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마녀 루시
리오넬 르 네우아닉 지음, 이재현 옮김 / 행복한아이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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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4



아기를 낳아 돌보면서 비로소 어른이 된다

― 엄마가 된 마녀 루시

 리오넬 르 네우아닉 글·그림

 이재현 옮김

 행복한아이들 펴냄, 2003.7.15. 8500원



  아이들은 하루 내내 놀고 싶습니다. 갓난쟁이도, 다섯 살 어린이도, 열 살 아이도 모두 즐겁게 하루 내내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갓난쟁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아기하고 하루 내내 놀 겨를을 마련하는 이들이 부쩍 줄어듭니다.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긴 채 일하러 다니는 어버이가 매우 많고, 두어 살쯤 되면 으레 어린이집에 아이를 넣기 마련이며, 한 번 보육시설에 들어간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어린이집하고 유치원을 드나듭니다.


  보육시설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또래 동무를 만날 수 있어서, 제법 안 심심하게 놀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퍽 어린 아이들은 또래 동무 못지않게 어머니하고 아버지랑 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이들한테는 또래 동무도 있어야 하지만, 아직 많이 어리며 여린 아이들은 어버이가 베푸는 따사로운 사랑을 받기를 바라요. 제 어버이가 저를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아이요, 따사로운 사랑을 누리면서 기쁘게 뛰놀고 싶지요.



“페르 부인, 당신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매우 절망스럽군요. 지옥에서 생긴 당신의 병은 절대 나을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무슨 병이죠?” 루시는 너무나 당황스러워하며 물었습니다. “고약하게 생긴 작은, 음, 그러니까 아기가 생겼습니다.” (9쪽)



  리오넬 르 네우아닉 님이 빚은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행복한아이들,2003)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마녀 루시는 그저 마녀로만 지냈고, 마녀로서 ‘아이를 잡아서 괴롭히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마녀 루시는 어느 날 ‘사랑에 푹 빠졌’고, 사랑스러운 짝을 찾아서 지옥에 가서 악마랑 사귀었다는군요. 머잖아 마녀 루시는 몸이 달라진다고 느꼈고, 배가 볼록해졌답니다. 이즈음 지옥에 있던 악마는 마녀 루시가 못마땅했고, 마녀 루시도 악마가 못마땅해서 서로 헤어지기로 합니다. 마녀 루시는 지옥을 떠나서 땅에 있는 ‘마녀네 집’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몸에 어떤 일이 생겼느냐고 물으니 의사는 ‘아기가 생겼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루시의 뱃속에 있는 아기 엠마는 마녀가 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습니다. “마녀가 될 거라면 차라리 안 태어나고 말 거야.” 엠마는 엄마 배를 발로 툭툭 차면서 소리쳤습니다. “못된 짓을 하거나, 끈적거리는 벌레를 꿀꺽 삼키는 짓 따위는 싫어! 나는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이 사는 세상으로 가겠어.” (14쪽)



  지옥에 있는 악마도, 땅에 있는 마녀도, 또 마녀네 여러 동무와 이웃도, 루시한테 ‘아기가 생긴’ 일을 기뻐해 주지 않습니다. 어쩜 그런 끔찍한 일을 겪느냐고 한마디씩 합니다. 마녀네 이웃은 마녀 루시한테 ‘뱃속 아기를 없애는 길’을 도와줄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녀 루시는 아기를 낳기로 합니다. 루시 몸에 생긴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면 그야말로 ‘멋진 마녀’가 되어 이 별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면서 어지럽히는 ‘훌륭한 마녀 짓’을 하리라 꿈을 꾸지요.


  이때에 루시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어머니 루시’하고 사뭇 다른 마음입니다. ‘마녀 루시’는 스스로 그저 ‘마녀’라고만 여길 뿐, ‘어머니’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녀 루시’는 ‘(아기) 마녀 엠마’를 낳아서, 두 마녀가 신나게 마녀 짓을 할 생각을 해요. 이와 달리 ‘뱃속 아기’는 루시가 ‘마녀’ 아닌 ‘어머니’라고 여기고, ‘마녀 아기’로 태어난다면 차라리 안 태어나고 죽는 쪽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두 사람은 어떤 길로 갈까요? 마녀 루시는 그저 이녁이 스스로 마녀라고만 여기는 길을 갈까요? 뱃속 아기는 마녀인 어머니가 못마땅해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기를 손사래치면서 그만 어머니 뱃속에서 죽는 길로 갈까요?




루시는 작은 천사 엠마를 무시무시한 꿈에 나오는 끔찍한 괴물로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우유병에 나쁜 것을 넣어서 먹여도, 할머니가 개발해 놓은 온갖 끔찍한 방법들을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루시 페르는 깨달았습니다. 나쁜 것들은 어린 엠마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22쪽)



  아기를 밴 어머니인 마녀 루시는 뱃속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까맣게 모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 발길질을 할 적에도 왜 발길질을 하는지 모르는 채 귀엽게만 여깁니다.


  바야흐로 루시는 아기를 낳습니다. 아기는 이 땅에 태어나기로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게다가 아기 엠마는 ‘마녀 엠마’ 아닌 ‘아기 엠마’이기를 꿈꾸었어요. 이리하여, 엠마는 갓 태어날 적에 등에 날개를 달았지요. 악마와 마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엠마인데 그만, 그러니까 참말 그만, ‘천사 엠마’가 태어났습니다.


  마녀 루시만 깜짝 놀라지 않습니다. 마녀네 이웃 모두 깜짝 놀라고, 지옥에서 아기를 보겠다며 찾아온 악마와 악마네 동무들도 모두 깜짝 놀라요. ‘천사’인 아기 엠마가 무서워서 모두 벌벌 떱니다.


  아기 엠마는 스스로 ‘천사’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엠마는 엠마 스스로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아기’라고 여길 뿐입니다. 엠마는 마녀 루시가 ‘마녀’라는 이름표보다는 ‘어머니’라는 사랑으로 저를 바라보고 안아 주기를 바라지요.




별별 일을 겪고 난 후, 루시와 엠마는 마법사의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루시와 엠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답니다. 마치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처럼. (33쪽)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를 읽는 내내 지난 여덟 해를 돌이켜 봅니다.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를 덮으면서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나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비로소 아버지라는 자리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두 아이는 스스로 잘 뛰어놀고 밥도 잘 먹으며 똥오줌도 잘 가려서 누는 몸짓을 보여주면서, 나를 ‘어버이’이자 ‘어른’으로 이끌어 줍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기에 어른이 아닙니다. 나는 혼인을 했기에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 집을 따사로운 보금자리로 가꾸겠노라 하는 꿈을 키우면서 살림을 건사하기에 비로소 남편이나 아버지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마음속에서 길어올리기에 나와 짝꿍은 서로 ‘곁님(곁에서 지키고 보살피는 님)’이 될 수 있습니다. 나와 곁님은 서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어버이요 어른으로 거듭나고, 이동안 두 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랍니다.


  모든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고, 아기로 태어나서 어린 나날을 누리며, 이윽고 천천히 철이 들면서 슬기로운 사랑으로 삶을 짓는 꿈을 키웁니다. 몸뚱이만 어른이 아닌 마음으로 어른이 되려고 아기를 낳습니다. 아기를 기쁜 웃음으로 키워서 밝은 노래를 부르는 하루가 되기에, 어느덧 어른으로 거듭나지요.


  그렇다고 ‘혼인해서 아기를 낳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혼인만 했대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았어도 모두 어른이 되지는 않습니다. 혼인을 하지 않았어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숨결이라면 어른입니다. 혼인을 했어도 아기를 안 낳은 살림이라면, 아기 없는 삶에서도 이웃을 언제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넋이라면 어른이지요. 마음 가득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줄 알고, 이 사랑 씨앗을 두루 베풀 때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물려받아서 즐겁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4348.11.2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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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과나무 춤추는 카멜레온
루스 게리 오바크 글.그림,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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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1



마당에 심은 나무 한 그루로 나누는 사랑

― 나의 사과나무

 루스 게리 오바크 글·그림

 최용은 옮김

 키즈엠 펴냄, 2015.10.22. 8000원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있는 집이랑,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없는 집은 사뭇 다릅니다. 나는 서른다섯 해가 넘도록 나무 한 그루조차 돌볼 수 없는 집(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다가, 요 다섯 해 남짓 비로소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있는 집(마당이 있는 집)에서 지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갓 태어난 뒤에는 제 나무를 만날 수 없었지만, 작은아이는 갓난쟁이일 무렵부터 우리 나무를 마주하면서 언제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는 일이 있어요. 바로 ‘나무한테 절하고 오기’입니다. 나무한테 절을 하고 말을 섞고 바람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웃지 않으면 밥도 주전부리도 없습니다. 언제나 아침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에는, 흐리나 맑으나 아침에는, 우리 집을 둘러싼 여러 나무한테 절을 하면서 열기로 합니다. 나들이를 가거나 집을 비울 적에도 나무한테 절을 하고,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으레 나무한테 절을 하면서 말을 섞어요.



우리 집 마당에는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어요. 늘 앙상해서 사람들은 나무가 죽은 줄 알고 주변에 쓰레기를 버렸지요. 하지만 사과나무는 죽지 않았어요. (2쪽)




  루스 게리 오바크 님이 빚은 앙증맞은 그림책 《나의 사과나무》(키즈엠,2015)를 읽으며 나무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apple pigs”라는 이름으로 2015년에 미국에서 처음 나오고, 한국말로는 《나의 사과나무》(키즈엠,2015)로도 나온 예쁜 그림책을 읽으며, 집에 나무가 있느냐 없느냐는 얼마나 다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오래된 나무’를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마 이 아이도 집에 있는 나무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스스로 제법 나이가 든 뒤에 비로소 ‘마당에 있는 오래된 능금나무’가 시들시들 앓는 줄 알아차렸구나 싶어요. 집에서 누구도 돌보지 않고 아끼지 않고 눈길도 두지 않아서 시름시름 시드는 나무를 ‘아이’가 알아보았네 싶습니다.



나는 사과나무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고, 풀을 뽑고, 갈퀴로 땅을 정리했어요. 사과나무 주위로 예쁜 꽃도 심었지요. 봄볕이 따사롭게 비추고, 봄비가 촉촉이 내렸어요. (5쪽)




  아이는 무엇을 할까요? 아이는 나무한테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먼저, 나무 둘레에 쌓인 쓰레기부터 치웁니다. 이러고 나서 자잘하게 돋은 온갖 풀을 뽑아 줍니다. 나무뿌리가 제대로 숨쉴 터를 마련하고, 나무한테 이제부터 제대로 사랑을 나누어 주리라 하고 다짐합니다. 나무가 좋아하도록 고운 꽃을 나무 곁에 심기도 했대요.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래되고 아픈 능금나무 한 그루는 아이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나무 한 그루를 살뜰히 돌본 아이는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까요? 따스한 사랑을 받은 늙은 능금나무 한 그루는 앞으로 아이한테 어떤 선물을 베풀 수 있을까요?



저녁밥도 사과, 간식으로도 사과를 먹었어요. 하지만 사과는 여전히 많았어요. “더 못 먹겠어!” 우리는 소리쳤어요. 그래서 사과를 따서 침대맡에 두었어요. (10∼11쪽)




  그림책 《나의 사과나무》를 보면, 그동안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능금나무가 꽃을 활짝 피웁니다. 꽃을 활짝 피우고 잎도 잔뜩 돋은 능금나무에 새가 다시 찾아옵니다. 새는 능금나무 한쪽에 둥지를 짓습니다. 능금나무에 둥지를 지은 새는 날마다 기쁘게 노래를 부릅니다.


  집에 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무는 봄에 새롭게 잎을 틔워서 새로운 숨결과 짙푸른 바람을 베풀지요. 잎이 우거지는 나무는 새를 부르기 마련이라, 새가 찾아들어서 고즈넉히 깃들면, 새는 아름답게 노래하면서 사람들한테 새로운 즐거움을 나누어 줍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집에서는 나무 그늘을 누리면서 쉴 수 있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하루 내내 실컷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선물처럼 내놓는 꽃이랑 열매를 듬뿍 누리지요.



이제 더는 사과를 보관할 곳이 없었어요.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나는 안내문을 쓰고, 초대장을 보냈어요. “사과 축제를 합니다! 모두 모두 오세요.” (19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바야흐로 ‘아침 낮 저녁’으로 끼니마다 능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여태 열매 한 알 내놓지 못하던 능금나무’가 어마어마하게 능금을 내놓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날이면 날마다 능금을 먹는데, 먹고 또 먹어도 능금은 자꾸자꾸 열립니다. 온 집안에 능금을 잔뜩 쌓지만, 능금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집 안팎이 ‘능금바다’가 되어 도무지 어찌저찌 손쓸 틈이 없습니다.


  이때에 ‘나무를 되살린 아이’가 멋진 생각 하나를 그려요. ‘능금잔치’를 열어서 이웃을 부르기로 하지요. 나무가 새를 부르듯이, 사랑이 나무를 되살리듯이, 수북하게 쌓인 너른 능금을 잔뜩 펼쳐서 재미난 잔치를 열기로 해요.


  가까이서 찾아오고 멀리서 찾아온 수많은 이웃은 어마어마한 능금을 신나게 먹습니다. 수많은 이웃이 수없이 능금을 먹어 주기에 비로소 능금바다가 줄어듭니다. 이제 집안이 한결 넉넉합니다. 넘치는 능금 때문에 더는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능금나무 한 그루는 바로 이러한 삶을 바랐구나 하고 느낍니다. 꽃 한 송이와 열매 한 알로 다 같이 오순도순 누리는 사랑을 바랐구나 싶습니다. 서로서로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춤추면서 하루를 즐거이 누리기를 바랐구나 싶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고 꿈을 나누며 기쁨을 나누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며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 참말 삶이 바뀌리라 생각해요.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모든 집에서 마당을 조그맣게라도 누릴 수 있어서 ‘우리 집 나무’를 돌볼 수 있다면, 또 ‘내 나무’를 아낄 수 있다면, 마음 가득 피어나는 사랑스러운 꿈으로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겠지요. 4348.11.1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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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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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1



동무를 떠나보내는 삶인 ‘죽음이’

― 내가 함께 있을게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7.10.31. 9500원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짓고, 이튿날 새 하루를 새로우면서 기쁘게 맞이하자’고 생각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적에 ‘이제 곧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새로운 하루는 어떻게 누리면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적에 ‘하루를 더 살았으니, 죽음하고 하루 더 가까워지네’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생각하지만, 아이들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잠자리에서 삶을 생각할 뿐입니다. 구태여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리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 (4∼5쪽)



  볼프 에를브루흐 님이 빚은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웅진주니어,2007)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오리가 한 마리 나오고, 오리 곁을 늘 맴돌았다는 ‘죽음이’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오리는 어느 날 문득 제 곁에 누군가 가까이 있는 줄 깨닫고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묻습니다. 그리고, 오리가 이렇게 물을 적에 ‘죽음이’는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모습을 오리 앞에 환하게 드러냅니다. 뒷짐을 진 손에 꽃을 한 송이 든 채 말이지요.



“사고가 났을 때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야. 삶은 감기라든가, 너희 오리들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걱정하지. 한 가지만 예를 들게. 여우가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 오리는 그건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으스스 소름이 돋았습니다. (9쪽)




  오리는 왜 죽음이를 알아챘을까요? 죽음이는 왜 오리 곁에서 맴돌았을까요? 오리는 죽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오리는 이제 삶을 마치고 죽음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무래도 오리 스스로 죽음을 생각했기에 죽음이 늘 곁에 맴도는 줄 느꼈으리라 봅니다. 죽음을 생각하던 나날이었으니 때때로 오싹하기도 하고, 때때로 ‘누가 옆에 있네’ 하고 느꼈을 테지요.


  죽음이는 죽음으로 가도록 이끄는 아이입니다. 그러니 늘 꽃 한 송이를 갖고 다니면서 ‘죽음을 맞이한 님’한테 꽃송이를 가만히 올려놓고 냇물에 주검을 띄워서 흘려보냅니다.



“추워? 내가 따뜻하게 해 줄까?” 오리가 물었습니다. 아무도 죽음에게 그런 제안을 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13쪽)




  오리는 죽음이를 알아챘지만, 그다지 죽음이를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곧 죽음이 닥칠 줄 알았기에, 제 곁에 늘 맴돌던 숨결이 무엇인가를 알아챈 뒤에는 아무것도 거리낄 일이 없어졌구나 싶습니다. ‘죽음이 곁에 있는 삶’이란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는 줄 알았다고 할까요.


  바야흐로 오리는 죽음이를 제 동무로 삼아요. 오리는 죽음이가 늘 따라다니는 줄 깨닫습니다. 아침에 번쩍 눈을 뜨면서 죽음이를 깨웁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면서 기뻐합니다. 죽음이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오리가 기뻐하는 대로 함께 기뻐합니다. 이러면서 오리하고 함께 놀지요. 못에도 가고 나무에도 오르지요. 어디를 가든 함께 움직여요.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를 읽을 어린이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는 ‘죽음은 두려워할 만하지 않다’는 대목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기에 죽음이 찾아오고, 삶을 생각하기에 삶을 누린다’는 대목을 가만히 마음속에 그릴 만할까요?



오리는 죽음의 옆구리를 툭 치며 큰 소리로 기뻐했습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죽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도 기쁘다.” 죽음이 기지개를 켜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죽었다면?” “그럼 난 늦잠을 잘 수 없었을 거야.” 죽음이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15쪽)




  기쁨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속에 기쁨을 그리면서 삶에 기쁨이 깃들도록 이 길을 걷습니다. 슬픔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속에 슬픔을 그리면서 삶에 슬픔이 스미도록 이 길을 걸어요. 웃음을 생각하니 웃음을 스스로 길어올리고, 눈물을 생각하니 눈물을 스스로 끌어냅니다.


  온누리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뭘 하고 놀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구나 참으로 재미나게 놀고 신나게 놀며 개구지게 놀아요. 그런데, 학교에 매인 아이들은 ‘아이고, 오늘도 학교에 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학교 공부가 괴롭거나 대학입시로 고달픈 아이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 맞이하는 삶’이 그리 기쁘지 않을 만합니다. 아침을 기쁘게 웃으면서 맞이하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삶하고 멀어질 테지요. 기쁨이를 부르지 못하고 죽음이를 부를 테지요.


  그림책 끝자락을 보면 ‘죽음이’한테는 “죽음이 삶”이라고 읊는 대목이 나옵니다. 모처럼 동무를 사귀었어도 동무가 죽음으로 가는 길로 이끄는 일이 죽음이한테 삶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죽음이한테도 죽음이 있을까요? 삶을 누리던 목숨이 죽음으로 가도록 이끄는 ‘죽음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삶’이라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날까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일 텐데, 참말 삶과 죽음은 수수께끼라고 할 만합니다. 수수께끼를 풀려고 이 땅에 태어나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이 삶을 지으며, 수수께끼를 풀거나 맺으면서 이 길을 마무리짓겠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죽음길로 떠난 오리’는 몸뚱이는 고이 내려놓고 새로운 삶길로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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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좋아해요
뻬뜨르 호라체크 지음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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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0



섬돌맡에서 잠든 마을고양이

― 고양이가 좋아해요

 뻬뜨르 호라체크 글·그림

 편집부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5.9.1. 6500원



  뻬뜨르 호라체크 님은 작고 가벼우면서 알록달록 눈부신 그림책을 선보입니다. 《작은 새야 안녕》이라든지 《꼬마 생쥐의 새 집 찾기》라든지 《나비가 팔랑팔랑》이라든지 《딸기는 빨개요》라든지 무척 예쁘장한 그림책이 많습니다. 《자동차가 부릉부릉》이나 《기차가 칙칙폭폭》 같은 그림책은 자동차와 기차 같은 탈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손에서 떼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그림책 《고양이가 좋아해요》는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집에서 기르는 아이들이라면 참으로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저마다 빛깔도 모습도 크기도 다른 고양이를 한 마리씩 가만히 보여주면서, 이 고양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살몃살몃 곁들입니다.



하얀 고양이는 생선 먹기를 좋아해요.



  우리 집에는 마을고양이가 늘 오갑니다. 마을고양이 여러 마리가 마당 한쪽에서 살고, 뒤꼍이랑 텃밭에도 여러 마을고양이가 삽니다. 어느 아이는 모과나무 옆에서 잠들고, 어느 아이는 감나무 밑에서 잠듭니다. 어느 아이는 광에서 잠들고, 어느 아이는 마당에 놓은 평상 밑에서 잠듭니다. 어느 아이는 텃밭 풀숲에 서로 엉켜서 잠들고, 어느 아이는 우리 집 자전거 밑에서 새근새근 잠드는데, 어느 아이는 배짱도 좋아서 섬돌에 척 앉아서 잠듭니다.



이 커다란 고양이는 여러분을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고양이는 무엇을 좋아할까요? 고양이도 여느 들짐승처럼 제 먹이를 좋아하지요. 그리고, 놀이를 무척 좋아합니다. 게다가, 햇볕을 아주 좋아해요. 볕이 바른 곳이라면, 울타리이든 담벼락이든 지붕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햇볕을 듬뿍 받으면서 살짝 눈을 감지요. 때로는 게슴츠레 눈을 뜨거나 느릿느릿 검벅이다가 꼬르륵 잠들어요.


  우리 집에서 사는 마을고양이는 겨울에 햇볕이 더 그리우니 섬돌맡을 늘 알짱거리는데, 때때로 내 발에 밟힙니다. 드르륵 마루문을 열고 내려설 적에 미처 일어나지 않고 깊이 잠든 마을고양이는 물컹 밟히지요.


  여러 차례 밟히고도 꼭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마을고양이를 보면, 어쩌면 이 아이들은 이렇게 ‘밟히기’도 새삼스럽거나 재미난 놀이로 여길는지 모릅니다. 고양이는 고양이 스스로 싫어하는 몸짓이나 일은 안 하니까요.


  아이들도 고양이도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놀거나 하루를 보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사랑하면서, 다 함께 이 지구별에서 사이좋게 어우러집니다. 4348.11.1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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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세 알의 비밀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17
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노계순 옮김 / 현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2



이 땅에 겨울이 생긴 까닭은?

― 석류 세 알의 비밀

 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노계순 옮김

 현북스 펴냄, 2012.10.15. 11000원



  아이들은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모두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말을 받아들여서 익히고 싶기에 어버이가 읊는 말을 찬찬히 살피면서 받아먹습니다. 어버이가 고운 말을 쓰면 아이는 저절로 고운 말을 씁니다. 어버이가 미운 말을 쓰면 아이도 저절로 미운 말을 써요.


  어버이가 바쁘고 힘들다면서 미운 말을 자꾸 쓰면, 아이는 ‘어버이가 바쁘고 힘들다’는 대목은 살피지 않고 ‘미운 말’만 받아들입니다. 아이로서는 ‘어버이가 새로 하는 말’이나 ‘어버이가 늘 쓰는 말’에 눈길이 갑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가게에 어버이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간다면, 아이는 ‘아이 스스로 갖고 싶은 장난감’에 손을 뻗습니다. 아이는 값을 따지거나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살펴서 고릅니다. 이때에 어버이는 어떻게 마주할까요? 아이가 고른 장난감을 기꺼이 장만할까요, 아니면 ‘값’을 따질까요? 값을 아예 안 볼 수 없을 터이나, 값을 먼저 보느냐, 아니면 아이가 바라는 곳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그 날도 데메테르는 여느 때처럼 대지를 가꾸었어요. 데메테르 옷이 닿는 곳마다 밀이 솟아오르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예쁜 꽃들이 피어났어요. 일을 다 마친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에게 말했어요. “다른 신들을 만나고 올 테니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퀴아네와 놀고 있으렴.” (8쪽)



  제럴드 맥더멋 님이 빚은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현북스,2012)을 읽습니다. 석류 한 알도 아니고 왜 석 알일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에는 ‘여신’이 나오고, ‘여신이 낳은 딸’이 나옵니다. 딸도 여신이니, 지구별은 두 여신이 따사롭게 보듬는 손길을 받아서 풀이 돋고 꽃이 피며 나무가 자랍니다. 두 여신은 이 지구별에 아름다운 숲을 사랑스레 가꾸어 줍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이 지구별에서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짓습니다.




페르세포네는 퀴아네가 말릴 틈도 없이 연못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가 버렸어요. 한 팔 가득 꽃을 꺾은 페르세포네가 돌아가려고 할 때였어요. “어머나! 이렇게 예쁜 꽃은 처음 보는걸.” 페르세포네는 마지막으로 한 송이만 더 꺾으려고 수선화 줄기를 힘껏 잡아당겼어요. 그러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쩌억!’ 하고 갈라졌어요. (10쪽)



  그런데, 두 여신 가운데 ‘딸아이 여신’은 어머니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니 귓등으로 넘겼지요. 어머니 여신이 살짝 자리를 비운들 무슨 큰일이 있으랴 여겼고, 그저 새로운 놀이나 즐거움을 찾아서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하던 곳’으로 갑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했기에 더 가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이한테 ‘가지 말라는 곳’을 말했기 때문에, 아이 마음에는 ‘가지 말라는 곳’이 오히려 마음에 남습니다. 이를테면, ‘먹지 마’ 하고 말하면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듯 말이지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거친 말 쓰지 마’라든지 ‘동무나 동생을 괴롭히지 마’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아이들한테 들려준다고 해서 아이들은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왜?’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을 하지 마’ 하고 말해서는 ‘무엇을 해’라는 뜻밖에 안 돼요. 하지 말라고 말하지 말고, 아이들이 즐겁게 할 일과 놀이를 보여주거나 함께할 노릇입니다. ‘자, 우리 이것을 해 볼까’ 하고 말한다든지 ‘이것을 해 보렴’ 하고 나긋나긋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할 노릇이에요.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찾아 곳곳을 헤맸어요. 슬픔에 잠긴 데메테르가 지나가자 새들은 노래를 멈추었고, 나무와 풀은 시들어 검게 바뀌어 버렸어요. (17쪽)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은 지구별 어느 곳에서 고이 흐르는 옛이야기를 되살립니다. 이 지구별 ‘땅 위쪽 나라’에서 사랑스레 살던 사람들이 누리던 ‘언제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철’이 왜 바뀌었는가를 들려주려는 옛이야기입니다.


  땅 위쪽 나라를 보듬던 두 여신 가운데 딸아이 여신은 땅 아래쪽 나라 남신(남자 신)한테 사로잡혔고, 딸아이 여신은 땅 아래쪽 나라에서 배고픔을 꿋꿋하게 참다가 그만 석류 세 알을 먹습니다. 이 모습을 들켰어요. 땅 아래쪽 나라에 있는 밥을 한 숟갈이라도 먹으면 땅 위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데, 그만 석류 세 알을 먹었다는군요.


  그러나 ‘세 덩이’가 아니라, 석류 한 덩이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알갱이 셋만 먹었기에, 딸아이 여신은 땅 위쪽 나라에서는 아홉 달을 살고, 땅 아래쪽 나라에서는 석 달을 살아야 하는 몸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러니, 딸아이 여신이 땅 아래쪽 나라로 떠나야 하는 석 달 동안, 땅 위쪽 나라에서는 어머니 여신이 슬픔에 겨워 풀도 꽃도 나무도 돋지 않는 추운 겨울이 되었다고 해요.




다시 만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는 뛸 듯이 기뻐했어요. 둘은 예전처럼 정성스럽게 대지를 돌보고 가꾸었어요. 그렇지만 한 해에 한 번, 페르세포네는 하데스 지하 왕국으로 가야만 했어요. 그러면 땅 위는 춥고 어두운 겨울이 되었어요. 그러다 다시 페르세포네가 땅 위로 나오면 온 세상은 봄을 맞는 기쁨으로 가득 찼답니다. (31쪽)



  언뜻 보기에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에서 딸아이 여신이 참 바보스럽네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고작 석류 석 알이라면 조금 더 참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딸아이 여신이 땅 아래쪽 나라로 끌려가서 지내야 하는 석 달 동안 땅 위쪽 나라에 겨울이 흐른다면, 이 겨울도 어느 모로 보면 재미있는 삶자락입니다. 이 땅에는 겨울이 있어서 풀이 시들어 흙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는 겨울이 있어서 온갖 벌레가 겨울에 죽거나 겨울잠을 잡니다. 이를테면, 겨울에는 모기가 몽땅 얼어죽거나 잠들지요. 겨울은 그야말로 ‘쉬는 철’이라고 할까요. 겨울이 있기에 살그마니 한숨을 돌리면서 쉴 만하고, 겨울이 있기에 아이들은 새롭게 ‘눈놀이’를 즐기기도 합니다.


  좋고 나쁨이라는 대목이 아니라, 잘하고 못하고를 가르는 대목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가꾸려는 이야기로 바라본다면 《석류 세 알의 비밀》은 앞으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떤 삶을 지을 때에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들려주려는구나 싶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다시 찾아올 적에 기쁜 그 마음처럼, 여름을 북돋우고 가을에 거두는 즐거운 그 땀방울처럼, 이러면서 다시 맞이하는 겨울에 차분히 쉬는 그 몸짓처럼, 삶을 어떻게 지을까 하고 돌아볼 일이지 싶어요.


  노래하고 꿈꾸며 춤출 수 있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새롭고 즐거운 말을 들려줄 줄 아는 어버이로 살자고 생각합니다. 오순도순 기쁜 웃음으로 아침을 열고, 도란도란 보드라운 자장노래로 저녁을 마무리하자고 생각합니다. 4348.11.1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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