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의 아이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
김재홍 지음 / 길벗어린이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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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7



아이는 몇 살부터 혼자 집을 볼 수 있을까

― 동강의 아이들

 김재홍 글·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0.6.30. 9500원



  아이들은 몇 살쯤 되면 혼자서 집을 볼 수 있을까요? 일곱 살 어린이가 혼자서 집을 볼 만할까요?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면 의젓하게 집을 볼 만할까요? 언니하고 동생이 있으면, 여러 아이는 몇 살쯤부터 어버이 없는 집을 씩씩하게 볼 만할까요?


  아이마다 다 다르리라 느낍니다만, 일고여덟 살 아이가 혼자서 집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하고 함께 놀지 못하고 집에서 다른 일만 하더라도, 한집에 함께 있을 적에는 든든하다고 여깁니다. 곁에 있는 믿음직한 기운을 느끼기에,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놀 수 있습니다.


  아이가 혼자 집을 볼 수 있는 나이란, 제 어버이가 먼 마실을 다녀오더라도 마음으로 늘 함께 있는 줄 알아차리는 때이지 싶어요. 함께 있는 숨결을 더욱 깊고 넓게 느낄 무렵, 아이들은 혼자서 집을 볼 뿐 아니라, 혼자서 도마질도 하고, 비질도 하고, 걸레질도 하고, 작은 옷가지는 혼자 빨래할 수 있습니다.




장날, 어머니는 깨도 팔고 콩도 팔러 장터에 갔어요. 돌아올 땐 순이 색연필하고 동이 운동화도 사 온댔어요. (2쪽)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길벗어린이,2000)을 읽습니다. ‘숨은그림찾기’라는 얼거리가 살며시 깃든 그림책입니다. 강원도 영월 동강이라는 곳을 삶터로 삼은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가 하는 대목을 살짝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다만, 이 그림책은 아이 눈높이가 아니라 어른 눈높이로 그렸습니다. 시골아이가 무엇을 하고 노느냐 하는 대목으로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니라, 아련한 옛 시골살이를 떠올리는 오늘날 어른이 ‘아름다운 시골 삶자락’을 요즈음 도시사람한테 알려주려고 빚은 그림책입니다. 아름다운 시골을 잘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빚은 그림책이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곱게 자라는 아이들을 따스히 돌보자는 마음으로 엮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무척 어리다’ 싶은 나이입니다. 혼자 집을 보기에는 아직 어리다 싶은 나이예요. 이만 한 나이인 아이라면, 집에 아버지가 안 계시고 어머니 혼자 계실 적에, 어디를 가든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일 테지요. 아침 일찍 저잣거리로 가야 하면, 참말 아침 일찍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입니다. 시골아이는 무척 일찍 일어나요. 동이 틀 무렵 아이들도 일어납니다.




“아기 곰아, 그럼 우리 엄마가 내 색연필도 사셨니?” 순이가 아기곰에게 물었어요. “아기 곰이 그러는데, 엄마가 우리 순이 색연필도 사셨대.” 이번에도 동이가 아기곰 대신 대답해 주었어요. (8쪽)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은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에 커다랗게 박힌 바위를 보면서 큰새를 떠올리고, 아기 곰을 떠올리며, 공룡을 떠올립니다. 큰새야 집 둘레와 마을에서 흔히 볼 텐데, 아기 곰이라면 텔레비전에서 보았을까요? 아니면, 그림책에서 보았을까요? 공룡은 어디에서 보았을까요? 시골아이는 공룡이라는 것을 어디에서 보고 알았을까요?


  아무래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공룡을 보여주거나 말하기에 ‘공룡’이라고 하면 무섭거나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여기지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도깨비’가 이 몫을 맡았을 테고, ‘귀신’이 이 몫을 물려받았다가, ‘공룡’하고 ‘괴물’이 이러한 몫을 새삼스레 한다고 느낍니다. 막상 코앞에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뭔가 무서운 것이 있다고 여기지요.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냇가에서 큰새하고 아기 곰을 봅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눈앞에 떠올리면서 놀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공룡이라는 이름을 빌어 술래잡기나 숨기놀이를 하는 셈입니다. ‘경찰 도둑 놀이’가 있어서, 한 사람은 쫓기고 한 사람은 좇으며 놀기도 합니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는 ‘경찰 도둑 놀이’가 아니라, ‘잡기놀이’일 뿐이지만, 이름을 이렇게 붙일 뿐입니다.



“봐라, 아무것도 없잖니?”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어요. “아니, 근데 누가 여기다 빈 병을 버렸누? 쯧쯧.” 할아버지는 빈 병을 배에 싣고 노 저어 가 버렸어요. (25쪽)




  혼자 저잣거리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냇가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바위를 타거나, 먼바라기를 합니다. 문득 우리 집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라면 냇가에서 무엇을 하며 놀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틀림없이 옷을 다 적시면서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헤엄도 치며 깔깔거리리라 생각해요. ‘혼자 집을 보면서 어머니를 기다릴 만한 나이인 아이’라고 한다면, 옴팡 젖은 옷은 벗어서 바위에 척 걸쳐서 말리겠지요. 깊은 멧골에 두 아이만 있다면, 젖은 옷을 벗어서 알몸이 된 채 다시 깔깔거리면서 놀 테고, 이렇게 놀다가 으슬으슬 추우면 바위에 얹어 햇볕에 다 마른 옷을 얼른 꿰겠지요.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밭자락을 살피거나 들이나 숲에서 푸성귀나 열매를 훑어서 먹을 테고요.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은 ‘동강’이라고 하는 무척 아름다운 시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이 아름다운 시골을 도시에 있는 이웃이 함께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내놓았구나 싶습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터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심심하겠구나 싶습니다. 어머니를 마냥 기다리다가 졸린 동생을 업어 주는 오빠가 듬직하면서 대견하고 사랑스럽습니다만, 두 아이가 시골에서 신나게 노는 삶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하거든요.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모든 걱정이나 근심을 잊거나 털어내는데, 아이가 아이다운 모습을 미처 담지 못했고, 더욱이 시골아이가 시골스럽게 씩씩하면서 의젓한 모습도 찬찬히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림책 이름이 “동강 아이들”이라면 ‘동강에서 나고 자라며 노는 아이’한테 눈길을 맞출 노릇입니다. 그러나, 그림책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데에 눈길을 맞추려 했다면, 처음부터 “동강 숨은그림찾기”를 더 드러내도록 엮을 때에 뜻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이라고 해서 꼭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안노 미쓰마사라고 하는 그림책 작가는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는’ 그림책 《숲 이야기》를 그리면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재미를 한껏 보여줄 뿐 아니라, 숲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가 하는 대목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동강의 아이들》을 빚은 김재홍 님도 ‘숨은그림찾기’라는 대목에 더 눈길을 모아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엮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이라고 해서 꼭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아이하고 어른이 함께 삶을 기쁘게 바라보도록 돕는 이야기가 흐르’면 됩니다. 《동강의 아이들》은 동강을 담아낸 그림만으로도 넉넉히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을 한결 싱그러이 살리도록 ‘수수께끼 찾는 그림’을 더 그리면 훨씬 재미있었을 텐데 싶어 좀 아쉽습니다. 4348.7.1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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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감자 풀빛 그림 아이 6
파멜라 엘렌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풀빛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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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6



할머니와 아이는 함께 놀면서 사랑하지

― 할머니의 감자

 파멜라 엘렌 글·그림

 엄혜숙 옮김

 풀빛 펴냄, 2004.6.25.



  아기로 태어난 사람은 무럭무럭 자라서 아이가 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베푸는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씩씩하게 큽니다. 이동안 어버이 말고도 할머니랑 할아버지 손길을 함께 받습니다. 아이는 어버이만 돌보거나 아끼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시나브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면서 ‘새로운 아이’를 돌보거나 아끼는 ‘새로운 삶’을 누립니다.


  아이였을 적에 어버이가 물려준 사랑을 헤아리면서 ‘어른으로 자랍’니다. 어른으로 자란 아이는 제 아이를 낳으면서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받는데, 이때에 ‘그동안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제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사랑을 받고 주고 잇는 삶’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러한 삶을 하루하루 이으면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면, ‘어른이 되어 새 아이를 낳은 제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이나 ‘어른이 된 제 아이가 낳은 새 아이’를 마주하는 손길도 새롭게 거듭납니다.



잭은 할머니랑 술래잡기를 했어요. 하하 호호 바닥을 뒹굴며 놀기도 했어요. 이야기책도 읽었어요. 케이크도 먹었어요. (4∼5쪽)



  파멜라 엘렌 님이 빚은 그림책 《할머니의 감자》(풀빛,2004)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금요일에만 손자를 만납니다. 금요일에 아이 어머니가 바깥일을 해야 해서 아이를 할머니 댁에 맡긴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한 주에 한 차례 만나는 손자가 더없이 반갑습니다. 함께 씨름도 하고 술래잡기도 한다고 해요. 할머니는 시골에 살기에 감자 두 알을 꺼내어 칼로 예쁘게 깎아서 인형으로 삼기도 한답니다.




할머니는 감자로 만든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을 창틀에 살며시 올려놓았어요. “저것 봐라.” 할머니가 말했어요. “저것 봐요.” 잭이 말했어요. “둘이 만나서 좋은가 보다.” 할머니가 말했어요. “우리도 둘이 만나서 좋잖아요.” 잭이 말했어요. (9쪽)



  손자와 즐겁게 놀던 할머니인데, 어느 날부터 손자가 찾아오지 못합니다. 손자뿐 아니라 이녁 아이(아이 어머니)도 찾아오지 못했겠지요. 어른이 된 아이는 할머니하고 함께 놀지 않는데, ‘어른이 된 아이가 낳은’ 아이도 찾아오지 않고 함께 놀지도 않으니, 할머니는 몹시 서운할 뿐 아니라 쓸쓸합니다. 손자하고 함께 깎아서 갖고 놀던 ‘감자 인형’에는 이제 싹이 돋습니다. 감자 인형은 더는 감자 인형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싹이 돋은 ‘씨감자’가 됩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할까요? 할머니는 씩씩합니다. 찾아오지 못하는 손자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싹이 난 씨감자를 거름더미에 묻습니다. ‘묵은 생각’을 흙에 묻으면서 땀을 흘립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려는 몸짓이 됩니다.


  이윽고 손자가 다시 찾아옵니다. 묵은 생각을 털고 홀가분하던 할머니는 예전하고 다르게 기쁜 마음이 됩니다.



“할머니, 우리 감자 인형들은 어디 있어요?” 잭이 물었어요. “내가 퇴비 더미에 묻었단다. 그랬더니 엄청 자랐지 뭐냐.” “참말요?” 잭이 말했어요. (20쪽)



  손자는 ‘싹이 튼 감자’에 꽃이 피고 지고 알이 굵게 맺을 때까지 할머니한테 못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 이곳에 손자가 있습니다. 여러 달 동안 못 본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얼굴을 마주하니 반가우면서 기쁩니다.


  할머니와 손자는 이제 무엇을 할까요? 쇠스랑을 챙깁니다. 비를 맞으면서 감자를 캡니다. 한 알 두 알 석 알 넉 알 …… 감자를 다 캘 때까지 두 사람은 비를 쫄딱 맞는데, 하하하 웃고 노래하면서 밭일을 합니다. 할머니도 손자도 온통 젖고 흙투성이가 되면서 기쁘게 일손을 놀립니다.




할머니는 큰 쇠스랑으로, 잭은 작은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또 팠어요. 자꾸자꾸 팠어요. 할머니가 먼저 감자 한 알을 캤어요. 그 다음에 잭이 감자 두 알을 캤어요. (24쪽)



  할머니 사랑을 받고 기쁘게 뛰놀던 아이는 할머니를 곱게 아끼는 마음을 키웁니다. ‘우리 할머니’뿐 아니라 이웃 할머니를 곱게 아끼지요. 할아버지 사랑을 받고 신나게 뛰놀던 아이는 할아버지를 맑게 아끼는 마음을 키우겠지요.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뿐 아니라 이웃 할아버지도 맑게 아낄 테고요.


  사랑은 사랑을 낳고, 꿈은 꿈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거듭나고, 꿈은 꿈으로 다시 자랍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사랑으로 깨어납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가슴에 품은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새로운 어른이 되고, 바야흐로 넓고 깊은 꿈을 펼치면서 사랑을 새롭게 이 땅에 펼칩니다.


  아이가 노래하고 할머니가 노래합니다. 할머니가 웃고 아이가 웃습니다. 아이가 춤추고 할머니가 춤춥니다. 할머니가 밥을 짓고 아이가 밥을 먹습니다. 삶을 이루는 바탕은 언제나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삶을 짓는 밑거름은 한결같이 사랑이라고 느껴요. 그림책 《할머니의 감자》에 나오는 할머니와 손자는 둘이 함께 캔 감자알로 ‘새 감자 인형’을 깎습니다. 앞으로 이 감자 인형에 또 싹이 트면, 그때에는 둘이 함께 ‘싹이 튼 씨감자’를 거름더미에 묻겠지요. 함께 일하고 함께 놀며,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는 삶으로 나아가겠지요. 4348.7.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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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우지
잔 오머로드 그림, 로비 H. 해리스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파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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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5



‘죽은 이웃’을 마음으로 사랑하다

― 굿바이 마우지

 로비 H. 해리스 글

 잔 오머로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언어세상 펴냄, 2002.3.18. 8000원



  기운이 다 빠져서 죽은 잠자리를 봅니다. 몸에서 넋이 빠진 잠자리는 새털마냥 가벼우면서, 잘못 만지면 가루처럼 바스라질 듯합니다. 뻣뻣하게 굳은 잠자리를 가만히 살펴보는데, 어느새 작은아이가 옆으로 다가와서 “어, 여기 잠자리 있네?” 하더니 “잠자리 안 움직여. 죽었나 봐?”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거리낌없이 잠자리를 집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잠자리를 제 눈앞에 대고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우지 배를 살살 간질였어요. 하지만 마우지는 깨질 않았어요. (3쪽)



  잠자리는 몸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나비나 애벌레도 목숨을 잃으면 넋이 몸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새로운 곳이 어디일는지는 몸을 떠나야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갔다가 이 지구별이 그리워서 다시 찾아올 수 있을 테지요.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사람이든 벌레이든 풀이든 새이든, 이 땅에서 즐겁게 살다가 몸을 떠난 뒤 이내 새로운 몸을 찾아서 다시 이 땅에서 삶을 짓는다고 할 테고요.


  로비 H. 해리스 님이 글을 쓰고, 잔 오머로드 님이 그림을 그린 《굿바이 마우지》(언어세상,2002)를 읽습니다. 시골집에서 으레 ‘죽은 이웃’을 보는 아이들은 《굿바이 마우지》에 나오는 ‘죽어서 몸이 뻣뻣하게 굳은 쥐’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우리 집에서만 해도 헛간에 깃들어 함께 지내는 마을고양이가 으레 쥐를 잡아서 먹습니다. 언젠가 쥐를 잡아서 죽이고는 마당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기도 하고, 머리통만 남기고 먹은 뒤 마당 한쪽에 놓기도 합니다.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아서 먹기도 하는 개구리는, 돌울타리에 앉아서 참새나 딱새를 잡고 싶어서 한참 동안 전깃줄이나 나뭇가지를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아빠도 슬프단다.” 아빠는 나를 꼬옥 안아 주었어요. “아빠, 나 …… 마우지를 다시 만져 볼래요.” “그래.” (9쪽)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서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죽은 이웃’을 많이 봅니다. 자동차에 밟혀서 죽은 개구리와 뱀은 참으로 흔합니다. 자동차에 치여서 죽는 참새나 까치나 제비도 있고, 사마귀나 메뚜기나 지렁이도 자동차에 깔려서 죽기 일쑤입니다. 이제 막 깨어나서 날갯짓을 익히면서 아스팔트에서 몸을 쉬는 나비가 그만 밟혀 죽기도 해요.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찻길을 가로지르는 개미조차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다닐 적에도 찻길을 기어가는 온갖 벌레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싱싱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마주 달리는 자동차’를 살피느라 길바닥에 어떤 ‘이웃’이 있는지 살필 겨를을 내기 어려우리라 느껴요.


  요즈음은 농약을 먹고 죽는 개구리가 있고, 농약 맞은 벌레를 먹다가 죽는 새가 있습니다. 논이나 밭이 농약바람으로 휩싸이면, 며칠 동안 벌이나 나비나 잠자리를 한 마리도 못 보기도 해요. 모두 농약바람을 맞아서 죽어요.



“마우지가 없으면, 이제 나 혼자 어떻게 해요?” “마우지를 마당에 묻어 주자. 그러면 늘 함께 있을 수 있어!” (12쪽)



  ‘죽은 이웃’을 만나는 아이들이 묻습니다. “얘네들 어떻게 돼?”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몰라.” “생각해 봐. 이 아이들은 몸만 여기에 내려놓고 새로운 곳으로 갔어. 앞으로 새로운 몸을 입고 아름답게 다시 태어날 테니, 다음에 만나자고 인사해 주면 돼.”


  밥상맡에서 늘 아이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먹는 밥이 고기이든 풀이든 모두 ‘목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기밥은 고기가 되어 준 목숨인 셈이고, 풀밥은 풀로 돋은 목숨인 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돼지나 닭이나 소만 ‘목숨’이지 않아요. 풀이랑 꽃이랑 나무도 목숨이에요. 사람도 다른 짐승도, 모두 ‘다른 목숨’을 밥으로 받아들여야 제 목숨을 건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누리 수많은 목숨을 받아들여서 내 몸을 새롭게 가꿉니다.



“상자에 다른 것도 넣어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나는 마우지 상자에 토스트 한 조각이랑 당근 두 뿌리를 넣었어요. 또 포도 넉 알이랑 초코바도 넣었어요. (17쪽)



  내 목숨이 아름답고, 네 목숨이 아름답습니다. 네 목숨이 사랑스럽고, 내 목숨이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이요 삶입니다. 그림책 《굿바이 마우지》는 ‘귀염둥이 짐승’으로 함께 살던 작은 쥐 한 마리가 목숨을 내려놓은 뒤,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죽음’을 어떻게 알려주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죽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죽음’하고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찬찬히 헤아리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굿바이 마우지》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늘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도 늘 마음으로 함께 있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더라도 언제나 마음으로 함께 있어요. 마음을 살피면서 삶을 북돋웁니다. 마음을 아끼면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마음을 사랑하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쁜 하루를 맞이합니다. 4348.7.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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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5-07-07 19:12   좋아요 0 | URL
뻣뻣한 사체를 `죽은 이웃`이라 부를 때 이미 거기엔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것이겠지요~~^^ 아무리 작은 생물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 무게를 내려놓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네들을 `죽은 이웃`이라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저 자신이 죽음 앞에 강건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게 마음으로 사랑하는 힘이 아닐런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5-07-07 23:09   좋아요 0 | URL
우리는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동무라고 느껴요.
예전에는 어렴풋하게 느꼈고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지내는 요즈음은
날마다 늘 뼛속하고 살갗으로 깊이 느껴요.

고운 이웃님으로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신 풀꽃놀이 님 말씀 고맙습니다~
 
편지를 주세요
야마시타 하루오 지음, 해뜨네 옮김, 무라카미 쓰토무 그림 / 푸른길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3



마음으로 사귀고 싶어서 쓰는 편지

― 편지를 주세요

 야마시타 하루오 글

 무라카미 츠토무 그림

 해뜨네 옮김

 푸른길 펴냄, 2009.4.13.



  아이들하고 편지를 씁니다. 나는 나대로 편지를 쓰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편지를 씁니다. 우리가 편지를 쓰는 까닭은 우리 마음을 보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썼으니 꼭 답장이 오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답장이 오면 기쁘지요. 그러나, 답장이 아니어도 우리 편지가 훨훨 날아서 이웃님이나 동무님한테 닿으면, 서로 마음이 하나로 이어진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답장은 ‘종이로 적은 글월’만이 아니라 ‘우리가 띄운 글월에 깃든 마음’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우리 집 큰아이는 지난해부터 이곳저곳에 편지를 부치는데 아직 답장을 못 받습니다. ‘마음 답장’은 수없이 받지만 ‘종이에 적힌 답장’을 못 받습니다. 두 분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이모도 이모부도, 외삼촌도, 여러 이웃님도 좀처럼 우리 집 ‘편지순이’가 띄운 편지에 ‘종이에 적힌 답장’을 보내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편지순이는 틈틈이 씩씩하게 새로운 편지를 종이에 그려서 우체국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우리 집 무화과나무에는 빨간 우편함이 걸려 있습니다. 아빠와 내가 만든, 멋진 우편함입니다. (3쪽)




  그림책 《편지를 주세요》(푸른길,2009)를 읽습니다. 어느 무화과나무집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무화과나무가 크게 우거진 집에서 사는 아이는 아버지랑 함께 뚝딱뚝딱 만든 빨간 우편함을 날마다 들여다본다고 해요. 편지가 오든 안 오든 설레는 가슴으로 열어 볼 테지요.


  편지가 온 날은 얼마나 기쁠까요? 편지가 안 온 날은 몹시 서운할 테지요. 그래도 아이는 씩씩합니다. 언제나 새롭게 편지를 쓰니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어느 날 우편함에서 낯선 동무를 만나요.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편함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초록 개구리 한 마리가 숨어들었지 뭐예요. (5쪽)




  그림책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집 아이’가 만난 낯선 동무는 개구리입니다. 무화과잎처럼 맑게 푸른 몸빛인 개구리입니다.


  개구리는 ‘우편함’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았다고 합니다. 아이는 아버지하고 만든 우편함에 개구리가 깃들었으나 성을 내거나 골을 내지 않습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곳은 우편함’이라는 곳이라고 알려줍니다. 우편함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듣고 배운 개구리는 그러려니 하다가 아이한테 문득 묻습니다. 개구리도 편지라고 하는 것을 받고 싶답니다.


  그림책 이야기입니다만, 아이는 개구리하고 말을 섞습니다. 개구리도 아이하고 말을 나누어요. 둘은 서로 마음으로 사귀는 동무가 되었으니까요. 아이는 개구리가 들려주는 말을 알아차리고, 개구리도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알아들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나도 편지를 받을 수 있지?” 개구리는 팔짱을 끼고 물었습니다. “네가 먼저 편지를 쓰면 되지. ‘편지를 보내 주세요’ 하고 말이야.” (11쪽)



  어느 날 아이는 개구리가 우편함에서 사라진 모습을 봅니다. 더는 개구리를 못 만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편함에서 사라진 개구리는 무화과잎을 수북하게 남겼다고 해요. 개구리가 남긴 무화과잎은 무엇일까요? 편지를 받고 싶어서 우편함에 남긴 ‘개구리 편지’입니다.



그 다음 날, 우편함은 텅 비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으로 우편함을 청소하던 나는 그 안에 잔뜩 쌓인 무화과 잎사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잎사귀 한 잎 한 잎마다 ‘편지를 보내 주세요’라고 정중하게 쓰였지 뭐예요! (20∼21쪽)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나뭇잎 편지’를 곧잘 썼습니다. 가을날 노란 은행잎을 주워서 펜이나 붓으로 살살 글씨를 그려서 편지를 썼어요. 전남 고흥 시골에서는 봄에 후박나무가 노랗게 물들면서 떨어집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으레 봄에 가랑잎을 떨구어요. 한껏 무르익은 봄날에 노랗게 물든 잎사귀를 주워서 편지로 삼아서 이웃님한테 띄웁니다. 가을도 아닌 봄에 ‘노란 잎사귀’를 받는 이웃님은 깜짝 놀랍니다. 시골에서 띄울 수 있는 조그마한 선물인 ‘후박잎 편지’라고 할까요.


  편지를 쓰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무래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사이’로 지내고 싶은 뜻이리라 느낍니다. 바람결을 따라서 훨훨 날아가는 마음에 고운 이야기를 싣고 싶은 뜻이리라 느껴요.


  즐거운 노래를 편지에 씁니다. 기쁜 웃음을 편지에 담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편지에 적습니다. 사랑스러운 하루를 편지에 차곡차곡 눌러담습니다. 4348.6.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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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티와 거친 파도 비룡소의 그림동화 125
바버러 쿠니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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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3



삶을 그릴 줄 알기에 누구나 ‘화가’

― 해티와 거친 파도

 바바라 쿠니 글·그림

 이상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4.7.9.



  날마다 그림을 그리면서 놉니다. 나한테는 ‘화가’라는 이름은 없으나 ‘어버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솜씨 좋은 그림을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멋들어진 그림을 아이한테 내밀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둘러앉아서 그림놀이를 합니다.


  두꺼운 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로 알맞게 오리면 ‘조각맞추기’를 할 수 있습니다. 가게에서 상품을 사서 조각맞추기 놀이를 할 수 있고, 집에서 손수 그림을 그려서 조각맞추기 놀이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어버이가 날마다 보여주는 모든 몸짓과 모습은 아이한테 그림이라고 할 만합니다. 밥차림도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그림과 같은 모습이요, 어버이가 날마다 읊는 말마디까지 모조리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해티가 야무지게 대답했어요. “난 화가가 될 거예요.” 피피와 볼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음을 터뜨렸어요. “어휴, 저 바보! 너, 진짜 멍청하구나! 여자는 페인트칠 같은 건 안 해!” 해티도 페인트칠장이를 말하지 않았어요. 하늘에 뜬 달, 숲 속에 부는 바람, 바다에 이는 거친 물결을 그리는 화가를 말했답니다. (6쪽)



  바바라 쿠니(1917∼2000) 님이 빚은 그림책 《해티와 거친 파도》(비룡소,200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그림책을 그리는 바바라 쿠니 님이 이녁 삶을 담아서 《해티와 거친 파도》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에는 ‘그림책 그리는 할머니’인 바바라 쿠니 님이 걸어온 길하고, 이녁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화가’라고 하는 직업을 사람들이 떠올리지 못하던 무렵, 또 여자는 ‘화가’로 지내기 어렵던 무렵, 바바라 쿠니 님하고 이녁 어머니는 화가로 한길을 걸었다고 해요.



때때로 바다는 퍼런빛을 띠면서 사납게 바뀌었고, 하늘은 검은빛이 되기도 했어요. 해티는 강아지를 품에 안으며 물었지요. “에비야, 지금 저 거친 물결이 뭐라고 말할까?” 물결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해티와 에비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금세 알 수 있었거든요. (23쪽)




  그러고 보니, 바바라 쿠니 님이 빚은 그림책으로 《미스 럼피우스》, 《강물이 흘러가도록》, 《달구지를 끌고》, 《바구니 달》,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 《챈티클리어와 여우》, 《꼬마 곡예사》, 《엘리너 루스벨트》, 《에밀리》 같은 작품이 있는데, 하나같이 시골살이를 노래하거나 ‘남자 사회에서 곱게 홀로서기를 하는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권력이나 명예가 아닌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그림책 《해티와 거친 파도》에서 해티라는 아이가 품은 꿈처럼, ‘하늘에 뜬 달’이랑 ‘숲 속에 부는 바람’이랑 ‘바다에 이는 거친 물결’을 그림으로 빚어서 어린이하고 한결같은 놀이동무로 지내는 화가로 살았다고 할까요.


  예술을 해야 화가이지 않습니다. 전시회를 열거나 예술사에 이름을 올려야 화가이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노래와 같은 붓질로 종이에 얹어서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화가입니다. 그림 한 점을 비싸게 내다 팔 수 있어야 화가이지 않습니다. 그림 한 점에 사랑을 오롯이 담아서 이웃하고 즐거이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을 펼칠 수 있으면 화가입니다.



어느 화요일 저녁이었어요. 음악이 오페라 하우스 가득히 물결치고 저 아래 무대에서 한 여인이 뜨겁게 노래를 불렀어요. 칸막이 좌석에 앉은 해티는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지요. 해티는 비로소 깨달았어요. 나도 온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때가 왔다고 말이지요. (35쪽)




  바바라 쿠니 님은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도록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짐대로 스스로 길을 닦습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거친 물살을 헤쳐야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거친 물살은 거친 물살대로 맞이하면서 헤치면 됩니다. 때로는 거친 물살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거친 물살을 맞다가 지칠 수 있습니다.


  씩씩하게 걷는 한길이 고단하거나 지치면 좀 쉴 수 있습니다. 쉬었다가 다시 기운을 내면 됩니다. 남이 시키는 길을 갈 까닭이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면서 한길을 걷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뜻을 헤아리고 새로 헤아리면서 삶을 가다듬습니다.


  삶을 그릴 줄 알기에 누구나 ‘화가’입니다. 삶을 그릴 줄 모르기에 누구나 ‘화가’가 안 됩니다. 사랑을 그릴 줄 알면 어린이도 어른도 다 함께 ‘화가’입니다. 사랑을 그릴 줄 모르면 아무리 그림값을 비싸게 받더라도 ‘화가’로 살지 못합니다.



해티는 엄마 아빠한테 말했어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어요. “무슨 얘기니?” 해티는 잠자코 냅킨을 접었어요. 그리고 냅킨꽂이에 그걸 도로 꽂았지요. 해티 눈이 반짝거렸어요. “화가가 되려고 해요.” 해티 말에 엄마가 웃음 지으며 말했어요. “외할아버지처럼 되고 싶구나.” 해티가 대답했지요. “네, 그렇지만 저는 제 그림을 그릴 생각이에요.” (39쪽)




  어린 해티는 가슴에 품은 꿈을 놓지 않습니다.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 대학교에 가기로 하고,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화가’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로 새깁니다. 붓이랑 놀면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달이랑 해랑 별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고, 숲과 들에서 뛰놀던 나날을 되새기면서 꿈을 가꾸며, 너른 바다가 들려주는 바람노래를 떠올리면서 꿈을 짓습니다.


  온 하루가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그림으로 옮깁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롭습니다. 이 새로움을 새삼스레 그림으로 엮습니다. 기쁨을 느끼지 못할 적에는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새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할 적에는 붓을 손에 쥐지 못합니다. 밥이 끓는 소리에도 기쁘게 웃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에도 새롭게 웃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바람을 마시기에 그림을 그리고 삶을 그립니다. 눈을 크게 뜨고 구름을 바라보기에 그림을 그리고 삶을 그립니다. 그림으로 그릴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곱게 흐릅니다. 내 곁을 돌아볼 수 있으면, 이러면서 손에 붓을 쥘 수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화가로 살 수 있습니다. 4348.6.2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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