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목수일기
- 글쓴이 : 김진송(목수 김씨)
- 펴낸곳 : 웅진닷컴(2001.7.10.)
- 책값 : 8000원


 학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착한 일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착한 일’을 권리로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힘없는 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착한 일은 언제가 가로막힙니다. 재개발을 한다는 마을마다 ‘그곳에 있던 집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으레 있으나, 이런 나무를 사랑하며 돌보고 싶은 착한 마음은 언제나 포크레인 삽날에 찍혀 버립니다. 큰나무를 파서 옮기자면 500만 원도 넘게 들지만, 새로 사서 심으면 5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하면서.

 힘없이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을 돕자는 착한 마음도 언제나 날벼락을 맞습니다. 철거를 맡은 깡패들은 ‘위에서 시킨 일’이라 하고, 위에서는 ‘법으로 떳떳이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날이 줄어드는 지구자원을 걱정하면서 자전거로 거리를 오가면, 한결같이 자동차 배기가스 세례를 받고 시끄러운 빵빵거림을 받습니다. 자동차마다 자전거를 길섶으로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이곤 합니다. 정작 지구자원을 펑펑 써대는 자동차는 ‘석유든 석탄이든 다른 지하자원이든 바닥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조차 안 합니다. 자전거 타거나 걷는 사람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착한 마음은 언제나 콜록콜록 아찔아찔입니다.


.. 도시계획과 도로개발 과정의 기획안에는 땅값의 배상 이외에는 주거인들에 대한 어떤 것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전유한 공간에서 살 권리가 인정되거나 그것을 배려한 정책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그런 법조항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발에 관한 한 무제한의 독재가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 농촌인 것이다. 따라서 만일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었다고 해도, 그리고 그곳을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수십 년을 가꾸었다고 해도, 어느 날 산을 뚫어버리며 쳐들어오는 도로와 갑자기 만들어지는 댐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  〈273∼274쪽〉


 저는 아직 시골에 몸을 붙이고 있지만, 이곳에 얼마나 오래 몸을 붙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땅임자는 땅을 팔아 전원주택 짓거나 인삼밭을 가꿉니다. 산임자는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고 공장을 들여놓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뿐 아니라 이 나라 어디를 가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도시에 깃든들 뾰족한 수가 없고, 시골에 뿌리박는들 다른 수가 없습니다. 땅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나 떠돌이 신세입니다. 찻길도 놓고 공장도 세우고 짐승우리도 갖춰야 하니 자꾸자꾸 쫓겨납니다. 전세값 높이고 재개발을 하고 뭐를 뭐를 짓는다고 하니 자꾸만 밀려납니다.


.. 땡볕에 군인들 몇 중대가 동원되고 포크레인이며 트럭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편 고맙기도 하고, 한편 일하는 모양새가 영 마뜩찮던 중이었다. 개울물이 도로를 휘돌아서 아스팔트가 다 벗겨지고 콘크리트 밑의 흙도 다 휩쓸려 내려가, 공중에 콘크리트만 덜렁 들려 있는 곳이 그들의 작업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긴급 복구공사지만, 공중에 떠 있는 콘크리트를 무너뜨리고 흙을 다져넣는 게 아니라 동굴처럼 보이는 앞부분만 흙으로 메우고 있었다. 마침 어제는 흙을 가득 실은 복구차량이 그 위를 지나다 콘크리트가 무너져내려 전복되어 버렸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저 흙더미만 대충 메우는 일품새를 보니, 차라리 수해복군지 뭔지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44∼45쪽〉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가르친 ‘착한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데 눈길 두지 말고 시험공부 잘해서 일류대학에 붙은 다음, 자격증 몇 가지와 운전면허증 따서 큰기업에 일자리 얻고, 좋은 신랑신부감 만나 하루빨리 시집장가 가서 애 쑥쑥 낳고 세금 잘 내는 일등시민 되라는 것? ‘어떤 사람을 찍을지는 알 수 없어’도 투표하는 날은 빠짐없이 투표하라는 것? 무엇이 쓰레기로 버려지는지는 따질 것 없이 ‘쓰레기 잘 줍는 일’? 아직까지도 서울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간첩신고 알뜰히 하는 일?

 우리가 사회살이를 하며 할 수 있는 ‘착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나라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 행정관청에서 하라는 일은 두말 없이 받아들이기? 나이 많이 잡수신 어르신 말씀 고개숙여 잘 듣기? 신문과 방송에서 수없이 흘려보내는 소식을 비판없이 그대로 새겨듣기?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 월급 주고 일 시키는 회사가 얼마나 고마웁냐고, 이런 회사에 반기를 들며 교통정체 일으키는 데모하지 말고 야근이나 잘하기?


.. 도무지 엄나무를 제대로 자라게 놔두는 법이 없다. 몸에 좋다고 껍질을 벗겨 약으로 쓰거나, 엄나무닭 백숙이라고 하여 닭국에 넣어 삶아먹는지라 남아나는 게 없다. 큰 엄나무가 방골내미 뒷산에도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도 한 해 전에 누군가가 뎅겅 잘라가 버렸다 ..  〈78∼79쪽〉


 목수 김씨(김진송)가 쓴 《목수일기》를 읽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쟁이 이야기만 쓰는 줄 알고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었으나, 가만가만 읽노라니 나무질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만난 나무 이야기, 자기가 만난 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있으며 괴롭게 살아가는지 하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또한 자기가 나무를 만지며 살아가는 터전이 얼마나 팍팍해지고 있는지, 자기 또한 나무를 만지며 살 수 있는 시골땅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숨김없이 털어놓습니다. 반갑군요. 이렇게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간직하고 있으니. 하지만 슬프군요. 나무며 사람이며 우리 삶터며 된통 뒤죽박죽이 된 채 어둡고 슬프게 살아가야 하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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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뿌리
서숙 지음 / 녹색평론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따뜻한 뿌리
- 글쓴이 : 서숙
- 펴낸곳 : 녹색평론사(2003.5.10.)
- 책값 : 8000원

 
 새벽을 좋아합니다. 시골에 있든 도시에 있든 새벽이 참 좋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 나름대로 고요하고 으슬으슬 추운 새벽이 좋습니다. 도시에서는 도시 나름대로 시끄러운 소리 모두 잠든 새벽이 좋습니다. 지난날 서울에 살며 신문돌리기를 하던 때, 이 새벽이 참 좋아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다른 딸배보다 먼저 일을 끝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 점심으로 국수를 해먹고 맥주를 마셨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는데, 충일한 기운이 몸안에 쌓인 듯했는데 여전히 정오였다. 학교에서는 전화 두어 번 하면 점심시간인데,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마디지요? 시골에서는 그럼 돈도 이렇게 마딜까요? 그럴 수도 있지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길 틈이 없고, 생활이 그래서 단순해지고 ..  〈12∼13쪽〉


 술이 거나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을 빼놓고는 새벽에 볼 수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도시 골목길을 치우며 손수레 끌고 다니는 청소부를 빼놓고는 새벽에 길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새벽 두 시쯤 일어나 신문 부수를 헤아려 챙긴 뒤 자전거 앞뒤에 가득 싣고 달렸습니다. 신문돌리기로만 먹고사는 다른 신문사 총무도 비슷한 즈음 일어나서 새벽을 엽니다. 우유돌리기로 살림을 꾸리는 다부진 아저씨 아주머니 들도 비슷한 즈음 일어나서 새벽을 엽니다. 새벽길에 이분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마주치면,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도 꾸벅 인사를 하거나 ‘안녕하셔요’, ‘수고하셔요’ 하고 인사말을 주고받습니다.

 때때로 노래를 부르면서 돌립니다.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있는 날은 큰소리를 질러 보며 신문을 돌립니다. 빗길에는 신문 젖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고, 눈길에는 언덕길을 못 올라갈까 근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른새벽 골목길을 지나가는 차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하는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엄청난 빠르기로 쌩하고 지나갑니다. 이런 차를 부대끼면 차 뒤에 대고 주먹을 휘두릅니다.


.. 두 손으로 하던, 두 손 끝에 정성과 마음을 모아 하던 일들이 사라진 지금, 그 손들은 무엇을 하는가. 무슨 일을 하여서 잃어버린 집중과 긴장의 순간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손을 쓰지 않으면서부터,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생기를 잃게 되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나른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삶은 손을 통해 연결되는 현장성과 멀어지는 만큼 막연해지고 추상적이 되는 것이다 ..  〈114쪽〉


 새벽 신문돌리기에서 몹시 짜증스러운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순찰을 돈다는 경찰. 새벽 순찰을 돈다는 경찰은 신문배달부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꽂힌 신문을 으레 슬쩍합니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떼지요. 골목길 안쪽 집에 신문을 넣고 헐레벌떡 돌아오면 저 앞쪽에 순찰차가 슥 지나가는 게 보입니다. 바구니에 꽂은 신문 부수를 세어 봅니다. ‘저 자식들 또 훔쳐가네’ 언젠가 코앞에서 슬쩍하는 모습을 보고 ‘야,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니 ‘어, 죄송해요. 그냥 뭐가 났나 보려고요.’ 하며 꼬리를 내리고, 언젠가는 ‘아저씨 오면 돈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면서 알량한 웃음을 짓고, 언젠가는 ‘우리들이 이 새벽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한 부쯤 주면 안 돼요?’ 하고 외려 큰소리입니다. 그러면 저도 한 마디 하지요. ‘저도 이 새벽에 이렇게 고생하면서 돌리는데 한 부쯤 사 주면 안 돼요?’


.. 가령, 쌀 한 톨이라도 애껴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알뜰이나 절약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밥상에 밥 한 공기가 오르기까지, 곡식알들은 벌레로부터 비바람으로부터 새들로부터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수확기의 뜻밖의 폭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기들을 넘기고 살아남았다. 그러니 설거지통에 쌀 한 톨이 떨어진들, 그걸 무심히 그냥 버리지 못할 것이다. 거기까지 살아서 온 그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 허방을 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거지 물에서 건져내어 잘 씻어 향긋한 밥을 지어 먹을 때, 비로소 쌀 한 톨의 삶은, 거기 연결된 생명의 손길들은 완성되는 것이다 ..  〈217∼218쪽〉


 우유상자를 여섯 통 자전거 앞뒤로 매달고 이른새벽부터 아침까지 돌리는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앞에 하나, 짐받이에 셋, 짐받이 옆으로 하나씩. 아주머니는 저렇게 돌리고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었을까요.

 어느 날, ㅈ일보를 돌리는 총무가 우리 지국으로 찾아와 울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제 오토바이 못 보셨어요? 일을 마치고 쇠사슬로 묶어 놓았는데 누가 그걸 끊고 훔쳐갔어요. 그런데 지국에서는 오토바이 도둑맞은 건 제 과실이라면서 제 돈으로 그걸 물어내라고 해요. 아내하고 저하고 둘이서 1500부를 돌리는데 한 달에 70만 원 받아요. 오토바이 값은 80만 원이래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 정말 그러네. 배낭들을 삐딱하게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네. 이기, 우리가 차가 없어서 이럴 수 있는 기지요. 그건 그렇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비행기 택시 버스를 타고 걷고. 자가운전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전국의 도로 위를 달려가는 차들, 목적지를 향해 달리며 운전석에서 뒷자석에서 옹색하게 내다보는 풍경들 …… 물어서 버스표 사고 기다리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타고 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삶 속으로 잠시라도 들어가는, 그  홀가분하고 긴장된 순간들은 사라진다. 파스텔 색조가 사라지는 세계. 삶은 획일을 향해 질주한다 ..  〈136쪽〉


 새벽바람이 찹니다. 마당에 나가 새벽에도 아직 밝게 빛나는 별을 올려다봅니다. 이제는 밤하늘 별은 시골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아니 예전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고마운 선물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시골사람들은 이 고마운 선물을 누릴 만큼 느긋함이나 아늑함이 없습니다. 그만큼 힘듭니다. 삶이, 사회가 팍팍해지니까요. 그렇다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밤하늘이 선사하는 고마운 별빛을 손사래치고 무엇을 얻거나 누리며 살아가는가요. 우리를 먹여살리는 따뜻한 뿌리는 무엇일까요. 언제나 새힘을 내도록 하고, 저마다 다른 열매를 맺도록 북돋워 주는 따뜻한 뿌리는 무엇일는지요. (4340.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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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리타 골든 겔만 지음,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 글쓴이 : 리타 골든 겔만
- 옮긴이 : 강수정
- 펴낸곳 : 눌와(2005.4.30.)
- 책값 : 14000원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히 잡혀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꼭 이래야 하거나 저래야 하는 법이 없으니 재미있지 싶어요. 시험을 치를 때 꼭 100점을 맞아야 하지 않아요. 99점만 맞아도 좋아요. 뭐, 80점으로 흐뭇할 수 있고, 50점만으로도 기쁠 수 있습니다. 10점이나 5점 맞고 웃을 수 있어요. 제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보면, 영어 94점, 한문 97점, 수학 24점, 윤리 51점, …… 이랬습니다. 수학점수가 10점대였던 적도 있지 싶고 골치아픈 서양철학만 외우게 하는 윤리는 30∼40점에 머문 적도 있지 싶습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 좋았습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할 테야’ 하고 생각했거든요.


.. 나는 누군가 다른 이의 삶을 살고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유쾌한 사람들, 아카데미니 그래미니 하는 각종 행사들로 채워진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다. 24년을 함께 산 남편과 나는 유명 인사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최근 영화들을 시사회에서 감상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도서 관련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초대된다. 남편이 유명한 잡지의 편집자문 일을 하는 덕분에 우리는 남들이 흔히 누리지 못하는 특권과 화려함으로 채워진 삶을 구가한다. 하지만 이젠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특권을 향유한다는 뿌듯함 대신 눈부신 화려함이 왠지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은 나라고 할 수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명품의 세계에 살고 있다 ..  〈13쪽〉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난 내가 살고픈 대로 살 테야’ 하고 마음먹으면서 살고 있고, ‘난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테야’ 하면서 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읽습니다.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를 즐기는데, 올겨울에는 손발이 많이 시려워서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쯤 따뜻하게 가곤 했습니다. 얼어붙는 손발을 부여잡고 낑낑대며 달릴 때에는 ‘참 괴롭구나’ 싶었지만, 글쎄, 괴롭기는 해도 즐겁더군요. 더우면 더운 대로 ‘이게 바로 더위구나’ 하고 느꼈고, 추우면 추운 대로 ‘이게 바로 추위구나’ 하고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면 몸은 느긋했지만, 마음은 무겁습디다. ‘이거 너무 몸이 느긋하게 다니는 셈 아닌가’ 싶었고, 돈 몇 푼(찻삯)으로 자꾸만 손쉬운 길을 가면 마음까지 흐물흐물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더군요. 그래서, 고속버스에서 내린 뒤 다시 추위를 와락 껴안으며 달릴 때면 참 시원하데요. 그 짜릿한 추위와 칼바람이란! 하하!


.. 지금은 내가 선택한 삶의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중이다. 만약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면 니카라과에는 결코 가지 못했을 것이다 ..  〈117쪽〉


 곧 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설 명절에 부모님 집에 갈까 말까 망설입니다. 저는 제가 살고픈 대로 살기 때문에, 저 한 사람한테는 좋다고 하겠지만 이웃사람, 이 가운데 집안식구들한테는 썩 좋지 못합니다. 혼인과 이혼도 멋대로 했으니 집안식구들로서는 달가웁지 않겠지요. 제 둘레에 있는 다른 분도 비슷하리라 봅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야, 니가 고생하며 사는 걸 너 빼고 누가 좋아하겠냐?’ 하고 말하는 선배들 말을 들으면, ‘그렇구나. 나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구질구질하게 뭐 하는 짓이냐고 느끼겠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지내는 시골집을 슥 둘러보시더니 ‘무슨 피난민 수용소 같네’ 하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 코네티컷의 부모님 댁에서 일주일을 머문다. 두 분은 내 인생에 대해 무척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딸이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꾸리길 원하신다는 걸,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말해도 믿지 않으신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래도 당신들이 더 잘 안다. 여자는 남편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걸. 그게 인생이라는 걸. 엄마는 딸과 이혼한 옛 사위에게 얼마 전에 생일 선물을 보냈다고 얘기하신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내심 우리가 다시 화해하기를 바라신다 ..  〈89쪽〉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셈일까요? 남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집안식구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요? 이 모두가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삶을 꾸려야 잘사는 삶일까요?


.. “의료 교육을 받으셨나요?” 내가 묻는다. “아니오.” 그녀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엄마들이라면 다 아는 일들인걸요.” 그녀는 자식이 다섯에, 손자는 열다섯 명을 두었다 ..  〈106쪽〉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난 미국여자 한 사람이 세계 여러 곳을 두루 다닌 이야기를 끄적였나 싶어 따분할지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남 보란 듯이 꾸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즐겁게 꾸리는 삶’을 찾고자 위자료 한 푼 안 받고 이혼을 마음먹은 뒤, 제3세계를 중심으로 홀몸으로 낯선 세상과 사람들을 부대끼는 이야기임을 깨달은 뒤에는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군요.

 남들 따라 살지 않고 나 따라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한 번 살고 떠나는 이 세상에서 굳이 미련이나 아쉬움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자유롭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더 많이 움켜쥐거나 가지려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부대끼고 즐기려는 삶이라서 그럴까요. 떠날 때는 바람, 머물 때는 햇살. 그래, 그렇군요. 가볍게 살되, 한 자리에 머물 때는 따순 마음을 펼칠 수 있어야겠군요. 저는 바람처럼 살는지 모르나 햇살처럼 못 머물고 있었습니다. (434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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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글을 고쳤습니다. 살도 붙이고, 어색한 곳을 다듬어서 확 다시 썼습니다. (2007.12.9.)


 이 책 하나 7 ― 외국인노동자를 만나 보셨나요?
 : 이란주, 《말해요, 찬드라》를 몇 번 거듭 읽으며



 〈1〉 몽골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를 만나다


 책을 읽는다고 이 넓은 세상을 얼마나 알 수 있으랴 싶습니다만, 책읽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요즘 읽는 책 가운데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다산글방,2001)가 있습니다. 한 번 읽을 때 열 쪽이나 스무 쪽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펼치는 쪽마다, 이 나라에 어렵게 들어와서 온갖 차별과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으면서 죽을 고생을 하는 사람들 모습이 환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책을 조금 읽다가 덮습니다. 낮밥으로 찌개 하나 끓이면서 읽습니다. 기계가 잘못되어서 손가락이 잘려도 산업재해를 해 주지 않고, 더욱이 기계도 손보지 않아서 다른 외국인노동자가 그 기계를 쓰다가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는데, 공장주는 기계를 그냥 그대로 두며 다른 외국인노동자를 부려서 쓴다는 이야기를 봅니다.


..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공장식구들도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노이’가 이듬해 가을에 프레스에 오른손을 찍혀 몽땅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손목 부근에서 잘렸으니 아예 손이 없어져버렸다. 노이는 그 회사에서 2년 가까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알아서 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장은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세금을 내지 않아서 사업자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속 사고처리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사고난 후 한 달 만에 회사를 팔아넘기고 달아나 버렸다. 더구나 상담소에서 합의를 보자고 연락했을 때는 일부러 자기 이름을 새로 바뀔 사장 이름으로 알려줘서 우리를 골탕먹이기도 했다.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자기가 일하는 회사 이름이나 사장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새로 온 사장은 ‘나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모른 척했다 ..  〈17쪽〉


 한국땅에서 일어난 온갖 푸대접과 괴롭힘과 따돌림이 무엇인가를 낱낱이 밝혀서 보여주는 사례모음,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를 읽다가 덮고는, 《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라는 책을 펼쳐 봅니다. 벌써 두 번 읽었는데, 다시 한 번 집어들어 펼칩니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일하면서 ‘왜 한국사람이 외국사람 편을 드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아파하는, 그러면서도 이주노동자나 이 나라 노동자나 똑같은 사람인데, 모두들 똑같이 대접을 받으며 사람다운 꿈과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믿음을 나누는 사람인 이란주 씨가 발로 뛰면서 부대낀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책, 《말해요, 찬드라》.


..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좀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 부부는 또 어쩌려고 여기서 아기를 낳았을까 싶은 마음에 한편으로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살면서, 그것도 불법체류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한국이라는 나라는 남들과 다른 얼굴색을 하고는 절대 살 수 없는 나라가 아닌가.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겪게 되는 따돌림과 상대적 빈곤감은 평생 큰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을 본국으로 순순히 보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는 부모의 불법체류를 묵인하고 아이들만 출국시킬 수 없다면서 아이들을 내보내 주지 않고, 온 가족이 다 같이 고통을 겪도록 묶어둔다 ..  〈29쪽〉


 저는 우리 말과 헌책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한답시고 깝죽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늘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입니다. 헌책방에 뭐가 있느냐고, 구닥다리 책이 쌓여 있는 허름한 헌책방 따위는 머잖아 사라져 버릴 곳이 아니냐는 말을 듣습니다. 사람들 다 잘 알아서 쓰는 한국말 아니냐고, 뭐가 깨끗한 말이고 뭐가 알맞는 말이고 뭐가 얄궂은 말이며 뭐가 틀린 말이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냥저냥 값싸게 사들일 수 있는 헌책방 전화번호만 있으면 되지, 무슨 헌책방 나들이를 따로 하고 그런 걸 글로 끄적이고 사진으로 찍느냐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계화 시대를 거스르는 엉뚱한 짓을 하는 너는 고리타분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느냐는 손가락질도 받습니다.

 참말, 저는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참말, 이란주 씨 같은 이는 왜 ‘외국인노동자 권리’를 찾아 주려고 애쓸까요?


.. 법무부 출입국에서 하는 일 중에 아주 웃기는 일이 많은데, 그 중 으뜸이 단속과 벌금에 관한 것이다. 불법체류자가 자진출국하겠다고 나서면 그 사람이 불법체류했던 기간을 계산해서 벌금을 내라고 한다. 대략 한 달에 10만 원 꼴이어서 1년이면 100만 원, 2년이면 200만 원 가량이 된다. 안 가겠다고 꼭꼭 숨어 있는 사람들은 억지로 붙잡아다 강제출국시키면서도 스스로 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벌금 안 내면 못 간다고 도로 내보낸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가서 벌어 오라고 돌려보내는 곳이 바로 출입국사무소였다 ..  〈87쪽〉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일입니다. 제가 일하는 시골에서 서울로 가려고 시골 버스역에 갔을 때 몽골 노동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이가 몽골사람인 줄, 몽골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퍽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는데 그이 몸에서는 알쏭달쏭한 고약한 냄새가 났고, 마치 노숙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기에, 낮부터 술을 마셔서 저러는가 싶었지요.

 아무튼, 그러려니 하면서 책을 읽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시골 버스역에서 표파는 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저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 서울 가는 버스 타니까, 저 사람이 타는 버스 타면 돼요!” 하고 말을 합니다. ‘뭐여?’ 하는 마음으로 그쪽을 쳐다봅니다. 표파는 곳 아주머니는 저를 보면서, “이 (몽골) 사람이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놓쳐서 한 시간을 더 기다리고 있어요. 다음 버스가 올 때 알려줘서 타게 해 줘요.” 합니다. “네, 그러지요.” 하고 대답합니다. 조금 뒤, 버스역에 함께 붙어 있는 택시 타는 곳에 있는 택시기사 한 사람이, “어이, 몽골! 택시 타고 가!” 하고 소리지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저씨는 아무 말을 않고 손만 휘적휘적 내젓습니다. ‘아하, 몽골사람이었구나. 어쩐지.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저 아저씨한테 반말지꺼리야?’


.. 대한민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외국인력을 수입해서 저임금에 부리다가 쓸모없어지면 고장난 기계를 던져버리듯 본국으로 내쫓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과 국제질서를 논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 이래도 우리가 마음 편히 미국을 욕할 수 있겠는가? ..  〈103쪽〉


 서울 가는 버스가 들어옵니다. 몽골 아저씨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입니다. 부랴부랴 버스기사한테 ‘잠깐만 기다려 주셔요’ 하고 차를 잡아 놓고는, 버스역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핍니다. 이 몽골 아저씨는 어디로 갔담? 아이고, 저 구석에 서 있네. 헐레벌떡 뛰어갑니다. “아저씨, 이 버스 타야 해요. 또 놓쳐서 한 시간 기다리려고요? 어서 가요.”

 빈자리를 찾아서 몽골 아저씨가 앉습니다. 저는 짐보따리가 많아서 다른 빈자리로 가서 앉습니다. 책을 읽으며, 꾸벅꾸벅 졸며, 서울에 닿습니다. 이제 버스에서 내릴 때. 이제 서울에 왔는데, 몽골 아저씨는 어찌할는지?

 내릴 때 가만히 살펴봅니다. 몽골 아저씨는 버스기사한테 묻습니다. “동대문 어떻게 가요?” 버스기사는 “동대문? 동대문은 지하철 타고 가면 되지.”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몽골 아저씨는 어리벙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손님들은 모두 자기 갈 곳으로 갑니다. 버스기사도 버스를 빼려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몽골 아저씨 혼자 남습니다. 아저씨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더니 사람들이 많이 걷는 쪽으로 따라갑니다. 몽골 아저씨 뒤를 따라갑니다. 어깨를 오른손으로 살짝 잡으면서 아저씨한테 묻습니다. “어디로 가셔요?” “동대문 가요.” “어떻게 가는 줄 아셔요?” “몰라요. 택시 타고 가면 되겠죠.” “네? 아이고, 택시 타고 가면 돈이 얼마나 나오는 줄 알아요?” “몰라요. 나 돈 있어요. 택시 타고 갈 돈 있어요.” “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러죠. 지하철 타면 800원인데, 택시 타고 가면 5000원도 넘게 나와요. 지하철 타는 것보다 거의 열 배나 비싸요.” “나, 길 몰라요. 그리고 택시 타고 갈 돈 있어요.” 에구, 택시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이러다가 바가지라도 쓰고 엉뚱한 데 내려주면 어떡하려고.


.. 다른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날짜가 되면 어김없이 돈을 주면서, 우리에게만 월급 줄 돈이 없어서 그러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한번은 참다 못한 우리들이 월급을 주지 않으면 일도 않겠다고 버텼다. 사장은 주먹을 코앞에 갖다 대고 일을 안 하면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위협을 했다. 나중에 사장은 내가 너희들에게 줄 돈을 아껴서 다른 회사를 하나 샀노라고 자랑을 했다. 어이없어하는 우리들을 다 데리고 안산까지 가서 새로 샀다는 공장을 구경시키기도 했다 .. (올리) 〈164쪽〉


 “아저씨, 제가 가는 길에 내려 드리면 되니 지하철 타고 가요.” “택시 타도 되는데…” 아저씨를 달래어 지하철을 타기로 합니다.

 “지하철 타 본 적 있어요?” “한 번, 있어요. 처음 서울에 와서 의정부에 갈 때.” “한글은 읽을 줄 아셔요?” “(씩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며) 몰라요. 말은 조금 배웠어요.” “동대문에 가서는 아는 사람 있어요?” “네, 거기서 내려서 동생한테 전화하면 돼요. 동생이 한국사람한테 시집와서 서울에 살고 있어요.”


.. “예? 힘든 거요? 힘들지요. 그래도 월급만 잘 나오면 괜찮아요. 많이 일하면 돈 많이 받으니까…”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가구공장 일은 어지간한 노동자들이면 피하는 일이다. 임금이 조금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일이 너무 고되 골병든다고들 한다. 그 일을 하루 열네 시간 반 동안, 그것도 한 달에 보름 이상이면, 일요일을 뺀 나머지 날은 거의 다 밤 한 시까지 일했다는 이야기였다. 몸이 무쇠라도 견디지 못할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절대 문제삼지 말아 달라고 했다 ..  〈196쪽〉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몽골 아저씨와 이야기합니다. 그나저나 이분이 ‘아저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몽골에서 혼인을 하고 식구를 남겨 놓고 왔는지, 어쩐지 모르니까요. 그냥,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에 아저씨라고 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처음 봤을 때는 틀림없는 노숙자로 보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이분이 충북 음성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일할 때는 컨테이너 따위 움막에서 잠을 잤을 테고 씻을 곳이 넉넉하지 않았을 테니, 이런 차림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저씨가 한국이 아닌 몽골 시골집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그예 시골사람으로만 보이는 수수한 차림이었을까요.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일 년, 일 년 됐어요. 처음엔 의정부 있는 데서 일했는데, 돈 안 줘서 여기로 왔어요. 그런데 여기서도 돈 안 줘서 다른 데 가려고 동생 아는 곳으로 가요.” “서울에 사람 참 많지요? 어지럽지 않아요?” “사람 많아요.”


.. “예? 불법체류자라구요? 불법체류자 주제에 무슨 학교요?” 교육청에 처음 문의를 했을 때 들었던 대답이다. “아무리 불법체류 상태라도 어린이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권리요? 그거야 내국인이거나 합법적인 경우를 얘기하는 거지, 불법체류는 규정이 없어요.” “정식 입학이 안 되면 청강생으로라도 받아 줄 수 없나요?” “우리 나라에는 청강 제도 자체가 없습니다.” 학교를 상대로, 교육청을 상대로, 이런 실랑이가 수도 없이 벌어졌지만 항상 결과는 마찬가지로 ‘안 된다’였다. 교육부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지금으로서는 규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  〈48쪽〉


 그런데 동대문에 내려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갈 곳은 ‘동대문’이 아니라 ‘동대문운동장’입니다. 몽골 아저씨가 동생하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생 사는 곳’을 잘못 들었나 봅니다. 하긴, 서울이 어떻게 생겨먹은 땅인지 하나도 모르는 몽골 아저씨한테는 ‘동대문’하고 ‘동대문운동장’하고 어떻게 다른 지 가리기 힘들겠지요. 또, 다 같은 동대문 아니냐고 생각할 테고.

 전철역에서 내려 주면 될까 싶었으나 그게 아니게 되니, 저도 시간 빼기가 빠듯해집니다. 어쩔까 어쩔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약속 늦는 일은 할 수 없지, 미안하다고 손전화 문자를 보내고, 아저씨와 함께 길을 찾기로 합니다. 여기까지 함께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으니까요. 더욱이 몽골 아저씨로는 처음 발을 디뎌 보는 서울땅에서 길을 찾을 수도 없고요.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면서 “아무 데나 내려도 되지 않았나?” 하시는데, 참참참. ‘아저씨요, 그러다가 길 옴팡 잃고 동생도 못 만나면 어쩌려구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수도 없으니 동생이 여기까지 찾아올 수도 없잖아요? 이궁.’


.. 박 기자는 그때까지도 사무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우리 상담소 활동가가 아니라 기자라고 밝히니까 사장이 반색을 하더라고 했다. 자기들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으니 현실을 잘 살펴 달라고 하더란다. ‘월급도 많이 받는 놈들이 이제 벌 만큼 벌어서 아쉬울 게 없으니까 문제 일으켜서 벌금 안 내고 가려고 수작 부리는 거다, 월요일 오전까지 일 잘하던 애들이 왜 그러겠느냐, 저기 같이 온 단체에서 사주해서 파업까지 하는 것 아니냐, 나는 정말 동생들이라고 생각해서 뭐든 원하는 거 있으면 다 해 줬는데 정말 야속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사업 좀 키워 보려고 이것저것 투자하다 보니까 임금 좀 못 줬다, 뭐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냐, 애들한테 욕도 좀 했다, 우리끼리도 욕 잘하지 않느냐, 그게 뭐 그렇게 잘못한 거냐, 그리고 애들이 일 잘 안하고 그러면 엉덩이 좀 걷어찰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대수냐, 다른 회사에서도 노무관리 다 그렇게 한다, 괜히 나라에서 외국인들 고용 못하게 하니까 한 오십만 원만 줘도 일 잘할 애들에게 우리는 백만 원씩이나 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업이 어려운 거 아니냐, 우리도 이 사업 정말 하기 힘들다’ 박 기자가 들은 이야기를 대충 추려 들어도 그 정도였다. 도대체 기대할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  〈234∼235쪽〉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골목을 걷고 헤매고 한 끝에 가까스로 ‘가야 할 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몽골 아저씨 말로는 “여기에 오라고 했어요. 여기 있으면 된대요.” 몽골사람다운 느긋함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대충 어디로 와 있으면(시간을 따로 잡지 않고), 언제가 되든 그리로 몽골 아저씨를 데리러 온다는 소리일까요? 저보고 ‘이제 가도 된다’고 하지만, 차마 그냥 갈 수 없습니다. 함께 서서 기다립니다. 가방을 열어 떡 한 봉지를 꺼냅니다. 참으로 먹으려고 챙겨 두었던 떡입니다. 반을 뚝 떼어서 한 덩이를 아저씨한테 건넵니다. “아저씨도 점심 못 드셨지요? 떡이라도 드셔요.”

 냠냠 우걱우걱. 한참 기다리는데 올 사람은 오지 않고. 아마 동생 분도 어디에서 일을 하는데, 마무리를 짓고 나와야 해서 늦는 듯. 동생 분과 몇 번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이제 저는 가도 될 듯. 동생하고 만나는 자리까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손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 분 목소리로는, 이제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아무쪼록, 부디, 제발이지, 아저씨가 동생을 잘 만나서 길에서 더 헤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보다도 앞으로는 ‘일삯 떼먹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주면서 푸대접하지 않는 공장’을 찾아서 땀흘려 일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저씨와 동생이 흘린 땀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일하면서 몸이 다치지 않기를, 고향나라로 돌아가는 날 웃을 수 있기를, 한국땅까지 찾아와서 공장을 찾아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이루려는 꿈을 잘 마무를 수 있기를…….


 〈2〉 ‘외국인’노동자가 아니라 똑같은 ‘노동자’이겠지요


.. “한국이 우리 사랑을, 우리 가족을 인정하고 받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  〈38쪽〉


 자전거를 달립니다. 시간 약속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마에서 볼따구를 타고 목덜미로 내려와 등줄기에 줄줄 흐르며 젖어드는 땀을 느끼며 생각합니다. 아까, 몽골 아저씨와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으로 갈 때였습니다. 아저씨는 갑자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고 웃으면서 말을 건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나 싶어서 “네? 네? 무슨 말씀이셔요?” 하고 묻는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다들 뭘 물으면 ‘몰라 몰라’만 하는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합니다. 아하, 아마도, 몽골 아저씨가 어디로 가려고 길을 물어 보면, 한국말이 서툰 이분 말을 대충 넘겨듣고는 “어디로 가셔요.” 하고는 휙 가 버리거나 아예 말대꾸도 않고 지나갔는가 보네요. 몽골 아저씨는 서툰 목소리로 “한국 좋은 나라예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 그 ‘천사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외국인에게 그처럼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 것일까 ..  〈54쪽〉


 몽골 아저씨더러 “지하철 타고 가면 돼.” 하고 아예 말을 깐 채 이야기하던 고속버스 기사는 어릴 적부터 ‘외국인노동자를 보는 눈길’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겠지요.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며 반말 찍찍 내뱉던 그 택시기사도, 당신이 살아오는 동안 ‘외국인노동자든 한국인노동자든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는 눈매’를 다독이지 못했겠지요.

 몽골 아저씨가 아닌 미국사람이나 프랑스사람이었더라도 이렇게 반말로 함부로 이야기했을까요. 그때에도 귀찮다는듯이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았을까요.


.. 경찰은 사망사건 자체보다는 그 주변에 있는 불법체류자를 검거하는 일에 더 관심을 보였다 ..  〈112쪽〉


 문득, 몽골 아저씨 전화번호라도 하나 받아 적어 놓을 것을, 그냥 왔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언제가 될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저씨가 한국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가기 앞서 한 번쯤 더 만나서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한국사람과 한국 사회와 문화와 부대끼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들을 수 있다면 제 자신도 미처 못 느끼거나 모르고 있을 ‘치우치거나 얄궂은 생각’을 깨닫는 한편, 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몽골 아저씨이지만 서로서로 좋은 사람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 오마이뉴스에 띄웠던 파업 동영상과 아침신문에 보도된 내용 때문에 언론에서 엄청난 취재경쟁을 벌였다. 기자들은 타결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너무 늦게 온 것을 안타까워했다.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것이 ‘불법체류노동자들의 첫 파업’이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이미 작년에도 한 차례 파업이 있었으니 첫 번째가 아니라고 알려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여튼 내용이 뭐든지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언론은 말릴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언론이 ‘이런 파업이 앞으로는 일반화될 것이다’라고 섣부른 전망을 내놓는 통에 영 거북스러웠다 ..  〈240쪽〉


 퍽 많은 사람들이 몽골이라는 나라에, 또 티벳이라는 나라에, 또 인도라는 나라에, 또 파키스탄과 네팔이라는 나라에, 성지순례라든지 여행이라든지 영혼을 찾는 나들이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갑니다. 이때 몽골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제가 한국땅에서 만난 몽골 외국인노동자와 똑같은 차림과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참 평화롭구나, 수수하고 고와 보이는구나.’ 하고 말할까요.

 네팔에서는, 파키스탄에서는, 인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버마에서는, 필리핀에서는, 베트남에서는 어떠할까요.


.. ‘한국이 얼마나 원망스러우냐, 한국인이 얼마나 미우냐’ 언니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제발 그런 대답을 좀 해 줬으면 싶은지, 자꾸 그렇게 물어 봤다. 그러나 언니는 딱 잘랐다. “경찰은 미워. 다른 사람들은 아니야.” 그 한 마디뿐이었다. 더 이상 캐내기를 단념한 기자가 이번엔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언니는 머리를 다시 매만져 깔끔하게 뒤로 묶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활짝 핀 라일락꽃 아래로 가서 섰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  〈178쪽〉


 저마다 제 고향나라에서는 평화롭고 수수하고 곱게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느낍니다. 한국땅에 와서 ‘가장 푸대접받고 일삯도 싼 거친’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마치 ‘낮은 사람’인 듯, ‘못사는 사람’인 듯, ‘가난한 사람’인 듯 잘못 알거나 느끼지 싶습니다.


..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만 특별한 배려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국적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모든 법과 사회규범 적용이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나 국가권력이 ‘민족차별 행위는 곧 범죄행위라는 상식’을 지녔더라면 ..  〈125쪽〉


 남녀를 차별하는 눈길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하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눈길은 자연 삶터와 짐승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하고, 자연 삶터와 뭇 짐승을 차별하는 눈길은 학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할 테고, 학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은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이 되기도 하고,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은 시골사람이나 농사꾼과 공장노동자를 차별하며, 이렇게 차별하는 눈길은 우리 문화를 업신여기는 한편, 고유한 자기 삶을 못 찾고 돈-이름-힘에 끄달리면서 흔들리고 헤매이는 몸가짐이기도 하지 싶습니다.


.. 영세사업주들은 모두가 노동허가제가 실시되어 합법적인 외국인 고용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주장은, 실제와는 전혀 다르며, 연수제도 운영을 통해 나오는 온갖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술책임이 분명하다. 위에서 말한 연수생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외국인력을 수입해서 저임금에 부리다가 쓸모없어지면 고장난 기계를 던져버리듯 본국으로 내쫓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과 국제질서를 논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 이래도 우리가 마음 편이 미국을 욕할 수 있겠는가? ..  〈103쪽〉


 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자 인격체로 생각한다면 함부로 반말로 대꾸하거나 손찌검을 할 수 없겠지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으로 여긴다면 비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건널목을 마음놓고 건너며 도서관이고 극장이고 느긋하게 찾아갈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놓겠지요. 남녀차별이 아닌 남녀평등 사회라면 뒷간 크기만 남녀 똑같이 할 것이 아니라, 여자가 볼일 볼 자리를 좀더 많이 마련해 놓을 수 있겠지요. 사람들이 우리 말과 글을 아끼지 않으니,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올바르게 쓰는 일을 떠나서 깨끗하고 알맞고 손쉬운 말과 글을 안 쓰면서 서양말과 한자말에 그토록 빠져들며 어려운 글을 쓰지 싶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높은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일삯을 차별해서 주니까 해마다 입시병이 도져도 고쳐질 낌새가 없어요. 이런 우리 사회이니, 이런 나라 이런 땅에 돈을 벌겠다며 찾아오는 외국인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푸대접을 받고 괴로워하며 가슴아픈 일을 겪는구나 싶습니다. (4339.5.22.달./4340.12.9.고쳐씀.ㅎㄲㅅㄱ)


- 책이름 : 말해요, 찬드라
- 글쓴이 : 이란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2003.5.15.)
- 책값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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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길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 / 민음사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알라딘에서는 `품절'이 되었다고 뜨기에
제가 가진 책을 긁어서 올려놓습니다.)

 

- 책이름 : 감독의 길
- 글쓴이 : 구로사와 아키라
- 옮긴이 : 오세필
- 펴낸곳 : 민음사(1994.10.27.)


 1960년, 박정희는 《지도자도》라는 얇고 노란 책자를 펴내 전국 곳곳에 수없이 뿌립니다. 그러나 이내 이 노란 책자를 거두어들였고, 전국 곳곳에서 불을 지펴 집어던져 태워 버립니다(이 책자를 저한테 팔았던 헌책방 주인과 다른 책손이 들려준 이야기). 자신이 내세운 혁명공약 가운데 마지막 것,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때문입니다. 그 뒤 ‘혁명공약’은 다섯 가지만 적어서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펴낸 책은 《지도자의 길》. 독재자 박정희한테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고, 지도자라는 사람이 걷는 길이란 무엇이었을까요.


.. 단지 법이 규정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진아들을 강제로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어린이들의 성장은 제각기 다르다. 일부 다섯 살 아이는 일곱 살 아이의 지능을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다섯 살 아이 수준의 지능도 안 되는 일곱 살 아이도 있다. 지능은 아이마다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1년의 성장이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1년 동안의 기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잘못이 아닐 수 없다 ..  〈31쪽〉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길’은 사람이 다니라고 뚫습니다. 자동차가 오가는 찻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아닙니다. 자동차에 탄 사람이 다니는 길입니다. 찻길에 자전거가 다닌다면, 자전거가 다니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탄 사람이 다닙니다. 그러나 찻길을 달리는 자동차꾼은 찻길에 함께 있는 자전거꾼을 못마땅해 합니다. 자전거에 탄 ‘사람’이 자기와 마찬가지 ‘사람’임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도》와 《지도자의 길》을 낸 독재자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다스리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누리’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자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인 이 나라 백성들을 굽어살피고 헤아리고 보살피는 ‘길’이었을지, 이 나라 백성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며 자기 앞에 굽실거리거나 무릎꿇게 하려는 ‘길’이었을지.


.. 나는 내 눈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해서만 언급할 수 있다. 또한 나는 물증이 있는 것들만 믿는다 ..  〈103쪽〉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자동차만 다니는 길이 되어 버린 찻길입니다. 그래서 이 찻길을 걸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수없이 차에 치여 죽습니다. 사람을 친 차는 어디론가 내빼도, 차에 치인 사람은 어디로 가지도 못합니다. 사람이 아늑하게 다닐 수 없게 된 길에서는, 사람 아닌 목숨도 목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오가는 길은 네 다리로 걷는 들짐승과 멧짐승도 오갈 수 있었습니다. 열 다리나 스무 다리로 기어다니는 벌레도 오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찻길을 건너는 짐승들은 그 자리에서 개죽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지렁이나 벌레는 자국도 못 남기고 사라집니다. 더욱이, 사람만 다니라고 하는 거님길(보도블럭)까지 치고 올라서는 자동차입니다. 길이 길 구실을 못하는 우리 삶터이고, 길을 마음놓고 다닐 수 없는 우리 형편이라고 할까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아마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기억력일지도 모르겠다 ..  〈63쪽〉


 언제부터 우리가 걷는 길이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르게 되었을까요. 어느 때부터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이렇게 사람은 다닐 수 없는 길이 되었을까요. 사람 발길이 끊어지고 매캐한 차방귀만 가득한 길, 사람 냄새도 손길과 발길도 움직임도 뚝 끊어지는 길이 되었을까요. 우리들은 우리들이 걸어갈 이 길을 엉망으로 망가뜨리면서, 우리들이 참답게 살아가는 길마저도,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마저도 엉망으로 흐트러뜨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 1930년 토키 영화가 등장하고부터, 우리는 옛 무성영화의 너무도 훌륭했던 점을 놓치고 잊어버렸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었다. 나는 미학적 손실을 끊임없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려면 영화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  〈321쪽〉


 길이 길다움을 잃었을 때, 이 길을 오가는 모든 것도 자기다움을 간직하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지도자든 백성이든 관리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든 사람 아닌 목숨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오붓하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길이 아니니까, 서로서로 돌보고 마음쓰면서 보듬는 길이 아니니까, 서로 따스함을 나누며 사랑하며 믿고 살아가는 길이 아니니까, 이런 길에는 돈-이름-힘, 이 세 가지만 남는구나 싶어요.

 자서전 《감독의 길》을 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돈으로 걷는 길도 아니고 이름으로 걷는 길도 아니며 힘으로 걷는 길도 아닌, 한 사람으로 걷는 길을 걸어서 감독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을 간직하고 사람다움을 키우면서 사람다운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면서 감독으로 길을 걸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나라 영화감독 가운데 돈-이름-힘이 아닌 ‘사람으로서 걷는 감독이 갈 길’을 걷는 사람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4340.1.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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