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



겨울에 온다던 동생이

찔레꽃 감꽃 국수꽃 콩꽃

달콤하며 맑게 피고

딸기알 새빨갛게 익는

오월 깊은 밤에

그만 서둘러서 왔대요.


손바닥만 한

아주 작고 가녀린 동생은

우리가 잠든

밤 세 시에 와서

아버지가 우리 집 뒤꼍

석류나무 곁을 호미로 파서

천천히 곱게 묻었대요.



2016.5.21.흙.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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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26] 너그러이



  우리는 언제 너그러울까?

  어제? 지난해? 모레? 이듬해?

  아니면, 바로 오늘?



  처음이라면 잘못을 저지르거나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 해 보았어도 아직 잘못을 저지르거나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어요. 꽤 오래 해 보지만 그대로 잘못을 저지르거나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어요. 우리는 언제 너그러울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너그러울까요?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너그럽되 미워하는 사람한테는 터럭만큼도 안 너그러울까요? 또는 내가 나 스스로를 너그러이 바라보지 못하는 나머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이웃이나 동무한테도 너그럽지 못한 살림은 아닐까요? 2016.7.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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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25] 집안일



  남한테 맡기고

  내 손을 안 대면

  바로 갉아먹는 살림



  집안일은 가시내나 사내 가운데 어느 한쪽이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밖일도 사내나 가시내 가운데 어느 한쪽이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일이건 일을 할 만한 기운이 있는 사람이 즐겁게 하면 됩니다. 기운이 있대서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해야 할 뿐입니다. 일을 하는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아름다움을 모르기 때문에 집안일이나 집밖일에 마음을 쓰지 못한다고 느껴요. 놀이를 하는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아름다움처럼, 모든 일에도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2016.7.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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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24] 어른이 된다



  나이가 들면 늙네

  철이 들면 슬기롭네

  어른이 되고 싶어 철이 들지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 어른이 되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 짝을 맺은 뒤 아이가 되기에 모두 어버이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기만 하면 ‘늙는다’고 하고 ‘늙은이’가 됩니다. 어린 사람이 어른이 되는 까닭은 철이 들어서 슬기롭게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늘 두 갈래 길이 있어요. 그냥 늙느냐 즐거이 철이 드느냐 하는 두 길이에요. 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려느냐 마느냐 하는 두 길이고요. 2016.7.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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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구름이 

그늘 드리운 자리는

아주 시원하겠네


꽃이

그늘 마련한 자리는

무당벌레가 쉬네


처마가

그늘 늘리는 자리는

여름에 동생이

평상에 누워 차지하고


나무가

그늘 넓히는 자리는

아버지가 땡볕에

밭 매다가 한숨 돌리고


나는

어머니한테 찰싹 붙어서

어머니 몸이 빚은 그늘에서

노래해.



2016.5.14.흙.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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