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마음과 검은마음

 


  하얀마음에 티끌 하나 앉으면, 마치 티끌만 있다는 듯이 여길 만한데, 까만마음에 얼룩 크게 앉으면,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까만마음에 드리운 얼룩에 곰팡이가 피어 큼큼한 냄새가 코를 찔러도 얼룩이 있는지 곰팡이가 있는지 못 알아채기까지 한다. 어디에서 냄새가 나는지 모를 뿐더러, 냄새가 나는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하얀마음을 버리면 티끌이 묻어도 알아채기 어려우니까 좋을까. 까만마음이 되면 지저분한 얼룩이 덕지덕지 있어도 알아채는 사람이 드물기에 좋을까. 하얀마음인 사람한테 묻은 티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까만마음인 사람한테 드리운 얼룩과 곰팡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하얀마음인 사람한테 티끌이 묻으면 다른 사람보다 이녁 스스로 곧바로 알아채어 복복 비벼 빨리라 생각한다. 까만마음인 사람한테 티끌이 묻으면 다른 사람도 이녁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채 묵은 때 되거나 구린 냄새로 바뀌도록 빨래할 마음조차 없으리라 느낀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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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배섬에서 보배가 난다. 보배섬에서 보배가 자란다. 보배섬에서 난 보배가 보배섬뿐 아니라 이웃마을과 뭇나라를 살찌운다. 보배섬에서 자란 보배가 보배섬을 비롯해 온 고을과 고장에 맑고 밝은 숨결을 나누어 준다. 아리랑 가락 하나 흐른다. 아리랑 가락 둘 흐른다. 아리랑 가락 서이가 너이가 감돌면서 춤사위 흐드러진다. 보배섬에서 솔솔 피어나는 노래를 듣는다. 보배섬에서 흘러나오는 고운 가락에 젖어든다. 보배로운 삶이기에 보배로운 웃음이요, 보배로운 사랑이기에 보배로운 꿈이다. 보배섬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슴에서 싹튼 조그마한 풀노래를 작은 시집에서 읽는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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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아리랑
박상률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3년 12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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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금밭에 농약과 비료를 안 치면서 일찌감치 굵고 단단하며 맛난 능금알 얻었으면, 모두들 능금밭에 농약과 비료를 안 쳤을까 궁금하다. 왜냐하면, 농약도 비료도 없던 지난날부터 능금밭은 있었으니까. 농약과 비료를 안 치는 푸성귀밭에서 거둔 푸성귀가 비싼값에 팔려도 시골 흙일꾼 누구나 농약과 비료를 안 치지는 않는다. 비닐집에서 키운 푸성귀보다 맨땅에서 키운 푸성귀가 비싼값에 팔려도 시골 흙일꾼은 비닐집을 만든다. 밭을 숲처럼 가꾸고, 마을을 숲처럼 돌보며, 집을 숲처럼 사랑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터가 되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정작 지구별 거의 모든 나라 거의 모든 사회에서는 숲을 버리거나 밀거나 망가뜨리거나 허물면서 도시만 죽죽 넓히고 키운다. 왜냐하면 돈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삶이 나쁠 까닭은 없으나, 사람들 모두 돈만 바라보면서 제빛을 잃고 제넋을 잊으며 제길을 놓친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을 어디에서 누가 가르치거나 배우는가. 4347.1.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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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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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여행하는 책

 


  두 아이를 데리고 기차여행을 한다. 설날을 맞이해 고흥에서 음성으로 가는 길이란 기차여행이다. 먼저 고흥 읍내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20분 달린다. 고흥읍에서 순천 버스역까지 시외버스로 한 시간 달린다. 순천 버스역에서 순천 기차역까지 30분 걷는다. 기차를 기다리며 한 시간 즈음 기차역 언저리에서 뛰논다. 기차를 타고 네 시간 가까이 달려 조치원역에 닿는다. 조치원역에서 한 시간 즈음 다시 기차를 달려 음성역까지 간다.


  작은아이는 순천을 떠난 기차가 전주를 지날 즈음 앙탈을 부리다가 새근새근 잠든다. 큰아이는 졸린 눈빛이지만 졸음을 참고 “언제까지 가? 할머니 집 멀었어?” 하고 스무 차례 넘게 묻는다. 조치원역에서 내려 기차를 갈아탄 뒤, 서서 가는 할매가 보여 내 자리를 내준다. 할매더러 앉아서 가시라고 이야기한다. 할매는 일부러 값싼 표를 끊으셨을 수 있다. 애써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돌보지 않고 자리를 내주는 셈인가 하고 살짝 생각해 보는데, 두 녀석이 저희끼리 잘 노니, 내 자리를 할매한테 내주어도 되겠다고 느낀다.


  할매는 고맙다고 자리에 앉는다. 다리가 무척 아프시겠지. 큰아이는 걸상 아닌 바닥턱에 앉는다. 아마 그 자리가 더 재미있으리라. 나도 큰아이 나이만 하던 지난날에 기차에서 저 바닥턱에 앉으며 놀지 않았을까.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라고 꾸중하셨는데, 그래도 저 바닥턱 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바닥턱에 앉아 동생하고 놀던 큰아이가 천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낸다. “책 읽어야지. 보라야, 누나가 책 읽어 줄게.” 하면서 그림책을 종알종알 읽는다. 이번 기차여행길에는 그만 《도라에몽》 만화책을 못 챙겼다. 깜빡 잊었다. 그러나 그림책은 두 권 챙겼으니, 이 그림책 두 권으로 잘 놀자꾸나. 큰아이는 예쁜 그림을 예쁜 말씨로 읽어 준다. 내 자리에 앉아서 가는 할매도 일곱 살 큰아이가 읽는 그림책을 함께 들여다본다. “아기가 어찌 그리 잘 읽누? 유치원 다니나?” “아니요. 안 다녀요.” 일곱 살 아이와 일흔 훌쩍 넘은 듯한 할매는 이야기도 잘 나눈다. 놀고 책을 읽고 까르르 웃는 사이 어느새 음성역에 닿는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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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et Bourke-White: Moments in History (Hardcover)
Margaret Bourke-White / Distributed Art Pub Inc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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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9

 


읽는 눈길, 찍는 손길
― Portrait of myself Margaret Bourke-White
 Margaret Bourke-White 글·사진
 Simon & Schuster, 1963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을 읽어야 합니다. 사진을 읽지 못한 채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인가를 읽을 때에 비로소 어떤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으려면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지 못하면서 사진을 읽지 못합니다. 사진에 깃든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이 누리는 어떤 삶인가를 어떤 눈빛으로 찍었는가를 헤아릴 때에 비로소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사람’이 어떠한가를 먼저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삶’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읽습니다. 숲에서 풀과 꽃과 나무를 찍을 적에도 풀과 꽃과 나무가 숲에서 어떻게 있는가를 찬찬히 읽습니다. 패션모델을 찍거나 사건·사고를 찍을 적에도 패션모델이 보여주는 옷차림과 사건·사고에 얽힌 이야기를 낱낱이 읽습니다. 읽을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사람을 찍은 사람 마음과 눈길과 생각과 삶’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읽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과 눈길과 생각과 삶으로 삶을 그리려 했는가’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보도사진을 읽든 다큐사진을 읽든, 초상사진을 읽든 스냅사진을 읽든, 사진기를 쥔 사람이 어떤 자리에 서면서 어떤 넋이었는가를 읽습니다.

 

 

 

 

 

  미국사람 마가렛 버크 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님이 이녁 삶을 돌아보며 적바림한 책 《Portrait of myself Margaret Bourke-White》(Simon & Schuster,196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 자서전을 읽으면, 이녁이 처음 사진을 찍던 이야기부터 한국전쟁 때 한국에 찾아온 이야기, 한국전쟁 뒤에 한국에 다시 찾아온 이야기가 흐릅니다. 세계 사진역사에 이름을 남긴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이라 하는데, 이녁 사진삶에 한국전쟁과 한국 이야기가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녁은 한국전쟁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을까요. 이녁은 한국에 찾아와서 어떤 자리에 서서 한국사람을 바라보았을까요. 이녁 스스로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면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이녁 곁에 ‘한국 정부 수행원’이 붙은 채 몇 군데만 돌아다녀야 하면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은 외국 사진기자로서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외국 사진기자인 만큼 한국 군 간부들 술자리에도 함께하면서 사진을 남깁니다. 싸움터 한복판에도 설 수 있었겠지만, 한국 군대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사진을 남깁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국사람을 만나기도 하되, 여느 시골마을이나 여느 골목동네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군 간부도 한국사람이고, 정부 수행원도 한국사람입니다. 시골 흙일꾼도 한국사람이요, 저잣거리 아지매도 한국사람입니다.


  여느 사람은 누구일까요. 수수한 사람은 어떤 삶빛일까요. 한국 사진기자가 지구별 여러 나라로 취재를 하러 갔을 적에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을 어떤 빛으로 찍을 만할까요. 정부에서 보살피는 사진기자 아닌 홀몸으로 다니는 사진작가일 적에는 지구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을 어떤 빛으로 찍을까요. 이것은 사진이고 저것은 사진이 아닐까요. 이 사진이 이 나라 사람을 잘 보여주고 저 사진은 이 나라 사람을 잘 안 보여준다고 할 만할까요. 이 사진에 담은 사람들이 바로 ‘그 나라 사람’ 모습이요, 저 사진에 담은 사람들은 ‘그 나라 사람’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똑같은 한 사람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쥔 사람마다 다르게 찍습니다. 똑같은 한 사람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하더라도, 연필을 쥔 사람마다 다르게 씁니다. 밀린 일삯을 받으려고 파업을 하는 노동자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 사진기를 쥔 사람마다 사진을 다르게 찍습니다. 밀양 송전탑을 둘러싸고 글을 쓰는 사람마다 글빛이 다 다릅니다. 표절과 저작권침해를 둘러싼 일이 터졌을 때, 이 일을 놓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피해자 자리에 서서 생각하거나 말합니다. 누군가는 가해자 자리에 서서 생각하거나 말합니다. 이를테면 일본 정치꾼이나 지식인을 떠올릴 만해요. 일본 정치꾼이나 지식인 가운데에는 툭하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을 추켜세우면서 이웃나라를 깎아내리는 말을 일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저지른 식민지 전쟁을 고개 숙여 뉘우치면서 참과 거짓을 또렷이 밝히려는 일본 학자와 지식인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쓰는 농약을 놓고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골 일손이 없는데다가 풀밭과 벌레를 어찌 하겠느냐며 농약을 쓸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농약으로 태워 죽이는 풀이란 모두 우리가 먹는 나물이요, 흙에 농약을 뿌리면 이 농약 기운이 푸성귀와 곡식에 그대로 스며들 뿐 아니라, 농약은 냇물과 샘물에도 스며들어 우리가 마시는 물을 더럽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달려야 더 먼 곳을 더 빠르게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달릴수록 배기가스는 늘어나 바람이 더러워집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동안 공해가 생깁니다.


  제국주의 전쟁 역사를 추켜세우는 자리에 서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사진이 태어날까요. 일본군 위안부로 아픈 나날을 보내야 한 할머니 자리에 서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사진이 태어날까요. ㅈ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ㅎ신문사 기자로 일한다든지, 아무 신문사에도 몸담지 않으며 사진을 찍을 적에는 어떤 이야기를 사진 한 장으로 들려줄까요. 이주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자리에 서는 사람이 바라보는 사진과 회사 간부 자리에 서는 사람이 바라보는 사진은 얼마나 같거나 다르거나 비슷할까요.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은 미국을 발판으로 지구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이녁 삶과 넋대로 바라보면서 사진을 이루었습니다. 물레를 앞에 두고 책을 읽는 간디를 찍은 사진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이 인도사람이라면, 파키스탄사람이라면,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계급인 사람이라면, 티벳 여느 사람이라면, 필리핀사람이라면, 한국사람이라면, 브라질이나 볼리비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이라면, 간디라고 하는 사람을 어떤 테두리에서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까요.


  우리들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스탈린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탄광에서 일하는 흑인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한국전쟁 국군이나 토벌대 국군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자리에 서서 사진을 읽는가요. 우리들은 ‘우리가 선 자리’에서 사진을 읽는가요, 아니면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읽는가요. 내 손에 사진기가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를 만지는가요. ‘내 삶과 사랑’을 떠올리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아니면 ‘내가 맞다’라든지 ‘내가 옳다’라든지 ‘내가 참이다’라는 틀을 세우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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