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하얀 빛을 (2013.8.31.)

 


  선물상자를 뜯는다. 겉은 시끌벅적한 그림이 있지만 속은 누런 빛 두꺼운 종이로 되었으니, 그림놀이 하기에 딱 좋다. 큰아이한테 한 장 건네고, 나도 한 장 맡아서 그림을 그린다. 큰아이가 문득 말한다. “어, 이 종이에는 하얀 빛 잘 보여! 노란 빛도 잘 보여!” 그래, 흰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흰 크레파스는 거의 안 보이지. 누런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흰 크레파스 아주 잘 보인단다. 과자상자이든 무슨 상자이든, 알맞게 잘 잘라서 쓰면, 이때에는 그림에 모든 빛을 새롭게 느끼도록 그릴 수 있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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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02 08:11   좋아요 0 | URL
골판지 울퉁불퉁한 면이 그림에 오히려 색다른 효과를 주어 좋습니다.

숲노래 2013-09-03 08:02   좋아요 0 | URL
바다를 그릴 적에는
이런 골판종이가
참 좋아요~
 

언제나처럼

 


  일산집에 머물며 언제나처럼 조용히 빨래를 걷어 가만히 옷가지를 갠다. 장모님은 장모님대로 이 살림 저 일 도맡느라 바쁘시니, 해가 떨어지기 앞서 잘 마른 옷가지들 걷어 차곡차곡 갠다. 노는 아이들 불러 함께 개지 않는다. 너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놀아라. 네 아버지는 일산집 빨래를 갠다. 그리고, 너희들 땀에 젖은 옷가지는 그때그때 빨아서 널어 놓는다. 4346.9.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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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디 있니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한테 “아빠는 어디 있니?” 하고 묻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다. 모두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만 하는 듯 여기니, 어머니가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모습은 대수롭지 않게 바라본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에는?


  어머니가 아버지 없이 혼자 아이들을 도맡아 돌보며 살아갈 수 있고,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 홀로 아이들을 도맡아 보살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누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든, 무언가 궁금하거나 말을 걸고 싶을 적에는 “아이들아, 참 예쁘구나.” 하고 말하면 된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 아이들 마음밭에 있지. 아빠는 어디 있을까? 아이들 가슴속에 있다. 4346.8.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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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보고 싶어

 


  큰아이가 어머니 보고 싶다 노래를 한다. 아이들 어머니는 어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일산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큰아이는 “할머니네 놀러가서 어머니 만날래.” 하고 말한다. 하루 기다리면 어머니가 시골집으로 돌아올 테지만, 큰아이는 어머니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이모도 삼촌도 모두 보고 싶다 말한다. 이리하여, 짐을 꾸리고 전남 고흥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날아갈 가장 가깝고 수월할 만한 길을 헤아린다. 순천을 거쳐서 기차를 탈까, 아니면 광주에서 경기도 화정버스역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볼까, 이래저래 살피고 머리를 굴린다. 그래도 고흥 읍내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가 가장 나을 듯하다. 다만, 아침 아홉 시 버스가 아니면 모두 우등버스라서 아이 둘과 어른 하나 앉아서 가기에는 만만하지 않다. 또한, 텔레비전을 켜느냐 안 켜느냐도 살펴야 한다. 아무쪼록, 이제 작은아이 낮잠을 살며시 깨워 얼른 길을 나서야지. 짐은 다 꾸렸다. 4346.8.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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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쏟은 김에

 


  작은아이가 혼자 물잔에 물을 따라 마신다고 하다가 물을 쏟는다. 그런데 아버지한테 말을 않고 꽁무니를 뺐다. 부엌바닥이 물바다 된 줄 나중에서야 알아채고는, 장판을 들추며 물바다를 치운다. 이 녀석아, 물을 쏟았으면 말을 해야지. 포옥 한숨을 쉬며 물바다를 치우다가 부엌바닥을 샅샅이 훔치고, 이렇게 훔치는 김에 마루도 훔친다.


  작은아이가 밤오줌을 쉬통에 안 누고 바지에 싸면서 평상이랑 이불이랑 방바닥이 오줌으로 흥건하다. 평상과 이불과 베개를 몽땅 마당에 내놓아 해바라기 시키면서, 방바닥을 새삼스럽게 훔친다. 걸레를 새로 빨아 방바닥을 훔치다가 이것저것 새롭게 걸레질을 하며 먼지를 닦는다.


  작은아이가 오줌은 웬만큼 가리지만 똥은 아직 안 가리려 한다. 날마다 두세 차례 바지에 똥을 눈다. 똥은 방바닥이나 마룻바닥에 툭툭 떨어진다. 똥을 치우는 김에 방바닥이나 마룻바닥을 다시금 훔친다. 날마다 닦고 또 닦는다. 날마다 여러 차례 훔치고 다시 훔친다.


  하루에 걸레질을 얼마나 하고, 날마다 걸레를 몇 차례 빨아서 쓰는가 돌아보다가, 아이들이 아버지더러 ‘우리 집 한결 깨끗하게 치우고 쓸고 닦아 주셔요’ 하고 말없는 말을 들려주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4346.8.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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