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8 - 해바라기

 :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길이란


- 책이름 : 해바라기
- 글쓴이 : 시몬 비젠탈
- 옮긴이 : 박중서
- 펴낸곳 : 뜨인돌(2005.8.10.)
- 책값 : 10000원


 〈1〉 서울로 가는 길에

 

 새벽에 얼핏 잠이 깹니다. 방바닥이 뜨끈해졌다 싶어서 살짝 눈을 떠 보니, 보일러가 돌아갔나 봅니다. 방온도가 12도 아래로 떨어지면 돌아가도록 맞췄는데, 깊은밤에 11도로 내려가서 움직였는가 보군요.

 

 서울 나들이를 마친 뒤 돌아와 보면, 한낮에도 방온도는 12도 안팎이곤 합니다. 그러나 시골집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볼라치면, 깊은밤에도 방온도는 14도쯤 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가만히 보니, 한 사람이 깨어나서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몸에 있는 따스함이 방을 채워서 이렇게 방온도도 제법 높이 올라가는구나 싶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처형당할 유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그리고 끊임없이 샘솟는 갖가지 일화와 전설의 보고인 요제크가, 모든 인간은 애초부터 고난을 짊어지고 태어나는 법이라고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고 해서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  〈19쪽〉


 드디어 비가 그치고 날이 갭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따뜻하겠지요? 벌써 12월이 코앞인데, 그러니까 지금은 겨울인데, 날이 참 포근합니다. 진작 왔어야 할 눈이 안 오고 비가 내렸어요. 겨울이 겨울 같지 않으니 서울에는 아직도 모기도 살아서 왱왱거립니다. 시골에도 나방이 아직도 살아서 파닥거립니다. 날씨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참. 그래, 날씨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 자연이 갑자기 변덕을 부리는 셈일까요?

 

 오늘이나 내일쯤 자전거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다시 떠나 볼까 합니다. 예닐곱 시간쯤 자전거를 몰고 서울로 가노라면, 길에서 부대끼는 자동차가 참 많습니다. 시골에도 차가 참 많습니다. 평일 한낮이나 아침인 때에도 차가 참 많습니다. 주말이 따로 없고 도시가 따로 없습니다. 이 많은 차들은 다들 무엇을 하려고, 어디로 가려고 길을 나섰을까요?

 

 시골을 벗어나 도시가 가까워지면 차는 훨씬 늘어나고, 빠르기도 아주 빨라집니다. 거칠기도 대단히 거칠고 무섭기도 참 무섭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분들은 왜 이렇게 길에서 거칠게 달리고 자전거꾼을 무섭게 할까요?


..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폴란드인과 함께 살았고, 그들과 함께 자라났으며, 그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에게 언제나 이방인이었을 뿐이다.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상호 이해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는 폴란드인 자신이 이미 독일에 예속된 상황 아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유대인과 폴란드인 모두 똑같이 고난을 겪었지만, 둘 사이에는 여전히 장벽이 있었다 ..  〈113쪽〉


 시골 면만 나와도 가게가 제법 많습니다. 읍으로 나오면 훨씬 많습니다. 도시로 나오면 더더욱 많습니다. 서울로 접어들면 어디를 가든 길거리에는 가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생각합니다. 이 많은 가게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이 많은 가게에서는 무엇을 사고파나? 이 많은 가게에서 사고팔리는 물건들은 어떻게 쓰이고 남은 쓰레기는 어디로 가나?

 

 가게도 많지만 밥집과 술집도 참 많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세상인데, 집에서 밥을 안 먹고 바깥에 나와서 밥을 사먹는가요? 도시락도 안 싸고 다니는가요? 비싼 술에 비싼 안주를 먹어야 술맛이 나는가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공장 굴뚝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소비세상, 소비천국에 물건을 대주고, 소비세상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엇이든 돈 몇 푼 내고 씀씀이를 즐기며, 자동차도 이런 씀씀이 가운데 하나라는 것. 1시간이 안 되는 거리라면 가볍게 걷는 도시사람 보기 힘듭니다(시골도 비슷). 30분이 안 되는 거리라면 마땅히 걷는 도시사람 보기 힘듭니다. 대중교통을 타는 일도 좋지만, 두어 정류장을 넘지 않으면, 네 정류장까지도 스스럼없이 걸을 수 있어야 하지만, 걷는 사람이 참 적습니다. 걷기 버겁다면 자전거를 타면 될 일인데, 자전거 타는 사람도 적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죽이고 있습니다.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만들고 쓰고 하면서. 아니 아무 생각 없이는 아니겠지요. 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는 일이겠지요. 먹고살아야 하니 마구마구 생산을 하고 소비를 해야겠지요. 먹고살아야 하니 자동차 공장에서 일해서 자동차를 엄청나게 뽑아대고, 텔레비전 공장에서 일하며 텔레비전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회사 영업사원이 되어 이런 물건을 팔고, 또 이런 물건을 쓰며 그치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2〉 무시무시한 말 ‘먹고살기 힘들다’


.. 그는 자기가 땅속에 묻히면 해바라기를 한 그루 갖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이런 살인자는 죽고 나서도 뭔가를 가질 수가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  〈85∼86쪽〉


 박정희와 전두환이 다른 대목이 있다면 한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박정희는 독재정치를 잇고 잇고 또 이으면서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민주주의 시늉을 내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전두환도 박정희처럼 끝없이 독재를 이어갔다면, 어리석은 이 나라 사람들은 전두환도 박정희처럼 우러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둘이 저지른 일이란, 둘이 우리 사회를 비틀어 놓은 꼴이란, 그다지 다를 바 없다고 느낍니다만, 받는 대접이 참 다릅니다.


.. “그리고 자네.” 아르투르는 나를 향해 말했다. “제발 이젠 그 이야기 좀 그만하게. 그렇게 끙끙 앓는 소리를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일단 우리가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고―솔직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세상이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게 된 다음이라면, 그런 용서니 뭐니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야. 옳다는 사람도 있고, 그르다는 사람도 있고, 자네가 그를 용서하지 않은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도 나올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 우리가 지금 이 문제를 놓고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만 해도, 솔직히 나는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말할 수 없는 사치라고 보네.” ..  〈120쪽〉


 문익환 목사님은 한겨레가 남북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뚜벅뚜벅 걸으면 휴전선이고 뭐고 다 무너진다고 시로 읊으셨고, 이것이 참 맞는 말이요 옳은 길인데, 정작 어깨동무를 겯자고 할 때 기꺼이 나서는 ‘보통’사람이란 썩 안 많아 보입니다. 독재정권에 눌려 있을 때에도 그랬고, 요즘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자는 목소리가 높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다들 참 바빠서 그러하지 싶습니다. 1960년대에는 1960년대대로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렇고, 2000년대에는 2000년대대로 먹고살기 팍팍해서 그렇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예나 이제나 한 번도 먹고살 만한 적은 없었을까요? 그러면 얼마만큼 되어야 먹고살 만한 삶이 되는지.


.. “이 동네 사람은 모두 유대인과도 사이좋게 지냈어요. 그리고 우리가 직접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시겠죠.” 내가 대답했다. “지금은 누구나 다들 그렇게 말하죠. 지금 부인께서 하시는 말씀도 수긍이 가기는 합니다만, 이 세상에는 결코 그런 변명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일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죠. 바로 독일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비록 개인적인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한 수치심만큼은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죄를 저지른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승객이 전차에 올라탔다가 내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과연 누가 죄를 지었는지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일인 모두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죄를 짓지 않은 독일인도 그러한 죄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  〈146쪽〉


 자전거를 타고 서울로 오는 동안, 또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뒤에서 빵빵거리면서 윽박지르는 자동차가 곧잘 있습니다. 일부러 자전거를 깔아뭉개려는 듯이 길섶으로 차를 바싹 들이대며 으름장을 놓는 자동차는 이보다 많습니다. 도심지에서는 자전거가 못 지나가도록 길섶을 꽉 막아선 자동차가 퍽 많습니다. 길섶을 막아선 차는 신호에 걸리고 차에 막혀서 꼼짝도 못하는 차. 자기가 못 가니까 자전거도 가지 말라고 막는지, 자기가 앞에 가고 너는 뒤에 가라는 뜻으로 막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런데 이렇게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다 자가용을 굴립니다. 기름값이 그렇게 올랐어도 자가용을 꿋꿋하게 몰고 다닙니다. 굴리는 자가용도 값싸고 기름 적게 먹고 세금 덜 내는 작은차가 아닙니다. 큰차들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살림을 줄이는 사람 보기 힘듭니다. 쓸 것은 다 씁니다. 영화도 참 많이 봅니다. 밥집-술집-찻집-옷집 장사는 그야말로 잘됩니다. 참 아리송합니다.


.. 가령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나치 범죄자에 대한 재판에서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는 빛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아무런 증거도 확보되지 못한 범죄 사실까지 자백했다. 하지만 그 외의 나머지 피고들은 그저 진실을 완강히 부인할 뿐이었다. 그들이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즉 자신들의 범죄를 목격한 증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종종 그 SS대원이 25년 뒤에 이처럼 재판을 받게 되었더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상상해 보곤 했다. 그때 학장실에서 죽기 직전에 내게 한 것처럼, 재판정에서도 똑같은 고백을 했을까? 그때 죽어가면서 내게 참회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까? ..  〈149∼150쪽〉


 제 아침은 박새와 콩새가 깨웁니다. 까치도 깨우고 어치도 깨웁니다. 이밖에 다른 새들도 많지만 아직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뭐, 이 이름이라는 것도 사람들 마음대로 붙였으니 그냥 ‘뭇새’라 하는 편이 나을라나. 때때로 다람쥐를 보고 고라니도 봅니다만, 먹고살기 힘들다면 바로 이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먹고살기 힘듭니다. 자기들 삶터가 줄어들고 있는데, 먹잇감도 줄어들고 있는데, 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날까요? 자전거로 국도를 타면 어김없이 차에 치여 죽고 깔려 떡이 된 짐승들 주검을 열∼스물쯤 봅니다(충주-서울 오가는 동안). 사람을 쳐도 뺑소니로 내빼는 년놈이 많지만, 짐승을 치고 미안해하거나 슬퍼하는 사람 보기 참 드뭅니다. 치여 죽은 짐승을 비껴 달리며 떡이 되지 않도록 마음쓰는 사람은 더더욱 드뭅니다. 모두들 찻길에서 너무도 빨리 달리기 때문에 길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거들떠보지 못합니다. 앞만 보고 빨리빨리 달리기만 하니 볼 틈도 없겠지만.

 

 일이란, 또 놀이란, 우리를 즐겁게 하며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일이든 놀이든 ‘먹고살기’만을 생각해서 하지는 않습니다. 먹고사는 한편, 즐거웁고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고달프기만 한 일을 왜 하겠습니까. 입에 풀칠만 하려는 일을 왜 하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 일이지요.

 

 나아가려는 길이 안 보입니다. 걸어가려는 길이 안 보입니다. 그저 씽씽 아슬아슬하게 내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엄청난 물건씀씀이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도무지 뭐하려고 살아가는 자기 삶인지, 그렇게 살면서 무슨 즐거움과 보람이 있는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어린이였을 때부터 사람다이 살아가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사람다이 사는 길을 배우지 못합니다. 책 한 권을 읽혀도 지식을 건네는 책을, 조기교육이다 해서 이것저것 머리속에 쑤셔박는 책만 사 줄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읽힐 책이라면 누구보다도 어버이가 먼저 자기 가슴에 뿌듯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책을 읽혀야 할 텐데, 영어 교육에 좋다느니 이큐에 좋다느니 뭐에 좋다느니 하면서 싸구려 전집물을, 인터넷에서 40∼60%씩이나 깎아주는 책들을 골라잡아서 읽히는 판입니다. 아이가 중학교에만 들어가면 이런 책이나마 싹 치워 버리고 오로지 참고서와 교과서와 문제집만 잔뜩 안기고 학원 뺑뺑이에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억지 자율’학습을 시킵니다. 대학교에 가까스로 들어가면 이제는 책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놀다가, 학교 마칠 즈음 되어서 토익이나 토플이나 뭐를 대충 시험 보고, 그런 뒤 고시다 뭐다 공부도 하고…… 이렇게 해서 회사에 들어가면 또 무엇을 할까요? 부모가 좋아하는 사위나 며느리를 맞이해서 혼인하고 애 쑥쑥 낳고 ‘안정된’ 살림을 강남이나 분당이나 일산 따위에 몇 억짜리 아파트 하나 얻어서 살아가면 되나요?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길을 어버이 스스로 찾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는 형편입니다. 어릴 적에야 어쩔 수 없다지만, 머리통이 굵어진 다음에도 아무것도 못 느끼고 그저 따라만 가는 젊은이들도 자기 스스로 길을 안 찾아요.

 

 이야기책 《해바라기》에 나오는 유대인 학살과 독일사람들 죄값 문제도 크지만, 지금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누가 앞서랄 것 없이 끔찍하고 모질다고 느껴집니다. 앞을 모르는 내달림, 그저 끝간 데 없이 소비주의에 빠지고 얼과 넋조차 없이 해롱해롱거리는 우리 사회라고 느껴집니다.


 〈3〉 아쉬움

 

 시몬 비젠탈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152쪽에서 끝납니다. 그 뒤에는 ‘심포지엄’이라고 해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저마다 어떻게 느꼈는가를 이야기한 글을 붙입니다. 거의 미국사람이 쓴 글입니다. 뒤에 붙은 글을 읽다가 몇 번이나 책을 덮었습니다.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참 맞는 말이구나 싶으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거든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하고 미국이라는 나라 우두머리하고는 다르기 마련이라, 미국에서 벌이는 엄청난 침략과 독재정권 돕기를 놓고 한 마디도 안 하는 일이야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미국 여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라크로 쳐들어가는 일에 그토록 많은 이가 찬성을 하고, 쿠바나 니카라과를 비롯한 중남미에서도, 또 베트남에서, 또 한국에서 저지르고 있는 짓들을 놓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법. 책 끝에 한국사람 한 분이 글을 붙입니다. 그러나 참 아쉽습니다. 왜 일본사람 글은 하나도 없는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번역을 부지런히 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또 세계2차대전 때 모질고 끔찍한 가해자였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이 책 《해바라기》를 읽고 느낌을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안 실었는지? 어차피 세계대전은 ‘서양사람끼리 하는 싸움’이었으니, 서양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자는 생각으로 펴낸 책인지?(책은 프랑스에서 처음 나왔는데, 프랑스판은 시몬 비젠탈 이야기까지만 있고, 번역책은 미국책으로, 미국책에는 다른 사람들 생각이 붙었다고 합니다. 한국 번역책에는 한국사람 글 하나만 더 끼워넣었구나 싶습니다.)


.. 자기와 똑같은 인간이 이처럼 끔찍한 모욕을 당하는 광경을 말없이, 항의 한 마디 없이 바라보는 것 역시 악랄한 행동은 아닐까? ..  〈94쪽〉


 사람과 똑같은 목숨붙이가 이토록 괴로워하고 ‘먹고살기’ 고달파 힘들어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우리들입니다. 아니, 지켜보기는커녕 아예 모르거나 등돌리는 우리들이라고 느낍니다. 푸나무나 짐승뿐 아니라 바로 이웃사람들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해도 나 몰라라 하거나 외려 잘됐다고 키득거리는 우리들 아닌지요.

 

 나치 독일은 유대겨레 사람을 ‘눈에 잘 보이도록’ 죽이고 괴롭히고 들볶았습니다. 민주주의나라 한국에서 우리들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도록’ 서로를 괴롭히고 같은 한겨레끼리도 등처먹는 한편, 누가 더 많은 돈-이름-힘을 얻는가에만 눈이 벌건 채 돌아다닙니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아니 벌써 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해바라기》를 이야기해야지 싶습니다. ‘내 돈 내가 쓴다는데 뭔 상관이야?’ 하는 말이 힘을 내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 끔찍한 떼죽임을 돌아보는 또 다른 《해바라기》를 머리 맞대고 이야기해야지 싶습니다. (4339.11.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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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12-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
- 글쓴이 : 오드리 설킬드
- 옮긴이 : 허진
- 펴낸곳 : 마티(2006.5.25.)
- 책값 : 20000원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전범재판이 연달아 열렸으나 레니는 유대인 학살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어이 그녀의 작품 활동을 막았다. 레니는 결코 영화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레니의 다큐멘터리를 부분적으로 인용했지만 그녀의 영화가 공개적으로 상영되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무삭제로 방송된 적은 없었다. 영화사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심지어 여성의 업적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리펜슈탈은 아예 언급되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 리펜슈탈은 거의 전 세계적인 공모에 의해 역사의 각주로 쫓겨났다. 프로파간다와 예술을 구분할 방법이나 구분하려는 의지는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그것은 공평한 일이었을까? ..  〈35쪽〉


 저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사람을 사진작가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라는 책을 전주에 놀러가서 〈홍지서림〉을 구경하다가 반갑게 보고서 집을 때까지만 해도, 이이가 나치당을 선전하는 영화를 찍은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으로 남기되 한낱 기록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되도록 긴 영화로 찍은 줄도 몰랐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손기정 님 마라톤 모습도 구경할 수 없었겠지요.

 

 이 책,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 나온 뒤 몇몇 신문에 길고 짧게 기사가 실렸고,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이이를 놓고 여러모로 말이 많습니다. ‘나치의 핀업 걸’ 소리가 가장 많이 보이고, ‘악마한테 영혼을 판 천재’라는 말도 보입니다. 글쎄, 이런 말이 한편으로는 맞을는지 모르겠지만 102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을 어느 한 마디로 잘라서 말할 수 있을까요?

 

 춤꾼(발레)으로, 영화배우로, 영화감독으로, 그러다가 사진작가로, 물속헤엄까지도 두루 거치면서 자기 안에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펼치며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하는 사람, 이 사람을 짤막한 한 마디로 내치는 일이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쳐서 무엇이 남을까요.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박정희 독재 때에 외교관에 장관에 국회의원까지 두루 지낸 윤주영이라는 사람은 1979년에 정계에서 떠난 뒤 사진작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분이 지난날 걸어온 발자취를 생각한다면, ‘사진작가 윤주영’이 아닌 ‘독재권력 해바라기 윤주영’이라 해야 걸맞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레니 리펜슈탈과 윤주영을 똑같이 볼 수 없고, 두 사람이 걷는 길도 다르며, 두 사람이 찍은 사진감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레니가 받는 것은 푸대접과 찬웃음일 뿐, 이이가 이루어내는 온갖 일과 발자취는 ‘없어야 할 것인데 지저분하게 남은 것’처럼 여기거나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비판할 대목은 틀림없이 비판해야 옳고, 찬찬히 돌아볼 대목은 찬찬히 돌아보아야 옳습니다. 칭찬할 일이라면 칭찬하고 꾸짖을 일이라면 꾸짖어야지요. 이도 저도 아닌 두루뭉술한 때려잡기라든지, 수박겉핥기처럼 대충 넘겨짚기를 하면서 레니 리펜슈탈을 입방아 찧는 이들은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을 꼼꼼히 읽은 뒤에 자기가 한 말과 쓴 글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입방아꾼이야 책도 안 읽고 뇌까리는 사람들이고, 2006년 대한민국에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 나온 까닭, 이런 책을 살피면 좋을 대목이 있다면, ‘우리 가슴속에 잠자고 있을 뜨거움’을 느끼고 ‘이 뜨거움을 어떻게 불태우면’서 ‘누구한테나 딱 한 번 주어진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는지를 살피는 데에 적잖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4339.8.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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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한 생각
마하트마 간디 지음, 함석헌 외 옮김 / 호미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날마다 한 생각
- 글쓴이 : 마하트마 간디
- 옮긴이 : 진영상, 함석헌
- 펴낸곳 : 호미(2001.8.10.)
- 책값 : 7500원


19.한 가지 일에 한 가지 목적으로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것이다. (1944.12.8.)


 날마다 한 가지씩, 두 해에 걸쳐서 짤막한 생각을 펼쳤던 간디 이야기를 묶은 책이 《날마다 한 생각》입니다. 어떻게 날마다 한 가지 생각을 꼬박꼬박 뽑아낼까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날마다 마주하거나 마주치거나 겪거나 보거나 듣거나 느낀 여러 가지를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늘 자기 마음과 몸에 되새기고 곰삭이면서 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날마다 한 생각뿐 아니라 두 생각이나 세 생각을 하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56.우리가 진정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정신적 게으름을 버리고 좀더 기본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삶은 아주 단순해질 수 있다. (1945.1.14.)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고 어렵게 할 까닭이 없으며 어렵게 말하거나 글쓸 쓸모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장 밑바탕이 되는 마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나타내고 함께할 수 있으면 됩니다. “가장 쉽게 쓰는 글이 오히려 쓰기 어렵다”고도 하지만, 글을 괜히 어떤 멋이나 품위로 덮어씌우니 어려울 뿐입니다. 자기한테 있다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떳떳하고 스스럼없이 나설 수 있으면 됩니다. 자기한테 조금 더 있기에 널리 이웃들과 나눕니다. 자기한테 조금 덜 있기에 거리낌없이 이웃들한테 선사받고 도움받습니다. 있으면 베풀고 없으면 얻을 뿐입니다.


143.인간의 정신의 평화는 인간 세계 속에서만 증험될 수 있는 것이지 히말라야의 산정에 홀로 있으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45.4.11.)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됨을 잃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또는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겠지요. 사람이 사람 사이에 살아야 한다지만, 돈-이름-힘에 눈이 벌건 사람들 사이에 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 스스로 사람됨을 간직하고 추스르면서 널리 어울리고 함께할 수 있는 터전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286.죄를 ‘크다’, ‘작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1945.9.1.)


 저지른 죄값은 모두 똑같기 때문에, 돈 100원을 훔친 사람과 돈 100억 원을 훔친 사람 모두 똑같이 죄값을 달게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돈 100원을 훔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도둑놈’ 딱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돈 100억 원을 훔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이가 도둑놈인 줄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385.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비는 더러움을 쓸어내는데, 고백도 이에 못지 않다. (1945.12.9.)


 《날마다 한 생각》은 마하트마 간디라고 하는 대단히 훌륭한 사람만이 펼쳐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든 자기 삶을 다부지고 알뜰하게 가꿀 줄 알고, 꾸려나갈 줄 안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펼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간디라는 분은 자기가 날마다 했던 생각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적어 두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 가까운 형이나 언니나 누나 들이 우리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참 마음에 와닿거나 좋다고 할 만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요. 따로 말로 하지 않아도 몸으로 보여주고, 마음으로 나누는 좋은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고요. 간디란 분이 엮어낸 《날마다 한 생각》을 읽으며, 우리들은 우리 나름대로 한 해를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면서 《내 나름대로 펼친 날마다 한 생각》을 써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4339.7.11.불.ㅎㄲㅅㄱ)

 

*****

다만 한 가지,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느낍니다. 함석헌 선생이 다시 한 번역을, 요즘 우리 말투에 맞게, 또 쉽고 깨끗한 말에 걸맞게 다시 다듬어 주어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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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전사 - 책으로 만나는 풀꽃평화 1
쿤가 삼텐 데와창 지음, 홍성녕 옮김 / 그물코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티벳은 관광지가 아닌 삶터이자 싸움터
- <티벳전사>를 읽고



<1> 티벳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에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가 보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습니다. 제 둘레에도 돈을 모아 한두 달이나 한 해 가까이까지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 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렇게 다녀온 분들은 한결같이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좋을 만하겠죠? 티없이 맑은 하늘,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멋을 간직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그곳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 티벳의 진실은 여행사 카달로그나 여성지의 명상 소개 코너
속이 아니라 차라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오지 리포트 속에 있지
않을까 .. <옮긴이 말, 306쪽>



지금 티벳은 중국과 싸우고 있습니다. 참 오랫동안 싸우고 있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티벳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올리고 넉넉히 즐기던 티벳 문화는 하루아침에 '반동'과 '봉건'이란 이름으로 내몰리며 무너지고 부서지고 사라졌습니다. 문화유산도 부서졌으나 깨끗하던 티벳 자연도 무너졌습니다. 들짐승 목숨을 사람 목숨과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기던 문화와 사회는 중국 인민군이 부순 건물과 함께 주저앉고 맙니다.

남아 있는 사원은 옛 자취를 보여주는 유물이 될 뿐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가 된 티벳'의 삶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티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유물'일 뿐 '살아 있는 역사나 문화'가 되지 못해요.

그래도 그런 것이나마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간데없이 무너졌어요.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연이고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침략과 식민정책으로 삶터를 빼앗기고 자기 정체마저 잃어버린 사람들 현실을 돌아볼 수 없다면, 티벳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정부 병기 창고에서 무기를 가져오기 위해 남걀강에서 라사
로 돌아갔던 일행은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노르불링카에서
로상 예시를 잃고 말았다. 그들은 중국군이 어떻게 라사를 포
격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했는지 말해 주었다 .. <239쪽>


.. 1910년에 중국은 리탕의 바 지역을 침공했다. 많은 사원이
약탈당했으며 지역 책임자들은 행정권을 박탈당했다. 대사원
관을 포함한 리탕곤첸의 고위 라마 70명이 참수당했다. 중국
군은 사원을 점령했고, 승려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을 감금시켰다 .. <54쪽>



<2> 잃어버릴 수 없는 역사


<티벳전사>는 중국에게 침략을 받아 게릴라 부대로 맞선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쓴 책(회고록)입니다. 잘 조직되었으며 최신예 무기를 갖춘 중국 인민군에게 맞서기에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장비와 조직도 안 된 게릴라들이었기에 밀리고 밀렸답니다. 끝내 인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던 이들은, 지금도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자유 티벳'을 되찾을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 물새가 알을 낳기 시작할 때도 기본적 지시 사항이 발령
된다. 이 기간 동안 그 사항들이 준수되었는지 확인하기 위
해 강과 호수로 사람이 보내진다. 사람의 방해로 새들이
알을 두고 떠나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4월에는 새로 태어난 티벳 영양을 다른 동물들과 인간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슷한 지시 사항이 공포되었다. 물고
기도 산란기에는 같은 방식을 적용해 보호했다 .. <55쪽>



우리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어서 돌아볼 수 있는데, 자유로운 나라를 잃은 뒤에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과 문화와 사회를 간직하거나 지키기 참 어렵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삶과 문화를 지키기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말과 글도 잃고 얼과 넋마저 빼앗겼습니다. 식민지 찌꺼기는 지금도 많이 남았습니다. 더구나 식민지 일본에게 아첨하고 아양 떨던 사람들은 큰 권력을 얻어 아직도 떵떵거리고 있어요.

티벳은 어떨까요? 티벳도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을 중국 식민지로 살고 있습니다. 갓 태어나는 아이들과 한참 자라는 젊은이들은 티벳 문화와 삶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헤아리고 있을까요? "물새가 알을 낳는 때"를 알고 있을까요? "물고기가 알을 낳을 때"는 조심스럽게 지켜줘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일꾼)의 품을 결코 돈으로 보상하지 않았다.(57쪽)"고 합니다. 우리에게 품앗이와 울력이 있었듯 티벳사람도 돈으로 품을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일을 돕고 함께 어울려 놀았습니다.


.. 이렇게 소똥과 나무를 태우다가 몇 년이 지나면 부엌의 벽
과 천정은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변했다. 우리는 이 그을음으로
잉크를 만들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횃불이 켜졌다 .. <59쪽>


.. 티벳에서 여관은 '멀리 있는 집'과 같다. 손님들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접받는다. 손님은 부엌에 들어가도 되며 하고 싶
은 일은 무엇이든지 알아서 할 수 있다. 음식과 음료는 항상
바로 곁에 있다. 혼자 쓰는 방은 없지만 소지품 걱정은 할 필
요가 없었다. 모든 일에 관해 대접받는 것이다 .. <113쪽>



쓰레기가 없는 삶, 쓰레기라는 것을 모르는 삶, 도둑이 없는 삶, 도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삶이 티벳사람들이 누려온 오랜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웃나라가 마구잡이로 쳐들어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폭압 위정자가 독재로 온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짓밟으며 등처먹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티벳에서 강과 시내에 놓은 다리는 희귀한 사치품이었다. 겨울에는 물이 단단히 얼어붙어서 두껍게 언 얼음은 짐을 가득 진 야크의 무게도 견뎌 낼 정도였다. 문제가 발생하기로 유명한 계절은 역시 얼음이 녹는 따뜻한 철이다.(132쪽)"라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따로 다리를 놓지 않아도 늘 건널 수 있는 곳에서는 다리를 놓는 일은 그야말로 '사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나라에서는 이와 다르겠죠? 이런 것이 나라나 겨레마다 '다른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처럼 다른 문화와 전통을 '반동'이라느니 '봉건'이라느니 무어라는 이름으로 짓밟거나 부수어도 좋을까요? 실제로는 석유를 노리고 전후 재건 사업을 노리는 한편 새무기를 시험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겉으로는 '이라크 민주와 평화'를 지키겠다며 쳐들어간 미국입니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미개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티벳으로 쳐들어온 중국입니다.


<3> 우리가 다 함께 찾아야 할 것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말리아로, 이라크로 군사를 보내라고 하면 보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힘없는 이를 괴롭히는 침략전쟁을 치르는 돈마저 보내야 합니다. 이 나라 농민들이 죄다 죽어갈 판인데도 쌀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있는 사람 재산은 더욱 늘어나고 없는 사람은 팔 재산도 없으나, 빈부 차이는 자꾸만 더욱 벌어집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일은 문제가 안 되지만, 영어를 못하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일자리 얻기도 어렵습니다. 온통 서양 문물과 문화가 우리 얼과 넋을 다스립니다. 이런 형편을 생각했을 때, 우리가 누린다는 '자유'란 도대체 어떤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처음에 중국 측은 이제까지 사원이 담당해 왔던 기능을
계속 수행하도록 허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은 지켜지
지 않았다. 사원들은 남김없이 모두 파괴당했고, 그 안에
보관되어 왔던 성스러운 경전, 불상들은 약탈되고 망가져
버렸다. 승려들은 치욕을 당했고 고문에 시달렸다. 종교적
수행은 금지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법의를 걸친 자는 인
민의 적이며, 인민의 형제와 같은 중국 해방군의 적이라고
선포했다 .. <211쪽>


밥 굶는 사람이 요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처럼 굶는 사람이 넘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사람이 굶어죽는 굶주림은 아닙니다. 1950~6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고, 아기를 부잣집 문간에 버리는 일이 아주 흔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데, '먹고살기 힘들다'기보다 '더 많은 돈을 못 번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알맞게 쓰고 누리고 즐기면서 버리는 것이 거의 없던 소중한 문화와 얼과 것을 잃었기에 경제 형편이 참으로 많이 나아졌음에도 이런 것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지내는 때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민주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거나 갈팡질팡하고 있지 싶습니다.


.. 나의 바람과 소망은 자유를 누리는 행운을 가진 사람 모두
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보다 적은 자유만을 누리는 사
람들-그 중에서도 티벳사람들도 포함될 것이다-을 돕는 데 자
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 <304쪽>



'자유 티벳'이 아닌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인 티벳'으로 바뀐 역사는 그대로 이어져 세월이 자꾸자꾸 흘러갑니다. 우리가 참답게 알아야 할 티벳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명상이니 불교 유적지니 깨끗한 자연이니 뭐니 하는 겉모습만으로 티벳을 생각하거나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잃고 놓치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거나 찾거나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티벳이든 중국이든 북녘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런 다른 나라 삶과 모습과 문화도 엉뚱하거나 잘못된 모습으로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비틀고 일본이 한국 옛 역사를 비틀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고구려 역사가 어떠한지, 우리 옛 역사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안 배우는 한편, 배우거나 알려고 애쓰지도 않거든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우리를 둘러싼 뭇사람과 자연과 목숨붙이를 헤아리지 않거든요.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겪어야 한 슬픈 역사를 말하는 한편, '자유 티벳'일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덤덤하게 들려줍니다. 게릴라 전사가 되어 중국 인민군과 싸운 이야기도 들려주지만, "티벳사람은 이렇게 살아왔다" 하는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은 '도르지 왕디 데와창'은 "티벳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 세대(침공당한 뒤 태어나서 자란 세대)에게 그렇게 생생하게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다.(25쪽)"고 말합니다.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자기 역사와 삶과 문화와 사회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자 남긴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티벳 젊은이에게 참으로 소중하겠다 싶어요.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우리 나라로 온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에게 압력을 넣어 들어오지 못하게 한 중국이고, 티벳 역사와 사회를 감춘 중국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기록을 읽으며 참된 티벳 모습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한편, 우리 삶과 사회와 역사에서 잃어버린 모습, 놓치거나 지나쳐 버린 소중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4338.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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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순간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도약의 순간
- 글쓴이 : 사이토 다카시
- 옮긴이 : 이규원
- 펴낸곳 : 가문비(2006.4.24.)
- 책값 : 9000원


 자전거를 타고 제주섬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제주섬 한 바퀴를 도는 데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으나 꼬불꼬불 바닷가길을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도느라, 또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느라 좀 고단하기도 했습니다.


..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한 권 읽는다는 것은 때로는 고통스럽게 느껴질 만큼 힘든 일이다. 하지만 책을 1백 권쯤 읽은 사람치고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자면, 타는 요령을 익히고 나면 넘어질 일이 거의 없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5백 권, 1천 권을 읽고 나면 한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  〈36쪽〉


 그렇게까지 힘든 자전거 나들이는 아니었으나 함부로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나들이를 마친 뒤, 자전거 나들이가 한결 수월하고 가벼워졌습니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오갈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좀더 붙었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자전거를 오랫동안 타는 일도 그렇게까지 힘들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번 나들이에서는 ‘빨리 달릴 수 없어 아쉬운’ 한편으로,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채로 하루에 여덟∼열 시간을 달렸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힘이 더 늘었지 싶습니다.


.. 또 만화 세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쌓고 있던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상 심사위원을 의뢰받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때부턴가 심사위원 의뢰를 받으면 거절하기 시작했다. 후배 만화가의 작품을 평가하기보다는 후배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평가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44쪽〉


 제주섬 나들이를 하기 이틀 앞서 《도약의 순간》이란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자전거 나들이를 할 때면 짐은 되도록 줄여야 하는데, 꼭 이때 맞추어 책을 선물한 선배가 얄궂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책겉을 보면 ‘천재처럼 열망하고 도약하라!’는 글월이 적혀 있습니다. 책이름 “도약의 순간”이란 말도 썩 달갑지 않습니다. “뛰어오르는 때”, “펄쩍 뛰는 그때”쯤으로도 붙일 수 있을 텐데, 일본책이라서 일본사람이 쓰는 한자말 그대로 붙였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애써 선사해 준 책인데 어느 만큼 읽어야지요.

 “단순한 공상으로는 리얼리티가 나오지 않는 법이다. 자신이 예전에 맛본 적이 있는 현실이어야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29쪽)”는 대목을 읽으며, ‘그저 가볍게 성공학을 말하는 책은 아니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금 우리들이 느끼기에는 천재처럼 보이는 이들이지만, 이들이 자기가 바라는 일을 찾고 즐기고 애써 밀고나갈 때에는 어느 누구도 천재라고 쉬 말하지 않았던 이들, 그러나 누가 천재라 하건 말건, 바보라 하건 말건 꿋꿋하게 자기 세계를 열고 가꾸어 나간 이들 이야기를 다룬 책이구나 느낍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데즈카 오사무, 빌 게이츠, 미켈란젤로, 니체, 기타노 다케시, 톨스토이, 로뎅, 고흐, 괴테와 고갱, 미야자키 하야오, 이렇게 열두 사람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본사람이 쓴 책이라 그렇겠지만 ‘우리가 돌아볼 만한 사람’으로 일본사람이 넷이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한국사람이 이런 책을 쓴다고 할 때에도 1/3쯤을 한국사람 이야기로 채울 수 있을까요?

 잠깐 책을 덮습니다. 바깥에는 바람이 세게 붑니다. 여름을 앞둔 날 부는 센 바람이라, 햇볕을 쬐면서 밖에 서 있으면 참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방에 앉아 창문으로 나뭇잎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나무마다 헐벗고 있던 때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떠오르는데, 어느덧 나무마다 푸른 잎사귀가 가득합니다. 어제는 길거리 은행나무에 은행잎이 가득 달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 잎이 언제 저렇게 달렸는가 하고요.

 그래, 저 나무들은 잎을 한꺼번에 틔우려고 겨우내 숨을 죽이고 힘을 모으고 있다가 봄이 되어 조금씩 눈을 틔우다가 날이 확 풀린 그날부터 ‘이제 때는 왔다!’ 하고서 한껏 잎사귀를 터뜨렸겠지요. 《도약의 순간》에서 말하는 사람들도 고단하고 어려운 동안을 거치면서도 자기 담금질을 잊지 않았겠구나 싶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거나 눈치채지 못하는 일을 꿋꿋하고 다부지게 이어왔겠다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이 알아주느냐 마느냐가 아니거든요. 자기 스스로 느끼기에 얼마나 알뜰하느냐, 올바르느냐, 고웁냐, 속이 꽉 찼느냐이지 싶어요. 자기 스스로 느끼기에 ‘이제 됐다’ 싶을 때까지, 또는 ‘아직 모자라니 더 하자’는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꾸준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선배가 저한테 이 책을 선물한 뜻을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4339.5.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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