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구름이 반달 그림책
이해진 글.그림 / 반달(킨더랜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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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9



구름은 늘 바람 타고 논단다

― 커다란 구름이

 이해진 글·그림

 반달 펴냄, 2015.11.20. 13000원



  탁 트인 곳에 서면 가슴이 뻥 뚫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저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어서 시원하기도 하고, 저 먼 데에서 흘러서 이곳을 거친 뒤 다른 곳으로 떠나는 구름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탁 트인 곳이 무척 드뭅니다. 높은 건물이 끝없이 서고, 건물이 없으면 송전탑이나 전봇대가 서며, 하늘로 띄우는 광고풍선까지 있어요. 넉넉히 하늘을 바라보기 어려운 사회이고, 홀가분하게 연을 날리면서 하늘바라기를 하기 어려운 터전입니다.


  그러고 보면, 참말 연날리기를 할 수 없는 한국 사회입니다. 도시는 탁 트인 곳이 드물고, 아이나 어른 모두 홀가분하게 내달릴 만한 운동장이나 광장조차 누리기 어려워요. 골목은 자동차가 빼곡한데다가 오토바이가 싱싱 달리기에 마음껏 달리기도 어렵습니다. 시골로 가야 비로소 연을 날릴 만한 하늘을 찾을 수 있고, 마음껏 달릴 만한 고샅을 누릴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와 함께 시골로 가서 살려고 하는 어버이는 매우 드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하루 빨리 도시로 가야만 한다고 여기는 사회 얼거리입니다.




커다란 구름이, 따그르르륵 바람이 불자, 천천히 미끄러졌다. (2∼6쪽)



  이해진 님이 빚은 그림책 《커다란 구름이》(반달,2015)를 읽습니다. 옆으로 길쭉한 그림책입니다. 마치 파노라마사진기로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나누어 주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무릎에 살며시 얹고 읽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읽기 어렵거든요. 또는 어버이가 이 책을 무릎에 얹고서 아이한테 읽힐 수 있을 테지요. 아이하고 방바닥에 엎드려서 서로 한손으로 책을 붙잡고 넘길 수 있을 테고요.



이번엔 조막만 한 구름이, 빨래가 펄럭펄럭하니까, 종 종 종 종 간다. (8∼12쪽)




  구름 한 조각이 없는 하늘은 새파랗게 맑습니다. 구름조각이 많은 하늘은 햇살이 비추다가 숨다가 합니다. 구름이 넓게 퍼진 하늘은 어둡거나 우중충합니다. 여름에 구름이 넓게 퍼지면 시원하고, 겨울에 구름이 넓게 퍼지면 춥습니다. 여름에 구름이 한 조각조차 없으면 무덥고, 겨울에 구름이 한 조각마저 없으면 포근합니다.


  우리 하늘에는 어떤 구름이 찾아들까요? 작은 구름하고 큰 구름이 있을 테고, 몽실몽실 피어나는 구름이 있을 테며, 길쭉길쭉 뻗는 구름이 있을 테지요. 보들보들 양털이나 새털 같은 구름이 있고, 커다란 붓으로 힘차게 꺾거나 휘두른 듯한 구름이 있으며, 솜사탕이나 눈사람 같은 구름이 있어요. 하얀 구름이랑 잿빛 구름이랑 먹빛 구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를 머금은 구름하고 눈을 품은 구름이 있어요. 비구름은 온누리를 골고루 촉촉히 적십니다. 비구름은 온누리에 있는 풀과 나무를 살찌워서 숲을 더욱 푸르게 보듬어 줍니다. 비구름이 찾아오기에 사람도 짐승도 풀벌레도 이 땅(들판)에서 맛난 밥을 얻어요. 겨울에는 눈구름이 찾아와서 온누리를 하얗게 덮습니다. 겨울에는 모쪼록 느긋하게 쉬면서 아이들하고 집에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라는 뜻입니다. 눈구름이 눈을 펑펑 쏟으면 구태여 일터에 가지 말고 집 둘레를 놀이터로 삼아서 눈놀이를 하라는 뜻입니다.



이번엔 아주아주 커다란 구름이 아주아주 커다래서 안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22쪽)




  구름을 보는 사람은 바람을 함께 봅니다. 저 커다란, 또는 저 조그마한 구름이 사뿐사뿐 부드럽거나 거칠게 날아가는 모습을 잘 살피면 바람이 어떻게 부는가를 읽을 만합니다.


  구름을 읽기에 바람을 읽는다면 날씨를 읽습니다. 구름 흐름을 살펴서 날씨를 살핀다면 날씨를 잘 살필 줄 압니다. 예부터 어른들은 구름하고 하늘하고 바람을 헤아리며 날씨를 알았고, 예부터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함께 구름이며 하늘이며 바람을 헤아리면서 삶을 헤아리는 슬기로운 눈썰미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림책 《커다란 구름이》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다가 책을 덮고는, 자전거를 꺼내어 셋이 함께 들마실을 갑니다. 자전거로 논둑길을 달리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넓게 펼쳐진 하늘에 어떤 구름이 걸렸는가를 살핍니다. 겨울에는 하늘빛이 여름이나 가을이나 봄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살핍니다. 자전거로 논둑길을 달리는 동안 철마다 다른 바람맛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 시골에서 온몸으로 구름을 사귀고 하늘을 마주하면서 날씨를 읽기로 합니다.




“비 온다!” 소리치더니 (28쪽)



  언제나 따사로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기에, 이 마음으로 구름을 살핀 눈길로 그림책 《커다란 구름이》가 태어나는구나 싶습니다. 이 같은 마음으로 꽃을 살피면 들꽃을 이야기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있어요. 이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살피면 ‘우리 마을’ 고운 사람들이 엮는 사랑스러운 살림살이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쓸 수 있어요.


  구름은 늘 바람을 타고 놉니다. 구름을 지켜보는 사람은 구름하고 한마음이 되어 꿈속에서 훨훨 날아 함께 바람을 타고 놀아요. 바람이 따스히 불어 숲을 북돋우고, 바람이 차갑게 불어 숲이 잠듭니다. 따스한 마음이 되어 구름을 사랑하고, 이제 넉넉한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하늘도 땅도 별도 모두 아끼는 숨결로 거듭납니다. 4348.1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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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5-12-07 08:45   좋아요 0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재인 구름에 대한 동화책이군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숲노래 2015-12-07 08:47   좋아요 1 | URL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고 즐겁게 자꾸 보는 그림책이 되리라 느껴요.
어른도 즐겁게 볼 만한 멋진 그림책이고요 ^^

Clou:Do 2015-12-07 09:26   좋아요 0 | URL
자꾸 보고 싶은 책이 가장 좋은 책인거 같아요 ㅎ 전 만화책은 자꾸 보고 싶더라구요 ㅎ

숲노래 2015-12-07 09:38   좋아요 1 | URL
아름다운 만화책은 그야말로 두고두고 읽어요.
저도 제가 즐겁게 읽은 만화책은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

Clou:Do 2015-12-07 09:48   좋아요 0 | URL
그 만화책들 소개해 주시면 좋겠네요 ㅎㅎ 기다려봅니다 ㅎ

숲노래 2015-12-07 11:03   좋아요 1 | URL
만화책 이야기는 꾸준히 올려서
왼쪽 게시판을 보시면
그동안 올린 글을 찾아보실 수 있는데,
새해에는 `어린이 청소년 추천 만화책` 이야기를
새롭게 써 보려고도 생각해 봅니다 ^^

Clou:Do 2015-12-07 11:4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모바일로만 이용을 하다보니 못보고 있었네요. ㅎ 모바일 앱이 좀더 구성이나 기능이 바뀌면 좋겠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5-12-08 00:0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어쩌면 낡은 세대일 수 있어서
컴퓨터가 아니면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
 
제미 버튼 - 문명을 거부한 소년
앨릭스 바즐레이 지음, 제니퍼 우만.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 다섯수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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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7



‘야만스러운 원시인’한테 ‘진보 문명’ 가르치기

― 제미 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

 엘릭스 바즐레이 글

 제니퍼 우만·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다섯수레 펴냄, 2013.6.25. 12000원



  그림책 《제미 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다섯수레,2013)은 1830∼1832년에 있던 일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무렵 영국에서는 비글호라는 배가 남미로 떠났고, 남미 끝자락에 있는 티에라델푸에고라는 섬에 닿았으며, 이때에 ‘영국 선원’은 ‘섬사람’을 ‘야만스러운 원시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영국 선원은 이곳 섬사람 가운데 ‘오룬델리코’라는 아이를 영국으로 데려가서 ‘영국 신사’로 키우기로 합니다. 이 아이 어버이한테 진주로 빚은 단추를 주고 아이를 데려가요.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이 아이를 ‘제미 버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섬마을 아이는 영국에서 영국 상류사회 교육을 받았고 1832년에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해요. 자, 섬마을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국에서 ‘영국 상류사회 교육’을 받아 ‘영국 신사’가 되도록 이태 남짓 이것저것 배운 아이는 고향 섬마을로 돌아가서 무엇을 했을까요?



먼 옛날, 아주 먼 섬에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밤이면 섬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로 올라가 별을 보았습니다. 파도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 건너편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2쪽)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다니지 않습니다. 큰아이는 여덟 살을 살며 학교도 학원도 발을 한 차례조차 디디지 않습니다. 학교나 학원을 안 다니는 우리 집 두 아이는 ‘학교 사회’나 ‘여느 사회’ 굴레를 쓸 일이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우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습니다. 신문도 잡지도 따로 보지 않으며, 인터넷으로 퍼지는 온갖 정치 얘기나 사회 얘기나 경제 얘기를 듣지 않고, 스포츠 얘기나 연예인 얘기도 듣지 않아요. 우리 집 아이뿐 아니라 나도 요즈음 연예인이나 가수 이름을 하나도 모릅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시골사람으로서 늘 고무신을 신습니다. 우리 마을 할매와 할배도 늘 고무신을 신지만, 읍내로 마실을 가실 적에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구두를 신으셔요. 그래서 우리 식구는 마을 어르신을 읍내에서 뵐 적에는 좀처럼 못 알아봅니다. 마을에서 뵐 적하고 차림새나 입성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시골 어르신은 마을이나 면이나 읍에서도 으레 시골말을 씁니다. 나이가 젋은 시골 어른은 마을에서는 시골말을 써도 면이나 읍이나 도시로 나가면 시골말이 아닌 표준말로 바꾸어서 쓰려고 합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나 푸름이는 시골에서도 시골말을 잘 안 쓰려 하고, 학교에서는 으레 서울 표준말을 쓸 뿐 아니라, 시골을 떠나서 다른 고장으로 가면 시골말을 꽁꽁 가두고 서울 표준말을 ‘얌전히’ 쓰려고 애씁니다.




방문객들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자기들 나라로 소년을 초대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 말을 배우고 발달된 문명 세계를 경험해 보렴.” (6쪽)



  그림책 《제미 버튼》에 나오는 ‘제미 버튼’은 섬마을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나가 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이러한 꿈대로 섬마을 아닌 먼먼 곳으로 배를 타고 갈 수 있어요. 섬마을에서는 ‘영국사람이 말하는 옷’을 입지 않고 살았으나, 배에서 내려 영국에 닿으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양복’이라 일컫는 옷을 점잖게 빼입고 돌아다녀요.


  섬마을 아이 제미 버튼은 다른 영국사람하고 똑같이 양복을 갖추어 입고 모자를 쓰고 구두를 꿰고 지팡이를 한손에 걸치기로 합니다. 영국 상류사회 사람들이 가는 극장에 가서 오페라 같은 노래도 듣고, 영국 여왕와 국왕도 만납니다. 영국사람이 쓰는 말(영국말 또는 영어)을 배우고, 영국 사회를 이모저모 둘러봅니다. 아이는 섬마을 사람다운 살빛이 차츰 사라지면서 영국사람하고 똑같은 말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삶이 됩니다.




사람들은 제미 버튼을 태양보다 밝은 빛이 있는 곳에도 데려가고, 파도 소리만큼 달콤한 음악이 있는 곳에도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보다 더 화려하게 꾸민 왕과 왕비도 있었습니다. (26∼30쪽)



  학교에 안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두고 이웃에서는 ‘앞으로 사회 생활을 어떻게 시키려고 그러느냐?’ 하고 묻곤 합니다. 이때에 나는 가볍게 대꾸합니다. ‘아이가 왜 꼭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느냐?’ 하고 되묻지요. 아이가 앞으로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삶으로 가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아이한테 꿈을 심어서 꿈을 이루는 길을 스스로 슬기롭고 즐겁게 가도록 할 때에 삶이 즐거울는지, 아니면 서울에 있는 손꼽히는 대학교를 마쳐서 서울에 있는 연봉 높은 큰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을 잘 받아야 즐거운 삶이 될는지 되묻습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마음껏 뛰놀면서 흙을 밟고 구름을 노래하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가 어릴 적에 놀이가 아닌 학원 공부와 교과서 시험공부만 해야 한다면, 이 아이한테 삶이란 무엇이 될는지 넌지시 물어봅니다.


  삶을 가르치는 학교라면 얼마든지 아이하고 함께 이 학교를 다닐 만하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들려주는 학교라면 얼마든지 아이하고 같이 이 학교에서 배울 만하다고 느낍니다. 꿈을 키우는 학교라면 얼마든지 아이하고 나란히 이 학교에서 오순도순 생각을 키울 만하리라 느껴요.


  임금님 이름을 외거나 전쟁 발자취를 살피는 일이 ‘역사 공부’라고 느끼지 않아요. 문법을 배워야 ‘말’을 배운다고 느끼지 않아요. 사람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사람이 살아갈 길을 내다보는 눈길을 틔울 때에 비로소 공부라고 느껴요.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나무를 살뜰히 아끼며, 보금자리를 알뜰히 가꾸는 삶일 때에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거듭나는 공부라고 느껴요.




제미 버튼은 가장 높은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에 올라가 파도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람 냄새를 맡고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 저쪽을 가만히 바라보며 바다 건너 세상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속삭였습니다. “잘 자.” (42쪽)



  그림책 《제미 버튼》에 나오는 아이는 1830년에 고향 섬마을을 떠난 뒤 1832년에 고향 섬마을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영국 사회에서는 이태 남짓 이 아이한테 영국말을 가르치고 영국 문화와 문명과 사회를 가르쳤으니, ‘야만스러운 원시인’ 티를 벗고, 섬마을 다른 사람들한테 ‘진보한 문명’을 퍼뜨리는 길잡이가 되겠거니 하고 여겼다고 해요.


  제미 버튼은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나 고향 섬마을에 닿아서 배에서 내린 뒤, 맨 처음에 옷부터 벗어던졌다고 합니다. 이태 남짓 이 아이 몸을 감싸던 ‘영국 양복’은 가볍게 벗어던지고 맨몸(알몸)으로 돌아갔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영국말을 버리고 ‘섬마을 사람들 말’을 되찾으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진보한 영국 문화와 문명과 사회’를 퍼뜨리는 일은 한 가지조차 안 하면서, ‘야만스러운 원시인’ 모습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려 했다고 해요.


  그림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문명과 문화란 무엇일까요? 야만이나 원시란 무엇일까요? 교육이란 무엇이고, 진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 곁에 있는 이웃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들려줄 적에 서로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람’으로서 ‘슬기로운 몸짓’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고 할 만할까요? 한국 사회는 ‘진보한 문화나 문명이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아이들은 한국 어른들한테서 즐거운 삶이나 고운 사랑이나 푸른 꿈을 배울 수 있을까요? 4348.1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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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원시인 크로미뇽 웅진 세계그림책 32
미셸 게 지음, 이경혜 옮김 / 웅진주니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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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6



새롭게 놀면서 문득 그림을 그린 뒤에

―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

 미셸 게 글·그림

 이경혜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0.5.30. 8000원



  아스라히 먼 옛날에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누렸을까요. 2000년대를 사는 오늘 이곳에서 이천 해나 삼천 해 앞서 삶을 어느 만큼 헤아릴 만할까요. 또는, 이만 해나 삼만 해 앞서 삶을 어느 만큼 돌아볼 만할까요.


  미셸 게 님이 빚은 그림책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웅진주니어,2000)은 ‘크로마뇽’이라고 일컫는 옛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오직 사냥으로 먹을거리를 찾았다고 여기는 먼 옛날, 사내들이 사냥터로 나가고 가시내와 어린이만 남은 동굴에서 ‘크로미뇽’이라는 꼬마 원시인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크로미뇽은 뼈를 빨아먹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 대신에 크로미뇽은 뼈를 입에 대고 “후!” 부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 바위에 손자국이 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7∼8쪽)




  크로미뇽은 ‘뼈다귀 속’을 쪽쪽 빨아먹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크로미뇽은 뼈다귀 속에 있는 것을 후 불어내어 ‘손바닥 무늬 찍기’ 놀이를 합니다. ‘먹기’에만 모든 마음을 쏟지 않아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생각하며, 새롭게 할 만한 일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요.


  이무렵 다른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서 추위를 이기며 아이를 낳는 일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크로미뇽도 똑같이 밥을 먹고 추위를 견디기를 바라지만, 먹고 입고 자는 데에서 그치는 삶이 아닌, 새로운 일거리나 놀잇거리를 찾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눈밭을 헤치면서 바위마다 손무늬를 척척 찍으면서 다니고, 손무늬를 척척 찍으면서 다니다가 매머드를 보았으며, 바위마다 손무늬를 찍었기에 눈으로 하얗게 뒤덮은 숲속에서도 손쉽게 동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매머드는 나무를 겨우 다 먹어치워요. 크로미뇽이 바위 밑에서 빠져나와 보니 벌써 밤이에요. 바위에 찍어 놓은 손자국 덕분에 동굴로 돌아가는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어요. (17∼18쪽)



  아이들은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아이들은 언제나 놉니다. 먼먼 옛날에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데리고 사냥터에 가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직 빨리 달리지 못하고 힘이 세지 못하니, 오히려 사냥감한테 사로잡힐 수 있겠지요.


  오늘날 아이들은 집이나 마을에서 놀기보다 학교나 학원을 더 오래 다녀야 하는데, 아무리 학교나 학원을 오래 다녀야 하더라도 아이들은 틈을 쪼개어 놉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흔히 노닥거리기 마련이요, 때때로 공부나 수업을 빼먹으며 놀기도 해요. 아이한테서는 놀이를 빼앗을 수 없고, 어느 모로 본다면 아이한테서 놀이를 빼앗는 일은 끔찍한 짓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살피면 으레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시키지 않으나 그림을 그리며 놀아요. 서너 살 아이도 예닐곱 살 어린이도 열서너 살 푸름이도 모두 그림놀이를 쉽게 즐깁니다. 교과서나 공책에 끄적거리는 낙서도 어느 모로 보면 모두 그림이에요. 아이들 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요,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가 드러나는 그림이지요.




크로미뇽은 석탄 조각으로 바위에 그림을 그려요. 마침 사냥을 나간 아저씨들이 아무것도 못 잡고 빈손으로 돌아와요. (21쪽)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에 나오는 크로미뇽은 ‘굴러다니는 석탄쪼가리’를 들고서 동굴 벽에다 매머드를 그립니다. 사냥하러 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아저씨들은 크로미뇽이 벽에 그린 그림을 보고는 ‘이 아이가 매머드를 보았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아이는 어른들을 이끌고 매머드를 마지막으로 본 데까지 갑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매머드를 본 자리에 수북히 쌓인 매머드 똥을 보았고 저 먼 곳에서 매머드를 찾아냅니다.


  이윽고 어른들은 커다란 매머드를 사로잡습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매머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설마 이 아이가 매머드를 보았을라구?’ 하면서 못 믿었을 테지요. 왜냐하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가 매머드 모습을 척척 그리니 이 아이가 사냥감을 찾아낸 큰일을 해냈다고 깨달아요.


  다만, 아이는 어른들한테서 칭찬을 받으려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도 함께 사냥터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던데다가, 석탄 쪼가리라든지 뼈다귀 속에 있는 것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줄 알아챘기에 그림을 그려요. 어른들은 매머드를 잡아서 가죽이랑 털을 벗기고 뼈를 바르고 살점을 가르기는 했지만 꼬리는 챙기지 않아요. 크로미뇽은 즐겁게 꼬리를 챙기고는, 이 꼬리를 붓으로 삼아요. 다른 어른과 아이는 매머드 고기를 실컷 먹고 잠든 뒤, 아이는 매머드 꼬리로 빚은 붓으로 벽에다가 매머드 그림을 다시 멋지게 마무리지어 놓습니다.




크로마뇽인들은 다시 힘을 되찾아요. 매머드의 뼈를 가지고 도구를 만들고, 털가죽을 가지고 담요도 짜요. 크로미뇽은 꼬리를 가지고 붓을 만들어요. (35∼36쪽)



  오늘날까지 남은 동굴 벽그림은 누가 언제 어떻게 그렸는지까지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어요. 아스라히 먼먼 옛날에도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다는 대목을 알 만하고, 아스라히 먼먼, 멀디먼, 머나먼 옛날에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하루를 즐겁게 누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대목을 알 만해요.


  똑같은 하루가 아닌 새로운 하루를 바랐기에 그림놀이를 떠올렸고, 그림놀이를 하면서 짐승 꼬리털을 붓으로 삼을 만하다고 알아차렸으며, 이곳저곳에 즐겁게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언제나 새롭게 놀려고 꿈을 키웁니다. 이런 놀이도 하고 저런 놀이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놀이 하나가 바탕이 되어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작은 놀이 하나에서 비롯한 새로운 생각은 시나브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흐릅니다. 4348.11.2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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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 키즈엠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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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3



‘1227미터짜리 집’ 꼭대기로 피자 배달을 하라고?

― 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1.30. 12000원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 같은 큰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언제나 앞만 보고 걷습니다. 다른 곳을 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에 앞을 안 보다가는 다른 사람들한테 부딪히기 일쑤이고, 발도 곧잘 밟힙니다. 서울 같은 큰도시는 거님길이 좁고, 버스나 전철을 탈 적에도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리는데다가, 한눈을 판다 싶으면 내릴 곳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게도 많고 집이나 건물도 많은 서울입니다. 사람이 많으니 자동차도 많은 서울이요, 찻길도 넓은 서울이에요. 이런 서울에서는 하늘 볼 겨를이 없습니다. 북적거리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늘을 안 보기도 하고, 애써 하늘을 보려고 해도 건물이나 전깃줄에 가로막힙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틈으로 하늘을 살펴보더라도 그저 새카맣거나 뿌옇기에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친 뒤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돌아올 적에는 버스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너덧 시간을 달리는 버스에서 내내 하늘을 보다가 버스를 내리면,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실컷 올려다봅니다. 이 파란 하늘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가르는 새를 보고 싶었다고, 마음속으로 노래합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벼락 씨의 집. 모으고 모아서 부자가 된 차곡 씨의 집. (1∼2쪽)




  제르마노 쥘로 님이 글을 쓰고, 알베르틴 님이 그림을 그린 《높이 더 높이》(키즈엠,2012)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자동차와 짐차와 삽차를 좋아해서 날마다 자동차 놀이를 하는 작은아이하고 읽을 마음으로 이 그림책을 장만했습니다. 작은아이뿐 아니라 큰아이도 이 그림책을 재미있어 하는데, 큰아이는 늘 그림을 그리며 놀기 때문에 ‘높이 더 높이’ 오르다가 그만 와르르 무너지는 줄거리가 흐르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무척 아슬아슬한 줄거리입니다. 부자가 된 두 사람이 자그마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집을 올린다고 하는데, 한쪽 집이 와르르 무너지니 사람이 다칠 수 있거든요.


  어린이가 함께 보는 그림책이니, 사람이 다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1227미터나 올리다가 무너지는 집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말 사람들이 세우는 문명이나 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집을 올리고 또 올려야 할까요? 높이 더 높이 올려야만 할까요? 경제성장을 높이 더 높이 이루어야 할까요? 성적이나 결과나 실적 따위를 높이 더 높이 거두어야 할까요?



옷을 잘 입는 건축가, 겉멋 씨. 깐깐한 토목 기술자, 꼼꼼 씨. (5∼6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는 두 가지 부자가 나옵니다. 한 부자는 “벼락치기 부자”입니다. 다른 한 부자는 “차곡차곡 모은 부자”입니다. ‘벼락부자’는 갑자기 부자가 된 결에 따라서 ‘벼락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차곡부자’는 차곡차곡 부자가 된 결에 맞추어 ‘차곡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그림책 《높이 더 높이》는 길쭉하게 끝없이 오르는 집 모습에 맞추어 길쭉한 판짜임입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치솟는 두 집을 견주어 보이려고 하는 판짜임인데, 책꼴도 재미있습니다.


  그나저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올린 집에서 늘 맨 꼭대기에 머물며 산다는 두 부자인데, 두 부자는 저렇게 높은 곳에서 무엇을 할까요? 저렇게 높은 곳에 있어야 ‘다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고 여길까요?




세계 모든 텔레비전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우산 모양의 안테나. 차곡 씨의 애완견 말티의 다섯 번째 생일을 위한 콘서트. (13∼14쪽)



  그림책을 보면, 벼락부자도 차곡부자도 마치 돈자랑을 하는구나 싶도록 온갖 큰잔치를 엽니다. 아무 때나 잔치를 벌이고, 집안에 골동품이라든지 보물이라든지 잔뜩 그러모으려 합니다. 쓰지도 않을 것이지만 남한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을 자꾸 갖춥니다. 벼락부자뿐 아니라 차곡부자도 ‘돈을 쓰고 더 쓰는 삶’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이웃하고 나누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혼자 쓰고 혼자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기만 해요.


  1227미터에서 끝난 ‘집짓는 다툼’을 벌인 두 부자는 이제 1227미터에 이르는 집에서 머물다가, 벼락부자는 집이 와르르 무너져서 ‘무너진 집’에서 더는 살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차곡부자는 집이 튼튼해서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차곡부자한테는 다른 말썽거리가 있지요.


  차곡부자는 벼락부자하고 ‘똑같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니 심부름꾼을 둘 테고, 심부름꾼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해 주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돈으로 심부름꾼을 부릴 수 있다고 해도, 1227미터에 이르는 높은 곳에 사는 부자한테 맞추어 줄 심부름꾼이 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저 높은 데까지 밥을 실어다 나르자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날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듯이 밥을 갖다 주고 이 일을 하고 저 살림을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버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한들, 이런 ‘1227미터짜리 집’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차곡부자는 전화를 걸어서 피자를 시켜요. 자, 피자집 일꾼은 어떻게 할까요? 차곡부자는 피자집 일꾼더러 1227미터에 이르는 꼭대기까지 피자를 갖다 달라고 하는데, 피자집 일꾼은 ‘피자 배달’을 1227미터까지 들고 올라가서까지 마칠까요?




“현관에서 비밀번호 PARK79를 누르고 왼쪽 계단으로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오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그걸 타고 8층까지 올라오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왼쪽 두 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JO82를 누르세요.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와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4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걸으면 빨간 발판이 깔린 작은 계단이 있어요. 계단을 내려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걸 타고 63층까지 올라오세요. 그리고 나선 모양 계단을 올라와서 왼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8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와서 오른쪽으로 7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YUNSEUL을 누르고 들어오세요. 방 한가운데 둥근 탁자가 있을 거예요. 그 위에 피자를 올려놔 주세요.”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28∼30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 나오는 차곡부자가 시킨 피자 한 판을 들고 높다란 집 문간에 닿은 피자집 일꾼은 물끄러미 저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보다가, 차곡부자가 시키는 말을 듣다가, 피자를 조용히 문간에 내려놓습니다.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하고 말합니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차곡부자는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저 저 밑바닥에 있는 피자를 바라봅니다. 이때에 어디에선가 멧돼지가 나타나요. 멧돼지는 1227미터짜리 집 문간에 놓인 피자를 집습니다. 그러고는 ‘무너진 다른 1227미터짜리 집’ 부스러기를 사뿐사뿐 뛰어넘습니다. 그러고는 높다란 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멧돼지 식구’한테 가고, 멧돼지 식구는 ‘차곡부자네 피자’를 맛나게 먹습니다.


  여러모로 보자면 우스갯소리 같은, 아니 우스개놀이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어떤 부자가 집을 크게 지어도 1227미터짜리로까지 짓겠느냐 싶지만, 참말 바보스러운 삶만 생각하는 부자는 이런 우스개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작품을 보면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는 인도 왕자’ 이야기가 나와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면 ‘초콜릿 성’은 무너질 텐데, 이런 생각도 못 하면서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요.


  돈을 어떻게 쓸 때에 즐거운가를 모르는 부자요,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기쁜가를 모르는 부자라고 할까요. 돈을 긁어모으는 데에서는 훌륭했기에 부자가 되었을는지 모르나, 이 돈으로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는 데에서는 아주 젬병이고 만 부자입니다.


  삶을 삶답게 지을 때에 웃고, 삶을 삶답게 가꾸면서 이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할 적에 노래가 흐릅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시골 할배 말씀처럼 혼자만 높이 더 높이 올라서야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재미란 그야말로 없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높이 더 높이 올릴 집이 아니라, 서로 오순도순 어우러질 집살림을 가꿀 일이요, 서로 따스하면서 넉넉하게, 또 서로 웃고 노래하는 즐거움이 넘실거리도록 이웃하고 손을 맞잡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4348.11.2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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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웅 베틀북 그림책 31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이정선 옮김 / 베틀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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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5



누가 ‘참다운’ 영웅이고, 누가 ‘거짓쟁이’일까?

― 진짜 영웅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이정선 옮김

 베틀북 펴냄, 2011.8.10. 1만 원



  우리 집 큰아이가 더 어릴 적에 ‘머스마’인지 ‘가시내’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가 머스마이건 가시내이건 대수롭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 아이 성별을 꼭 알아야만 하는 듯이 여겼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요즈음 둘레 사람들한테서 ‘가시내’인지 ‘머스마’인지 헷갈리다는 소리를 으레 듣습니다. 늘 누나 옷을 물려받아서 입으니 가시내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럴 때면, 왜 굳이 아이가 머스마인지 가시내인지 알아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아이 이름을 궁금해 하고, 아이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궁금해 하며, 아이가 어떤 꿈을 마음속에 품는지 궁금해 하면 이 아이하고 서로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별의 어느 여름, 아이들이 들판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지. “와, 여기 웃기게 생긴 잠자리가 있다.” “어, 정말이네. 진짜 괴상하게 생겼다.” “괜히 기분 나쁜걸!” (3쪽)



  미야니시 타츠야 님이 빚은 그림책 《진짜 영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이 그림책을 몹시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 무척 답답해 합니다. 왜 이 그림책을 재미있어 하느냐 하면 ‘잠자리 외계인’인 ‘바라랑맨’이 아주 착한 숨결이기에 재미있어 합니다. 왜 이 그림책을 답답해 하느냐 하면 ‘스페셜맨’이 나쁜 외계인인데 지구별 사람들이 이를 너무 못 알아채기 때문에 답답해 합니다.


  그림책 《진짜 영웅》에는 세 별나라가 나옵니다. 맨 먼저 지구입니다. 그리고, 지구로 살짝 찾아온 바라랑이 사는 바라랑별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구별 사람들을 몽땅 사로잡아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스페셜별입니다.


  그림책 첫머리를 보면, 바라랑별에서 지구별로 온 조그마한 ‘바라랑 사람’은 잠자리 모습인데, 지구별 아이들한테는 낯선 모습입니다. 지구별 아이들은 이 바라랑 사람을 보고는 ‘못생긴 잠자리’라 여기면서 함부로 잡아서 날개를 함부로 뜯으려 합니다. 이때에 어느 아이가 이를 말리고, 바라랑 사람을 놓아 주지요.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영웅 흉내라도 내는 거야?” 아이들은 잠자리를 놓아준 아이를 마구 쥐어박고 발로 찼어. 하지만 그 아이는 후회하지 않았어. 아무 말 없이 맞고만 있었지. (7쪽)



  잠자리 날개를 뜯으며 놀려는 짓궂은 아이들을 막은 아이는 어찌 되었을까요? 짓궂은 아이는 잠자리가 아닌 이 아이를 두들겨패면서 성풀이를 합니다. 착한 동무를 짓밟고 괴롭히면서 놉니다. 잠자리를 놓아주었다고 생각한 아이는 제가 한 일 때문에 동무들한테 얻어맞지만 씩씩합니다. 잠자리를 놓아주기를 잘했다고 여깁니다.


  이윽고 열 몇 해나 스물 몇 해가 흐릅니다. 지구별에 우주선이 찾아오고, 외계인이 내려요. 커다란 몸집으로 바뀐 ‘바라랑 사람(바라랑맨)’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라랑 사람이 읊는 말을 지구별 사람은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게다가 지구별 사람들은 바라랑 사람을 놀리기만 합니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따지고 말아요. 생김새에 따라서 ‘잘생기면 좋’고 ‘못생기면 나쁘’다고 여깁니다.




“그게 아니라니까.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나쁜 외계인에게 모두 다 잡아먹히고 말 거야!” 바라랑맨이 힘을 주어 말했어. 그러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지. “푸하하, 얼굴이 새빨개졌어. 이제 오줌이 나올 것 같아!” “그, 그게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란 말야.” 바라랑맨은 눈물을 글썽였어. 그러자 사람들이 깔깔대며 이렇게 수근댔지. “어떡해. 벌써 오줌을 쌌나 봐.” “저 외계인 진짜 웃긴다.” (14∼15쪽)



  그림책 《진짜 영웅》을 살며시 덮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그림책 이름에도 나오듯이 ‘참된(진짜) 영웅’은 누구일까요? 주먹다짐으로 동무를 때려눕히면서 으르렁거리는 아이가 참된 영웅일까요? 주먹힘으로 이웃이나 동무를 괴롭히면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 참된 영웅일까요? 권력을 휘두르면서 평화를 짓밟거나 깨부수는 이들이 참된 영웅일까요? 대통령쯤 되거나 시장이나 군수쯤 되어야 참된 영웅일까요? 전쟁무기를 가장 많이 갖춘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가 지구에서 참된 영웅일까요?




“여러분, 괜찮습니까? 나는 스페셜별에서 온 스페셜맨입니다.” 스페셜맨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 “이 우주인은 말이 통하네.” “스페셜맨은 참 잘생겼다!” 사람들은 스페셜맨을 보고 모두 기뻐했지. (20쪽)



  우리한테는 영웅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으로 삶을 짓는 이웃이 있으면 됩니다. 나는 나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살림을 지을 줄 알면 됩니다. 내 이웃만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기를 바라지 말고, 언제나 나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착한 마음이 되고 참다운 넋이 되며 고운 숨결이 될 때에 즐겁지요.


  그림책 《진짜 영웅》을 보면, 지구별 사람들은 바라랑 사람이 하는 말과 몸짓은 하나도 안 알아채려고 하지만, 지구별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사탕발림을 하는 ‘스페셜 사람(스페셜맨)’이 읊는 말에 모두 홀랑 넘어가고 맙니다. 아무래도 우리 누구나 이런 몸짓이 된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마음으로 서로 마주하려는 몸짓이 아니라, 겉모습이나 겉치레에 따라서 휘둘린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까만 양복에 까맣고 커다란 자동차를 몰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여기지요. 후줄그레한 차림새라면 공공기관이나 큰 건물에서는 아예 발도 못 붙이게 하기 일쑤이지요. 민소매에 반바지에 고무신 차림으로 대학교수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겉모습에 대단히 눈길을 둡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셔요. 장님한테는 겉모습이 무엇일까요?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한테 겉모습이란 무엇인가요? 귀로 소리를 못 듣는 사람한테는 목소리가 무엇일까요? 왜 겉모습을 따져야 할까요? 왜 생김새나 차림새에 따라서 사람을 가르거나 따지거나 재는 일을 해야 할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는 사람은 가벼우면서 수수한 차림새입니다. 흙을 만지며 일하니 으레 맨발에 고무신이기 일쑤입니다. 흙내음에 땀내음이 가득한 차림새이기에 ‘함부로 보’거나 ‘아무렇게나 마주해’도 되지 않을 테지요? 그림책 《진짜 영웅》은 바로 이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어버이로서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다운 영웅’이고, 꽃 한 송이와 나무 한 그루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다운 영웅’이며, 동무를 아끼는 착한 마음일 때에 비로소 ‘참다운 영웅’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다운 영웅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위인전이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수수하고 투박한 이웃하고 동무가 모두 참다운 영웅입니다. 4348.11.2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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