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4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 달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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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5



언제나 네 곁에서 사랑을 물려주는 어머니란다

―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고 녀석 맛있겠다 4)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달리 펴냄, 2011.8.17. 11000원



  아이들이 곁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 곁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 아이들은 나를 아버지로 삼아서 이곳에 태어났고, 나는 어버이요 아버지로서 아이들한테 삶을 보여주면서 사랑을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따사로운 사랑으로 삶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그리고 따끔한 몸짓으로 다그치면서 말을 잘 듣도록 길들일 만합니다. 첫째 길은 사랑이고 둘째 길은 ‘훈육’입니다.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는 까닭은 아이가 앞으로 사랑으로 삶을 새롭게 지으면서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훈육으로 다스리면서 길들이는 까닭은 아이가 앞으로 사회살이를 똑똑히 잘 해내어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폭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아이, 가여워라. 여기 있으면 누가 먹어 버릴지도 모른단다.” 엄마 마이아사우라는 작은 알 하나를 주워 집으로 돌아갔어요. (1쪽)




  그림책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달리,2011)를 읽습니다. ‘고 녀석 맛있겠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그림책꾸러미 가운데 넷째 권입니다. 이 그림책꾸러미는 만화영화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넷째 권인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는 육식공룡이 어떻게 초식공룡한테서 태어나서 자랐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줄거리를 살짝 살피면 이렇습니다. 큰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날 초식공룡인 착한 어미 공룡이 ‘어머니 잃은 알’을 보아요. 마음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떠도는 알’을 지나치지 못합니다. 어떤 알인지 모르더라도 이 ‘길 잃은 알’을 품어서 키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초식공룡은 깜짝 놀랄밖에 없습니다. 착한 어미 초식공룡이 주운 알은 무섭거나 사나운 육식공룡 알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이 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공룡을 보면서도 이 새끼 공룡을 숲에 버려둘 수 없습니다.



끝내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처음 주웠던 숲에 돌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가야, 미안하다. 미안해 …….”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뒤돌아 걸었습니다. 바로 그때, “코오 …….” 엄마는 작은 숨소리를 듣고 다시 성큼성큼 아기에게 돌아가더니, (6∼8쪽)



  마음속에 착한 숨결이 흐르지 않고서야 육식공룡 알을 품어서 키울 수 없습니다. 나중에 저를 잡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그런 생각은 안 합니다. 처음부터 생각이 달라요.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어머니도 길도 보금자리도 모두 잃은 알’한테 ‘어머니가 되어 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예요. 오직 한마음이지요. 어떤 공룡이 이 알에서 깨어나든 언제나 한결같이 흐르는 사랑으로 어머니가 되어 주겠다고만 생각합니다.





엄마가 꼭 안아 주자 하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 …… 티라노사우루스예요? 난 엄마 아이가 아닌 거예요? 아니죠?” 엄마가 하트를 힘껏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넌 누가 뭐래도 엄마한테 소중한 아들 하트야.” (32∼33쪽)



  육식공룡은 초식공룡은 어머니를 두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무 걱정이 없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오직 한 가지, 그러니까 오직 사랑만 물려받은 새끼 육식공룡은 몸집이 큼직하게 자란 뒤에도 바로 이 기운을 가슴 깊이 품습니다. 다른 육식공룡을 만나서 ‘이제껏 살아온 내 모습은 무엇인가?’ 하고 가슴 아프게 뒤돌아보더라도, 어미 초식공룡이 들려주고 물려주고 보여주면서 언제나 함께하던 ‘사랑’을 되새깁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할밖에 없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내 아이도 사랑하고 네 아이도 사랑합니다. 우리 아이도 사랑하고 너희 아이도 사랑하지요. 모든 아이는 나한테 아이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이 땅에서 자라는 모든 아이를 이녁 아이로 삼습니다. 따스하게 품습니다. 사랑으로 어루만집니다. 넉넉하게 품습니다. 사랑 어린 말로 다독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어머니가 오롯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까닭은 아직 아버지는 오롯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아무래도 어쩌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면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람은 아기를 오롯이 어루만지면서 품지 못하기 일쑤예요. 아기를 낳아 아버지가 된 사람은 으레 ‘밖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지’ 하고 생각할 뿐, ‘집에서 아이를 더 사랑해야지’ 하고 생각하지 못하곤 합니다.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아이하고 사랑으로 삶을 짓겠노라 하고 생각할 줄 아는 아버지는 너무 적습니다.




“으윽, 왜 이러는 거냐. 난 너와 같은 티라노사우루스인데 …….” 티라노사우루스가 괴로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니야, 난 하트야. 하트일 뿐이라고.” 하트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36∼37쪽)



  어른으로 자란 육식공룡은 이제 제 모습을 깨닫습니다. 초식공룡이 아닌 육식공룡인 줄 알아차립니다.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 깨달은 아이는 더는 어머니하고 동생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알아차립니다. 이제 떠나야 합니다. 그동안 알뜰살뜰 보살펴 주면서 사랑을 물려준 어머니 곁을 떠나야 합니다.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홀로 삶을 짓고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따스한 어머니 품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담으면서, 이제부터 저 스스로 새로운 ‘따순 품’을 지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어른 육식공룡으로서 육식공룡으로 살되 ‘마음 가득 사랑이 흐르는’ 몸짓으로 새롭게 꿈을 키워야 합니다.


  어른이 된 육식공룡은 눈물을 흘려요. 눈물을 주루룩 흘려요. 얼마나 북받치는 눈물일까요. 가슴이 저미고 저릴 테지요. 가슴이 찢어지고 무너질 테지요. 그렇지만 이 아이는 씩씩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새롭게 일어서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육식공룡이야!”가 아닌 “나는 하트야!”와 같이 스스로 누구인가를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은 육식공룡’이되 ‘마음은 착한 사랑’입니다. ‘몸은 다른 공룡 살점을 뜯어먹는 육식공룡’이되 ‘마음은 모든 이웃을 사랑으로 마주하는 착한 숨결’입니다. 4348.9.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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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곰이야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2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글.그림, 서애경 옮김 / 현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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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4



풍선을 타고 도시 한복판에 떨어진 곰 한 마리

― 나 진짜 곰이야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글·그림

 서애경 옮김

 현북스 펴냄, 2011.3.18. 10500원



  아이들은 곰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는 아무리 깊은 두멧자락이라 하더라도 범이나 여우나 이리나 늑대나 곰은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멧돼지나 노루나 고라니가 더러 있지만, 너구리나 족제비나 오소리나 고슴도치를 곧잘 찾아볼 수 있지만, 이만 한 숲짐승조차 머잖아 자취를 감출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속도로와 골프장은 자꾸 늘어나기만 하고, 공장도 자꾸 늘어나기만 하며, 대형 발전소와 송전탑도 자꾸 늘어나기만 하거든요. 조용한 시골이나 숲은 자꾸자꾸 자취를 감춥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은 거의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문명과 물질이 발돋움한 오늘날이 아닌 옛날이라면 아이들은 곰을 어떻게 마주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숲에서 나무를 하고, 숲에서 나무를 얻으며, 언제나 숲에 둘러싸여 살던 옛날이라면, 아이들은 범이나 곰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곰을 무척 귀엽게 여기기도 하는데, 숲에서 곰이나 범을 코앞에서 맞닥뜨리는 지난날에도 아이들은 곰을 귀여운 숲짐승으로 여겼을까 궁금합니다.



곰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와아, 이상한 굴이다.’ 곰은 풍선 바구니를 보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낮잠 자긴 참 좋겠는걸.’ 곰은 바구니로 기어 들어갔어요. (5쪽)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님이 빚은 그림책 《나 진짜 곰이야》(현북스,2011)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미국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미국에서 깊은 숲에서 조용히 지내던 곰 한 마리가 어느 날 낮잠 잘 만한 곳을 찾다가 ‘풍선 바구니’를 보았어요. 처음 보는 낯선 것이지만, 곰은 풍선 바구니가 아늑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은 모두 치우고 풍선 바구니에 들어가서 꿈나라로 갑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타고 온 풍선 바구니는 곰을 태우고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희 풍선 바구니가 사라졌는데 깊은 숲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이제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 말고 곰을 걱정할 일입니다. 곰은 오랫동안 낮잠을 잤고, 풍선 바구니는 오랫동안 하늘을 가르다가 ‘뉴욕’이라는 하늘까지 닿았다고 해요. 그리고, 뉴욕 하늘에 풍선 바구니는 풍선이 터져서 땅으로 천천히 내려갔답니다.



풍선이 내려온 곳은 가장행렬이 펼쳐지는 어느 도시였습니다. 막 행진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구경꾼 하나가 외쳤어요. “와아! 재미있게 하네요. 풍선을 타고 사람이 내려왔어요. 저 사람 꾸민 것 좀 봐요! 참말 곰 같아요.” (8쪽)



  곰은 낯설디낯설 뿐 아니라 곰 아닌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떨어지니 몹시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곰을 곰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곰을 곰 아닌 ‘곰처럼 꾸민 사람’으로 여깁니다. 더더구나 가장행렬을 하며 잔치를 벌이는 데에 떨어졌거든요.


  곰은 얼결에 가장행렬에 휩쓸립니다. 방송국 사람이 곰을 낚아채어(?) 방송국으로 데려가서 인터뷰를 합니다. 곰은 이리저리 휩쓸리고 휘둘리면서 배가 고픕니다. 담뱃대가 먹을 것인 줄 알고 집었다가 깜짝 놀랍니다. 사람들은 ‘곰처럼 꾸민 사람’이 마치 ‘곰처럼 연기도 잘 하네!’ 하면서 웃고 재미있어 합니다.


  곰은 이리저리 내뺍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서 곰이 갈 곳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이때에 ‘마음 착한 도시 이웃’이 ‘곰’이 아닌 ‘곰처럼 꾸민 사람’을 도와주려고 나섭니다. 모두들 텔레비전에서 ‘곰이 아닌 곰처럼 꾸민 사람’을 보았기에 기쁘게 도와주려고 해요.



“빵!” 출발 신호가 울리자 선수들이 뜁니다. 총소리에 놀란 곰은 오토바이에서 펄쩍 뛰어내려 달립니다. 곰은 마치 치타처럼 뛰어나가 선수들을 앞질렀어요. 결승선도 넘었지요. 그러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15쪽)




  미국 뉴욕 사람들이 곰이 참말 곰인 줄 알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곰처럼 꾸민 사람이 아닌 참말 곰인 줄 알았어도 오토바이에 태우고 택시에 태우고 소방차에 태우면서 ‘도와주려’고 했을까요?


  이제 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곰이지만 ‘곰처럼 꾸민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듭니다. 모두들 ‘곰처럼 꾸민 사람’이 궁금합니다. 게다가 ‘곰처럼 연기를 잘 한다’고 여기기에, ‘곰 연기’를 보고 싶어서 우루루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립니다.


  이때에 ‘풍선 여행객’이 다시 나타납니다. 풍선 여행객은 저희 풍선 바구니를 곰이 타고 간 줄 모릅니다. 그저 ‘곰’이 아니라 ‘곰처럼 꾸민 사람’을 도와주어야겠다고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말했어요. “저기 봐! 아까 텔레비전에서 봤던 사람이야. 저 아래 몰린 사람들 때문에 무서운가 봐. 우리가 도와주어야겠어.” 풍선이 사다리 꼭대기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남자는 곰이 바구니에 올라타도록 도와주었어요. (24쪽)



  따스하고 착한 손길로 마음을 읽는 이웃이 반갑습니다. 미국 뉴욕 사람들은 비록 ‘곰처럼 꾸민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저마다 ‘곰’을 따스하게 마주했고, 착한 손길로 도우려 했습니다. 다만, 곰인 줄 몰랐을 뿐입니다.


  곰인 줄 알았으면 모두 놀라서 꽁무니를 뺐을 테지요. 그리고, 도시 사람들은 곰이 곰인 줄 몰랐기 때문에, 곰이 참말 무엇을 바라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사람 말’만 하거나 들을 줄 알 뿐, ‘곰 말’은 하거나 들을 줄 몰라요. 곰이 아무리 ‘곰 말’로 도와주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어도, 사람들은 ‘사람 말’로만 생각하려 했습니다.


  곰은 한 번도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얼결에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곰은 언제나 곰이었으나 사람들은 곰을 처음부터 곰이 아닌 사람(연기자)으로만 여겼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곰을 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도시 사회에서는 곰이나 범이나 온갖 숲짐승을 이웃처럼 곁에 두고 지내지 않으니까요. 여느 때에 본 적도 만난 적도 마주친 적도 없는 숲짐승이 도시 사람들한테 이웃이 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그림책 《나 진짜 곰이야》를 아이들하고 읽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어여쁜 빛깔이 눈부시게 흐르고, 재미난 이야기가 우스꽝스레 흐릅니다. 이 그림책은 멋진 빛깔잔치와 이야기잔치가 어우러지면서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넌지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주지 싶어요.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읽으면서 곰을 곰으로서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대목을 짚거든요. 곰을 곰으로서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곰을 곰으로 맞아들이면서 도우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이녁은 어떻게 했을까요?


  아무튼, 곰을 곰으로 마주하든 ‘곰처럼 꾸민 사람’으로 마주하든, 우리가 스스로 따스하고 착한 손길로 마주한다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 누구나 이웃을 바라보고, 이웃을 헤아리며, 이웃을 사랑하는 숨결로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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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다 오감 톡톡! 인성 그림책 1
후쿠다 이와오 그림, 다니카와 슌타로 글,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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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2



우리 ‘무엇 하며’ 놀면 재미있을까?

― 만들다

 다니카와 슌타로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펴냄, 2015.9.25. 12000원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뭔가를 ‘하’면서 놉니다. 소꿉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뒹굴기도 합니다.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어깨동무도 합니다. 아이들 삶은 온통 놀이인데, 놀이는 늘 ‘놀이하다’입니다. 아이를 지켜보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일을 할 테고, 일은 늘 ‘일하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놀이를 하며 삶을 짓기에 재미있고, 일을 하면서 살림을 지으니 즐겁습니다.



흙으로 무엇 만들지? 흙으로 뱀 만들지.

뱀으로 무엇 만들지? 뱀으로 항아리 만들지.

→ 흙으로 무엇 하지? 흙으로 뱀 빚지.

→ 뱀으로 무엇 하지? 뱀으로 항아리 빚지.


항아리로 무엇 만들지? 항아리로 술 만들지.

술은 무엇 만들지? 술은 친구 만들지.

→ 항아리로 무엇 하지? 항아리로 술 담그지.

→ 술은 무엇 하지? 술은 친구 사귀지.



  일본 그림책 《つくる(作る)》를 한국말로 옮긴 《만들다》(북뱅크,2015)를 읽습니다. 일본말 ‘つくる(作る)’를 ‘만들다’로 옮겼는데, 일본말 ‘츠쿠루(つくる)’하고 한국말 ‘만들다’는 쓰임새가 아주 다릅니다. 게다가 일본말 ‘츠쿠루’는 한자로 ‘作る’처럼 적습니다. ‘作’이라는 한자를 새길 적에 한국에서는 “지을 작”이라 합니다. 일본말에서는 ‘츠쿠루’라면 한국말에서는 ‘짓다’인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짓다’하고 ‘만들다’는 사뭇 달라요. ‘짓다’는 집이나 옷이나 밥을 마련하는 일을 가리키며 씁니다. 이때에는 ‘만들다’라 하지 않아요. “밥을 만들다”나 “옷을 만들다”처럼 쓰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똑같은 물건을 척척 찍어서 내놓는다면, 이때에는 “밥을 만들다(즉석요리 밥을 만들다)”처럼 쓸 수 있겠지요. “집을 짓는다”는 살아갈 터를 마련한다는 뜻이고, “집을 만들다”는 “물건을 새로 내놓는다”는 뜻으로 씁니다. ‘짓다’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새롭게 나타나도록 한다는 뜻을 바탕으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이름을 짓는다”거나 “생각을 짓는다”거나 “사랑을 짓는다”나 “꿈을 짓는다”처럼 씁니다. ‘만들다’는 “힘을 쓰거나 연장을 다루어, 갖거나 얻고 싶은 것을 이룬다”는 뜻을 바탕으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힘이나 연장으로 어떤 것을 마련할 적에 ‘만들다’를 쓰는데, 이때에는 어느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뀌도록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찬찬히 살핀다면,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만들다”가 아니라 “짓다”로 옮겨야 옳습니다. 그런데, 일본말 ‘츠쿠루’를 더 살피면, 이 일본 그림책은 “짓다”로 옮겨도 그리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말 ‘츠쿠루’는 “어떤 재료를 써서 무엇을 만들다. 모임이나 회사를 세우다. 마련하다. 줄을 짓다. 새로 사귀다. 처음 선보이다. 논밭을 가꾸다. 버릇을 들이다. 글을 쓰다. 맞수를 두다. 돈이나 재산을 이루다. 밥을 하다. 아이를 낳다. 꾸미다. 거짓으로 보여주다. 한 집안을 이루다” 같은 자리에 두루 쓰는 낱말이기 때문입니다.



염소로 무엇 만들지? 염소로 가죽 만들지.

가죽으로 무엇 만들지? 가죽으로 북 만들지.

→ 염소로 무엇 하지? 염소로 가죽 뭇지.

→ 가죽으로 무엇 하지? 가죽으로 북 만들지.


북으로 무엇 만들지? 북으로 리듬 만들지.

리듬은 무엇 만들지? 리듬은 축제 만들지.

→ 북으로 무엇 하지? 북으로 노래(가락) 짓지.

→ 노래(가락)는 무엇 하지? 노래는 잔치 되지.




  일본에서는 일본말로 일본 어린이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일본말 ‘츠쿠루’를 잘 살린 멋지고 재미난 이야기 꾸러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말에 맞게 새롭게 바라보고 제대로 한국말을 살펴서 한국 어린이가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 《つくる(作る)》를 살피면, 두 쪽으로 펼친 자리에서 두 가지로 수수께끼를 한 가지 물으면서 실마리를 하나씩 내놓습니다. 처음 묻는 수수께끼 말을 ‘한국 번역판’에서는 모두 ‘만들다’를 쓰지만, 한국말 쓰임새를 살핀다면, ‘만들다’가 아니라 ‘하다’를 넣어야 알맞습니다. “이것으로 무엇 하지?”처럼 물어야 올발라요. 이렇게 ‘하다’로 물은 뒤, 한국말 결을 살펴서 ‘하다’를 다 다른 쓰임새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흙으로 무엇을 할까요? 흙으로 뱀처럼 길게 빚습니다. 뱀처럼 길게 빚은 흙으로 무엇을 할까요? 항아리를 빚지요. 항아리로 무엇을 할까요? 항아리에 술을 담그지요. 술로 무엇을 할까요? 술로 동무를 사귀지요.


  ‘만들다’만 쓰면 이야기가 매우 아리송하기까지 합니다. “염소로 무엇 만들지?” 같은 말은 너무 아리송합니다. 산 짐승을 놓고 ‘만들다’라는 낱말을 쓰니 그야말로 얄궂습니다. “염소로 무엇 하지?”처럼 써야지요. 그리고 가죽은 한국말로 ‘뭇다’를 빌어서 나타냅니다. ‘만들다’는 “북을 만들다” 같은 자리에 비로소 쓸 수 있습니다.



솜으로 무엇 만들지? 솜으로 실 만들지.

실로 무엇 만들지? 실로 천 만들지

→ 솜으로 무엇 하지? 솜으로 실 꾸리지.

→ 실로 무엇 하지? 실로 천 짜지.


천으로 무엇 만들지? 천으로 옷 만들지.

옷으로 무엇 만들지? 옷으로 허수아비 만들지.

→ 천으로 무엇 하지? 천으로 옷 짓지.

→ 옷으로 무엇 하지? 옷으로 허수아비 만들지.



  솜만 얻으려고 한다면 “솜을 틀다”라 합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솜으로 무엇 하지?” 하고 물은 뒤에 “실 꾸리지”로 대꾸한 뒤, 실로는 “천 짜지”처럼 대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옷은 ‘만들다’가 아닌 ‘짓다’로 나타냅니다. 허수아비를 세운다고 할 적에 비로소 “허수아비 만들지”처럼 쓸 수 있어요.




바위로 무엇 만들지? 바위로 쇠 만들지.

쇠로 무엇 만들지? 쇠로 가위 만들지.

→ 바위로 무엇 하지? 바위로 쇠 녹이지.

→ 쇠로 무엇 하지? 쇠로 가위 두들기지.


가위로 무엇 만들지? 가위로 종이 사자 만들지.

종이 사자로 무엇 만들지? 종이 사자로 그림책 만들지.

→ 가위로 무엇 하지? 가위로 종이 사자 오리지.

→ 종이 사자로 무엇 하지? 종이 사자로 그림책 엮지.



  죽 이어지는 다른 자리에서도 “물은 무엇 만들지? 물은 강 만들지.”는 “물은 무엇 하지? 물은 냇물 이루지.”로 손질할 만하고, “강으로 무엇 만들지? 강으로 댐 만들지.”는 “냇물로 무엇 하지? 냇물로 댐 세우지.”로 손질할 만합니다.


  “해님은 무엇 만들지? 해님은 채소 만들지.”라든지 “채소로 무엇 만들지? 채소로 샐러드 만들지.”도 영 안 어울립니다. 한국말로는 이렇게 ‘만들다’를 아무 데나 넣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은 한국 어린이한테 한국말을 영 엉터리로 보여줄까 걱정스럽습니다. “해님은 무엇 하지? 해님은 남새 키우지. 남새로 무엇 하지? 남새로 샐러드 버무리지.”처럼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샐러드는 무엇 만들지? 샐러드는 몸 만들지.

몸으로 무엇 만들지? 몸으로 기록 만들지.

→ 샐러드는 무엇 하지? 샐로드는 몸 가꾸지.

→ 몸으로 무엇 하지? 몸으로 기록 세우지.



  이야기가 더 흘러 “모닥불로 무엇 만들지? 모닥불로 군고구마 만들지.”가 나오는데, 이 대목도 “모닥불로 무엇 하지? 모닥불로 군고구마 굽지.”로 손질해야 하고, 뒤따르는 “군고구마는 무엇 만들지? 군고구마는 방귀 만들지.”는 “군고구마는 무엇 하지? 군고구마는 방귀 뀌지.”로 손질해야 합니다.


  이밖에 다리는 ‘놓는다’고 하고, 통나무는 ‘깎는다’고 합니다. 길은 ‘낸다’고 하고, 닭은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닭은 무엇 만들지? 닭은 달걀 만들지.” 같은 이야기는 아주 엉터리입니다. 닭은 달걀을 ‘만들지’ 않아요. “닭은 무엇 하지? 닭은 달걀 낳지.”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일본말에서 ‘츠쿠루’가 “아이 낳다”를 뜻하기도 한다기에 일본 그림책에서는 ‘츠쿠루’를 빌어 “알 낳기”를 나타냈지만, 한국말 ‘만들다’는 아기나 알을 낳는 일을 안 가리킵니다.


  그런데, 꼭 한 가지 ‘만들다’가 어울리는 이야기가 그림책 끝자락에서 흐릅니다.




사람으로 무엇 만들지? 사람으로 군인 만들지.

군인으로 무엇 만들지? 군인으로 군대 만들지.

군대는 무엇 만들지? 군대는 전쟁 만들지.

전쟁은 무엇 만들지? …….

→ 사람으로 무엇 하지? 사람으로 군인 만들지.

→ 군인으로 무엇 하지? 군인으로 군대 만들지.

→ 군대는 무엇 하지? 군대는 전쟁 일으키지.

→ 전쟁은 무엇 하지? …….



  군대는 ‘만들다’보다 ‘세우다’ 같은 낱말이 잘 어울릴 만하지만, 이 그림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군인·군대·전쟁’은 “억지로 만들어 낸 슬픔과 아픔”을 넌지시 빗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만큼은 ‘만들다’가 어울립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군대를 ‘만드는’ 권력자와 정치인”은 바로 이 지구별에 “아픔을 만드는 바보”이거든요.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권력자와 정치인은 “삶을 짓”거나 “사랑을 짓”거나 “꿈을 짓”는 길하고 동떨어집니다.


  우리는 참말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쟁은 무엇을 할까요? 전쟁무기로는 무엇을 할까요? 군대로 무엇을 할까요? 군인은 무엇을 할까요? 왜 제주섬 같은 곳에까지 해군기지를 세워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왜 남녘과 북녘 젊은이가 비무장지대에 ‘잔뜩 무장한 몸’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군대와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핑계는 이제 몽땅 내려놓고, 평화를 이루려면 오직 평화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을 제대로 깨닫고 평화로운 길로 삶을 ‘새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평화 짓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츠쿠루(作る)’라는 낱말을 일부러 썼구나 싶습니다. 이러한 뜻하고 얼거리를 생각한다면, 이 일본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 《만들다》가 아닌 《한다》나 《짓는다》나 《무엇을 하며 지을까》로 새로 옮겨서, ‘평화를 사랑한다’나 ‘평화를 짓는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하고 함께 나아갈 길은 오직 ‘사랑하기’하고 ‘평화짓기’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를 함께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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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천국 동물과 더불어 그림동화 1
신시아 라일런트 글.그림, 류장현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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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2



하늘도 땅도 모두 ‘하늘나라’가 되기를

― 강아지 하늘나라

 신시아 라일런트 글·그림

 고정아 옮김

 삼성출판사 처음 펴냄, 2001.11.28.

 책공장더불어 새로 펴냄, 2013.10.19. 1만 원



  우리 집에서 한동안 함께 살던 ‘늙은 개’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사람 손길을 받으면서 살던 개인데 우리 마을에 ‘버려졌’습니다. 우리로서는 말로만 듣던 ‘도시에서 시골로 와서 몰래 버리고 가는 개’를 비로소 만난 셈이었습니다. ‘늙고 버려진 개’는 마을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꽁무니를 좇으며 달라붙지만, 할매와 할배밖에 없는 이 마을에서 ‘늙고 버려진 개’를 건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늙고 버려진 채 배를 곯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국물에 밥을 말아서 마당에 내놓아 보았습니다. 늙고 버려진 개는 우리가 내민 밥그릇을 1분이 되지 않아 싹싹 비웠습니다. 한 그릇 더 주니 반만 먹고 남깁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얼마 못 지냈습니다. 열흘 남짓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어요. 나중에 이웃 할매한테서 이 늙고 버려진 하얀 개를 누군가 차에 실어서 데려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에 ‘옛 개 임자’가 찾아와서 데려갔다기보다 ‘염소장수’가 짐차에 실어서 데려갔구나 싶었습니다. 염소하고 개를 산다는 염소장수 짐차는 날마다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거든요.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갈 적에 이 개는 우리를 좇아왔는데 얼마 못 달리고 지쳐서 논둑길에서 자전거를 멀거니 쳐다보다가 ‘우리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그러나, 이런 모습도 더는 볼 수 없습니다. 늙고 버려졌던 개가 부디 따사롭고 넉넉한 하늘나라로 고이 찾아갔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강아지들은 하늘나라에 갈 때 날개를 달지 않아요. 강아지들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줄 하느님이 다 아시기 때문이죠. 하느님은 강아지들 앞에 넓고, 넓고, 넓은 들판을 펼쳐 줍니다. (3∼4쪽)



  2001년에 한국에서 처음 나오고 2013년에 새옷을 입고 다시 나온 그림책이 있습니다. 2001년에는 《강아지 하늘나라》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고, 2013년에는 《강아지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나왔습니다. 한국말로는 ‘하늘나라’이고, 이를 한자말로 옮기면 ‘천국’입니다.


  ‘하늘나라’는 흔히 ‘죽은 뒤 가는 곳’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하늘이 아닌 이 땅에서 사는 우리들이 이 땅이 넉넉하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고 여기면, 이 ‘땅나라’도 얼마든지 ‘하늘나라’로 느낍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나라를 가리키는 ‘하늘나라’이고, 사랑스러운 터전을 가리키는 ‘하늘나라’이며, 즐거운 삶자리를 가리키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어린이들도 있어요. 날개가 달린 천사 어린이들이요. 강아지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그건 바로 아이들인 줄 하느님은 아시거든요. 그래서 강아지 하늘나라에는 어린이들이 아주아주 많답니다. (10쪽)



  하늘나라에서는 하늘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숨을 쉬지요. 하늘나라에서는 하늘밥을 먹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하늘마음으로 지내고, 하늘사랑으로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하늘사람이고,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는 하늘아이예요. 그러니, 이 하늘나라에서는 ‘하늘강아지’가 있을 테지요.


  하늘나라에는 미움이나 전쟁 따위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에는 시샘이나 따돌림 따위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에는 경쟁이나 승패 따위가 없습니다. 참말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즐겁지요. 그래서, 이러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은 하늘뿐 아니라 이 땅 어디에나 두루 퍼지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늘마음’으로 살고 ‘하늘사랑’으로 어울리며 ‘하늘꿈’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구름을 뒤집어서 강아지들에게 아주 폭신한 이불을 마련해 줍니다. 강아지들은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멍멍 짖고, 햄버거 과자를 먹다가 고단해지면, 저마다 구름을 하나씩 차지하고서 잠자리를 마련합니다. (15쪽)



  그림책 《강아지 하늘나라》는 차분하게 이야기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오직 사랑을 받고 오로지 기쁘게 뛰놀면서 칭찬만 받는 강아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집 없는 개가 없고, 놀림을 받는 개도 없습니다. 두들겨맞거나 걷어차이는 개도 없어요. 게다가, 개(강아지)를 아주 사랑하고 아끼는 아이들이 아주 많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림책을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왜 이러한 하늘나라는 하늘에만 있어야 할까요? 왜 이 땅은 ‘하늘나라처럼 아름답게’ 있을 수 없나요? 왜 이 땅에서는 ‘하늘나라처럼 사랑이 가득 넘실거리는’ 웃음꽃이 피기 어려울까요? 왜 이 땅 모든 곳에서 기쁜 꿈이 그득그득 자라는 보금자리가 되기 어렵나요?




강아지들은 하늘나라에서 바라는 만큼 오래 지낼 수가 있어요. 언제까지라도요. 옛날옛날 친구가 하늘나라에 올라올 때 미리 알고 문 앞에 나가 기다리는 것도, 바로 천사 강아지들이랍니다. (27∼30쪽)



  아이가 웃습니다. 신나게 뛰노는 아이가 웃습니다. 아이가 웁니다. 놀지 못하면서 학원을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아이가 웁니다. 아이가 웃습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껏 노래하는 아이가 웃습니다. 아이가 웁니다. 뛰지도 달리지도 못하면서 좁은 책상맡에서 문제집만 들여다보아야 하는 아이가 웁니다.


  전쟁무기 아닌 평화로운 마을을 꿈꿉니다. 경제개발 아닌 사랑스러운 마을을 바랍니다. 문화예술이나 과학기술도 아닌 아름다운 마을에서 즐겁게 두레와 품앗이를 나누는 삶을 바랍니다.


  “강아지 하늘나라”는 강아지한테도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도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어른 모두 사랑스레 지낼 만한 ‘하늘나라’라 한다면, 이러한 곳에서는 강아지도 고양이도 모두 사랑스레 지낼 수 있을 테지요. 4348.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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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보이 그림책 보물창고 9
모디캐이 저스타인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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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0



사랑받으며 놀고 싶은 ‘숲아이’

― 와일드 보이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펴냄, 2005.8.10. 9000원



  조금 높은 곳이 있으면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펄쩍 뛰어내리려 합니다. 조금 너른 곳이 있으면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싱싱 달리려 합니다.


  아이들은 바람을 타고 뛰어내립니다. 아이들은 바람을 가르면서 달립니다. 뛰거나 달리는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립니다. 땀이 흐르면 바람이 말려 주고, 까르르 웃거나 노래하는 소리는 바람결에 실려 멀리멀리 퍼집니다.



아이는 바람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눈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보름달을 좋아했습니다. (9∼10쪽)




  모디캐이 저스타인 님이 빚은 그림책 《와일드 보이》(보물창고,2005)를 읽습니다. 영어 ‘와일드(wild)’는 ‘들에서 사는’이나 ‘숲에서 사는’을 가리키기도 하고 ‘길들지 않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들이나 숲에서 사는 숨결 눈높이로 바라보자면 “들에서 사는 아이(들아이)”인 셈이고, “숲에서 사는 아이(숲아이)”입니다. 그리고 문명 사회나 도시 사회에서 바라보자면 “길들지 않은 아이”나 “사회를 모르는 아이”예요.



과학자들은 아이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싶어했습니다. 아이는 마차에 실려 숲에서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파리로 갔습니다. 마차가 덜컥거리며 도시로 들어섰지만, 아이는 창 밖을 내다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 아이가 아는 것은 오직 숲뿐이었고, 도시엔 숲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쪽)



  도시에서 문명을 세워서 문명을 누리는 사람들은 ‘들아이’나 ‘숲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도시에 있는 어른들은 ‘들아이’나 ‘숲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아요.


  왜 그러할까요? 도시에 있는 과학자나 학자나 전문가나 교육자는 ‘들아이’나 ‘숲아이’가 ‘저희(도시사람)가 쓰는 말’을 모른다고 여깁니다. 거꾸로 바라볼 줄은 몰라요. 도시에 있는 과학자나 학자나 전문가나 교육자들이 ‘들아이가 쓰는 말’이나 ‘숲아이가 아는 말’을 하나도 모르는 줄 생각하지 못해요.


  숲에서 마음껏 잘 살던 아이를 사로잡은 사냥꾼과 과학자는 숲아이를 숲으로 돌려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사냥꾼은 돈을 받습니다. 도시에 있는 과학자는 숲아이를 ‘실험실 연구 대상’으로 삼습니다.


  숲아이는 아주 외롭고 힘들며 슬픕니다. 제 고향과 보금자리를 잃었을 뿐 아니라, 숲아이가 좋아하던 바람도 눈도 보름달도 냇물도 골짜기도 숲도 모두 빼앗겼거든요.




이타르 박사는, 그 누구도 품에 안아 주거나 노래를 들려준 적이 없고 함께 놀아 준 적도 없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25쪽)



  외로운 숲아이를 돌보려고 하는 과학자나 전문가나 교육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이 나타나서 숲아이한테 ‘도시 문명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동안 숲아이를 마주한 여느 과학자나 전문가하고 좀 다르다면, ‘이타르 박사’라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았고, 따스한 손길로 품으려고 했습니다. 다만, 이타르 박사도 숲아이한테 ‘이타르 박사가 아는 말과 문명’만 가르치려고 했어요. 이타르 박사는 ‘숲아이한테서 삶을 배울 뜻’이 없었어요. 숲아이가 보름달을 쳐다보는 까닭을 알려 하지 않고, 숲아이가 왜 알몸으로 눈밭을 뒹굴며 놀고 싶은가를 알아차리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렇게 함께 놀지 못하지요. 이타르 박사는 숲아이를 돌보아 주기는 했으되, 이녁도 ‘새로운 눈길로 숲아이를 바라본 뒤 보고서를 써서 학계에 내놓아 인정받을’ 뿐이었습니다.


  숲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숲아이는 ‘옷을 입을’ 줄 알고, 맨발이나 알몸으로 돌아다니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끝내 ‘도시 문명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다고 해요. 무엇보다도 몇 해 살지 못하고 죽었다지요.


  숲아이는 숲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몇 해 못 살고 죽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숲아이는 숲에서 제 나이만큼 즐겁게 살았으리라 느껴요. 옷 한 벌 없어도 추위를 모르고, 포크나 칼이 없어도 밥을 찾아서 먹을 줄 알며, 맨손과 맨몸으로 나무를 잘 타고 바위도 잘 타며 어디로든 마음껏 뛰거나 달릴 수 있던 숲아이였어요.




맑고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빅토르(숲아이)는 창 밖 하늘과 나무를 쳐다보며 천천히 물을 마시곤 했습니다. 바람이 살랑이는 소리와, 눈송이가 흩날리는 풍경과, 구름 뒤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부신 햇살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37쪽)



  교육은 교육이어야 합니다. 교육은 길들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삶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손길이어야 합니다. 교육은 어떤 전문지식을 아이가 외우도록 시키는 얼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똑같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은 뒤 똑같은 도시 사회에서 똑같은 도시 문명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만 산다면, 모든 사람은 굶어야 해요.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만 산다면, 모든 사람은 겨울에 추위에 떨어야 해요.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노동자로만 지낸다면, 모든 사람은 옷도 못 입고 아무것도 못 하지요.


  삶을 짓는 길을 아이한테 가르칠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삶을 가꾸는 사랑을 아이와 함께 새롭게 배울 줄 아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돈을 벌면 돈으로 척척 무엇이든 사들여서 쓸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돈이 아니라 삶을 가꾸어서 삶을 누리는 하루입니다.


  그림책 《와일드 보이》는 ‘숲아이’를 보여줍니다. 숲아이를 사로잡아서 돈을 벌거나 실험 연구 대상으로 삼으려던 어른들을 보여줍니다. 숲아이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 숲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받아야 하는데, 어떤 사랑을 받아야 하는가를 《와일드 아이》를 빌어서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저 따뜻한 품으로만 안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제 삶을 가꾸고 일구며 돌볼 수 있도록 이끄는 너그러운 사랑일 때에 비로소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아이가 바람을 알고, 비와 눈을 알며, 하늘과 땅을 알고, 숲과 들을 넉넉히 품도록 이끄는 사랑일 때에 비로소 삶을 짓는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4348.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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