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전집
신동엽 지음, 강형철.김윤태 엮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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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3.28.

노래책시렁 222


《신동엽전집 증보판》

 신동엽

 창작과비평사

 1975.6.5.첫/1999.4.10.15벌



  배움수렁(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이란 여럿인데, 첫째로는 배움터를 그만두기요, 둘째로는 푸른배움터만 마치는 길이요, 셋째로는 열린배움터로 나아가서 낡은 틀을 뜯어고치는 길이요, 넷째로는 서울(도시)을 떠나 시골에서 숲을 품는 길입니다. 다섯째는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일 텐데, 열여덟 살에 배움책(참고서)이 아닌 《신동엽전집 증보판》 같은 책을 읽고서 동무한테 빌려주었는데, “야, 너무 어렵다. 한자도 많고.” 하더군요. 동무는 “우리하고는 맞지 않는 듯해.” 하고 보태었습니다. 예전에 글을 쓰던 분은 한자를 자주 썼고, 노래에는 더더욱 한자를 드러내었습니다. 적어도 노래에 한자를 넣지 않았다면 동무가 어려워하지 않았을까요? ‘영어’는 꺼리면서 ‘한자’는 사랑하던 지난날 노래님은 두동진 넋이지는 않을까요? 글을 모르고 배운 적 없는 어버이가 낳은 딸아들이 배움터를 다니며 글을 익히고, 나라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해온 지 얼추 온해(100해)에 이릅니다. 오늘날 우리 말글은 얼마나 자라거나 빛났을까요? 오늘 우리는 살림터를 어떤 손끝으로 추스르는가요? 손수 밥옷집을 짓고, 노래를 짓고, 말을 짓고, 생각을 지으면서, 아이를 고이 품는 숨결은 누구한테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ㅅㄴㄹ


아니오 / 괴뤄한 적 없어요, / 稜線 위 /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 아니오 / 사랑한 적 없어요, / 세계의 /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 차마, 옷 입은 都市계집 사랑했을 리야. (아니오·1963/31쪽)


목은 말라도 / 구멍가게엔 / 건빵, 쪼꼬렡뿐 / 막걸리, 김치 생각은 굴안 같은데 / 가게엔 英語로 쓴 부란디 / 化學酒뿐, // 냇가에선 / 수십명의 수건 두른 / 부인들이 / 모래를 일는다, / 탄피, 小銃알, / 날품값 보리 두 되 값이라던가, (錦江/237쪽)


신동엽전집을 다시 읽어 보면서

내가 고등학생 때

동무한테 너무 어려운 책을 건네었다고

새삼 느낀다.


그때에 꾸역꾸역 끝까지 읽어 주고서

“너무 힘들었어.” 하고 말한

동무들한테 새삼스레

잘못했다고 빌어 본다.


새로 다시 읽어 보니

오늘날 눈으로는 ‘성인지 감수성’으로

걸릴 대목도 제법 있구나 싶어

나중에 아이들한테도 못 읽히겠다고 느꼈다.


이제는 ‘문학이니까’ 하는 이름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때인걸.

‘문학이니까’ 더더욱 헤아려야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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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종 동시선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시문학선집
박경종 지음, 전병호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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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3.28.

노래책시렁 224


《엄마하고 나하고》

 박경종

 백록출판사

 1981.11.10.



  우리나라 글밭을 돌아보면, 발바닥을 삶자리에 안 두고서 쓰는 글을 ‘멋있다’고 치켜세운 나날이 길지 싶어요. 발바닥이 삶자리에 있는 사람은 살림을 짓고 아이를 돌보면서 숲을 품었어요. 손바닥이 삶자리에 있는 사람은 집을 짓고 옷을 지으며 밥을 지으면서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손바닥하고 발바닥이 어디에 있을까요? 삶자리에 있나요? 숲자리에 있나요? 《엄마하고 나하고》는 ‘동심천사주의’로 ‘동시’를 쓴 자취를 환히 엿볼 만한 책입니다. 노래님이 들려주는 노래는 ‘엄마 곁에서 귀여움을 떠는 아이’로, 소꿉을 놀더라도 무슨 소꿉인지 알 길이 없고, 어버이 곁에서 심부름이나 집안일을 함께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새마을바람’을 넌지시 치켜세우면서 시골집을 깎아내리기까지 하다니요. 제가 어린이일 적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서는 이런 글만 읽히면서 베껴서 동시를 쓰라고 시켰습니다. 이런 동심천사주의 글을 읽고 외우며 셈겨룸(시험)을 치러야 할 적마다 “날마다 어버이 곁에서 갖은 집안일을 나누어 함께하던 저나 또래”는 ‘머나먼 남’이 하느작거린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런 글은 오늘날에도 사그라들지 않으니, 우리나라에는 동시가 싹트려면 먼 듯합니다.


ㅅㄴㄹ


푸른 감나무가 / 울타리처럼 늘어선 / 뒤뜰 장독 밑에서 // 계집아이처럼 / 혼자 소꼽놀이를 하면 // 뒷문 열고 / 엄마는 웃으시다가 // 소리 없는 / 발걸음으로 // 내 곁에 다가와선 / 나와 같이 동무한다 (엄마하고 나하고 2/10쪽)


나는 가랑비에 젖어 가는 / 초가집들을 / 바라보면서 / ― 이 마을에선 / 새 마을 사업도 / 모르나 … (김포 길/87∼88쪽)


푸른 장막을 열자! / 오월의 푸른 장막을 // 우리 모두 마음껏 열면 / 따사로운 햇볕은 / 엄마의 손처럼 따스하다 (푸른 오월/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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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둔다 상추쌈 시집 1
서정홍 지음 / 상추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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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3.28.

노래책시렁 225


《그대로 둔다》

 서정홍

 상추쌈

 2020.10.5.



  순이는 어머니 자리에 서고, 돌이는 아버지 자리에 섭니다만, 어쩐지 아버지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이는 드뭅니다. 《58년 개띠》에 이은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를 스물 몇 해 앞서 읽으며 글돌이라면 이쯤은 헤아릴 노릇이라고 여겼습니다. 《윗몸 일으키기》를 읽으며 노래꽃을 이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어 반가웠어요. 그러나 ‘개띠’ 이야기를 자주 들추는 글은 갈수록 제자리걸음 같더군요. ‘개띠’가 아닌 ‘사람’을 짚으면서 ‘노래로 적는 말’에 ‘숲빛으로 푸르게 나아가도록’ 가다듬는 길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고도 느꼈습니다. 《그대로 둔다》를 한 해 남짓 묵히고서 읽었습니다. 밭살림이랑 집살림을 꾸리는 글은 예나 이제나 싱그럽지만 ‘문학스럽거나 시다운 글’로 여미려 애쓰기보다는, ‘일하는 투박한 손끝’을 고스란히 담으면 될 텐데 싶어요.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풀벌레노래에 귀를 열면서, 바람소리를 가만히 받아들이면 노래는 언제나 저절로 피어납니다. 서정홍 님 글에 ‘것’이 자주 나오는데, 이 ‘것’을 모조리 덜어 보기를 바라요. “얼마나 많은 내공內功을 쌓았을까(121쪽)” 같은 대목도 글치레입니다. “얼마나 많이 속빛을 쌓았을까”쯤으로 적으면 되어요.


ㅅㄴㄹ


벽에 자랑처럼 걸린 / 아주 오래된 / 국민학교 6년 개근상을 바라보며 /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 그 여섯 해 동안 / 아버지가 몹쓸 병으로 돌아가시고 /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쓰러지시고 / 단짝 친구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고 …… // 곁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 개근을 했다는 게 / 문득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늦은 웃음/28쪽)


미리 말을 못 한 형수도 잘못이지만 / 어쨌든 아침부터 큰소리로 나무란 건 어머니잖아요 / 어머니가 그 사연을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도 / 그래도 어머니가 먼저 형수한테 사과하면 좋겠어요 / 전화로 하지 말고 직접 만나서 / 얼굴 마주 보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어요 (안부 그리고 공부/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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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해녀
김신숙 지음, 박들 그림 / 한그루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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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3.11.

노래책시렁 219


《열두 살 해녀》

 김신숙 글

 박둘 그림

 한그루

 2020.8.27.



  우리 곁에 흐르는 모든 삶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차곡차곡 갈무리하면서 아이한테 노래로 들려줍니다. 웃는 삶이건 우는 삶이건 오롯이 사랑으로 삭이면서 새롭게 들려주기에 노래입니다. 글이라곤 모르던 사람이어도 언제나 말로 삶을 갈무리하여 이야기로 엮었고 노래로 들려주던 살림이에요. 글하고는 등진 채 살림을 꾸린 수수한 순이돌이는 누구나 노래님입니다. 임금붙이나 글바치는 빛나는 노래님인 수수한 순이돌이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임금붙이하고 글바치는 중국을 섬기는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스스로 깎아내리는 틀에 갇혔어요. 《열두 살 해녀》는 글님이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찬찬히 옮겨적은 노래로 엮은 책입니다. 글님 어머니는 굳이 글을 안 썼으나, 이녁 아이한테 이녁 삶자락을 노래로 들려주었고, 이 이야기가 옹글게 노래인 줄 알아챈 손끝으로 새록새록 엮었다고 할 만합니다. 제주순이 이야기가 노래로 태어난 곁에 경상순이나 전라순이 이야기가 노래로 태어나기를 바라요. 서울순이나 대전순이 이야기도 노래로 태어나면 아름답겠지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글을 가르쳐 손수 쓰도록 이끌어도 나쁘지 않되, 한어버이 곁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펴면서 삶빛을 담아내면 한결 사랑스럽습니다.


ㅅㄴㄹ


밭에 가 풀 베고 집에 가 천초 빨고 / 여자 할 일들은 한한했다 // 여자 할 일들은 / 밭에서도 / 바다에서도 / 풀자라듯 지깍 (한한한 일/21쪽)


학교 다닐 때 용돈 없으니까 / 아버지가 말린 미역 / 몰래 뽑아서 숨겨 놓았지 // 그 미역을 가지고 / 뽑기 하러 가 …… 마른 미역 없을 때는 / 콥대사니 마농 // 어른들이 밭에다 심어 놓으면 / 몇 개 뽁뽁 뽑아다 // 뽑기 하러 가 / 뽑기 사탕 뽑으러 (공표 뽑기/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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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의자 아침마중 동시문학
김동억 지음, 김천정 그림 / 아침마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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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3.11.

노래책시렁 222


《무릎 의자》

 김동억 글

 김천정 그림

 아침마중

 2017.7.1.



  고운말하고 이쁜말은 다릅니다. 참말하고 귀염말도 다릅니다. 고운말은 고르고 고른 말일 뿐 아니라, 고루 가꾸는 말이요,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는 말입니다. 이쁜말은 겉으로 좋아 보이도록 꾸미는 말입니다. 참말은 착한 숨빛이 가득찬 마음으로 펴는 말입니다. 귀염말은 귀엽게 굴면서 누가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말입니다. ‘동심천사주의’란 이쁜말잔치에 귀염말잔치입니다. 《무릎 의자》는 바로 이쁜말에 귀염말을 씌운 글을 ‘동시’란 이름으로 펴는데, 이쁜말 사이에 무섬말이 깃들고, 귀염말 사이에 죽임말을 끼워넣습니다. “꽃이 시위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까요? 예부터 ‘김매기’라고는 했으나 “잡초와 전쟁”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유격 훈련을 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고요? 터무니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이쁘게 꾸미는 말에 아이들 생각을 가두려는 동심천사주의로는 어른부터 스스로 갇힌 수렁입니다. 누가 좋아해 주기를 바라면서 귀염말을 쏟아낼 적에는 바로 어른부터 아이들한테 겉모습에 얽매이는 굴레를 씌우는 노릇입니다. 어린이를 동무이자 이웃으로 바라본다면, 노닥질하듯 노리개를 하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만, 어린이를 동무로도 이웃으로도 볼 줄 모르면 ‘말만 이쁜 죽음잔치’일 뿐입니다.


ㅅㄴㄹ


보도블록 틈새에 / 꽃 한 송이 피워 놓고 / 시위를 하고 섰다 (예쁜 시위/22쪽)


한여름 뙤약볕에 / 텃밭을 가꾸는 할아버지 / 잡초와 전쟁을 치른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52쪽)


계곡을 흐르는 물도 / 유격 훈련을 하나 봐 // 더 넓은 세상으로 / 나아가기 위해 (물도 유격 훈련을 하지/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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