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빈곤 貧困


 빈곤에 시달리다 → 가난에 시달리다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려고 →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 돈가뭄에서 벗어나려고

 화제의 빈곤으로 → 얘깃거리가 없어서 / 할 말이 떨어져

 빈곤한 생활 → 가난한 살림 / 엉성한 살림 / 모자란 살림 / 빈살림

 빈곤한 지식 → 어설픈 길 / 얕게 알다 / 허술히 알다 / 빈머리


  ‘빈곤(貧困)’은 “1.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2. 내용 따위가 충실하지 못하거나 모자라서 텅 빔 ≒ 빈난(貧難)·간곤·곤궁·궁곤·빈궁”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난·가난살림·가난살이·가난벌이·가난팔이·가난장사·가난집’이나 ‘가난이·가난님·가난꽃·가난벗·가난뱅이·가난삯꾼·가난일꾼’으로 손봅니다. ‘배고프다·굶다·굶는벌이·굶는삯꾼·굶는일꾼·굶주리다’나 ‘가물·가물다·가뭄·가파르다·강파르다·깎아지르다’나 ‘동냥꾼·땅거지·거지·거렁뱅이·겨울·비렁뱅이’로 손보아도 돼요. ‘그냥·변변찮다·비리다’나 ‘낮다·나떨어지다·나뒹굴다·떨려나가다·떨어지다’로 손볼 만하고, ‘돈없다·돈고비·돈고개·돈벼랑·돈수렁·돈앓이’나 ‘맨끝·맨뒤·맨몸·맨밑·맨손·맨주먹’으로 손보아도 어울려요. ‘비다·빈그릇·빈몸·빈손·빈주먹·빈털터리·빌빌·빌어먹다’로 손보고, ‘모자라다·못나다·못 받다·못살다·뿌리얕다’나 ‘밑바닥·밑자리·밑지다·바닥·바닥나다’로 손봅니다. ‘발가벗다·발가숭이·벌거벗다·벌거숭이·벗다’나 ‘벼랑·벼랑끝·벼랑길’이나 ‘빚·빚길·빚살림·빚잔치·빚지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ㅅㄴㄹ



생활의 빈곤이 토양과 작물을 한층 더 약하게 하는 것이다

→ 가난하기에 흙하고 남새가 한결 더 힘을 잃는다

→ 가난한 탓에 흙이며 풀이 한결 더 흐물거린다

《소농》(쓰노 유킨도/성삼경 옮김, 녹색평론사, 2003) 106쪽


풍요의 시대를 누리다 어느 순간부터 처절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 넉넉한 나날을 누리다 어느 때부터 끔찍히 가난 수렁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 넘치는 한때를 누리다 어느덧 모진 가난 굴레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 눈부신 한때를 누리다 어느새 빈털터리 벼랑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 한껏 누리다 어느 때부터 깡그리 잃고 가난하다는 말이다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유진, 이매진, 2008) 22쪽


나는 상상력이 너무 빈곤해서 손가락을 잘라도 가루가 날릴 것이다

→ 나는 생각나래가 너무 모자라 손가락을 잘라도 가루가 날릴 듯하다

→ 나는 생각힘이 너무 바닥이라 손가락을 잘라도 가루가 날리리라

→ 나는 생각하는 힘이 너무 얕아 손가락을 잘라도 가루가 날리리라

《생물성》(신해욱, 문학과지성사, 2009) 67쪽


대한민국의 노인빈곤율은 기록적으로 높다

→ 우리나라에 늙은가난이 무척 많다

→ 이 나라는 가난한 늙마가 대단히 많다

→ 우리는 늙은가난이 엄청나다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하승수, 한티재, 2015) 77쪽


일을 할수록 더 빈곤해지는

→ 일을 할수록 더 가난한

→ 일을 할수록 더 굶주리는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 창비, 2016) 128쪽


2011년 미국에서는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이 빈곤 상태에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 2011년 미국에서는 어린이 다섯 가운데 하나가 가난하다는 놀랄 만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 2011년 미국에서 살폈더니 뜻밖에도 어린이 다섯 가운데 하나가 가난하게 산다고 해요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김현주, 사계절, 2016) 23쪽


최저 임금이 근로 빈곤층에게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입니다

→ 밑삯은 가난일꾼한테 바로 이어갑니다

→ 바탕삯은 가난한 일꾼한테 바로 와닿습니다

→ 가난한 일꾼은 밑삯에 확 얽매입니다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오건호와 네 사람, 철수와영희, 2018) 211쪽


내 빈곤한 어휘력이 원망스러워

→ 내 못난 말발이 미워

→ 내 어설픈 말솜씨가 싫어

→ 내 엉성한 말씨가 못마땅해

→ 내 허술한 말힘이 부끄러워

→ 내 얕은 말재주가 창피해

《공전 노이즈의 공주 2》(토우메 케이/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9) 17쪽


철학의 빈곤은 통치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 얕은 넋은 이끌 적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 생각이 없으면 잘 다스리지도 못한다

→ 어설픈 빛은 살림길에 그대로 드러난다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진중권, 천년의상상, 2020) 224쪽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은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근로빈곤층이다

→ 가난벌이는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 집안은 가난일꾼이다

→ 굶는벌이는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 집은 굶는일꾼이다

→ 하루벌이는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 집은 하루일꾼이다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강은진, 작아진둥지, 2022) 244쪽


이들의 빈곤이 세습될 가능성은 매우 컸다

→ 이들은 거의 가난을 물려준다

→ 이들은 다들 가난을 이어받는다

《가난이 사는 집》(김수현, 오월의봄, 2022)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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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기록 記錄


 신상 기록 카드 → 살림 적음 종이

 기록을 남기다 → 글을 남기다 / 글을 쓰다 / 글을 적다

 기록을 들춰 보다 → 글을 들춰 보다

 세계 최고 기록 → 온누리 으뜸 자리

 기록을 내다 → 새길을 내다

 기록을 경신하다 → 예전을 뛰어넘다 / 옛길을 넘어서다

 법전에 기록되어 있다 → 틀에 적혔다 / 길에 나온다

 그 사건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 그 일은 자국에 남았다

 혁명으로 기록되었다 → 너울로 적혔다 / 들불로 남았다

 진행 과정을 간단하게 기록했다 → 흐름을 단출히 적었다 / 흐름을 짤막히 옮겼다

 장부에 기록했다 → 벼리에 적었다 / 꾸러미에 옮겼다

 새롭게 기록했다 → 새롭게 나왔다 / 새로웠다 / 새롭게 깼다


  ‘기록(記錄)’은 “1.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 서록(書錄) 2. 운동 경기 따위에서 세운 성적이나 결과를 수치로 나타냄”을 가리킨다고 해요. ‘적다·쓰다·옮기다·하다’나 ‘남기다·새기다·아로새기다’나 ‘글·글자취·그리다·밝히다·알리다·알려지다’로 손볼 만합니다. ‘들빛글·씨앗글·밑글·풀빛글·풋글’이나 ‘값·조각·찌’나 ‘길·길꽃·길눈’이나 ‘자리·자국·자취’나 ‘새길·옛길·예전’으로 손보아도 돼요. ‘깨다·깨뜨리다·넘다·세우다’나 ‘올리다·오르다·올라가다’로 손볼 자리가 있고, ‘넣다·놓다·담다·싣다·앉히다’나 ‘뜨다·박다·굽다·얹다·있다’로 손볼 만하며, ‘보이다·보여주다·달다·달리다’나 ‘담·담벼락·고이다’로 손봅니다. ‘삶글·삶얘기·삶쓰기·삶자국·삶자취·삶적이’로도 손보는데, ‘대단하다·엄청나다·어마어마하다’나 ‘놀랍다·크다·퍼붓다’로도 손보지요. ‘무시무시하다·마구마구·끔찍하다·모질다’나 ‘매우·몹시·무척·아주·펑펑·잔뜩’으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트로츠키의 삶에 관한 기록은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서

→ 트로츠키 삶을 다룬 자취는 아직 남아서

→ 트로츠키를 알 수 있는 글은 고스란히 남아서

→ 트로츠키가 살아온 길을 적은 글은 고스란히 남아서

→ 트로츠키 발자취를 다룬 글은 아직 남아서

《트로츠키》(아이자크 도이처/신홍범 옮김, 두레, 1985) 6쪽


갑골문에는 간지(干支)가 씌어 있었고, 일식과 월식도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 뼈글씨에는 열두님을 새겼고, 해가림과 달가림도 새겼기 때문에

→ 등딱지글에는 열두지기를 담았고, 해가림과 달가림도 담았기 때문에

→ 게딱지글에는 열두띠를 적었고, 해가림과 달가림도 적었기 때문에

《공자왈 맹자왈》(진순신/서석연 옮김, 고려원, 1993) 14쪽


전대미문의 아녀자 집단 폭행 사건은 어느 독립운동사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

→ 듣도 보도 못한 아이아씨 몰매질은 어느 들너울길에도 적히지 않았다

→ 어처구니없는 아이아씨 몰매질은 어느 들빛너울에도 나오지 않았다

→ 말도 안 되는 아이아씨 몰매질은 어느 들물결 자취에도 적지 않았다

→ 끔찍한 아이아씨 몰매질은 어느 들불 발자취에도 밝히지 않았다

《DMZ는 국경이 아니다》(함광복, 문학동네, 1995) 33쪽


덕분에 예년에 없던 손님 수를 기록했다

→ 그래서 이제껏 없던 손님이 많았다

→ 이리하여 여태 없던 손님이 늘었다

《동물의사 Dr.스쿠르 2》(사사키 노리코/단행본팀 2부 옮김, 대원씨아이, 2002) 136쪽


우리 세대에 종말을 고할 또 하나의 생물로 기록될 상황이다

→ 우리 또래에 마지막을 알릴 또 다른 숨결로 남을 듯하다

→ 우리한테 마지막이 될 또 다른 숨붙이가 될 듯하다

→ 우리 때에 마지막이 될 또 다른 목숨붙이가 될 듯하다

《우리 동물 이야기》(박병상, 북갤럽, 2002) 167쪽


72일 만에 실제로 세계 일주를 함으로써 그 기록을 깨뜨리고 말았다

→ 일흔이틀 만에 온누리를 돌면서 그 울타리를 깨뜨리고 말았다

→ 일흔이틀 만에 온돌이를 하면서 그 담벼락을 깨뜨리고 말았다

《저항의 문학》(이어령, 문학사상사, 2003) 352쪽


그렇다면 그것이 카메라의 냉정한 기록성 때문인지, 아니면 목격자로서, 해석자로서, 전달자로서 시대 앞에 섰던 사진가의 시선인지

→ 그렇다면 이는 찰칵이가 차분히 담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 사람으로서, 읽는 이로서, 옮기는 이로서 그때에 섰던 찍는님 눈길인지

→ 그렇다면 이는 빛꽃틀이 고요히 담기 때문인지, 아니면 보거나 읽거나 옮기는 이로서 그때에 섰던 담는님 눈길인지

《사진과 역사적 기억》(진동선, 눈빛, 2003) 23쪽


이를 기록하는 것은 나의 임무라 생각했다

→ 나는 이를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내가 이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내라 진달래》(노회찬, 사회평론, 2004) 7쪽


종군 사진기자들은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전쟁의 참상과 자신 사이에 카메라가 없었다면 과연 그 유혈 사태와 전쟁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 싸움터 담음님은 스스로 담아내는 끔찍한 싸움과 저 사이에 빛꽃틀이 없었다면 참으로 그 피비린내와 싸움질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 싸움판 찍음님이 담아내는 끔찍한 싸움터와 이녁 사이에 찰칵이가 없었다면 그 피비린내와 싸움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헬무트 뉴튼,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헬무트 뉴튼/이종인 옮김, 을유문화사, 2004) 264쪽


일부러 그것을 찾아다닌 것도 아닌, 다만 일상의 기록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 일부러 찾아다니지도 않은, 다만 늘 있는 일을 쓸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 일부러 찾아다니지도 않은, 다만 하루를 적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 일부러 찾아다니지도 않은, 다만 늘 하는 일을 옮길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잃어버린 풍경 1》(이지누, 호미, 2005) 6쪽


사건사고를 피할 수 없고, 그에 따르는 기록이 있는데

→ 온갖 일을 거스를 수 없고, 이를 적은 글이 있는데

→ 삶에서 달아날 수 없고, 이를 옮긴 글이 있는데

《기계비평》(이영준, 현실문화연구, 2006) 241쪽


그의 충실한 오른팔 ‘잭 장관’의 실없는 날들의 기록이다

→ 그이 살뜰한 오른팔 ‘잭 씨’가 덧없이 산 날을 적었다

→ 그분 살뜰한 오른팔 ‘잭 씨’가 속없이 지낸 날을 담았다

→ 그이 살뜰한 오른팔 ‘잭’이 보낸 바보 같은 날을 그렸다

《각하!》(마치다 준/김은진 옮김, 삼인, 2007) 17쪽


한반도 미기록종 1종을 비롯해

→ 우리 땅 처음인 하나를 비롯해

→ 우리나라에서 처음 본 하나에

→ 우리가 아직 안 적은 하나에

《인천 외래식물도감》(송홍선, 풀꽃나무, 2008) 5쪽


직접 먹어 보고 그 맛까지 기록했지

→ 몸소 먹어 보고 그 맛까지 적었지

→ 스스로 먹어 보고 그 맛까지 남겼지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윤희진, 책과함께어린이, 2009) 93쪽


독서일기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하게 해도 좋으나

→ 책하루는 마음대로 적어도 되나

→ 책하루쓰기는 마음껏 쓸 수 있으나

《독서는 힘이 세다》(임영규, 다산북스, 2005) 215쪽


그 사람의 항로가 블랙박스에 기록되어 있다

→ 그 사람이 다닌 길이 까만집에 적혔다

→ 그 사람이 다닌 곳이 갈무리집에 있다

《꿘투》(이장근, 삶이보이는창, 2011) 42쪽


내 5년간의 기록이다

→ 내 다섯 해를 적었다

→ 내 다섯 해를 담았다

→ 내 다섯 해를 그렸다

《백수 선생 상경기》(백성, 문학의전당, 2015) 5쪽


그리스인들은 이 새롭게 획득한 기술을 이용하여 전승문학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 그리스사람은 이 새롭게 얻은 솜씨를 살려서 오래말꽃을 적었는데

→ 그리스사람은 이 새롭게 배운 솜씨를 살려서 옛이야기를 남겼는데

→ 그리스사람은 이 새롭게 받아들인 솜씨를 살려서 옛말꽃을 옮겼는데

《고대 그리스사》(토머스 R.마틴/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2015) 96쪽


여타의 사실은 많은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 다른 곳은 여러 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이밖에 여러 글자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글의 발명》(정광, 김영사, 2015) 30쪽


이 글에 다 기록하지 못한 것도 있다

→ 이 글에 다 적지 못한 얘기도 있다

→ 이 글에 다 담지 못한 얘기도 있다

→ 이 글에 다 밝히지 못한 얘기도 있다

→ 이 글에 다 옮기지 못한 얘기도 있다

《언니, 같이 가자!》(안미선, 삼인, 2016) 8쪽


지배했던 유럽의 관료들이 남긴 기록에 많이 나와요

→ 다스렸던 하늬 벼슬아치가 남긴 글에 자주 나와요

→ 다스린 하늬녘 벼슬아치가 쓴 글에 제법 나와요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김현주·권송이, 사계절, 2016) 40쪽


기록에 의지하면 마늘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양념이다

→ 글을 보면 마늘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양념이다

→ 글을 살피면 마늘은 가장 오래된 양념이다

→ 글을 따지면 마늘은 가장 오래된 양념이다

→ 글로는 마늘은 가장 오래된 양념이다

→ 남은 글로는 마늘은 가장 오래된 양념이다

→ 글로 남기로는 마늘은 가장 오래된 양념이다

《우리 음식의 언어》(한성우, 어크로스, 2016) 337쪽


우정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은

→ 띠앗에 얽힌 글은 거의

→ 동무를 말하는 글은 거의

→ 벗을 밝히는 글은 거의

→ 사귀는 길을 쓴 글은 거의

→ 도타움을 짚는 글은 거의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메릴린 옐롬·테리사 도너번 브라운/정지인 옮김, 책과함께, 2016) 15쪽


지렁이류는 우리나라에 100여 종이 기록되어 있다

→ 지렁이는 우리나라에 100가지 남짓 알려졌다

→ 지렁이는 우리나라에 100가지 즈음 있다고 한다

《화살표 물속생물 도감》(권순직·전영철·김명철, 자연과생태, 2017) 43쪽


매년 첫날, 1년간의 포부를 정해 잊지 않도록 기록해 두고 있다

→ 해마다 첫날, 한 해 꿈을 잡아서 잊지 않도록 적는다

→ 새해 첫날, 올해 뜻하는 바를 세워서 잊지 않도록 남긴다

《무심하게 산다》(가쿠타 미쓰요/김현화 옮김, 북라이프, 2017) 119쪽


이상이 나의 밥짓기에 얽힌 지난 십 년간 소동의 기록이다

→ 여기까지 내 밥짓기에 얽힌 지난 열 해를 적었다

→ 이제까지 내 밥짓기에 얽힌 지난 열 해를 담았다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히라마쓰 요코/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2017) 108쪽


3625명의 공부 습관을 관찰하고 기록한 보고서다

→ 3625분이 배우는 몸짓을 지켜보고 적은 글이다

→ 3625님이 어떻게 배웠나를 살펴서 남긴 글이다

《행여 공부를 하려거든》(정경오, 양철북, 2018) 5쪽


이제 관찰한 내용과 새로 알게 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길 거야

→ 이제 살펴본 모습과 새로 안 이야기를 글로 남기려 해

→ 이제 살펴본 대목과 새로 안 이야기를 글로 옮기려 해

《어서 와, 여기는 꾸룩새 연구소야》(정다미·이장미, 한겨레아이들, 2018) 33쪽


라틴어의 영향이 짙은 고프랑스어로 기록되었다

→ 라틴말 물이 짙은 옛 프랑스말로 옮겼다

→ 라틴말에 짙게 물든 예전 프랑스말로 적었다

《외국어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혜화1117, 2018) 46쪽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만년에 기록한다

→ 믿음이 들지 않았다고 늙마에 적는다

→ 믿기지 않는다고 끝삶에 쓴다

《마르틴 루터》(도쿠젠 요시카즈/김진희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8) 33쪽


1.5미터 거리에서 본 공주님. 신기록

→ 1.5길 떨어져 본 꽃님. 새길

→ 1.5길 앞에서 본 꽃아씨. 새걸음

→ 1.5길 곁에서 본 꽃순이. 새롭다

《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 1》(이와모토 나오/박소현 옮김, 소미미디어, 2018) 90쪽


겐보 선생은 비길 데 없는 기록광이었다

→ 겐보 님은 비길 데 없는 쓰기쟁이였다

→ 겐보 님은 비길 데 없이 엄청 쓰셨다

→ 겐보 님은 어마어마하게 적으셨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사사키 겐이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9) 181쪽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별 전체에서 빼앗은 막대한 에너지를

→ 남은 글을 보면, 별에서 통째로 빼앗은 엄청난 기운을

→ 글에는, 별에서 통째로 빼앗은 엄청난 기운을

《드래곤볼 슈퍼 10》(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19) 9쪽


일반 놀이터와 달리 상주하는 숙련된 플레이워커가 이 모든 상황을 꼼꼼히 살피고 기록하고 사고하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 여느 놀이터와 달리 참한 놀이지기가 머물면서 이 모든 흐름을 살피고 남기고 생각하고 나누기 때문이다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편해문, 소나무, 2019) 175쪽


나무의 나이테는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까

→ 나무는 테에 오늘을 어떻게 새길까

→ 나이테에는 오늘을 어떻게 남길까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함민복, 문학동네, 2019) 78쪽


이 책은 내 손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에 대한 기록이에요

→ 이 책은 우리 손이 들려주는 여러 가지 뜻을 적었어요

→ 이 책은 우리 손이 어떠한가를 여러 가지로 담았어요

《나의 손》(푸아드 아지즈/권재숙 옮김, 봄개울, 2020) 1쪽


지금은 기록 문화가 없던 민족들까지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 이제는 남긴 글이 없던 겨레까지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 오늘날은 글살림이 없던 겨레까지 서로 이야기를 편다

《세계의 문자, 설형 문자에서 이모티콘까지》(비탈리 콘스탄티노프/이미화 옮김, 지양사, 2020) 10쪽


새를 바라보고 기록하다 보니 차츰 다른 생물과 자연환경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 새를 바라보고 남기다 보니 차츰 다른 숨결과 숲들바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 새를 바라보고 옮기다 보니 차츰 다른 목숨과 멧들내숲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라지지 말아요》(방윤희, 자연과생태, 2021) 4쪽


멸종위기 생물을 기록하는 이 작업도 개인적으로 의미와 보람이 있을 것 같아

→ 흔들목숨을 담는 이 일도 내 나름대로 뜻과 보람이 있을 듯해

→ 흔들꽃을 옮기는 이 일도 이래저래 뜻과 보람이 있으리라 봐

《사라지지 말아요》(방윤희, 자연과생태, 2021) 4쪽


올해는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위협이 백두대간 곳곳에서 나타난 해로 기록될 만하다

→ 올해는 아슬날씨 탓에 한멧줄기 곳곳에서 숲이 흔들렸다고 할 만하다

→ 올해는 얄궂날씨 탓에 한줄기 곳곳에서 숲터가 아슬했다고 할 만하다

《바람과 물 3 도망치는 숲》(김희진 엮음, 여해와함께, 2021) 33쪽


‘미물일기’라는 제목은 제가 일상에서 작은 생명들과 마주치던 순간을 기록한 일기에서 따왔습니다

→ ‘작은하루’라는 이름은 제가 작은이웃과 마주치던 하루를 적은 글에서 따왔습니다

→ ‘작은노래’라는 이름은 제가 작은숨결과 마주치던 때를 남긴 하루글에서 따왔습니다

《미물일기》(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 8쪽


시공간을 가로질러 내 안에 남은 인상들을 다양한 도구로 기록하는 모든 행위가 나의 예술이다

→ 나는 삶을 가로질러 마음으로 느낀 빛살을 여러모로 옮기면서 반짝인다

→ 나한테 그림이란, 삶자락을 가로질러 마음에 남은 숨결을 여러모로 담는 길이다

《나무 마음 나무》(홍시야, 열매하나, 2023) 13쪽


오목눈이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꽤 고됐습니다

→ 오목눈이 살림을 지켜보고 적는 일은 꽤 고됐습니다

《도시 오목눈이 성장기》(오영조, 자연과생태, 2023) 5쪽


전리품이야! 밥의 기록이 아니고!

→ 모가치야! 밥자국이 아니고!

→ 뺏었어! 밥자취가 아니고!

《던전밥 14》(쿠이 료코/김민재 옮김, 소미미디어, 2024)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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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가사상태



 가사 상태에 돌입했다 → 잠들었다 / 잠길에 들었다

 가사 상태여서 반응하지 않는다 → 쓰러져서 대꾸하지 않는다


가사상태 : x

가사(假死) : 1. [의학] 생리적 기능이 약화되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 정신을 잃고 호흡과 맥박이 거의 멎은 상태이나, 동공 반사만은 유지되므로 죽은 것이 아니며 인공호흡으로 살려 낼 수 있다 2. [생물] 일부 벌레들이 위험에 닥쳤을 때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이르는 말

상태(狀態) : 사물·현상이 놓여 있는 모양이나 형편



  얼핏 죽은 듯 보인다면 ‘설죽다·살죽다’나 “거의 죽다·죽은 듯하다”라 할 만합니다. ‘잠들다·자다·잠빛·잠길·잠꽃·잠든몸’이라 해도 어울려요. ‘넋나가다·넋잃다·넋뜨다’나 ‘넋비다·넋가다·넋없다’라 할 수 있고, ‘얼비다·얼뜨다·얼없다’나 ‘힘없다’라 할 수 있어요. ‘꽈당·쓰러지다·자빠지다’라 할 수도 있습니다. ㅅㄴㄹ



물에 빠져 가사상태가 된 인간에게 기생할 때도 있어요

→ 물에 빠져 설죽은 사람한테 들러붙을 때도 있어요

→ 물에 빠져 죽은 듯한 사람한테 붙을 때도 있어요

《충사 9》(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8) 150쪽


중앙 기억 영역이 제어 불능에 빠졌다. 이른바 가사 상태다

→ 가운골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른바 거의 죽었다

→ 꼭두골을 손쓸 수 없다. 이른바 잠든 듯하다

《지구빙해사기 하》(다니구치 지로/장지연 옮김, 미우, 2016) 141쪽


동한기에는 대부분의 동물세계가 가사(假死) 상태나 동면에 빠져든다

→ 겨울철에는 짐승나라가 거의 설죽음이나 겨울잠에 빠져든다

→ 겨울에는 짐승누리가 온통 죽은듯 보이거나 겨울잠에 빠져든다

《아나스타시아 10 아나스타》(블라지미르 메그레/한병석 옮김, 한글샘, 2018) 13쪽


가사상태였던 검돌이가

→ 넋잃은 칼돌이가

→ 잠든 칼돌이가

《던전밥 14》(쿠이 료코/김민재 옮김, 소미미디어, 2024)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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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밥 14 - S코믹스, 완결 S코믹스
쿠이 료코 지음,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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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5.5.

다듬읽기 211


《던전밥 14》

 쿠이 료코

 김민재 옮김

 소미미디어

 2024.5.3.



  《던전밥 14》(쿠이 료코/김민재 옮김, 소미미디어, 2024)은 동생을 되찾으려고, 동생하고 한몸을 이룬 미르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줄거리로 매듭을 짓습니다. “먹으면서 살리고 나눈다”는 뜻을 ‘고기밥’으로 드러내는 셈일 텐데, 가만히 보면, 풀꽃나무는 ‘살덩이’를 흙을 거쳐 받아들인다고 여길 만합니다.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몸을 내려놓으면 “흙으로 돌아가”는데, 이 흙이란 풀꽃나무를 살리는 밑거름이에요. 사람과 짐승과 벌레는 풀꽃나무를 밥으로 삼으니, 서로 몸을 갈마드는 얼개입니다. 더 살피면, 사람·짐승·벌레와 풀꽃나무는 하늘(바람·숨)하고 해하고 비를 함께 주고받습니다. 같은 하늘에서 같은 해와 같은 비(물)를 맞아들입니다. 다만, 《던전밥》은 이런 숲길을 줄거리로 다루지는 못 합니다. 놀이(게임)처럼 한 판씩 깨는 줄거리로 머물다가 끝납니다. 그나저나 일본책이라지만 일본말은 우리말로 옮겨야 할 텐데 싶군요.


#ダンジョン飯 #DeliciousinDungeon #九井諒子 #くいりょうこ


ㅅㄴㄹ


처음부터 악마를 퇴치할 목적으로 그런 소원을 빌었던 거죠?

→ 처음부터 그놈을 걷어낼 뜻으로 그렇게 빌었죠?

→ 처음부터 까만놈을 깰 셈으로 그처럼 빌었죠?

41쪽


역시 아무 말 마세요.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니까요

→ 그냥 아무 말 마세요. 그런대로 잘 풀렸으니까요

41쪽


어차피 모험자는 폐업해야 하잖아

→ 뭐 나들이는 그만둬야 하잖아

→ 그래 길꽃은 끝내야 하잖아

43쪽


무교여도 인육은 싫어

→ 그냥 사람고기 싫어

→ 안 믿어도 사람 싫어

46쪽


좀더 서민적인 거 말야

→ 좀더 수수하게 말야

→ 좀더 투박하게 말야

65쪽


수타면은 진짜 맛있다잖아

→ 손국수는 참말 맛있다잖아

65쪽


다 먹히고 싶었을 뿐인 것 같아. 접시 위에 남은 마지막 한 입. 도마 위의 야채 부스러기. 그게 나지

→ 다 먹히고 싶었을 뿐인 듯해. 접시에 남은 마지막 한 입. 도마에 남은 풀부스러기. 그냥 나지

73쪽


내가 완전히 잔반이 되었단 것을 깨달았을 때

→ 내가 아주 남은밥이 된 줄 깨달았을 때

→ 내가 그저 나머지가 된 줄 깨달았을 때

74쪽


소화기관은 깨끗하게 씻어야 하거든

→ 삭임길은 깨끗하게 씻어야 하거든

→ 뱃속은 깨끗하게 씻어야 하거든

90쪽


전리품이야! 밥의 기록이 아니고!

→ 모가치야! 밥자국이 아니고!

→ 뺏었어! 밥자취가 아니고!

113쪽


맛 같은 건 두 번 다시 모를 줄 알았는데

→ 맛은 다시는 모를 줄 알았는데

→ 맛이란 다시 모를 줄 알았는데

131쪽


파린의 소생은 성공하지 못할지도 몰라

→ 파린은 되살지 못할지도 몰라

→ 파린은 다시살지 못할지도 몰라

153쪽


식(食)이란 삶의 특권이란다

→ 끼니란 살아가는 힘이란다

→ 밥이란 살아가는 빛이란다

178쪽


가사상태였던 검돌이가

→ 넋잃은 칼돌이가

→ 잠든 칼돌이가

18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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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32 사이좋게 새기는 새벽

― 배달말을 갈무리한 낱말책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얼마 앞서까지 “분류(分類) : 1. 종류에 따라서 가름. ‘나눔’으로 순화”처럼 풀이했으나, 2024년에는 “분류(分類) : 1. 종류에 따라서 가름.”에서 자릅니다. 뒷걸음을 치는 뜻풀이입니다. 예전에는 우리말로 쉽게 고쳐쓰는 길을 이따금 밝히기도 했으나, 슬그머니 이 대목을 덜어내더군요.


  어른 가운데 한자말 ‘분류’를 굳이 찾아볼 사람은 아마 없을 만합니다. 뒷걸음 뜻풀이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만합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다음 뜻풀이로 엿볼 수 있듯, 매우 엉성하고 엉터리이기까지 합니다.


가르다 : 1.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3. 옳고 그름을 따져서 구분하다

나누다 : 1.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르다 2.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구분하여 분류하다 4. 몫을 분배하다 5. 음식 따위를 함께 먹거나 갈라 먹다

구분(區分) :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를 몇 개로 갈라 나눔


  우리말 ‘가르다’를 ‘나누다’로 풀이하는데, ‘나누다’는 ‘가르다’로 풀이합니다. 게다가 ‘가르다·나누다’ 뜻풀이에 한자말 ‘구분’에 ‘분배·분류’를 넣고, 한자말 ‘구분 = 갈라 나눔’으로 풀이합니다. 겹말풀이에 돌림풀이요, 틀리고 어긋난 풀이입니다.


  여러 이웃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찾아옵니다. 우리나라 이야기를 눈여겨볼 뿐 아니라, 우리말을 익히는 이웃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누리는 길잡이로 삼을 낱말책은 얼마나 있을까요?


  낱말책은 낱말을 더 많이 실어야 하지 않습니다. 새로 펴내는 낱말책이라 하더라도, 새로 태어나는 낱말을 미처 못 담습니다. 낱말책은 “더 많이 담기”가 아닌 “제대로 담기”로 나아가야 알맞고 알차며 아름답습니다.


  낱말책을 들추는 어른은 드물지만, 낱말책을 들추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많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늘 낱말책을 들출 수밖에 없습니다. 종이 낱말책을 들추든, 누리그물에서 찾아보든, 말뜻과 말결과 말씨를 가장 자주 찾아보는 사람은 어린이와 푸름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낱말책이건, 언제나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면서 뜻풀이를 가다듬고 보기글을 붙이고 쓰임새를 밝히면서 알려야 알맞습니다. 열 살 어린이가 읽으면서 못 알아들을 만한 뜻풀이라면, 낱말책이 틀렸거나 엉성하거나 모자라다는 뜻입니다.


  또한, 낱말책은 새말을 너무 많이 실으려고 애써야 하지 않습니다. 말글지기가 엮거나 지은 새말이 아닌, 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새말이 아닌, 모든 사람이 저마다 제 삶터와 마을과 보금자리에서 문득 생각을 빛내고 밝혀서 스스로 새말을 짓는 징검다리 노릇을 할 낱말책입니다.


산복(山腹) : 산에 가파르게 기울어져 있는 곳 = 산비탈


  한자말 ‘산복’이 따로 있는 줄 뒤늦게 알았습니다. 부산에 ‘산복도로’가 있는 줄 익히 알되, 부산에만 있는 길로 여겼는데, 마산에도 ‘산복도로’가 있더군요. ‘산복도로’라는 말은 인천·경기나 강원에서는 그리 안 쓴다고 느낍니다. 부산·경남에서 흔히 쓰는 듯합니다. “비탈에 낸 길”이란 뜻이고, 일본 한자말입니다. 그냥 일본말이라 해도 됩니다.


  인천에서는 ‘고개·고갯길’이나 ‘언덕·언덕길’이라 합니다. 고장마다 비슷하면서 다를 텐데, ‘고개·언덕’을 흔히 쓰고 ‘재·잿길’이나 ‘비알·비탈’하고 ‘비알길·비탈길’을 함께 씁니다. ‘새재·질마재·싸리재’ 같은 ‘재’가 일본말 ‘산복도로’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낱말책은 마을길이나 고갯길을 어느 만큼 제대로 짚으면서 알뜰히 풀어낼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여러 고장에 제법 뿌리내렸다고 여기는 이름이나 말씨라 하더라도, 참하고 상냥하게 다독여서 풀어내는 길을 들려줄 수 있는 낱말책이 있는지 되새길 일입니다.


 마음소리인 말


  우리는 마음을 소리에 얹어서 말로 나타냅니다. ‘마음소리 =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말’은 말밑이 같습니다. ‘마’가 밑동입니다. 이 ‘마’는 ‘마녘’을 가리키기도 하고, ‘많다’를 이루는 밑동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는 ‘무’하고 잇닿으면서 ‘말·물’은 말밑이 얽힙니다.


  노래하듯 흐르는 가없는 물처럼, 노래하듯 나타내고 나누는 가없는 말입니다. 냇물도 바닷물도 샘물도 늘 싱그럽고 맑게 솟아나고 흐르고 일렁이고, 마음에 담는 말도 늘 새롭고 밝게 솟아나고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낱말책을 열 살 어린이가 쉽게 읽고 깨우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듯이, 물처럼 노래하는 말로 퍼지고 깃들려면, 어려운 말이 아닌 살림살이를 사랑으로 가꾸는 숨결이 흐르는 숲빛말일 노릇입니다. 책상맡에서 엮는 말로는 먹물에 그칩니다. 머리를 써서 여미는 말로는 어깨동무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이가 “어진 사람”인 ‘어른’ 곁에서 살림빛을 숲빛으로 물든 사랑으로 물려받을 적에 비로소 말답습니다. 아이가 “사랑으로 씨앗을 품은 사람”인 ‘어버이’ 품에서 보금자리를 돌보는 손길로 익힐 적에 비로소 말답습니다.


  모든 말은 살림을 사랑으로 짓는 마음을 품은 숲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말이 아닙니다. 풀꽃나무와 들숲바다가 어우러진 오늘 이곳에서 해바람비를 머금는 사람이 마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적에 비로소 말 한 마디가 태어났습니다. 딱딱하거나 어려운 말은 모두 “사랑도 살림도 없는 부스러기(지식·정보)”이기 일쑤라서, 그저 외우지 않고서는 모릅니다. 외워야 쓸 수 있는 부스러기로는 생각을 못 밝히고 못 빛냅니다. 사랑을 짓는 어른과 사랑을 심는 어버이가 함께 숲빛으로 다독이고 달래어 일군 말이기에, 오래오래 입에서 입으로 이어받고 몸에서 몸으로 물려받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퍼지는 말로 숨빛을 품었습니다.


 사이좋게 새기는 새벽


  사람은 하늘하고 땅 사이에서 삶을 누립니다. 사람 곁에는 새가 있어서 노래를 베풀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슬기를 배웁니다. 사람은 사랑을 스스로 심고 가꾸는 씨앗으로 생각을 짓는 마음을 펴기에 그야말로 사람답습니다. 긴긴 꿈을 누리는 고요한 밤을 거치는 고치에서 깨어나야 날개돋이를 하는 애벌레입니다. 애벌레는 날개돋이를 거쳐서 나비로 거듭납니다. 사람은 작은 씨알로 숨을 얻고서 긴긴 날을 꿈으로 그린 끝에 환하게 태어나서 아기라는 몸을 입습니다.


  밤이 걷히면서 새벽이 밝듯, 고요히 앞꿈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말로 생각을 엽니다. 사람으로서 새랑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을 말소리로 얹어서 낱말책을 여민다면, 어른은 어른스럽고 아이는 눈을 밝히면서 이 낱말꾸러미로 기쁘게 말빛을 살펴볼 만합니다.


  후다닥 읽고서 외우려 한다면, 외우지도 못 하지만, 마음에 남지도 않습니다. 느긋느긋 읽으면서 나긋나긋 새길 적에, 비로소 온마음으로 스며들면서, 생각이 깨어나는 빛을 느낄 만합니다.


  차근차근 곱씹고 되새기면서, 즐겁게 손보고 더하고 다듬고 고치고 살피는 매무새로, 우리말을 이제 처음으로 익힌다고 여기면서 눈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을 알찬 낱말책을 곁에 놓는다면, 하루하루 자라나고 말결을 느끼면서, 차곡차곡 북돋우는 말살림을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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