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학의 논리 창비신서 44
최원식 / 창비 / 1988년 3월
평점 :
절판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책은, 알라딘에는 안 뜹니다. 헐...

 



 - 책이름 : 황해에 부는 바람
 - 글쓴이 : 최원식
 - 펴낸곳 : 다인아트(2000.8.30.)
 - 책값 : 9000원


 이 책 하나 39 ― ‘눈감고 꼼짝않으면’ 어르신이 아닙지요
 : 최원식, 《황해에 부는 바람》을 덮고 나서


 (1) 어느 한 곳에서 태어나서 산다는 일이란


 국민학교 다닐 적부터 고등학교 다닐 적까지, 지역 사회나 역사를 배울 때면 속이 쓰렸습니다. 갑갑했습니다. 지역 자연 삶터를 배울 때에도 까마득했습니다. 도무지 제 고향 인천이라는 데에서 다른 곳과 견주어 내놓거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보여서 그러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란 훌륭한 어른이라든지 빛나는 분들 또한 보이지 않았습니다.

 철없던 그때, 지역 어르신으로 누가 있는 줄 어찌 알았으랴만, 우리들 철부지들이 알아볼 수 있는 자료나 책은 얼마 없었기에 더욱 어려움이 컸습니다. 문교부에서 만든 〈자연〉 국정교과서로 배우던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가장 어렵고 싫고 짜증나고 괴롭던 숙제 가운데 하나는, “우리 지역 천연기념물로 무엇이 있을까요?”라는 녀석. 허허 참, 그때나 이제나 인천에 어떤 천연기념물이 있는가요. 이제는 ‘직할시’에서 ‘광역시’가 되어 옹진군이 인천에 들어왔으니 백령도 물범을 슬쩍 끼워넣어도 되나요?


.. 초기에 개혁이 비교적 순조로왔을 때 호남은 그 어떤 지역보다도 (김영삼) 문민정부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얘기를 최근에 흥미롭게 들었다. 정부 정책의 보수 회귀는 스스로 국민 통합의 절호의 기회를 반납함으로써 오늘날의 기이한 지방할거주의의 틈입을 불러온 꼴이다. 역설적이지만 중앙정부가 국민 통합의 실질적 상징이고자 노력할 대 진정한 지방자치도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28쪽/1995)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제가 치를 대입시험이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 두 가지로 바뀌었습니다. 이리하여 제가 받는 학교교육은 제 앞선 형이나 누나와는 사뭇 달라집니다. 그러면서 ‘교과서 아닌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문이 떨어집니다. 교과서는 여러모로 답답하다고 느껴 왔기에 속으로 참 잘 되었구나 생각했는데, 다른 동무들은 ‘공부할 건수만 더 늘어나’ 괴롭다고 했습니다. 중3 때부터 그랬지만, 이때부터 제 가방은 교과서 아닌 책이 절반이나 1/3쯤 차지합니다. 지루한 수업 때에는 교과서 아닌 책을 교과서 밑에 숨겨 놓고 읽고, 자율학습 때에는 대놓고 읽습니다.


.. 일본의 어느 도시를 가도 도서관과 박물관은 그 지역 시민의 자존심의 상징으로 도시의 중심에 뚜렷하다고 하지 않는가? ..  (86쪽/1990)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부터 헌책방 나들이를 합니다. 이때, 인천에서 나고자란 몇몇 문학가 또는 문학평론가를 알게 됩니다. 첫 번째로는 이가림 시인, 다음으로는 최원식 교수.

 가뭄에 단비 내리듯한 이런 분들 책을 하나둘 새로 알게 되고 즐겨읽으면서, ‘왜 이런 분들 글은 우리가 인천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는 못 실리’는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이런 분들 책은 왜 우리가 사는 인천에서 널리 알려지며 읽히지 못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궁금함은 아직 못 풀고 있습니다. 다만, 지역 어르신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형편, 지역 문화를 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노릇, 지역 역사를 서민 눈높이에서 헤아리며 살아가는 틀거리가 없음은, 인천뿐 아니라 우리 나라 다른 곳도 비슷비슷하다고 느낍니다.


.. 내가 머카서(맥아더)의 공적을 격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익을 수호했던 미국의 장군이었다. 아무리 탁월한 무훈을 세웠어도 외국 장군의 동상을 시의 중심에 모셔놓고 경배하는 도시는 아마도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 어찌하여 외국 장군의 동상은 이처럼 정성들여 멀쩡하게 잘 만들면서, 여타의 인천 기념조각들은 그처럼 조잡할 수 있을까? ..  (90쪽,92쪽/1995)


 인천 아닌 데에 사는 또래 동무나 선후배들이 듣거나 아는 인천은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인천은 바닷가에 있다. 공장이 많아 공기가 더럽다. 서울과 가깝다. 서울과 가까운데 가 보면 볼 게 없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뜬다더라. 인천은 술값이 싸더라. 당구값도 싼데 인천 다마는 세더라. 요새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월미도 바이킹은 사람 죽이도록 재미있더라. 아저씨가 내키면 끝없이 돌리고 또 돌려 주더라.


.. 우리의 학식은 과연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던가? ..  (202쪽/1990)


 국민학교 적 〈사회〉 숙제로 ‘우리 동네 사회와 경제가 어떠한가’ 하는 숙제로 적어낸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집 앞에 경인고속도로 들머리가 있고, 제2부두가 있어서 쉴새없이 자재와 수출입 물건을 실어나른다. 우리 집 앞에는 제일제당 공장이 있고, 학교 가는 길에는 연탄공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만든 연탄은 기차에 실려 서울로 간다, 개항 100주년 기념탑이 있고(이 끔찍한 탑은 몇 해 앞서 드디어 철거되었습니다), 자유공원에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한미수교가 아닌 함포외교에 따른 강제개항이었는데 ‘수교’라는 말로 눈속임을 하는. 이 탑은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이 있다는둥 ……. 지금 돌아보면 하나같이 부끄러운 모습이 ‘내 고향 인천 자랑거리’였고, 저뿐 아니라 다른 동무들도 비슷비슷한 줄거리로 숙제를 내놓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이런 이야기를 가르쳤습니다.





 (2) 서울


 돈 많이 벌며 잘사는 작은아버지 두 분은 서울에 살았습니다(한 분은 인천서 살다가 서울로 갔다가 목포로 옮기시고). 때때로 우리 집 네 식구가 인천에서 서울 강남에 있는 작은아버지 댁에 갈 때면, 하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한참 동안 달려 서울역까지 갑니다. 그런 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길은 얼마나 멀고 택시미터기 돈은 얼마나 빨리 올라가든지. 나중에 2호선이 뚫리고 나서 택시삯은 덜 들었지만, 구역마다 촘촘히 선 신호등에 막힐 때면 제가 짜증이 다 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인천에 신호등이 처음 생긴 역사도 짧고, 제 어릴 적까지는 그닥 안 많았습니다.

 인천 공기가 썩 맑지 않았습니다만,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숨이 턱턱 막혀서 일부러 입을 앙다물며 숨을 참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내릴 때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서울사람들은 이런 지하철을 어떻게 타고다니나 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고 보면 요사이 서울 작가들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귀향할 것도 아니면서 고향타령이나 하든지, 서울의 겉모습에 취해서 관념적 포우즈 속에 생뚱맞은 소리나 하고 있지, 이 중요한 공간을 하나의 지방으로 탐구하는 작업은 가물에 콩나기다 ..  (36쪽/1995)


 그런데 뒷날 제가 서울에서 여덟 해 남짓 살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어릴 적에는 머리 아프고 숨쉬기 어려운 서울에서는 안 살 테야 하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그렇게 쉽게 깨질 줄은.

 서울 나들이를 할 적마다 저를 보는 서울사람들이 ‘너, 서울사람 아니지?’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저 사람(어른)들은 어떻게 그걸 다 알까 싶어 놀랐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인천으로 찾아온 사람들을 보면, 내 느낌으로도 ‘저 사람은 인천사람 아니네’ 하는 티가 물씬 풍겼습니다. 말씨도 다르지만 몸짓도 다르고, 바라보는 눈길과 눈썰미가 다르거든요.


.. 우리 사회는 특히 5ㆍ16 이후의 개발독재 아래 농촌 및 지역의 독자성은 파괴되고 서울로 지나치게 통일되었다. 더구나 민주주의의 진정한 기초라고 일컬어지는 지방자치제도가 오랫동안 유보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이 서울을 향해 질주하였던 것이다 ..  (53쪽/1991)


 서울과 얽힌 옛말이 여럿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 서울 가는 놈이 눈썹을 빼고 간다. 서울 가서 김 서방 찾는다. 서울놈은 비만 오면 풍년이란다. 서울서 매 맞고 송도서 주먹질한다.

 이런저런 옛말을 듣고 배우면서 늘 ‘왜 사람을 서울로 보내야 하나? 자기가 나고자란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면서 자기가 나고자란 곳을 알뜰살뜰 키우면 되지 않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큰일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은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흔히 들었습니다. 사람이 크려면 물이 좋은(?) 곳에서 커야 한다고 말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야 돈도 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늘 ‘왜? 왜? 왜 자꾸 서울 이야기만 해? 우리 동네 이야기는 왜 안 해?’ 하고 대들듯 따졌지만, 저한테 돌아오는 대꾸는 한결같이 ‘넌, 아직 어리구나.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커서 큰물을 한번 먹어 봐야지.’ 한 마디.


.. 요즘 경인선은 살풍경이다. 인천과 서울 사이가 이제는 빈틈없이 시멘트 건물로 들어차 숨이 막힌다. 경인선 개통 한 세기만에 서울과 인천 사이에 시골은 멸종하고 말았다 ..  (101쪽/1996)


 아버지가 빚까지 얻어가며 마흔여덟 평짜리 새 아파트로 집을 옮기지 않았다면, 저는 인천에 눌러앉지 않았겠느냐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옛날 일이지만.

 그곳이 좁은 우물일지라도, 더 많은 사람과 더 넓은 세상을 못 보는 일이라고 해도, 제가 나고자란 곳에서 조용히, 고즈넉히, 아옹다옹을 하든 쿵떡쿵떡을 하든 제가 선 자리에서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집안 문제를 넘어서, 대학입시 원서를 내야 하는 때가 다가와 고3 담임이 상담을 할 때, ‘웬만하면 인천에 있는 대학교에 가라’는 말에 불뚝불뚝 싫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왜 거기를 가야 하는데? 재단비리가 철철 넘치는 그곳에 왜 가야 하는데(그때는 끔찍했는데, 이제는 이 비리 문제가 많이 풀렸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학문은 인천에 있는 대학에서는 안 가르쳐 주는데?

 한낱 고3 수험생이 어떤 건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인천이든 서울이든 대구이든 부산이든 제주이든, 대학교에서 꾸리는 학과가 거의 똑같은 모습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서울에 있으면 서울이라는 곳 특성을, 제주에 있으면 제주라는 곳 특성을, 대전에 있으면 대전이라는 곳 특성을 키우는 대학교여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했습니다. 왜 모든 대학교가 한결같이 영문과 일문과 경영학과 의학과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건축과 법학과 무역학과 …… 똑같은 학과를 꾸리고 있는지.


.. 정부는 굴업도 주민 9명이 찬성한다는 것을 방패로 이 중대한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 온갖 쓰레기들은 지방으로 내려보내면서 좋은 것은 전부 서울에 두는 특별시민들과 쓰레기들을 뒤집어쓴 채 핵쓰레기만은 재고하라고 애원하는 지방사람들과 과연 누가 진짜 지역이기주의자들인가? 더구나 요사이 거대언론들은 입만 열면 환경보호를 외치고 있는 중이니 ..  (225쪽,226쪽/1995)


 이런저런 싸움(담임하고 벌인 싸움)과 걱정과 실랑이 끝에, 인천에 있는 대학교에는 원서를 넣지 않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 세 군데에 원서를 넣었고, 두 군데에서 붙어 이 가운데 한 곳에 들어갑니다. 이름하여 ‘외국어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종합대학교’인데, 다른 곳과 달리 ‘서양어대’와 ‘동양어대’가 나뉘어 있는 모습이 다르기는 해도 ‘상대’과 ‘법대’가 있고, 용인에는 이공계열학과가 있습니다. 재미있지요. 외국어를 전문으로 가르친다고 하면서 이렇게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이 이 대학교 신문방송학과는 꽤나 이름났고, 무역학과 역사도 오래되었으니. 서울이란 참, 대한민국이란 참.





 (3) 몸으로 겪어내기


.. 가끔 인천바다도 바다냐는 핀잔 같은 말을 듣습니다. 그때는 그냥 웃고 마는데, 한번 구경 온 사람과 직접 그 속에 사는 사람이 보는 바다는 다른 것입니다. 어떠한 작은 사물도 그것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사물과 나 사이의 깊은 친교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44쪽/1998)


 1994년에는 인천 왼편 끝에서 서울 오른편 끄트머리께까지 머나먼 전철길을 따라 오징어가 되고 떡이 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1995년부터는 집을 뛰쳐나와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신문을 돌리며 혼자살림을 꾸리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군대를 마친 뒤 다시 서울로 가서, 내처 살았습니다.

 이러는 동안 고향이라는 곳은 이름 두 글자만 남고 몸이고 마음이고 훌훌 떨어져 갑니다. 좋아하지 않는 곳이면서 ‘일’ 때문에, 또 ‘책’ 때문에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거의 모든 출판사가 서울에 몰려 있고, 크고작은 알뜰한 헌책방이 서울에 쏠려 있습니다. 걸어서 몇 분 거리로 종로서적(이제는 사라졌으나)과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모여 있으며, 끝까지 버티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도 서울에 서너 곳 있습니다.


.. 아마도 인천에서 아니 전국적으로도 가장 근사한 일본식(식민지 때) 주택의 하나로 꼽힐 터인데, 교회가 사서 까뭉개고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자동차를 모시기 위해 이 아름다운 건축을 이처럼 파괴하다니. 율목동을 관통하는 도로를 뚫는다고 당당한 기와집 근업소를 흔적없이 부숴버린 몰지각이 다시금 생각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째서 역사의 흔적을 지우지 못해 안달일까? ..  (96쪽/1996)


 2003년 가을부터 서울을 벗어나 충북 충주에서 일합니다. 삶터와 일터가 서울에서 벗어나니, 서울이 사람을 얼마나 잘 빨아들이는구나 깊이깊이 느낍니다. 시골에서는 책방 하나 구경하기 어렵고, 면내나 읍내로 나들이를 나온다 한들 바라는 책 하나 찾을 수 없습니다. 한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느니, 삼십 분에 한 대씩 있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편이, 책방 나들이에 한결 나았습니다.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서울로, 책을 사려고 해도 서울로, 뭐를 하려고 해도 서울로 …….

 서울에 있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던 ‘서울 쏠림’을 어릴 적에 이어 다시금 느끼면서, 서울사람은 서울사람대로 서울 아닌 곳 사람은 서울 아닌 곳 사람대로 ‘외로 쏠린 마음’으로 살아가며 서로 못 만나고 있구나 싶더군요. 넘치게 누리는 사람도 딱하고 모자라서 못 누리는 사람도 안쓰럽고.


.. 내 발로 밟고 내 눈으로 보면서 확인한 중국은 독서로 안 중국과 다른 점도 많았거니와, 같다고 하더라도 실감한다는 일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감득했던 것이다 ..  (165쪽/1998)


 지난 2007년 4월, 충주 산골자락에서 고향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또 충주에서 돌아오기 두어 달 앞서부터, ‘동네 한복판 꿰뚫으려는 산업도로’ 막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처음 이 ‘산업도로 계획과 인천시 행정’을 맞닥뜨렸을 때,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다 벌어지는구나, 거짓말이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동네 한복판 집을 싹 쓸어내어, 너비 50∼70미터에 길이 400미터 남짓 하게 파헤쳐 놓은 땅을 두 눈으로 보고 그 땅을 두 발로 디디고 서 보니, ‘이거 장난이 아니네. 이거 참말 밀어붙이려나 보네. 이거 밀어붙여서 이 동네를, 이 삶터를 어떻게 망가뜨리려는 속셈이야?’ 하는 생각이 절로 샘솟았습니다.

 새 대통령이 되신 이명박 씨께서 밀어붙이려고 하는 ‘서울-부산 물길(경부운하)’이 한 나라를 더욱 모질게 두 동강으로 쪼개어 버리는 끔찍한 재앙이라면, 두 번째 인천시장을 하고 계신 안상수 씨께서 몰아세우고 있는 ‘중ㆍ동구 관통 너비 50미터 산업도로’는 인천을 더더욱 아프게 두 동강으로 갈라 버리는 못난 재앙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서울-부산 물길’ 문제는, 이 물길이 놓일 터를 우리가 몸소 다녀 보면서 느끼지 못하면 살갗으로 와닿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고용창출 효과-경제성장 효과’라는 숫자놀음에 놀아나기 쉽습니다. 인천 ‘중ㆍ동구 관통 너비 50미터 산업도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 몸소 와 보고 싹 쓸려버린 동네 한복판 허허벌판을 두 눈으로 보고,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이 ‘폭탄 맞은 듯한 모습’을 내려다보지 않고서는, 또 동네 골목길을 거닐어 보지 않고서는, 그리고 서민 동네 바로 옆에 우람하게 늘어서 있는 중화학공장 들을 쳐다보지 않고서는, 살갗으로 와닿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지역발전-균형발전’이라는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놀아나기 좋습니다.





 (4) 최원식 교수님, 다 아시면서……


 우리 나라 내로라하는 지식인, 또는 ‘사회 어르신’ 들은 ‘서울-부산 물길’ 문제를 높은 목소리로 나무라고 있습니다. 계층과 직업과 성별과 학문갈래 모두를 넘나들면서 한목소리로 꾸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천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 또는 ‘지역 어르신’ 들은, 당신들 고향이자 어린 날과 젊은 날 추억이 물씬 담겨 있는 곳, 또 당신들 고향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 삶터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판인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동네 주민이 당신들을 찾아뵈면서 이곳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이곳 문제와 얽힌 자료를 꾸준히 보내드려도 아무 말이 없고 아무 움직임이 없습니다.


.. 저는 시립도서관 근처에 살기 때문에 가끔 제 아이들을 데리고 율목동으로 산책을 나가 옛 근업소, 박두성 선생의 집, 그리고 인천 유일의 주정공장 터였던 기와집 등을 둘러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길이 뚫리고 이 기와집들은 흔적이 없던 것입니다. 물론 도시계획 좋습니다. 그러나 새길을 뚫기 전에 보존해야 할 유적은 없는지 그 동네 토박이들의 의견을 청취해서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은 그 쇠락한 기와집들을 무어 그리 애석해 하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온고이지신이란 말이 있듯이 미래의 창조적 발전은 전통의 힘으로부터 솟아오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  (178쪽/1989)


 최원식 교수님, 이제는 입을 여실 때가 되지 않았는가요. 교수님이 율목동에 사실 때에는 그 동네 ‘보존해야 할 유적’을 하루아침에 허물어버린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탓하고 나무라고 꾸중하는 글을 쓰셨는데, 이제는 율목동 아닌 다른 동으로 집을 옮기신 탓인지, 당신 예전 집터 둘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마음을 안 기울이셔도 좋은지요. ‘우리 앞날을 슬기롭게 키워 나가는 힘은 전통에서 비롯한다’고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요. 대학교 강단에서 제자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신가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무리 교수님이 당신을 스스로 가리켜 ‘저(최원식)는 백면서생입니다’ 하고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몸도 안 쓰고 입도 안 쓰면서 어떻게 당신 몸과 마음이 깃든 ‘지역’ 문화와 사회와 역사를 지키거나 가꿀 수 있습니까.


.. 자, 인천을 한번 둘러보십시요. 우리 고장 인천은 아름답습니까? 아닙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인천은 가장 자연파괴적인 도시로 저렇게 잿빛으로 누워 있습니다. 온갖 폐기물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  (233쪽/1996)


 ‘지역 어르신’이라면서 섬김을 받으나, 섬김에 값하는 마음씀이 보이지 않으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지역 지식인’이라는 떠받듬을 받으며 대학교 교수 자리를 얻으나, 떠받듬에 값하는 몸씀이 보이지 않으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한테는 ‘세상을 꿰뚫어볼 줄 아는 눈’이 틀림없이 올곧게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한테는 ‘세상흐름을 날카롭게 파헤칠 줄 아는 눈’이 환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요, 이런 눈만 있으면 무엇하지요? 눈은 있는데 입이 없다면? 입은 있는데 몸뚱이는 없다면? (4341.3.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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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상 이야기 - 어느 프랑스인이 본 처가의 나라 꼬레
에릭 비데 지음, 니코비 그림, 최미경 옮김 / 눈빛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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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이 책을 읽으며 '단점이 많이 느껴진다'고 했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책을 쓴 에릭 비데라는 사람이 얼마나 '우스갯소리'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와 문화에서 문제가 되는 대목을 '웃음으로 넘기며 비판해 주며 껴안고 있는'지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이는 '몰라서 대충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느낌과 생각을 이 책 하나를 읽으면서도 제대로 잡아채지 못한다면, 우리들 눈길이나 눈높이는... 우리 세상과 사회를 제대로 못 읽고 겉핥기로 그쳐 버리지 않을까요? 진작에 읽었던 책이지만, 이제서야 느낌글을 하나 띄웁니다.


- 책이름 : 한국의 일상 이야기
- 글 : 에릭 비데
- 그림 : 니코비
- 옮긴이 : 최미경 옮김
- 펴낸곳 : 눈빛(2003.11.15.)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13 ― 돈만 많이 벌게 해 주면 좋아?
 : 에릭 비데, 《한국의 일상 이야기》



 (1)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침을 먹습니다. 무김치와 배추김치와 마늘절임과 조개젓, 이렇게 네 가지 반찬을 차려 놓고 먹습니다. 밥은 누런쌀에 누런콩으로 지었습니다. 콩은 하루 동안 불리고 누런쌀도 서너 시간은 불린 뒤 짓습니다. 밥그릇이 넘치지 않을 만큼 밥을 담습니다. 밥을 풀 때면 더 담고픈 마음이 굴뚝같은데, 흰쌀밥이라면 두 그릇쯤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고 느끼나, 누런쌀밥일 때에는 한 그릇으로도, 때로는 반 그릇으로도 든든합니다. 한 숟가락 떠서 적어도 서른 번에서 쉰 번은 씹어야 목구멍으로 솔솔 넘어갑니다.


.. 피맛골의 입구 안내판에 써 있는 것처럼, 서울의 역사 유적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지역인데, 이 지역을 철거한다는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서울시의 도시개발정책 입안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목표인 모양이다 … 공동의 자산인 환경이, 개인의 자산인 부동산과 영업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당하는 것이다 ..  (168쪽)


 오늘은 일산 나들이를 가는 날. 설거지를 마친 뒤 가방을 챙기고 길을 나섭니다. 배다리 철길다리 밑을 지나 건널목을 두 번 건넙니다. 한 시 조금 넘은 때인데 학교옷 차려입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참외전거리를 지납니다. 과일가게 늘어선 이곳에서 물고기 몇 가지를 파는 할머님은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덥건 춥건 따뜻하건 시원하건, 할머님은 늘 그 자리에서 꼭 그만한 차림새로 손님을 기다립니다.

 과일가게 끝에 자리한 양과자집에 들릅니다. 일산 같은 새도시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옛날 양과자를 두 근 삽니다. 양과자집 아저씨는 낡은 저울로 무게를 답니다. 집에서 당신이 손수 붙인 흰 봉투에 과자를 담습니다. 푸짐한 봉투 둘을 옆지기 가방에 넣습니다.


.. 사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 시골스런 모습이 바로 서울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서울의 매력은 즉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매력은 깊이, 내부에 숨겨져 있고, 그래서 이태원, 강남, 인사동 등 누구나 찾는 거리만을 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모습을 위해서는 찾아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내의 높은 사무실이 있는 건물들, 사람이 넘치는 백화점 등, 도쿄ㆍ뉴욕ㆍ파리에 비해서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서울의 매력은 도보로, 산보를 하면서 코를 들고 바람을 쐬며, 김기찬의 사진에 등장하는 것처럼 뒷골목을 다닐 때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산에 등산을 가기는 하지만 도시에서는 거의 걷지 않는다. 그런데 걸어다녀야만 두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시장을 발견할 수 있고,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야채밭, 복잡한 골목 구석에 있는 맛있는 허름한 식당, 막다른 골목에 끼어 있는 구멍가게를 보게 되는 것이다 ..  (109∼111쪽)


 은행에 들러 돈을 찾습니다. 통장이 다 되어 새것으로 바꿉니다. 이참에 전기값(살림집 3660원, 도서관 7960원)을 낼까 하고 창구 직원한테 내밉니다. “아, 공과금은 안 받습니다. 공과금 수납은 저기 문 옆에 있는 기계에서 하시면 되고요, 쓰는 방법은 옆에 있는 직원이 알려줄 것입니다.” 고작 두어 달 앞서까지만 해도 공과금을 받던 은행인데.

 기계로 낼까 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합니다. 아직 우리 동네 우체국에서는 공과금을 받아 주고 있으니 그리로 가야겠어요.


.. 한국의 진정한 커피숍은 사실 정교하게, 그럴듯하게 실내장식을 한 그런 카페가 아니었다 … 즉 미국에서 들어온 이들 커피숍의 유일한 목표는 뉴욕이나 방콕, 도쿄, 서울이 모두 같은 양식을 지향하는 것이다 … 대학로 같은 데서는 실내장식을 잘해 놓았다는 구실로 프랑스식으로 말하자면 양말 짠 물과 같은 미국식 커피를 황당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  (60쪽, 79쪽)


 은행에서 나선 뒤 지하상가로 들어갑니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몇 없다고 느꼈으나 지하상가는 바글바글입니다. 사람숲을 헤치며 전철역 쪽으로 갑니다. 지하상가를 거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지하상가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인천이라는 곳에서는, 동인천역과 제물포역과 주안역 둘레에 건널목이 없거든요. 부평역은 몇 군데 있지만 한참을 돌게 되어 있고, 정작 역 앞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래, 어디에든 지하상가만 꼬불꼬불 어지러이 빼곡빼곡 만들어 놓고, 이곳 사람들 장사를 해야 한다면서 건널목 놓기를 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걷기 힘든 어르신들, 몸이 아프거나 고단한 사람들, 짐을 잔뜩 짊어진 사람들, 유모차를 끄는 어버이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 바퀴걸상을 타고다니는 사람들, ……은 어쩌지요. 지하상가 장사꾼들 ‘장사권리(상권)’가, 보통사람들 ‘사람권리(인권)’보다 앞서야 하나요.


.. ‘절도 있는 음주’라고 술병에는 적혀 있지만, 한국인들의 지침서에는 술이든, 목욕탕 물이든, 설거지용 물이든, 난방이나 냉방용 에너지 또는 식사 준비건 항상 절도를 잊고 넘치게 하라고 되어 있다. 매일 남한에서 버리는 음식물만으로도 북한의 주민을 먹여살릴 수 있다고 작가 황석영은 어떤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  (37쪽)


 동인천역에 들어옵니다. 전철이 한참 들어오지 않아, 모두들 한참을 기다립니다. 서울로 떠나는 전철이지만, 낮에는 아주 드문드문 다닙니다. 서울 지하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전철 시간을 ‘서울 가는 보통 편’과 ‘용산 가는 급행’을 사이사이 맞추어 놓으면 사람들 기다리는 시간과 수고를 훨씬 덜 텐데.

 십 몇 분을 기다린 끝에 소요산 가는 전철 하나 들어와서 탑니다. 제물포역에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탑니다. 우리 옆자리에 둘이 앉고 둘이 서서 신나게 수다를 떱니다. 연예인 ㅇ씨 두다리 걸치기 문제, 자기네 커플링이 얼마짜리네 하는 문제, 내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으면 어찌하겠느냐 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얼마나 옆사람들 수다떨기에 굽히지 않으면서 책읽기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느냐고 하느님이 시험하는지 모를 일.

 이 여대생들이 서울까지 가는가 싶어서 속으로 한숨을 후유 하고 쉬는데, 부처님이 도와주셨는지 부평역에서 모두 다 내립니다.

 하지만 부평역에서 우루루 타서 우리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큼직한 엉덩이와 허벅지로 자꾸 옆으로 밀어붙이는 아주머니들. 다리 쫙 벌리는 늙수그레 아저씨도 싫지만 엉덩이를 자꾸 밀어붙이는 늙수그레 아주머니도 싫습니다. 두 번째 시험인가요?


.. 나는 “사소한 요소들이 어설플 때 시장은 특히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너무 완벽한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백화점ㆍ쇼핑센터, 또는 미국인들이 말하는 쇼핑몰이 된다 ..  (50쪽)


 그예 책읽기를 접고 눈을 감습니다. 그냥 자자. 마음을 달래자.

 전철 장사꾼 서너 사람이 지나가고 목소리 높은 사람들 조잘거림이 여러 차례 물결칩니다. 이제 전철은 종로3가. 드디어 내릴 곳. 잠깐 사진관에 들러야 합니다.

 겉옷을 입고 큰가방을 뒤에 멜 즈음, 나이든 아저씨 한 분이 제가 앉던 자리에 앉으려고 잽싸게 다가옵니다. 제가 앉던 자리에 아직 사진기가 얹혀져 있는데. 그 사진기 깔고 앉으시려고요? 아직 짐을 추스르지 못했지만 얼른 사진기를 듭니다. 한두 푼짜리도 아니지만, 한두 푼짜리가 아니라 해도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하면 사진기 망가지기 쉽습니다.

 한 번 더 큰숨을 몰아쉽니다. 내릴 문 앞에 섭니다. 전철이 서고 문이 열립니다. 우리 옆에 선 아주머니 한 분이 먼저 내립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들이 내릴 즈음, 타려고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파란옷을 입은 늙수그레 아주머니 한 분이 깡총 뛰듯 전철에 올라타며 제 오른팔께를 밀칩니다. ‘뭐여?’ 하고 잠깐 사이에 속으로 빠르게 생각하다가 오른팔에 살짝 힘을 줍니다. 아주머니는 “어머나?” 하면서 튕겨집니다. 내릴 사람이 다 내릴 때까지 기다리며 뒤에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아주머니 한 분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먼저 타구선!” 하고 다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합니다.


.. 손때 묻은 사물에 대한 애착, 일상용품에 대한 이런 애정의 관계는 한국의 현대 사회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의 사회에서는 신상품이 광고되고 판매원 등을 통해서 판매가 촉진되며, 사용하던 물건은 버려지거나 바로 교체가 된다 … 광란의 소비는 넘치는 폐기물 처리의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더 철학적인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 사회는 신상품, 새 것, 최신 제품의 사회이다 보니, 대부분의 가정에 십 년 이상 된 물건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신제품에 대한 열광은 특히 컴퓨터ㆍ휴대폰 등 신기술 상품에 대해서 심하지만, 자동차의 경우에도 그러해서 아직도 거의 새차이고, 번쩍거리는 데도 바꾸는가 하면, 주택의 경우도 이삼십 년 이상을 넘는 경우가 없다 ..  (39쪽)


 옆지기가 작은볼일을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음, 종로3가 전철역에서 작은볼일이라……. 넓디넓은 종로3가 전철역이지만 뒷간 하나 찾기란 몹시 까다롭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내기로는 두 군데에 있습니다. 모두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서 맨 끄트머리 구석에 있습니다. 우리가 내린 곳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데로 가 봅니다. 생각했던 대로, 뒷간으로 드나들 만한 문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네. 밑으로 들어가서 갔다 와야겠네요.”


.. 개고기 소비에 대해서 분개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소를 먹지 않고 숭배하는 인도인들이 타 대륙의 쇠고기 소비를 금지해 달라는 압력을 넣으면 타 대륙에서 쇠고기 소비 금지를 수락할 것인가. 또 이슬람교도들이 돼기고기 먹는 것을 금지시키려 한다면 얼마나 가소롭다고 여길 것인가. 인간과 희귀동물에 대한 금식사항을 제외하고는 채식주의자처럼 모든 고기를 삼가지 않는 한, 각 문화 내에서 수용가능한 동물 간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  (84∼85쪽)


 13번 나들목으로 해서 밖으로 나옵니다. 바깥에서 맨 먼저 우리를 반기는 모습은 기호 ○번 아무개 후보 걸개천. 기호 ○번 아무개 후보 걸개천은 다른 후보 걸개천과 견주어 엄청나게 많이 나붙었습니다. 문득, 저 아무개 후보가 내건 약속이 무엇이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으흠, 으흠, 으흠 …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른 후보 약속하고 그다지 다를 것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한 가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아무개 후보 약속은 ‘새 집을 50만 채 짓겠다’인데, 새 집이란 다름아닌 아파트 한 가지.


.. 오늘날의 한국은 빨리 돈벌기, 비양심적이라도 쉽게 노력없이 버는 돈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 같다 … 실업자는 사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배척하는 대상이며,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수입원을 상실한 이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  (40쪽)


 2001년부터 단골로 다니고 있는 ㅅ사진관에 닿습니다. 맡겨 놓은 사진을 찾고 티맥스400 필름 열 통을 삽니다. 벌써 여러 달 앞서부터 흑백필름 사기는 하늘별 따기처럼 어렵습니다. 제가 즐겨쓰는 일포드델타400 필름을 주문해 놓은 지도 석 달은 된 듯한데 아직 한 통도 못 받고 있습니다. 오늘 어렵게 장만한 티맥스400 필름도 얼마 앞서 조금 들어온 녀석들이라고 합니다. 필름 한 통 값이 거의 6000원. 예전과 견주어 무척 많이 올랐는데, 앞으로는 이 값보다 더 많은 돈을 치르더라도 물건이나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반가운 이 필름에 입을 맞추고 껴안으며 가방에 챙겨 넣습니다.


.. 분당에서 나는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영혼이 없으며, 도대체 사람을 맞이할 줄도 모르는 그런 곳인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울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 주거지역 중의 하나이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는 계속해서 머리속에 질문을 던져 보곤 했었다. 어떻게 똑같이 생긴, 정감 없는, 환경을 무시하는 아파트를 계속해서 짓고 있는 것일까? 이런 종류의 아파트 건설계획은 이미 오래 전에 프랑스에서는 중단이 된 상태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기저기 조금만 여행을 다녀 보면, 아무리 조그마한 도시라도 어디나 높게 치솟은 아파트들이 있으며, 이런 아파트들은 계속해서 땅위로 솟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  (91∼92쪽)


 3호선 전철을 탑니다. 종로3가에서 3호선 줄기 자리는 매우 좁습니다. 이 좁은 자리에 보호문을 놓는 공사를 합니다. 좁은 종로3가 전철역에는 앉을 자리, 걸상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쉼없이 전철역 바닥을 걸레질로 닦습니다. 가방이라도 내려놓을까 했지만 축축하게 젖은 바닥에 내려놓지는 못합니다. 구파발 가는 차는 보내고 대화 가는 차를 탑니다. 터덜터덜 달리는 전철이 구파발을 지나고 드디어 밖으로 나와 햇볕 보이는 창밖 모습이 펼쳐집니다. 오늘은 얼마만큼 새로 ‘올랐나’ 하고 북한산 둘레를 헤아립니다. 그동안 짓고 있던 아파트들은 거의 공사가 끝난 듯합니다. 그런데 그 아파트들 앞으로 펼쳐져 있던 논이 죄다 갈아엎혔습니다. 그 자리에도 아파트를 또 올려세우려나? 이러다가 구파발 전철역 둘레부터 대화역 있는 데까지 죄 아파트만 득시글득시글해지는 건 아닐는지?


.. 한국에 대한 관광안내 책자를 펴 보면, 어떤 책이든지 항상 서울에 있는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 이제 몇 년 지나지 않아 남대문은 미국이나 유럽, 또는 길건너 명동에서 보는 것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쇼핑센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전통적인 시장은 정감 있고, 근접한 하나의 장소로, 차갑고 특성 없는, 영혼이 없는 현대식 건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장이 현대의 삶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  (53∼54쪽)


 옆지기 부모님이 사는 일산에 닿습니다. 고맙게 차려 주시는 저녁 밥상을 받습니다. 옆지기 아버님이 말씀합니다. “이명박을 찍어야 나라가 살지.” 옆지기 어머님이나 동생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 보면, 옆지기네 식구들뿐이 아니라 요즈음 만나는 둘레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이렇게들 이야기합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이명박밖에 없다”고, “우리 같은 서민이 살려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노무현 찍어 놓으니까 보라고, 이렇게 경제불황에다가 다들 먹고살기 어려워서 난리를 치잖아” 하고.

 ‘우리 아버지는 이번 대통령 뽑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려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꿈틀꿈틀 합니다. 참말로 당신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먹고살 수 있게 해 줄 만한 대통령감을 찾고 있을까요. 먹고살 만한 높낮이는 어느 만큼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먹고살 수 있으면 될까요.

 돈이 안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볼 것이란 오로지 돈 하나뿐일는지요. 옆지기 아버님은 우리 옆지기한테, “진짜로 (대학교) 간판 없이 살 거야? 중졸로 끝낼 거야? 간판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합니다. 옆지기 대신 제가 한 마디 거듭니다. “우리는 간판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걸요. 그리고 간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 살아가면서 벽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벽을 허무는 일을 하고 있는걸요.”


.. 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대로를 건넌다는 것은 두려운 경험이다. 운전자용 불이 빨간색으로 바뀌기를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겨우 보행자용 녹색불이 들어오는 데다, 겨우 반쯤 건너면 벌써 보행자용 신호가 깜빡이면서 신호가 곧 바뀔 것이라는 표시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한없이 긴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곳의 이야기이다 ..  (41쪽)


 잠자리에 들기 앞서 잠깐 창밖을 바라봅니다. 아파트 8층인 이 집에서 제법 멀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밤에도 불빛이 반짝반짝합니다. 자동차 불빛도 번쩍번쩍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남녘땅 온누리는 밤이 되어도 수많은 불빛으로 환할 테지요.

 옆지기 부모님 사는 이곳 둘레에는 옷가게가 잔뜩 있는데, 모두들 제법 장사가 되는 듯합니다. 우리야 옷 살 일이 없고, 평일 낮이나 아침에만 이 앞을 지나다녀서 사람 구경을 거의 못했습니다만, 어제 들어오는 길에도 새로 문을 연 옷가게들을 보았습니다. 듣는 이야기로는, 주말이 되면 차 댈 곳이 없이 바글바글하다던데.


 (2) ‘한국사람 삶’을 프랑스사람 눈길로


.. 한국 사회는 금융관련 범죄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다. 2000년 7월에 3만5천 명이 대통령의 사면의 혜택을 받았는데, 3만 명이 경제사범이었다. 반면에 소위 사상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몇 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부유한 가정ㆍ명문대와 명문고 출신의 사기꾼들이 노조위원장이나 사회변혁을 부르짖는 사람들보다 대우를 받는다 ..  (153∼154쪽)


 《한국의 일상 이야기》가 우리 말로 나온 지 네 해가 지났고 머잖아 다섯 해가 됩니다. 글쓴이 에릭 비데 님은 네다섯 해 사이에 한국땅에서 어떤 모습을 새로 보았고 어떤 모습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또는, 자기가 한국사람 삶을 바라본 이야기책을 펴내던 때하고 지금하고 그다지 달라진 구석이 없다고 느낄는지, 또는 자기 눈으로 보았을 때 안타까운 쪽으로 고꾸라지거나 벼랑으로 치닫고 있다고 느낄는지.

 우리들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거나 대충 지나치는 우리들 하루하루요 우리들 한삶인 《한국의 일상 이야기》는, 나라밖 사람이 바라보고 나서 글로 끄적였기에 책으로 묶여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라안 사람이 바라보고 나서 글로 끄적였다면 책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아니, 나라안에 있는 우리 스스로 우리들 하루하루가 어떠하고 우리 한삶이 어떠한 줄을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고 있기나 한지요?

 우리 사회를, 우리 문화를, 우리 교육을, 우리 얼을, 우리 넋을, 우리 정치를, 우리 경제를, 우리 과학을, 우리 예술을, 우리 아이들을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곱다시 껴안으며 보듬고 있을까요. 아니, 껴안기나 할까요. 보듬기나 할까요. 그저 돈만 많이 벌 수 있게 해 주면 그만이라고들 여기지 않나요. 그 돈이라는 것도 지금 곧바로 앵겨 주면 될 뿐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나요. 앞으로 어떻게 되든. 앞으로 이 나라 아이들이 어떻게 살건 말건. (4340.12.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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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한 비평 - 이현식 문학평론집
이현식 지음 / 작가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곤혹한 비평
- 글쓴이 : 이현식
- 펴낸곳 : 작가들(2007.6.25.)
- 책값 : 13000원



 이 책 하나 28 ― ‘어려움’을 뚫고 나온 문학평론 하나
 : 이현식 문학평론, 《곤혹한 비평》

 

 〈1〉 한일축구, 여수박람회, 겨울올림픽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벌인다고 할 때면, 열 가지 일을 제쳐놓고 축구 경기를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반칙을 해도 좋으니 이겨야 한다’. 이때 저도 한 마디 대꾸합니다. “한국이 져도 좋으니, 반칙을 안 하는 나라가 이기면 좋겠습니다.”

 지저분하게 경기를 한다든지, 성의 없이 땀 안 흘리는 경기를 한다든지, 일찌감치 두 손을 들고 온힘을 다하지 않을 때면, 운동경기 중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솜씨와 재주가 몹시 뛰어나다고 해도, 맞은편 선수를 깎아내리거나 얕보거나 놀린다면, 이런 선수들은 조금도 달갑지 않습니다.

 지더라도 웃어야 하고, 지더라도 땀흘려야 하며, 지더라도 다시 애써서 다음 번에 이기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늘 이겨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경기를 치르는 줄거리가 중요하지, 지고 이기고 하는 열매는 다음 차례입니다.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진 대로 즐거운 일이 운동경기요, 경기를 준비하는 동안 흘린 땀방울을 소중히 여기는 운동경기라고 느낍니다.


.. 4ㆍ19세대의 세대로서의 정체성은 온통 한글, 다시 말해 문화사적 의미에 가려 정치적 의미는 달아나 버린다. 1980년의 항쟁과 탄압 역시 김현에게 오면 ‘폭력’이라는 불투명한 단어로 바뀌어 버린다. 그가 1980년대에 했던 작업들, 예컨대 지라르에 대한 연구나 기타 그의 비평적 행위들에서 그가 폭력의 의미를 파고들었다는 점이 갖는 의의는 물론 높이 살 일이지만, 폭력이란 말은 또 얼마나 추상적인가? 그 언어로는 1980년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건 ‘폭력’이라는 보통 명사로 지칭되기에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현은 이 대목에 오게 되면 억압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그 특유의 열린 반성적 사유로 파악하기보다는, 자기만의 성으로 완강하게 움츠러들어 왜곡시켜버린다 ..  〈29쪽〉


 “관람객 795만 명이 찾아 10조 원의 생산유발과 5조원의 부가가치, 15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인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나 2002년 한·일 월드컵보다 파급효과가 큰 것이다.(오마이뉴스 2007.11.27.)”는 기사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습니다. 올해 4월,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기며 들어야 했던 소식인 ‘아시아경기대회 인천 유치’에 못지않은 씁쓸함 때문입니다.

 10조 원을 벌어서 5조 원이 남는다고 하면, 이 5조 원으로 무슨 일을 하나요. 15만 사람한테 일자리가 주어진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이들이 얻는 일자리는 무엇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일자리이며, 이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어디에서 어떻게 쓸 테며, 이 돈은 우리 자신한테, 우리 삶터에 어떻게 보탬이 되나요.

 795만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셈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만한 숫자가 한국땅을 밟든 더 많은 숫자가 한국땅을 밟든, 이들이 묵을 잠자리는 어떻게 풀지요? 새 호텔을 잔뜩 지으면 될까요? 새 아파트를 허벌나게 올려쌓으면 될까요? 이들이 타고다닐 교통편은 어떡하지요? 이들이 먹을 밥은 또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하나요. 식량자급율이 30%도 안 되는 이 나라에서 이들한테 팔아치울 먹을거리는 죄다 나라밖에서 사들여서 시세차익 남기기로 돈벌이를 해야 하는지요?


.. 김현은 이 글에서, 적어도 저항적 폭력에 대해서는 그 특유의 맥락적 사유, 반성적 이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억압당해 온 사람들의 저항으로부터 비롯된 폭력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비판하되, 그는 그것의 맥락을 열린 자세로 접근하지 못한다. 그는 드러난 폭력에만 집착한다. 그 이유는 그것 역시 억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억압으로 전화될 수도 있다는 점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전에 그것이 폭력으로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는 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저항에 대한 왜곡이 될 수 있다. 대항 이념과 저항이 왜 개인의 자유로운 공간을 획득하려 하기보다 폭력으로 나아갔는지, 그리고 또 그것이 왜 또 다른 억압이 될 수도 있는지를 ‘사회ㆍ역사’적 맥락에서 사유하는 쪽으로 진전되었어야 한다. 그래야 억압과 폭력의 본질이 더 정확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이 훨씬 더 ‘김현’다운 모습이다 ..  〈31쪽〉


 평창 겨울올림픽 끌어들이기가 여러 차례 실패했을 때 ‘만세!’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후유!’ 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우리들한테 ‘좋은 가르침’이 베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기울일 곳은 어디인지, 우리가 몸을 움직일 일은 무엇인지, 우리가 가진 돈이며 시간이며 땀방울을 쏟을 데는 어디인지를 넌지시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한 달에 천만 원을 벌어서 900만 원을 신나게 쓴다고 할 때와, 한 사람이 한 달에 백만 원을 벌어서 알뜰살뜰 40만 원을 쓰고 나머지 60만 원은 내 이웃이나 내 삶터 가꾸기에 쓴다고 할 때와, 한 사람이 한 달에 이십만 원을 벌어서 이웃돕기는 하나도 못하지만 제 앞가림하는 데에 허리띠 졸라매며 쓴다고 할 때, 어느 때가 우리한테 기쁨과 눈물과 웃음과 아름다움을 베푸는 일이 될는지요.

 저는 한 끼니에 밥 백 그릇을 먹지 않아도 좋습니다. 한 끼니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하지만, 하루 두 끼니여도 좋고, 하루 한 끼니여도 괜찮습니다. 한 끼니 밥값으로 만 원짜리나 십만 원짜리가 아니라 해도 좋습니다. 한 끼니 밥값으로 300원이나 500원만 들어도 좋습니다. 한 잔 술값이 십만 원이나 백만 원짜리가 아닌 천 원짜리나 이천 원짜리라 해도 좋고, 동무들한테 얻어마셔도 좋습니다.


 〈2〉 우리가 살 집


 지난 토요일, 참여연대 박원순 님이 우리 일터인 도서관 나들이를 하셨습니다. 인천에 다른 볼일이 있어서 오신 김에, 〈스페이스 빔〉이라는 전시관을 찾아오셨다가, 헌책방 〈아벨서점〉 아주머니가 손수 마련한 ‘시 다락방’ 구경을 하러 가는 길에 저와 만나서 들어오셨습니다. 죽 둘러보시며 도서관 살림은 어떻게 꾸려가느냐고 물으시다가, “책도 파나요?” 하고도 물으시기에, “여기는 도서관인걸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 이 무렵 최일수나 정태용의 민족 인식은 커다란 반향을 얻지 못했다. 논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들은 주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당대의 문학계나 지성계, 넓게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되어 있지 못했거나, 아니면 이들의 주장 역시 냉전 이데올로기의 한 변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40쪽〉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자리한 〈스페이스 빔〉 전시관에서  금, 토, 일, 사흘에 걸쳐서 연극 공연이 있었습니다. 동네 한복판에 산업도로를 뚫어서 ‘남북축 고속화도로’로 만들고, 길 둘레 살림집을 싹 쓸어내어 아파트며 쇼핑상가로 재개발하려는 안상수 인천시장 정책이 어떻게 얼마나 말썽거리인지, 우리 삶을 갉아먹는지를 살며시 들려주는 연극마당이었습니다. 이 연극마당 구경이며 일손 거들기를 마치고 신포시장에 있는 닭집으로 가서 술을 한잔 걸치며 고단함을 풉니다. 밤 열두 시 나절, 닭집 문 닫을 때가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닭집 아저씨가 같이 한잔하자고 하셔서, 우리 무리도 닭집 아저씨하고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불 다 꺼지고 조용한 신포시장을 나와 뒤쪽 상가거리를 걷습니다. 1990년대 첫머리, 이곳 신포시장 둘레를 서울 명동거리처럼 꾸미겠다는 시 정책이 있어서, 크고작은 새 건물을 무던히도 짓고 옷집이며 밥집이며 술집이며 잔뜩 들어섰으나, 거의 모든 가게가 파리를 날리다가 쫄딱 무너졌습니다. 이즈음, 인천 연수동과 청학동 들에 수십만 채에 이르는 아파트를 올려세우고, 이 둘레에 있던 학교도 터를 팔아 그리로 옮기는 바람에, 이 거리를 찾아올 사람이 확 줄었거든요(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 지역문학은 자기가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활 현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70∼80년대 리얼리즘 문학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면서도 지역문학은 생활을 구체적인 자기 삶의 문제로 인식하고, 일상의 차원과 연계시킨다는 점에서 80년대 문학이 갖고 있는 한계로부터 탈출한다. 아울러 방향 없는 일상성과도 거리를 둔다는 면에서 90년대 포스트모던 문학과 스스로를 구별한다 … 인천이 갖고 있는 정서와 부산의 정서는 다르다. 자연환경도 다를 뿐더러 지역의 역사도 다르다. 자연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그런 정서와 풍토들, 거기에는 그 지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 삶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 건강성, 그것의 문제성이 주목하자는 것이다. 80년대의 열정은 지역 안에서 구체화된 현실과 만날 수 있고, 90년대 애매한 일상의 모습이 지역 안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  〈59쪽〉


 ‘건설 경기’를 북돋우면 일자리도 늘고 경제지표도 올라간다며, 온갖 건설계획이며 재개발계획이 쏟아집니다만, 이런 ‘조금 묵은 집 헐고 새 시멘트집 짓기’가 언제까지나 우리한테 돈벌이가 될까요. 재개발한다며 옛집 헐고 아파트 올리는 일은 참말로 우리한테 돈벌이가 될까요. 길어도 서른 해를 버티지 않게 짓는 아파트 문화는, 얼마나 우리 삶을 가꾸어 줄까요. 한 집에서 대여섯 해 살기도 힘들게 하면서 자꾸자꾸 이삿짐을 꾸리게 하는 우리 사회 우리 땅에서는, 참말로 누가 집임자요 땅임자일까요.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다섯 평짜리 작은 골목집보다, 빈 방이 남아도는 쉰 평짜리 아파트가 더 살기 낫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이미지)’은 누가 심고 있으며, 이런 생각에 왜 우리들이 끄달려야 하고, 우리 사회는 왜 이런 쪽으로 흘러야 하나요.


.. 나는 두 가지 현실이 지역 차원에서 보다 첨예하게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즉 중앙의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한 문단구조가 더욱 극명한 형태로 뿌리깊게 존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에서 지적한 가능성들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중앙문단 중심의 보수적 문인 조직은 오랜 기간 동안 조직 차원의 개혁 노력이 미미했기 때문에 그 존재 의미는 거의 다해 버린 것이 아닌가 여겨질 만큼 문학의 창조적 역량을 잃어버렸다. 남은 것은 형해화되어 버린 제도이며 조직이고 형식화된 권력일 뿐이다 … 적어도 내가 보는 한에서는 문학에 대한 열의나 능력보다는 예산과 이권의 다툼장으로 변해버린 것이 지방의 보수적 문인 조직이다. 여기에 값싼 문인 지망생들이 대거 몰려들어 그런 분위기에 일조한다. 세력을 만들고 파벌이 형성되면서 지방문단 조직은 권력기관이 된다 ..  〈65쪽〉


 술집에서 나와 걷습니다. 시간은 벌써 두 시, 세 시……. 몸은 고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술은 들어갔으나 얼근하지 않고, 터덜터덜 골목골목 사잇길로 천천히 뚜벅뚜벅 걷습니다. 고개를 살짝 기웃하면 집안이 들여다보이는 집들,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집안 사람들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집들, 창문 안쪽 살림살이가 훤히 보이는 집들. 스무 해 앞서도, 마흔 해 앞서도, 한국전쟁 때 미군 함포사격을 맞는 바람에 새로 올린 집도 많지만 그때에도 살아남아서 고이 이어오고 있는 골목집들. ‘독립운동을 했건 일제부역을 했건’ 아랑곳하지 않고, ‘사상분자가 많이 사는 동네’라고 해서, 일부러 온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함포사격을 오래도록 한 뒤 ‘인천상륙작전’을 하느라 애꿎은 백성들, 서민들, 밑바닥 사람들, 보통사람들 목숨이 하늘하늘 사라져 가야만 했다던 그 동네 골목길을 걷습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깃들이는 집은 1957년에 지어졌습니다.


 〈3〉 날씨


 아침햇살을 받으며 일어나 보니, 방 온도는 6도. 너무 쌀쌀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 살짝 보일러를 돌립니다. 보일러 돌리는 김에 머리를 감고 빨래 넉 점을 합니다. 천으로 된 시장가방은 마당 담벼락에 널어 놓고, 긴양말 두 점은 모기장 위에 얹고, 바지 한 벌은 큰방 문고리에 겁니다.


.. 오늘날 우리의 문학상 제도는 어떤 형태로건 자본과 결탁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에 그 권위를 온전하게 확보하기 힘들다 … 우리는 베스트셀러 소설, 베스트셀러 시집이라고 해서 그것을 곧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학상 수상 작품이라는 레테르가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상품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 인지도 높은 굵직한 문학상들의 제정과 운영에 애초의 순수한 취지가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자본의 논리가 훨씬 더 크고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신경숙이 훌륭한 작가가 아니래서가 아니다. 조금 지명도 있고 팔릴 것 같은 작가를, 출판사마다 문학상을 수여한다는 이름으로 서로 앞다퉈가며 끌고가려는 현실이 눈에 빤히 보여 그런 것이다 ..  〈80∼82쪽〉


 마당에 나와 둘레를 둘러봅니다. 앞집 감나무는 두 알 남고 모두 털렸습니다. 감나무 임자는 몇 알 남겨 두기를 잊지 않습니다. 앞집 옥상마당에 고인 물이 살짝 얼어 있습니다. 그 옆집 옥상마당 빨랫줄에는 담요 한 장 널리고, 하늘빛은 파랗습니다. 구름 한 점 안 보입니다. 어제 그제 살짝 비가 듣더니 12월을 코앞에 둔 11월 막바지 하늘인데도 참 맑네요. 그리 쌀쌀하지 않으면서.


.. 추상적으로 규정된 개념어들이 너무 쉽게 사용되고 있어서 일단 문장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현대성’은 과연 무엇인지도 짐작하기 전에 거기에 욕망이 결탁되고, 또 그것을 비판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개념적인 용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데다가 문장을 충분히 풀어쓰지 않아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아니다 … 나름대로 문학에 대해 공부도 하고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고 하는 내가 잘 이해하거나 납득되기 힘든 글이라면, 평범한 문학 애호가들이 대부분일 일반적인 독자들도 이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98쪽〉


 겨울이 겨울 같지 않은 미친날씨가 끝나고 추위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겨울 찬비나 겨울눈도 아닌 봄비로 느껴지는 따순 비가 내렸습니다. 겨울비 내린 뒤면 더 추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따뜻해지면서 아침에는 안개도 피었습니다. 참 재미있는 날씨입니다. 덕분에 보일러는 덜 돌려도 좋아 기름 걱정은 덜할 수 있겠네요. 이만한 날씨에도 보일러를 팡팡 돌린다면 기름 걱정이 크겠지요.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거나 두 다리로 걷지 않고, 자가용을 끌고 일터를 오간다면 기름 걱정이 크겠지요. 추우면 옷을 한 벌 더 입고, 일터에 가는 시간이 늦을 듯하면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안 고프면 안 먹으면 되듯이, 꽃그릇 흙이 마르는가 싶으면 물을 주고 촉촉하면 안 주어야 하듯이, 우리 삶도 있는 그대로 있는 만큼 느끼고 받아들이고 즐기면 될 텐데.


.. 이문열의 소설은 누구에게나 소설의 재미를 한껏 북돋고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지식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 그렇지만 그의 소설은 현실을 환기시키지 않는다. 아니면 현실의 특정 부분만 확대하여 과장한다. 그의 소설들에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거나 아니면 단순하게 방향이 잡혀 있다. 세계가 변해가는 과정, 삶이 흘러가는 과정은 그리 문제시되지 않는다. 세계가 변해가는 과정의 힘겨움, 삶이 진행되는 과정의 고통스러움이 세밀하게 포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그렇게 되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  〈289∼299쪽〉


 시간은 어느덧 열한 시를 넘어섭니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옵니다. 이부자리 있는 데로 맑은 햇살이 비치니, 방 온도도 조금씩 올라가겠지요. 문득, 이 햇살을 그대로 보내기 아깝습니다. 이불 둘 걷어서 앞마당으로 나갑니다. 한손으로 뭉그러 잡고 한손으로 탁탁 텁니다. 잔먼지가 하늘에 폴폴 날립니다. 벽돌 둘을 대며 담벼락에 넙니다.

 이불을 넌 자리 옆으로 까마중 한 줄기 말라 있습니다. 봄에 줄기를 올려 여름내 까만 열매를 맺은 그 까마중. 우리 집에 놀러온 분들 가운데 도시내기는 손도 대지 않은 까마중이지만, 시골내기는 “엉? 까마중이 여기서 자라네?” 하면서 덥석 따서 먹었던 까마중. 다음해에도 고 자그맣고 까만 열매를 맺어 줄까요.


.. 작품의 배경이 조선 후기라고 하더라도 오늘날 쓰여지는 작품에서 이런 식의 언어가 과연 필요할지는 의문이다. 소설의 전후 맥락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문열 소설에는 이런 식의 구투 어린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가 지닌 한문 교양을 드러내는 데는 흠잡을 데 없겠지만, 그건 권력의 언어고 억압의 언어다 ..  〈300쪽〉


 〈4〉 문학평론 한 권


 문학평론 《곤혹한 비평》을 읽습니다. 글을 쓴 이현식 님은 문학평론 등단을 한 지 열 해 만에 묶었다는 평론책 머리말에서 “문학 작품을 읽고 문학책을 사는 행위가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닌 것이 요즈음의 세태”인데, 이런 문학평론 하나 내어놓는 일이 얼마나 쓸모있겠느냐며 걱정을 합니다.


.. 한국의 시민들은 도덕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공감한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도덕적인 방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우리 사회에 제기하였다 … 《난장이》를 지배하는 언어는 단문체의 도시적 언어이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말이다. 생활 속의 살아 있는 민중의 언어가 아닌, 일반화된 언어이다. 사투리도 거의 없고 비어나 속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확하고 균형잡힌, 깔끔하게 다듬어진 언어가 《난장이》를 시종일관 지배하고 있다. 그런 언어를 통해 시민들은 《난장이》에 친숙하게 접근한다 … 독자들이 작품을 읽어가면서 이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난장이와 꼽추, 앉은뱅이라는 육체적 조건을 제외한다면 난장이들은 시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다만 경제적으로 조금 더 궁핍할 뿐이지, 전혀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니다 ..  〈315∼317쪽〉


 “야, 우리 책 보러 가자!” 하는 사람은 없고, “야! 우리 영화 보러 가자!”나, “야, 우리 놀러 가자!”나 “야! 우리 술 마시러 가자!” 하고 외치는 사람만 가득한 우리 흐름입니다. 동네 꼬마들은 고무줄놀이며 제기차기는 할 줄을 모르고, 동네 어른들은 당신 눈길을 트고 마음문을 열어 줄 일거리나 놀이감과는 자꾸만 멀어지는 우리 흐름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문학이 문학답게 펼쳐지며 읽히는 길에서 벗어나는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자리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에, 문학이 문학답게 펼쳐지며 읽히는 자리에서 멀어지는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곤혹한 비평》은 세상에 나왔습니다.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온갖 힘겨움을 제 몸뚱이로 껴안으면서. (4340.11.27.불.ㅎㄲㅅㄱ)


.. 문제는 서울과 지방이 아니라 권력과 억압의 체제이며, 그것을 해체하여 자유롭고 인간적인 새로운 질서를 재창출하는 것이다 ..  〈67쪽〉

 

[글쓴이 이현식 님은] 1966년 외가인 여주에서 태어나 친가인 인천에서 자랍니다.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대학원 국문과를 마치고, 1997년 〈문학과사회〉 평론 추천으로 등단합니다. (재)인천발전연구원 문화정책 연구위원을 거쳐 인천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인하대학교에 강의를 나갑니다. 《문화도시로 가는 길》, 《제도사로서의 한국 근대문학》, 《일제 파시즘 체제하의 한국 근대문학비평》 들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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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전태일 / 돌베개 / 1988년 10월
평점 :
절판



(ㄱ)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 돌베개,1998.11.1.
(ㄴ) 어머니의 길 / 돌베개,1990.11.30.



― 이 책 하나 27 : 쉰아홉 살이 된 전태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와 《어머니의 길》


 

 〈1〉 11월 13일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2003년 10월에 첫 호를 내고 어느덧 48호까지 나왔습니다. 상업만화와 학습만화만이 판치는 우리 나라에서, 아이들과 부모들과 교사들이 자기 마음밭을 다스리는 줄거리를 담은 만화잡지이면서도 정기독자를 4천 사람 남짓 모아서 꾸려가고 있으니 놀라우면서 반가운데, 이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꾸준하게 실려 온 만화로 〈태일이〉(최호철 그림)가 있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해 오다가 1970년 11월 13일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서 숨을 거둔 전태일 님 이야기를 다룬 만화입니다. 이 만화 〈태일이〉는 얼마 앞서 낱권책으로 묶여 1권과 2권이 선보였습니다(돌베개 펴냄, 한 권에 1만 원씩). 《전태일 평전》이 있고,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 《청년 노동자 전태일》도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어, 요즘 아이들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쉬 생각해 보기 어려운 1960∼70년대 모습을 그림으로 함께 느끼고 돌아볼 수 있는 만화책이 나왔으니 참으로 뜻깊으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만화를 이어싣는 잡지 《고래가 그랬어》 살림은 그다지 좋지 못해서, 주주 모으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http://gyuhang.net)

 오늘은 11월 13일, 바로 전태일 님이 다락방 옷공장이 빼곡히 늘어선 청계천 골목길에서 몸뚱이에 불을 붙이고 숨을 거두면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세 가지 큰 권리’를 외치며 한 줌 재가 된 날입니다. 이때는 전태일 님 나이 스물둘. 그야말로 꽃나이입니다. 꽃나이이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물었습니다. 아니, 꽃송이가 뚝 끊어져 버렸습니다.


.. 이미 의사의 진단은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입원실에서도 별다른 치료를 해 보지 못하고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했다. 저녁이 되면서 태일이는 기력이 탈진해 가는지 잠잠하게 누워 있었다.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듯하더니 눈을 뜨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배가 고프다…….” 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소리인가! 죽어가는 자식의 마지막 한 마디가 ‘배가 고프다’는 말이라니. 에미로서 생전에 잘 먹이고 잘 입히지는 못했을망정 죽는 순간까지도 배고픔을 달래 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  《이소선-어머니의 길》 35쪽


 뚝 끊어져 버리는 꽃송이는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제 꽃잎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꽃송이가 통째로 끊어져 버렸지만, 고픈 제 꽃잎에 양반을 빨아들이기보다 다른 꽃잎들한테 양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땅에 뚝 떨어지면서도 책갈피 사이에 남는 꽃잎이 아닌, 그 몸뚱이 그대로 썩어가며 땅으로 돌아가 다른 꽃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거름으로 바뀌었습니다.


 〈2〉 15 : 8


 쉰아홉 해. 쉰아홉 살. 1948년에 태어난 전태일 님이 살아 있다면 쉰아홉입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여느 노동자로 일했다면 머잖아 정년퇴임으로 일터를 물러나야 하는 나이입니다. 전태일 님이 숨을 거둔 뒤, 살아남은 이소선 어머님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물리쳤습니다. 돈으로 아들 주검을 사려는 공권력 앞에서 떳떳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 님과 남은 님한테 떨어지는 것은 ‘돈’이 아닌 ‘싸움’.

 이소선 어머님을 살살 달래며 돈으로 꾀려던 이들은, “그 돈을 다 합치면 종로에 있는 노동청 산재 사무소 옆에 있는 빌딩 큰 것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빌딩을 사서 세를 주고, 한 칸만 가지고 식당을 해서 곰탕이며 도가니탕을 팔면서 사람을 고용하면, 나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자식 대에까지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식당에 노동청 직원들이 매일같이 단골로 다니면 장사도 잘 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어머니의 길, 50쪽)”는 이야기처럼, 이 나라 모든 노동자한테 고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삶터보다는, 한두 사람만 떵떵거리며 배불리 먹고살 수 있는 평등하지 못한 삶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할까요. 어두운 세상에 한 떨기 꽃잎일망정 거름으로 제 몸을 바친 한 사람 뜻이 이 땅에 스며든 지 서른하고도 일곱 해째 되는 지금 이 세상은. 지금 이 세상은 얼마나 ‘모든 일꾼이 고르게 권리를 누리며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돈이 적다고 권리를 앗기지 않으며, 힘이 없다고 권리가 밟히지 않으며, 이름이 없다고 권리가 내동댕이쳐지지 않는,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놀고 먹고 자고 껴안고 말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논밭이나 텃밭을 가꾸는 한편, 맑은 바람과 따순 햇볕을 쬐면서 지낼 수 있는 세상인가요.


.. 끝날이 인생에 종점이겠지.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아이롱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걸(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사나이 큰 포부를 가지고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지만 정히 못 견디겠다 ..  (1967년 3월 18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09쪽


 하루 열다섯 시간을 괴롭게 일하는 노동자가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요. 참말 사라졌을까요. 관공서와 학교와 큰 공장부터 해서 ‘주 5일노동’을 펼칩니다만, 작은 공장과 작은 일터 노동자들은 얼마나 ‘주 5일노동’ 혜택을 받고 있을까요. 한 주에 닷새 일하면서도 누구나 고르며 알뜰한 권리를 누리며 일한 대가와 대접을 받고 있는지요.


 〈3〉 살아가는 이 몫


 아침에 눈을 뜨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퍽 따뜻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따뜻했습니다. 한낮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면 긴소매 입고 거리를 돌아다닐 때에 등에 땀이 송송 맺힙니다. 11월을 넘겼는데. 12월이 코앞인데. 올겨울에는 눈송이 구경 한 번 못하고 지나갈지 모르겠습니다.

 미친날씨(기상이변)라고 할 수 있지만, 날씨가 미쳤다면 왜 미쳤을까요. 우리들은 가만히 있는데 날씨만 미칠까요.

 나날이 늘어나는 자동차, 나날이 넓어지는 찻길,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물건들, 새로 쏟아지는 물건 못지않게 넘쳐나는 쓰레기. ‘쓰레기를 줄이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보이지만, ‘무엇이 쓰레기이고, 쓰레기 줄이는 삶이란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며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번화거리를 빼고는 걷는 사람 구경하기 힘듭니다.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기름 먹는 탈거리로 움직이는 우리들입니다. 여름에는 추운 일터, 겨울에는 더운 일터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터, 여름에는 춥고 겨울에는 더운 일터에서 일하는 분들도 ‘노동자’입니다. 이름은 똑같이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정규직’이고 어떤 이는 ‘비정규직’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권리,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이 자기가 일한 만큼은 알맞게 대접을 받아서 배곯지 않을 뿐 아니라 골고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낡고 허름한 옷을 입어도 똑같은 사람으로 지낼 권리, 가방끈이 짧아도 새 직원 뽑는 자리에서 푸대접을 안 받을 권리, 부자 동네 아닌 서민 동네에 살아도 막개발과 재개발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삶터를 고이 지키며 살아갈 권리, 남자이건 여자이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권리, 어른이라고 젊은이라고 늙은이라고 어린이라고 어느 한편이 따돌림받거나 업신받지 않을 권리, 무기를 적게 가지거나 안 가지고 있어도 무기 많이 가진 나라한테 시달리지 않을 권리 …… 들을 우리들은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들은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지만 마땅히 못 누리고 있는 권리를 되찾으며 함께 누리고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있나요. 마음 기울이기를 넘어서 얼마나 땀을 흘리며 두 손 맞잡으며 움직이고 있을까요.


.. 동지는 모두 5권의 노트에 일기를 남겼다. 그런데 분식 직후, 조선일보사에서 기사 작성에 참고한다며 가져갔는데, 일기의 중요한 부분들이 예리한 면도칼에 의해 잘려나가 없어져버린 채 되돌아왔다. 이후 동지의 가족은 1년 여에 걸쳐 없어진 일기를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게다가 1978년 어느 날에는 동지의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일기장 3권을 집을 뒤져 도둑질해 간 일도 일어났다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머리말


 2007년 우리 세상을 헤아리면서 1970년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다시 펼쳐 봅니다. 옆에 나란히 꽂아 놓고 있던 《어머니의 길》도 다시 펼쳐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ㅇ씨가 낸 《사회부 기자》(1977)라는 책에 실린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 나는 우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일기장을 어디서 찾아낼 수 없을까? 그것만 찾아낸다면 통쾌한 스쿠프가 될 텐데…. 뭔가 있긴 있을 텐데….” 나는 추리, 상상 속에서 혼자 특종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상상이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 “여기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취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주위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나는 부의금 방명록을 먼저 체크해 보기로 했다. 누가누가 와서 얼마씩이나 내고 갔는가부터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시체실 한쪽 테이블에 청년이 두 명 앉아 방명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명단을 쭉 훑어봤으나 이렇다 할 지명인사는 없었다. 명단을 모두 막 훑어보고 난 순간, 그 방명록이 낡은 대학노우트였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나는 섬뜩해졌다. 청색 비닐 커버의 대학노우트.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나다를까. 대학노우트를 한 장 펼쳐보니 무언가 잔뜩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틀림없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요?” 나는 부의금 접수를 맡은 20대 청년에게 귀엣말로 슬쩍 물었다. 주위에는 동료 기자들이 쉴사이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일이 일기예요.” “어?” 나는 무조건 그 노우트를 움켜쥐었다. “잠깐 좀, 봅시다.” “누구신데요?” “나가 보면 압니다.” 부의금이 적힌 대학노우트를 코우트 호주머니에 움켜넣고 내가 먼저 앞장을 서 시체실을 나왔다. 그 청년은 죽은 태일 군의 사촌형이라고 했다. “태일 군의 집으로 갑시다!” 짚차는 급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청년은 얼떨결에 차에 올라탔으나 자신이 탄 차가 신문사 짚차란 사실을 미처 몰랐던 모양이었다 ..  《사회부기자》 41∼43쪽


 조선일보 사회부기자 ㅇ씨는 전태일 님이 살던 집까지 찾아가서 남은 일기장까지 손에 얻습니다. 뒷날 일기장이 전태일 님 남은 식구한테 돌아왔지만 잘려진 곳이 있는 채 돌아왔다고 합니다. 누가 어떤 일을 했을까요? 사라진 글쪽에는 무슨 이야기가 실려 있었을까요?


..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 저 착하디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요.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37쪽


 일기장은 칼질이 되기도 하고 도둑맞기까지 했습니다. 아니, 일기장에 앞서 전태일 님은 벌써 흙으로 돌아가고 없습니다. 일기장이 칼질이 되고 도둑을 맞았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 넋과 뜻을 잊지 않습니다. 더욱 깊이 새깁니다. 땅에 뚝 떨어지고 만 꽃송이인 전태일 님은 세상에 없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가 못 다한 일을 이어가고 모자라다고 해도 꿋꿋하게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헌법이 있고, 노동법이 있고, 평등권이나 자유권이니 기본권이니 생존권이니 있습니다. 종이에 또렷하게 새겨진 법과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법이 있으니 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나라에서 세운 법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얼마나 ‘종이에 적힌 법’을 지키고 보듬고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법이 없더라도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없다고 해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하고, 헌법이 없어도 누구나 고른 권리를 두루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기본권이나 평등권이라는 말이 없어도 누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등처먹는 일이란 없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는 사람한테도 똑같은 일삯이 주어져야 합니다. 나어린 일꾼이라고 해서 나이든 사람과 견주어 반토막 일삯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름난 작가라고 글삯을 더 챙겨 주고 이름없는 작가라고 글삯을 떼어먹는 일이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줌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 전태일 님이 외친 목소리는 틀림없는 ‘노동 3권’입니다. 그러면 이 노동 3권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 세 가지 권리일까요. 이 권리를 누려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 우리 대표들은 노정국장실로 갔다. 노정국장한테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이냐고 다그쳤다. “여러분의 요구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주장에는 얼버무리기만 했다.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말해 보시오.” “이렇게 집단적으로 와서 행동하는 것은 불법이니 빨리 철수하세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무턱대고 쫓아낼 궁리만 했다. 그 말에 욱하고 화가 뻗쳤다. “이봐요, 노정국장! 당신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근로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 아니요? 감독소홀로 근로자가 죽어나자빠져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근로자들이 여기저기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회사에서는 해고시키고 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람을 두들겨패고, 상급노조에서는 제명이니 유령노조니 하는 야비한 수법으로 탄압을 하고 있는데, 노동청에서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요? ..  《어머니의 길》 308쪽


 살아남은 이 가운데 한 사람인 이소선 어머님은 1970년 11월 13일 그날부터 2007년 11월 13일 오늘까지도 꼿꼿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한 줌 재가 된 전태일 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냘픈 생명체가 계속 병들어가니까, 하루하루 병들어가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안 보이는 벽살이 우리를 가두고 옥죄고 있어서 그 단단한 벽을 허물기 위해 나는 작은, 아주 작은 바늘구멍이라도 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어머니의 길, 32쪽)”를 지키면서. 아니, 이소선 어머님 스스로 이 땅에서 전태일 님처럼 세상을 부대끼며 살다 보니까, 당신부터도 ‘작은 구멍’ 하나 낼 수밖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꺼번에 내는 큰 구멍이 아니라, 작은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겨우 내고 있는 구멍 하나를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낼 때 비로소 우리 삶터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깨달았기에. (4340.11.13.불.전태일 님 죽은 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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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엘리아스 카네티 님 책은 좋다. 반갑다. 하지만, 이분 책을 훌륭히 우리 말로 옮길 만한 사람은 우리 나라에 없을까? 훌륭하게 우리 말로 옮길 수 있도록 번역가한테 시간을 주고 마음을 써 주는 편집자나 출판사는 없을까? ... '리뷰' 대신 '번역 문제' 이야기를 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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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사는 ㅇ님이 책을 한 꾸러미 보내 주었습니다. ㅇ님이 하나하나 사서 읽었던 책입니다. 책 안쪽에 ㅇ님이 찍어 놓은 도장 자국이 자그맣게 보입니다. ㅇ님은 이 책을 하나하나 고를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헤아리면서 고맙게 책장을 펼칩니다. 구겨지거나 접히거나 비틀린 곳 하나 없이 깨끗한 책입니다. 먼저, 엘리아스 카네티 님이 쓴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읽습니다.

 그러나 한 장 두 장 넘기는 책장이 자꾸 끊기고 또 끊깁니다. 책을 쓴 분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얼추 짚을 수 있으나,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는 느낌은 옅습니다. 왜 그러지? 책을 덮고 며칠 묵힙니다. 다시 책장을 펼쳐 읽습니다. 또 덮습니다. 다시 읽다가 또 덮습니다. 이러기를 보름 남짓.

 오늘 아침, 한 번 더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오늘은 두 쪽을 넘기지 못합니다. 다시 책을 덮고 엘리아스 카네티 님이 쓴 《구제된 혀》나 《군중과 권력》을 헤아려 봅니다. 책꽂이에서 《군중과 권력》을 꺼내어 짚이는 대로 한 대목 골라 읽어 봅니다.


.. 필자는 군중결정체를 군중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경계가 분명하고 커다란 항구성을 지닌 인간들의 소집단이라고 규정한다. 이 집단은 개괄적 성격을 띠면서도 한눈에 봐서 그대로 파악될 수 있는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  〈85쪽〉


 오늘 읽다가 막힌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다시 펼칩니다.


.. 보석 상인들은 별도의 미음자형 건물에 모여 있는데 길고 가느다란 가게 안에서 남자들이 수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24쪽〉


 우리 나라에는 날마다 수없이 많은 책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 대단히 많은 책이 ‘번역’책입니다. 창작책 가운데에도 나라밖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은 책이 많고, 나라밖 책으로 공부하거나 나라밖에 나가서 둘러보거나 느끼거나 공부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 많습니다.

 책마다 자기 빛깔이 있고 얼굴이 있어서, 백 가지 책이라면 백 가지 빛깔과 얼굴을 느낀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요즘 나오는 백 가지 책을 보면서 백 가지 빛깔이나 얼굴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다 똑같은 빛깔이라고, 다 어슷비슷한 얼굴이라고 느낍니다.

 어린이책 번역을 보아도, 어른책 번역을 보아도 매한가지입니다. 먼저, 책을 써낸 사람, 글쓴이 모습이나 말씨나 얼굴이나 말투나 느낌을 읽기 어렵습니다.

 책을 써낸 사람마다 이름이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마다 자기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나라가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이 살아온 겨레붙이가 다를 테고, 책을 써낸 사람이 어울리며 만나는 사람이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이 보고 듣고 배우고 부대끼는 삶과 삶터가 다를 테며, 책을 써낸 사람마다 쓰는 말이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마다 생각하며 나타내려는 이야기가 다르고, 책을 써낸 사람마다 바라거나 꿈꾸는 세상이 다를 텐데.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읽다가 막힌 대목을, “보석장수들은 따로 ㅁ자 꼴로 지은 건물에 모여 있는데, 길쭉하고 좁은 가게에서 손수 보석을 다듬고 있다”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썩 내키지 않습니다. 번역책을 읽으면서 왜 번역글을 다듬으며 읽어야 하지?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없는지?

 들뢰즈를 우리 말로 옮길 때, 들뢰즈처럼, 또는 들뢰즈보다 더 깊이 학문을 갈고닦아야 가장 훌륭하게 들뢰즈를 옮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페이터 산문을 우리 말로 옮길 때, 페이터가 살았던 지난날과 그 나라 문화와 사회를 두루 톺아보는 눈길이 없다고 해서 페이터 산문을 우리 말로 옮길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각해 봅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일제강점기 때 이 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짓밟히고 시름시름 앓으며 고달팠는가를 돌아보는 마음이 없이 〈낙엽을 태우며〉를 읽거나 〈학도여 성전에 나가라〉를 읽을 때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목넘이 마을의 개〉는, 〈탁류〉는, 〈모래톱 이야기〉는 지난 우리 삶과 역사를 굽어살피지 않으면서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헤아릴 만한 작품일까요. 〈잉여인간〉은, 〈당신들의 천국〉은, 〈유예〉는 지금 우리 삶과 터전이 어떠한 모습인지 넘겨다보지 않으면서도 알뜰하게 곰삭이면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작품일까요. 흘려들은 지식하고 머리로 생각한 깜냥만으로 〈태백산맥〉이나 〈봄날〉이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속속들이 새겨읽을 수 있을까요.

 가와바타 야스나리 님이 쓴 〈눈나라(설국)〉는, 이 작품으로만 훌륭했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을까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사람이 일본 문화와 문학을 모두 사랑하면서, 일본사람과 하나가 되어 도쿄에 살면서 〈눈나라〉를 미국말로 옮겨내지 않았을 때에도 〈눈나라〉는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을까요. 일본말로 된 문학을 미국말로 옮긴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도쿄 이야기》를 썼고,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를 썼습니다. 두 가지 책 모두, 일본사람 저리 가라 할 만큼 일본과 도쿄 문화와 사회를 깊이 꿰뚫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정체성인 ‘미국사람’을 잊지 않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초등학교에 들지도 않았는데 영어를 배우고 한문을 외우는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난 토요일 잠깐 서울 나들이를 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에서 “마미! 마미!”를 외치는 어린 계집아이를 보았습니다. “엄마! 엄마!”를 외치지 않고 “마미! 마미!”를 외치는 어린아이는 여덟아홉 살쯤? 아이 어머니는 딸아이가 ‘마미’라고 해도 “원 녀석두, 마미가 뭐니, 엄마지 않구?” 하고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엄마’가 아닌 ‘마미’라고 쓸 줄 알아야 영어가 몸에 익은 생활말로 버릇으로 굳어서, 앞으로 일류대학교에 들어가자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영어를 그렇게 생활말로 쓰면 좋지’ 하고는 느낄는지 모릅니다.

 이리하여 초등학교 아이들이 즐기는 인터넷게임에서도, ‘준비, 땅!’이 아니라, ‘ready, start!(또는 ready, go!)’가 버젓이 알파벳 글자로 찍혀서 화면을 채웁니다. 스물 안팎 젊은이들이 ‘고 고 고’라고 말하기에 무슨 소리인가 한참 알쏭달쏭해 한 적이 있습니다. 시내버스에서도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미국말을 쓰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필리핀이나 다른 유럽나라 문화와 사회를 우리들은 얼마나 잘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이토록 미국말이 우리 삶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있는 이 나라에서, 한국말로 창작한 문학이며 예술이며 문화며, 미국말로 옮겨서 소개하거나 알리는 일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미국말 할 줄 아는 사람 많고, 일본말 할 줄 아는 사람 많으며, 중국말 할 줄 아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나라밖 말 잘하는 사람’들은, 우리 문화와 문학과 예술을 나라밖 사람들한테 ‘그 나라밖 사람들이 살갗으로 느끼며 받아들일 만큼 들려줄 만한’ 높낮이가 되어 있는지요.

 어쩌면, 제가 너무나 많이 바라는지 모릅니다. 너무 높은 자리를 꿈꾸는지 모릅니다. 《Death of a Salesman》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밖에 옮길 줄 모르는 이 나라인데. 《Being and Nothingness》을 《존재와 무》로밖에 옮길 줄 모르는 이 나라 사람들인데.


.. It was a bright cold day in April, and the clocks were striking thirteen ..


 번역가가 아닌, 이 나라 대학생들이, 또 고등학생이, 또 초등학생이, 또 토익점수 높게 받은 사람이, 이 글월 하나를 우리 말로 옮긴다면 어떻게 옮길까요. 이 글월은 조지 오웰 님이 쓴 《1984》 첫 줄입니다. (4340.10.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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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꾼 2009-03-2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우연히 카네티를 검색하다...허나 두 번째 지적 부분은 교정자도 충분히 잡아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전 직장 동료들과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제대로 된' 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어 문장 구사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로 외국어를 하나씩 무작위로 뽑게 한 다음 그 언어를 죽기 살기로 가르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외국어는 스파르타식으로 좀 휘몰아치면 웬만큼 언어감각이 있는 사람은 잘 배우잖아요~ 뭐 행간의 의미야 차차 실력이 늘면서 보이는 거니까...그런데 세일즈맨의 죽음이 '세일즈맨의 죽음'이면 안 되나요?

숲노래 2009-04-14 14:50   좋아요 0 | URL
세일즈맨의 죽음은... 언젠가 쓴 글이 있는데... 좀 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