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 꼬꼬마 도서관 3
오시마 다에코 지음, 육은숙 옮김 / 학은미디어(구 학원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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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4



숲동무 눈사람하고 놀자

― 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

 오시마 다에코 글

 가와카미 다카코 그림

 육은숙 옮김

 학은미디어 펴냄, 2006.5.5.



  드넓게 우거진 숲이 아름답습니다. 조그맣더라도 사뿐사뿐 거닐면서 그윽하며 짙푸른 풀내음을 맡을 수 있는 숲이 사랑스럽습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우리 몸을 살찌우는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숲에서 돋는 작은 풀과 여린 꽃은 우리 마음을 북돋우는 맑은 숨결을 베풉니다.


  풀 한 포기는 나물이 되니 풀밥입니다. 풀잎과 나뭇잎이 내뿜는 바람은 큼큼 들이켜면서 싱그러운 숨결로 거듭나니 바람밥입니다. 숨을 쉬며 목숨을 잇는 사람인 만큼,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보금자리는 숲에 깃들어야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시골도 도시도 모두 숲으로 둘러싸인 삶터일 때에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 눈은 점심때가 지나서야 그쳤어요. 단비와 피피는 좋아라 하고 집 뒤 숲으로 달려갔어요.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소리치셨어요. “조금만 놀다 와야 한다!” ..  (5쪽)




  오시마 다에코 님이 글을 쓰고, 가와카미 다카코 님이 그림을 그린 《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학은미디어,2006)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한겨울에 눈이 소복히 내린 날, 아이가 혼자 숲으로 가서 눈놀이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대여섯 살이나 예닐곱 살 즈음이라고 할 만한데, 동무가 곁에 없어도 혼자 씩씩하게 놉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함께 따라가지 않아도 그야말로 홀로 야무지게 놉니다.


  그림책이라 하지만, 아이는 숲에 거침없이 들어갑니다. 못 갈 일이란 없겠지요. 숲에 무섭거나 두려운 것이 있을 까닭이 없으니까요. 숲은 그저 숲일 뿐, 사람한테 무섭거나 두려운 대목은 없습니다.


  영화라든지 책이라든지 방송에서는 ‘사람 없는 숲’에서 괴물이 나온다거나 도깨비가 튀어나온다거나 하고 말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숲에는 괴물이 없습니다. 도깨비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지 않습니다. 숲에는 그저 숲동무가 있고 숲님이 있습니다.



.. 이번에는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눈은 새알 초콜릿, 입은 작은 나뭇가지! 피피가 빨간 꽃을 물고 왔어요. “눈사람 머리에 씌워 줘. 멍 멍!” ..  (11쪽)




  그림책 《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에 나오는 아이는 제 작은 손을 놀려서 조그마한 눈사람을 빚습니다. 아이 손을 거쳐서 새로운 몸을 얻은 ‘꼬마 눈사람’은 이윽고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납니다. ‘숲아이’가 ‘눈아이’를 깨웠으니까요.


  눈사람을 빚은 숲아이는 놀라지 않습니다. 눈아이가 팔이랑 다리도 빚어 달라고 하니, 선선히 팔이랑 다리도 빚어서 붙여 줍니다. 숲아이는 눈아이하고 함께 놉니다. 눈밭에서 함께 썰매를 달리고, 눈으로 과자를 잔뜩 빚어 주어서 눈아이하고 샛밥을 먹습니다.



.. 꼬마 눈사람이 말했어요. “나한테 팔이랑 다리를 만들어 줘! 나도 달리고 싶어.” 단비는 눈으로 튼튼한 팔과 다리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제 됐니?” ..  (18쪽)



  아무리 어린 꼬마라 하더라도 밥을 빚을 수 있습니다. 여느 어른들처럼 불을 써서 밥을 끓이거나 빵을 굽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은 ‘꿈으로 짓는’ 밥을 늘 마련합니다. 여느 눈으로는 ‘아이가 지은 밥’을 알아볼 수 없지만,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아이가 멋지게 지은 밥’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여느 눈으로는 빈손만 보일 터이나, 마음을 열고 바라볼 적에는 두 손 가득 넘치는 ‘맛난 밥’을 알아보면서 냠냠짭짭 고맙게 나누어 먹습니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면서 배불러요. 마음이 부릅니다. 마음이 넉넉합니다. 기쁘게 놀면서 기쁨을 스스로 지어서 먹고, 웃으면서 노래하는 동안 웃음과 노래를 마음밥으로 잔뜩 먹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컷 논 아이는 ‘놀이밥’이랑 ‘마음밥’을 넉넉히 먹었기에 별이 돋는 밤에 깊이 잠듭니다. 아침부터 저녁 사이에 제대로 놀지 못한 아이는 놀이밥도 마음밥도 제대로 못 먹은 탓에 자꾸 미적거리거나 칭얼거리면서 ‘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 그날 밤, 단비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 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하늘 가득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어요. ‘지금 꼬마 눈사람은 뭐 하고 있을까?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함께 놀아야지.’ ..  (29쪽)



  그림책에 나오는 숲아이처럼,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숲살이를 누려서, 집 둘레에 있는 아름드리 숲에서 숲놀이를 즐길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웁겠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에는 눈밭에서 구르고, 여름에는 풀밭에서 구릅니다. 가을에는 풀열매랑 나무열매를 즐기고, 봄에는 풀꽃이랑 나무꽃을 즐깁니다.


  아이들은 한 해 내내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놀면서 큽니다. 숲이 바로 배움터입니다. 들이 바로 배움자리입니다. 냇물과 바다가 바로 배움마당입니다. 하늘과 흙과 풀과 나무가 모두 배움벗입니다. 바람은 언제나 배움노래가 되어 곱게 흐릅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아이는 ‘하늘아이’가 되어 너르고 씩씩한 마음으로 자랍니다. 하늘숨을 마실 수 있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하늘어른(하늘사람)’이 되어 너르면서 착한 마음을 가꿀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4348.5.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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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5-24 00:35   좋아요 0 | URL
일이 있어 하루종일 함께 있지 못해 들어와 아이를 재우려니 놀자고 투정부리고 안자 억지로 재웠지요. 놀이밥과 마음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랬군요. 도서관 터 문제는 잘 해결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멀리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

숲노래 2015-05-24 05:29   좋아요 0 | URL
도서관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월요일에 고흥군수님한테 편지를 쓸 생각이에요.
아이들은 시간에 맞춰서 재우지 말고
실컷 놀아서 곯아떨어질 때에 재워야지 싶습니다~
 
프리다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2
아나 후앙 그림, 조나 윈터 글, 박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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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3



사랑을 찾아 삶을 지으며 그림을 그리다

― 프리다

 조나 윈터 글

 아나 후안 그림

 박미나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2002.12.24.



  조나 윈터 님이 글을 쓰고, 아나 후안 님이 그림을 그린 《프리다》(문학동네어린이,2002)를 읽습니다. ‘프리다 칼로’라고 하는 분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프리다 칼로 님은 멕시코에서 1907년에 태어나서 1954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여러 사고를 치르면서 몸이 아파야 했고, 함께 짝을 지은 사내가 보여준 몸짓 때문에 마음이 아파야 했다고 합니다. 수없이 수술을 하면서 몸을 깎는 아픔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녁을 둘러싼 사람들을 마주하는 슬픔과 기쁨을 오롯이 맞아들여야 했다고 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프리다 칼로 님은 ‘사랑을 찾는 삶’이었구나 싶습니다. 몸을 내려놓고 마음까지 내려놓으면서, 오직 사랑 하나를 바라보면서 삶을 짓지 않고서는, 하루조차 버틸 수 없는 나날이었으리라 싶습니다.



.. 프리다 집은 파란색이지요. 코요아칸이란 마을에 있어요 ..  (3쪽)





  누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더 돋보이지 않고, 누가 나를 싫어하니까 내가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나 그대로 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대서 아이들이 더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싫어한대서 아이들이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답게 그대로 아름다웁고 사랑스러운 숨결입니다.


  좋아함과 싫어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 언제나 마음앓이를 합니다. 누가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거나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언제나 마음이 다치거나 힘들거나 괴롭습니다.


  내가 너를 좋아할 까닭이 없고, 네가 나를 싫어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만나면 됩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 아름답게 만나지 못합니다. 좋다거나 싫다고 하는 느낌에 끄달리지 않으면서 고요히 흐르는 사랑이 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으로 거듭납니다.




.. 프리다는 그림 그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어요. 그림을 그리면 하나도 슬프지 않았지요 ..  (9쪽)



  프리다 칼로 님은 스스로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뛰어난 스승이나 놀라운 스승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교나 강의나 수업이나 책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멕시코라는 나라에서 흐른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들여서 기쁘게 그림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프리다 칼로 님이 보여주는 그림은 ‘멕시코 이야기 그림’입니다. ‘멕시코 민화’라고도 할 만합니다. 프리다 칼로 님이 보여주는 그림은 ‘현대 회화’도 ‘초현실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겨레가 예부터 그린 ‘민화’라고 하는 그림도 ‘사람 이야기’입니다. 여느 시골자락에서 시골살이를 일구면서 누린 그림입니다. 프리다 칼로 님이 빚은 그림도 멕스코 여느 시골자락에서 시골살이를 일구면서 손수 밥과 집과 옷을 지은 사람들이 빛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땅을 일구는 시골사람입니다. 바람을 마시고, 꽃과 나무를 아끼면서 땅을 가꾸는 시골사람입니다. 비와 눈을 노래하고, 벼락과 천둥을 바라보는 시골사람입니다. 정치나 경제를 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전쟁무기도 군대도 모르는 채, 제 땅을 제 손으로 일구면서 삶을 노래하고 웃음과 춤으로 두레를 엮은 수수한 시골사람입니다.




.. 사고가 난 뒤 프리다는 달라졌어요.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했고, 늘 몸이 아팠어요 ..  (21쪽)



  우리는 누구나 천재이면서 천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오직 하나뿐인 목숨을 사랑으로 받아서 태어납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넋으로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 다 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정규 학교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다고 여기는데, 지난날에는 아무도 학교를 안 다녔으나, 모든 사람이 손수 땅을 부치면서 밥을 얻을 줄 알았고, 풀줄기에서 실을 뽑아서 옷을 지을 줄 알았으며, 나무를 베고 흙과 돌과 짚을 얻어서 집을 지을 줄 알았습니다. 아무런 ‘학교교육’이 없이, 지난날 모든 사람이 손수 밥과 집과 옷을 장만하며 살았어요. 게다가, 지난날에는 책 한 권이 없어도 ‘살면서 쓸 모든 말’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았습니다. 오늘날에는 한국말사전이나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이나 나무도감 같은 책을 옆에 두어야 ‘풀이름’이나 ‘벌레이름’을 알 만하지만, 지난날에는 누구나 풀과 벌레와 물고기와 새와 숲짐승과 나무 이름을 모조리 알았어요.


  그러니, 예부터 우리는 누구나 ‘천재’였고, 오늘날에는 스스로 천재인 줄 잊으면서 학교교육만 받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내 삶을 그림으로 그리는 천재’로 살 수 있으나, 정작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학교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틀에 따라서 남한테 보여주려는 예술작품 만들기’입니다.




.. 프리다는 다른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어요 ..  (27쪽)



  그림책 《프리다》를 천천히 읽습니다. ‘자유’를 뜻한다는 ‘프리다’를 어버이한테서 선물처럼 이름으로 받은 프리다 칼로 님은 이녁 그림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멕시코라고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랑과 자유’가 바로 프리다 칼로 님이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은 노래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참말 “프리다는 다른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습니다. 흉내를 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프리다 칼로 님은 오직 이녁 마음속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내 모습을 고스란히 바라보면 됩니다.


  프리다 칼로 님은 이녁 스스로 사랑한 ‘내 모습’이자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 스스로 사랑할 ‘내 모습’이자 ‘한국사람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고 글로 쓰며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사랑을 찾아 삶을 지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사랑을 찾아 살림을 꾸리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랑을 찾아 보금자리를 가꾸며 노래를 부릅니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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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와 피아노 지식 다다익선 4
마르코 짐자 지음, 빈프리트 오프게누르트 그림, 배정희 옮김, 엄태국 / 비룡소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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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1



아이는 모두 노래를 사랑하는 숨결

― 티나와 피아노

 마르코 짐자 글

 빈프리트 오프게누르트 그림

 배정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6.6.24.



  아이는 모두 노래를 사랑합니다. 어른이 노래를 들려주면 아주 좋아하고, 아이 스스로 노래를 즐겁게 부릅니다. 어른이 가르치는 노래를 기쁘게 배우고, 아이 나름대로 새로운 가락을 짓고 노랫말을 붙여서 부릅니다.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는 자동차 구르는 소리도 노랫소리로 듣고,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뭇잎이 바람에 팔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까르르 웃습니다.


  아이는 두 발을 콩콩 바닥에 굴리면서 노랫가락을 짓습니다. 어른이라면 두 손에 채를 집어서 북을 치겠지만, 아이는 온몸을 악기로 삼아서 땅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눈부시게 춤을 춥니다.




.. 삼촌은 티나가 피아노를 배우려면 우선 피아노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티나에게 아름다운 곡들을 피아노로 자주 연주해 주었지요 ..  (2쪽)



  마르코 짐자 님이 글을 쓰고, 빈프리트 오프게누르트 님이 그림을 그린 《티나와 피아노》(비룡소,2006)를 읽습니다. ‘티나’ 이야기는 《티나와 오케스트라》하고 《티나와 리코더》가 함께 나왔습니다. 티나라는 아이는 오케스트라 연주자이자 피아노를 치는 삼촌한테서 피아노를 배우고, 오케스트라 무대를 만나며, 리코더를 어떻게 아끼면서 즐기는가 하는 대목을 함께 배웁니다. 그림책을 쓰고 그린 두 사람은 아이들이 악기를 따사로이 아끼는 마음결로 ‘노래를 사랑하는 숨결’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단한 연주자가 배우거나 선보이는 노래가 아니고, 예술가로 자라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삶을 밝히는 노래가 되면서, 아이들 가슴에 맑은 이야기가 흐르기를 바랍니다.




.. 집에 돌아온 티나는 첫 시간에 배운 것을 엄마에게 모두 보여주었어요. 이제 가락짓기 숙제를 해야 해요. 티나는 아주 천천히, 한 음 한 음씩 피아노를 치며 가락을 만들었어요. 다 만든 뒤에는 처음부터 다시 쳐 보았지요 ..  (7쪽)



  아이가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면 ‘피아노 연주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결을 한결같이 건사하면서 곱게 다스리도록 북돋우려는 뜻에서 피아노를 가르칩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골프나 테니스나 바둑을 가르쳐서 ‘신동’이 되도록 할 까닭이 없어요. 아이는 1등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대회에 나가서 으뜸상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켜면서 마음을 환하고 맑게 가꿀 수 있으면 됩니다.


  이렇게 노래를 즐기고 춤을 누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는 튼튼하게 자라요. 튼튼하게 자라는 아이는 씩씩한 어른이 되고, 씩씩한 어른은 고운 사랑으로 짝을 찾고 곁님을 사귀면서 아이를 새롭게 낳아, 다시금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티나는 두 번째 곡을 치기 시작했어요. 티나의 피아노 소리는 꽤 듣기 좋아졌어요.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한층 더 풍부하게 울렸어요. 테오 삼촌이 피아노를 같이 치기 시작한 거예요. 삼촌은 티나가 무슨 곡을 치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 곡에 어울리는 가락을 지어내서 연주했어요 ..  (17쪽)



  노래가 있는 삶과 노래가 없는 삶을 헤아려 봅니다. 노래가 있는 삶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노래가 없는 삶에는 웃음이 없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똑같이 되풀이되는 노래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 스스로 기쁘게 부르는 노래일 때에 웃음이 있고, 이야기가 자랍니다.


  예부터 지구별 어디에서나 누구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어요. 들에서 들일을 하며 들노래를 부릅니다. 들노래를 부르며 일하다가 허리를 펴면서 쉬고, 허리를 펴면서 쉴 적에 샛밥을 먹고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춥니다.


  누가 가르쳐 준 춤이 아닙니다. 학교나 학원에 다녀서 익힌 노래가 아닙니다. 들녘에서 들을 가꾸면서 들바람을 쐬는 사이에 저절로 익힌 춤입니다. 들판에서 들을 품으면서 들내음을 맡는 동안 시나브로 배운 노래입니다.


  일노래(노동요, 전래민요)는 모두 들노래입니다. 들노래는 바람노래입니다. 바람노래는 하늘노래입니다. 하늘노래는 삶노래입니다. 삶노래는 사랑노래입니다. 일하며 부르는 일노래는 집에서도 집노래가 되고, 밥을 짓다가 바느질을 하다가 빨래를 하다가 아기한테 젖을 물리다가 물레를 잣다가 절구를 돌리다가 흥얼흥얼 노래가 흐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를 익혔고, 아이들은 저희끼리 고샅이나 골목에서 온갖 놀이를 하면서 새롭게 노래를 짓습니다.




.. “오늘 정말 잘했어.” “아이, 중간에 실수도 했는걸요!” “그럴 수도 있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열심히만 한다면, 너는 앞으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  (24쪽)



  그림책 《티나와 피아노》를 새롭게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나란히 읽습니다. 우리 집에 놓은 피아노를 떠올리면서 읽습니다. 두멧시골에 깃든 우리 집 아이들은 학원도 학교도 다니지 않습니다. 집에는 피아노 교본을 두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오직 저희 마음결과 손놀림에 따라 가락을 스스로 느껴서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서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려는 피아노가 아니라, 아이들 나름대로 즐겁게 건반을 두들기면서 스스로 찾아서 나누는 노래가 흐르는 피아노가 됩니다.


  아이는 모두 노래를 사랑하는 숨결입니다. 나는 오늘 이곳에 어른으로 있습니다. 나도 예전에 아이였을 적에 노래를 사랑하는 숨결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교를 열두 해 다니면서 음악 수업을 받을 적에는 ‘노래바보’라면서 늘 놀림을 받으며 주눅이 들었는데, 오늘 이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날마다 노래를 부르면서 노니, 아이들은 “아버지 노래 잘 하는데?” 하면서 “노래 더 불러 주셔요!” 하고 종알종알 매달립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노래를 사랑하는 넋입니다. 노래바보란 없습니다. 누구나 일하거나 놀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하고, 자전거를 달리면서 노래를 합니다. 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하고, 책을 읽다가도, 잠자리에 누우면서도, 늘 즐겁게 노래를 합니다. 그림책 《티나와 피아노》를 읽는 지구별 모든 아이와 어른이 가슴속에 ‘사랑 어린 바람가락’을 품으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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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양념 고추 철수와영희 어린이 인문생태그림책 3
노정임 지음, 안경자 그림, 이정모 감수, 바람하늘지기 / 철수와영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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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0



하얀 고추꽃이 빨간 열매가 된다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양념, 고추

 바람하늘지기 기획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5.5.15.



  찔레꽃이 오월에 눈부시도록 새하얗게 피어납니다. 찔레꽃이 지면 찔레알이 맺는데, 찔레알은 새빨갛습니다. 삼월과 사월에는 딸기꽃과 앵두꽃이 하얗게 핍니다. 눈처럼 새하얀 딸기꽃과 앵두꽃이 찬찬히 지면, 새빨간 딸기알과 앵두알이 맺습니다. 그러고 보면, 능금꽃도 하얗습니다. 하얀 꽃이 지면 빨간 알이 맺습니다. 여기에, 고추꽃도 하얀 꽃송이가 지고 나서 빨간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필 무렵에는 꽃내음이 향긋하고, 꽃이 질 무렵에는 풀내음이 짙푸르며, 꽃이 스러져서 열매로 거듭날 무렵에는 달큼한 숨결이 반갑습니다.




.. 우리나라 채소밭에서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고추밭이에요. 무나 마늘 같은 채소는 수천 년 전부터 먹어 왔어요. 이에 견주면 고추를 기른 역사는 아주 짧아요. 400년쯤 전부터 먹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  (11쪽)



  노정임 님이 글을 쓰고, 안경자 님이 그림을 그린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양념, 고추》(철수와영희,2015)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철수와영희 어린이 인문생태그림책’ 가운데 셋째 권으로 나온 책으로, 첫째 권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2012)이고, 둘째 권은 《콩 농사짓는 마을에 가 볼래요?》(2013)입니다. 벼와 콩에 이어 고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한겨레가 가장 가까이하는 ‘먹을거리’라면 아무래도 첫째가 벼요, 둘째가 콩이며, 셋째가 고추입니다. 논을 지어 나락을 거두니, 이 나락으로 쌀을 깎고 밥을 짓습니다. 밭과 논둑에는 콩을 심어서 거둡니다. 콩으로 콩밥을 짓기도 하지만, 콩으로 된장과 간장을 담고, 두부를 쑵니다. 떡을 찔 적에도 콩을 쓰고, 엿을 골 적에도 넣습니다. 벼와 콩은 한겨레가 먼먼 옛날부터 곁에 두면서 아낀 ‘풀알(풀 열매)’입니다.


  벼와 콩 다음으로 들 만한 ‘곁지기’라면 아무래도 나물입니다. 여느 풀로 나물을 삼습니다. 여느 풀로 국을 끓입니다. 여느 풀은 짐승을 먹이는 밥이 되기도 합니다. 쑥이든 냉이이든 씀바귀이든 민들레이든 소리쟁이이든 갓이든, 모두 나물로 먹습니다. 그렇지만 고추가 나물을 제칩니다. 이 땅에 들어온 발자국은 짧지만, 다른 어느 나물보다 고추가 널리 사랑받습니다.





.. 후추나 천초와는 달리 고추는 우리나라 온대 기후에서도 잘 자라고 뜰이나 밭에서 길러 먹을 수 있는 작물이라서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거예요. 맛도 한몫했어요 … 붉은 고추를 따자마자 바로 강한 햇볕에 널면 노랗게 타 버려요. 그래서 그늘에 2∼3일 두고 한 숨 죽은 다음에 햇볕에 말리지요..  (20, 27쪽)



  한겨레가 고추를 심어서 거둔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처음 들어온 햇수를 따지면 사백 해쯤 된다고 여길 만하지만, 막상 한겨레가 두루 고추를 심어서 거둔 햇수를 치면 백 해쯤 될까 하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고추는 아주 빠르게 퍼졌고, 밥상에서 빼놓기 어려운 양념이 됩니다. 양념으로 치면 된장이랑 간장이랑 소금이 먼저 손꼽힐 테지만, 여기에 고추장이 빠질 수 없어요.


  고추는 날로도 먹고, 가루로 빻아서도 먹으며, 장으로 담가서도 먹습니다. 고추를 써서 김치를 담고, 떡볶이를 빨갛게 물들이며, 온갖 곳에 살몃살몃 깃들어 맛을 더합니다.


  벼는 논에 심습니다. 논에 심는 벼는 해마다 똑같은 자리에 심습니다. 논힘을 살리려고 한 해쯤 논을 묵히기도 하지만, 땅이 없거나 적은 시골지기라면 논을 묵히지 못하고 그대로 짓습니다. 논이든 밭이든 한 가지 씨앗만 잔뜩 심어서 기르려 하면 땅힘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한두 해쯤 땅을 묵혀서 온갖 씨앗이 두루 퍼지고 온갖 풀이 골고루 자라서 땅힘이 돌아오도록 합니다.


  고추를 심은 밭에 이듬해에도 고추를 잇달아 심으면 고추가 곧잘 아픕니다. 고추가 그만큼 땅힘을 많이 가져가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고추를 심은 이듬해에는 감자라든지 배추라든지 다른 남새를 심어서 땅힘을 보듬기도 합니다. 비료와 농약만으로는 땅힘을 살리지 못합니다. 비료와 농약은 오히려 땅힘을 더 줄이거나 빼앗습니다.




.. 학교에 텃밭을 새로 만들어도 집 안의 베란다에 처음 작물을 심어도 밭에는 언제나 다른 동물과 식물들이 생겨나요. 밭도 생태계라는 걸 알 수 있지요 ..  (28쪽)



  그림책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양념, 고추》를 보면, 고추를 어떻게 심어서 돌보는가 하는 이야기부터, 고추로 어떤 먹을거리를 얻는가 하는 이야기에다가, 고추하고 이웃인 여러 가지 남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겨레가 고추를 즐겨먹은 흐름을 짚고, 고추와 나란히 즐긴 여러 가지 양념 이야기를 곁들입니다.


  곰곰이 보면, 고추도 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고춧잎을 톡톡 끊어서 먹습니다. 날로도 먹고 무쳐서도 먹습니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그야말로 앙증맞은 고추꽃이 하얗게 필 때면 고추꽃내음을 맡고, 고추꽃빛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고추꽃이 지면서 고추알(고추 열매)이 맺습니다. 고추알은 기름하게 자랍니다.


  밭을 건사하기 어려운 도시에서는 꽃그릇에 고추를 한 포기 심어서 기르면, 아이들이 곁에서 고추 한살이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작은 씨앗 한 톨에서 씩씩하게 퍼지는 숨결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 고추는 어디서나 잘 자라서, 화분에 키우는 사람들도 많아요. 여름이나 가을에 골목길을 걸을 때 한번 눈여겨보세요. 어디선가 자라고 있는 고추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  (39쪽)



  고추나 감자나 고구마나 토마토나 배추는 모두 이웃나라에서 들어왔습니다. 지구별은 커다란 마을과 같아서, 이쪽 마을(나라)에서 자라던 남새가 저쪽 마을(나라)로 살며시 퍼집니다. 천천히 퍼지기도 하고, 배에 실려 어느 날 문득 퍼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몹시 낯설어 할 만하고, 시나브로 새로운 삶이 되어 뿌리를 내립니다.


  요즈음은 고추밭에 비닐을 씌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닐을 씌우지 않고서는 고추를 기르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추밭에 짚을 까는 사람이 있으나, 애써 짚을 깔려는 사람은 드뭅니다. 고추밭을 거느리면서 농약을 안 쓰는 사람이 드뭅니다. 고추를 처음 들여온 날부터 새마을운동이 퍼지기 앞서까지는 이 땅 어디에도 농약바람이 안 불었으나, 이제는 농약이 없이는 벼도 콩도 고추도 못 기르겠노라 하고 여깁니다.


  아무래도 벌레가 먹으니 농약을 쳐야 한다고 여길 텐데, 풀잎이나 풀알에 벌레가 먹는 까닭은 ‘풀벌레가 갉아먹을 잎이나 알’이 없기 때문입니다. 풀벌레가 갉아먹을 다른 잎이나 알이 있으면 굳이 고추알이든 다른 풀알이든 갉아먹지 않습니다. 밭자락에 몇 가지 씨앗만 심고서 다른 풀은 모조리 뽑거나 베거나 약으로 죽이니, 풀벌레로서는 사람이 키우려는 남새만 갉아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풀벌레는 왜 논밭에서 함께 자라려 할까요? 풀벌레는 풀잎을 먹으면서 꽃송이도 드나들어 꽃가루받이를 해 줍니다. 조그맣게 피는 꽃에는 조그마한 풀벌레가 오락가락하면서 꽃가루받이를 하지요. 벌과 나비만 꽃가루받이를 하지 않아요. 작은 풀벌레와 개미도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그리고, 나비가 되자면 애벌레가 풀잎을 오랫동안 갉아먹고 자라야 해요.


  도시에도 논과 밭이 있어서 아이와 어른 누구나 논밭을 마주할 수 있으면, 어디에서나 싱그러운 바람이 불리라 생각합니다. 건물만 쑥쑥 올라가고, 자동차 둘 자리를 넓히는 데에만 마음을 쓰는 도시인데, 조그마한 땅뙈기에 씨앗을 심을 수 있다면, 집안에라도 꽃그릇이나 텃밭상자를 마련해서 기를 수 있다면, 이리하여 도시에서도 콩이나 고추를 손수 기르면서 삶과 숲과 밥과 지구별을 헤아린다면, 이웃을 한결 넓게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잘 익은 고추알을 즐기고 빨간 고추장을 누리면서 생각을 넓힙니다. 이 맛난 먹을거리와 양념이 우리 곁에 오기까지 얼마나 기쁘게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머금으면서 흙숨을 받아들였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4348.5.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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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43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마르그레트 레이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9



아이들한테 ‘여행’은 무엇일까

― 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마르그레트 레이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2.8.20.



  사뿐사뿐 얌전하거나 조용하게 걷는 아이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뜀뛰는 걸음’으로 다니기 마련입니다. 바빠서 뜀뛰듯이 걷지 않습니다. 그저 홀가분하면서 기쁘게 뜀뛰듯이 걷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활짝 웃고, 아주 자그마한 선물 하나에도 밝게 노래합니다. 작은 몸짓이 큰 날갯짓이 되듯이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뛰거나 달리지 못하게 막습니다. 오직 운동장에서만 뛰거나 달릴 수 있는데, 바깥에서 뛰거나 달려도 뛰지 말거나 달리지 말라고 막기 일쑤입니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면 자동차가 많으니 천천히 둘레를 살피면서 걸으라고 시킵니다. 자동차 걱정이 없는 곳에서는 시끄럽게 굴면 안 되고, 자동차 걱정이 있는 곳에서는 얌전히 굴어야 하는 오늘날 아이들인 셈입니다.





.. 라보눈 방송국은 펭귄나라의 방송국이에요. 거꾸로 읽으면 눈보라 방송국이 되지요. 이 방송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꾼은 펭귄 화이트블랙이에요. 그런데 화이트블랙에게 걱정이 생겼어요. 이야깃거리가 떨어졌거든요 ..  (2쪽)



  아이들은 한국에서 미국이나 프랑스나 남극이나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을 찾아가야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웃나라를 모릅니다. 아이들은 이웃마을도 모릅니다. 이웃나라나 이웃마을은 ‘어른이 흔히 말하거나 알려주니’까 비로소 알 뿐입니다.


  아이들은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는 곳이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뒹굴 수 있는 곳이 재미있습니다. 낯선 나라로 찾아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먼 나라에 여러 날 머물러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호텔에서 묵거나 기차를 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여행길, 그러니까 마실길이 됩니다. 신나게 놀고 뛰면서 지낼 수 있는 자리가 비로소 여행터, 그러니까 마실터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여행을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날마다 마실을 합니다. 집안에서도 날마다 새롭게 마실을 합니다. 집밖에서도 언제나 새롭게 마실을 누립니다. 마루와 마당과 부엌을 오가는 걸음도 기쁜 마실이 됩니다. 이웃집이나 학교나 우첵구을 다녀오는 길도 멋진 마실이 됩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즐거울 때에는 모든 걸음걸이가 마실이 됩니다.




.. “여행하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화이트블랙은 너무나 지루해서 깜박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지끈! 깜짝 놀라서 잠이 깼어요. 배가 빙산에 부딪힌 거예요! 배는 무서운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어요. “배를 잃어버린 건 아쉽지만 라디오에서 이야기할 거리는 되겠지. 게다가 사고도 한번 당해 봤으면 했는데, 잘 됐다.” ..  (5쪽)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님과 마르그레트 레이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시공주니어,2002)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두 레이 님이 1930년대에 처음 그렸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번지던 전쟁 불길에서 벗어나려고 자전거에 챙긴 그림꾸러미였고, 두 레이 님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림책을 그리며 사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지낸 그림꾸러미였다고 합니다. 예순 해 가까이 짐꾸러미 사이에서 묵다가 뒤늦게 빛을 본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그림책이니, 이 그림책에 나오는 배(군함과 고기잡이배)는 퍽 예스러워 보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펭귄이 남극에서 다닌다는 ‘라보는 방송국’은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아무튼, 그림책에 나오는 펭귄은 남극에서 라디오 방송을 이끈다고 하며, 어느 날 문득 방송국에서 사람들한테 들려줄 만한 ‘이야깃거리’가 바닥이 났다고 여겨서 새로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자고 생각합니다.


  쪽배를 타고 홀로 길을 나섭니다. 쪽배를 타고 한참 바다를 가로지르다가 졸려서 잠이 듭니다. 그만 얼음덩이에 부딪혀서 쪽배가 부서지고, 전쟁터로 가는 군함에 살짝 올라탑니다. 군함에서 대포에 숨었는데, 대포를 쏘니 펭귄은 포알과 함께 멀리멀리 날아 아프리카에 떨어집니다. 아프리카에 떨어진 펭귄은 새로운 짐승을 만나고, 사막을 끙끙거리면서 가로지릅니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에 함께 타며, 비행기를 타고 남극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에 빠집니다. 고기잡이배에 잡히고, 깊은 밤에 고기잡이배에서 그물 하나를 훔쳐서 몰래 빠져나옵니다.


  이름이 ‘화이트블랙’이라는 펭귄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숱하게 넘깁니다. 여느 펭귄으로서는 겪기 힘들 만한 일을 수없이 겪습니다. 펭귄 화이트블랙은 온갖 고비를 만날 적마다 생각합니다. ‘이 멋진 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재미있다’고.




.. 밤이 되어 모두 잠들자 화이트블랙은 갑판으로 올라갔어요. 그러고는 말리려고 널어 놓은 큰 그물 하나를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화이트블랙의 생각이 맞았어요! 그물을 끌고 펭귄나라로 헤엄쳐 가는 동안, 물고기들이 그물에 걸렸어요 ..  (22쪽)



  남극으로 돌아간 펭귄은 오랫동안 재미난 이야기를 이웃하고 동무한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펭귄은 겪기 힘들거나 겪을 수 없던 일이었을 테니 몹시 재미나다고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꼭 세계 여행을 해야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기지 않습니다. 세계 여행은 ‘아슬아슬한 고비’가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세계’란 내 보금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닙니다.


  펭귄 화이트블랙은 여행길에 나서면서 이야깃거리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길에 나서지 않더라도 사랑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이때에도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남극에 나무를 심어 본다면(그림책이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나무심기도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남극에 사는 짐승들마다 먼 옛날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귀여겨들어서 방송국에서 들려줄 수 있습니다. 지구와 우주가 태어난 수수께끼를 깊이 헤아리고 살피면서 이런 생각을 푸는 실마리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꾸는 기쁨 꿈을 멋지게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구름 이야기를, 하늘 이야기를, 눈 이야기를, 그러니까 펭귄 화이트블랙 둘레에 늘 있는 가장 수수한 이야기를 스스로 가장 아름답게 여미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삶을 언제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새로운 숨결을 마십니다. 곁에 있는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없으면, 어느 곳으로 가든 새로운 눈길을 열기 어렵습니다.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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