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5
손택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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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이끄는 삶과 사랑과 꿈
 [책읽기 삶읽기 110]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2010)

 


  새벽 네 시 갓 넘긴 아직 깜깜한 마을에서 저 멀리 싯누런 초승달을 바라봅니다. 들판마다 개구리 노랫소리 잦아드는 무렵, 밤을 밝히는 멧새 우는 소리 가늘게 들리고, 마당 한켠 후박나무 우거진 잎사귀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척 고요합니다. 바람은 자취를 감추었고, 이웃집 마늘밭은 말끔하게 텅 비었습니다. 곧 새로운 싹이 돋아 새로 심은 씨앗이 천천히 자라겠지요.


  엊그제까지 꽤 높다랗게 자라던 상추풀을 떠올립니다. 이웃밭 할머님은 골을 따라 상추를 심으셨는데, 상추는 줄기를 높이높이 올리고 꽃송이를 벌렸더랬습니다. 상추꽃마다 흰나비 찾아들어 반짝반짝 춤추더랬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잎사귀만 달랑달랑 달린 상추를 보지만, 상추가 풀이 되도록 둘 때에는 이렇게 키가 크고 꽃이 맺히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웃 할머님은 손이 달리고, 딱히 뜯어 먹을 사람이 없다 하기에 높이높이 자랄 수 있었다지만, 사람들은 상추이건 당근이건 무이건 배추이건 마늘이건 양파이건 꽃대가 올라 봉오리가 해사하게 벌어지도록 두지 않습니다. 꽃을 보지 않고 꽃을 생각하지 않아요. 꽃과 열매와 씨앗 없는 푸나무는 없으나, 꽃도 열매도 씨앗도 어느 틀에 가두어 지식으로만 머리에 담습니다.


.. 책 앞에서 침이 고이는 건 / 종이 귀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쓸쓸한 버릇 /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 아내도 읽지 않는 내 시집 귀퉁이에 / 어머니 침이 묻어 있네 ..  (육친)


  장미꽃도 꽃이고 튤립꽃도 꽃이며 나리꽃도 꽃입니다. 풀꽃도 꽃이고 들꽃도 꽃이며 나무꽃도 꽃입니다. 산초나무에는 산초꽃이 핍니다. 앵두나무에는 앵두꽃이 핍니다. 사람들이 씨를 받거나 얻어 심는 꽃이 있으나, 사람들 손을 타지 않으면서 널리 퍼지며 살아가는 꽃이 훨씬 많습니다. 아니, 지구별은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며 스스로 퍼지고 이어가는 꽃과 풀과 나무가 있어 푸른 빛깔을 건사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공장을 지으며 찻길을 닦느라 함부로 망가뜨리는 손길을 애꿎게 뻗치더라도, 빙그레 웃으며 따사로이 이 땅을 보듬는 꽃씨 풀씨 나무씨가 푸른 숨결을 나누어 줍니다.


  이제 사람들은 옷을 손수 짜거나 깁지 않습니다. 가게에서 돈을 치러 사다 입습니다. 집에 재봉틀을 둔다 하더라도 실을 손수 얻지 않습니다. 실을 손수 얻고 천을 손수 마름하면서 옷을 짓는 사람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앞으로 여느 살림을 꾸리면서 식구들 옷을 손수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남을 수 있을까요.


  시골마을 곳곳에 모시풀이 흐드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아마 예전에는 시골마을 누구나 손수 옷을 지어 입었을 테니, 이 모시풀이 이대로 흐드러지기만 하다가 시들어 죽도록 내버리지 않았겠지요. 논이나 밭을 일구며 낫으로 베어 버리거나 불에 태워 죽일 까닭이 없겠지요. 하나하나 알뜰히 건사해서 줄기를 째고 실을 얻으려 했겠지요.


.. 식육점 간판을 가리다 / 잘려 나간 가지 끝에 / 물방울이 맺혀 있다 ..  (나무의 수사학 2)


  우리 집 마당 한켠에서 우람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모시풀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한겨레가 모시풀에서 실을 얻어 천을 짜고 옷을 지은 지 즈믄 해를 훨씬 넘었다 하는데, 처음에 어떤 사람이 모시옷을 생각했을까 궁금합니다. 어떤 넋으로, 어떤 얼로, 어떤 꿈으로, 어떤 사랑으로, 어떤 마음과 이야기로 모시옷을 그림으로 그리며 즐거이 실을 얻었을까요.


  아마, 맨 첫 사람은 온갖 일을 다 해 보았겠지요.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면서 차츰차츰 익숙해졌을 테고,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또 아이들이 물려받으면서 시나브로 새로운 솜씨가 나타나고 더 낫거나 수월한 솜씨가 태어났겠지요.


  그러고 보면, 먼먼 옛날이 아니라 하더라도 풀줄기에서 실올을 깨닫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갓 돋은 풀은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손가락 한둘로 잡아당기면 톡톡 끊어집니다. 어린이 누구라도 민들레 꽃대를 톡 끊어 씨앗을 훌훌 날릴 수 있어요. 우리 집 아이가 세 살 적에도 강아지풀 줄기를 꺾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쉬 꺾이는 강아지풀이라 하더라도 어느 만큼 자랐거나 비쩍 말랐을 때에는 좀처럼 안 끊어지기도 합니다. 강아지풀 줄기를 여럿 한꺼번에 쥐어 꺾으려 할 때에도 되게 안 끊어집니다.


  유채 줄기를 꺾고 안을 들여다본다든지, 꽤 굵직한 줄기로 오르는 풀 ‘줄기 속’을 살펴본다든지 하면, 풀줄기 속이 가느다란 실처럼 촘촘히 이어진 모습을 헤아릴 수 있어요. 나도 국민학생 적에 ‘풀줄기 속 가느다란 실올’을 바라보며 ‘이렇게 가느다란 실올이 잔뜩 있으니 꺾기 힘들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식구들과 함께 먹을 풀물을 짜면서도 이런 ‘풀줄기 속 실올’을 봅니다. 첫여름 여린 칡싹을 꺾을 때에도 ‘풀줄기 속 실올’을 느낍니다.


.. 비지땀을 흘리며 몇 번씩 밭과 웅덩이 사이를 왕래하면서 / 나는 처음으로 머위와 감자와 방울토마토의 목마름을 생각한다 / 가문 여러 날 뿌리 끝에 쥐고 놓지 않는 한 방울 / 속에 든 구름과 하늘을 생각한다 ..  (물통)


  살아가려는 마음이란 사랑하려는 마음이리라 느껴요. 사랑하려는 마음이란 아름다운 마음이로구나 싶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녀린 몸을 따뜻하게 덮을 옷을 생각할 수 있었고, 옷을 생각하며 풀줄기에서 옷감이 될 실을 얻는 길을 찾으며, 실 얻는 길을 찾으면서 천을 짜는 길을 생각하여 깨닫다가는, 천을 다시 옷으로 깁는 길을 찾았구나 싶어요. 가느다란 바늘도 생각해서 빚었을 테고, 조금 굵다란 바늘, 이른바 뜨개바늘 같은 바늘들, 대바늘이든 쇠바늘이든 빚는 길을 헤아렸겠구나 싶어요.


  생각이 삶으로 이어집니다. 삶이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꿈으로 이어지고, 꿈은 이윽고 지구별 곳곳에 푸른 잎과 맑은 꽃과 소담스러운 열매로 영급니다.


.. 아파트 옆 논에 모내기가 한창이다 ..  (아파트 모내기)


  손택수 님 시집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2010)을 읽습니다. ‘수사학’이 무얼까 생각하면서 시집을 들추다가는 이내 ‘수사학’이든 다른 무슨무슨 학이든 무엇이 대수이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시집 이름이 무엇이든, 또 시에 붙인 이름이 무엇이든, 나한테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시를 읽을 뿐이고, 나는 시를 즐길 뿐이에요. 나는 시를 좋아할 뿐이요, 나는 시와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좋은 마음으로 시를 누립니다. 시를 읽거나 시를 쓰거나 나로서는 언제나 좋은 마음이 감돕니다. 슬픈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슬픈 마음으로 시를 누립니다. 시를 읽든 시를 쓰든 나는 늘 슬픈 마음이 맴돕니다.


  홀가분한 마음일 때에는 홀가분하게 누리는 시입니다. 고단할 때에는 고단하게 누리는 시입니다. 바쁠 때에는 바쁘게 누리는 시요, 한갓질 때에는 한갓지게 누리는 시예요.


  손택수 님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요. 손택수 님 시집을 읽을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름다움을 찾는 즐거운 넋으로 시를 썼을까요. 아름다움을 찾는 즐거운 넋으로 시집 《나무의 수사학》을 읽을 만할까요. 시를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넋으로 삶을 짓는 사람일까요. 시를 읽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꿈을 키우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달은 제법 크기에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올려다봅니다만, 별은, 작디작은 별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모든 시골에서 언제나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공장과 골프장이 수두룩한 시골에서는 작은 별을 볼 수 없고, 자동차와 높직한 건물이 들어찬 도시에서는 큰 별조차 느끼기 힘듭니다. 달 또한 숱한 등불에 바래고 높은 건물에 가립니다. 달과 별, 해와 구름, 비와 눈, 바람과 흙을 누리지 못하는 터에서 어떤 목숨을 보듬으며 시를 쓰거나 읽을 수 있을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4345.6.17.해.ㅎㄲㅅㄱ)

 


― 나무의 수사학 (손택수 글,실천문학사 펴냄,2010.6.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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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다 그만둔 날 - 김사이 시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8
김사이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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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
[시를 노래하는 시 20] 김사이, 《반성하다 그만둔 날》


 

- 책이름 : 반성하다 그만둔 날
- 글 : 김사이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08.9.12.)
- 책값 : 7000원

 


  빨래기계를 올해에 처음으로 들이고는 이레쯤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다가, 한 달 즈음 바지런히 써 보았습니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수북하게 쌓이고, 날마다 신나게 빨래해야 하는 만큼, 빨래기계가 있으면 일손을 덜기에 좋습니다. 이불도 척척 빨아내고, 두꺼운 바지나 겉옷도 수월하게 빨아냅니다. 그런데 아이들 옷가지는 하루에도 때 되면 오줌바지에 똥기저귀에 땀에 절은 옷에 흙이 잔뜩 묻은 옷에 끝없이 나옵니다. 빨래기계는 이런저런 옷가지를 한데 그러모아 빨아 준다 할 텐데, 나는 밑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에 넣지 못합니다. 오줌 밴 옷가지랑 흙이 잔뜩 묻은 옷을 같이 빨지 못합니다. 물이 빠지는 옷이랑 물이 안 빠지는 옷을 나란히 빨 수 없습니다.


  빨래기계를 한 달 즈음 홀가분하게 쓰면서 저녁이 되면 다시 수북히 새로 쌓이는 빨래를 바라보다가 무엇인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비내리며 축축한 날에는 아침에 한 차례 빨래기계를 돌려서는 옷을 말리기 어렵습니다. 더운 여름을 맞이하니, 저녁에 몇 가지 빨래를 해 놓아 집안이 안 메마르도록 하고 싶습니다.


  빨래기계가 차지한 씻는방 한쪽에 어느새 쪼그리고 앉습니다. 나는 다시 손빨래를 합니다. 빨래기계를 날마다 쓸 때에 ‘가장 낮은’ 물높이로 빨래를 하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36분이 걸립니다. 내가 손으로 빨래할 때에 몇 분이 걸리나 시계로 잽니다. 12분. 조금 많으면 15분이나 20분. 빨래감이 많은 날은 빨래기계도 42분이나 45분. 그러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시간이 곱배기보다 더 드는 셈입니다. 물도 훨씬 많이 쓸 테고 전기도 꽤 많이 쓸 테지요.


.. 햇볕이 타는 한낮 / 가리봉오거리 / 슬리퍼에 맨발로 / 술 취해서 돌아다니는 후줄근한 남자 / 시장 복판에서 한바탕 몸씨름과 입씨름을 하다가 / 여자에게 허리춤 잡혀 끌려가고 ..  (가리봉엘레지)


  처음부터 손으로 빨래를 하지 않았던 사람은 외려 빨래기계보다 더 오래 품을 들여 빨래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손빨래가 아직 안 익숙하다면, 빨래기계보다 물과 비누를 더욱 많이 쓰리라 생각합니다. 비빔질과 헹굼질은 날마다 꾸준히 빨래할 때에 척척 손에 감깁니다. 어느 만큼 빨고 짜서 널어야 하는가 하는 잣대는 따로 없습니다. 그예 몸으로 느낍니다.


  빨래하는 겨를을 시계로 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 하루에 네 차례쯤 손빨래를 하는데, 빨래를 하면서 빨래가 무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하는 품을 빨래기계한테 맡기더라도 10분쯤은 몸과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손으로 빨래하고 빨래를 끝낼 만한 말미가 들어야 기계한테 일감을 맡기는 셈입니다.


  참말 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들까 아리송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내(아저씨나 아버지)들은 빨래기계를 쓸 수 있어 가시내(아줌마나 어머니)들이 집일이 훨씬 줄어 홀가분할 뿐더러, 집에서 겨를을 많이 낼 만하다고 여겨 버릇하지 싶은데, 왜 이처럼 생각할까요. 스스로 집일을 해 보지 않았고, 스스로 빨래기계 같은 연장을 다뤄 보지 않았기에 이처럼 생각할까요. 빨래기계나 청소기를 비롯한 여러 연장을 쓸 때에 집일이 줄어든다면, 집에서 사내들이 이런 연장을 쓸 일이라고 느껴요. 그야말로 ‘힘이 안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들이 하면 돼요. 덧붙여, ‘힘이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서로 즐겁게 돕고 나누어 맡으면서 하면 돼요.


.. 아침이면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슈퍼에 가고 산에도 가고 / 맑은 햇살에 눈 못 뜨는 나 같은 게 아니라 ..  (숨어 있기 좋은 방)


  아침에 멧풀을 흐르는 물로 헹구고 풀물을 짠 다음,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고, 곧장 식구들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떨며, 둘째 먹일 죽을 마련해 아이 꽁무니 좇으며 가까스로 한 그릇 다 먹입니다. 이렇게 하느라 아침이 얼마나 지나는가 하고 시계를 들여다 보며 헤아립니다. 풀물을 안 짜면 두 시간 즈음, 풀물을 짜면 세 시간 남짓, 이럭저럭 설거지를 끝내고 그릇을 마당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키고, 또 이불을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네 시간 즈음, 여기에다가 방을 쓸고닦으며 이부자리 모두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고 기지개를 켜면 다섯 시간 남짓 지납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손에 물을 묻히니 어느 날은 열 시나 열한 시 즈음 한숨을 돌릴 만하지만, 으레 열두 시나 한 시가 되어야 겨우 한숨을 돌릴 만합니다. 어느 날은 두 시가 되어서 겨우 허리를 펴고 살짝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집일을 알뜰살뜰 예쁘게 건사하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 몹시 남우세스럽습니다. 어지른 책은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아이들은 갖고 논 놀잇감을 방바닥에 그대로 굴립니다. 뒷밭 쓰레기를 치우며 땅을 갈아엎는 일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다 마른 빨래를 미처 못 개고 쌓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설플 수 있나 싶으나, 이렇게 어설피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내가 어디에 마음을 쓰는지 골이 아프고, 내가 어떻게 사랑을 들여 살림을 돌보는지 골이 띵합니다.


  빨래를 하다가, 밥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뒷밭에 물을 주다가, 마당을 쓸다가, 잘 마르는 마늘을 뒤집다가, 빨래를 걷다가, 빨래를 개다가, 오줌바다 된 마루와 방바닥을 닦고 걸레를 빨다가, 비질을 하다가, 쌀을 씻어 안치다가, 또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다가, 나 스스로 어떤 말미와 겨를과 틈을 마련하여 아이들을 사랑하고 옆지기를 아끼는 삶을 누려야 할까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할 내 삶은 어떠한 길을까 헤아립니다.


.. 땅 끝에서 떠나온 곳 / … / 내 고향보다 더 허름한 빈민촌 같아 ..  (머물기 위해 떠나다)


  이른아침부터 손에 물을 묻히면 손에는 칼이나 걸레나 빗자루를 들밖에 없습니다. 연필도 볼펜도 책도 손에 들지 못합니다. 물이 묻은 손은 마를 새 없습니다. 새삼스레 다시 물을 묻히고, 한결같이 물내음 뱁니다. 물내 나는 손으로 아이 볼을 살살 꼬집다가 꼬질꼬질한 낯이나 손을 느끼면 아이를 씻깁니다. 엊저녁에는 둘째 아이 손톱에 까만 때가 낀 모습을 보고도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며 지나칩니다. 첫째 아이 손톱은 얼마쯤 또 길었을까요. 귀지는 어떠할까요. 둘째 아이는 언제쯤 귀지를 들여다보면 될까요. 아직 오줌가리기를 안 하려 하는 둘째 오줌바다 살림은 언제쯤 끝을 볼 수 있을까요. 둘째가 쓸 오줌그릇을 새로 장만해야 할까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문득 깨닫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품는 생각은 참으로 나 스스로 사랑하며 아끼면서 즐겁게 품는 생각인지, 하루하루 온갖 일에 끄달리거나 휘둘리면서 억지로 끄집는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하면 참 좋겠구나 하며 저절로 피우는 꽃생각일 때에 나부터 맑게 웃으며 하루가 즐겁겠지요. 저렇게 하며 참 기쁘겠구나 하며 홀가분하게 길어올리는 샘물생각일 때에 나 스스로 밝게 웃으며 하루가 환하겠지요.


.. 항암제 맞으면서 머리카락 홀랑 빠지고 나니 / 가발 찾는 아버지가 참으로 천연덕스럽다 /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묏자리까지 만들어놓고 / 애첩의 품에서 눈을 감을 아버지 / 행복하세요? ..  (애첩의 품에서)


  아이하고 들마실을 하거나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문득문득 느낍니다. 나도 좋고 아이도 좋다고 느낍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이렇게 들마실이든 자전거마실이든 내 사랑스러운 어버이하고 오붓하게 얼크러지며 놀 수 있었으면 참말 기쁘며 아름다웠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린 날 내 어버이는 어린 나하고 이런 겨를을 누리지 못했을는지 모르는데, 그무렵 나와 내 어버이가 좋은 웃음을 누렸든 못 누렸든, 오늘 어버이로 살아가는 내가 우리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좋은 웃음을 누릴 수 있으면, 이 웃음꽃이 나와 아이들과 내 어버이한테까지 살몃살몃 스며들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을 바라보며 사랑을 누려요. 빨래를 하건 밥을 하건, 내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꽃피워 예쁘게 누리는 하루가 되도록 다스릴 때에는, 언제나 사랑빨래이고 사랑밥이 돼요.


  하루 내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으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짬이란 도무지 없다 싶습니다. 아주 빠듯합니다. 나는 틀림없이 집에서 종이책 읽기 아주 버겁습니다. 그런데, 종이책 아닌 다른 책은 늘 읽을 수 있어요. 아이책을 읽고 밥책을 읽으며 빨래책을 읽어요. 걸레책도 읽고 자장노래책도 읽습니다. 둘째 아이 걸음마책도 읽습니다. 내 손에서는 물기 마를 새뿐 아니라 둘째 아이 똥오줌 내음 가실 틈도 없습니다. 곧, 나는 오줌책이랑 똥책도 읽습니다. 뒷밭에 물 주러 갈 때면 밭책과 풀책을 읽습니다. 멧딸 따러 네 식구 노래하며 비탈밭 사이를 오를 때면, 이웃밭책과 들책과 딸책을 읽어요.


.. 한글도 다 못 읽는 여덟 살 아이는 붉은 노을이 어둠에 끌려갈 때 산자락 끝을 따라 언덕을 넘고 밭둑을 걸어 또 다른 언덕에 오른다 ..  (문)


  온누리 모든 삶은 책입니다. 내 삶도 책이고 네 삶도 책입니다.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가는 길도 책입니다. 군내버스 일꾼이 버스를 모는 매무새도 책입니다. 이웃마을 논밭을 바라보며 새삼스럽다 싶은 책을 읽습니다. 크고작은 돌로 비탈논과 비탈밭 이룬 모습 또한 남다르다 싶은 책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책을 읽습니다. 처마 밑 제비집 새끼 네 마리 몽땅 날갯짓 익힌다며, 오늘 새벽부터 이 녀석들 노랫소리 끊깁니다. 어디까지 날아가서 어떤 먹이를 찾고, 어미 제비한테서 어떤 꿈과 사랑을 물려받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날마다 제비책을 읽습니다.


  늘 읽는 내 나무책이 종이에 담겨 온누리에 두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노상 읽는 내 아이책이 종이에 실려 지구별에 골고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내가 읽는 제비책이나 참새책이나 까마귀책이나 종달새책을 따로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이나 무슨무슨 자연책이나 환경책에서 만난 적은 아직 없습니다. 들판에서 듣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담은 종이책이 있을까요. 저녁부터 깊은 새벽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문학으로 다시 빚는 글꾼이 있을까요.


.. 아랫집 할머니처럼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며 / 보듬어주길 바란 적 없는데 / 부지깽이 들고 쫓아다니는 것이 화풀이란 것쯤 안다 ..  (바람의 딸)


  글을 씁니다. 새벽 다섯 시 제비 노랫소리와 함께 마을 이장님 새벽 방송 소리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새벽 다섯 시에 마을방송을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에 ‘동네방송’을 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곤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뿐 아니라 여섯 시 무렵에 이런저런 방송을 한다며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글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글 한 줄에 푼푼이 눌러담아 쓰고, 나는 내 이웃 삶 푼푼히 눌러담긴 글 한 줄 읽습니다. 나는 늘 내 삶을 내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내 이웃은 이녁 삶을 이녁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더 빼어나다 싶은 글은 없습니다. 더 놀랍다 싶은 글도, 더 좋다 싶은 글도, 더 아름답다 싶은 글도 없습니다. 모든 삶은 저마다 빼어나고 놀라우며 좋고 아름답습니다. 모든 글은 다 다른 삶결대로 반갑고 흐뭇하며 기쁩니다.


.. 남자들의 철옹성 같은 연대에 / 홀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가 ..  (살갗으로부터 오는 긴장)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글로 씁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 삶을 이웃이 손수 쓴 글을 읽으며 예쁘게 나눕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넋한테 둘러싸여 하루를 맞이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누리고 싶은 빛깔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사랑에 둘러싸입니다.


  이제 시집 하나 손에 들고 잠자리에 눕습니다. 한 꼭지 두 꼭지 하품을 하며 읽습니다. 몸이 고단하니까 하품이 나옵니다. 하품을 누르고 졸음을 좇으며 시를 읽습니다. 한 줄 더 읽고 싶어 꾸벅꾸벅 졸며 읽습니다. 한 쪽 더 펼치고 싶어 책장을 손에 쥐다가 이 모습 그대로 잠듭니다. 퍼뜩 깨어 한 쪽을 더 읽기도 하고, 문득 깨다가는 책을 덮고는 그대로 더 쓰러진 채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하루는 흐르고, 하루는 새롭게 찾아옵니다. 하루는 저물고, 하루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 5월 연둣빛 나무 이파리를 보는데 / 휴대전화로, 그래 휴대폰으로 /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 해고사유는 ‘잡담’이다. /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갈 필요도 없었다 / 눈만 뜨면 전쟁을 치르듯이 아이 맡기고 / 30분 일찍 전철에 구겨져가던 내 밥그릇 자리 / 그러나 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고 / 비공식적으로 잘린 거다 ..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김사이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반성하다 그만둔 날》(실천문학사,2008)을 읽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김사이 님은 이녁 삶을 얼마나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생각할까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아가는데, 나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로 찾아들어 아이들이랑 삶을 누리는 이웃은 이 나라에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으레, 김사이 님처럼 시골마을을 부리나케 떠나 도시로, 더 큰 도시로 찾아들어야 하는 굴레나 고리나 얼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거나 가난하거나 슬프거나 아프던 시골집 허름한 살림보다 더 쪼그라들고 외로우며 벅찬 도시살이를 누리더라도, 이 도시를 벗어나 다른 시골마을 작은 집을 꿈꾸며 사랑을 빚기란 만만하지 않은 노릇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김사이 님은 왜 ‘뉘우쳐’야 하고, 왜 ‘뉘우치다가 이 뉘우치기를 그만두’어야 했을까요. 뉘우치기보다는 사랑하면 좋을 텐데요. 뉘우치기를 그만두기보다, 사랑을 오래오래 이으면 기쁠 텐데요.


.. 천 원 주고 산 물건이 십 년쯤 되었으니 / 비닐이 벗겨지고 앙증맞은 곰돌이딱지가 너덜너덜해졌다 ..  (곰팡이꽃)


  곰돌이 비누갑하고도 열 해를 살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 하나 심어 열 해를 보살필 수 있어요. 오늘 하루 새 곰돌이 비누갑을 천 원 치러 장만할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를 심기 벅차면 작은 앵두나무 한 그루 이천 원이나 삼천 원쯤에 장만할 수 있어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에서 곰돌이 비누갑은 열 해를 함께 살며 곰팡이꽃을 피워요. 곰팡이꽃도 꽃이니 무척 소담스럽고 예뻐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 어딘가에 빈터가 있으면, 꼭 내 삯집 아닌 이웃집 언저리이든 동네 골목 한 귀퉁이가 되든, 시멘트바닥이나 돌바닥을 한 뼘만큼 들어내고 작은 앵두나무 심어 알뜰살뜰 보살펴 열 해를 살아내어 나와 내 이웃 모두 한여름 바알간 앵두알 누릴 수 있어요.


  사랑하기에 좋은 삶이에요. 좋아하기에 사랑스러운 삶이에요. 살아가며 빛나는 나날이에요. 빛나기에 살아갈 만한 나날이에요. 김사이 님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야기를 김사이 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풀어낼 시노래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5.6.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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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15 10:20   좋아요 0 | URL
ㅎㅎ 빨래기계를 들여놓으셨군요^^

숲노래 2012-06-15 17:27   좋아요 0 | URL
아... 꽤 되었어요.
요새는 거의 안 쓰지만요 ^^;;;

책읽는나무 2012-06-16 06:16   좋아요 0 | URL
빨래기계가 있어도 손빨래는 계속 해야되는 것 맞아요.
청소기계가 있어도 손으로 걸레질 해야되는 것 맞아요.
편리한 기계들이 곁에 있어도 뒷마무리는 항상 손으로 해야 마무리가 되는 집안일은
정말 끝이 없기도 하고,집안일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집안일 하시는 모습 뵈면 어쩜 이리 공감이 가는지 참~~ㅋ

전 그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참 힘들다~ 참 하기 싫다~ 참 끝없다~ 만 반복하며
투덜댔었던 것 같아요.헌데 님을 뵈면 집안일을 저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할 수도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아이들 아가때 눈을 떠 뒷바라지 해주고 숨 돌릴라치면 오후 한 시가 되었던 것같아요.
전 그때 아침 세수 잠깐 했었던 것같아요.너무 바쁠땐 저녁에 아침 세수를 하기도 했었구요.
집에 있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시간이 부족한지 좀 짜증이 많이 나던때이기도 했었어요.아이들 웃는 모습에 또 잠깐 애써 짜증을 잊곤 했었지만요.
지금 님의 모습 뵈면 그시절이 문득 생각이 나면서 왜 님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약간의 후회가 생겨요.^^
지금이라도 잘해야겠어요.또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요.^^

그시절 시간 없어 책을 읽지 않은 순간에 뭔가 헛헛하다 생각 많이 하곤 했었는데 님의 글을 읽고 보니 저도 저 나름대로 삶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로군요.
그부분이 가장 좋았어요.^^

숲노래 2012-06-16 13:43   좋아요 0 | URL
마음속 좋은 책을 누구나 즐겁게 느낄 수 있으면
가장 사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저씨'와 '젊은 사내'와 '푸른 아이들' 모두
이러한 삶과 사랑을 잘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은 기쁨 - 이해인 시집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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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는다
[시를 노래하는 시 19] 이해인, 《작은 기쁨》

 


- 책이름 : 작은 기쁨
- 글 : 이해인
- 펴낸곳 : 열림원 (2008.3.17.)
- 책값 : 7500원

 


  깊은 밤, 옆자리에 누운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손을 뻗어 아이 가슴께를 토닥이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이마를 쓰다듬습니다. 이윽고, 쉬가 마렵다며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으레 잠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나 아이랑 함께 섬돌로 내려서서 밤하늘 별이나 달이나 구름을 바라보며 쪼그려앉습니다. 아이가 쉬를 다 누면 아이 손을 잡거나 아이를 품에 안고 방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잘 토닥이고 나도 이내 잠이 드는데, 잠이 들기 앞서 살짝 생각합니다. 볼일 보는 뒷간이 집 바깥에 있으면 여러모로 좋다고. 이렇게 마당에 내려서며 밤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니까요.


.. 시는 나를 데리고 / 나는 시를 데리고 / 마침내는 하늘로 갈 것인가 ..  (시를 쓰고 나서)


  소리를 듣습니다. 내 마음을 움직이고 내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며 내는 소리를 듣습니다. 옆지기가 바늘을 놀려 뜨개질하는 아주 작으며 부드러운 소리를 듣습니다. 두 아이가 저마다 뒹굴거나 뛰노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시골집을 둘러싸고 숱한 목숨붙이가 얼크러지며 내는 소리를 듣습니다.


  풀잎은 바람과 햇살에 따라 소리를 냅니다. 풀잎은 빗물과 눈송이에 따라 소리를 냅니다. 꽃잎은 나비와 벌에 맞추어 소리를 냅니다. 열매는 얼른 따먹으라며 소리를 내어 부릅니다.


  소리는 귀로 듣습니다. 그런데, 참말 귀로 듣는 소리인지 아닌지 궁금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소리는 내 귓결로 스쳐 지나가니까요. 어느 소리는 번쩍 하고 눈이 뜨이도록 하니까요.


.. 시는 / 내 마음을 조금 더 / 착하게 해 주었다 ..  (시는)


  소리를 듣듯 빛을 바라봅니다. 내 마음을 건드리는 빛을 바라봅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바라봅니다. 내 사진기로 스미는 빛을 바라봅니다. 살붙이들 눈망울에 어리는 빛을 바라봅니다. 솔솔 익는 내음 풍기는 밥냄비에서 피어나는 빛을 바라봅니다.


  소리도 빛도 늘 내 둘레에 있습니다. 꿈도 사랑도 언제나 내 둘레에 있겠지요. 이야기도 한결같이 내 둘레에 있을 테며, 내 하루를 이루는 온갖 숨결 또한 노상 내 둘레에 있을 테고요.


  소리를 느끼듯 빛을 느낍니다. 빛을 느끼듯 꿈을 느낍니다. 꿈을 느끼듯 사랑을 느낍니다.


  가는 말이 고울 때에 오는 말이 곱다 했지, 오는 말이 고울 때에 가는 말이 곱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으로 소리를 들을 매무새일 때에 내 몸에서 좋은 소리가 퍼지고, 내 몸에서 좋은 소리가 퍼질 때에 나 또한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좋은 소리를 듣는다는 말은, 내가 무언가를 했으니 고맙게 돌아온다는 뜻은 아니에요. 나 스스로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때에, 내 귀가 열려 좋은 소리를 알아챈다는 뜻이에요. 곧, 나 스스로 좋은 소리를 내지 않을 때에는, 내 귀가 닫혔겠지요. 내 귀가 닫혔을 때에는 내 둘레에서 제아무리 좋은 소리가 가득하다 하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해요. 나한테 오는 말이 아무리 좋거나 곱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하나도 못 들어요. 그러니까, 오는 말이 곱다 하더라도 가는 말이 곱다고 말하지 못해요.


.. 아침에 눈을 뜨면 / 작은 기쁨을 부르고 / 밤에 눈을 감으며 / 작은 기쁨을 부르고 ..  (작은 기쁨)


  사랑으로 온마음 채우는 이는 사랑을 즐거이 나눌 뿐 아니라 사랑을 즐거이 받습니다. 꿈으로 온마음 보듬는 이는 꿈을 즐거이 펼칠 뿐 아니라 꿈을 즐거이 선물받습니다.


  나 스스로 생각할 대목은 사랑이요 꿈입니다. 나 스스로 내 몸과 마음을 그득그득 채우며 돌볼 이야기는 사랑이며 꿈입니다. 다른 무엇으로 내 삶을 채울 수 있을까요. 다른 어느 것이 내 삶에 스며들 만할까요.


  기쁘게 살아가야 기뻐요. 착하게 살아가야 착해요. 아름답게 살아가야 아름답습니다. 해맑게 살아가야 해맑게 웃어요. 마음은 몸이고, 몸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일구고 몸을 일굽니다. 몸을 아끼며 마음을 아낍니다.


.. 초등학교 시절 / 시골집에 놀러 갔을 때 / 두 살 아래의 / 사촌 남동생이 / 나에게 처음으로 / “누나!” 하고 불렀을 때 / 하늘과 햇빛이 눈부셨다 ..  (누나)


  저녁나절, 고단한 몸을 누이며 시를 씁니다. 손에는 볼펜 한 자루 쥘 힘이 없으니, 마음속으로 시를 씁니다. 마음속으로 쓴 시는 지워지거나 잊히지 않으리라 느끼며 시를 씁니다. 마음속으로 쓴 시는 언젠가 환하게 떠올라 종이에 또박또박 옮겨적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돌아보며 시를 씁니다. 새 하루를 어떻게 맞이할까 기다리며 시를 씁니다. 하루를 고맙게 마무리짓기에 시를 씁니다. 하루를 새로 열 수 있으니 시를 써요.


.. 소중히 안아야만 / 선물로 살아오는 시간 ..  (오늘도 시간은)


  문득 돌아보면, 열두 해에 걸쳐 의무교육 제도권학교를 다니며 시를 읽거나 쓰도록 배운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좋은 스승을 못 만났기에 시를 읽거나 쓰도록 배우지 못했달 수 있지만, 내 마음에서 샘솟듯 바라는 꿈이나 사랑이 애틋하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애써 시를 쓸 수 없었다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모저모 생각해 보면, 좋은 스승이 있어서 좋은 시를 쓰지는 않거든요. 좋은 스승이 가르치거나 일깨워야 좋다고 느낄 만한 시를 쓰지는 않거든요.


  좋은 시를 쓰는 씨앗은 늘 내 마음속에 있어요. 좋은 시를 맺는 씨앗은 언제나 내 가슴속에 조그맣게 사랑스레 숨을 쉬어요.


  나 스스로 깨우는 씨앗입니다. 내 손으로 심는 씨앗입니다. 나는 내 사랑씨앗에 물을 주고 바람을 쏘이며 햇살을 비춥니다. 나는 내 사랑씨앗이 시 한 자락으로 태어나도록 북돋우고 보살피며 아낍니다.


.. 가만히 서서 / 책들의 제목만 / 먼저 읽어도 / 행복합니다 ..  (책방에서)


  사랑은 남한테서 받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가 일으킵니다. 사랑은 남이 베풀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가 나눕니다. 내 작은 두 손이 사랑을 여는 길입니다. 내 작은 두 눈이 사랑을 이루는 열쇠입니다.


  마음으로 소리를 듣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사랑스레 열면서 소리를 듣습니다. 내 곁 아름답다 느끼는 온갖 목숨들이 따사롭게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생각으로 소리를 빚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너그러이 가다듬어 소리를 빚습니다. 내 곁 아름답다 느끼는 온갖 목숨들과 널리 나눌 소리를 빚습니다.


  소리를 들으며 소리를 빚습니다.


.. 누가 종이에 / ‘엄마’라고 쓴 / 낙서만 보아도 / 그냥 좋다 / 내 엄마가 생각난다 ..  (엄마)


  이해인 님 시집 《작은 기쁨》을 읽습니다. 내 국민학생 적이었나 중학생 적이었나, 이해인 님 시집이 퍽 옛날부터 두고두고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으며 읽혔다고 느낍니다. 내 어릴 적에는 이해인 님 싯말이 어떻게 널리 알려지거나 사랑받거나 읽힐 만했는지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느낄 마음이 없었으니 못 느꼈겠지요.


  아이들 재우고 먹이고 놀고 입히고 얼크러지는 자리에서 살아가며 고요히 생각합니다. 누구나 시를 참 쉽게 쓰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아끼고 사랑하며 하루하루 누린다면, 시란 참 쉽게 쓰고 쉽게 읽으며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해인 님은 시를 참 쉽게 씁니다. 스스로 시를 쉽게 쓰시니까 이해인 님을 둘러싼 옆지기나 곁지기가 시를 쓸 때에도 쉽게 읽겠지요.


  받아들이는 삶 그대로 시 한 자락이 됩니다. 맞아들이는 삶 그대로 사랑을 부르는 노래가 됩니다. 하늘이 내려주는 사랑이나 노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늘이 사랑이나 노래를 내려준들 내 가슴을 열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사랑이라고도 노래라고도 깨닫지 못해요. 곧, 내 가슴을 열어 나 스스로 온통 사랑마음과 사랑몸으로 살아낼 때에 비로소 ‘하늘이 사랑과 노래를 내려 주는구나’ 하고 느낄 텐데, 이렇게 사랑과 노래를 느낀다면, 하늘이 사랑을 내려 주니 느낀다기보다, 나 스스로 나한테 사랑과 노래를 베풀기에 느끼는 셈이지 싶어요.


.. 행복한 모습 / 환한 웃음으로 보여주셔요 ..  (어떤 주문)


  엄마를 좋아해서 ‘엄마’ 두 글자 적힌 쪽종이를 보고도 가슴이 설레며 좋다 하는 이해인 님입니다. 누가 베풀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셔요. 누가 알려줘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느껴 좋아하셔요.


  스스로 좋아하기에 소리를 들으며 시를 씁니다. 스스로 좋아하기에 삶을 보살필 수 있고 시를 사랑할 만합니다. 스스로 좋아하기에 꿈을 빚고 꿈을 싯말 하나에 살포시 담습니다.


.. 내가 / 하늘 위에 쓴 이름들은 / 바다가 읽고 / 바다 위에 쓴 이름들은 / 하늘이 읽고 ..  (사랑의 이름)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오늘도 앞으로 다가올 숱한 모레와 글피처럼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나 스스로 좋다고 느끼며 헤아리기에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시를 읽으며 좋은 마음이 됩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를 읽으니 내 사랑씨앗은 좋은 꽃을 피우고 좋은 열매를 맺으며, 내 손으로 새삼스레 좋은 시 하나를 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오늘도 우리 집 처마 밑 제비들은 새끼들 밥 먹이는 노랫소리로 하루를 엽니다. 나도 우리 집 살붙이들 밥 먹이는 웃음소리로 하루를 열자고 생각합니다. (4345.6.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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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07 07:36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쓸 적에는 몰랐는데, 알라딘서재 대문화면에 6월 7일 오늘이 이해인 님이 태어난 날이라고 나오는군요. 책날개에는 이해인 님 '태어난 해와 날'이 따로 안 적혔는데, 이렇게 애써 밝히지 않는다면, 알라딘서재 대문화면 같은 데에서도 딱히 안 밝혀도 좋은 일이 아닌가 싶어... 군말을 붙입니다.

(어쩌면, 저부터 이런 군말을 붙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새삼스레 알고 마는 분도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은빛 호각 창비시선 230
이시영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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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은 어떤 빛깔인가
[시를 노래하는 시 18] 이시영, 《은빛 호각》

 


- 책이름 : 은빛 호각
- 글 : 이시영
- 펴낸곳 : 창비 (2003.11.20.)
- 책값 : 6000원

 


  예전에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 혼자 살던 무렵, 자그마한 자전거를 이끌고 경상남도 하동으로 달린 적 있습니다. 마침 서울에 볼일이 있었기에 서울부터 자전거를 달려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 닿았고, 집에서 가볍게 짐을 꾸려 시골길을 내처 달렸습니다. 길그림 종이를 펼쳐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을까 하고 어림했는데, 막상 먼 시골길을 구비구비 돌며 찾아가자니, 킬로미터 숫자하고는 퍽 동떨어질 만큼 오래 걸렸습니다. 자칫 하동까지 너무 늦게 닿겠구나 싶어, 늦게 닿으면 애써 자전거를 몰아 혼례잔치에 가는 보람이 없다 싶어, 저녁나절 남원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이듬날 구례까지 더 달리고서, 구례읍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넘어갔어요. 나는 자그마한 자전거를 몰았기에 더 작게 접어 시골버스에 탔고, 시골버스는 구례읍 작은 멧골마을을 구비구비 돌았습니다.


  천천히 읍내를 벗어나 이웃 읍내로 가는 시골버스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시골버스는 오래된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타고 내릴 적마다 오래오래 기다린 다음 다시 천천히 달립니다. 외길이라 돌아나와야 하는 어느 멧골마을에 닿아 십 분 남짓 쉰 버스가 다시 달릴 적, 이렇게 외딴 길로 난 멧골마을이라 한다면 나 같은 사람이 들어와서 조용히 살기에 딱 어울리겠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다만,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오르내리자면 좀 애먹겠다고 느낍니다.


.. “이형, 요즈음 내가 한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원이야, 삼만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  (최명희 씨를 생각함)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가 어쩌다 무슨 볼일이 생겨 순천 기차역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찾아가, 기차를 갈아타고 서울 쪽으로 갈라치면 으레 구례역을 지납니다. 기차를 타고 구례를 지날 때에는 예전에 자전거와 시외버스로 구례를 지나던 때하고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여기 구례에도 비닐집이 꽤 많다고 느낍니다. 여기 구례도 이곳저곳에서 드나드는 찻길이 많아 여러모로 나그네나 길손이 많이 들락거리겠구나 싶습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오늘날 이 나라 땅뙈기 어디라 하더라도 찻길이 아주 잘 뚫립니다. 나라에서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찻길을 자꾸자꾸 새로 놓습니다. 화석에너지를 안 쓰는 자동차는 아직 제대로 굴러다니지 않는데, 화석에너지만 먹는 자동차를 끝없이 만들고, 화석에너지로 구르는 자동차 다닐 길만 끝없이 닦습니다. 자전거로 다니거나 두 다리로 오갈 호젓하며 느긋한 길은 도무지 어느 지자체에서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자전거 관광길’이나 ‘도보 여행길’을 놓는 데에는 목돈을 들이는데, 막상 시골마을 사람들이 ‘찻길 싱싱 내달리는 자동차’한테서 놓여날 만한 느긋하고 좋은 거님길을 닦는 데에는 거의 한푼도 안 들인다고 느껴요.


  따지고 보면, 이런 모습은 시골이나 도시나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도시사람 살아가는 동네에서도 자동차 다닐 길만 널따랗지, 정작 사람들 기쁘게 오갈 여느 거님길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아이들이 마음 놓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오가기 힘들어요. 아이 손 잡는 어버이가 느긋하게 길을 거닐기 힘겨워요.


  요사이는 시골에도 자동차 굴리는 이가 많다지만, 허리 굽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으레 두 다리로 걷습니다. 때로 경운기를 몰고 때로 오토바이나 전동휠체어를 몬다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밑길이라 한다면 ‘걷는 길’이 되어야 하는데, 걷는 길만큼은 찬찬히 놓이지 못합니다.


.. 잠실시영아파트가 재건축으로 곧 헐린다고 한다. 베란다에 저보다 큰 장독대들을 이고 장장 삼십년을 버텨온 13평짜리 공중 시멘트 집. 언제 한번 지나면서 보니 빈민굴도 그런 빈민굴이 없었는데 싯가가 3억 7천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  (잠실시영아파트)


  걸을 수 없는 길이라 하면, 이러한 길이 닿는 데에서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느긋하게 걸을 만한 길이 없다면, 이러한 데에서는 사람이 살아가기 팍팍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걸을 만한 들길이며 멧길이 있을 때에, 사람이 즐거이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걸을 만한 길이 호젓하고 느긋한 곳이라면, 사람이 살아가기 아름답거나 좋거나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기 좋은 데가 있습니다. 오토바이 함부로 달리지 못하는 구불구불 호젓한 골목이 있는 동네는 도시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기 좋다고 느낍니다. 자동차 새된 소리에서 홀가분한 동네라면 도시에서도 이웃과 이웃이 어깨동무하기에 좋고,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놀며 자라기에 좋다고 느낍니다.


  자동차가 끝없이 드나들며 새된 소리를 자꾸자꾸 들어야 한다면, 이러한 시골은 시골답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시골이라 하더라도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동차 붕붕거리는 새된 소리라 할 때에는, 사람들 넋과 얼을 곱게 건사하기 힘들구나 싶어요.


.. 어렸을 적 석양녘이었다. 따스한 참새들의 알을 꼭 한 알만 얻겠다고 가만가만 새들이를 타고 올라간 여동생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처마밑에 막 손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콩닥거리는 참새들의 알 대신 차고 미끄러운 것이 쓰윽 고개를 내밀고 나왔다. 굵고 긴 구렁이였다 ..  (집지킴이)


  시집을 읽습니다. 집식구 먹을 밥을 마련하면서 시집을 읽습니다. 밥물 올린 냄비가 끓는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국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도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밥상을 닦는 동안 시집을 읽지 못합니다. 밥냄비 국냄비 모두 올리고 설거지 한 차례 마치고 나서 슬며시 한숨을 돌릴 무렵, 손가락에 물기가 다 말랐다 싶으면 슬그머니 시집을 읽습니다.


  이시영 님 시집 《은빛 호각》(창비,2003)을 읽습니다. 책이름으로 붙은 ‘호각’을 놓고 “호각이 뭐지?” 하고 혼잣말로 묻습니다. 호루라기인가? 서로 힘이 어슷비슷하다는 소리인가? 만주사람 뿔피리인가? 굴 껍데기인가?


  시집에 붙은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기로 합니다. 시를 쓰는 분들이 으레 선보이는 말잔치는 들여다보지 않기로 합니다. 나는 싯말에 깃든 이야기를 읽고 싶습니다. 나는 싯말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며 내 삶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내 둘레 이웃들이 어떤 좋은 삶을 누리며 시 하나 적바림하여 나한테 좋은 노래를 선물해 줄까 하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시영 님 시집 《은빛 호각》은 전라남도 구례와 서울특별시를 꾸준히 갈마듭니다. 먼먼 옛날, 어린 이시영 꼬마가 전남 구례에서 뛰놀거나 뒹굴던 이야기가 흐르다가는, 늙은 이시영 할아버지가 평양에도 갔다가 서울 언저리 어디에도 살다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 통일을 염원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김정숙휴양소 건너편 비탈진 밭에서는 작은 감자알들이 땡볕 아래 탱탱히 익어가고 있었고 ..  (장외場外)


  한참 시집을 읽다가 문득 헤아립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옛 시골마을 그리는 노래’를 적바림했을까 하고. 이렇게 옛 시골마을 그리는 노래를 적바림하고 싶다면, 스스로 도시를 떠나 꿈에도 그리는 좋은 시골마을로 돌아가면 될 텐데 하고.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시골을 꿈꾸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날을 버틸 수 있을 테지만, 시골에서 어여삐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마음껏 누리며 스스로 더 환하게 빛날 수 있을 텐데 하고.


.. 봄이 오면 / 자운영 장다리 꽃피고 / 탱자꽃 바람에 흩날리는 / 그런 고향 다시는 없으리 ..  (고향 생각)


  봄이 오면 어느 시골이건 자운영 장다리 꽃핍니다. 유채 찔레 꽃핍니다. 유월로 접어든 전남 고흥 시골마을 밭자락이나 멧자락에는 바알간 들딸이나 멧딸이 흐드러집니다. 쉴새없이 따먹고 다시 따먹습니다. 찔레꽃 하얗게 눈부신 사이사이 돈나물 노랗고 자그마한 별꽃이 빛나고, 고샅길 돌울타리 누비는 마삭줄은 흰바람개비 꽃내음 물씬 퍼뜨립니다.


  이제 감자는 하얗거나 보얀 꽃망울 맺습니다. 뽕나무는 바알갛게 익는 오디를 내놓습니다. 노란 감꽃과 고욤꽃은 천천히 지면서 푸르게 푸르게 익습니다. 매화나무 열매는 차츰 굵은 알로 바뀝니다. 함박꽃 지고 후박꽃 떨어집니다. 마을마다 논물 가득 찰랑이고,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아침부터 이듬날 아침까지, 저녁부터 이듬날 저녁까지, 무논 개구리는 신나게 노래합니다.


.. 송아지가 볼이 미어져라 상큼한 햇짚을 넣고 씹는다 ..  (가을)


  시인 이시영 님은 시집 《은빛 호각》에서 당신 시골집 구례와 당신 살림집 서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갑니다. 사이사이 북녘땅 어딘가를 마실합니다. 무슨무슨 손님으로 북녘땅을 마실할 수 있은 듯합니다. 그러면, 이시영 님한테 ‘그리운 터’는 세 군데가 될까요. 구례, 서울, 북녘.


  이제 시집을 덮습니다. 시집을 덮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시인 이시영 님이 지나온 나날은 어떤 빛깔이라 할 만할까요. 가을빛일까요. 봄빛일까요. 자운영빛일까요. 송아지빛일까요.


  시집을 읽는 나는 어떤 빛깔로 꾸리는 삶일까요. 내 삶빛은, 내 넋빛은, 내 몸빛은, 내 사랑빛은 어떠한 무늬와 결과 내음을 풍기며, 오늘 하루 새로우며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시 한 줄 쓸 수 있는 사람은 삶자락 한켠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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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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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샘솟는 자리
[시를 노래하는 시 17] 손세실리아, 《기차를 놓치다》

 


- 책이름 : 기차를 놓치다
- 글 : 손세실리아
- 펴낸곳 : 애지 (2006.2.13.)
- 책값 : 8000원

 


  도시에 공부방이 있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쉼터 구실을 합니다. 도시 공부방은 곧잘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한테 한글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시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배움마당을 열기도 합니다. 올해에는 고흥군에 두루 ‘유기농 농사짓기’를 퍼뜨린다며, 광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분이 ‘유기농 농사짓기 강의’를 하러 오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지난날을 돌이키고, 시골에서 사는 오늘날을 헤아립니다. 지난날 도시에서 동네 아줌마나 할머니한테서 무언가를 배우는 자리를 누군가 연 적 있었나 궁금합니다. 공부방이나 경로당은 있다지만, 문화회관이나 복지화관은 있다지만, 늘 ‘자격증·졸업장 많이 거머쥔’ 이들이 찾아와서 ‘자격증·졸업장 하나 없는’ 이들한테 지식과 정보를 한 가득 들려줄 뿐 아닌가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마을 어르신한테 자꾸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겠다 할 뿐입니다.


.. 시인을 꿈꾸는 이여 / 그대가 방금 내게 들려준 말이 시다 / 한 줄의 첨삭도 필요 없는 온전한 시다 / 외지에 나가 칼질로 먹고 사는 장손을 위해 / 자갈밭 일구고 평생 물질하셨을 / 칠순 노모의 휘어진 허리가 시다 / 주방에 그릇그릇 담긴 어머니의 몸이 바로 시다 / 그것을 받아 적지 못하면 허당이다 / 시는 그대 안에 이미 와 있느니 / 밖에는 없느니 ..  (밥상에 올려진 시)


  나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 보금자리를 얻어 살고부터 ‘고흥과 얽힌 책’을 틈틈이 장만해서 읽습니다. 1980년대에 나온 관광책도 장만하고, 1970년대에 나온 교과서 보조교재도 장만합니다.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편》도 장만합니다. 이런 책도 읽고 저런 책도 살핍니다. 여러 갈래 온갖 책을 훑다가 문득 느낍니다. 고흥군청에서 내놓는 책이든, 고흥 바깥에서 펴내는 책이든, 어떠한 책이라 하더라도 고흥을 바라볼 때에는 ‘관광하러 드나들 만한’ 곳이 되느냐 하는 눈길입니다. ‘돈을 잘 버는’ 곳인가 아닌가를 따집니다.


  통계자료가 있는지 모릅니다만, 우리 식구 깃든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학력’이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마을 할머니는 국민학교라도 다녀 보셨을까요. 마을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다음으로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까요.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들을 대학교까지 보낼 뿐 아니라 대학원도 보냅니다.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딸아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등허리 구부정하게 일하지 않습니다. 도시로 떠나 살아가는 딸아들은 돈을 쏠쏠히 벌고 커다란 자가용을 굴립니다.


.. 어미가 앞장 서 갈퀴발로 터놓은 물의 길을 여남은 마리의 새끼들이 올망졸망 뒤쫓고 있습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수선스러워 보이지만 묵언정진 중인 수련 꽃잎에 생채기내는 일 없고 빽빽한 수풀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니는 듯 보이지만 물풀의 줄기 한 가닥 다치는 법 없이 말짱한 것이 하늘에 길을 트고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들의 비행과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요 ..  (물오리 一家)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처음부터 풀약과 비료를 쓰며 흙을 일구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마흔 해나 쉰 해 앞서도 풀약과 비료를 써서 논밭을 일구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예순 해나 일흔 해 앞서, 마을 어르신들이 당신 어버이한테서 흙일을 물려받을 무렵에도 당신 어버이는 풀약과 비료로 푸성귀와 곡식을 거두라 가르쳤을까 궁금합니다.


  할머니들은 호미질을 빼어나게 잘 합니다. 할아버지들은 낫질을 훌륭하게 잘 합니다. 할머니들은 풀을 잘 압니다. 할아버지들은 흙을 잘 압니다. 할머니들은 물을 잘 압니다. 할아버지들은 하늘을 잘 압니다.


  시골 할머니한테서 호미질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도시사람은 없습니다. 시골 할아버지한테서 낫질을 배우겠다며 문화강의를 여는 지식인이나 관청 공무원은 없습니다.


  밭이랑을 만들거나 논둑을 다지는 솜씨를 배우러 시골로 찾아오려 하는 도시 젊은내기는 얼마나 될까요. 들풀을 익히거나 멧나물을 배우러 시골로 드나들려 하는 도시 지식인이나 학자는 얼마나 되려나요.


.. 이름 석 자는커녕 / 전화 다이얼도 돌릴 줄 모르는 어머니를 / 세상은 까막눈이라 한다 ..  (까막눈)


  모든 강의는 지식 강의에서 그칩니다. 모든 학교는 정보를 새로 만들어 쌓는 데에서 끝납니다. 사람들은 자꾸자꾸 자격증을 새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나날이 졸업장을 더 따집니다.


  볍씨 한 알을 어떻게 갈무리해서 봄날 못자리에 심어 싹을 틔우는가를 모르더라도 밥을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볏포기가 얼마나 푸르게 빛나며 개구리와 뱀과 새와 거미 들을 품에 안기에 단단하고 알찬 열매가 맺는가를 모르더라도 쌀을 얼마든지 장만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쌀농사 짓지 말라고 ‘직불제’라는 제도를 마련합니다. 나라에서는 쌀이야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며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제도를 맺습니다. 그런데, 쌀농사 짓지 말라면서, 쌀은 더 안 지어도 된다면서, 이 나라 정부는 갯벌을 메워 논을 만드는 일을 자꾸 벌입니다. 논을 만들어도 농사짓지 말고 묵히라는 정책을 세우면서, 정작 갯벌을 메워 논밭으로 바꾸겠다 외칩니다.


  곰곰이 따지면, 논밭으로 바꾸려 메우는 갯벌은 아니로구나 싶습니다. 처음에 내세우기로는 논밭으로 삼겠다는 허울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파트나 공장을 지으려고 갯벌을 메웁니다. 조개도 낙지도 굴도 김도 몽땅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되니까, 조기도 게도 갈치도 오징어도 모조리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그만이니까, 갯벌을 없애고 바다를 더럽힙니다. 깨끗한 바닷가마다 발전소를 지어 바닷물을 망가뜨립니다. 깨끗한 바닷마을마다 공장을 세워 흙과 물을 더럽힙니다.


.. 미장갑차 무쇠바퀴에 뭉개져 / 네가 떠난 오욕의 이 영토에도 / 어김없이 첫눈은 내리고 / 철없는 소름은 / 베옷 밑에서 자꾸만 키가 자란다 … 이승에서 너 하나 지키지 못하고도 / 살아 밥을 먹고 말을 섞는 / 부끄러운 날이 살같이 지난다 // 잘 가거라 아가, 내 새끼야 ..  (베옷을 입다)


  대학교에서는 새끼꼬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농업과학’을 가르치는 학과는 있다지만, 정작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고 쓰레기를 안 빚는 오랜 흙일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습니다. 볏짚으로 새끼를 꼴 뿐 아니라, 짚신을 삼거나 바구니 엮는 솜씨를 가르치는 교수는 없어요. ‘식품영양’을 가르치는 학과는 있다지만, 들풀이나 멧풀을 하나하나 캐거나 따거나 뜯거나 꺾어서 몸을 살찌우는 삶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습니다. 메주를 쑤거나 두부를 빚거나 마늘을 말리거나 감알을 깎는 솜씨를 가르치는 교수는 없어요.


  그물을 꿰거나 베틀을 밟을 줄 아는 교수는 있을까요. 뽕잎을 따거나 뜨개질을 할 줄 아는 교수는 얼마나 될까요. 손으로 빨래하거나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교수는 얼마나 될까요.


  생각해 보면, 새끼꼬기를 대학교에서 가르친다면,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굳이 당신 딸아들을 대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짚신삼기를 가르치며 대학 교수가 된다면,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애써 당신 딸아들을 대학 교수가 되도록 뒷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새끼꼬기를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으니,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일이 벌어집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들판과 멧자락에서 나물을 캐지 않으니, 온 나라 냇가에 시멘트를 발라 망가뜨리는 짓을 수십 조를 들여 저지릅니다.


  삶을 배우지 않기에 삶을 사랑하지 못해요. 삶을 가르치지 못하니 삶을 아끼지 않아요. 삶을 물려받지 않으니 삶을 좋아하지 못해요. 삶을 이야기하지 못하니 삶을 나누지 않아요.


.. 수렁 같은 허방에 큰절 올린다 / 떼 한 포기 옮겨 심는 마음으로 / 진혼시를 쓴다 ..  (고봉산 뼈무덤)


  시골을 떠난 아이들은 왜 자가용을 몰고 명절날 이녁 어버이를 찾아 뵐까요. 명절날 갖가지 선물보따리 들고 시골마을 찾아 돌아왔다가 금세 도시로 떠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시골마을 어버이한테는 무엇이 선물이 될 만한가요. 시골로 찾아와 도시로 돌아가는 아이들마다 자가용 짐칸에 바리바리 싣는 꾸러미는 무엇일까요.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도시로 떠난 아이들을 ‘밥을 먹여’ 살립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시골마을 어버이한테 ‘돈푼’ 쥐여 준다지만, 시골마을 어르신은 ‘돈푼’으로 맛나다는 먹을거리를 사다 먹지 않습니다. 늘 스스로 흙을 일구어 맛난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흙에서 얻은 돌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손질하거나 고칩니다. 이제는 가게에서 옷을 사다 입는다지만, 옷가지 또한 모두 흙에서 얻었고, 흙으로 돌려보냈어요. 환경운동이니 재활용이니 하고 떠들 까닭이 없는 시골마을이에요. 생태이니 생명이니 하고 외칠 까닭이 없는 시골살이예요.


  스웨덴이나 덴마크나 네덜란드까지 찾아가서 ‘미래 대안’을 배울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우리 어버이들 나고 자란 가까운 시골에서 ‘오늘 삶’을 사랑하며 껴안을 수 있어요. 쿠바나 핀란드나 캐나다에서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배울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바로 우리 어버이들 나고 자란 가까운 시골에서 ‘푸른 삶’을 아끼며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사랑이 삶이에요. 삶은 푸르게 빛나요. 꿈이 삶이에요. 삶은 맑게 빛나요.


.. 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 푸르고 곱게 부식되어 / 다음 생엔 부디 / 이마 말간 꽃으로 환생하기를 / 삼가 합장 또 합장하며 ..  (저문 산에 꽃등 하나 내걸다)


  손세실리아 님 시집 《기차를 놓치다》(애지,2006)를 읽습니다. 기차를 놓쳤어요. 그래요. 기차를 놓쳤으니 기다려야겠네요. 또는, 걸어가야겠네요. 또는, 길을 떠나지 않고 내 작은 마을에서 작고 조용히 살아야겠네요.


  나는 늘 기차를 놓칩니다. 나는 늘 기차를 놓치고 내 작은 마을에 우두커니 섭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생각합니다. 누구와 사랑하는 사람인가 돌아봅니다.


  나는 늘 기차를 먼저 보냅니다. 나는 늘 기차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걷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 사람인가 헤아립니다. 누구랑 어디로 나들이를 다닐 때에 즐거운 나날일까 곱씹습니다.


  싯말은 바로 내 가슴에서 샘솟습니다. 싯말은 곧 내 삶말입니다. 싱그러이 사랑하는 내 가슴이라면 싱그러이 사랑하는 싯말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곱게 사랑하는 내 삶이라면 곱게 사랑하는 싯말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를 따숩게 어깨동무합니다.


  손세실리아 님은 사랑을 기다리며 삶을 한 올 두 올 엮으며 싯말 한 송이 자그맣게 피웁니다. (4345.5.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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