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먹으려고 열매를 딴다



  집에서 얻는 열매를 딴다. 한집에서 함께 사는 고운 숨결들과 나누려고 열매를 딴다. 집에서 따는 열매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먹음직스러울 때에 톡 따면 된다. 입에 군침이 돌 적에 톡 따면 된다. 조금 맺혔으면 조금 따고, 넉넉히 맺혔으면 넉넉히 딴다. 신나게 딴다. 웃으면서 딴다. 노래하면서 헹구고, 흥얼흥얼 부엌으로 불러 밥상맡에 둘러앉아 한 점씩 날름날름 집어서 먹는다. 아, 더 먹고 싶다, 하는 소리가 나오면 더 따도 되고, 더 익어야 한다면 이튿날에 따든 며칠 뒤에 따면 된다.


  집집마다 나무 몇 그루씩 건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집집마다 ‘우리 집 열매나무’를 건사하면서, 이 가울에 열매 하나 톡 따서 오순도순 나누어 먹는 즐거움과 사랑을 누릴 수 있기를 빈다. 스스로 나무를 아끼고 스스로 나무를 돌볼 적에 삶이 새롭게 거듭나리라 느낀다.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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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이 되자



  아마 열다섯 살이었지 싶다. 이무렵부터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은 모두 거짓말투성이라고 깨달았지 싶다. 그러나 이무렵에는 이렇게 깨닫기만 할 뿐, 달리 무엇을 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어 비로소 글쓰기를 할 무렵, 나 스스로 한 가지를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이 모두 거짓말투성이라 한다면, 덧없고 부질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가득 채워 애먼 나무를 괴롭히는 짓만 일삼는다면, 내가 스스로 신문이 되자고 생각한다.


  신문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신문이 될 생각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꾸준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삶을 가꿀 때에 아름답기 때문에 ‘어떤 글이나 말’을 꾸준히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 스스로 신문이 되자’ 하고 생각한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하루하루 맞이하는 이야기를 글로 찬찬히 갈무리하여 날마다 꾸준하게 띄울 수 있으면, ‘사람을 바보나 종이 되도록 가두는 굴레’인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 이웃과 동무부터 천천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느꼈다. 나부터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지어서 배우고, 내가 배운 내 삶을 이웃과 동무한테 보여주는 동안, 내 이웃과 동무는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짓는 슬기를 깨달으리라 느꼈다.


  참말 내 꿈대로 나는 천천히 신문이 된다. 종이신문도 누리신문도 아닌 ‘이야기신문’이 된다. 마음을 열어 생각을 지으려 하는 이웃이나 동무라면, 내가 쓴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으리라 본다.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은 이웃과 동무는, 또 이녁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겠지.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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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뒷모습



  읍내마실을 갔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앞에서 신나게 달린다. 뒤에서 신나게 좇다가 문득 뒷모습을 생각한다. 이 집에서 조금 얻고 저 집에서 조금 얻은 옷을 입은 아이들인데, 큰아이 바지는 아버지가 모처럼 사 주어서 입혔고, 작은아이 가방은 큰아이가 다섯 살 무렵 부산에서 사 준 가방인데 이제 큰아이한테 작아서 작은아이가 물려받았다. 큰아이가 발에 꿴 신은 문을 닫은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주운 뒤 잘 빨고 말려서 신겼고, 작은아이 벌레신은 곁님이 새로 장만해 주었는데, 작은아이가 골짝물에 담가서 반짝반짝 나오던 불이 꺼지고 말았다.


  가만히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아이들 옷차림을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깨닫는다. 어떤 옷이든 대수롭지 않게 입히면서 살았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지. 내가 바라보고 싶은 곳은 아이들 마음이고, 아이들이 나한테서 물려받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니까.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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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자는 동안



  두 아이와 자는 나날도 앞으로 얼마 안 남는다. 왜냐하면, 이듬해 여름에 셋째가 올 테니까. 이 작은 집에서 세 아이와 지낼는지, 조금이나마 넓은 집을 마련할 수 있을는지 아직 모르지만, 두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면서 제법 길게 눈을 붙이던 일도 얼마 안 남은 셈이다.


  갓난쟁이를 곁에 누워 재우자면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때에는 첫째와 둘째는 어떠할까? 두 아이도 갓난쟁이와 함께 밤에 잠을 깰까?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깊이 잠들까?


  두 아이와 자는 동안 틈틈이 잠을 깬다. 이리저리 뒹군 아이를 바로 눕힌 뒤 이불깃을 여민다. 한 시간에 한 차례쯤 이렇게 한다. 요즈음은 철이 바뀌는 때라,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으면 바로바로 다시 덮어 주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찬바람이 들 테니까.


  스무 살 언저리부터 새벽신문 돌리는 일을 했기에 밤잠을 미루거나 밤에 일어나는 삶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지난 일곱 해 동안 두 아이와 살며 밤잠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으나, 이때마다 ‘이래서 내가 젊은 날에 그렇게 신나게 신문배달을 했구나’ 하고 느끼곤 했다.


  아이들아 너희 마음껏 자렴. 네 어버이는 너희를 재우느라 밤잠을 이룰 틈이 없지만, 너희가 쑥쑥 자라 스무 살 즈음 되면, 바야흐로 너희 어버이도 느긋하게 두 다리 뻗고 꿈나라를 누빌 수 있겠지.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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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노래 (2014.10.2.)



  이웃님한테 보내려고 그림을 그린다. 사진책을 펴내고 사진강의를 하면서 사진길을 걷는 이웃님한테 ‘노래’를 그려서 보내기로 한다. 노래란 무엇일까? 사진이란 무엇일까? 동그라미 하나가 다른 동그라미를 만나고, 동그라미 안쪽에서 온갖 빛깔로 무지개가 드리운다. 물결이 치고, 꽃과 별이 하나둘 돋더니, 어느새 잎이 나는 나무가 자란다. “흐르는 삶이 고스란히 품에 안겨 사진 한 장”이라고 한 마디를 짤막하게 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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