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곁으로

 


  아이들이 자면서 크게 숨을 쉰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도 곯아떨어졌다가 깊은 밤에 문득 눈을 뜨고는 조용히 일어나 일을 하면서 아이들 숨소리를 듣는다. 깊은 밤이 아니라면 홀가분하게 일을 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잘 적에 나도 아이들 사이에서 새근새근 자면서 틈틈이 이불깃 여미어 주면 훨씬 즐겁지만, 어버이로서 내 일감을 잘 다스리고 건사해야 집살림을 꾸릴 수 있다. 아이들한테 살짝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잘 봐주리라 믿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잠자리에서 나지막하게 읊는다. “아버지, 일 다 하고 올 거지?” 그럼, 일 다 마치고 너희 둘 사이에 누워서 토닥토닥 가슴 두들기고 이불깃도 여미어 주지. 아무렴. 일하는 틈틈이 이불깃 여미어 주기도 하잖니. 뽀뽀도 하고. 어제 하루는 고흥에 모처럼 눈송이 쌓여서 즐겁게 놀았지? 꿈속에서도 눈놀이를 즐기렴.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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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7 05:35   좋아요 0 | URL
아이가 그새 많이 컸네요..~~^^

숲노래 2014-02-07 09:23   좋아요 0 | URL
날마다 무럭무럭 새록새록 자랍니다~~
 

만화가와 방송작가 (강경옥 님 《설희》 표절을 생각한다)

 


  만화가 강경옥 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설희》와 얽힌 말썽거리를 이야기하면, 내 이야기를 듣는 이웃이 으레 한 마디를 한다. ‘방송작가를 낮추어 보느냐?’ 하고.


  그럴 까닭이 있나. 방송작가를 낮추어 보아야 할 까닭이 없다. 다만, 나는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고 살아왔다. 스무 살에 제금내어 마흔 살에 이른 오늘까지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연속극이나 이런저런 방송을 하나도 안 본다. 방송에 나오는 배우나 연예인이나 가수 이름을 거의 다 모른다. 서태지와 정태춘과 안치환을 끝으로 음반을 더는 사지 않았고, 군대에서 S.E.S를 처음 보았고, 전역하고서 핑클을 보았다. 방송에서 흐르는 노래는 늘 모르는 채 살아간다.


  텔레비전이 없고 방송을 들여다보는 일이 없으니, 방송작가라는 사람을 하나도 모르는 채 살아왔을 뿐이다. 방송작가가 어떤 글을 쓰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방송작가도 똑같이 ‘글꾼’이요 ‘글쟁이’이며 ‘글빛’을 가꾸는 사람인 줄 안다.


  만화를 좋아하거나 즐겨읽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만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만화책을 손수 장만해서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만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사진을 좋아하는 분이라 하더라도 사진 이야기를 잘 나누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사진책을 사지 않는 사람’하고는 사진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친다. ‘사진을 좋아한다’는 말은 ‘내가 찍는 사진만 좋아한다’인가, 아니면 ‘내가 찍는 사진뿐 아니라 이웃들이 찍는 사진을 함께 좋아한다’인가 궁금하다.


  ‘책을 좋아한다’는 말도 그렇지. ‘책을 좋아한다’는 말은 ‘내가 읽는 책만 좋아한다’인가, 아니면 ‘내가 읽는 책뿐 아니라 이웃들이 읽는 책을 함께 좋아한다’인가 궁금하다. 곧, 만화책을 안 읽더라도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함께 읽고 느끼면서 나눌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 가운데 아이한테 만화책을 사서 읽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한국에서는 ‘대입시험을 바라며 입시교육 지식을 집어넣어 주는 학습만화’라고 하는 ‘만화라 할 수 없는 학습지’를 만화인 듯 잘못 알고 ‘학습만화’만 사 주는 어버이는 대단히 많다. 학습만화는 책마을에서 되게 크다. 돈벌이가 무척 쏠쏠하다. 지난날,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 밑이던 푸름이와 어린이일 적에는 학습만화가 거의 없었고, 그무렵에는 ‘그냥 만화’만 있었다. 이리하여, 그무렵 아이들은 ‘만화’를 즐겼고, 그무렵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만화를 그려서 베풀어 주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만화를 그려서 베풀지 않고 ‘학습만화’를 그려서 돈벌이를 하는 한편,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몫을 맡기까지 한다.


  한국 사회에서 만화 한길을 서른 해쯤 걷기란 참 팍팍하고 고달프다 할 만하다. 학습만화를 안 그리면서 만화로 밥벌이를 하기란 얼마나 벅찰는지 돌아볼 만하다. 게다가, 만화가로 이름을 제법 얻은 뒤 대학교수 노릇을 안 한다면, 만화 한길을 서른 해 씩씩하게 걸어가며 예나 이제나 즐겁게 ‘창작’을 한다면, 이러한 만화가는 만화가일 뿐 아니라 ‘장인’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하리라 생각한다.


  만화책 《설희》와 얽힌 일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이번 일은 ‘만화책 표절’로 그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 나라에서 만화가 문화요 예술이며 삶이고 사랑이 되도록 아름답게 한길을 걸어온 사람 뒷통수를 후려치는 일이라고 느낀다. 방송작가를 낮추어 보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른 만화가가 《설희》를 표절했어도 나는 똑같이 말하리라. 다른 소설가가 《설희》를 표절했어도 나는 똑같이 말하리라.


  만화 작품을 함부로 표절해서 연속극을 찍는 일이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만화를 우습게 여기면서 만화 작품을 표절하는 짓이란 얼마나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인가. 그네들이 우습게 여기는 만화이면서, 왜 만화를 표절하지?


  우습게 여기니까 만화를 표절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네들 스스로 우스운 사람이기 때문에 만화를 함부로 표절하는구나 싶다.


  사진가 마이클 케냐 님은 이녁 사진을 표절한 한국 사진작가를 보며 ‘무척 슬프다’고 말했다. 이녁 사진을 보면서 솔섬을 아름답게 찍으려고 애쓴 수많은 ‘사진 즐김이’를 볼 적에는 ‘무척 기쁘다’고 말했지만, 표절한 사진작가한테는 ‘무척 슬프다’고 말한다.


  나도 이런 마음이다. 표절한 사람을 볼 적에는 무척 슬프다. 나 또한 사진작가로 일하기에 느끼는데, 내 사진을 표절한 누군가를 보면 참 슬프다. 내 사진을 보면서 헌책방이라는 곳에서 아름다운 빛을 담아내는 사진을 찍는 이웃을 만나면 무척 기쁘다. 배움과 표절은 똑같거나 다르다. 배움과 표절은 똑같이 바라보면서도 다른 마음이다. 배움이란 즐거우면서 고맙게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표절이란 이웃을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거나 들볶거나 짓밟으면서 스스로 바보가 되는 마음이다.


  방송작가들이 만화가들을 괴롭히는 일이란, 방송작가 스스로 바보스러운 길로 접어드는 일이 될 뿐이다. 왜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하지 못하는가? 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얼싸안으려 하지 못하는가?


  나는 〈겨울왕국〉이라는 만화영화를 보지 못했지만(시골에는 극장이 없으니까), 이 영화를 본 어느 분이 말하기를, 영화 끝자락에 《눈의 여왕》에서 ‘모티브’를 얻어 새롭게 만든 작품이라고 밝히는 자막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 만화책 《설희》에서 ‘클리셰’를 얻어 만든 연속극이라고 밝히는 일이 부끄러울까? 하나도 안 부끄럽다. 자랑이 되면 자랑이 되지, 부끄러울 까닭이 없다. 우리는 모두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광해군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면 부끄러운가? 안 부끄럽다. 스스로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된다.


  이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작품은 ‘배움’으로 태어난다. 배우면서 새로운 작품을 빚을 수 있다. 배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훔친다면, 이는 ‘표절’이 될 뿐이고, 표절이란 도둑질이다. 표절을 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새롭게 ‘내 작품 만들기’를 하지 못한다.


  만화가도 방송작가도 모두 즐겁게 창작할 수 있기를 빈다. 만화가도 방송작가도 서로를 아끼고 섬길 뿐 아니라 사랑하고 보살피면서 새로운 작품을 아름답게 창작할 수 있기를 빈다.


  배우는 사람은 늘 ‘고맙다’고 말한다. 배운 사람은 늘 ‘사랑한다’고 말한다. 훔치는 사람은 언제나 아무 말이 없다. 훔친 사람은 언제나 아무 소리가 없다.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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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딸기 흰딸기
유니타 유미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33

 


서로를 왜 좋아하나요
― 붉은딸기 흰딸기
 우니타 유미 글·그림
 최미애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9.11.25

 


  풀잎을 따서 먹습니다. 풀잎에서는 풀내음이 나서 싱그럽습니다. 때때로 꽃잎을 따서 먹습니다. 꽃잎에서는 꽃내음이 나서 즐겁습니다. 두릅은 싹을 칼로 베어서 먹습니다. 찔레는 싹을 두 손으로 똑 꺾어서 먹습니다.


  풀을 먹는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물을 먹는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물’이란 ‘풀’인 줄 모르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무엇보다, 무치거나 볶거나 삶거나 데치거나 해야 나물인 줄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리저리 손질해서 먹기도 하는 풀이지만, 생긴 모습 그대로 흙이 묻었어도 흙까지 함께 먹는 풀입니다.


  왜냐하면, 풀포기는 흙에 뿌리를 내려서 흙내음으로 자라나거든요. 풀을 먹든 흙을 함께 먹든 언제나 풀을 먹는 셈이기도 합니다.


- ‘서로 이름은 반대인 쪽이 어울릴 것 같지만, 아기 때는 완전 둘이 똑같았다. 훗날 이렇게 될 줄은 엄마도 몰랐을 것이다.’ (9쪽)
- “그러는 란도 말이지, 내가 좋다는 남자는 꼭 느끼하다고 그러잖아. 그건 너도 얼굴을 본다는 얘기 아니겠어?” “궤변론자!” “그럼 란은 어떤 사람이 좋은데?” “얘는 그런 얘기 잘 안 하더라구.” “그, 그냥 뭐. 생고기를 먹을 것 같은 느낌의.” “동물원 가라. 동물원. 어쩐지 네가 불쌍해지려고 한다.” “힘은 나보다 센 사람이 좋고.” “맹수 코너에나 가 봐!” (17쪽)

 


  따사로운 마음씨로 맑게 웃는 이웃을 좋아합니다. 얼굴이 이쁘장하기에 이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을 잘 하거나 손재주가 뛰어나서 이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거나 자가용을 굴리니까 이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씨인 터라 이웃을 좋아합니다.


  가난한 이웃이기에 안 좋아하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못생긴’ 얼굴이거나 키가 작대서 이웃을 안 좋아하지 않습니다. 얼굴이나 몸매가 무에 대수이겠습니까. 눈을 감고 가만히 헤아려요. 눈을 감고 이웃을 목소리로만 헤아려요. 귀도 닫고 이웃을 손을 뻗어 살며시 어루만지면서 헤아려요. 마치 내가 헬렌 켈러 같은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몸을 그리면서 이웃을 마주해요.


  이웃한테서 무엇을 바라는지 생각해요. 이웃하고 무엇을 나누고 싶은지 생각해요. 이웃하고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해요.


- “남자답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는 건 여자다운 녀석뿐이라고.” (29쪽)
- “그 녀석은 뇌까지 근육으로 돼 있지만, 마음은 마시멜로야. 멍청아!” ‘으이구. 우리 귀염둥이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애송이가.’ (32∼33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붉은딸기 흰딸기》(학산문화사,2009)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짝꿍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랑하는 짝꿍과 어떤 살림을 꾸릴 적에 즐겁게 웃을 만한가요.


- ‘이유는 사소한 것이지만, 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51쪽)
- ‘이건 입맛이 어떻고 저떻고의 차원이 아니야.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의 혀는. 하지만 내가 만드는 것보다 영양이라든가 그런 걸 제대로 생각해서 만드는 데다가, 무엇보다 기쁘니까 전부 먹는다.’ (89∼90쪽)


  밥은 영양성분으로 따져서 먹지 않습니다.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 풀잎 영양성분을 살피지 않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웃으면서 먹습니다. 밥 한 그릇을 비우면서 즐겁고, 밥 한 그릇을 차리면서 기쁩니다. 아이들이 밥그릇 삭삭 비비면서 “잘 먹었습니다!” 하고 외칠 적에 몹시 고맙습니다. 잘 먹고 잘 노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은 영양성분이나 화학성분으로 따지지 않아요. 사랑을 분자배열이나 숫자로 따지지 않아요. 사랑을 수학식으로 분석하는 학자가 있을까요? 있다면, 이런 학자는 얼마나 따분할까요. 맑게 웃고 환하게 노래하면 사랑인데, 뭣하러 책상맡에서 펜대를 붙잡고 지겨운 일을 할까요.


  노랗게 피어나는 유채꽃을 똑 따서 입에 넣어요. 보들보들 넓적한 유채잎을 톡 끊어서 입에 넣어요. 유채줄기는 겉껍질을 벗겨 잘근잘근 씹어요. 속줄기만 먹다가 겉껍질을 안 벗기고 그냥 먹어 보기도 해요. 예전에는 워낙 배고파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데, 요새는 모두들 배가 부른 탓인지 유채밭을 보고 ‘예쁘네, 사진 찍어야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어요. 유채밭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이웃을 만나기 무척 어려워요.


- “카오리 씨가 아까 했던 말 잊지 마.” “네?” “시공주의 고객까지도 배려하는 마음. 사실은 당연한 거지만, 일을 계속하다 보면 잊어버릴 때가 있으니까. 늘 기억하면 좋을 거야.” “네.” (98∼99쪽)
- ‘나도 불경기를 숱하게 겪어 봤다구! 꽤 멧집이 좋거든? 우습게 보지 말라구, 이 회사!’ (106쪽)


  만화책 《붉은딸기 흰딸기》는 서로를 왜 좋아하는가 하는 실타래를 살며시 풀어서 보여줍니다. ‘딸기가 희다고?’ 하면서 ‘거짓말 하지 마!’ 하고 따질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딸기꽃은 하얗습니다. 딸기알은 붉습니다. 그러니까, 붉은딸기는 ‘열매’입니다. 흰딸기는 ‘꽃’입니다.


  푸른딸기도 있겠지요? 푸른딸기라면 ‘잎사귀’입니다. 붉은 마음과 하얀 마음과 푸른 마음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 지구별에서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빛깔로 사랑을 속삭이는가요?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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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08] 사람

 


  자다가도 팔을 뻗어
  옆에 누운 아이들
  이불깃 새로 여민다.

 


  사람을 사랑하면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뒤따라와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어느 것도 억지로 끌어당겨도 나한테 안 오겠지요. 돈을 주기에 나한테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요. 선물을 준다기에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어요. 사랑을 속삭이고 노래하기에 누구나 내 곁에서 즐겁게 웃어요.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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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꽃 눈송이는 없지만

 


  지난겨울과 올겨울에는 ‘눈 맞은 붉은 동백꽃’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서운한가? 서운하지 않다. 고흥에 눈 내릴 일이 거의 없으니 동백꽃이 붉을 적에 눈 덮인 모습을 보기란 어렵지만, 우리 집 동백나무는 지난겨울에 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았다. 모두들 새봄에 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한다.


  아무래도 한겨울에 봉오리를 터뜨리면 꽃송이도 춥겠지? 올겨울도 지난겨울 못지않게 포근했는데, 지난겨울도 올겨울도 포근한 날씨에도 동백꽃송이가 하나도 안 터졌다. 가만히 보면, 이웃마을 동백나무도 올겨울만큼은 거의 꽃송이를 안 터뜨렸다. 군데군데 조금 꽃송이를 비추었을 뿐이다.


  봄이 되어 한꺼번에 터지는 꽃송이도 곱지만, 겨우내 한두 송이, 때로는 서너 송이, 어느 때에는 예닐곱 송이쯤 미리 벌어져도 곱다. 꽃송이가 터지려면 아직 멀었으나, 아주 단단히 여물어 곧 터지려고 하는 봉오리에 내려앉은 겨울눈을 바라본다. 동백나무와 함께 마당에서 눈을 맞았다.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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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07 20:30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부산에 갔더니 동백나무가 아예 가로수로 쭉 늘어서 있는거예요. 나무마다 꽃을 활짝 활짝 피우고요.
부산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겨울에 간것은 이번이 처음, 이번 부산행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바로 그 동백꽃이었지요.

숲노래 2014-02-07 04: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부산이든 어디이든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는 동백꽃이
그야말로 흐드러지지요~

흐드러진 동백꽃송이를 보면
아아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