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모 시전집 - 전2권
정한모 지음 / 포엠토피아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아가의 방>은 오래되어 안 뜨기에, 다른 책에 이 느낌글을 걸칩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시를 써요
 [헌책방에서 만난 책 10] 정한모, 《아가의 방》



- 책이름 : 아가의 방
- 글 : 정한모
- 펴낸곳 : 문원사 (1970.10.30.)



 시를 읽는 사람은 시를 써요. 사랑을 읽는 사람은 사랑을 나눠요.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키워요. 돈을 버는 사람은 돈을 낳아요.

 묵은 시집 하나 꺼내어 읽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앞서 태어난 시집 하나 읽습니다. 350킬로미터 넘는 길을 짐차에 실리다가 일꾼들 등짐에 얹혀 새 터에 내려지던 책꾸러미 가운데 꼭 하나 풀려, 이 책꾸러미 책들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집니다. 이 책들을 추스르다가 묵은 시집 하나 눈여겨봅니다. 등짐을 나르느라 땀이 줄줄 흐르기에, 젖고 지저분한 손은 옷섶으로 슥슥 닦고는 묵은 시집 하나 창가에 세웁니다. 새벽녘 일을 끝마치고 이 시집 하나 살림집으로 가지고 돌아옵니다.


 문은 닫혀 있었다 //
 거울속에 우물울 / 우물속에 하늘을 / 하늘속에 아가를 //
 아가는 ‘아가’와 / 살고 있었다 / 풀잎 이슬 반짝이는 /
 아침의 들길을 / 노을비낀 저녁하늘 / 잠겨 있는 바다빛을 //
 아가는 ‘아가’와 / 살고 있었다 //
 메아리는 숨죽여 / 기다리고 있었다 //
 바람을 / 목소리를 / 몸을 떨며 / 산을 흔들 /
 산만큼한 보람을 / 쩌렁쩡 울어볼 / 눈이 부신 / 금빛을 //
 메아리는 귀를 세워 / 기다리고 있었다 //
 소리는 빛을 몰고 / 다가오고 있었다 ..  (서시)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장만하는 사람은 쓰레기를 낳습니다. 유기농 푸성귀를 유기농 물건 파는 가게에서 장만하더라도, 비닐봉지 쓰레기가 나옵니다. 물건 싸게 파는 가게에서 봉지라면 다섯 개들이를 사더라도 라면 다섯 봉지 비닐에다가, 다섯 봉지를 따로 묶은 큰 봉지 하나 쓰레기로 나옵니다. 이 라면꾸러미를 담은 까만 비닐봉지 또한 쓰레기가 됩니다. 라면공장에서는 어떤 쓰레기가 태어났을까요. 라면공장에서는 어떤 쓰레기물을 흙과 냇물에 흘렸을까요. 라면공장에서는 어떤 쓰레기바람을 바깥으로 내보냈을까요.

 사람들은 쓰레기를 만들고 쓰레기를 쓰며 쓰레기를 버립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서울시장 부산시장 대구시장 없더라도 서울이며 부산이며 대구이며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과 대구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꾼이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두 손 들며 일손을 멈추면, 이들 도시는 그만 꽝 하고 터집니다. 건물을 비질하거나 걸레질하는 청소 일꾼이 일손을 멈추든, 쓰레기차 몰며 쓰레기를 거두는 일꾼이 일손을 멈추든, 쓰레기터에 쓰레기를 묻는 일꾼이 일손을 멈추든, 쓰레기물을 걸러 바다로 버리는 일꾼이 일손을 멈추든, 누구 하나 ‘쓰레기 치우는 일꾼 일손’이 멈출 때에는 크고작은 모든 도시가 와르르 무너집니다.

 돈이 있으면 쓰레기봉투를 살 테지요. 그렇지만 돈으로는 맑은 바람을 살 수 없어요. 돈으로는 밝은 햇살을 살 수 없어요. 돈으로는 시원한 물을 살 수 없어요.

 돈으로는 사랑을 살 수 없어요. 돈으로는 꿈을 살 수 없어요. 돈으로는 이야기를 살 수 없어요. 오직 사랑으로 사랑을 빚어요. 오직 꿈으로 꿈을 일구어요. 오직 이야기로 이야기를 낳아요.


.. 굴 안에 퍼지는 / 햇살같은 마음소리 //
 울음은 가두었다 / 꿈길에나 터트리고 //
 한 줌 가슴 / 산을 안고 /
 발돋움 돋음하는 / 작은 새야 ..  (작은 새)


 묵은 시집 《아가의 방》(문원사,1970)을 읽습니다. 묵은 시집, 작은 시집, 조촐한 시집을 찬찬히 읽습니다. 이 시집은 어느덧 마흔 해 남짓 묵은 시집이 되는데, 이 시집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이 시집이 갓 태어나던 때 애틋이 사랑하던 손길은 얼마나 있을까요. 이 시집에 깃든 말보배를 하나하나 구슬로 엮어 목에 걸거나 마음에 심은 분은 얼마쯤 있는가요.

 오늘도 어김없이 동이 틉니다. 눈부신 햇살이 우리 마당으로 흘러듭니다. 따사로운 남녘 고운 햇살을 느낄 무렵, 네 살 첫째 아이는 크게 하품을 합니다. 이제 곧 일어나겠군요.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먹으며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꾸지람을 받으면 꾸지람을 먹으며 밉게 큽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시를 쓰듯, 사랑을 먹는 아이는 사랑을 일굽니다. 책을 읽는 어버이는 책으로 마음밭을 꾸리듯, 믿음을 먹는 아이는 믿음을 예쁘게 보듬습니다.


 얼어붙은 노여움들이 /
 때묻은 겨울의 누더기를 걸치고 /
 저기 가고 있다 ..  (봄)



 빨래하는 소리 복복복, 온 집안을 울립니다. 손으로 빨래하는 소리 북북북, 부엌을 지나 마루를 건너 방으로 흘러듭니다. 아이들은 빨래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마 어버이 스스로 받아들이는 만큼 받아들일 테고, 어버이하고는 또 다르게 새로운 결과 무늬와 소리와 내음으로 맞아들이겠지요.

 파리 잡는 소리 탕탕탕, 온 집안에 퍼집니다. 날이 폭한 남녘땅에는 파리가 제법 많습니다. 이 녀석들, 이 집이 따뜻하니까 자꾸 집으로 들어오나. 잡혀 죽는 파리한테 미안하지만, 파리를 잡으며 미안하다고 여기지 못하고, 얼마나 빨리 이 녀석들 씨를 말리나 하고만 생각합니다.

 잠에서 깬 아이 볼을 부비면 저절로 노랫소리 흐릅니다. 잠에서 깬 어른들 볼을 부빌 때에도 시나브로 웃음소리 터질까요. 이제 아침햇살은 온 들판과 멧자락을 노랗게 물들입니다.


 지금쯤 / 흙 속에 묻혀 있는 /
 달래알만한 크기를 하고 /
 아가는 보얀 진주의 밝음으로 /
 아지랑이 같은 생명의 실에 매달려 /
 피어오르며 숨쉬며 하고 있을까 //
 개나리가 피고 / 이파리가 돋아나고 /
 환한 웃음으로 봄이 만개하듯이 /
 밤의 어둠을 가르며 /
 대낮의 밝음을 뒤흔들며 /
 커다랗게 터져나올 울음이여 ..  (목숨의 소리)


 정한모 님 시집 《아가의 방》은 어떤 시집일까 헤아립니다. 정한모 님 사랑을 담은 시집일까요. 정한모 님 꿈을 담은 시집일까요. 정한모 님 삶을 담은 시집일까요. 정한모 님 하루하루 살가운 이야기를 담은 시집일까요.

 이 시집 《아가의 방》을 읽는 사람들은 무엇을 읽을는지 곱씹습니다. 이 작은 시집을 읽으며 사랑을 읽을까요. 이 묵은 시집을 들추면서 꿈을 읽을까요. 이 낡은 시집을 읽으며 살가운 이야기를 읽을까요. 이 조촐한 시집을 읽으면서 내 삶을 되새길까요.


 무덤 속에서 울려나오는 / 지훈의 목소리가 /
 초록빛 바람에 나부낀다 //
 1년이 지났는데 / 아직도 숨찬 쉰 목소리 //
 “묻혀서 사는 이의 / 고운 마음을 //
 아는 이 있을까 / 저허허노니” //
 그래서 / 백금의 보자기에 / 싸가지고 갔겠지 //
 이제는 아무도 다치지 못하는 / 그 고운 마음을 ..  (그 고운 마음을)



 착하게 살아가고 싶기에 착하게 말을 하며 착하게 생각합니다. 아름다이 어깨동무하고 싶기에 아름다이 글을 쓰고 아름다이 생각합니다. 좋은 빛을 누리고 싶을 때에는 좋은 넋을 살찌워 좋은 무지개꽃을 키웁니다. 좋은 바람 나누고 싶을 때에는 좋은 얼을 일으켜 좋은 풀꽃을 돌봅니다.

 이 고운 마음을 아껴 주셔요. 이 고운 글줄을 보살펴 주셔요. 이 고운 이야기 하나 마음밭에 건사하는 아이들을 사랑해 주셔요. 이 고운 삶을 이어갈 어여쁜 사람들 오늘 하루를 살가이 어루만져 주셔요. (4344.11.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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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15 23:38   좋아요 0 | URL
네, 하고 대답하고 싶어지는 마지막 글귀였습니다.

인용하신 시가 너무 아름답네요, 입으로 가만가만 읽어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 책은 쉬엄쉬엄 푸시구요.

숲노래 2011-11-16 05:20   좋아요 0 | URL
스스로 예쁘게 살아가고픈 꿈을
사람들 누구나 착하게 아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인 신동엽
김응교 지음, 인병선 유물 보존.공개.고증 / 현암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삶과 사람과 삶터를 읽는 책이라면
 [책읽기 삶읽기 66] 김응교, 《시인 신동엽》(현암사,2005)


 이야기책 《시인 신동엽》(현암사,2005)은 지난 2005년 12월 30일에 나왔습니다. 나는 이 책을 2006년 앞겨울에 서울 명륜동에 자리한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장만했습니다. 시인 신동엽을 좋아하며 아끼기 때문에, 누군가 당신을 이야기하는 책을 내놓을 때에 곧바로 눈길이 갔고, 이 책에는 당신이 손수 적바림한 글이며 편지가 알알이 깃들어 더 애틋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선뜻 다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장만해서 읽던 2006년부터 마지막 쪽을 덮은 여러 달 앞서인 2011년 봄까지 내내 더부룩합니다.


.. 이 사진을 보고 신동엽이 친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몰역사적이고 무분별한 태도다. 오히려 우리는 이 사진에서 군국주의가 한 아이에게 강요한 ‘국가의 폭력’을 볼 수 있다 . “우리도 자라서 어서 자라서 / 소원의 군인이 되겠습니다 / 굳센 일본 병정이 되겠습니다(이원수-지원병을 보내며,1942.8.)”라는 동시처럼, 당시 제국주의 일본은 군대식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병정으로 의식화시켰다 ..  (24쪽)


 글쓴이 김응교 님은 시인 신동엽 님이 ‘친일을 한 사람이 아님’을 잘 헤아려야 한다면서, 역사와 사회와 삶과 사람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일제강점기에 쓴 시를 ‘보기’로 듭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시인 신동엽 님이 태어나서 어린 나날을 보낸 일제강점기에 시인 신동엽 님을 둘러싼 여러 삶과 사회와 터전을 읽어야 한다면,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을 둘러싼 온갖 삶과 사회와 터전 또한 읽어야 할 텐데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은 왜 〈지원병을 보내며〉처럼 슬픈 시를 써야 했을까요. 슬픈 시를 쓴 이원수 님 삶은 해방 앞뒤로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 신동엽이 민족적 주체성을 탐구하고, 나아가 동학을 연구하며, 민족서사시 〈금강〉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상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어떤 이들은 이 시를 퇴행적 복고주의니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말로 비판한다. 김수영도 신동엽이 “쇼비니즘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다. 하지만 그의 시를 논할 때는 지금의 잣대로 비판하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 시인이 왜 이러한 정언적 호명을 남겼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를 이방인에 대한 배타주의로만 읽는 것은 지나친 오해이다 ..  (25, 154쪽)


 《시인 신동엽》을 내놓은 김응교 님은 “이러한 (일제강점기)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민족적 주체성”을 살찌우면서 “민족서사시”를 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마땅한 말입니다.

 그러면,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어떠한가요. 독재자 이원수와 박정희를 나무라면서 전태일을 노래하고 참다운 민주와 평화와 통일과 평등과 해방을 바라는 넋을 어린이문학에 담은 이원수 님은 어떠한가요.

 그지없이 아름다운 글꽃을 앞에 두고도 정작 신동엽 문학에 얽힌 빛과 그림자를 살가이 풀어내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니, 안쓰럽습니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가 지기에, 이 그림자를 돌아보면서 따사로운 빛을 품에 안습니다. 그림자라 하지만, 나무 그림자는 좋은 그늘이 됩니다. 그늘이 있어 더위를 식히고 땀을 훔칩니다. 꽃잎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있어 무당벌레와 지렁이와 여치가 한여름을 이겨냅니다.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편가르기를 하면서 뭇칼질을 하는 사람들이 무시무시합니다.

 삶을 읽어야 시요, 사람을 읽어야 문학이며, 사랑을 읽어야 넋입니다. 시인 신동엽 님은 어떠한 삶을 일구면서 어떠한 사람을 사귀면서 어떠한 사랑을 나눈 분이었을까요. 《시인 신동엽》을 읽는 내내, ‘신동엽 시인 삶·사람·사랑’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부디, 앞으로 더 곰삭이거나 아로새기면서 시인 신동엽 님 꿈과 넋과 빛을 오롯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글꾼 하나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344.9.9.쇠.ㅎㄲㅅㄱ)


― 시인 신동엽 (김응교 씀,현암사 펴냄,2005.12.3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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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1-09-09 17:51   좋아요 0 | URL
달덩이 같은 사진이라면 더 좋지요 ^^;;;;;

올 여름에는 끝없는 비가 쏟아졌는데
한가위 때에는 달을 못 보더라도
구월 들어 비가 없는 일만으로도
고맙다고 느껴요.

언제나 즐거우며 좋은 한가위가 되면 좋겠어요~
 
너의 반은 꽃이다 문학동네 시집 78
박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 한 조각은 사랑
 [책읽기 삶읽기 73] 박지웅, 《너의 반은 꽃이다》(문학동네,2007)



 내 아버지는 시를 썼습니다. 내 어릴 적 예쁜 보금자리였던 열세 평짜리 자그마한 아파트를 떠올려 봅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쓴 시를 손수 종이에 적바림하고 틀에 끼워 벽에 걸었습니다. 마루에도 큰 방에도 문간에도 이런 시틀이 여럿 걸렸습니다.

 내 어머니는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글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집일하고 집살림하며 부업까지 해야 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손뜨개로 무엇이든 다 만들었습니다. 걸상다리 끌리지 말라며, 걸상다리에 받칠 싸개까지 손뜨개를 하셨고, 추운 겨울 손이 차가울 테니, 쇠붙이 문고리마다 싸개를 씌우려고 하나하나 뜨개질을 하셨습니다.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척척 빚어낸 문고리 싸개는 우리 집에 다 하고도 남아서 이웃집에 선물하기도 합니다. 꽃그릇 받침싸개도 손뜨개로 만듭니다. 형과 나와 아버지가 입을 옷을 척척 뜨개질로 만듭니다. 하룻밤만에 손뜨개로 예쁜 옷을 만듭니다. 나는 손뜨개 옷이 예쁘기는 하지만 쑥쓰러워서 이 옷을 입고 학교에 가기 부끄러웠지만, 학교에서 다른 동무들은 내 손뜨개 옷을 보며 몹시 부러워 했습니다. 부러워 하는 동무들을 볼 때마다 더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곤 했습니다.

 우리 형은 시를 썼습니다. 형이 쓴 시 가운데 하나는 형이 고등학생 때에 인천 새얼문화재단이 마련한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형이 쓴 시가 학교잡지(교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곰곰이 떠올립니다. 내 아버지가 쓴 시가 중앙일보 새봄글잔치 동시 갈래에서 뽑힌 적 있습니다. 아버지는 신춘문예라는 이름이 걸린 새봄글잔치에서 상을 받고 싶어 하셨고, 아버지 동무나 작은아버지 들은 그 나이에 무슨 그런 이름을 얻으려 하느냐고 핀잔을 했지만, 아버지는 이런 핀잔 저런 푸념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당신이 하고픈 일과 당신이 이루고픈 꿈을 바라보며 글길을 걸었으리라 느낍니다.

 나도 시랍시고 무언가를 끄적여 보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쓴 동시를 읽으며 나도 시를 쓰자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형이 쓴 시를 읽고 나서 ‘아, 그렇구나. 시란 이렇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형은 동생이 쓴 시를 읽으며 “종규야, 이건 시가 아니라 산문이네.” 하고 꼭 한 마디만 했습니다. “왜 시를 쓰려고 하니. 굳이 시를 쓰려고 하지 마.” 하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내가 시랍시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힘은 형이 들려준 두 마디입니다. 그래요. 나는 아직 시를 쓸 줄 모르지만 그냥 시라는 이름으로 무언가 글을 끄적이기도 합니다. 누군가한테 읽히거나 보여주려는 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나날을 사랑하고 싶어 문득 느낌이 꽃으로 필 때에 한 줄 두 줄 적바림합니다. 더 헤아리니, 형이 들려준 두 마디에 한 마디가 더 있습니다. “산문도 좋아.”


.. 꽁초를 버리고 침도 뱉으며 이 거리에 익숙해질 것이다 ..  (44쪽/청진동 골목에 자반고등어처럼 누워 있기)


 두 달쯤 지난 일인데, 첫째 아이를 수레에 태워 자전거를 몰며 읍내 장마당을 다녀오던 때였습니다. 빗속을 뚫으며 헉헉거리며 몹시 고단하던 날이었어요. 숯고개 오르막을 거의 다 오르며 땀을 비오듯 쏟다가 퍼뜩 한 가지가 떠올랐는데요, 나는 나대로 힘들다지만, 수레에 탄 채 아버지랑 비를 고스란히 맞는 이 어린 아이도 참말 힘들지 않겠느냐고, 자전거를 앞에서 끄는 사람 못지않게 수레에 가만히 앉아서 함께 돌아다니는 아이야말로 고단하지 않겠느냐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르막 꼭대기를 삼십 미터쯤 남긴 자리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아이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이 얼굴에는 졸음과 고단함이 알뜰히 묻었습니다. 아이한테 살살 말을 걸었습니다. 이 시골길에 자동차 거의 없고, 이 멧자락 길 둘레로 온통 멧부리요 밭인데, 저 멧부리를 바라보면 구름이 있다고, 이제 좀 비가 그친다고. 이때에, 멧등성이에 걸린 구름이 보였고, 이 구름을 보면서 “구름이 산에 앉아서 쉬네.” 하고 얘기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하는 말을 똑같이 따라합니다. 아이는 이때부터 산과 구름을 볼 때면 아버지가 들려준 말을 되풀이합니다. “구름이 산에 앉아서 쉬네.”

 나도 좀 쉬고 싶어서, 이 힘겨운 길에서 다리쉼을 하고 싶어서, 살짝 자전거를 멈추며 저 구름과 같이 쉬고 싶어서, 가슴속에서 말이 한 마디 튀어나왔습니다.

 나는 이 말이 좋아 조그마한 수첩에 살며시 끄적였습니다. 수첩에 끄적일 때에는 ‘산’이라는 낱말이 아닌 ‘멧등성이’나 ‘멧기슭’이라는 낱말로 바꾸었습니다.


.. 문어는 하얗게 익어가는 발을 가슴에 얹는다 ..  (46쪽/문어)


 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하며 능금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지날 때에 “여기 봐. 푸른 사과야.” 하고 말하면, 아이는 뒤에서 “푸른 사과?” 하고 묻고, 나는 “응, 푸른 사과. 푸른 능금.” 하고 말하면 “푸른 능금?” “응, 푸른 능금, 푸른 사과.” 하고 말을 섞습니다. 이때부터 능금밭을 지날 때마다 아이는 아버지하고 말놀이를 합니다. “능금이다, 능금.” “응, 능금이야, 사과.” “사과?” “능금.” “능금?” “사과.”

 나는 우리 아이가 ‘사과’라는 낱말에만 길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얏나무를 보면서도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오얏이야?” “응, 오얏이야. 자두나무.” “자두?” “응, 오얏.” “오얏?” “응, 자두.” 이 아이가 ‘자두’라는 낱말만 알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겠지요. 네 식구끼리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낸다면, 우리끼리 능금이며 오얏이며 말하며 살아가면 되고, 멧자락이니 멧부리이니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면 됩니다. 그러나, 둘레 다른 사람들은 이 말들을 못 알아들어요. 모두 한국사람이지만 참말 한국말을 몰라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이한테 ‘두 갈래 한국말’을 들려주고야 맙니다.


.. 길에, 나비 하나 굴러다닌다 / 죽어서도 팔랑거린다 ..  (80쪽/슬프지 않은 시)


 아이하고 살아가며, 옆지기하고 살아내며, 둘째를 낳으며, 새 보금자리를 찾아 아버지 홀로 자전거를 끌고 춘천마실을 하면서, 여관에서 하루를 묵으며 지친 몸을 달래고 빨래를 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지친 몸이지만 여관에서도 어김없이 새벽 네 시에 눈을 뜹니다. 새벽 네 시에 부시시 일어나 여관 텔레비전을 켜서 ‘참으로 볼 만한 영화를 하나라도 보기를 꿈꾸’지만 볼 만한 영화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다시 끄지 않습니다. 무언가 아쉬워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이무렵, 새벽 네 시, 다섯 시, 여섯 시에, 시골집에서 두 아이하고 부대끼는 옆지기는 잠에서 깼을까 하고. 얼마나 고단하면서 달콤한 잠자리에 들었을까 하고. 밥은 알맞고 맛나게 먹겠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집안을 치우지 못해 아주 어지럽다고 하는데, 부디 옆지기가 곱게 기운을 차리면서 첫째 아이하고 집안을 예쁘고 정갈히 돌볼 수 있기를 빕니다. 예쁜 넋과 예쁜 말로 우리 예쁜 삶을 사랑하는 새 하루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부디 오늘은 맑은 햇살이 드리우면서 둘째 기저귀 빨래가 벅차지 않기를 빕니다. 멧자락에서 옆지기가 숲 기운과 풀 기운과 나무 기운을 어여삐 받아들여 착하며 참다운 어머니로 새 날과 새 이야기를 마음껏 길어올릴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비는 마음 모두를 그러모아 시랍시고 글을 수첩에 끄적입니다. 네 삶은 그예 시요, 내 삶 또한 착하게 산문입니다.


.. 살아가다 문득, 도시 바닥에 암매장된 ‘흙’을 본다. 도시의 나무들은 흙에 뿌리를 내렸다기보다는 그 위에 꽂혀 있다. 우리가 봉쇄한 땅에서 저 나무들은 살아간다 ..  (122쪽/시인 말)


 자그마한 시를 모은 작은 책 《너의 반은 꽃이다》(문학동네,2007)를 읽었습니다.이 시책을 내놓은 분은 ㅎ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합니다. ㅎ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글쓴이를 꽤 예전부터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정작 이분이 ‘시를 써서 상도 받고 시책도 곱게 내놓은 줄’을 몰랐습니다. 시책을 한 권 선물로 받고 나서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하고 옆지기와 함께 읽으며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그렇구나, 시를 쓰면서 살아가다가 책 만드는 일을 하시는구나.

 돌이키면, 책삶이란 시삶이고, 시삶이란 책삶이 되겠지요. 시를 만지고 시를 돌볼 수 있기에 책 하나 알뜰히 여밀 수 있고, 책 하나 알뜰히 여미면서 당신이 사랑하는 짝꿍하고 작은 살림집을 얻어 작은 사랑꽃을 일굴 수 있겠지요.

 여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영화나 연속극이나 만화는 왜 하나같이 소리를 빽빽 지르고 억지스레 웃거나 울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겠다고 느낍니다. 엊저녁, 전과 17범이라고 밝히는 어떤 분이 곧 18범이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17범이든 7범이든 700범이든 사람은 사람이잖아요. 사람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다 좋은걸요. 이분이 하는 ‘사업’이란 ‘색시집 사업’일 텐데, 당신이 하는 ‘회사’에서 쓸 ‘사훈’을 저보고 하나 써 달라 하셔서, 이 자리에서 곧바로 “맑은 아름다움으로 사랑스럽게”라고 종이조각에 적바림해서 드렸습니다.

 내 마음이 곧 “맑은 아름다움으로 사랑스럽게”이기 때문이에요. 맑은 아름다움으로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에요. 남들이 이렇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시책 《너의 반은 꽃이다》를 읽는 내내, 나는 맑은 아름다움으로 사랑스럽게 살아가고픈 내 삶길을 거듭 되뇌었습니다. ㅎ출판사에서 책을 만지며 하나하나 내놓는 글쓴이 박지웅 님 또한 종이에 아로새겨질 새로운 이야기에 맑은 아름다움으로 사랑스러울 마음을 차곡차곡 담겠다고 느꼈습니다.

 시 한 조각은 사랑일 테니까요. 산문 한 다발은 꿈일 테니까요.

 희뿌옇게 밝는 새벽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에 가득한 구름 사이사이 파란 빛깔 하늘이 얼핏 보입니다. 이 하늘 틈바구니 어디에선가 맑은 햇살이 내리쬘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이 맑은 햇살이 아무쪼록 음성땅 멧부리 한켠에도 살그머니 내려앉아 우리 옆지기하고 두 아이 가슴녘에 따사로이 스미기를 빕니다. (4344.8.18.나무.ㅎㄲㅅㄱ)


― 너의 반은 꽃이다 (박지웅 글,문학동네 펴냄,2007.12.7./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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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18 10:42   좋아요 0 | URL
사과, 능금, 자두, 오얏... 너무 좋네요, 예뻐요.

그리고 '맑은 아름다움으로 사랑스럽게' 라는 글 담아봅니다.
지인들이 시끌시끌해서, 맘이 편하지 않았거든요. 현실이든 가상이든 말이죠.
하지만..... 그런게 삶이겠죠. 시끌시끌 아구아구 헤헤 거리는거.

숲노래 2011-08-18 13:54   좋아요 0 | URL
한동안 시끌시끌하다가
또 조용하겠지요.

힘들다가도 느긋해지고
천천히 흐르는 삶을
잘 받아들여 주셔요~~
 
나 혼자 자라겠어요
임길택 지음, 정승희 그림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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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버리고 동시책 하나 사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82] 임길택, 《나 혼자 자라겠어요》(창비,2007)



- 책이름 : 나 혼자 자라겠어요
- 글 : 임길택
- 그림 : 정승희
- 펴낸곳 : 창비 (2007.8.10.)
- 책값 : 8000원


 (1) 어린이책과 그림


 어린이가 읽도록 만드는 동화책이나 동시책에는 그림을 꽤 많이 곁들이곤 합니다. 그림이 없으면 읽기가 힘들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더 어린 아이가 읽는 책은 글이 더 크고 그림이 더 많습니다. 더 나이든 아이가 읽는 책은 글이 더 작고 그림이 더 적습니다. 어른이 읽는 책에는 그림이 아예 없기 일쑤입니다.

 어린이는 글만 읽고서는 생각을 할 수 없기에 그림을 넣는지 모릅니다. 어린이가 읽는 책에 그림이 없으면 따분해 한다고 여겨 그림을 넣는지 모릅니다. 어린이한테 생각힘을 북돋우려고 그림을 넣는지 모르고, 어린이책을 예쁘장하게 빚고 싶어서 그림을 넣는지 모릅니다.


.. 해마다 봄이 오면 / 환하게 꽃 한번 피우려고 / 산모롱이 돌아 / 돌아 나오는 / 산골짜기 저 먼 곳에 / 산다네 ..  (산벚나무/10쪽)


 임길택 님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창비,2007)를 읽으며 그림을 살짝살짝 바라봅니다. 이 동시책에 그림이 걸맞다 할 만한지 생각하고, 이 동시책에 꼭 그림이 있어야 했을까 헤아립니다.

 임길택 님 첫 동시책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1990)에는 그림이 하나도 없는 줄 압니다. 나중에 고침판을 내놓을 때에는 그림을 넣었을는지 모르겠으나, 1990년에 처음 나온 동시책에는 아무런 그림이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아무런 그림이 없었지만, 이 동시책을 읽으며 ‘생각힘을 북돋우지 못한다’든지 ‘따분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어떤 그림을 곁들이면서 쓰면 좋을’ 동시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 마당가 한쪽을 참새에게 내주고 / 나비를 쫓아가다 뒤돌아오고 / 개울 건너 앞산을 훔쳐보다가 / 눈을 감고 머나먼 데 소리를 듣고 ..  (송아지/22쪽)


 동시책이든 동화책이든, 그림을 곁들이는 이들은 동시나 동화를 한결 깊이 사랑하거나 즐긴 다음에야 그림을 곁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며 교과서 시나 학급문고 동시책을 읽을 때에도 똑같이 느꼈는데, 어설피 붙이는 그림은 안 붙이느니만 못합니다. 사랑스레 붙여야 하고, 알맞게 붙여야 하며, 아름답게 붙여야 합니다.

 귀엽게 붙이는 그림은 시를 읽는 맛을 다치게 합니다. 앙증맞거나 예쁘장하게 붙이는 그림은 시를 즐기는 기쁨을 망가뜨립니다.

 시를 읽든 수필을 읽든 소설을 읽든 동화를 읽든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피어오르는 생각과 꿈이 있습니다. 글에 붙이는 그림이 되려면, 글꽃송이가 어떤 빛깔이고 글열매가 어떤 맛이며 글씨앗이 어떤 모양인가를 읽어야 한다고 느껴요.

 착한 사람 착한 글에는 착한 그림을 붙이고, 고운 사람 고운 글에는 고운 그림을 붙이며, 참다운 사람 참다운 글에는 참다운 그림을 붙여야겠지요.


.. 누누꼬? / 사람들 한마디씩 해 댈 때 / 일흔한 살 성조 할머니 / 만날 하는 일 막걸리나 한잔 먹자며 / 철벙철벙 논가로 나가신다 ..  (모 심던 날/36쪽)


 그림은 하나도 붙이지 않고 동시책이나 동화책을 내놓으면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왜냐하면,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교과서를 펼치고 동시를 가르치던 교사는 으레 ‘눈을 감기’고 동시를 읊었습니다. 옆 동무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를 들고 동시를 읽든, 교사가 몽둥이를 흔들며 우리를 한 사람씩 일으켜세워 교과서 동시를 토씨 하나까지 틀리지 않게 똑똑히 외우는가를 살펴 제대로 못 외우면 어김없이 몽둥이질을 하던 때이든, ‘눈을 감’고 시를 들으며 ‘눈을 감’고 시를 읊으라 시켰어요(어쩌면, 눈을 뜨면 몰래 곁눈질을 할 테니까, 눈을 감기고 시를 외우도록 했겠지요).

 으스스한 교실에서 말마디 예쁘장한 교과서 동시를 외우거나 들어야 할 때면 으레 등줄기가 쭈뼛쭈뼛합니다. 도무지 무슨 그림이든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를 읽든 동화를 읽든 소설을 읽든, 글을 읽는 사람 스스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꽃그림과 삶그림과 사랑그림이 있어야 해요. 스스로 마음속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글을 읽지 못하는 노릇이고, 조용히 가슴속 그림을 엮지 못한다면 글을 사랑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 울타리도 없고 / 이웃도 없고 / 가을이면 / 억새꽃 바다를 / 이루는 곳에서 // 콩 심고 / 나락 심고 / 무를 심으며 / 엄마 아빠와 동생 / 이렇게 / 네 식구 산다 ..  (영미/56∼57쪽)


 봄날 아이와 함께 텃밭에 온갖 씨앗을 심으며 생각했습니다. 이 씨앗이 흙을 품에 안으며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줄기를 올릴까. 어떻게 잎을 틔우고 어떻게 꽃을 피우며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

 큰비가 몰아치면 큰비에 씨앗이 씻기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날이 가물면 씨앗이 말라죽지 않을까 근심합니다. 앞으로 어떤 푸성귀로 자랄는지 생각하고, 텃밭 둘레 숱한 들풀과 들꽃은 또 어떤 모양으로 날마다 새롭게 바뀔는지를 어림합니다.

 참말 하루하루 다르게 쏙쏙 돋으며 커지는 풀이요 나무입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잎을 다 떨구어 앙상하던 나무라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얼어죽거나 말라죽어 아주 맨 흙만 있던 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풀은 조그마한 땅에 서로서로 옹기종기 돋으며 푸르디푸르게 물결을 칩니다. 사월부터 유월까지 고작 석 달인데, 어느새 네 살 아이 키보다 웃자란 풀이 꽤 많습니다. 오월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뛰놀던 논둑이나 숲속을 이제는 퍽 힘들게 풀섶을 헤치며 다녀야 합니다.


.. 담 어귀 저 끝에서도 / 맡을 수 있는 짙은 꽃내 ..  (오동꽃/74쪽)


 아이는 착한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자랍니다. 어버이가 착한 사랑을 나누려 할 때에는 착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어버이가 못난 사랑이나 일그러진 사랑을 나눈다면, 아이는 못나거나 일그러진 사랑을 그예 받아먹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시를 쓰는 어른은 글줄 하나에 어떤 사랑을 실을는지 돌아봅니다. 어른은 참으로 아이들이 착한 사랑밥을 먹거나 고운 믿음밥을 먹도록 참다이 삶을 일구면서 동시 하나 내놓는지 곱씹습니다.

 “담 어귀 저 끝에서도 맡을 수 있는 짙은 꽃내”다운 시를 써서 어린이랑 흐뭇하게 웃고 떠들면서 살아가는 어른인지 되새깁니다.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다는 마음씨를 돌보면서 시를 쓰는 어른인지 가늠합니다.


.. 길러지는 것은 / 아무리 덩치가 커도 / 볼품없어요 / 나는 / 아무도 나를 /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나 혼자 자라겠어요/98쪽)


 이모저모 생각한다면, 아이하고 손 맞잡으며 살아가는 이 터전은 그닥 어여쁘지 않습니다. 동시를 읽는 어린이는 이내 중학생이 되어 미친 입시지옥 구렁텅이에 빠져야 합니다. 아니, 어른들 누구나 어린이를 미친 입시지옥 구렁텅이에 집어넣습니다. 쑤셔넣습니다. 처박습니다.

 어린이일 때만 어여쁜 동시를 읽도록 하면 되나요. 어린이한테만 예쁘장한 그림 곁들인 동시책을 읽히면 되는가요. 초등학교 육학년까지는 예쁘장한 그림에 예쁘장한 글을 먹이고, 중학교 일학년부터는 시커멓고 슬픈 그림에 시커멓고 슬픈 글을 먹이면 될는지요.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예쁘장한 그림에 길들이고, 아이들이 푸른 나날을 보낼 때에는 시커먼 그림에 길들이는 어른이란, 하나같이 밉살맞습니다.


 (2) 어린이책과 글


 어린이책을 이야기하는 어른 가운데 ‘어린이가 읽을 어린이책 비평’을 쓰는 어른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른이 읽을 어린이책 비평’만 쓸 뿐입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어린이책을 비평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살펴도 알 만합니다. 어린이책을 ‘이야기’하는 마당이지만, 언제나 어른책을 ‘비평’할 때처럼 낱말과 말투가 사뭇 다릅니다.


.. 이 가을에 별들은 / 하늘과 땅을 / 몰래몰래 오가는 것일까요 ..  (별/16쪽)


 “이 가을에 하늘과 땅을 오가는 별들”처럼 고우면서 맑은 빛으로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서 착하게 오갈 ‘어린이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란 왜 이토록 드물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어린이문학 이야기를 나눌 때뿐 아니라,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자리에 서는 어른부터 옳게 제자리를 못 찾는다고 해야 할 테지요.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꾼을 키운다는 교육대학교나 사범대학교에서 어떤 말글로 일꾼을 키우던가요. 대학교재는 어떤 말글로 이루어졌나요.

 교육이론이든 교육비평이든 어떤 말글로 이루어졌는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어린이한테 문화나 예술이나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운동경기나 환경이나 철학을 들려준다 할 때에도 어떤 말글로 들려주려 하는지 더할 나위 없이 뻔합니다.

 어린이하고 어린이 말마디를 나누는 어른이란 드뭅니다. 그저 어른 말마디를 어린이한테 심습니다. 어린이가 어린이 말마디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어린이 마음밭을 돌보고 어린이 생각밭을 일구도록 돕지 못합니다. 어린이일 때부터 어른 말마디에 익숙하도록 길들이기만 합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어린이 말마디를 즐기면서 앞으로도 이 어린이 말마디로 어린이 삶을 사랑하도록 어깨동무하지 못합니다.


.. 내리는 햇볕 / 온몸에 받고 있었다 ..  (고들빼기/23쪽)


 둘째를 낳은 옆지기 몸풀이를 도맡고 두 아이를 보듬으면서 하루 내내 등허리 펼 겨를이 없기에,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자리맡에 놓고도 하루에 한두 쪽 넘기기 벅찹니다. 졸려서 무겁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면서 날마다 한두 쪽씩 읽습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두 아이가 즐길 말과 넋과 삶을 곱게 헤아리고 싶기에, 눈꺼풀에 쇳덩이가 얹혔지만 시 한 줄을 읽고, 시 두 줄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새우처럼 몸을 말고 엎드려 책을 펼치는 아버지 허리에 첫째 아이가 올라타며 놉니다.


.. 아무도 오지 않은 학교에서 / 신나게 그네를 탔다. / 언니들보다 멀리 / 날아가진 않지만 / 운동장도 움직이고 / 학교도 움직였다 ..  (1학년 정희/44쪽)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일군 임길택 님은 집과 학교에서 어떻게 이 책에 담긴 시를 썼을까 생각해 봅니다. 임길택 님은 집식구가 모두 잠들고 나서 시를 썼을까요.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시를 썼을까요. 몸이 아파 자리에 드러누웠을 때에 시를 썼을까요. 밥을 먹다가 시를 썼을까요. 뒷간에서 똥을 누면서 시를 썼을까요. 아이를 등에 업고 시를 썼을까요. 새벽에 홀로 조용히 일어나 시를 썼을까요. 아이를 들판이나 숲속으로 데리고 나가 마실을 하면서 아이와 나란히 시를 썼을까요.


.. 오동꽃 세 송이 / 머리에 꽂고 / 마실 나와 방긋 웃는다 ..  (민정이/62쪽)


 오동꽃을 머리에 꽂으며 놀 때에 오동꽃 시를 씁니다. 오동나무 튼튼하게 자라나는 터전에서 아이들이 오동꽃을 머리에 꽂습니다. 그렇지만 오동나무 오동꽃이 흐드러진 둘레에서 비바람에 오동꽃이 떨어지더라도 그저 밟는 아이가 꽤 많아요. 왜냐하면, 오동꽃이 길바닥에 후두둑 숱하게 떨어진 자리를 자동차는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거든요.

 아이들은 자동차가 오동꽃을 밟고 지나가듯, 저희도 오동꽃을 밟기만 할 뿐 머리에 꽂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밟는 꽃’을 머리에 꽂으면 서로서로 미친 짓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겠지요. 아이들은 ‘꽃을 밟는 자동차’를 모는 어른하고 ‘자동차에 탄 채 오동꽃이 밟히는 줄 모르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숲에서 자라는 오동나무 오동꽃은 알아도, 골목동네 한켠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오동나무 오동꽃은 모르기 일쑤예요.

 그러니까, 어린이는 오동꽃을 볼 수 없고, 어른은 오동꽃놀이를 하는 어린이를 볼 수 없으며, 어른은 어린이가 오동꽃을 못 보도록 가로막는데다가, 어린이는 어른이 오동꽃을 짓밟기 때문에 이 버릇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귀여운 가락에 귀여운 목소리로 오동꽃 노래를 부르더라도, 막상 머리에 오동꽃을 꽂지는 않습니다.


.. 골목 모퉁이를 돌아 / 시장 가시던 때처럼 / 할머니가 오늘 아침 돌아가셨다. // 아무 말도 없으셨다고 한다. 그냥 두 눈 꼭 감고 있다가 / 아버지 손 꼭 잡고 있다가 / 아무렇지도 않은 듯 / 그냥 돌아가셨다 ..  (할머니/94쪽)


 임길택 님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덮습니다. 지난밤 드디어 마지막 시까지 다 읽습니다. 새벽 세 시에 첫째 아이 똥기저귀를 갈며 잠에서 깨어 다시금 찬찬히 읽습니다. 유월 시골자락은 새벽 네 시만 되어도 동이 트고 네 시 반이면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환합니다. 환한 새벽 빛살에 기대어 동시책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차근차근 되씹습니다.

 이 동시책은 뜨거운 햇살을 버드나무 그늘에서 그으며 읽거나, 달 지고 해 뜨는 새벽나절 보오얀 멧골에서 읽거나, 산들바람에 한들거리다가 똑 떨어지는 오동꽃을 살며시 올려다보는 골목동네에서 읽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차가운 교실바닥에서라든지, 자동차가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마을이라든지, 덜컹거리고 복닥거리는 버스간에서는 읽을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니, 어디에서라도 따스한 가슴으로 따스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 할 때에는 읽을 만합니다. 어떠한 곳에서라도 넉넉한 손길로 넉넉한 꿈을 이루고 싶다 할 때에는 되새길 만합니다. 다만, 수수한 수수꽃다리 같은 동시인 줄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수수꽃다리는 그야말로 수수합니다. 수수꽃다리는 눈부시지 않고, 수수꽃다리는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고운 빛이 수수한 수수꽃다리요, 착한 꽃망울이 작디작게 어우러져 빛나는 수수꽃다리입니다.


.. 아버지는 그곳에 차를 세우기 좋다고 / 차도 제 집이 있어야 한다고 / 과꽃 핀 땅을 집으로 삼았다. // 이제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 차가 서 있는 그곳에 / 과꽃이 자랐다는 걸 모른다. / 그 과꽃 위에 이따금 / 나비가 찾아왔다는 건 / 더더욱 모른다 ..  (과꽃 네 포기/115쪽)


 동시를 읽을 아이들이 수수하게 살아가며 수수한 사랑을 수수한 동무랑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를 읽힐 어른들부터 수수하게 일하고 수수하게 놀며 수수하게 살림을 일구면 좋겠습니다.

 동시를 읽을 아이들한테 자가용을 태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동시를 읽힐 어른들부터 자가용을 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가용에 아이를 태우고 ‘멋지거나 좋거나 재미난’ 데에 데려가지 않아도 됩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숲길이나 논둑길이나 골목길을 거닐면서 바람과 풀과 햇살과 물과 나무와 새와 벌레가 들려주는 가느다란 노랫자락을 가슴으로 삭이며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동시이고, 바람에 사각이는 풀잎 소리가 동시입니다. 어린이가 읽을 동시가 있어 어른이 읽는 시가 있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동화가 있어 어른이 읽는 문학이 있습니다. 동시가 없이는 어른들 시란 없고, 동화가 없이는 어른들 문학이란 없습니다.

 자동차를 떠나보내고 과꽃을 다시 심는 자리에 아리따운 시 하나 돋습니다. 자동차를 떠나보내며 남는 돈으로 동시책 하나 장만하여 읽는 손길에 사랑씨 하나 맺습니다.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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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노래
문병란 지음 / 일월서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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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다섯 늙쟁이가 부르는 시노래
 [책읽기 삶읽기 42] 문병란, 《금요일의 노래》



 어느덧 일흔다섯 줄 나이에 접어든 ‘늙은 시인’ 문병란 님 시를 그러모은 《금요일의 노래》를 읽습니다. 《금요일의 노래》라는 이름이 붙은 시집에 실린 시에는 ‘늙어가기’라는 꼬리말이 하나씩 붙습니다. 문병란 님은 마흔 쉰 예순 일흔, 이렇게 차츰 늙은 나이로 접어들면서 ‘늙는 맛’을 깨닫습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젊은 사람은 늙는 맛을 느낄 수 없고, 어린 사람이 늙는 멋을 알아챌 수 없습니다.

 그러면, 늙은 사람은 젊은 맛이나 어린 멋을 느끼거나 알 수 있을까요. 젊은 날을 거쳤고, 어린 날을 지난 늙은 사람이 떠올리거나 헤아리거나 살피는 젊은 맛이나 어린 멋이란 무엇일까요.


.. 고향 참새 소리 들어 본 지 얼마만인가 ..  (고향 참새 : 늙어가기 1)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을 수 있다면, 나이 일흔다섯인 사람이 읽은 책은 나이 열다섯인 사람이 읽은 책보다 훨씬 많습니다. 나이 스물다섯이나 서른다섯인 사람이 읽은 책하고 견주어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늙은 사람은 젊거나 어린 사람하고 맞댈 때에 ‘어마어마하게 많다’ 싶도록 책을 읽었으니 한결 훌륭하다 할 만할까요, 훨씬 빼어나다 할 만할까요. 책을 더 읽은 사람은 책을 덜 읽은 사람보다 똑똑하다 할 만할까요, 뛰어나다 할 만할까요.

 늙은 사람은 이런 일도 해 보고 저런 사람도 겪어 봅니다. 젊은 사람이나 어린 사람이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으로는 ‘늙은 사람이 만나거나 사귄 사람 숫자이며 깊이이며 너비’를 좇거나 따르지 못합니다.

 늙은 사람이기에 더 많은 사람을 마주하거나 사귀었대서 ‘사람을 더 잘 알아보’거나 ‘사람들 마음을 한결 살뜰히 읽는다’ 할 만할까요. 젊은이는 사람을 볼 줄 모르고, 어린이는 사람을 사귀는 멋을 모른다 해도 될까요.


.. 내가 처음 배운 말은 / 맘마·밥·엄마·아빠. / 그 다음 배운 말은 / 응아·쉬야였다 ..  (하지 마라 : 늙어가기 6)


 스물다섯 나이로 시를 쓰는 사람하고 일흔다섯 나이로 시를 쓰는 사람이 같을 수 없습니다. 스물다섯 시쟁이가 일흔다섯 시쟁이를 흉내낼 까닭이 없고, 일흔다섯 시쟁이가 스물다섯 시쟁이를 좇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쟁이한테서 시를 받아 시집을 엮는다든지, 신문이나 잡지에 시를 싣는다는 사람들은 일흔다섯 나이가 아닙니다. 책을 만드는 일꾼이나 신문·잡지를 엮는 일꾼은 으레 스물다섯 언저리부터 마흔다섯이나 쉰다섯 언저리까지입니다. 예순다섯을 넘으면서 책을 만들거나 신문이나 잡지를 엮는 일꾼은 없습니다.

 일흔다섯 나이를 고이 헤아리면서 일흔다섯 나이를 사랑하는 시를 엮자면 일흔다섯 나이여야만 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열다섯 나이에 쓴 시라든지 다섯 나이에 쓴 시를 어여삐 돌아보면서 이들 푸름이와 어린이 시를 엮을 때에 열다섯 나이이거나 다섯 나이여야만 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늙은 사람 시를 읽어 가슴으로 담자면, 늙은 사람 몸과 마음으로 내 삶을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시를 읽는 나는 내 눈길과 눈썰미와 눈높이에 따라 받아들이지만, ‘시가 태어나 우리 앞에 놓이기’까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를 읽어내자면, ‘늙은 사람 시를 읽을 때에는 늙은 사람 삶’이어야 하고, ‘푸름이 시를 읽을 때에는 푸름이 삶’이어야 하며, ‘어린이 시를 읽을 때에는 어린이 삶’이어야 합니다.


.. 좋은 시라니? / 좋은 일 없는 나라에서 / 그런 욕심 금물 아닐까 ..  (경칩 : 늙어가기 14)


 이 나라에서뿐 아니라, 이웃 일본을 비롯해 온누리 여러 나라에서는 ‘만화책을 책으로 안 여긴다’든지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으로 여긴다’든지 하는 얕은 울타리를 아직 높직하게 쌓습니다. 사진책을 사진책으로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는 한편, 사진책을 사진책대로 즐기는 매무새를 찾아보기란 몹시 힘듭니다.

 ‘사진을 한다’고 하면 으레 ‘예술 하시나 보네요’ 하고 여기지, ‘어떠한 사진을 찍어 어떠한 사람들하고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는가’를 살피지 못합니다.

 만화책을 읽는다 한다면, ‘어떠한 만화책을 장만해서 만화에 깃든 어떠한 이야기를 곰삭이며 어떠한 이웃하고 어떠한 삶을 꾸리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림책을 읽을 때이든 어린이책을 읽을 때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시집을 읽는다 한다면,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삶을 일구면서 어떠한 넋을 담은 시인가’를 읽으면서, 내 삶과 내 이웃 삶을 가만히 톺아보아야 알맞습니다.

 싯말을 요리조리 잘라서 이 대목은 무슨무슨 수사법을 썼다라든지, 이 싯말에서는 무슨무슨 주의주장을 담았다든지 하고 외는 일이란 ‘시 비평’도 ‘시읽기’도 아닙니다. 그예 뭇칼질입니다.


.. 2007년 8월 17일 금요일 창작과 비평 6년 전 묵은 호 111호 54년생 후배의 시를 더듬더듬 읽고 있는데, 고장난 뻐꾹시계가 멋대로 정오를 알린다 외출할 것이냐 말 것이냐 내 마음은 점점 외로워져 가는데 살기도 힘들고 나의 내장은 먹은 것이 잘 안 내린다 읽는 시가 설컹설컹 목구멍에 걸린다 무슨 놈의 서정시가 이렇게 꼬장꼬장 어렵기만 한담! 혓바닥에 깔깔하고 눈알이 울울하다 창비에 시를 게재한 지 수 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 필진이 많이 바뀌었구나 ..  (금요일의 노래 : 늙어가기 47)


 “좋은 일 없는 나라”에서는 “좋은 시”가 없다 했습니다. “좋은 삶 없는 나라”에서는 “좋은 시 읽을 일” 또한 없습니다.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 좋은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 좋은 넋으로 좋은 글을 읽거나 써야 합니다.

 누가 해 주는 “좋은 나라 만들기”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좋은 대통령감이 나타나서 좋은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개혁과 혁명과 혁신 따위를 이루어 줄 일이란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내 살붙이랑 천천히 “좋은 집 일구기”를 해야 합니다. 내 이웃과 동무하고 “좋은 삶 함께 지내도록 어깨동무하기”를 이루어야 합니다.

 나부터 좋은 삶을 즐길 때에 좋은 나라가 되면서 좋은 시가 태어납니다.


.. 이틀째 궂은비는 내리고 / 김소월의 두 배를 살아온 지루한 삶 ..  (똥파리 사냥 : 늙어가기 52)


 김소월 님보다 세 곱을 산다 해서 더 뛰어나지 않겠지요. 거꾸로 김소월 님보다 일찍 흙으로 돌아간대서 더 알차지 않습니다. 김소월 님만큼 살았으니까 비로소 해맑거나 말끔하다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삶을 일굽니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하루를 고맙게 맞아들입니다. 나는 내 몸과 마음에 맞추어 내 나날을 보냅니다. 내가 몸이 튼튼하면 튼튼한 대로 더 바지런히 일하거나 놉니다. 내가 몸이 여리다면 여린 대로 골골 앓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누군가는 조금만 일해도 돈을 왕창 벌겠지요. 누군가는 새벽부터 밤까지 몸이 망가지도록 일하지만 돈 몇 푼 못 쥐겠지요.

 돈을 더 번대서 더 기쁜 삶이 아닙니다. 이름을 드날리니까 참 좋은 삶이 아닙니다. 튼튼하다는 몸으로 술을 엄청나게 퍼마신대서 신나는 술잔치가 아닙니다. 내 길이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깨달아, 씩씩하고 꿋꿋하게 걸어가야 비로소 기쁘며 좋은 삶이에요.


.. 서울은 소문을 만드는 곳 / 그 소문을 밑천 삼아 / 떼돈을 버는 곳 ..  (소문의 도시 : 늙어가기 54)


 문병란 님이 서른을 살짝 넘겼을 무렵 쓴 시하고 일흔을 훌쩍 넘긴 때에 쓴 시는 같으면서 다릅니다. 마음이 같다 할 수 있으나, 마음이 달라졌다 할 수 있습니다.

 서른다섯 살부터 일흔다섯 살까지 한결같이 잇는 마음이 있지만, 이동안 거듭나거나 부딪히거나 곰삭이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마음 또한 있어요.

 한우물을 판대서 한마음이기만 할 수 있습니다. 한우물을 파며 걸어온 삶 또한 숱한 갈래 수많은 생각과 꿈과 사랑이 피고 집니다.

 소문을 밑천 삼아 떼돈을 벌어들인 문병란 님이라 한다면 일흔다섯 나이에까지 시를 붙잡을 까닭이 없었는지 모르며, 떼돈을 벌었으니까 더 돈을 붙잡고 싶어 돈내음 구리게 나는 시를 더 매캐하게 뿜어댈는지 모릅니다.

 모르기는 모르지만, 문병란 님으로서는 소문을 붙잡기는커녕 돈자락 꽁무니조차 그닥 붙잡지 못한 ‘어수룩하’고 ‘어리석’으며 ‘어설픈’ 시쟁이 삶을 고만고만하게 보내지 않느냐 싶습니다.


.. 아내는 내 시의 애독자 / 책에 나오면 내가 먼저 읽고 / 그 다음 나의 아내가 읽는다 ..  (아내는 외출 중 : 늙어가기 60)


 못난 놈은 못난 놈끼리 논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돈쟁이는 돈쟁이끼리 놀고, 정치꾼은 정치꾼끼리 놉니다. 공무원은 공무원끼리 어울리며, 농사꾼은 농사꾼끼리 어깨동무합니다.

 서로서로 한마음이 되는 동무하고 놀며 어울리고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서로서로 한마음이 되지 못하면서 겉치레로 손을 맞잡는 일은 옳지 않고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끼리 어울립니다. 짓궂은 사람은 짓궂은 사람끼리 복닥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끼리 마음이 잘 맞고,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끼리 생각이 잘 맞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저처럼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사람이 반갑습니다. 자가용을 씽씽 모는 사람은 저처럼 자가용을 씽씽 모는 사람이 반가울 테지요.


.. 늙는다는 것 / 젊어서는 몰랐네 ..  (무지개 노래 : 늙어가기 119)


 그나저나, 문병란 님은 당신 일흔다섯 나이에 내놓는 시집에 왜 “금요일의 노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합니다. 금요일에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금요일을 맞이하면 흥얼거리는 노래이기 때문에?

 ‘늙어가기 47번’으로 “금요일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문병란 님 일흔다섯 나이 시집이란 “늙은 시인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늙은 시인이 이 땅에서 얼레벌레 일흔다섯이 되도록 용케 안 죽고 용하게 잘 살아서 시도 쓰고 술도 마시며 당신하고 똑같이 늙은 옆지기하고 오순도순 살아간다고 기쁘면서 슬프게 부르는 노래입니다.

 당신 젊을 때에는 젊은 시를 썼고, 당신 늙을 때에는 늙은 시를 씁니다.

 서른다섯에도 시집을 한 권 내고, 일흔다섯에도 시집을 또 한 권 낼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싶습니다. 여든 살에도 시집을 다시 한 권 낼 수 있다면, 스무 살이나 마흔 살에 낼 수 있던 시집 못지않게, 또는 열 살이나 서른 살에 냄직한 시집하고는 새삼 다르게 웃음과 눈물이 아리땁게 스미리라 생각합니다. (4344.2.27.해.ㅎㄲㅅㄱ)


― 금요일의 노래 (문병란 글,일월서각 펴냄,2010.12.23./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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