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와 일본의 미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7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김순희 옮김 / 소화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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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다도와 일본의 美
- 글 : 야나기 무네요시
- 엮은이 : 구마쿠라 이사오
- 옮긴이 : 김순희
- 펴낸곳 : 소화(1996.3.30.)
- 책값 : 6800원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학년을 마칠 즈음이면 담임을 찾아가 꼬박꼬박 ‘돌려 달라’고 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 일기장입니다. 담임은 아이들 일기장을 고스란히 모아서 간직하게 되어 있었는지, ‘일기장 돌려받기 바라는 사람?’을 물은 뒤, 따로 바라지 않으면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살아가는 발자취를 하나하나 모으고 싶은 마음이 짙어서 잊지 않고 챙겼으나, 1학년 것은 미처 못 챙겼지 싶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고 난 뒤, 시험지를 하나도 안 버리고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모의고사 시험지도 차곡차곡 모았고요. 쪽지시험 종이도 모으고 싶었는데, 쪽지시험 종이는 못 챙겼습니다.


.. 다례에 빈부의 격차는 없다. 가난한 자라도 ‘차’를 즐길 수 있다.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다도에 관한 여러 일이다. 아니 인간의 다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공유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  〈87쪽〉


 역사를 알 턱이 없었고, 무엇이 문화가 되는지 생각하기 어려웠던 그때였는데, 역사를 배울 때 ‘왕 이름만 외우기’ 시키는 것, ‘전쟁영웅이 무슨 싸움터에서 몇 사람을 죽였는가 자랑 외우기’ 시키는 것이 참 싫었어요. 살수대첩이니 무슨 대첩이니 할 때면, ‘그때 우리 군인들은 얼마나 죽었을까, 또 죽은 이들 남은 식구는 어떠했을까, 또 우리가 죽인 그 적군 병사들은 어떤 사람이고, 그 적군 병사들 남은 식구는 어떤 마음일까’가 떠오르곤 했어요.


.. 진정한 자유에 기인하는 창조미가 아니라 억지로 신기로움을 꾸민 집착의 흔적이라고 생각된다. 집착은 인간을 부자유로 빠지게 한다. 음악 세계에서도 근대에 와서는 소음이 많이 눈에 띈다. 이것도 자유를 추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기로움으로의 집착에 사로잡힌 폐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192∼193쪽〉


 그래서 꿈을 하나 꾸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살아간 발자취를 알뜰히 모아 놓고, 이것들을 한 자리에 보여주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를 말하겠다고.

 지금 제 책상서랍에는 국민학교 때 쓰던 이름표, 필통, 연필, 공책, 색종이, 판박이, 껌종이, 책받침 들을 비롯해서, 버스표와 전화카드와 야구장 입장권과 편지봉투와 학부모알림쪽지와 중학교 적 보충수업비 영수증과 그때 연예인 사진 오려모은 것 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4340.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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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옆의 약자
이수현 지음 / 산지니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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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우리 옆의 약자
- 글쓴이 : 이수현
- 펴낸곳 : 산지니(2006.3.31.)
- 책값 : 12800원


 자전거를 타는 까닭이라면 ‘더 빨리 가고 싶기 때문’은 아닙니다. 때때로 빨리 갈 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탈 때도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짐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어 좋기도 합니다. 가방을 메고 걸을 때보다는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면 힘이 한결 덜 들어요. 그렇지만 자전거 타는 까닭은 ‘짐을 나를 생각’ 때문만은 아니에요.


― 사업주들은 일은 많이 시키면서 돈은 적게 주었다. (37쪽)


 내 두 다리로 움직이는 일, 내 몸뚱이를 쓰는 일이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걷기가 두 다리를 쓰듯, 자전거 타기도 두 다리를 씁니다. 자가용은 두 다리를 안 씁니다. 버스와 전철이나 기차 또한 두 다리를 쓸 일이 없습니다. 자가용을 타면 책조차 못 읽습니다.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서는 잠깐이나마 책을 쥘 수 있습니다. 다만,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서는 책을 오래 못 읽어요. 꽉 막혀 있는 쇠붙이 통인 터라 숨이 막혀서 머리가 지끈거리니까요.

 자전거를 탈 때에도 책을 못 읽지만, 내 몸뚱이를 써서 움직이기 때문에 차츰차츰 몸이 튼튼해집니다. 몸이 차츰 튼튼해지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도 몸이나 마음이 한결 싱싱합니다. 집에서 씻고 치우고 아이 돌보고 한 뒤에도 책을 잠깐 펼칠 수 있는 기운이 남아요.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게 되고, 자기한테 주어진 한삶이라고 하는 시간을 한껏 알뜰히 즐길 수 있습니다. 자가용 몰며 보내는 시간과 자전거 타며 보내는 시간은 서로한테 얼마나 다르게 영향을 끼치는가요.


― 두발제한과 체벌 등이 아직도 횡행하는 이유를 학생들은 입시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했다. (160쪽)


 요사이 자전거 타는 분이 부쩍 늘었습니다. 찻길에서도 싱싱 달리는 분을 곧잘 만납니다. 하지만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즐길 줄 아는 분은 썩 안 늘었구나 싶어요. 자전거 타기는 무엇보다도 자기 몸을 가꾸는 일이요, 자기 둘레 사람들을 더 두루 헤아리는 일이며, 자기가 디디는 이 땅을 더욱 돌아보고 보듬는 일인데 말입니다.

 찻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자동차들이 얼마나 자전거꾼한테 폭력을 휘두르는지 느끼고, 거님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이곳에서는 자전거가 걷는 이한테 폭력을 휘두를 수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없다면, 자전거 타는 보람이란 어디에서 찾을까요.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 한갓진 취미생활이 자전거 타기일 수 없습니다. (4340.5.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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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전거 타는 거 참 좋아하는데 ㅎㅎ 오래타면 엉덩이가 좀 아프긴 하지만요
건강에도 좋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느낌이 뭐랄까, 좀 다른 느낌이죠.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 것도 그렇고.

참 항상 말미에 붙이시는 <ㅎㄲㅅㄱ>뭔지 궁금합니다. 평안한 빨강날 되세요 :)

숲노래 2007-05-2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다른이름(호, 별칭)을 줄인 말입니다.
"함께살기"에서 닿소리를 딴 거예요~ ^^
 
아름다운 왕따들 - 민주노동당 여성지방의원 9인의 이야기
권은정 지음, 김윤섭 사진 / 이매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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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책이름 : 아름다운 왕따들
- 글 : 권은정 / 사진 : 김윤섭
- 펴낸곳 : 이매진(2006.2.20.)
- 책값 : 1만 원


 지난 5월 3일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날 〈시민사회신문〉이 새로 세상에 나오는 날이라고 해서, 초대를 받고 함께했습니다. 예전에 〈시민의 신문〉으로 나오던 시민단체 연합신문이었는데, 이형모 대표가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뒤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끝내 〈시민의 신문〉은 문을 닫게 되고, 이곳 기자들이 다시 힘을 모아 새 이름으로 새 신문을 내게 되었어요.


―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정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요. 저기 어디 높으신 분들이 하는 게 아니지요. 사회적 약자이며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의 힘, 그게 모여 정치적인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늘 명심하고 있습니다. (박주미 의원 / 35쪽)


 새 신문이 나오는 자리를 빛내 줄 바깥손님이 퍽 많았습니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국회의원과 무슨무슨 단체 우두머리가 많이 보입니다. 이분들은 따로 단 위로 올라와서 축하말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축하말과 여러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문득, ‘저이들은 〈시민의 신문〉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무엇을 했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축하한다고 읊는 이야기는 얼마나 마음속 깊은 데에서 우러나올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얼굴을 내밀려고 이런 자리에 오지 않았을까요. 자기 축하말을 하고는 조금 뒤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검은 양복 중년 사내’들. 이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단체에서 우두머리로 이름쪽을 내밀기도 합니다. 그래, 이들한테는 얼굴 내밀고 악수하고 후원금 얼마 내는 일이 ‘돕는 일’일 테지.


― 사람들은 앞에다 대고 싫은 소리 잘 안 하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의원의 임무가 뭐예요? 집행부에 대해서 쓴소리하라는 게 의원의 임무 아닌가요? (윤난실 의원 / 39쪽)


 축하잔치가 마무리될 무렵, 기념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이때까지 남은 사람은 1/10쯤? 아니 이보다 적은 숫자? 시민단체 목소리를 아우르고, 우리 사회가 한결 올바른 쪽으로 굴러가도록 하자는 〈시민사회신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축하잔치에 와야 할 사람은 다름아닌 ‘보통 시민사회 단체’ 간사와 활동가와 회원이어야지 싶은데. 시민사회 단체 대표나 총무 같은 사람이 와서 얼굴 알리기와 악수하기만 하지 말고, 정작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어떻게 하면 서로 더 어깨동무를 하며 힘차고 꿋꿋하게 싸워 나가면 좋을까를 이야기해야 알맞지 싶은데.

 하긴, 이러니까 이형모라는 옛 대표는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고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이 ‘피해자인 시민단체 여성이 돈을 달라고 해서 돈을 주었다. 그러면 이 일은 다 끝난 것 아니냐?’면서 큰소리를 치겠지요. 그러면서 이 사건을 기사로 다룬 옛 〈시민의 신문〉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난리법석을 피웠을 테며, 이런 사건을 놓고 ‘굵직굵직한 사회명망가와 원로’ 들은 입을 다물었겠지요.


― 울산시에 사는 시각장애 아동들이 맹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산이나 대구까지 가서 교육을 받습니다. 이들 가족은 아이 때문에 온 가족이 헤어져 사는 이산가족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현실입니까! 울산광역시에 맹학교 하나 없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하더라도 이 작은 것을 해결하면 삶의 기본조건이 해결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무엇이 가장 우선순위에 들어가야 할 사안인지 잘 살펴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홍정련 의원 / 68쪽)


 새로 태어나는 〈시민사회신문〉에서 앞으로 무게를 두어 다루거나 살필 대목으로 ‘대통령선거’가 1번으로 들어갑니다. 대통령을 누구로 뽑느냐는 앞으로 다섯 해 동안 이 나라 살림살이가 어떻게 달라지느냐를 판가름하는 만큼 참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느낍니다. 대통령을 누구로 뽑든 그다지 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대통령으로 뽑히든 허튼 짓을 못하게’ 하고, ‘어떤 정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든 깨끗하고 올바른 생각으로 알차게 일하게’ 할 수 있는 여론매체, 진보 목소리, 〈시민사회신문〉이어야지 싶어요. 시민운동이라면, 또 사회운동이라면 이렇게 나아갈 때 비로소 더 많은 사람과 어우러지며 힘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그래 피하지 않겠다. 시대가 요구하는 운동이 내게로 왔다. 하고 싶은 운동만 한다면 그게 운동이겠느냐. (김민아 의원 / 146쪽)


 민주노동당 여성지방의원 아홉 사람을 만나본 이야기를 묶은 《아름다운 왕따들》을 읽고 있습니다. 이들은 몇 안 되는 목소리이며 한 줌밖에 안 되는 목소리입니다만, 자기가 몸담은 정당이나 지역의원임을 떠나서, ‘아름답고 곧은 길로 가려는 생각으로 땀흘려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시민사회신문〉도 이런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하게 살필 대목은 ‘어떤 현안이나 사건’보다 ‘어떤 현안이나 사건을 움직이거나 이런 현안과 사건이 뿌리내린 밑바닥’일 테니까요. (4340.5.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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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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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글쓴이 : 하종강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6.5.1.)
- 책값 : 1만 원


.. 한쪽은 막강한 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자본가들이고, 다른 한쪽은 맨몸뚱어리밖에 없는 노동자들인데, 그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17쪽〉


 우리 세상은 얼마나 평등할까요. 돈-이름-힘을 가진 사람과 돈-이름-힘을 못 가진 사람이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둘은 같은 자리에 서서 힘껏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요. 50미터 앞에서 달리는 이가 있고, 50미터 뒤에서 달려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배우는 기회, 배운 것을 펼치는 자리, 펼치려는 것을 실을 매체, 매체에 실은 뒤 받는 대접들은 누구한테나 고르게 주어져 있을까요. 어렵게 살림을 꾸리며 공부도 부지런히 해서 뜻을 이루었다는 소년소녀 가장을 칭찬하는 사람들만큼, 어려운 살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찔해 하는 훨씬 많은 사람들한테 따순 손길 내미는 이웃은 얼마나 될까요. 이들을 보듬는 제도가 우리 사회에 있을까요. 이런 사회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일은 무엇을 뜻할까요.


.. 남들이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자격증을 세 개씩이나 갖고 있으면서도 그 장애인 노동자는 아직까지 번듯한 직업을 가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썩을 놈의’ 우리 사회다 ..  〈39쪽〉


 양복 착 빼입은 사람한테는 굽실거리지만, 일할 때 입던 옷차림인 사람한테는 눈을 부라리며 가는 길을 막는 우리 사회입니다. 시커멓고 큰 차를 몰면 검문을 안 하지만 값싸고 작은 차나 짐차를 몰면 어김없이 검문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열 해 앞서, 스무 해 앞서, 서른 해 앞서도 똑같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나도 마찬가지가 되리라 봅니다.

 길에서 신체장애인을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몽골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떠올려 보셔요. 얼굴 하얀 서양사람이 길을 물을 때와 파키스탄 이주노동자가 길을 물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요.


.. 법대로 모든 안전설비를 하는 데에는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에는 기껏해야 1억 남짓의 비용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산재보험에서 지불됩니다. 우리 사회와 같은 기업 경영 풍토 속에서 유능한 경영자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  〈229쪽〉


 법이 있어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사람한테는 ‘법이란 있느나 마나’ 아닐까요. 어떤 이는 불법을 저질렀어도 변호사를 잘 써서 불구속이 되거나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어떤 이는 멋모르고 저지른 잘못 하나로 바로 구속이 되고 오랫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자기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사회 부조리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전투경찰 쇠몽둥이 찜질과 닭장차에 몸뚱이가 들린 채 처박히는 창피를 겪어야 합니다.

 법조항을 따진다면, 지금 틀거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 다니는 ‘거님길(인도)’로도, 자동차 다니는 ‘찻길’로도 다닐 수 없습니다. 법조항으로 따진다면. 그렇다면 자전거를 파는 가게도 불법이고,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도 불법 아닐까요. 툭툭 끊어지는 자전거길을 놓는 행정 당국자도 불법이요, 자전거길을 제대로 놓지 않는 정책입안자와 공무원 모두도 불법 아닐까요. 자전거를 만들어서 팔게 해 놓고 다닐 수 없게 했으니까요.

 한편, 도시나 시골 길가에 불법무단 주정차를 하고 있는 자동차가 딱지를 끊는 일이란 거의 보기 드뭅니다. 몇 군데에서 함정 단속을 할 뿐, 그 많은 경찰들은 숱한 불법무단 주정차 자동차를 못 본 척합니다.


..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경영에는 당연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도한 임금인상이 원인이 되어 도산한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부실 경영의 원인은 대부분 다른 곳에 있습니다. 노동자의 적정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나라 기업 경영자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입니다 ..  〈75쪽〉


 우리들은 누구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일꾼’입니다. 한자말로 옮기면 ‘노동자’입니다. 논밭을 부치는 사람이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동사무소나 행정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버스나 기차를 모는 사람이든, 누구나 ‘일하는 사람 = 일꾼 =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는 일하는 사람이야. 일하는 사람이니 일꾼이지. 일꾼이란 노동자를 가리키지.’ 하고 생각할까요. 내 이웃도 똑같은 ‘일꾼이며 노동자’라는 생각을 몇 사람이나 할까요. 노동자한테 주어진 노동3권이 무엇인지, 노동자가 받을 권리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 나라 노동현실이 어떠한지,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이 어떠한 곳인지, 노조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회사 간부와 언론재벌 생각은 어떠한지, 노동운동이란 무엇을 하자는 일인지, 노동운동이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웬만한 직장인들은 대학교를 나오는 오늘날, 머리속에 수많은 지식을 가득 채우고 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은 누구이며 어떠한 ‘일꾼’이고, 어떤 대접과 권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내 이웃이자 또래이자 손위나 손아래 사람인 다른 ‘일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무덤덤하지는 않나 모르겠어요. 내 이웃이 시달림을 받고 푸대접을 받을 때, 나 또한 시달림과 푸대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못 느끼지 싶어요. 그래도 노동운동에 희망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란 불씨 하나 꺼지지 않도록 살리면서 보듬을 수 있을까요. (4340.4.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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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
르 꼬르뷔제 지음, 황준 옮김 / 미건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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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작은 집
- 글쓴이 : 르 꼬르뷔제
- 옮긴이 : 황준
- 펴낸곳 : 미건사(1994.5.10.)
- 책값 : 5000원


 ‘르 꼬르뷔제’가 누구인지, 또 어떤 일을 한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어디에선가 이름을 익히 들었다는 생각에 《작은 집》이라는 작은 책을 덜컥 집어듭니다. 사진이 많고 글은 적은 책, 으흠, 이이 르 꼬르뷔제는 집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로군요.


..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수에서 4m라구? 그 사람들 미쳤군! 류머티즘에 걸리고, 무엇보다 호수면의 반사 때문에.” ‘모두들’ 자세히 관찰도 하지 않고, 잘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류머티즘이라고? 예컨대 남비에 물을 끓여 보면 된다. 수증기는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 남비 위쪽으로 올라가지, 절대로 남비 측면으로는 돌지 않는다. 통상 ‘습윤성 류머티즘 증상’은 표고 50미터 내지 100미터 전후의 구릉지에서 많이 발생한다 ..  〈13쪽〉


 온 나라 구석구석 아파트가 들쑥날쑥 들어서는 이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생각’을 해 보며 아파트를 지을까요. 아파트가 들어서는 땅, 기운, 햇볕, 바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까요. 아파트가 들어서며 달라질 그곳 삶터, 자연, 사람 들을 헤아려 보았을까요. 아파트를 세우면 집값이 얼마가 오르고, 돈을 얼마 버는 데에만 눈길을 쏟지 않았을까요.


.. 이 집의 개가 기뻐하도록(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개도 가족의 일원이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밑을 볼 수 있는 높이에 울타리가 있는 구멍을 뚫고 작은 발판을 설치해 주었다. 이렇게 해 두면 개가 싫증을 내지 않고 놀게 될 것이다. 대문 울타리에서 이 발판이 있는 구멍까지 개는 계속해서 20미터나 뛸 수 있고, 또 거리낌없이 짖을 수도 있다 ..  〈27쪽〉


 요사이는 집에서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짐승을 기르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도 집집마다 개며 닭이며 고양이며 돼지며 소며 염소며 토끼며 온갖 짐승을 길렀습니다. 지난날 짐승기르기는 우리가 먹는 고기짐승이기도 했지만, 한식구로 여기는 살가운 동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날 우리가 기르던 짐승들은 딱히 ‘목에 줄이 매여 좁은 집구석에 갇히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일소를 부리고 돼지를 친다고 해도 이들 집짐승이 어느 만큼 자유롭게 움직이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마음을 썼어요.

 오늘날 애완동물은 아파트 구석에서 눈치를 받으며 살그머니 키워야 하거나 좁은 시멘트 소굴에 갇힌 채 온삶을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집짐승이 그곳에 사람과 함께 살겠거니 생각하는 ‘건축가’란 없고, ‘아파트 회사’에서도 이런 데에는 마음을 안 쓰니까요.

 집짐승을 기를 수 없는 집이라면, 사람도 사람답게 숨구멍을 트며 살 만한 집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숨구멍을 트며 살 만한 집이라면, 어떤 집짐승도 즐겁게 어울려 살 수 있는 집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마당이 있는 집에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기 좋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 이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한결 마음을 부드럽게 다스리고 조촐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 이제 벌써 9월 말이 되었다. 가을 화초가 피기 시작한 옥상에는 다시 푸르름으로 가득 찼다. 야생 제라늄도 빽빽히 자라서 이곳 한쪽 면을 뒤덮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광장이다. 또 봄에는 어린 풀들이 자라고, 작은 화초가 피고 진다. 여름에는 키가 큰 잡초가 무성해 초원을 방불케 한다. 옥상 정원은 이렇게 자생하고 있다. 태양과 비와 바람과 씨앗을 날라다주는 새들 마음대로(아주 최근, 1954년 4월의 일이었는데, 이 옥상 한쪽 면은 원추리로 파랗게 뒤덮였었다. 원추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옮겨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46∼47쪽〉


 아파트에도 뜰이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인은 틈틈이 뜰을 돌보며 ‘자기들이 심은 나무나 꽃’ 아닌 풀이 자라는가 빈틈없이 살피며 풀뽑기를 합니다. 꽃나무는 자기가 뻗고픈 대로 가지를 뻗을 수 없고, 1층과 2층, 또는 3층에 해를 가린다며, 위로 줄기를 올릴 수 없습니다. 바람을 타고 민들레 씨앗이 날아와도, 지나가는 새한테 묻어 온 들꽃이 뿌리를 내려도 어김없이 뽑힙니다.

 아파트 뜰은 겉보기로는 예쁘장하게 꾸민 푸름이 있는 듯 보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끙끙 앓는 나무와 무서움에 벌벌 떠는 풀들이 잔뜩 옹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감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옥 같은 데에서 자라는 풀들이 푸르다면 얼마나 푸를 수 있을까요. 이런 풀을 보며 푸름을 느끼는 아파트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에 푸름을 담을 수 있을까요.


.. 1924년에 이 작은 집이 완성되어 내 양친이 이사하려고 할 무렵, 이곳 촌장은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놓고 이 땅에 이런 건축물은 ‘자연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라고 논의했다. 또 이 집이 이 땅에 세워짐으로써 앞으로 이런 종류의 건물이 (어쩌면) 몇 채나 더 지어질 것이 아니겠는가고 걱정하고, 이것이 다시는 더 모방되지 않도록 하자고 이런 건물의 건축을 금지했다 ..  〈82쪽〉


 르 꼬르뷔제라는 이가 지은 집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이 부모님은 이곳에서 마지막 삶을 아늑하게 보냈지만, 마을사람들하고 어우러지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때부터 여든 해가 훌쩍 지난 2007년 오늘 르 꼬르뷔제를 돌아본다면, 지금도 르 꼬르뷔제가 지은 이 집은 ‘실패’일까요. 오늘 이 나라에서 아파트를 꾸역꾸역 온갖 곳에 세우는 ‘건축가’들은 ‘성공한 집’을 짓고 있을까요. 이집트에서 집짓는 일을 하는 하싼 화티는 ‘의사들이 맹장수술을 한다고 할 때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길이로 살을 갈라 똑같은 크기대로 맹장을 덜어내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람이 살 집을 그곳에 깃들 사람들 형편에 따라 다 다르게 짓지 않는 사람은 건축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 구석구석 들어서는 아파트는 사람이 살라고 지은 집일까요. 죽은 르 꼬르뷔제가 본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찾아드는 그 수많은 아파트는 어떠한 집일까요. 아니, 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람도 집짐승도 깃들 수 없는 시멘트 소굴이거나, 사람다움과 자연스러움을 잃고 하루하루 마음이 병들고 몸은 찌들며 죽어가야 하는 시멘트 무덤은 아닐는지요. 우리가 깃들어 살아갈 집이라면, 돈으로 마련하는 집이 아니라, 그곳에서 누가 무엇을 하며 얼마 동안 어떻게 지낼까를 헤아려서 저마다 다 다르게 지을 집이 아닐는지요. (4340.3.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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