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며 먹는 밥



  아침에 일어나서 무화과를 한 소쿠리 땁니다. 어제도 한 소쿠리를 땄습니다. 나무에서 갓 따는 무화과는 바로 먹지 않으면 이내 물러요. 그래서 예부터 무화과를 알맞게 썰어서 말린 뒤에 오래도록 건사하며 먹었구나 싶습니다. 또는 잼으로 졸였겠지요. 오늘은 무화과잼을 졸여 보자고 생각하며 사탕수수가루에 재워 둡니다. 엊저녁을 안 먹고 곯아떨어진 작은아이한테 이른아침을 먹이려 하는데, 작은아이가 안 먹고 남긴 밥을 내가 마저 먹습니다. 작은아이는 혀가 아리다면서 밥도 무화과도 못 먹겠다 하기에 참외를 썰어서 줍니다. 어쩌면 한동안 아무것도 안 먹으면서 혀가 나아지기를 기다릴는지 모르겠습니다.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또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하다 보면 아침도 저녁도 꽤 빠르게 흐르는구나 싶어요. 이 빠른 삶결 사이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함께 흐릅니다. 그래서 날마다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 마주하며 기쁘게 노래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같이 살며 먹는 밥이란, 같이 살며 짓는 살림이란, 늘 웃음으로 노래하는 이야기꽃일 테지요. 2016.9.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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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서 큰청소



  넷이서 큰청소를 합니다. 처음에는 나 혼자 했고, 큰아이가 거들었으며, 곁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작은아이까지 한손을 보탭니다. 나 혼자 했어도 다 해낼 만한 큰청소이지만, 세 사람이 조금씩 손길을 보태었기에 두 시간쯤 벌었나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큰청소를 마친 사람들은 모두 옷을 갈아입고 씻습니다. 느즈막하게 밥을 먹습니다. 매미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쉽니다. 아이들은 오늘 고흥집으로 나들이를 올 이모랑 이모부랑 기다리면서 자리에 누워 조잘거립니다. 2016.9.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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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 입맛이 달라



  우리 집 네 사람은 입맛이 다릅니다. 그래서 네 사람 입맛에 맞추려면 네 가지로 밥을 차려야 하는데, 이렇게는 차마 하지 못하고 한 사람 입맛에 맞추어 돌아가면서 밥을 짓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 사람은 잘 먹어도 다른 두 사람은 그럭저럭 먹고 남은 한 사람은 잘 안 먹는 흐름이 이어집니다. 아직 두 아이는 어리니 밥상맡에서 고맙게 받아먹어 주는데 머잖아 두 아이가 무럭무럭 크고 나면, 아마 넷이서 저마다 따로 밥을 차려서 ‘제맛’에 맞추는 밥을 즐길는지 모르겠구나 싶어요. 재미있어요.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지만 막상 다 다른 입맛이니까요. 2016.9.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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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틈만 있으면 놉니다. 나는 틈만 있으면 누워서 등허리를 펴고서 쉰 다음 부엌일이나 여러 가지 살림을 돌봅니다. 아이들은 틈을 내어 신나게 놉니다. 나는 틈을 내어 글을 쓰고 책을 읽지만, 틈을 쪼개어 밥을 짓고 반찬을 합니다. 아이들은 틈이 나는 대로 새로운 놀이를 짜냅니다. 나는 틈이 나는 대로 이 아이들하고 누릴 이야기를 지으려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틈이 있든 없든 어머니도 아버지도 포옥 안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나도 틈틈이 아니 틈이 있건 없건 언제나 아이들 손을 잡고 볼을 부비고 가슴을 포옥 안으면서 이 따사로운 숨결이 어느 하늘에서 어떤 바람을 타고 이 보금자리로 날아왔는가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2016.8.2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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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버스 창바람



  읍내에 볼일이 있어 네 식구가 함께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큰아이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코부터 감싸쥔다. 큰아이 뒷자리에 앉아서 넌지시 부른다. “벼리야, 손 풀어. 냄새 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 마음속에 파란 거미줄을 그려.” 이렇게 이른 뒤 창문을 살짝 연다. 오늘은 그야말로 아주 모처럼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해가 나지 않는 팔월 끝자락이라 제법 서늘하다. 군내버스도 에어컨을 안 켰다. 기쁘게 창바람을 쐴 수 있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니 큰아이도 버스 냄새가 아닌 숲바람 냄새를 즐기겠지. 큰아이 머리카락을 다시 빗질해서 고무줄로 묶어 준다. 그나저나 우리 사는 이곳은 시골이니 에어컨 아닌 창문으로 바깥바람을 쐬면 훨씬 시원한데 군내버스 일꾼이 창바람으로 여름나기를 할 뜻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창바람도 매캐한 도시바람이 아닌 시골마을 숲바람이거늘. 2016.8.2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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