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호각 창비시선 230
이시영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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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은 어떤 빛깔인가
[시를 노래하는 시 18] 이시영, 《은빛 호각》

 


- 책이름 : 은빛 호각
- 글 : 이시영
- 펴낸곳 : 창비 (2003.11.20.)
- 책값 : 6000원

 


  예전에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 혼자 살던 무렵, 자그마한 자전거를 이끌고 경상남도 하동으로 달린 적 있습니다. 마침 서울에 볼일이 있었기에 서울부터 자전거를 달려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 닿았고, 집에서 가볍게 짐을 꾸려 시골길을 내처 달렸습니다. 길그림 종이를 펼쳐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을까 하고 어림했는데, 막상 먼 시골길을 구비구비 돌며 찾아가자니, 킬로미터 숫자하고는 퍽 동떨어질 만큼 오래 걸렸습니다. 자칫 하동까지 너무 늦게 닿겠구나 싶어, 늦게 닿으면 애써 자전거를 몰아 혼례잔치에 가는 보람이 없다 싶어, 저녁나절 남원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이듬날 구례까지 더 달리고서, 구례읍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넘어갔어요. 나는 자그마한 자전거를 몰았기에 더 작게 접어 시골버스에 탔고, 시골버스는 구례읍 작은 멧골마을을 구비구비 돌았습니다.


  천천히 읍내를 벗어나 이웃 읍내로 가는 시골버스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시골버스는 오래된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타고 내릴 적마다 오래오래 기다린 다음 다시 천천히 달립니다. 외길이라 돌아나와야 하는 어느 멧골마을에 닿아 십 분 남짓 쉰 버스가 다시 달릴 적, 이렇게 외딴 길로 난 멧골마을이라 한다면 나 같은 사람이 들어와서 조용히 살기에 딱 어울리겠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다만,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오르내리자면 좀 애먹겠다고 느낍니다.


.. “이형, 요즈음 내가 한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원이야, 삼만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  (최명희 씨를 생각함)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가 어쩌다 무슨 볼일이 생겨 순천 기차역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찾아가, 기차를 갈아타고 서울 쪽으로 갈라치면 으레 구례역을 지납니다. 기차를 타고 구례를 지날 때에는 예전에 자전거와 시외버스로 구례를 지나던 때하고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여기 구례에도 비닐집이 꽤 많다고 느낍니다. 여기 구례도 이곳저곳에서 드나드는 찻길이 많아 여러모로 나그네나 길손이 많이 들락거리겠구나 싶습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오늘날 이 나라 땅뙈기 어디라 하더라도 찻길이 아주 잘 뚫립니다. 나라에서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찻길을 자꾸자꾸 새로 놓습니다. 화석에너지를 안 쓰는 자동차는 아직 제대로 굴러다니지 않는데, 화석에너지만 먹는 자동차를 끝없이 만들고, 화석에너지로 구르는 자동차 다닐 길만 끝없이 닦습니다. 자전거로 다니거나 두 다리로 오갈 호젓하며 느긋한 길은 도무지 어느 지자체에서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자전거 관광길’이나 ‘도보 여행길’을 놓는 데에는 목돈을 들이는데, 막상 시골마을 사람들이 ‘찻길 싱싱 내달리는 자동차’한테서 놓여날 만한 느긋하고 좋은 거님길을 닦는 데에는 거의 한푼도 안 들인다고 느껴요.


  따지고 보면, 이런 모습은 시골이나 도시나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도시사람 살아가는 동네에서도 자동차 다닐 길만 널따랗지, 정작 사람들 기쁘게 오갈 여느 거님길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아이들이 마음 놓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오가기 힘들어요. 아이 손 잡는 어버이가 느긋하게 길을 거닐기 힘겨워요.


  요사이는 시골에도 자동차 굴리는 이가 많다지만, 허리 굽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으레 두 다리로 걷습니다. 때로 경운기를 몰고 때로 오토바이나 전동휠체어를 몬다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밑길이라 한다면 ‘걷는 길’이 되어야 하는데, 걷는 길만큼은 찬찬히 놓이지 못합니다.


.. 잠실시영아파트가 재건축으로 곧 헐린다고 한다. 베란다에 저보다 큰 장독대들을 이고 장장 삼십년을 버텨온 13평짜리 공중 시멘트 집. 언제 한번 지나면서 보니 빈민굴도 그런 빈민굴이 없었는데 싯가가 3억 7천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  (잠실시영아파트)


  걸을 수 없는 길이라 하면, 이러한 길이 닿는 데에서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느긋하게 걸을 만한 길이 없다면, 이러한 데에서는 사람이 살아가기 팍팍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걸을 만한 들길이며 멧길이 있을 때에, 사람이 즐거이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걸을 만한 길이 호젓하고 느긋한 곳이라면, 사람이 살아가기 아름답거나 좋거나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기 좋은 데가 있습니다. 오토바이 함부로 달리지 못하는 구불구불 호젓한 골목이 있는 동네는 도시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기 좋다고 느낍니다. 자동차 새된 소리에서 홀가분한 동네라면 도시에서도 이웃과 이웃이 어깨동무하기에 좋고,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놀며 자라기에 좋다고 느낍니다.


  자동차가 끝없이 드나들며 새된 소리를 자꾸자꾸 들어야 한다면, 이러한 시골은 시골답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시골이라 하더라도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동차 붕붕거리는 새된 소리라 할 때에는, 사람들 넋과 얼을 곱게 건사하기 힘들구나 싶어요.


.. 어렸을 적 석양녘이었다. 따스한 참새들의 알을 꼭 한 알만 얻겠다고 가만가만 새들이를 타고 올라간 여동생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처마밑에 막 손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콩닥거리는 참새들의 알 대신 차고 미끄러운 것이 쓰윽 고개를 내밀고 나왔다. 굵고 긴 구렁이였다 ..  (집지킴이)


  시집을 읽습니다. 집식구 먹을 밥을 마련하면서 시집을 읽습니다. 밥물 올린 냄비가 끓는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국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도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밥상을 닦는 동안 시집을 읽지 못합니다. 밥냄비 국냄비 모두 올리고 설거지 한 차례 마치고 나서 슬며시 한숨을 돌릴 무렵, 손가락에 물기가 다 말랐다 싶으면 슬그머니 시집을 읽습니다.


  이시영 님 시집 《은빛 호각》(창비,2003)을 읽습니다. 책이름으로 붙은 ‘호각’을 놓고 “호각이 뭐지?” 하고 혼잣말로 묻습니다. 호루라기인가? 서로 힘이 어슷비슷하다는 소리인가? 만주사람 뿔피리인가? 굴 껍데기인가?


  시집에 붙은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기로 합니다. 시를 쓰는 분들이 으레 선보이는 말잔치는 들여다보지 않기로 합니다. 나는 싯말에 깃든 이야기를 읽고 싶습니다. 나는 싯말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며 내 삶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내 둘레 이웃들이 어떤 좋은 삶을 누리며 시 하나 적바림하여 나한테 좋은 노래를 선물해 줄까 하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시영 님 시집 《은빛 호각》은 전라남도 구례와 서울특별시를 꾸준히 갈마듭니다. 먼먼 옛날, 어린 이시영 꼬마가 전남 구례에서 뛰놀거나 뒹굴던 이야기가 흐르다가는, 늙은 이시영 할아버지가 평양에도 갔다가 서울 언저리 어디에도 살다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 통일을 염원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김정숙휴양소 건너편 비탈진 밭에서는 작은 감자알들이 땡볕 아래 탱탱히 익어가고 있었고 ..  (장외場外)


  한참 시집을 읽다가 문득 헤아립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옛 시골마을 그리는 노래’를 적바림했을까 하고. 이렇게 옛 시골마을 그리는 노래를 적바림하고 싶다면, 스스로 도시를 떠나 꿈에도 그리는 좋은 시골마을로 돌아가면 될 텐데 하고.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시골을 꿈꾸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날을 버틸 수 있을 테지만, 시골에서 어여삐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마음껏 누리며 스스로 더 환하게 빛날 수 있을 텐데 하고.


.. 봄이 오면 / 자운영 장다리 꽃피고 / 탱자꽃 바람에 흩날리는 / 그런 고향 다시는 없으리 ..  (고향 생각)


  봄이 오면 어느 시골이건 자운영 장다리 꽃핍니다. 유채 찔레 꽃핍니다. 유월로 접어든 전남 고흥 시골마을 밭자락이나 멧자락에는 바알간 들딸이나 멧딸이 흐드러집니다. 쉴새없이 따먹고 다시 따먹습니다. 찔레꽃 하얗게 눈부신 사이사이 돈나물 노랗고 자그마한 별꽃이 빛나고, 고샅길 돌울타리 누비는 마삭줄은 흰바람개비 꽃내음 물씬 퍼뜨립니다.


  이제 감자는 하얗거나 보얀 꽃망울 맺습니다. 뽕나무는 바알갛게 익는 오디를 내놓습니다. 노란 감꽃과 고욤꽃은 천천히 지면서 푸르게 푸르게 익습니다. 매화나무 열매는 차츰 굵은 알로 바뀝니다. 함박꽃 지고 후박꽃 떨어집니다. 마을마다 논물 가득 찰랑이고,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아침부터 이듬날 아침까지, 저녁부터 이듬날 저녁까지, 무논 개구리는 신나게 노래합니다.


.. 송아지가 볼이 미어져라 상큼한 햇짚을 넣고 씹는다 ..  (가을)


  시인 이시영 님은 시집 《은빛 호각》에서 당신 시골집 구례와 당신 살림집 서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갑니다. 사이사이 북녘땅 어딘가를 마실합니다. 무슨무슨 손님으로 북녘땅을 마실할 수 있은 듯합니다. 그러면, 이시영 님한테 ‘그리운 터’는 세 군데가 될까요. 구례, 서울, 북녘.


  이제 시집을 덮습니다. 시집을 덮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시인 이시영 님이 지나온 나날은 어떤 빛깔이라 할 만할까요. 가을빛일까요. 봄빛일까요. 자운영빛일까요. 송아지빛일까요.


  시집을 읽는 나는 어떤 빛깔로 꾸리는 삶일까요. 내 삶빛은, 내 넋빛은, 내 몸빛은, 내 사랑빛은 어떠한 무늬와 결과 내음을 풍기며, 오늘 하루 새로우며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시 한 줄 쓸 수 있는 사람은 삶자락 한켠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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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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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샘솟는 자리
[시를 노래하는 시 17] 손세실리아, 《기차를 놓치다》

 


- 책이름 : 기차를 놓치다
- 글 : 손세실리아
- 펴낸곳 : 애지 (2006.2.13.)
- 책값 : 8000원

 


  도시에 공부방이 있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쉼터 구실을 합니다. 도시 공부방은 곧잘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한테 한글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시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배움마당을 열기도 합니다. 올해에는 고흥군에 두루 ‘유기농 농사짓기’를 퍼뜨린다며, 광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분이 ‘유기농 농사짓기 강의’를 하러 오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지난날을 돌이키고, 시골에서 사는 오늘날을 헤아립니다. 지난날 도시에서 동네 아줌마나 할머니한테서 무언가를 배우는 자리를 누군가 연 적 있었나 궁금합니다. 공부방이나 경로당은 있다지만, 문화회관이나 복지화관은 있다지만, 늘 ‘자격증·졸업장 많이 거머쥔’ 이들이 찾아와서 ‘자격증·졸업장 하나 없는’ 이들한테 지식과 정보를 한 가득 들려줄 뿐 아닌가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마을 어르신한테 자꾸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겠다 할 뿐입니다.


.. 시인을 꿈꾸는 이여 / 그대가 방금 내게 들려준 말이 시다 / 한 줄의 첨삭도 필요 없는 온전한 시다 / 외지에 나가 칼질로 먹고 사는 장손을 위해 / 자갈밭 일구고 평생 물질하셨을 / 칠순 노모의 휘어진 허리가 시다 / 주방에 그릇그릇 담긴 어머니의 몸이 바로 시다 / 그것을 받아 적지 못하면 허당이다 / 시는 그대 안에 이미 와 있느니 / 밖에는 없느니 ..  (밥상에 올려진 시)


  나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 보금자리를 얻어 살고부터 ‘고흥과 얽힌 책’을 틈틈이 장만해서 읽습니다. 1980년대에 나온 관광책도 장만하고, 1970년대에 나온 교과서 보조교재도 장만합니다.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편》도 장만합니다. 이런 책도 읽고 저런 책도 살핍니다. 여러 갈래 온갖 책을 훑다가 문득 느낍니다. 고흥군청에서 내놓는 책이든, 고흥 바깥에서 펴내는 책이든, 어떠한 책이라 하더라도 고흥을 바라볼 때에는 ‘관광하러 드나들 만한’ 곳이 되느냐 하는 눈길입니다. ‘돈을 잘 버는’ 곳인가 아닌가를 따집니다.


  통계자료가 있는지 모릅니다만, 우리 식구 깃든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학력’이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마을 할머니는 국민학교라도 다녀 보셨을까요. 마을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다음으로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까요.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들을 대학교까지 보낼 뿐 아니라 대학원도 보냅니다.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딸아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등허리 구부정하게 일하지 않습니다. 도시로 떠나 살아가는 딸아들은 돈을 쏠쏠히 벌고 커다란 자가용을 굴립니다.


.. 어미가 앞장 서 갈퀴발로 터놓은 물의 길을 여남은 마리의 새끼들이 올망졸망 뒤쫓고 있습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수선스러워 보이지만 묵언정진 중인 수련 꽃잎에 생채기내는 일 없고 빽빽한 수풀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니는 듯 보이지만 물풀의 줄기 한 가닥 다치는 법 없이 말짱한 것이 하늘에 길을 트고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들의 비행과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요 ..  (물오리 一家)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처음부터 풀약과 비료를 쓰며 흙을 일구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마흔 해나 쉰 해 앞서도 풀약과 비료를 써서 논밭을 일구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예순 해나 일흔 해 앞서, 마을 어르신들이 당신 어버이한테서 흙일을 물려받을 무렵에도 당신 어버이는 풀약과 비료로 푸성귀와 곡식을 거두라 가르쳤을까 궁금합니다.


  할머니들은 호미질을 빼어나게 잘 합니다. 할아버지들은 낫질을 훌륭하게 잘 합니다. 할머니들은 풀을 잘 압니다. 할아버지들은 흙을 잘 압니다. 할머니들은 물을 잘 압니다. 할아버지들은 하늘을 잘 압니다.


  시골 할머니한테서 호미질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도시사람은 없습니다. 시골 할아버지한테서 낫질을 배우겠다며 문화강의를 여는 지식인이나 관청 공무원은 없습니다.


  밭이랑을 만들거나 논둑을 다지는 솜씨를 배우러 시골로 찾아오려 하는 도시 젊은내기는 얼마나 될까요. 들풀을 익히거나 멧나물을 배우러 시골로 드나들려 하는 도시 지식인이나 학자는 얼마나 되려나요.


.. 이름 석 자는커녕 / 전화 다이얼도 돌릴 줄 모르는 어머니를 / 세상은 까막눈이라 한다 ..  (까막눈)


  모든 강의는 지식 강의에서 그칩니다. 모든 학교는 정보를 새로 만들어 쌓는 데에서 끝납니다. 사람들은 자꾸자꾸 자격증을 새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나날이 졸업장을 더 따집니다.


  볍씨 한 알을 어떻게 갈무리해서 봄날 못자리에 심어 싹을 틔우는가를 모르더라도 밥을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볏포기가 얼마나 푸르게 빛나며 개구리와 뱀과 새와 거미 들을 품에 안기에 단단하고 알찬 열매가 맺는가를 모르더라도 쌀을 얼마든지 장만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쌀농사 짓지 말라고 ‘직불제’라는 제도를 마련합니다. 나라에서는 쌀이야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며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제도를 맺습니다. 그런데, 쌀농사 짓지 말라면서, 쌀은 더 안 지어도 된다면서, 이 나라 정부는 갯벌을 메워 논을 만드는 일을 자꾸 벌입니다. 논을 만들어도 농사짓지 말고 묵히라는 정책을 세우면서, 정작 갯벌을 메워 논밭으로 바꾸겠다 외칩니다.


  곰곰이 따지면, 논밭으로 바꾸려 메우는 갯벌은 아니로구나 싶습니다. 처음에 내세우기로는 논밭으로 삼겠다는 허울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파트나 공장을 지으려고 갯벌을 메웁니다. 조개도 낙지도 굴도 김도 몽땅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되니까, 조기도 게도 갈치도 오징어도 모조리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그만이니까, 갯벌을 없애고 바다를 더럽힙니다. 깨끗한 바닷가마다 발전소를 지어 바닷물을 망가뜨립니다. 깨끗한 바닷마을마다 공장을 세워 흙과 물을 더럽힙니다.


.. 미장갑차 무쇠바퀴에 뭉개져 / 네가 떠난 오욕의 이 영토에도 / 어김없이 첫눈은 내리고 / 철없는 소름은 / 베옷 밑에서 자꾸만 키가 자란다 … 이승에서 너 하나 지키지 못하고도 / 살아 밥을 먹고 말을 섞는 / 부끄러운 날이 살같이 지난다 // 잘 가거라 아가, 내 새끼야 ..  (베옷을 입다)


  대학교에서는 새끼꼬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농업과학’을 가르치는 학과는 있다지만, 정작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고 쓰레기를 안 빚는 오랜 흙일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습니다. 볏짚으로 새끼를 꼴 뿐 아니라, 짚신을 삼거나 바구니 엮는 솜씨를 가르치는 교수는 없어요. ‘식품영양’을 가르치는 학과는 있다지만, 들풀이나 멧풀을 하나하나 캐거나 따거나 뜯거나 꺾어서 몸을 살찌우는 삶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습니다. 메주를 쑤거나 두부를 빚거나 마늘을 말리거나 감알을 깎는 솜씨를 가르치는 교수는 없어요.


  그물을 꿰거나 베틀을 밟을 줄 아는 교수는 있을까요. 뽕잎을 따거나 뜨개질을 할 줄 아는 교수는 얼마나 될까요. 손으로 빨래하거나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교수는 얼마나 될까요.


  생각해 보면, 새끼꼬기를 대학교에서 가르친다면,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굳이 당신 딸아들을 대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짚신삼기를 가르치며 대학 교수가 된다면,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애써 당신 딸아들을 대학 교수가 되도록 뒷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새끼꼬기를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으니,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일이 벌어집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들판과 멧자락에서 나물을 캐지 않으니, 온 나라 냇가에 시멘트를 발라 망가뜨리는 짓을 수십 조를 들여 저지릅니다.


  삶을 배우지 않기에 삶을 사랑하지 못해요. 삶을 가르치지 못하니 삶을 아끼지 않아요. 삶을 물려받지 않으니 삶을 좋아하지 못해요. 삶을 이야기하지 못하니 삶을 나누지 않아요.


.. 수렁 같은 허방에 큰절 올린다 / 떼 한 포기 옮겨 심는 마음으로 / 진혼시를 쓴다 ..  (고봉산 뼈무덤)


  시골을 떠난 아이들은 왜 자가용을 몰고 명절날 이녁 어버이를 찾아 뵐까요. 명절날 갖가지 선물보따리 들고 시골마을 찾아 돌아왔다가 금세 도시로 떠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시골마을 어버이한테는 무엇이 선물이 될 만한가요. 시골로 찾아와 도시로 돌아가는 아이들마다 자가용 짐칸에 바리바리 싣는 꾸러미는 무엇일까요.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도시로 떠난 아이들을 ‘밥을 먹여’ 살립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시골마을 어버이한테 ‘돈푼’ 쥐여 준다지만, 시골마을 어르신은 ‘돈푼’으로 맛나다는 먹을거리를 사다 먹지 않습니다. 늘 스스로 흙을 일구어 맛난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흙에서 얻은 돌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손질하거나 고칩니다. 이제는 가게에서 옷을 사다 입는다지만, 옷가지 또한 모두 흙에서 얻었고, 흙으로 돌려보냈어요. 환경운동이니 재활용이니 하고 떠들 까닭이 없는 시골마을이에요. 생태이니 생명이니 하고 외칠 까닭이 없는 시골살이예요.


  스웨덴이나 덴마크나 네덜란드까지 찾아가서 ‘미래 대안’을 배울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우리 어버이들 나고 자란 가까운 시골에서 ‘오늘 삶’을 사랑하며 껴안을 수 있어요. 쿠바나 핀란드나 캐나다에서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배울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바로 우리 어버이들 나고 자란 가까운 시골에서 ‘푸른 삶’을 아끼며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사랑이 삶이에요. 삶은 푸르게 빛나요. 꿈이 삶이에요. 삶은 맑게 빛나요.


.. 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 푸르고 곱게 부식되어 / 다음 생엔 부디 / 이마 말간 꽃으로 환생하기를 / 삼가 합장 또 합장하며 ..  (저문 산에 꽃등 하나 내걸다)


  손세실리아 님 시집 《기차를 놓치다》(애지,2006)를 읽습니다. 기차를 놓쳤어요. 그래요. 기차를 놓쳤으니 기다려야겠네요. 또는, 걸어가야겠네요. 또는, 길을 떠나지 않고 내 작은 마을에서 작고 조용히 살아야겠네요.


  나는 늘 기차를 놓칩니다. 나는 늘 기차를 놓치고 내 작은 마을에 우두커니 섭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생각합니다. 누구와 사랑하는 사람인가 돌아봅니다.


  나는 늘 기차를 먼저 보냅니다. 나는 늘 기차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걷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 사람인가 헤아립니다. 누구랑 어디로 나들이를 다닐 때에 즐거운 나날일까 곱씹습니다.


  싯말은 바로 내 가슴에서 샘솟습니다. 싯말은 곧 내 삶말입니다. 싱그러이 사랑하는 내 가슴이라면 싱그러이 사랑하는 싯말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곱게 사랑하는 내 삶이라면 곱게 사랑하는 싯말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를 따숩게 어깨동무합니다.


  손세실리아 님은 사랑을 기다리며 삶을 한 올 두 올 엮으며 싯말 한 송이 자그맣게 피웁니다. (4345.5.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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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밥상
서정홍 지음, 허구 그림 / 창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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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삶을 시로 빛냅니다
[시를 사랑하는 시 10] 서정홍, 《우리 집 밥상》(창작과비평사,2003)


 

- 책이름 : 우리 집 밥상
- 글 : 서정홍
- 그림 : 허구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2003.7.20.)
- 책값 : 8000원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말이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나는 고등학생 때에 처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사람을 자꾸 바보로 만들듯 시험공부만 시키는 갑갑한 시멘트 교실에서 숨막혀 죽고 싶지 않아 처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마음속에서 샘솟아 널리 나누고픈 말이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나는 신문배달로 먹고살던 무렵, 신문배달 이야기를 시로 썼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니, 신문배달 안 해 보았다 하는 사람은 드문데, 정작 신문배달 삶자락을 시로든 수필로든 소설로든 희곡으로든 적바림하는 사람은 하나도 안 보였어요. 딱 한 번,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 가운데 《해와 같이 달과 같이》라는 작품에서 신문배달 어린이 삶을 읽었어요. 이밖에는 신문배달 삶을 옳게 그리거나 제대로 담거나 살가이 빛내는 문학을 아직 찾아보지 못했어요.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나는 둘째 아이가 우리와 한식구 될 즈음 새롭게 시를 씁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즐기고 누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중에 아이들하고 천천히 주고받고 싶기에 시를 씁니다. 오늘은 오늘 내 삶을 즐기고, 앞으로는 앞으로 아이들과 새로운 삶을 누리고 싶어 시를 씁니다.


.. 우리 집 밥상 앞에 앉으면 / 흙 냄새 풀 냄새 땀 냄새 가득하고 / 고마우신 분들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  (우리 집 밥상)


  갑갑한 시멘트 교실에서 시를 쓸 적에는 갑갑한 시멘트 내음이 얼굴을 비빕니다. 얼굴은 까칠까칠 지저분해지고 긁힙니다. 깊은 새벽 조용한 골목을 싱싱 달리는 자전거가 신문을 휙휙 바람 일으키며 골목집 문간으로 던져 놓으며 시를 쓸 적에는 땀내음 바람내음 사뿐히 실립니다. 동이 틀 무렵 하루 일을 마치며 고단하게 드러눕는 움직임이 시로 태어납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얼크러지며 시를 쓰니, 언제나 들새 노랫소리 헤아리고 들풀 푸른내음 되씹습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이런 지식 저런 정보를 주고받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웃으며 떠들 때에 즐겁습니다. 나는 아이들이랑 맛난 밥을 좋게 차려 나누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마음이 고스란히 시쓰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하나 시쓰는 마음입니다. 생각하는 결이 찬찬히 시쓰는 결로 태어납니다. 시라는 씨앗 한 알은 늘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 누가 꽃씨 심지 않아도 / 누가 물을 주거나 가꾸지 않아도 / 저절로 자라서 / 꽃밭이 되었다는 실매 마을 ..  (실매 마을)


  문학하는 분들이 시를 씁니다. 문학을 꿈꾸는 이들이 시를 씁니다. 문학을 좋아한다는 분들이 시를 씁니다.


  누구한테나 가슴속 ‘시 씨앗’이 있으니 시를 쓸 만합니다. 문학하는 이도 시를 쓰고, 문학 안 하는 이도 시를 씁니다. 지식인과 교수도 시를 씁니다. 아줌마와 할머니도 시를 씁니다. 마을 할머니들이 우리 아이들 바라보며 “오매 이쁜 것, 동네가 훤하네.” 하고 읊는 말 한 마디는 고스란히 시입니다. 마을 할아버지들이 들일을 하다 허리를 쉬며 논둑에 주저앉아 먼 하늘 바라보며 땀을 훔치다가 조용히 품는 생각이 모두 시입니다.


  도마질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콩 터는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마늘 뽑는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풀 베는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 전학 오던 날 / 담임 선생님이 나를 / 촌놈이라고 했다. / 동무들도 따라서 / 나를 촌놈이라고 했다. // 농촌 학교에서 / 도시 학교로 오면 다 촌놈인가 ..  (참고 또 참아도)


  까마귀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까마귀 노랫소리를 시로 옮깁니다. 까치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까치 노랫소리를 시로 담습니다. 종달새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 종달새 노랫소리를 시로 싣겠지요. 꾀꼬리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꾀꼬리 노랫소리를 시로, 싯말로, 싯내음으로 찬찬히 읊겠지요.


  아이들과 복닥이며 아이들 재잘거리는 노랫소리를 듣는 어버이들은 누구나 아이들 재잘거리는 노랫소리를 시로 펼칩니다. 아줌마들 이야기꽃은 아줌마들 가슴에 깃든 ‘시 씨앗’을 예쁘게 북돋우는 아이들 재잘거리는 노랫소리하고 어우러지며 환하게 빛나곤 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서 받는 사랑이 아이들 가슴속 ‘시 씨앗’을 따사롭게 어루만지니, 아이들 나름대로 사랑스레 싯말과 싯노래를 터뜨립니다.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이끌며 보여준 이오덕 님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라는 이름을 붙여 책 하나 내놓은 적 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참말 어린이는 모두 가슴속 ‘시 씨앗’을 ‘좋은 사랑’으로 북돋아 내놓을 수 있기에 모두 시인입니다. 어린이가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으며 시인이듯, 어른 또한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으며 시인이에요.


  스스로 느끼면 돼요. 스스로 생각하면 돼요. 스스로 사랑하면 돼요. 스스로 살아가면 돼요.


.. 나는 어른이 되면 /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 / 살고 싶지 않다 ..  (어른이 되면)


  시쓰기는 기계다루기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돈벌기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텔레비전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도시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문학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졸업장하고 다릅니다.


  시는 기계처럼 쓸 수 없기에, 대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합니다. 시는 돈을 벌며 쓸 수 없기에, 문학강좌를 듣는대서 쓰지 못합니다. 시는 텔레비전 보는 매무새로는 쓸 수 없기에,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릴 때에 쓸 수 있습니다. 시는 온통 사랑을 담는 글이기에, 도시에서 살아가며 쓰지 못합니다. 시는 오직 내 가슴속 꿈을 빛내는 말이기에,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상장을 많이 거머쥔 사람일수록 시를 쓸 줄 모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 마음을 건사하는 사람입니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를 일구고 지구별을 보듬는 사람은 어린이 마음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어린이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일하는 사람도 / 편하게 좀 살다가 죽어야지. / 와, 일하다가 죽어야 하노?” / 어머니가 툭 던진 말씀 ..  (일요일 아침에)


  서정홍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우리 집 밥상》(창작과비평사,2003)을 읽습니다. 노동자로 일하다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살림살이로 바꾸었다는 시정홍 님이 시골살이 이야기를 담은 동시집 《우리 집 밥상》입니다. 참말, 《우리 집 밥상》에는 시골살이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제껏 이 나라 시인이나 동시인치고 시골살이를 살뜰히 노래한 적은 아주 드물기에 몹시 반갑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이들한테 동시를 읽히려 하는 어른들은 으레 자연을 노래하곤 하면서 정작 동시쓰는 어른 스스로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았는데, 서정홍 님은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마을 이야기를 동시로 풀어내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그런데, 서정홍 님 동시집 《우리 집 밥상》에는 시골살이 이야기는 있지만, 시골살이 사랑은 그닥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바라보는 이야기는 있되, 시골살이를 스스로 즐기는 이야기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나, 시골살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안 보입니다.


  동시집 《우리 집 밥상》을 여러 차례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애써 나온 시골살이 이야기 동시집이지만, 왜 이렇게밖에 쓸 수 없을까 하고 생각에 젖습니다. 서정홍 님은 시골살이 이야기를 동시로 담았지만, 아마 이 동시집은 ‘시골 어린이’보다 ‘도시 어린이’한테 읽히고픈 마음이었겠지요. 아무래도 도시 어린이가 ‘도시에서 살아가며 알아들을 만한 눈높이’로 동시를 썼겠지요.


.. 남들 농약 다 치는데 / 우리만 안 치면 불안하다고 / 사과밭에 열두 번째 / 농약을 친 작은아버지. // 빨갛게 보기만 좋은 사과 농사 / 땅도 사람도 병드는 농사 / 작은아버지는 /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한다며 / 뿌연 농약을 치고 또 친다 ..  (사과 농사)


  도시 아이들은 찔레꽃과 딸기꽃을 가릴 줄 모릅니다. 도시 어른들은 느티꽃과 뽕꽃을 바라볼 줄 모릅니다. 도시 아이들은 냉이내음과 쑥내음을 모릅니다. 도시 어른들은 제비 노랫소리와 직박구리 노랫소리를 살필 줄 모릅니다.


  서정홍 님이 찔레꽃과 딸기꽃 이야기를 쓰더라도, 도시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며 어리둥절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서정홍 님이 즐겁게 제비와 직박구리와 종달새와 꾀꼬리와 노랑할미새 이야기를 읊어도, 도시 어른들(이 동시집을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힐 어버이와 교사)부터 도무지 못 알아듣고는 이 동시집을 도로 책방 책꽂이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말해야지요. 시골살이가 어떠하다고 말해야지요. 도시에서 바라보는 시골이 아니라, 시골에서 살아가는 시골을 말해야지요.


  그러니까, 말해야지요. 시골살이가 어떤 사랑이라고 말해야지요. 도시에서 겉훑기로 짚는 시골이 아니라, 시골에서 사랑하는 시골을 말해야지요.


.. 도시 손님들은 / 농촌에 오기만 하면 / 돼지 삼겹살 구워 먹고 / 우리 엄마 애써 기른 암탉까지 잡아먹는다 ..  (손님들)


  시골을 사랑하기에 시골에 삶터를 마련해 살아가려는 서정홍 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기로 했지만 아직 시골을 사랑하지는 못하는 서정홍 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서정홍 님은 시골살이를 합니다. 도시살이 아닌 시골살이를 합니다. 시골이 좋은 까닭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헤아리기에 도시 아닌 시골에서 땀을 흘리고 햇살을 누리며 물을 마십니다.


  도시사람이야 시골에 가서 세겹살 구워 먹고 싶겠지요. 그러면, 시골사람 서정홍 님은 시골에서 살아가며 무얼 하고 싶을까요. 도시사람이야 때깔 좋아 보인다는 굵직한 열매를 사서 먹는다 하겠지요. 그러면, 시골사람 서정홍 님은 어떤 밭에서 어떤 열매를 거두고 어떤 밥을 즐기며 어떤 사랑을 짓는가요.


.. “아버지, 누렁이 꼭 팔아야만 경운기 살 수 있어요?” / “경운기 사면 농사 짓기도 수월하고 / 누렁이 고생 안 해도 되니 파는 게 좋겠다. / 서운해도 내일 팔기로 했으니 그리 알아라.” ..  (누렁이)


  사랑하는 삶을 시로 빛냅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그립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엮습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밝힙니다. 사랑하는 시골에서 사랑하는 어여쁜 꿈을 시로 일굽니다. (4345.5.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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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5-19 07:57   좋아요 0 | URL
서정홍님의 시 중에는 도시와 농촌 살이에 대한 것들이 많지요. 은근히 뼈 있는 내용들이어서, 읽으면서 그냥 아름답다고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뜨끔하게 해요.

숲노래 2012-05-19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는 '뼈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는데,
이제 시골살이를 하며 새롭게 읽다 보니,
'뼈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자꾸 '도시사람 눈치를 보며 뼈를 생각하도록' 하는 이야기 틀에
스스로 갇혔구나 싶더라고요.

스스로 한껏 즐기고 누리는 시골살이 이야기는
아직 좀처럼 못 쓰시는구나 싶어요......
 
부슬비 내리던 장날 - 제4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14
안학수 지음, 정지혜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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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스며드는 웃음꽃을
[시를 사랑하는 시 9] 안학수, 《부슬비 내리던 장날》(문학동네,2010)

 


- 책이름 : 부슬비 내리던 장날
- 글 : 안학수
- 그림 : 정지혜
- 펴낸곳 : 문학동네 (2010.7.30.)
- 책값 : 8500원

 


  봄을 맞이한 시골은 온 들판이 밥상입니다. 천천히 들길을 걷고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싱그럽게 푸른 풀잎을 뜯어서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풀잎은 날마다 새롭게 돋습니다. 풀잎은 날마다 새롭게 뻗습니다. 이 자리에서 오늘 이 풀잎과 풀줄기를 뜯어서 먹고, 저 자리에서 이듬날 저 풀잎과 풀줄기를 뜯어서 먹습니다.


  한 사람이 먹는 풀잎은 많지 않습니다. 조금 조금 조금, 천천히 거닐며 조금 조금 조금, 천천히 씹고 천천히 즐기고 천천히 삭히면 온몸이 즐겁습니다. 온몸이 즐거우니 온마음이 환합니다.


  먼먼 옛날 보리고개라 했지만, 보리고개라 하던 때는 봄철이었습니다. 봄철에는 숱한 풀잎과 풀줄기를 누릴 수 있으니, 따로 벼 알맹이를 먹지 않더라도 배고플 일은 없습니다. 다만, 먼먼 옛날 풀잎 먹고 풀죽 쑤어먹는데에도 배고프며 힘들었다 할 때에는, 여느 흙일꾼으로서 제 땅뙈기를 누리지 못하고 땅임자 땅뙈기를 힘겹게 갈고 일구며 땀을 흘려야 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땅임자이든, 계급과 신분 낮은 흙일꾼이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한삶을 누리려 하는 사회나 나라였다 하면, 보리고개라는 말마디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장날 작은 수레를 끌며 / 이천 원짜리 모기약 팔던 / 허리 굽은 할아버지 ..  (부슬비 내리던 장날)


  시골집에서만 지내다가 여러 달만에 시외버스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나들이를 합니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 두 군데를 들른 다음, 경기도 파주 책도시로 나들이를 합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파주에서 걸어다니며 생각합니다. 서울도 파주도 나무를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서울과 파주에서 자라는 나무는 너무 가엾어 보입니다. 가냘프고 줄기가 새까마며 잎사귀가 하늘거립니다. 너무 높은 건물이 나무를 윽박지릅니다. 밤에도 번쩍이는 불빛이 나뭇잎을 쥐어박습니다. 자동차 매캐한 배기가스가 줄기를 옥죕니다.


  시골집에서 들풀과 멧풀을 뜯어 봄빛을 즐기던 식구들이 도시에서 흐느적거립니다. 뜯을 풀이 없기도 하지만, 눈으로 구경할 풀조차 없습니다. 택시에서도 가냘픈 나무만 바라보고, 두 다리로 거닐면서도 파주 책도시 우람한 출판사 건물 사이사이 구슬픈 나무만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나무만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예 방방 뛰며 노는 첫째 아이가 길가 ‘줄기 새까만 나무’들 옆을 지날 때마다 덥석덥석 온몸으로 안습니다. 어, 너, 뭐 하니, 하고 말하려다가, 아, 그래, 좋아, 고맙구나, 네가 참 빛나는 하느님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 나무들이 가녀리고 가엾다면 온몸으로 덥석덥석 껴안고 볼을 부비며, 나무야 사랑해, 나무야 고맙다, 나무야 반갑네, 나무야 잘 지내, 하고 인사를 나누면 되는군요.


.. 꼬부랑 할머니도 / 꼬부랑 호미 들고 / 날마다 갯벌로 나갑니다 ..  (떡 캐는 갯벌)


  도시에서는 밥을 사다 먹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잠잘 데를 찾아 꽤 비싼 돈을 치러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얼마 안 기다려도 버스나 전철이 들어옵니다. 도시에서는 가만히 서기만 해도 택시가 알아서 우리 앞에 멈춥니다.


  도시에서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내 주머니에 돈이 가득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내 주머니에 돈이 넘치도록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벌어야만 하고, 돈을 써야만 합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돈을 생각하고 돈을 꿈꾸며 돈을 사랑해야 합니다.


  옆지기가 눈 코 입 혀 머리 가슴 배 다리 팔 손 온몸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말합니다. 몸만 아플까요. 마음까지 아플 테지요.


  나는 말을 않고 꾹 참지만, 이래서야 안 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나도 눈부터 코며 입이며 머리이며 가슴이며 발바닥이며 손가락이며 안 아픈 데가 없습니다. 마음도 아프고 생각도 아픕니다.


  다 함께 빛날 삶이며 환할 목숨일 텐데, 다 함께 아프며 고단한 나날이 된다면, 도시살이란 참 끔찍합니다. 왜 이렇게 돈만 벌어 돈만 써야 할까요. 왜 이다지도 돈에 얽매이며 돈을 붙들어야 하나요.


  좋은 밥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좋은 밥 누릴 좋은 흙과 지구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을 생각하며 읽고 싶습니다. 좋은 넋과 얼을 이끄는 좋은 삶 간추린 좋은 책 하나 생각하며 읽고 싶습니다.


.. 여름내 꽃 피우고 / 햇빛 모아 열었던 열매 / 다람쥐 가족에게 / 겨울 양식으로 주고 ..  (겨울 갈나무)


  서울과 파주에서 시집을 스무 권 즈음 장만합니다. 아이들 그림책은 마흔 권 즈음 장만합니다. 내가 읽을 사진책은 서른 권 즈음 장만합니다. 이런 책 저런 책 골고루 장만합니다. 가방에 시집을 챙겨 넣습니다. 아이들 모두 잠든 깊은 밤과 이른 새벽에 시집을 조용히 읽습니다.


  훌렁훌렁 읽을 만한 시집은 없습니다만, 차근차근 아로새길 만한 시집도 없다고 느낍니다. 내가 생각하는 삶을 노래하거나 내가 바라는 삶을 들려주는 싯말을 만나지 못합니다. 시집으로 묶인 보배와 같은 싯말이 허술하거나 모자라거나 변변하지 않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시를 쓴 분 삶을 더 꾸밈없이 드러내거나 그예 수수하게 보여주거나 즐겁게 이야기하거나 빛나게 누린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 못마땅하다면 내가 글을 써서 내 책 하나 빚으면 됩니다. 길가에서 돈을 치러 무언가 사다 먹을 때에 혀가 아프고 몸이 아프다가 마음까지 아프다면, 나 스스로 내 좋은 보금자리 둘레 들판과 멧자락에서 손수 흙을 일구거나 몸소 풀을 얻어 천천히 먹고 즐길 노릇입니다. 도시로 마실을 나온 터라 풀밥을 얻지 못한다면, 도시에서는 도시대로 즐겁게 밥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내 살림돈이 넉넉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넉넉한 살림돈에 알맞게 이런저런 밥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썩 내키지 않거나 그리 마땅하지 않다 싶은 시집이라 하더라도, 이 시집을 이룬 싯말을 빚은 사람들 삶과 꿈과 넋과 빛을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알뜰히 사랑하자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언제나 좋은 내 하루이듯, 언제나 반가운 책 하나입니다. 언제나 기쁜 내 삶이듯, 언제나 고마운 내 이야기 한 자락입니다.


.. 춥고 고픈 겨울이라고 / 꼬마 생쥐들 찾아오면 / 따듯한 방 열어 주고 / 아낌없이 탈탈 털어 주자 ..  (콩대)


  안학수 님 동시집 《부슬비 내리던 장날》(문학동네,2010)을 읽습니다. 따로 밑줄을 그으며 읽을 만한 동시는 없다고 느낍니다. 나는 이렇게 느끼지만, 안학수 님은 스스로 어떻게 느낄까 궁금합니다. 안학수 님은 당신 동시를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즐길는지 궁금합니다.


  생쥐이든 들쥐이든 굴을 파며 살아갑니다. 생쥐이든 들쥐이든 사람이 ‘방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어딘가 굴을 파서 몰래 기어듭니다. 쥐는 흙집 흙벽도 뚫고, 시멘트집 시멘트벽도 뚫습니다. 쥐는 흙땅을 파서 저희 따스한 집을 마련하면 되련만, 둘레에 사람집이 있으면 사람집으로 파고들어 손쉽게 먹이를 얻으려 합니다. 추위를 타니까 사람집에 들어오기도 할 텐데, 먹이를 바라며 사람집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나는 쥐한테 따로 방문을 열어 줄 마음이 없습니다. 쥐는 쥐대로 흙땅 한켠에 저희 굴을 파며 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살아갈 때에 가장 즐거우며 가장 좋은 삶이 되리라 여깁니다.


  우리 시골집 처마에는 제비가 둥지를 짓습니다. 제비 두 마리가 밤새 깃털 부비며 잠을 자고, 이른새벽이면 재재거리며 똥을 누고 먹이 찾아 돌아다니는데, 곧 알을 낳고 새끼를 까겠지요. 나는 이 제비들이 우리 방 안쪽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비는 제비대로 처마 밑 둥지가 가장 좋습니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살아가면 우리 집 둘레에 파리 모기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서로서로 돕고 어깨동무합니다.


  내가 쥐한테 무언가 털어 줄 것이란 없습니다. 쥐는 쥐 스스로 제 집과 먹이를 들판과 흙밭에서 찾겠지요. 내가 제비한테 무언가 내어 줄 것이란 없습니다. 제비는 제비 스스로 제 집과 먹이를 들판과 멧자락에서 찾겠지요.


  동시를 쓰는 안학수 님은 안학수 님 삶에서 무엇을 스스로 찾고 무엇을 스스로 누리며 무엇을 스스로 빛내실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찾는 삶을 들려주고, 스스로 누리는 삶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빛내는 삶을 글줄 하나에 담을 때에 한결 아름다우며 예쁜 싯말이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구경하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넋을 동시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말이 아닌 스스로 즐거이 생각하는 꿈을 동시에 실으면 좋겠습니다. 예쁘장하게 보이는 싯말이 아닌 어른으로서 언제나 누리는 가장 밝은 사랑을 동시로 옮기면 좋겠습니다.


  안학수 님 하루를 동시에 담아 주셔요. 안학수 님 꿈을 동시에 실어 주셔요. 안학수 님 참사랑을 동시로 옮겨 주셔요. 수수하고 흔한 이야기라도 좋아요. 수수하고 흔한 이야기가 될 때에 참 좋아요. 할머니 호미질을 구경해도 나쁘지 않지만, 손수 호미를 쥐어 보셔요. 할머니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참 좋아요. 가슴으로 스며들어 내 웃음꽃이 되는 삶자락을 한 올 두 올 사근사근 풀어내어 빛말로 여미어 주셔요. 사진은 빛그림이라면, 동시는 빛말입니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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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 시인선 64
고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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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마을에 찾아든 봄
[시를 노래하는 시 16] 고정희, 《지리산의 봄》

 


- 책이름 : 지리산의 봄
- 글 : 고정희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1987.10.5.)
- 책값 : 7000원

 


  새벽 네 시 사십 분, 둘째 아이가 칭얼칭얼 소리를 내더니 뽀직뽀직 소리를 냅니다. 아하, 똥을 누네. 둘째가 밤똥을 누네.


  첫째 아이는 밤똥을 참 자주 누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났고, 도시 물과 바람과 햇살을 먹고 자랐습니다. 둘째 아이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 물과 바람과 햇살을 먹으며 자랍니다.


  곰곰이 돌이킵니다. 첫째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애먼 것을 따로 먹으려 하지 않았으나, 삶터에서 늘 받아들여야 하는 물이나 바람이나 햇살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늘 듣는 소리도 자동차 소리가 훨씬 클 뿐더러, 사람들마다 손전화를 갖고 다니니, 온갖 곳에서 시끄럽습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라치면 온몸에서 기운이 쪽 빠질 만큼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기운이 아이한테 스며들어, 아이 몸이 헝클어지는 나머지, 자꾸자꾸 밤똥을 누며 속앓이를 했겠구나 싶습니다.


..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  (땅의 사람들 6―봄비)


  방에 불을 켭니다. 둘째 아이를 살포시 안습니다. 속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지와 기저귀를 벗깁니다. 마침 저녁에 저녁똥을 눈 아이를 씻기느라 보일러를 돌렸기에 새벽에도 따신 물을 조금 쓸 수 있습니다. 잘 되었네.


  밑을 말끔히 씻깁니다. 아이를 내 어깨에 기대도록 하고는 똥기저귀와 똥바지를 살짝 빨아 뜨신 물에 담급니다. 아이를 안고 나와 물기를 닦습니다. 새 바지를 입힙니다. 내 무릎에 누입니다. 새벽 다섯 시를 지납니다.


  아이는 무릎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어제 하루 일을 돌이킵니다. 어제는 면내 우체국에 다녀온다며, 네 식구가 천천히 걸어서 마실했습니다. 구비구비 봄논 마늘밭 사이를 돌아서 걷는다며 오십 분 넘게 걸었고, 면내 풀숲에서 삼십 분 즈음 쉰 다음,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첫째 아이는 가는 길에 신나게 뛰고 달리며 놀다가는, 집으로 오는 길에 수레에서 잠들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가는 길에 수레에서 달게 잠들다가는, 집으로 오는 길에 방실방실 웃으며 놀았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오늘 좀 힘들게 마실한 탓에 둘째가 밤똥을 누었구나 싶습니다. 둘째는 내내 안긴 채 다녔다지만, 아직 많이 어려서 힘들겠지요.


.. 아무도 네 시체 위에 궁전을 지을 수는 없으며 / 아무도 네 봉분 깔고 앉아 / 면죄부를 나눠 가질 수는 없으리 / 즈믄 가람 스치는 소소한 바람에도 / 가던 길 옷깃을 여며야 하리 ..  (땅의 사람들 12―그대 봉분 위에 민주깃발 꽂으니)


  아침에 옆지기가 논둑 풀을 뜯었습니다. 아침에 뜯은 논둑 풀로 우리 네 식구 두 끼니를 꾸렸습니다. 싱그러운 봄풀을 먹을 수 있는 하루가 고맙습니다. 이때에 첫째 아이는 온 논둑을 뛰고 달리며 뒹굽니다. 둘째 아이는 척척 기며 따라나오더니 논으로 씩씩하게 들어갑니다. 논 한켠에 고인 물을 철푸덕철푸덕 칩니다. 진흙을 밟습니다. 진흙을 손으로 움켜쥐다가는 툭툭 던집니다.


  옆지기가 풀을 다 뜯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둘째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논에서 나와 다시 기어 마당으로 갑니다. 너 참 용한 아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옷이야 갈아입히고 빨면 되지, 너야 네 마음껏 놀면 되지.


  씩씩하게 노는 아이를 안아 번쩍 들어올립니다. 마당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가 비로소 꽃을 틔우려 하기에 후박꽃 빛깔을 보고 후박꽃 냄새를 맡도록 합니다. 겨우내 몽우리를 꽁꽁 닫더니, 봄이 되어 동백꽃이 터질 때에도 그저 꽁꽁 제 속살을 감추더니, 사월이 저물 무렵 바야흐로 활짝 흐드러집니다.


  모두 때를 맞추어 꽃을 피울 테지요. 모두 철을 살피며 열매를 맺을 테지요. 모두 해를 먹고 나이테가 굵어지겠지요.


.. 돌들도 일어나 옥문을 열어제치고 / 나무들도 일어나 한쪽으로 한쪽으로 길을 내는 대낮 / 엄숙하여라, 사람의 소리 / 어여뻐라, 사람의 발바닥 ..  (땅의 사람들 13―강물이여, 사람의 강이여)


  품에 안긴 아이는 깊이 잠듭니다. 이제 무릎에서 내려놓아도 될까 궁금합니다. 이제 혼자 바닥 담요에 누워도 잘 자려나 궁금합니다. 아버지 무릎도 좋을 테지만, 두 다리를 곧게 쪽 펴고는 마음껏 활개를 쳐도 되는 방바닥도 좋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새벽 다섯 시 십오 분, 우리 집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들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을 맞아 찾아온 제비들이 아니더라도 이무렵이면 다른 들새와 멧새가 마을을 이리저리 드나들며 지저귑니다. 봄에 앞서 겨울에도 새벽 다섯 시가 지날 무렵이면 새들은 지저귀었습니다. 가을에도 이와 같았습니다. 여름에도 이와 같았어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아니라면, 어느 새라 하더라도 동틀 무렵이면 깨어 돌아다닙니다. 동이 트지 않더라도 거의 같은 때에 거의 같이 깨어나 부산히 돌아다니는구나 싶어요.


  나는 시계를 보며 잠을 깨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이 내 잠을 깨웁니다.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에 내 몸이 저절로 일어나 줍니다. 그래서 나는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들새나 멧새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도시에서는 깊은 새벽에 자동차 시끄럽게 오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깊은 새벽에 고즈넉하며 정갈한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요즈막에는 개구리 소리에 섞이는 풀벌레 소리도 곧잘 듣습니다. 여기에 바람 소리, 바람이 나뭇잎과 풀잎 흔드는 소리, 바람을 가르는 새들 소리를 나란히 듣습니다.


.. 숲에 별 뜨고 // 바람 부는 밤 // 모든 언어에 빗장을 지른 뒤 // 찔레꽃 향기가 심장을 가릅니다 ..  (천둥벌거숭이 노래 1)


  서른여덟 해를 살며 유채잎이나 유채줄기 먹는 줄 생각한 적 없습니다. 서른여덟 해째 살아가며 비로소 유채잎을 먹으며 냄새와 빛을 느낍니다. 유채줄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맛과 결을 헤아립니다.


  유채꽃 노랗게 물든 논둑이나 밭둑에서 유채를 먹습니다. 자운영꽃 발그스름 물든 논둑이나 밭둑에서 자운영을 먹습니다. 꽃송이도 먹고 몽우리도 먹습니다. 잎도 먹고 줄기도 먹습니다.


  풀을 뜯기 앞서, 또 뜯고 나서, 또 입에 넣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몸에 들어와 주어 고맙구나. 네 목숨이 내 목숨이 되었구나. 반갑다. 좋다. 즐겁다.


  풀을 뜯어 먹을 때에는 풀을 코앞에서 바라봅니다. 풀하고 얼굴을 맞댑니다. 풀하고 말을 섞습니다.


  풀은 나한테 먹히고 싶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풀은 언제까지나 푸르게 땅에 뿌리박고플는지 모릅니다. 나는 풀을 먹지 않아도 목숨을 이을는지 모릅니다. 나는 이슬이나 바람만 마시더라도 목숨을 이을는지 모릅니다.


.. 귀뚜라미 우는 쪽에 // 사랑을 묻었지요 ..  (천둥벌거숭이 노래 6)


  어쩌면 그래요.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참말 그래요. 내가 뜯어서 먹는 풀은 오직 이슬, 빗물, 흙기운, 햇살, 바람, 이렇게만 먹습니다. 풀은 겨울이 되어 시들어 죽으며 씨앗을 남길 테지만, 시들어 말라죽는 풀은 그동안 뿌리내린 흙으로 돌아가 흙하고 한몸이 됩니다. 흙하고 한몸이 된 풀은 제가 남긴 씨앗이 이듬해에 새롭게 돋아 싱그럽고 푸른 빛을 뽐내며 햇살을 듬뿍 받을 수 있게끔 흙을 북돋웁니다. 해마다 새로운 풀이 새롭게 흙이랑 한덩어리가 됩니다.


  아무래도 우리들 사람 또한 흙이랑 한덩어리 아닌가 싶습니다. 흙이랑 한덩어리인 풀하고도 한덩어리 아닌가 싶습니다. 흙과 풀을 살찌우는 햇살이랑 한덩어리이기도 할 테며, 지구별을 감도는 바람하고도 한덩어리이기도 할 테지요.


  사람은 물하고도 한덩어리입니다. 사람은 밤하늘 가득 채우는 별빛하고도 한덩어리입니다. 달하고도, 우주하고도, 모든 넋하고도 한덩어리입니다.


  하늘을 날거나 물을 밟으며 걷는다는 말이란, 사람 스스로 어떠한 목숨하고 한덩어리인가를 깨달으며 스스로 홀가분한 몸뚱이가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곧, 사람 스스로 나무와 한덩어리라고 느낄 때에는, 나무가 푸른 숨을 내뿜듯, 사람 또한 푸른 꿈과 푸른 사랑과 푸른 글과 푸른 노래와 푸른 춤사위를 내놓습니다. 이를테면, 사람 스스로 물과 한덩어리라고 느낄 때에는 아주 홀가분하며 아름다이 헤엄을 칩니다. 사람 스스로 햇님과 한덩어리라고 느낄 때에는 아주 따사로우며 맑은 눈빛으로 활짝 웃습니다.


.. 여자 속에 든 어머니가 매를 맞는다 / 여자 속에 든 아버지가 매를 맞는다 / 여자 속에 든 형제자매지간이 매를 맞고 쓰러진다 / 여자 속에 든 할머니가 매맞고 쓰러지고 피를 흘린다 / 여자 속에 든 하느님이 매맞고 쓰러지고 피를 흘리며 비수를 꽂는다 / 여자 속에 든 한 나라의 뿌리가 / 매맞고 피 흘리고 비수를 꽂으며 윽 하고 죽는다 // 깊은 밤 사내는 폭력의 이불 밑에 잠들고 / 세상도 따라 들어가 잠들고 ..  (매맞는 하느님―여성사 연구 4)


  고속도로 없는 시골마을에 봄이 찾아듭니다. 고속도로 없기에 자동차 싱싱 달릴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섣부른 길손이나 나그네나 구경군이 드나들지 않는 호젓한 시골마을에 예쁘며 구성진 봄이 찾아듭니다. 봄은 구름이랑 바람이랑 햇살이랑 무지개랑 소나기랑 이끌고 찾아듭니다. 봄은 냄새로도 찾아들고, 빛으로도 찾아들며, 무늬와 이야기로도 찾아듭니다.


  들판과 멧등성이를 포근하게 덮습니다. 냇물과 바닷물을 넘실넘실 감쌉니다. 하늘은 맑습니다. 땅은 푸릅니다. 나무는 새 기운을 뿜습니다. 풀은 새 잎과 꽃을 틔웁니다.


  여기에, 사람은 땀을 흘립니다. 사람은 기지개를 켭니다. 사람은 이야 좋구나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은 마음껏 들판을 노닐고 멧자락을 달립니다. 하늘을 껴안고 땅을 쓰다듬으며 바다를 얼싸안습니다.


..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 그래 저 십 분은 /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 또 저 십 분은 /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 그래그래 저 십 분은 /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  (우리 동네 구자명씨―여성사 연구 5)


  기찻길도 공항도 없는 시골마을 봄은 한갓집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기차가 꼭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차만으로도 참 빠를 텐데, 알맞게 달릴 수 있고, 역마다 어여삐 꾸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왜 기차역은 더 커지면서 쇼핑센터 같은 건물이 들어서야 하나 궁금합니다. 마을과 마을을 알뜰히 이어 서로 어깨동무하며 사귈 수 있을 때에 기쁠 텐데, 왜 큰도시는 더 커다랗게 되려 하고, 시골 읍내는 도시가 되고파 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아파트를 지어야 할까요. 왜 마당 예쁘게 둔 작은 집을 짓지 않을까요. 왜 아파트를 비싸게 사고팔아야 할까요. 왜 텃밭과 앞논 멋스레 둔 시골집을 오래도록 대물림할 보금자리로 삼지 못할까요.


  도시에서 아파트를 홀가분히 내려놓고 텃밭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길 줄 아는 사람이 하나둘 늘면 좋겠습니다. 도시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 길은 살며시 내려놓고 앞논 시골집으로 삶자락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열스물 늘면 좋겠습니다. 도시에서 더 피터지게 싸우기보다 시골에서 더 사랑스레 메와 내와 들을 보듬으며 돌볼 줄 아는 마음씨를 기를 사람이 백 이백 삼백 사백 생기면 좋겠습니다.


..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 / 마지막 포옹에 화인처럼 박힙니다 / 얘야, 나는 이제 너의 담벼락이 아니다 / 나는 네가 머물 반석이 아니다 / 흘러라 / 내가 놓은 짐검다리 밟고 가거라 ..  (수의를 입히며)


  도시에서는 빈집이 드뭅니다. 시골에서는 빈집이 많습니다. 내 집 없다고 푸념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왜 집이 없겠어요. 집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파트가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왜 일거리가 없겠어요. 일자리이든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연봉 높은 쇠밥그릇 직장이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삶은 목숨입니다. 하루하루 꾸리는 삶은 하루하루 누리는 내 목숨입니다. 날마다 챙겨 먹는 밥은 내 넋입니다. 내가 먹는 밥대로 생각하고, 내가 먹는 밥대로 말하며, 내가 먹는 밥대로 일합니다.


  꿈을 꾸는 어른은 꿈을 꾸는 아이를 낳습니다. 꿈을 빚는 어른은 꿈을 꾸는 동무를 사귑니다. 꿈을 꾸는 어른은 꿈을 꾸는 이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내 좋은 이웃은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이기도 하고, 내 좋은 이웃은 후박나무와 모과나무와 매화나무와 감나무이기도 합니다. 내 좋은 이웃은 제비이기도 하고 개구리나 까마귀나 사마귀나 달팽이나 마늘이나 배추이기도 합니다.


  따스히 사랑하고 싶은 사람한테 따스히 찾아드는 봄입니다.


.. 오 하느님, / 칼을 쳐서 밥을 만들고 / 창을 쳐서 떡을 만들던 손 / 그가 여기 잠들었나이다 / 우리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 우리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며 / 우리가 곤궁했을 때 기댈 등을 주던 몸 / 그가 여기 잠들었나이다 ..  (하관)


  시집 하나 읽습니다. 1991년에 마흔셋까지 나이테를 이루다 지리산 어느 결에서 고이 잠들었다던 고정희 님 시집 하나 읽습니다. 아침에 아이들 조잘조잘 복닥이고 저녁에 아이들 시끌시끌 부대끼는 시골집에서 둘째를 가슴에 눕히고 시집 하나 읽습니다. 첫째를 옆에 팔베개 하며 시집 하나 읽습니다.


.. 순전한 흙에서 태어나 // 흙과 더불어 흙을 일구고 / 온전한 흙으로 돌아간 생애 ..  (비문)


  시쓰는 고정희 님은 당신 나이 서른일곱에 비로소 당신 살림집을 마련했다 이야기합니다. 문득 돌아보니 고정희 님 시집을 읽는 나 또한 내 나이 서른일곱에 비로소 내 살림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이 살림집은 살림집일까 아닐까 잘 모르겠습니다. 나로서는 살림집이라기보다 보금자리요, 고향이고 싶거든요. 나부터 스스로 몸이랑 마음을 살포시 눕히며 쉬기도 하고 일하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즐기는 나날이 되고픈 보금자리요 고향이고 싶어요. 아이들 언제나 마음껏 박차고 뛰놀다가는 멀디먼 마실을 떠날 수 있고 다시금 돌아와 예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좋은 품, 보금자리이면서 고향이고 싶거든요.


.. 왜 그닥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불현듯 상경하신 지난가을, 얘야, 이승길 마지막 나들이다 네가 사는 문지방 넘어보고 싶구나 왜 단호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바쁘다 매정하게 돌아서는 저에게 그냥 탈진한 사람처럼 손 흔들며 그래 내년 봄에 다시 오마 해놓고선 정작 꽃삼월엔 아주 가시다니요 이게 살아 있는 날들의 아둔함인가 싶어 하염없는 눈물만 못이 되어 박힙니다 ..  (집)


  봄날 봄빛 시를 읽습니다. 봄날 읽는 봄빛 시는 겨울을 살아낸 이야기 아닌가 생각합니다. 봄날 읽는 봄빛 시는 여름과 가을을 온몸으로 무르익히며 온마음 구수하게 삭힌 튼튼하고 알찬 빛덩어리 아닌가 헤아립니다.


  봄을 누리는 가슴은 사랑을 꽃으로 틔웁니다. 봄을 즐기는 가슴은 꿈을 잎사귀에 푸르게 새깁니다. 봄을 지내는 가슴은 눈물과 웃음을 줄기마다 차곡차곡 담습니다.


  새 아침 새 빛살 창호지문으로 곱다라니 스밉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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