 시를 읽습니다. 노란 무꽃을 보기만 할 뿐 아니라 시로 담아낼 수 있는 손길이 좋아 신동엽 시집을 늘 끼고 지냅니다. 노란 무꽃을 보며 느낀 이야기를 우리한테 나누어 주려는 마음이 좋아 신동엽 님 시를 되읽습니다.

 

 이 셋이 어우러집니다. 참 수수하고 덤덤한 싯말인데 왜 이리도 따뜻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오란 개나리꽃이라 했으면 그냥 지나쳤을까요. 노오란 수선화라고 했어도 얼렁뚱땅 건너뛰었을까요. 노오란 국화도, 노오란 장미도 마음을 울리지 못했을까요. 노오란 원추리라 했다면 조금 달랐을까요.

 

 늘 먹는 무, 곁에 늘 있는 무가 무럭무럭 익기 앞서 피어나는 꽃을 보았다는 이 대목, 아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무가 흐드러지게 피우는 꽃을 시로 담아냈다는 모습, 살가운 시 하나로 무꽃 같은 삶과 사람들을 말하려고 했다는 마음이 반갑습니다.

 

 감자꽃이 좋고 배추꽃이 좋습니다. 당근꽃이 좋고 호박꽃이 좋습니다. 참외꽃이랑 오이꽃도 좋고 수박꽃이랑 감꽃도 좋습니다. 오얏꽃이며 살구꽃 모두 좋아요.

 

 나는 꽃이 좋아 꽃처럼 살고 싶어요. 나는 꽃이 좋으니까, 내 어버이는 나를 꽃처럼 낳았겠지요. 나는 꽃이 좋은 나머지, 꽃잎 같은 사랑을 만나 꽃잎 같은 씨앗을 심겠지요.


.. 수운이 말하기를 / 강아지를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 개에 의해 / 은행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 은행에 의해 / 미움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 미움에 의해 멸망하리니, / 총 쥔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 그, 사랑에 의해 구원받으리라 ..  (수운이 말하기를)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차츰차츰 다시 낮아집니다. 잦아들던 목소리는 거듭 올라갑니다. 이제 방바닥에서 뒤집기를 합니다. 등을 바닥에 깝니다.


..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 / 기껏해야 뻐스길 삼백리 서울로 왔지 ..  (종로오가)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 온 고구마가 / 흙묻은 얼굴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라는 시 하나를 읽으며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칫. 바보로군. 그래, 바보라서 바보스레 사람들이 들이붓는 술을 냉큼냉큼 비우고는 뱃속이 바보처럼 되었지. 바보처럼 살며 바보스레 엎드려 뒹굴며 바보스러운 시를 읽지.

 

 쳇. 바보로군. 시를 읽는 사람이나 시를 쓴 사람이나 바보로군. 바보는 바보끼리 좋아서 시시덕거리나. 아니야. 바보는 바보끼리 즐거워서 함께 웃고 함께 울어.

 

 나는 이 사내아이를 그릴 수 있거든. 이제 열서너 살 될까 말까 한 키 작은 아이가, 햇볕에 잘 그을린 투박한 얼굴로 서울에 왔는데, 새로 산 운동화가 비에 젖을까 봐 벗어서 살그마니 가슴에 품는 모습을 그릴 수 있거든. 등허리에 담은 고구마 보퉁이를 그릴 수 있거든.


.. 닦아라, 사람들아 / 네 마음속 구름 /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어느 곳에서 하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음, 내 꿈 가운데 하나는 중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어. 온통 거짓부렁이 문학이 아닌, 눈물을 흘리는 문학을 가르치며 아이들이랑 나랑 함께 울고 싶은 사람이었어. 시험문제는 도무지 안 가르치면서 문학을 가르치고 싶었어. 내가 맡은 아이들이 수학을 하든 정치를 하든 공무원이 되든, 문학을 읽는 마음을 곱게 건사하면서 사랑을 돌볼 수 있기를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나는 중학교랑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문학작품을 읽으며 눈물짓는 사람을 아무도 못 만났거든. 나는 국민학교 다닐 적에도 동시나 동화를 읽으며 눈시울 적시는 사람을 하나도 못 보았거든.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를 읽으면서 눈물을 안 흘릴 수 있겠니. 방바닥에 드러누워 눈물로 볼을 적시는 내가 철부지 멍텅구리 얼간이 똥싸개이니.


.. 너그럽고 / 빛나는 / 봄의 그 눈짓은, / 제주에서 두만까지 / 우리가 디딘 /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  (봄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자리에 반듯하게 앉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나한테는 시읽기가 가장 좋은 해장국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어 속이 고달픈 날은, 이렇게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시인은 우리 스스로 논밭을 가꾸라고 말합니다. 내가 디디고 선 이 땅에서 논밭을 가꾸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말없이 허리 숙여 논밭을 가꾸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가운데 참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이 ‘아름다운’ 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땅이 아닌 다른 땅을 디디려 하고, 다른 나라에 있는 논밭을 가꾸고 싶어합니다. 멀디먼 깨끗하다는 나라로 여행을 떠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씁니다. 가까운 시골마을로 자전거마실을 다니지 않습니다. 이 나라 시골마을에 조그맣게 보금자리 마련해서 살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다들 이런 판이니까 하늘을 볼 수 없겠지요? 하늘을 보았다고 말하는 우리들이 보는 하늘은 거짓이라고, 눈속임이라고, 아프고 슬프고 안타깝고 힘들어서 그예 울부짖을 테지요?


..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 많이 있었지만 / 하늘은 너무 빨리 / 나를 손짓했네. // 언제이던가 /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 그대의 소맷 속 /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 아퍼 못 다한 /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 가벼운 눈인사나, / 보내다오 ..  (담배 연기처럼)


 신동엽 시인은 당신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줄 알았을까요? 느꼈을까요?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한테 사랑도 못하고, ‘너무 빨리’ 하늘로 떠나야 하는 줄 알았을까요?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 달라고 말해야 했을까요?

 

 모르는 노릇이나, 나도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갈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노릇이니까, 나는 이 사람 저 사람 죽는 꼴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늦디늦게 흙으로 돌아갈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시인과 같으며, 시인과 같은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겠다 싶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수수하고 투박하지만, 내가 두 발로 버티고 선 땅을 아름답게 느끼면서 갈고닦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겠다 싶습니다. 어디에서 거저로 얻는 봄이 아니라, 내 두 손과 두 발로 땀흘려 가꾸어 얻는 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지 싶어요. 내가 디딘 이 땅에서 참된 하늘을 보고, 티없고 해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겠어요.

 

 신동엽 시인은 이 아름다운 땅을 갈고 일구며 가꾸는 사람들한테 가벼이 눈인사를 보내면서 싱긋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애틋한 시마다 고이고이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신동엽 시인은 시를 쓰기보다 이 아름다운 땅을 당신 스스로 갈고 일구며 가꾸고 싶었어요. 고운 넋으로 고운 땀을 흘려 고운 터에 고운 집을 이루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신동엽 시인을 가르쳐 준 일이 생각납니다. 그무렵, 고등학교 국어교사는 으레 신동엽 시인이 쓴 시를 두루 맛보게 가르치지는 못하고 〈껍데기는 가라〉랑 〈금강〉이랑 〈아사녀〉 같은 작품을 썼다고만 가르쳤다고 떠오릅니다.


..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산문시 1)


 술주정을 하듯 뇌까린 시일까요. 아니 술주정을 할밖에 없던 이 나라에서 맨넋으로 읊은 시일까요.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줄줄줄 늘어놓은 푸념일까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꿈을 조곤조곤 적바림한 사랑노래일까요.

 

 아, 이런 대통령,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는 대통령, 이런 대통령이 없던 어둡던 독재정권 시퍼런 칼날과 총칼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송이 같은 시가 〈산문시 1〉일까요.

 

 신동엽 시인은 묻습니다. 아니, 묻지는 않아요.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가를 찬찬히 밝혀요.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라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거듭나겠다고 다부지게 밝힙니다. “총 쏘는 야만엔 가담지 않기로 작정”하려는 굳은 믿음과 사랑을 씩씩하게 보여줍니다.

 

 시는 말을 붙잡는 예술이요, 시는 말을 노래하는 예술이며, 시는 말을 사랑하는 예술이겠지요. 가슴으로 와닿는 말이 싯말이 되고, 가슴으로 스며드는 말이 싯말이 되며,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말이 싯말이 될 테지요.

 

 고단하고 아픈 신동엽 시인은 다른 사람한테 외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아요. 시인 스스로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입니다. 일옷 뒷주머니에 책 하나 늘 꽂고 다니면서 당신 스스로 가꾸고 삶을 즐겨요

 

 그래요. 꿈이 꿈 아닌 삶인 곳에서 부르는 손짓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면서, 우리들한테 사랑씨앗 하나 남겨요.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꽂는 대통령을 바라면서, 신동엽 시인 스스로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꽂고 멀디먼 마실을 떠났어요. 몸뚱이는 갔어도 마음은 살아숨쉬어요. 쇠붙이보다 돈붙이가 더 무시무시한 나라가 되었어도 사랑꽃 싯말마다 가득 피어나요. (4338.1.25.불./4345.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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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비시선 16
정희성 지음 / 창비 / 197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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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던 고등학생이 밥을 먹으며 살다
[시를 노래하는 시 4]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책이름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글 : 정희성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78.11.1.)
- 책값 : 7000원

 


 (1) 시를 읽던 고등학생이


 정희성 님이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내놓던 때에는 할아버지 나이가 아니었어요. 이제, 제 나이 서른여덟에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다시 넘기며 돌아보면, 정희성 님은 할아버지입니다.

 

 1978년 처음 태어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제가 처음 읽던 해는 1993년입니다. 이 시집을 다시 들추는 서른여덟이 된 올해는 2012년입니다. 시집 하나를 두고 제 나이는 얼추 스무 살을 먹습니다.

 

 처음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헌책방에서 만나 읽을 때에는 깔끔함을 느끼고, 텁텁하면서도 맛깔스러움을 느꼈어요. 그때, 그러니까 1993년 어느 날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만나면서 ‘이 시집이 새책방에도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있을까 없을까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어쩌면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몰라, 하고 생각하다가는, 애써 새책방까지 다시 가야 하나 싶어, 여기에서 이렇게 만났으니 즐겁게 읽자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문학 참고서에 이름이 없고, 대입시험 문제로 정희성 님 시를 다룰 일이 없겠다고 여기면서도 이 시집을 읽고 싶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아니 ‘대중가요’처럼 널리 알려진 시인이 아닌, 낯선 이름인 정희성 님이었으나, 고등학생한테는 누구나 낯선 시인이 아니겠느냐 생각했어요.

 

 씁쓰레하면서도 깊이 스며드는 보리맛 같은 시를 두 손이 새까매지도록 고개숙여 읽다가 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로 40분 남짓인데, 이 길을 두 손 꽁꽁 어는 찬바람 고스란히 맞으면서 두 시간 넘게 걸어서 갔어요. 시집 하나 쥐면서, 시집 하나에 머리를 폭 박으면서, 헌책방에서 다 읽은 시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읽으면서.


.. 비무장지대의 모든 산들이 / 일제히 무장을 하고 나선 / 칠흑의 밤이었네 / 적인 듯 싶기에 쏘았지 / 힘없이 쓰러지데, 허전하게 / 불빛을 비추자 그것은 그러나 /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었어 / 나는 똑똑히 확인했네 / 불빛 속에 떨고 있는 네 다리를. // 노루라거니 사슴이라거니 / 좋아 날뛰는 병사들 틈에서 / 대대장의 큰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 수고했노라고 악수를 청하며 / 그런 식으로 하면 적을 잡을 수 있다고 / 친구여, 그가 나를 위로하였지 / 알겠노라고, 알겠노라고 대답하면서 / 나는 똑똑히 확인했네 / 불빛 속에 떨고 있는 네 다리를. // 참 알 수 없네 / 확인된 것은 짐승의 다리가 아닐세 / 네 다리는 살아서 / 죽음의 어두운 허공을 휘저으며 / 나의 살의를, 대대장의 살의를 / 우리 모두의 뿌리 깊은 살의를 / 입증하는 것일까 / 죽어가던 그 짐승의 마지막 눈초리가 / 탄환처럼 완강히 내 가슴에 박혀 있네 ..  (그 짐승의 마지막 눈초리가)


 고등학생으로서는 군대에서 총을 쏘아 짐승을 잡는 일을 모를 테지만, 나는 그무렵 이 시를 읽으면서 내 염통이 끊어지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몇 해 뒤인 1995년 겨울, 강원도 양구 멧골짝 깊디깊은 데로 끌려갑니다. 나도 이 시에 나오듯 군인이 되었어요.

 

 민통선에서 짐승을 쏘아 죽이는 일은 흔합니다. 비무장지대에서는 군인이 아니면 돌아다닐 수 없기에 움직이는 무언가를 보면 흔히 총을 쏩니다. 가끔 신문에 오르내리는 남북 총격 사건도, 가만히 보면 적군이 아니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짐승을 쏜 일일 때가 잦습니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에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있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떨다가, 잔뜩 움츠리다가, 설마 북녘 군인이라면 나를 쏠지 모르니 먼저 총을 쏘아요. 빵, 빵. 때로는 연사로 놓고 빠바바방.

 

 깊은 밤 부시럭거리는 소리 하나 때문에 총을 쏩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는 다음 근무자가 컵라면 따숩게 끓여 들고 오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내는 소리일는지 모릅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는 참말 북녘 군인이 조용히 정찰을 나오다가 방귀를 뀌면서 지레 놀라 낸 소리일는지 모릅니다. 민통선에서는 남북녘 정찰 군인이 한 주에 여러 차례 새벽과 밤마다 오가면서 만나요. 서로 모른 척하기도 하고, 서로 인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서로 총을 쏘기도 합니다.

 

 쏘고 싶지 않은 짐승한테 총을 쏘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한테 총을 쏘았어요. 아, 나는 군대에서 보았어요. 북녘에서 못 살겠다며 두 손 들고 총을 버리며 철책을 넘어오던 우리처럼 앳된 병사를 보며 두려움에 떤 나머지 총을 빠바방 쏘아 죽인 남녘 앳된 병사를.

 

 죽여야지 내가 사니까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요. 아니 죽여야 내가 산다고 배우잖아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배우고, 군대에서 두들겨맞으면서 뿌리깊게 배우잖아요. 먼저 내 목숨을 지켜야 한다잖아요. 어깨동무나 두레나 품앗이를 겪을 일이 스무 살까지 없잖아요. 그리고, 스무 살부터 총을 쥐라 하잖아요. 이웃한테도, 힘이 여린 사람한테도, 짐승한테도, 풀과 꽃과 나무한테도, 마구마구 돌을 던지고 채찍을 휘두르는 일을 서슴지 않아요.

 

 지난 나날 이렇게 살았어요. 경제개발이니 국가보안법이니 간첩단사건이니 무어니 하고 떠들던 지난 나날 이렇게 살았어요. 평화의댐이니 고속도로이니 월남파병이니 방위성금이니 하고 지껄이던 지난 나날 이처럼 살았어요. 골목길이니 가난이니 달동네이니 정부미이니 하고 읊던 지난 나날 이렁저렁 살았어요. 텔레비전이니 프로야구이니 의료보험이니 예방주사이니 하고 외치던 지난 나날 이래저래 살았어요.

 

 서로가 서로를 이웃이자 따뜻한 목숨붙이로 생각하게 이끄는 마음을 빼앗습니다. 배앗기지 않고 빼앗습니다. 잃어버리지 않고 내놓습니다. 따스한 꿈을 내놓고, 너그러운 믿음을 내려놓습니다. 시를 읽던 고등학생이 군인이 되어 열여섯 달이 지나자, 나도 살아남자며 후임병을 온갖 욕지꺼리로 미치게 만들고, 군화발로 대가리를 걷어찼습니다.

 


 (2) 고등학교 졸업장


 한창 대입시험으로 바쁜 동무들 틈바구니에서 정희성 님 시집을 으레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내 가방에는 릴케 시집이랑 정희성 시집이랑 신동엽 시집이랑 김소월 시집이랑 이육사 시집이랑 문익환 시집이랑 신경림 시집이랑 갈마들었습니다. 외우지는 않았으나 거의 외우다시피 시를 읽었습니다. 대입시험 공부하듯 외우기 싫어, 언제라도 내가 바라는 쪽을 펼쳐 되읽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큰문 앞에서 나눠 주는 학원 광고종이 뒷자리에 정희성 님 시 〈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를 옮겨적습니다. 따분한 수업이 이어지는 동안 종이비행기를 접어 슬그머니 앞으로 던집니다.


.. 친구여, 네가 非詩的이라고 부르는 / 바로 그곳에 뜨겁게 으스러진 나의 / 삶이 있고, 굶주린 식구가 있고 / 노동이 있고 / 그리고 억센 팔뚝뿐이다 / 삽과 망치뿐이다 // 아니다 친구여, 너의 正義가 사는 곳 / 이 푸른 하늘 아래 / 뜨거운 태양이 있고, 땅이 있고 / 너와 나 그리고 / 햇빛 뒤에 패어진 그늘도 있다 // 친구여,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 / 침묵 뒤의 소란이, / 정신 뒤의 육체가 / 우정 뒤의 敵意가, / 마음에 들지 않겠지 // 마음에 들지 않어라 / 한때는 너와 내가 만나 / 詩를 말하고 인생을 논하고 / 政治를 말하고 自由를 말했지만 / 친구여, 30을 넘어 이제는 /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이 / 우리를 가로막는구나 // 친구여, 네가 詩를 쓸 때 / 나는 굶는 식구를 생각했고 / 네가 詩를 쓸 때 /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 네가 天國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 나는 죽음 뒤에 오는 것을 생각하며 / 네가 내민 손수건을 눈에 대고 / 울며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 내게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 (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


 종이비행기로 뒷통수를 맞은 동무가 깜짝 놀랍니다. 누구야, 하듯 뒤를 홱 돌아보다가 이녁 밑에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보고는 얼른 줍습니다. 교과서를 책상에 세우고는 천천히 폅니다. 함께 문학책을 읽으며 문학이야기 꽃피우던 동무는 “마음에 들지 않어라”랑 “내가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하는 대목 때문에 이 시를 적어서 보냈다고 여깁니다. 피식 웃으면서 손으로 주먹질을 합니다. 나도 따라합니다. 칠판에 붙어 끝없이 판서를 해대는 교사는 뒤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나는 고등학생으로서 대입시험에 목매달아야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이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지, 고등학교 졸업장을 꼭 가져야 하는지 못마땅합니다. 못마땅한데 털지 못합니다. 털지 않는다고 할까요. 고등학교를 그만두어 중학교 졸업장으로 살아갈 나를 어림하면서 나한테 손가락질을 할 사람들 화살을 못 견디리라 생각하고 맙니다.

 

 참으로 모를 일이지요. 뒷날 누가 나더러 ‘개새끼’ 소리를 읊건 말건, 나를 보며 ‘너 참 마음에 들지 않는 놈팽이’라 손가락질하든 말든 얼마나 대수로운가요. 내가 올곧게 살아간다면 올곧게 살아가니 아무렇지 않습니다. 내가 바보스레 살아간다면 바보스레 살아가니까 아무렇지 않아요.

 

 나는 내 사랑을 아끼며 살아가면 돼요. 나는 내 마음을 돌보며 살아가면 돼요. 내 사랑으로 내 동무를 좋아하고, 내 마음으로 내 살붙이를 좋아하면 즐거워요.

 

 어쩌면, 나는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고 정보를 얻으면서 막상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인지 몰라요. 어쩌면, 나는 학교라는 핑계를 대면서 나 스스로 내 가슴에서 사랑을 불사르지 않았고 내 마음밭에 믿음씨앗 심지 않았기 때문인지 몰라요.

 

 사랑과 마음을 잃는다면 제가 저로서 살아가는 뜻이 없어요.

 

 이리하여, 나는 어릴 적부터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따분한 수업을 견디며 종이접기를 하다가 새삼스레 단단히 다짐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일자리에서 아늑하게 돈받으며 살지 않겠노라. 돈 못 벌고 굶더라도 올바른 곳에서 일하겠노라.

 

 정희성 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스무 해 동안 보듬으며 가만히 되씹습니다. 그래, 나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 내 살림을 예쁘게 건사하겠노라. 나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 우리 식구들뿐 아니라 우리 동무들 즐거이 마실와서 좋은 사랑 나누어 받을 수 있는 집숲을 이루겠노라. 내가 믿는 가장 올바른 꿈을 글 한 줄에 담아 책으로 엮어, 이 책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으로 집숲을 마련하겠노라.

 


 (3) 밥을 먹으면 되지


 고등학교를 그만두나 마나 망설이던 아이는 대입시험에 붙습니다. 처음 원서를 내민 대학교는 떨어졌으나 두 번째 쓴 대학교는 붙습니다. 세 번째 원서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학교로 갑니다.

 

 두 번째 학교에 들어가서 첫 날을 보내며 술을 얻어 마십니다. 이때부터 대학교 문턱을 밟는 날이면 온몸을 어찌저찌 가누기 힘들 만큼 술을 얻어 마십니다. 대학생인 선배는 돈이 어디에서 나기에 이렇게 후배한테 술을 사 줄 수 있을까, 나는 한 해를 더 견디어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면 후배한테 술을 사 줄 수 있으려나, 생각하며 넋을 잃지 않으려고 머리를 다잡습니다. 하나둘 나가떨어져도 끝까지 버팁니다. 넋을 잃은 동무를 어깨동무하거나 업습니다. 속을 게우는 동무들 등을 두들깁니다. 찬물로 얼굴을 씻어 주고, 찬물로 옷을 헹구어 줍니다.


..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 우리가 저와 같아서 /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 일이 끝나 저물어 /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 나는 돌아갈 뿐이다 /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 샛강바닥 썩은 물에 / 달이 뜨는구나 / 우리가 저와 같아서 /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날이면 날마다 술자리를 빛내는 선배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는가 생각에 젖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기에, 이렇게 술을 들이부어야 하느냐 생각에 잠깁니다.

 

 인천에서 서울 오른쪽 귀퉁이에 붙은 대학교를 오가자니 아주 벅찹니다. 술자리는 으레 새벽을 넘기는데, 나는 저녁 여덟 시 오십오 분에 떠나는 ‘인천 가는 막차 앞에 있는 차’를 타야, 비로소 마을버스를 갈아타서 밤 한 시 조금 못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선배들은, 또 시골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선배들은, 그리고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학교랑 학원이랑 집만 오가던 동무들은, 겨우 술자리가 무르익는다 싶은 여덟 시 오십 분쯤 자리에서 일어나 전철역으로 달음박질하려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붙들어 앉힙니다.

 

 이러다가 저녁 열 시가 되고 열한 시가 되면 ‘서울에 있는 저희들 집’으로 하나둘 돌아갑니다. 나는 갈 데가 없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온 선배가 자취방에 같이 가자면 같이 가지만, 술로 떡이 된 선배가 도무지 일어날 낌새가 없으면 학과방이나 동아리방에서 신문종이 덮어쓰고 잡니다. 잠들기 앞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습니다. 어스름하게 동이 트는 새벽에 일어나 어젯밤 읽던 책을 더 읽습니다. 새벽녘 학생회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면서 ‘헌종이 모으는 통’을 뒤져 ‘다른 학과방에서 버린 낡은 책과 신문과 잡지’를 줍습니다. 아침이 되어 첫 강의를 하기 앞서까지 낡은 책과 신문과 잡지를 읽습니다. 8교시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이루어지는 술자리에 끌려다니자면 도서관이고 학교 앞 사회과학책방이고 헌책방이고 나들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듬날 새벽 헌종이 모으는 통을 뒤지며 낡은 책 한 권 건질 수 있으면 좋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읽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들고 와서 새삼스레 들추기도 합니다. 선배들은 뭔 시집을 읽느냐고 구경 좀 하자고 하면서, 어느 누구도 정희성이라는 이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내가 다닌 학과가 네덜란드말을 배우는 학과라서 모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다닌 학과를 일찌감치 마친 그럭저럭 이름난(이제는 많이 이름난) 선배가 둘 있었으니까요. 하나는 노래하는 권진원이요, 둘은 소설쓰는 김남일.

 

 술에 절어 아침 강의에도 못 일어나는 선배와 동무를 바라보면서 아침햇살 쬐며 시집을 읽습니다. ‘개새끼들!’이라는 싯말을 빙긋 웃으면서 속으로 외칩니다. 잠에서 깨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지른 쓰레기를 치웁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하는 김에 이웃 학과방(스웨던말 학과방과 포르투갈말 학과방과 이탈리아말 학과방)을 함께 치웁니다. 골마루도 슬쩍 걸레질합니다. 학교 건물을 청소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하고 인사합니다. 청소하는 대학생은 보기 힘들다며, 우리 학과와 이웃 학과 사람들이 어지른 쓰레기를 흘깃 보다가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건네줍니다.

 

 기지개를 켜고 머리를 감습니다. 학생회관 뒷간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복복 비빕니다. 머리를 감고 낯을 씻어도 한뎃잠을 잔 티가 난다지만, 나는 나대로 새날을 새롭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기운이란 늘 내 몸에 깃든 채 내가 깨우기를 기다릴 테니, 나는 내 마음을 믿으며 사랑하고 싶어요.

 

 나를 돌아보며 시를 읽습니다. 내 마음밭에서 곱게 잠자며 내 목소리를 기다리는 시를 읽습니다. 빛이 넘치는 곳에서는 빛을 모른다 하고, 어두움 가득한 데에서는 빛을 애타게 바란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서도 빛을 느끼겠는걸요. 어두운 데에서도 어두움을 느끼겠는걸요.

 

 나는 시를 읽고 싶어서 문학참고서 아닌 시집을 사서 읽었어요. 나는 내가 아직 모르는 내 앞길을 배우고 싶어서 어찌 되든 고등학교를 마쳤고, 어찌저찌 대학교까지 가 보았어요. 그런데, 스무 살까지 살아내며 찾아간 대학교에서는 그저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하는 술놀이 빼고는 떠오르지 않아요. 어두운 데에서도 어둠과 빛이 있다지만, 나는 착하게 살아갈 곳에서 착하게 노래부르고 싶어요.

 

 밥을 먹으면 되잖아요. 비싼 밥이나 값싼 밥이 아니라 밥을 먹으면 되잖아요.

 

 다섯 학기까지만 다니고 대학교 졸업장은 내려놓았어요.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했어요. 아니, 고등학교 졸업장을 쓸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아무 졸업장 없는 사람으로 살자고 생각했어요.

 

 좋아요. 나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만난 1993년부터 두 아이와 옆지기랑 살아가는 2012년까지 밥을 맛나게 먹는걸요.

 

 좋아요. 나는 앞으로도 밥을 즐거이 먹을 테고, 우리 아이들도 오래오래 밥을 기쁘게 먹을 테니까요.

 

 사랑을 먹고 밥을 먹어요. 믿음을 먹고 밥을 먹어요. 웃음과 눈물을 먹으면서 밥을 먹어요. (4333.8.8.불./4336.7.20.해./4345.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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