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 똥가리기

 


  작은아이가 똥을 잘 가린다. 아주 고맙다. 옆지기가 미국으로 배움길 떠나던 지난 유월 첫머리부터 똥을 가리다가는, 옆지기가 집에 없는 동안 똥을 다시 안 가리더니, 옆지기가 집으로 돌아온 구월부터 다시 똥을 잘 가린다. 요놈 보아라. 쳇.


  똥오줌을 씩씩하게 가릴 수 있도록 큰 작은아이는 똥을 누든 오줌을 누든 어머니랑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나 응가!” “그래, 잘 눠 봐.” “응가 안 나와.” “그러면 쉬만 했니?” “응, 쉬.” 큰아이는 첫돌 지나고 얼마 안 지나, 아마 열넉 달쯤 될 무렵부터 스스로 쉬를 가렸고, 똥도 비슷한 때에 가렸다. 작은아이는 세 살에 똥오줌을 가리니 퍽 오래 걸렸다 할 만한데, 그동안 누나가 잘 돌봐 주었으니 늦게 가렸구나 싶다.


  그런데, 옆지기는 큰아이가 오줌이나 똥을 눌 적마다 어머니랑 아버지를 부르던 일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작은아이더러 왜 자꾸 어머니랑 아버지를 부르느냐고, 그냥 네가 혼자 누면 된다고 말한다. 여보쇼, 아주머니, 우리 큰아이하고 똑같잖아요. 이렇게 몇 해를 오줌 누느니 똥 누느니 알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들이 혼자서 조용히 오줌을 누고 똥을 누지요.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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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재웠수

 


  언제였는 지 잘 안 떠오르는데, 〈아이는 재웠수〉였나, 이 비슷한 이름으로 된 영화였는지 무언가 있었다. 참 재미있는 말이로구나 싶어, 동무들하고 낄낄거리며 이 말마디를 흉내내곤 했는데, 이 말마디가 그 뒤로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았다.


  왜 남았을까. 왜 이 말마디가 내 마음속에 남았을까. 깊은 밤에 두 아이를 재우면서 새삼스레 생각한다. 자장자장 고운 노래 부르면서 생각한다. 그래, “아이는 재웠수?”로다. 여보시오, 아버지가 아이를 재웠수, 어머니가 아이를 재웠수? 할머니가 아이를 재웠수, 할아버지가 아이를 재웠수? 누가 집에서 아이들을 재웠수? 누가 하루 내내 아이들과 놀았수? 누가 아이들을 먹였수? 누가 아이들을 가르쳤수? 누가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녔수?


  아이는 재웠수? 빨래는 했수? 청소는 했수? 장은 봐 왔수? 밭에 풀은 뽑았수? 겨울에 먹을 무는 심었수? 했수, 안 했수?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 누가 누구한테 할 말인가. 나 스스로 나한테 “했수, 안 했수?” 하고 물으면서 두 아이 이마를 살살 쓰다듬는다.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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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는 아이들

 


  마당에 놓은 평상에 맨발로 올라선 두 아이가 논다. 큰아이가 우유상자를 걸상으로 삼아 평상에 올려놓고는 척 앉는다. 그러더니 다리를 못 쓰는 사람 흉내를 내면서 “보라야, 누나가 다리가 아파서 함께 못 놀아. 미안해.” 하면서 “자, 안아 줄게.” 하고 부른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어디에서 보았을까? 마을 할머니들 지팡이 짚고 걷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올렸을까. 마당을 지팡이 짚으며 걷는 시늉까지 한다. 우리 아이들이지만, 참 재미있네, 하고 여겨 곁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곁에서 지켜보거나 말거나 ‘다리 아파 못 움직이니 서로 안아 주기 놀이’를 한다. 큰아이가 일곱 살쯤 되면 동생을 업을 수 있을까. 그때에는 동생도 부쩍 자라 업기 힘들까. 그러면, 큰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동생을 업으려나. 그때에도 동생은 쑥쑥 커서 못 업으려나. 그러나, 두 아이가 한 살을 더 먹건 두 살을 더 먹건, 이렇게 서로 살가이 안아 주면서 하는 놀이는 실컷 하리라.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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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에 접어들다

 


  구월에 접어들어 빨래를 하니, 물내음과 물빛이 사뭇 달라졌다고 살갗으로 느낀다. 머잖아 따순물 아니고는 손빨래를 못 하겠다고 느낀다. 바람이 살풋 선들선들 불면서, 빨래할 물도 이렇게 찬 기운 그득 서리는구나. 이제 밤빨래나 새벽빨래를 할 적에 손을 호호 불어야겠네. 그렇다면, 여느 빨래는 해가 높이 솟은 한낮에 해야 할까. 가을바람에 가을노래 고즈넉히 실린다.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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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05 07:02   좋아요 0 | URL
치마순이, 치마돌이에 이어 함께살기님은 빨래순이라고 하셨네요? ^^
손빨래 덕분에 가을을 손으로도 느끼셨어요.

숲노래 2013-09-05 07:2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빨래순이입니다 ^^;;;
언젠가.. '빨래하는 삶'을 "빨래순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을 생각이에요~~

가을이에요, 가을. 참 가을입니다...
 

[시골살이 일기 23] 놀이터와 일터
― 시골에서 농약 쓰는 까닭

 


  아이들이 흙땅에서 실컷 뛰고 구르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땀 송송 흘리면서 흙땅을 박차고 놉니다. 아이들은 흙땅에서 뒹굴기도 하고, 흙땅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며, 넘어지기도 합니다. 손이며 발이며 얼굴이며 온통 흙투성이 되어 개구지게 놉니다.


  아이들은 고샅에서든 밭고랑에서든 들에서든 숲에서든 뛰어놀고 싶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온몸을 거침없이 움직이면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뛰어놀 흙땅에 농약을 뿌렸다면? 아이들을 놀리지 못합니다. 농약을 뿌린 흙땅 자리에는 어른도 쪼그려앉아서 쉬지 못합니다. 농약냄새 코를 찌르면서 어지러울 뿐 아니라, 농약 기운이 몸에 스며들 수 있으니, 아이들이 이런 데에서 놀지 못하는데다가, 어른들도 이런 곳에서 쉬지 못해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젊은 일손 모자라서 농약을 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젊은 일손 모자라는 탓만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지 않으니 농약에 손을 뻗고, 논밭에서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일하거나 놀지 않으니 자꾸자꾸 농약에 기댑니다.

  시골에 집이 있어도 아이들이 흙땅에서 안 놀아요. 어린이집에 가거나 학교에 갑니다. 아이들은 면내나 읍내에서 놀려 하지, 마을이나 들판이나 바다나 숲에서 놀려 하지 않아요.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내기라 하더라도 시골하고 엇갈리거나 등집니다. 어른들 일하는 곳 곁에서 놀지 않는 아이들 되다 보니, 어른들은 시나브로 흙땅에 농약을 칩니다. 아이들이 밭둑이나 논둑 풀베기를 거들지 않다 보니, 어른들은 풀베기 할 자리에 농약을 뿌립니다.


  더 생각하면, 오늘날 시골에서 시골 어른들은 시골 아이들을 시골에 남겨 흙을 일구며 살도록 가르칠 뜻이 없습니다. 하루 빨리 시골 벗어나 도시에서 돈 잘 벌고 몸 안 쓰는 일거리 찾기를 바랍니다. 시골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한테 시골일 물려주지 않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시골일하고 등지거나 모르쇠로 자라다가 도시로 떠나요. 이러는 동안 시골 어른들은 모든 흙일을 농약과 화학비료에 기대어 합니다.


  시골에 젊은 일손 다시 늘어나도록 하자면, 농약과 화학비료에 기대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껴요.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이녁 아이를 낳으면, 철 따라 손자 손녀 데리고 올 텐데, 손자 손녀 누구도 농약범벅이 된 흙땅에서 못 놀아요. 농약으로 더러워진 도랑물을 만질 수 없어요.


  아이들이 흙땅에서 놀다가 저희 밭둑이나 논둑에서 오줌을 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흙땅에서 놀다가 힘이 들면 밭둑이나 논둑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논밭 한쪽에 시원스러운 나무그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일하며 쉬기에 즐거운 들과 숲과 마당이라면, 아이들이 놀며 쉬기에 즐거운 들과 숲과 마당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만한 데라면, 바로 어른들이 즐겁게 일할 만한 아름다운 삶자리입니다.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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