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이 없는 거리에서 - 백기완 선생과 나
여럿이 함께 씀 지음,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엮음 / 돌베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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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5.7.

노래책시렁 232


《백두산 천지》

 백기완

 민족통일

 1989.5.15.첫/1989.7.31.둘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마음입니다. 말은 마음입니다. 이 대목을 보고 느껴서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말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우리말로 생각을 지어서 뜻을 펴야 비로소 스스로 어떤 숨결이며 삶이고 사랑인가를 깨닫습니다. ‘우리말만 써야 한다’가 아닌 ‘우리말을 쓸 일’입니다. ‘말·마음’은 말밑(어원)이 같습니다. 두 낱말이 같은 말밑이되 다른 말결인 줄 알자면, ‘그냥 우리말’을 써야겠지요. 어린이도 알고 어른도 아는 수수한 우리말을 스스로 쓰기에 누구나 스스럼없이 삶빛을 깨닫습니다. ‘글·그림’도 말밑이 같아요. ‘그리다·긋다’도 한동아리입니다. ‘이·그·저’로 잇닿는 ‘그’를 살필 노릇이며, 누구나 밥살림에서 쓰는 ‘그릇’도 나란히 어우러지는 말밑인 줄 새길 일이에요. 우리가 쓰는 우리말은 쉽습니다. 쉬우니 아이가 이내 배워서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백두산 천지》는 노래 가운데에서 ‘비나리’입니다. 비는 뜻을 담은, 하늘에 바라고 스스로 마음빛에 서린 사랑을 바라보는 뜻을 엮은 글자락입니다. 아니, 말빛(마음빛)이라고 해야겠지요. 우리는 꿈을 그릴 노릇이지, 꾸밀 노릇이 아닙니다. 고작 한끗이라지만 ‘꿈’하고 ‘꾸밈’은 확 달라요. 꾸미면 거짓입니다.


ㅅㄴㄹ


현담아 / 어쩜 그렇게 시를 잘 지었니 // “봄비가 솔솔 내려 / 힘 없는 우리 아빠 / 기운을 주소서” // 네 글귀에 애비는 정말 / 힘을 입어 /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 // 그리고 꽃동산이라는 / 네 시의 마지막 글귀 // “바람이 불면 / 무섭다고 도망가는 꽃 / 꽃들은 겁장이 / 기운을 내세” (현담아/46쪽. 80.2.1.)


이틀이 지나자 그는 내가 어딘가 / 그늘진 사람이라는걸 알었다 // 그리하여 됫병을 차고 들어온건 / 자정녁, 그가 먼저 떨어졌으나 / 새벽달 남은 쪼각에 / 그의 두려움이 그대로 걸려 / 슬며시 이슬길을 헤치다 / 늦으막에야 다시 들어서 (사십년동안 끈질기게/97쪽. 86.가을)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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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피리 - 윤동주.윤일주 형제 동시집
윤동주.윤일주 지음, 조안빈 그림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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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5.7.

노래책시렁 233


《민들레 피리》

 윤동주·윤일주 글

 조안빈 그림

 창비

 2017.12.30.



  윤동주 님 동생 윤일주 님도 노래를 그렸다고 합니다. 《민들레 피리》는 두 사람 노래를 나란히 엮으며 그림을 새로 넣습니다. 이미 ‘윤동주 시집’은 온갖 곳에서 잔뜩 펴내었기에 ‘동생 윤일주 노래’를 슬며시 끼워맞춘 듯한 얼거리입니다. 두 분을 제대로 기리고 싶다면 동생이 쓴 노래만 차곡차곡 여미어 선보이는 길이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생이 쓴 노래를 오늘날 어린이한테 어느 만큼 읽힐 만할까요? 지난날하고 오늘날은 삶터가 확 바뀌었기에 더 읽힐 만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누리지 못하던 무렵에 말결을 맞추어 앙증맞게 쓴 노래에서 그친다면, ‘윤동주 동생’이라는 이름만 너무 내세운 셈이라고 느낍니다. 말놀이보다는 말맞춤에 가까운 글자락 가운데 〈보슬비〉 하나를 겨우 곱씹어 보지만, “어떻게 풀밭 아닌 잔디밭에서 벌레 소리”를 듣는다고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잔디밭은 잔디가 우거진 데가 아닌, 잔디를 바짝 깎아서 풀벌레가 깃들거나 쉬거나 숨을 틈이 없는 데입니다. 잔디밭에도 풀벌레가 살짝 깃들기는 할 테지만, 오직 잔디 하나만 납작 엎드린 데에는 풀벌레가 웬만해서는 얼씬조차 안 하려 합니다. 시골하고 숲을 노래로 그리려면, 시골에 살며 숲을 품을 노릇입니다.


ㅅㄴㄹ


보슬보슬 보슬비 / 잔디밭에 내린다. / 동글동글 물방울 / 풀잎마다 맺힌다. // 보슬보슬 보슬비 / 호수 위에 내린다. / 둥글둥글 물무늬 / 여기저기 번진다. // 보슬보슬 보슬비 / 활짝 개고 / 잔디밭엔 벌레 소리 / 호수 속엔 쌍무지개. (보슬비/7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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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초상 문학과지성 시인선 455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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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5.7.

노래책시렁 234


《에코의 초상》

 김행숙

 문학과지성사

 2014.8.18.



  노래책(시집)을 읽는 분들은 곧잘 한두 꼭지만 마음을 울려도 읽을 만하다고 말합니다. 한두 꼭지가 아니어도 한두 줄, 아니 한 줄만 마음에 스며도 읽을 만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열네 살에 이르러 ‘국어’란 이름으로 어른노래(성인시)를 처음 배우던 무렵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고, 노래책은 이런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찜찜해요. 한 줄만 마음에 스쳐도 아름답게 마련이기는 하되, 왜 마음에 안 스치는 나머지 아흔아홉을 읽어야 할까요? 아니, 노래님은 왜 한 줄을 읽히려고 아흔아홉 줄을 끄적여야 할까요? 《에코의 초상》을 펴며 첫머리 두 꼭지를 곱새겨 읽었습니다. 이러고서 끝까지 꼭짓물(수돗물) 같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첫머리 두 꼭지도 꼭짓물일 테지요. 다른 곳에서는 듣거나 읽을 일이 없으나, 오직 노래책에서만 흐르는 숱한 꾸밈말하고 보탬말을 읽으면서, 또 노래책이 아니면 붙이지 않을 듯한 책이름을 다시 보면서, 이 나라 어른노래는 너무 붕뜬 채 떠돈다고 느낍니다. 발바닥이 땅바닥에 닫지 않은 채 오래오래 살다 보면 흙바닥을 잊다가 어느새 잃습니다. 이따금 서울마실을 하고 보면 사람들 누구나 땅바닥을 아예 안 디딘 채 하루를 보내는구나 싶더군요. 흙빛을 모르면 삶빛을 잊습니다.


ㅅㄴㄹ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 물결처럼 // 우리는 깊고 / 부서지기 쉬운 //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인간의 시간/11쪽)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또 덮었다. 어둠이 깊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진 것이 밤이다. 밤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밤의 우물, 밤의 끈적이는 캐러멜, 밤의 진실. 밤에 나는 네가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밤에/2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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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문학정신과 그 뿌리를 찾아서
이승철 지음 / 문학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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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팔아먹는

모든 '찌라시'가

걷히기를 바라며.


.

.


숲노래 노래책 2022.4.2.

노래책시렁 223


《안개주의보》

 김하늬

 호남문화사

 1980.3.25.



  1980년 5월을 앞둔 3월에 나온 《안개주의보》는 광주 불로동에서 찍었고, 이 노래책을 2021년 가을에 천안 헌책집에서 만났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했던” 같은 글자락이 보이지만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굶주리거나 헐벗거나 가난했는가를 그리지는 않습니다. “상냥한 女子처럼 다가와” 같은 글자락처럼 적어야 글(문학)이 된다고 여기는 티를 곳곳에서 엿볼 만합니다. 글에 담을 삶이란 무엇이요, 글을 쓰기 앞서 어떤 눈길이어야 하며, 글을 나눌 이웃을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글돌이 아닌 글순이였다면 “상냥한 男子처럼 다가와”처럼 써야 글(문학)이라고 여길는지요? 1980년에도 1960년에도 2000년이나 2020년에도 이 나라 글판은 어슷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만 마치고서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배움터를 아예 안 다닌 사람은 글판에서 도무지 못 찾습니다. 어느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마쳤는지 따지고, 어느 고장에서 태어났는지 따지고, 누가 끌어올렸는지(추천·등단) 따져요. 예전에는 안개였다면 오늘날에는 먼지띠(스모그)입니다. 글을 쓰면서 ‘광주·전라도’를 팔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저 글을 쓰기를 바랍니다. 안개도 먼지띠도 거두어 낼 숲을 바라보고 품기를 바라요.


ㅅㄴㄹ


우리와 같이 / 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했던 사람을 // 우리와 같이 / 못배우고 가냘프고 마음 약했던 사람을 (그대/23쪽)


그 안개가 이 이른 새벽에 또 흰가운을 / 입고 / 상냥한 女子처럼 다가와 // 우리들의 목덜미를 파고들며 / 면도질을 한다 // 우리들의 목덜미는 순간 배암처럼 / 싸늘해지고 // 우리들은 무서워서 마스크를 쓴다 (안개주의보/51∼52쪽)





'찌라시' 시인 책에

굳이 이 글을 걸치는 까닭을

이 출판사 일꾼이

이제라도 깨닫기를 빈다.


이태 앞서 전화를 해서 따졌는데

아직도 버젓이 이 책을 파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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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 개정판 동시야 놀자 10
안도현 지음, 설은영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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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동시읽기 2022.4.2.

노래책시렁 227


《냠냠》

 안도현 글

 설은영 그림

 비룡소

 2010.6.18.



  새뜸(신문)을 읽지는 않으나 이따금 읍내 우체국에 가서 묵은 새뜸을 몇 모읍니다. 굳이 읽을 까닭이 없다고 느끼되, 굵직하다는 일이 있으면 이런 일을 담은 새뜸은 가끔 모아 놓는데,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지나고서 돌아보면 다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보내는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아이가 서른 해나 쉰 해 뒤에도 아름다이 건사하면서 살림살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길을 손수 짓도록 북돋우는 길을 가르치나요, 아니면 이런 길은 하나도 안 가르치나요? 《냠냠》을 열 해 만에 새로 읽으면서 참 따분하다고 느낍니다. 장난스러이 꾸미는 글·그림으로 이쁘장하게 옷을 입히고 ‘냠냠’이란 이름을 붙이지만, 곰곰이 뜯으면 ‘싸움(전쟁)’으로 내모는 말이 가득하고, 서울살이(도시생활)에 가두는 틀을 쉽게 엿볼 만합니다. 오늘날 ‘동시’이든 ‘어른시’이든 삶이 드러나는 글은 드뭅니다. ‘삶인 척’하는 글이 수두룩하고, 어린이한테는 이쁘장하게 치레하고 어른한테는 아귀다툼판에서 다친 생채기를 드러내는 글이 가득합니다. 소리내어 자꾸 되읽으며 마음을 살찌우는 든든하며 푸른 살림꽃이나 숲빛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동시·어른시’란 이름을 왜 붙여야 할까요?



짜장면 냄새가 나도 침을 삼키지 않겠다 / 다짐하고 중국집 앞을 지나간다 …… 항복이다, 항복! / 두 손 들었다 / 내가 졌다 / 짜장면 냄새하고는 싸워 볼 수도 없다 (짜장면 냄새/24쪽)


밥 먹을 때마다 / 밥상에 쳐들어와요 / 빨간 혀를 날름거려요 / 퀴퀴한 냄새를 풍겨요 / 김치 악당이에요 / ― 매운 맛 좀 볼래? / 나를 놀려요 / ― 매운 맛 좀 봐라! / 내가 물리쳐야겠어요 / 우걱우걱 씹어요 (김치 악당/38쪽)


한 숟가락도 / 남기지 마라 / 한 숟가락 남기면 / 밥이 울지 / 밥 한 숟가락도 / 못 먹어 배고픈 / 아이들이 울지 (밥 한 숟가락/56쪽)


ㅅㄴㄹ


오늘날 동시에는 안도현 동시처럼

‘항복·싸움(전쟁)’에

‘악당·물리치다’ 같은 말이 넘치고

“못 먹어 배고픈 아이들이 울지”처럼

먼발치에서 강요하는 교훈이 넘친다.


동시란 말장난인가?

동시란 “아이들 마음을 죽이고 길들이는 굴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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