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서 뿌드득



  저녁 일곱 시 반에 아이들과 잠자리에 든다. 저녁 다섯 시가 넘을 무렵이면 아이들 얼굴과 눈망울에서 졸음이 가득한 빛을 읽을 수 있다. 이 아이들이 낮잠을 잤다면 여덟 시에도 제법 눈망울이 똘망똘망하지만, 낮잠을 건너뛰었으면 다섯 시 부터 잠들기까지 아주 졸린 눈치이다. 그리고, 나도 졸리면서 고단하다. 여섯 시 반 즈음부터 아이들한테 노래를 한다. 얘들아 우리 자자, 얘들아 너희 자야지.


  아이들을 재우려고 함께 자리에 누우면 등허리와 팔다리가 얼마나 결리는지, 온몸에서 뿌드득 소리가 난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았나 하고 되새기면서 노래를 몇 가락 부르다가 스르르 힘이 풀리면서 먼저 곯아떨어지는 날이 있고, 두 아이가 곯아떨어진 소리를 듣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일을 마저 하는 날이 있다.


  엊저녁에 아이들을 재우며 몇 시쯤 되었나 헤아리니 일곱 시 반인데,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우리한테 오지 않던 날이 떠오르고, 곁님과 둘이 보낸 첫 해가 떠오르며, 혼자 살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그무렵 ‘저녁 일곱 시 반’은 바지런히 움직이는 때였다. 한창 움직이면서 일하는 때라고 할까. 혼자 살던 때에는 책방마실을 다니든 책을 읽든 하던 때요, 둘이 같이 살던 때에도 아직 잠들려면 한참 먼 때이다.


  일곱 시 반에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들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시골마을에서 저녁 일곱 시만 넘어도 거의 모든 집이 불을 다 끄고 조용한데, 도시에서 저녁 일곱 시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움직이면서 시끌벅적하다. 도시사람은 생각할 수나 있을까? 시골에 이웃이나 동무가 있다면, 시골에는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에도 ‘전화를 하면 안 되는’ 줄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저녁 일고여덟 시에 오는 전화나 쪽글(손전화 쪽글)은 안 받기 일쑤이다. 피식 웃음이 난다. 그저 삶이 재미있어서, 아이들과 노니는 삶을 돌아보며 웃는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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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깃 여미기



  오늘 따라 두 아이가 이불을 자꾸 걷어차며 잔다. 많이 고단한가 보다. 나는 바지런히 이불깃을 여민다. 여느 날에도 밤마다 수없이 이불깃을 여미는데, 참말 아이는 으레 이불을 뻥뻥 걷어차면서 자는가 보다. 아무래도 몸이 무럭무럭 자라는 터라, 잠을 자는 동안에도 꿈속에서 놀고 날 테니까, 이렇게 신나게 자고 신나게 이불을 걷어찰 테지.


  내 어릴 적에도 어머니는 으레 내 이불깃을 여미어 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이불깃을 여미어 줄 적에 늘 이를 알아챘다. 다만, 실눈을 뜨고 살며시 바라보았고, 이불깃을 여미어 주는 손길이 좋아 어느 날은 일부러 이불을 걷어차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어버이 손길을 더 받고 싶어서 일부러 이불을 걷어찰까?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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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혼자 잘 수 있는 아이



  작은아이가 이제 버스에서 혼자 앉아 가만히 잠들 수 있다. 얼마 앞서까지 반드시 옆에 함께 앉아서 머리를 받쳐야 했으나, 요즈막에는 혼자 자리에 앉아서 까무룩 잠들어도 옆으로 쓰러지지 않는다. 다만 옆에 서서 아이가 기울어지지 않는지 지켜보고, 내 쪽으로 기울어질라 치면 살며시 고개를 돌려 준다.


  어느새 이만큼 컸는가 하고 돌아본다. 날마다 조금씩 살이 붙고 기운이 붙으니 이렇게 자란 셈일 테지. 세발자전거를 혼자 발판을 구르며 달릴 수 있는데다가 몸무게도 많이 불었고, 곧잘 떼를 쓰지만 웃옷도 바지도 신도 혼자 입고 벗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드디어 단추꿰기도 혼자 해낸다. 요새는 단추를 꿰어 주려 하면 싫다며 손사래를 친다. 앞으로는 온갖 곳에서 혼자 씩씩하게 나서는 모습을 더 자주 새롭게 보여주리라. 4347.11.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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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주고 물려받는 뜨개옷



  곁님이 큰아이가 네 살 적에 손수 떠서 선물한 뜨개치마를 큰아이가 일곱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입는다. 네 살 적에는 이 뜨개치마가 거의 바닥에 끌렸는데, 이제는 꼭 잘 맞는다. 큰아이한테는 작은 뜨개치마는 이제 동생이 물려받아서 입는다. 작은아이는 웃옷과 바지도 모두 누나한테서 물려받는다. 작은아이가 꿴 신도 누나한테서 물려받는다. 치마순이는 고운 뜨개치마를 입을 수 있어서 즐겁고, 누나순이는 누나가 입던 뜨개치마를 물려받아서 입을 수 있어서 기쁘다. 큰아이는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며 열 살이 되면, 어머니한테서 뜨개질을 물려받아 앞으로는 손수 제 옷을 뜰 수 있겠지. 4347.11.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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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80] 아이와 함께 사는 곳

― 시골인가 도시인가



  내가 오늘 사는 이곳은 전남 고흥이고, 고흥군에서도 도화면이요, 도화면에서도 신호리이며, 신호리에서도 동백마을입니다. 우리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야 읍내에 닿고, 군내버스는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갑니다. 아침 일곱 시 십 분이 첫 버스가 지나가고, 저녁 여덟 시 반에 마지막 버스가 마을 앞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마을을 가만히 살피면, 어느 집이든 새벽 네 시 안팎에 하루를 열고, 저녁 예닐곱 시 언저리에 하루를 닫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가면 거의 모든 집에서 불이 꺼지고, 저녁 여덟 시쯤이면 아주 고요합니다.


  우리 집은 시골집입니다. 시골에 있으니 시골집입니다. 시골에서 사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이웃은 ‘자연에 둘러싸여 산다’고 말하는데, 곰곰이 살피면 ‘자연에 둘러싸여 산다’기보다 ‘자연을 이웃으로 삼아서 산다’고 말해야 옳지 싶어요. 그리고, ‘자연’이란 어디 머나먼 곳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숲’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시골집은 숲을 이웃으로 삼는 집입니다.


  숲은 무엇일까요? 나무가 우거진 곳이 숲입니다. 다만, 나무가 우거진 곳은 나무숲이고, 풀이 우거진 곳은 풀숲입니다. ‘숲’이라고만 한다면 나무와 풀이 함께 우거진 곳입니다. 숲바람이 불고, 숲내음이 흐르며, 숲노래가 퍼지는 곳이 숲입니다.


  시골집에서 숲과 이웃을 하며 지내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숲을 누리면서 지낼 만한 곳에서 아이를 키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즐겁게 꿈을 꾸고 사랑을 속삭일 만한 곳에서 산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있는 곳을 찾아서 시골집에 깃들었고, ‘사랑’을 씨앗으로 심고 싶어서 숲을 이웃으로 삼습니다.


  도시에서는 사랑씨앗을 심지 못할까요? 아니에요. 도시에서도 사랑씨앗을 심을 수 있어요. 씨앗은 늘 마음으로 심으니까요.


  밭자락에 상추씨를 심든 무씨를 심든 늘 같아요. 먹을거리를 얻으려고 씨앗을 심을 테지만, 먹을거리를 왜 얻으려고 하느냐 하면, 삶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요, 삶을 왜 누리고 싶은가 하면, 하루하루 사랑을 지어서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볍씨 한 톨을 심을 적에도 사랑을 심는 셈입니다.


  어디에서 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디로 나들이를 다니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꿀 수 있으면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보금자리입니다. 마음을 돌볼 수 있으면 언제나 사랑스러운 삶터입니다. 다만, 우리 집 사람들은 풀과 나무를 가까이하는 곳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요, 풀노래와 나무노래가 어우러진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일 뿐입니다. 숲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숲한테 우리 노래를 들려줍니다. 숲에서 퍼지는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가 짓는 밥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함께 지내는 이웃인 숲이요, 서로 아끼면서 사랑이 자라는 시골이며,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할 수 있는 보금자리입니다. 4347.11.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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