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갖고 싶어 꼬마 그림책방 24
에마 치체스터 클락 지음, 노은정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605



별똥별을 바라보며 내 꿈을 빌기

― 진짜 진짜 갖고 싶어

 에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노은정 옮김

 아이세움 펴냄, 2009.1.5. 8500원



  저녁을 먹고 나서 그림책을 함께 읽은 뒤 촛불을 켜고 책상맡에 둘러앉아서 함께 공부를 합니다. 아이들더러 잠옷으로 갈아입으라 이르고 나서 설거지를 마저 한 다음 이를 닦도록 하고는 손발을 씻깁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아버지가 이를 닦아 줍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앞서 두 아이가 마지막으로 방에서 놀 즈음 나는 겉옷을 걸치고 혼자 조용히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캄캄한 시골집 마당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닐면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비진 고샅길에 켜진 등불은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가 가려 줍니다. 후박나무한테 고맙다고 말하면서 별잔치를 누립니다. 처음 마당에 내려설 즈음에는 제법 많은 별이었다면, 1분이 지나고 2분이 흐르는 동안 더욱 많은 별이 돋습니다. 꽤 많은 별이 돋으며 별잔치를 더 신나게 누릴 즈음 두 아이는 왜 아버지가 방에 안 들어오나 궁금해서 방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다가 마당에서 별 구경을 하는 아버지를 찾아냅니다.


  큰아이랑 작은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별 보러 가나 봐!” 하고 외치면서 서둘러 마당으로 내려서려 합니다. “겉옷.” 하고 넌지시 말하면 “아, 겉옷 입어야지.” 하고 노래하면서 겉옷을 챙겨 걸칩니다. 두 아이가 겉옷을 걸치며 신을 꿰는 모습을 보고는 나는 대청마루로 다시 올라서서 두 아이 장갑을 꺼냅니다.




내가 진짜 눈물까지 흘리며 앙앙거리는 커다란 아기 인형을 구경하던 바로 그때였어요. 아주 별난 게 내 눈에 띄었어요. 조막만한 판다 인형이 진열장에서 팔짝팔짝 뛰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4쪽)



  두 아이하고 마당에 서서 아주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거닐다가 셋이 함께 별똥별을 봅니다. 나는 별똥별을 곧잘 보지만 셋이 함께 별똥별을 보기는 오늘이 거의 처음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참말 때마침 셋이 같은 하늘을 올려다볼 즈음 별똥별이 하늘을 하얗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가르면서 지나갔어요. 큰아이는 이때에 “소원 빌어야지. 별똥별한테 소원 빌면 다 이루어진다고 했어!” 하고 외치느라 막상 큰아이는 제 꿈을 말하지 못 합니다. 얘야, 먼저 네 마음속에 늘 흐르는 꿈부터 읊은 뒤에 그런 말을 해야 했을 텐데.


  그림책 《진짜 진짜 갖고 싶어》(아이세움,2009)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에마 치체스터 클라크 님이 빚은 사랑스러우면서 고운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참말로 참말로 갖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인데, 이 그림책을 보면 큰아이는 우리 집하고 똑같이 ‘누나’이고, 작은아이도 우리 집하고 똑같이 ‘사내’예요. 누나랑 동생 사이라는 대목에서는 똑같은데, 그림책에 나오는 동생은 무척 어려요. 그림책에 나오는 동생은 뭐든 입에 집어넣으면서 우적우적 씹습니다. 터울이 좀 진 사이라고 할까요.



나는 판다 인형을 빤히 보았어요. 판다 인형도 나를 말똥말똥 보았어요. 내가 “진짜 판다 맞아?” 하고 물었어요. 그러자 “네가 진짜이듯 나도 진짜야. 내 이름은 팅크야. 진짜 보기 드문 판다 인형이지.” 했어요. (7쪽)




  하늘을 하얗게 가르다가 사라지는 별님한테 꿈을 빌기를 못 한 큰아이를 달래면서 속삭입니다. “아버지는 꿈을 말했지. 왜 그런지 아니?” “아니, 몰라.” “별똥별이 지나가는 겨를이 짧은 듯하지만 짧지 않아.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꿈을 읊기에 넉넉하도록 지나가지. 그런데, 별똥별한테 꿈을 읊으려면 우리가 늘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서 살아야 해. 늘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서 살기에 언제 어디에서라도 곧바로 내 꿈을 말할 수 있어.” “아, 그렇구나. 벼리도 꿈을 늘 품으면서 살래.”


  그림책 《진짜 진짜 갖고 싶어》에 나오는 큰아이는 어느 날 어머니하고 백화점에 갑니다. 두 사람은 동생이 곧 맞이할 생일잔치에 줄 선물을 고릅니다. 아마 동생은 두 돌쯤 되겠지요? 그런데 이때에 큰아이는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 작은 인형을 봅니다. 게다가 그림책 큰아이는 인형이 저한테 거는 말을 알아들어요. 백화점 한쪽에서 이 아이는 인형하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자, 이제 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든지 입으로 척척 집어넣으면서 우적우적 씹는 동생한테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형을 주어야 할까요? 이 인형만큼은 동생한테 주지 말고 제가 가질 수 있을까요?



“이거 꼭 동생한테 줘야 해요?” 내가 물었지요. “엉뚱하기는! 동생 선물로 산 거잖아!” 엄마가 대답했어요. (10쪽)




  집에 두 아이가 있으면 아마 거의 모든 집에서 엇비슷할 텐데, 나이가 어리고 힘도 여린 동생을 더 살피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집에서나 가장 어리고 여린 사람을 더 살피고 아끼며 보살피니까요. 어리고 여린 사람한테 밥을 가장 먼저 챙겨 주고, 어리고 여린 사람한테 더욱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이에요.


  곰곰이 헤아리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뿐 아니라 우리 집 아이도 다른 모든 집 아이도 ‘첫째’로 태어나건 둘째나 셋째로 태어나건 똑같이 사랑을 받습니다. 몇 째 아이로 태어나든 대수롭지 않아요. 모든 아이는 오롯이 사랑을 받아요.


  그렇지만 큰아이 자리에 들어선 아이들은 ‘나 혼자 오롯이 갖거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요. 《진짜 진짜 갖고 싶어》에 나오는 큰아이로서도 동생을 생각하며 고른 선물이지만, 동생은 뭐든지 입에다 넣기만 하니까 이 인형만큼은 동생 침으로 범벅이 되도록 하지 않고 싶을 수 있어요. 이리하여 생각을 기울입니다. 참말로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꿈을 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이튿날 동생한테 이 인형을 선물로 주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머리를 짜내야 합니다.


  아이는 좋은 생각을 하나 떠올리고, 거의 밤을 새다시피 새로운 선물을 하나 꾸립니다. 동생이 몹시 반가이 여기면서 좋아할 만한 선물을 꾸리느라 잠을 잘 겨를이 사라지지만,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작은 인형을 품에 안고 함께 놀겠다는 꿈을 키우면서 기운을 내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길을 찾으며, 스스로 꿈을 짓는다고 할까요.




“아직 늦지 않았어. 내 손으로 선물을 만들어야겠어. 그런데 뭘 만들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아기는 뭘 좋아할까? 뭘 좋아하지?” 그러다 좋은 생각이 반짝 떠올랐어요! (16쪽)



  셋이 함께 별똥별을 바라본 오늘 밤, 별똥별을 더 찾아내지는 못 합니다. 나는 두 아이 손을 잡고 마을 한 바퀴를 크게 천천히 돌며 밤하늘 별을 내내 올려다보았는데, 쏟아지는 별빛은 실컷 보아도 별똥별은 오늘 따라 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별똥별 하나로 반갑게 여기고 다음 밤에 다시 밤마실을 다니면서 별똥별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책상맡에 켠 촛불을 다시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큰아이는 촛불을 보면서 “촛불에서 별똥별이 보여.”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렇겠구나, 네가 별똥별을 다시 보고 싶다는 꿈을 마음에 담으니 별똥별이 보이겠네. 그런 네 생각처럼 기쁜 꿈을 다시 마음속에 담으면서 포근히 잠자리에 들자. 아침에 새롭게 일어나서 새롭게 노래할 놀이를 헤아려 보자. 우리가 함께 지으면서 참으로 기쁘게 웃고 노래할 멋지고 사랑스러운 꿈을 별똥별한테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대고 빌어 보자. 434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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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카베야 후요우 글 그림, 이유리 옮김 / 산하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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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604



엄마가 나만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카베야 후요우 글·그림

 이유리 옮김

 산하 펴냄, 2003.7.14. 8000원



  내 어릴 적을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어릴 적에 꿈을 품으라고 하는 말을 거의 못 들었습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모두 똑같은 말만 들었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공부해. 공부하면 돼.”입니다. 둘레 어른들은 하나같이 ‘공부’부터 해서 ‘대학교’에 가라고 말했고, 대학교를 마친 뒤에 ‘돈을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가면 ‘네가 하고픈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어린 나는 ‘내가 하고픈 것’을 오늘 이곳에서 바로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언제가 될는 지 모를 까마득한 앞날까지 공부를 하고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고 돈을 벌고 …… 그러고 나서 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꿈’이 아닌 ‘공부’만 하라고 일렀어요.



유치원에 갈 때, 이런 걸 타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봐, 휙휙! (4쪽)




  카베야 후요우 님이 빚은 그림책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산하,2003)를 읽으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 그림책은 아주 어린 동생을 둔 아직 어린 아이가 스스로 꿈을 꾸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로서는 ‘오늘 이곳’에서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꿈으로 꾸고, 이 꿈대로 이루어지기를 애타게 바라요.


  이를테면, 유치원에 가는 길에 ‘하늘걸상’을 타고 휙휙 날아가기를 꿈꿉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주 커져서 이 개를 타고는 하늘을 날아서 돌아다니기를 꿈꿉니다. 유치원에서 아주 커다란 케잌을 샛밥으로 주기를 꿈꿉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말고 살아서 늘 함께 놀아 주기를 꿈꿉니다.



우리 집 강아지 치비가 아주 커져서 하늘을 날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치비 등에 타고, 단숨에 날아서 갈 텐데. (8∼9쪽)



  꿈이란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답다고 느껴요. 꿈이기에 아름답기도 하고, 이 꿈을 떠올리는 동안 마음에 기쁨이 흐르기에 아름답기도 해요. 꿈을 작은 씨앗 한 톨로 마음에 심기도 하기에 아름다우며, 이 꿈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씩씩하게 지으니 아름답지요.


  그래서 나는 내 어릴 적에 내 둘레 어른들이 나한테 ‘공부’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꿈’을 품으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어요. 먼저 꿈이 있어야 공부를 하지, 공부부터 하면서 꿈을 품을 수는 없다고 여겼어요. 이루려는 꿈이 있어야, 이 꿈에 맞는 공부를 찾을 수 있다고 여겼어요. 꿈이 없는 채 공부만 하다가는 머리통만 너무 커져서 ‘꿈이 없는 몸짓’이 되리라 여겼어요.


  어느 모로 보면, 우리 사회에는 꿈이 없는 채 공부만 매달린 사람이 너무 많을는지 몰라요.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는 꿈을 심지 못한 채 공부만 파고든 사람이 지나치게 많을는지 몰라요. 집이든 학교이든 마을이든 아이들이 꿈을 생각하지 못하는 채 공부만 해야 하는 얼거리가 되어 버렸는지 몰라요.




우리 집 목욕탕이 수영장만큼 크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아빠, 엄마, 나리, 치비와 함께 다 같이 목욕할 거야. (19쪽)



  오늘 나는 우리 집 두 아이하고 꿈을 지으려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아이가 가을에 강냉이를 먹고 싶다고 말하면 가을에도 씨앗을 심습니다. 아이가 흙놀이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어디 흙을 퍼 올 만한 데를 헤아려서 수레를 끌고 아이더러 스스로 흙을 자루에 퍼 담아서 뒤꼍에 흙을 실어 날라서 흙놀이터를 마련하자고 합니다. 이러면서 나도 내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하나씩 지어 봅니다. 나 스스로 이루려는 꿈을 종이에 그림으로 그립니다. 내 마음속에서 꿈이 잘 자라기를 바라면서 ‘꿈을 그린 종이’, 그러니까 ‘꿈종이’를 아침저녁으로 고요하게 바라봅니다.



엄마가 나만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러면 말이지, 나는 아주 착한 아이가 될 거야. 동생 나리도 예뻐해 줄 테야. (22쪽)



  그림책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는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에 살며시 안겨서 ‘어머니가 나만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살짝 비춥니다. 아이는 하늘도 날고 싶고, 넓은 집에서 살고 싶고, 할아버지하고 놀고 싶고, 케잌도 실컷 먹고 싶고, 이것저것 해 보거나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데, 이 많은 꿈 가운데 어머니 사랑을 모두 차지하는 나날을 가장 이루고 싶습니다.


  자, 이 아이는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 어떤 말로 이 꿈을 곱게 이루는 길을 밝혀 줄까요? 여러 아이를 낳아서 보살피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면서 ‘너를 하늘처럼 땅처럼 사랑한단다’ 하는 뜻을 알려줄 만할까요?


  그림책을 덮고 생각한다면, 사랑이란 주고 또 주고 거듭 주고 자꾸 주고 꾸준히 주어도 줄지 않아요. 한 사람한테 주는 사랑이든 온 사람한테 주는 사랑이든 끝이 있을 수 없어요. 큰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든 작은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든 ‘둘을 반토막으로 갈라’서 물려주는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한 아이를 바라보며 한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입니다. 다 함께 있어서 기쁜 삶이요, 서로 아끼며 마주할 수 있는 살림이기에 사랑이 새로 샘솟습니다. 아이들아, 너희 어버이는 너희를 너희 숨결 그대로 사랑한단다. 너희 마음 그대로, 너희 넋 그대로, 너희 눈빛 그대로 사랑한단다. 434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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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 - 수학 옛이야기
데미 글.그림, 이향순 옮김 / 북뱅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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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603



‘쌀 한 톨’에 깃든 힘

― 쌀 한 톨 (수학 옛이야기)

 데미 글·그림

 이향순 옮김

 북뱅크 펴냄, 2015.1.30. 13000원



  쌀 한 톨이 있습니다. 벼라고 하는 풀이 맺은 열매를 깎아서 쌀을 얻습니다. 벼 열매인 ‘벼알’, 그러니까 ‘나락’ 겉껍질인 겨를 살짝 깎으면 누런쌀이고, 겉껍질인 겨를 많이 깎으면 흰쌀입니다. 겉껍질을 살짝 깎으면 누런 빛이 감도는 쌀을 얻고, 겉껍질을 많이 깎으면 하얀 빛이 감도는 쌀을 얻어요.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쌀밥은 바로 벼라고 하는 풀이 우리한테 베푸는 고운 선물입니다.


  이 쌀을 알맞게 씻고 불려서 밥을 지을 적에 늘 아이들이 곁에 달라붙으면서 묻습니다. 날마다 먹으면서도 새삼스레 묻고, 늘 바라보면서도 새롭게 묻습니다. “이 쌀 뭐야?”


  이 쌀은 무엇일까요? 참말 이 쌀은 무엇일까요? 쌀이란 무엇이기에 우리한테 밥이 되고, 우리 목숨을 돌봐 주며, 이 땅에 논을 이루어 열매를 맺어 새로운 숨결을 베푸는 선물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배가 부릅니다. 배가 부르면 한결 신나게 뛰어놉니다. 어른도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배가 불러요. 배가 고플 무렵에는 일을 멈추고 밥상맡에 둘러앉아 느긋하게 밥술을 들지요. 밥을 먹는 동안에는 누구나 평화롭고 평등하며 포근합니다.



그곳 백성들은 벼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농사지은 쌀을 거의 모두 왕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6쪽)



  데미 님이 빚은 그림책 《쌀 한 톨》(북뱅크,2015)을 읽습니다. ‘수학 옛이야기’라고 하는 《쌀 한 톨》인데, 이 그림책은 인도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빚었다고 해요. 굶주리는 백성을 못 본 척하면서 궁궐 곳간에 쌀자루를 가득 모아 두기만 한 임금님을 넌지시 나무란 어느 가시내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쌀자루 하나에서 쌀이 떨어져 내리는 걸 동네에 사는 라니라는 소녀가 알아챘습니다. 라니는 재빨리 뛰어가 코끼리 곁을 따라 걸으면서 치마폭에 떨어지는 쌀알을 받았습니다. (13쪽)



  계급이 촘촘히 나뉜 인도 사회에서 가난한 시골마을 가시내는 어떻게 임금님을 넌지시 나무랄 수 있을까요? 게다가 고작 쌀 한 톨로 임금님을 구석에 몰아붙이면서 잘잘못을 일깨울 뿐 아니라, 쌀 한 톨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대목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림책 이야기를 살피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느 임금님이 궁궐 곳간에 쌀자루를 모으면서 ‘굶주림이 들 때를 살펴서 미리 쌀자루를 모으고, 나중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려는 뜻’이라고 밝혔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나라에 굶주림이 돌자 임금님은 곳간을 안 열었다는군요. 나중에 더 큰 굶주림이 찾아들는지 모르는데 섣불리 곳간을 열 수 없다고 말했다는군요.


  임금님 말마따나 올해보다 이듬해에 더 깊고 고단한 굶주림이 찾아들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농사를 짓는 시골사람은 오늘 밥을 먹지 못해 굶주리다가는 그만 목숨을 잃겠지요. 올해에 굶주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듬해에는 ‘일할 사람’이 줄어들 뿐 아니라, ‘일할 힘’도 빠지겠지요. 한 번 굶주리고 나면 이듬해에는 더 굶주리기 마련이고, 그 다음해에는 더욱 굶주릴 수밖에 없어요. 임금님으로서는 ‘나중을 생각하겠다’고 말하면 될는지 모르나, 오늘 굶주리는 사람들로서는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기에 임금님더러 곳간을 열어 달라고 외치지만, 임금님은 이런 목소리를 귀여겨듣지 않아요.




“전하, 상이라니요. 저는 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꼭 그리 하고자 하신다면 저에게 쌀알 한 톨만 주시옵소서.” (16쪽)



  임금님은 밥을 굶은 일이 있을까요? 임금님은 굶주려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드러누워야 하던 날이 있었을까요? 임금님은 농사가 잘 안 되어 곡식을 거의 거두지 못해 슬픈 삶을 스스로 겪은 적이 있을까요? 백성이 굶주릴 적에 임금님은 무엇을 먹으면서 지낼까요?


  곳간을 열지 않아 사람들은 굶주리다가 죽습니다. 이러는 동안 궁궐에서는 잔치도 열리지요. 배고프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 줄 모르니까요. 이웃이 어느 만큼 배고프거나 고단한지 모르니까요.


  이럴 즈음 어느 시골마을 가시내가 ‘왕실 곳간에서 궁전으로 쌀자루를 싣고 가는 코끼리’를 봅니다. 쌀자루를 싣고 가던 코끼리는 ‘가는 길에 쌀알을 흘립’니다. 이름이 ‘라니’라는 가시내는 이 모습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쌀 한 톨만 이녁 치맛자락에 담지요. 그러고는 궁궐로 찾아가서 임금님한테 쌀 한 톨을 바치기로 해요. 코끼리가 흘린 쌀 한 톨을 마음대로 가질 수 없기에 임금님한테 돌려주겠노라 말하면서요.


  자, 임금님은 ‘길에 떨어진 쌀 한 톨을 임금님한테 돌려주겠다’고 밝히는 어린 가시내한테 무엇을 할까요? 임금님은 어린 가시내가 갸륵하다고 여기면서 무언가 선물(상)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갸륵한 가시내는 임금님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임금님은 거듭 무엇이든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해 보라고 해요. 이때에, 어린 가시내는 하루에 쌀 한 톨만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튿날에는 곱으로 두 톨을 주고, 그 다음날에는 다시 곱으로 넉 톨을 주되, 이렇게 서른 날만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해요.


  임금님은 가만히 헤아립니다. 어린 가시내가 그야말로 ‘욕심이 없이 너무 착하기’만 하다고 여깁니다. 코끼리가 싣고 가던 쌀자루에서 흘러내린 쌀알을 치맛자락에 고스란히 담아서 조용히 지나갔으면 더 ‘넉넉히’ 쌀을 얻었을 텐데, 좀 바보스럽기까지 하다고 여깁니다.




9일째 되던 날 라니는 256톨에 이르는 쌀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라니가 받은 쌀은 전부 511톨이었는데, 그건 겨우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양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정직하지만 대단히 영리하지는 않구나. 쌀자루에서 흘러나오는 쌀을 치마폭에 담았더라면 이보다 더 많은 쌀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왕이 생각했습니다. (20쪽)



  쌀 한 톨을 받기로 한 날부터 서른 날이 지난 뒤에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참말 임금님 말대로 라니라는 가시내는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선물을 바랐을까요?


  첫 날에는 한 톨이고, 사흘째에는 넉 톨이며, 닷새째에는 열여섯 톨인 쌀알입니다.  여드레째에는 256이라는 숫자가 되고, 열나흘째에는 8192이라는 숫자가 되어요. 그런데 열여드레째에는 131,072라는 숫자가 되더니 스물이틀째에는 2,097,152라는 숫자가 되어요. 스물여드레째에는 134,217,728이라는 숫자가 되고, 마지막 서른째 날이 되니 자그마치 536,870,912이라는 숫자가 됩니다.


  임금님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어린 가시내하고 다짐을 했기에 이 숫자만 한 쌀알을 모두 선물로 주었고, 서른째 날이 되니 임금님 곳간에 있던 쌀자루는 모두 어린 가시내한테 돌아갔습니다. 어린 가시내는 임금님을 아뢰면서 이 쌀자루는 모두 ‘굶주린 이웃’한테 나누어 줄 생각이라고 밝힙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임금님은 스스로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습니다. 굶주린 사람이 코앞에 있을 적에는 참말 ‘코앞에 있는 굶주린 사람한테 밥을 주어’야 하는 줄 깨닫지요. 쌀 한 톨이 한 달 사이에 ‘궁궐 곳간에 있는 쌀자루’를 모두 비우는 숫자가 되듯이, 굶주림이 이렇게 커진다는 대목을 비로소 알아차리지요.


  아이하고 그림책 《쌀 한 톨》을 함께 읽으면서 숫자놀이를 할 뿐 아니라, 숫자하고 얽히는 삶을 나란히 돌아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읽는 눈길이 아니라 속으로 깃드는 삶을 곰곰이 읽을 줄 아는 눈길이 될 때에 비로소 참다운 살림이 되고 사랑이 되는 얼거리를 되새겨요. 곳간에 쟁이기만 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복지’도 될 수 없다는 대목을 생각하고, 작은 씨앗 한 톨을 심어서 새롭게 거두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헤아립니다. 434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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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형제 춤추는 카멜레온 61
알렉시스 디컨 글.그림,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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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1



새끼 새와 새끼 악어는 서로 형제가 되어

― 우리는 형제

 알렉시스 디컨 글·그림

 최용은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0.12. 11000원



  알렉시스 디컨 님이 빚은 그림책 《우리는 형제》(키즈엠,2012)는, 어느 날 알에서 나란히 깨어난 두 짐승이 서로 돕고 아끼면서 일구는 삶을 차분히 그립니다. 그런데 두 알은 모두 어미가 없이 깨어나요. 어미는 온데간데없이 알만 덩그러니 나란히 있다가 깨어납니다. 게다가 한 알에서는 새끼 새가 깨어나고, 다른 한 알에서는 새끼 악어가 깨어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림책이니까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요? 참말 새알이랑 악어알이 나란히 있다고 깨어나기도 할까요?


  그림책을 읽는 아이한테는 새랑 악어가 두 알에서 나란히 깨어나는 일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아이는 왜 새알하고 악어알이 나란히 있다가 깨어나는가를 따지거나 묻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다가 알이 깨어난다고만 여깁니다. 두 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깨어나는 모습만 물끄러미 들여다보아요.



얼마 뒤 알에서 아기 새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곧 아기 악어가 태어났지요. “네가 내 동생이구나.” 새가 말했어요. “형, 나 배고파.” 악어가 말했지요. (4∼5쪽)



  새알이든 악어알이든 모두 알입니다. 새이든 악어이든 모두 새로운 목숨입니다. 어린 짐승은 모두 ‘아기’예요. 새끼 새이니 더 귀엽거나 새끼 악어이니 무섭지 않습니다.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보면, 먼저 깨어난 새끼 새가 나중에 깨어난 새끼 악어를 보면서 “네가 내 동생이구나” 하고 말합니다. 나중에 깨어난 새끼 악어는 먼저 깨어난 새끼 새를 보면서 “형, 나 배고파” 하고 말해요. 둘은 그냥 동생이고 형입니다. 둘은 한자리에서 깨어난 형제요, 앞으로 사이좋게 삶을 지을 살가운 곁지기라고 할 만합니다.



“형,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가져왔어.” “내가 먹기에는 너무 크다. 네가 잘게 씹어서 줄래?” 먹이를 다 먹고 난 새와 악어는 두 눈을 끔쩍이며 주이를 둘러봤어요. “형, 나 추워.” “응, 나도.” (10∼11쪽)




  새끼 새하고 새끼 악어는 서로 돕고 기대고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짐승 눈치를 볼 까닭은 없습니다. 두 새끼 모두 어미가 없이 저희끼리 깨어났고, 저희끼리 먹이를 찾으며, 저희끼리 둥지를 지어요.


  악어는 따로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만, 새끼 새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둥지를 짓습니다. 어미 새가 곁에 없어도 몸속에 깃든 숨결에 따라 저절로 집짓기에 나섭니다. 새끼 악어도 어미 악어가 없으니 어떻게 삶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형으로 삼는 새끼 새가 둥지를 지을 적에 이 일을 거들어요. 왜냐하면 밤에 춥거든요. 둥지가 있으면 한결 포근히 잠들 수 있어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아이들하고 읽으면서 ‘말도 안 돼!’라거나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고 묻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저 차분히 이 이야기를 따라갈 노릇입니다. 새는 새끼리만 살아야 하거나 악어는 악어끼리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섣불리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두 어린 목숨이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숨결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조용히 읽어야 합니다.



다시 날이 밝았어요. “저것 봐, 정말 예쁘다.” 밝아 오는 해를 보며 악어가 말했어요. “응, 눈부셔. 우리 노래할래?” 따뜻한 햇살이 비치자 새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새가 즐겁게 노래를 불렀어요. 악어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지요. (12∼14쪽)




  새끼 악어는 먹이를 찾아서 나릅니다. 새끼 새는 노래를 불러 어린 동생을 타이르고 달래며 북돋웁니다. 새끼 새는 날갯짓을 익히는데, 새끼 악어도 날아올라 보려고 애씁니다. 새끼 악어는 물에 둥둥 뜨면서 노는데, 새끼 새도 불에 둥둥 뜨면서 함께 놀려고 합니다.


  그래요, 사랑입니다. ‘난 못 해!’ 하고 못을 박지 않습니다. 서로 무엇을 좋아하거나 즐기는가를 가만히 살펴서 함께 하려고 합니다. 서로 무엇을 잘 하는가를 곰곰이 살펴서 솜씨를 키우거나 살찌웁니다.


  이렇게 두 어린 목숨은 무럭무럭 자라고, 어느덧 씩씩하고 의젓한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두 어린 목숨이 어른이 된 어느 날, 다른 숲으로 마실을 갔는데, 다른 숲에서 ‘처음으로 어떤 모습’을 봅니다.


  네, 한쪽에서는 새끼리 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악어끼리 노는 모습을 보아요. 새끼일 적에 함께 깨어나서 자란 새랑 악어는 ‘저희 둘이 그저 같은 형제’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대목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른이 된 새는 다른 새가 모인 나무로 날아가고, 어른이 된 악어도 다른 악어가 우글거리는 늪으로 날아가요.



둘은 함께 하늘을 나는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물 위에 통나무처럼 둥둥 떠 있는 법도 연습했지요. 나무에 오르는 법도 연습하고, 멋진 춤을 추는 법도 연습했어요. 날씨가 좋을 때는 바위에 올라가 따뜻한 햇볕을 쬐었어요. 그리고 추울 때는 서로 꼭 붙어 몸을 따뜻하게 했지요. “형이 우리 형이라서 참 좋아.” 악어는 곧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18∼19쪽)




  새 무리에 낀 ‘새’는 이곳에서 어떻게 지낼까요? 악어 무리에 낀 ‘악어’는 그곳에서 어떻게 살까요? 새라는 모습으로 태어났으니 새라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할까요? 악어라는 모습으로 태어났으니 악어라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할까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는 아이한테 조용히 묻고, 이 그림책을 함께 볼 어른한테도 넌지시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눈으로 새랑 악어를 바라보는지 묻습니다. 새랑 악어는 서로 어떤 사이인가를 묻습니다. ‘형제’란 누구이고 ‘동무’나 ‘이웃’이란 누구이며, ‘한식구’란 누구이냐고 물어요. ‘적’이나 ‘맞잡이’나 ‘남’이란 누구인가 하고 묻습니다. 어떻게 살 적에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 하는 대목을 묻습니다. 겉모습으로 이웃을 살피려 하는지, 속마음으로 동무를 사귀려 하는지, 사랑으로 한식구를 돌보거나 아끼려 하는지, 스스로 기쁨으로 누릴 삶이란 무엇이라 할 만한지를 묻습니다.


  겉모습이 같으니 형제이거나 동무이거나 이웃일까요? 겉모습이 다르니 너랑 나는 그저 남이면서 적이나 맞잡이 사이로 지내야 할까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을 틈틈이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에 잠깁니다. 어버이가 낳는 아이는 어버이한테 저마다 사랑스럽습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도 사랑스럽고, 이웃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나도 아름다운 사람 가운데 하나이고, 나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몸짓이요 말짓이어도 얼마든지 서로 아름다운 넋입니다. 서로 다른 삶이고 살림이어도 얼마든지 서로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인종이나 나라를 따질 까닭이 없이 모두 ‘지구별 형제’입니다. 서로 따사로이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할 반가우면서 기쁜 ‘지구별 형제’입니다. 434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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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삐익! 출발! 춤추는 카멜레온 46
크리스티 뎀프시 지음, 아이생각 옮김,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그림 / 키즈엠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9



아이들한테 자동차는 얼마나 멋진가

― 부릉부릉! 삐익! 출발!

 크리스티 뎀프시 글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그림

 아이생각 옮김

 키즈엠 펴냄, 2012.8.10. 1만 원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뒤부터 ‘자동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장만합니다.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으면 ‘자동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장만하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나로서는 자동차라고 하는 탈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았으니까요.


  작은아이는 자동차 장난감뿐 아니라 자동차를 몹시 좋아합니다. 머스마란 누구나 자동차를 이렇게 좋아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다가,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탈거리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는데, 더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적에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탈거리를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인 나도 어릴 적부터 자동차 같은 탈거리를 좋아하고, 손가락으로든 진흙으로든 돌멩이로든 나무토막으로든 자동차 놀이를 했습니다. 이러한 결이 그대로 아이한테도 흐를 테며, ‘내 몸을 쓰지 않고’ 빠르게 달리거나 날아오르거나 헤엄치는 탈거리란 참으로 많은 아이들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겠지 하고 느낍니다.




여기는 자동차 경주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입니다. (2쪽)



  크리스티 뎀프시 님이 글을 쓰고,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님이 그림을 빚은 《부릉부릉! 삐익! 출발!》(키즈엠,2012)을 장만해서 아이들하고 읽습니다. 자동차 장난감으로 온 하루를 보내는 작은아이는 이 그림책을 보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냅니다. 온갖 자동차가 나오니 재미있고, 온갖 자동차가 온갖 곳을 마음껏 달리니 즐겁습니다. 아직 글씨를 모르더라도 그림만으로도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아직 글씨를 알고 싶지 않더라도 그림으로도 넉넉히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마음껏 놉니다.


  그림책이 왜 아름답거나 즐거운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오직 그림으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그림 한 점으로 온누리 아이들이 서로 동무가 되어 즐거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대목을 손꼽을 수 있어요.


  흔히 ‘사진’이나 ‘사진책’만 놓고서 ‘국경을 넘는 마음’이 흐른다고 하는데, 그림책을 놓고도 얼마든지 나라도 겨레도 뛰어넘습니다. 말을 몰라도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사이에 놓고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가파른 길을 쌩쌩 달립니다. 어두컴컴 굴도 문제없군요. (6쪽)



  자동차가 잔뜩 나오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는 아직 자동차가 없습니다. 나는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머잖아 우리 집에도 자동차를 장만해 보자고 꿈을 꿉니다. 앞으로는 ‘무인자동차’도 나올 테고,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무인자동차’를 탈 수 있을 테며, 이런 자동차가 나올 때쯤에는 자동차 값도 무척 쌀 뿐 아니라 보험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느껴요. 아니, 앞으로는 찻길만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하늘을 날고 바닷속을 헤엄치는 재미난 자동차가 나올 테지요. 그때에는 우리 집 온 식구가 재미난 자동차를 타고 찬찬히 이곳저곳 누비면서 새로운 이웃도 만나고 새로운 마을도 찾아가면서 삶을 더 재미나게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일등은 달팽이 선수가 차지했네요. 정말 축하합니다! (25쪽)





  아직 지구별에는 기름만 먹는 자동차가 아주 많습니다. 기름만 먹는 자동차로는 찻길만 달릴 테지만, 기름이 아닌 햇볕도 먹고 바람도 먹으면서 ‘깨끗하고 끝없이 쓸’ 수 있는 자동차가 나오면, 이러한 자동차는 시골 할매와 할배도 느긋하게 탈 만하리라 생각해요. 걷기 싫어서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 힘든 몸이나 나이가 되는 사람도 자동차를 즐거이 타면서 어디로든 마음껏 다니는 새로운 앞날이 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림책 《부릉부릉! 삐익! 출발!》은 온갖 자동차가 ‘빨리 달리기 경주’를 하는 줄거리를 보여주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더 빨리 달리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달팽이 자동차’가 으뜸을 차지한다고 하는 마무리처럼, 그야말로 수많은 자동차가 지구별 구석구석을 찬찬히 달리면서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고, 스스로 아름다운 숨결이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꿈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한국에서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찻길에서 좀 느긋하고 차분할 수 있어도 아름답겠지요? 끼어들기라든지 마구 헤집으면서 앞지르기라든지 골목길에서 함부로 빵빵거리며 놀래킨다든지, 이런 일은 좀 그만두고, 서로 아끼면서 함께 삶을 즐기는 자동차가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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