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으로 파고드는 책읽기

 


  그림책 펼쳐 읽어 줄라 치면,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무릎으로 파고든다. 이제 큰아이는 몸이 제법 자라, 어머니도 아버지도 두 아이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 주기 살짝 벅차다. 큰아이 스스로 잘 알 테지. 그래도 머리라도 쑥 집어넣으려 하고, 몸 한쪽 기대어 무릎을 조금이라도 차지하고 싶다. 그런데 작은아이도 세 살 되다 보니, 작은아이 몸뚱이도 퍽 크다. 두 아이 몸무게 더하면 삼십삼 킬로그램이 되고, 곧 삼십오 킬로그램 넘으리라. 얘들아, 이젠 너희들이 스스로 따로따로 앉아서 놀 때란다. 무릎은 가끔 살짝 내어줄게. 4346.5.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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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팔에 안고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 팔과 어깨와 등과 가슴에 안긴 채 돌아다닌다. 두 아이는 스스로 신나게 뛰고 걷고 달리고 날고 할 적에는 어버이 품을 떠나지만, 졸립거나 힘들거나 고단하거나 잠들면 언제나 어버이 품에 찰싹 달라붙는다.


  여섯 살 큰아이 데리고 여섯 해 살아오는 동안 날마다 느낀다. 이 아이가 바깥에서 잠들어 집까지 고이 안고 들어와서 자리에 눕힐라치면, 어느새 벌떡 일어난다. 집으로 오기까지 퍽 먼 길에 일어나서 걸어 주어도 되련만, 이때에는 걷지도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온갖 짐을 짊어지고 든 채 아이를 안고 걷는다. 팔에 힘이 다 빠진다. 좀 쉬자, 하고 생각할 무렵 큰아이가 눈을 번쩍 뜬다.


  큰아이는 알까? 이럴 때마다 얼마나 얄미운지. 그런데 이 얄미운 짓을 벌써 여섯 해째 한다.


  일곱 살이 되어도, 여덟 살이 되어도, 아홉 살이 되거나 열 살이 되어도 이 같은 모습을 보여줄까? 히유. 아버지 팔뚝이 무쇠 팔뚝이 되면 될까? 아버지 어깨가 무서 어깨가 되면 될까? 아버지 등짝이 무쇠 등짝이 되면 될까? 얘야. 좀 자자. 4346.4.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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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대문 앞 흰민들레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이들이 아버지 따라 쭐래쭐래 대문 앞으로 온다. 그런데 두 아이 모두 맨발이다. 어라? 얘들아, 신 좀 꿰고 놀면 안 되겠니?


  맨발이 그리 좋은가. 맨발일 때에 한결 즐거우며 홀가분한가? 그래, 흙땅 디디며 놀 때에는 맨발이 참 좋겠지. 그렇지만, 마당이건 고샅이건 오늘날에는 몽땅 시멘트바닥이잖니. 너희들 발 디딜 자리가 모두 고운 흙밭 풀밭이기를 꿈꾼다. 4346.4.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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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6 23:27   좋아요 0 | URL
아기들의 발,은 어쩜 이렇게 이쁠까요~~^^
근데 발마다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3-04-27 06:14   좋아요 0 | URL
발이 참 어여쁘지요.
어른도 예쁜걸요~~
 

[당신은 어른입니까 17] 나무읽기
― 마을 이루는 바탕이란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늘 한 가지 아쉽다고 여겼습니다. 내 어버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될 무렵 여러모로 돈을 그러모아 아파트를 마련해서 ‘우리 집’이라고 삼으셨지만, 나는 이 아파트가 참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왜 아파트가 ‘우리 집’이어야 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라 한다면, 마당이 있고 꽃밭이 있으며 나무 자랄 흙땅 있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누가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 집’이라 하면 우리 식구 사랑하면서 아낄 나무와 풀과 꽃이 자랄 흙땅 있어야 비로소 ‘우리 집’이 된다고 느꼈어요.


  국민학교 다니며 동무네 집 놀러갈 적에 언제나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아파트 사는 동무네 놀러갈 적에는 따로 느끼지 못했지만, 아파트 아닌 단독주택이라 하는 여느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동무네 놀러가고 보면, 아무리 손바닥만큼 작은 마당이라 하더라도, 이 집에서 살아가는 동무는 ‘내 나무’가 있어요.


  그래, 내 나무 한 그루 있구나, 참 좋네, 하고 생각하며 으레 나무줄기 쓰다듬고 우듬지 올려다보곤 했어요. 작은 골목집 작은 골목나무 한 그루인데, 이 나무 한 그루 있기에 이 조그마한 살림집이 환하게 빛나면서 푸르게 따스하구나 하고 느껴요.


  도시 떠나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살아갈 새 터 헤아리면서 나는 다른 무엇보다 ‘나무 심어 돌보기’를 생각했어요. 세 식구 깃든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살구나무 두 그루 심어 앞으로 이 살구나무 무럭무럭 자라 우리 집이 ‘살구나무 집’ 되기를 꿈꾸었어요. 네 식구 되고 나서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로 옮겨 지내는 오늘날은 우리 집 둘레에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이렇게 세 가지를 두 그루씩 심으며 꿈을 꿉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 스무 살 즈음 될 무렵에는 제법 우람하게 자랄 이 나무들을 바탕으로 우리 조그마한 이 집이 ‘나무 집’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해마다 이 나무 저 나무 몇 그루씩 심어 온갖 나무 골고루 어여쁘게 어우러지는 ‘집숲’ 되기를 꿈꿉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마을이라 한다면, 사람들 모여서 살아가기에 마을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집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마을 테두리에서는 마을사람 모두 보듬을 만한 넓은 멧자락과 숲이 있고 냇물이 흐르며 들판 있을 때에 비로소 마을이라 일컬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모두 똑같아요. 멧자락도 숲도 냇물도 들판도 없이, 시멘트 층집, 그러니까 아파트만 우줄우줄 때려박는 곳을 ‘마을’이나 ‘동네’나 ‘고을’이라고는 가리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수천 수만 사람 바글바글거리도록 때려짓는 아파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감옥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런 시멘트감옥 같은 데를 몇 억 원이니 하는 비싼값에 사고팔도록 하니, 더더욱 사람들을 바보로 짓누르는 셈 아닌가 하고 느껴요.


  나무 한 그루 심을 마당 한 뼘 누리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들나물 한 포기 뜯어서 먹을 기쁨 즐기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봄꽃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 철따라 다 다른 빛깔 맞이하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나무가 자라 집을 지어요. 나무가 자라 바람내음 싱그러워요. 나무가 자라 새가 찾아들고 어여쁜 벌레가 깃들어요. 나무가 자라 열매를 베풀고 꽃을 나누어 줘요. 나무가 자라 그늘이 드리우고 햇살조각 눈부셔요. 나무가 자라 흙이 살아나고, 나무가 자라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튼튼하게 함께 자라요.


  우리 집 나무를 떠올리다가 문득 하나 생각합니다. 역사를 밝히는 분들은 한겨레 발자취를 으레 단군 때부터 짚어 반 만 해를 말하는데요, 반 만 해 앞서 이 나라 삶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천오백 해 앞서는, 오천 해 앞서는, 오천오백 해 앞서는, 또 육천 해나 칠천 해 앞서는, 구천 해나 일만 해 앞서는, 이 나라 삶터에 어떤 이야기와 숨결과 빛줄기 있었을까요. 단군이라는 님이 있기 앞서, 이 나라 시골마을 사람들은 어떤 삶 누렸을까요. 팔천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집을 지으며 어떤 옷을 나누며 살았을까요.


  씨족 우두머리나 제사 지내는 우두머리 아닌 사람들은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거나 돌보면서 하루를 누렸을까요. 전쟁무기 없던 지난날 사람들은 서로 어떤 하루 맞이하면서 어떤 삶 지었을까요. 갖은 문명과 문화를 누린다는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하루 맞아들이며 어떤 삶 짓는가요.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서 다달이 어느 만큼 돈을 벌기는 하되, 정작 스스로 하루하루 새 삶을 짓는 길하고는 그만 동떨어지지 않나요. 어른인 한 사람으로서 누리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아이들이 누리도록 하는 삶은 얼마나 빛나는가요.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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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꽃 기다리기

 


  마당이 있고, 꽃밭이 있으며, 텃밭이랑 뒷밭이 있으니, 집안에 꽃그릇 따로 없어도 눈이 환하고 즐겁다. 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푸른 물결이요, 사이사이 꽃봄이 무르익는다. 새봄에는 새봄대로 새 꽃송이 펼쳐지고, 한봄 무르익으면서 한봄에 피어나는 꽃나무 꽃망울 한껏 터질락 말락 한다.


  흙 밟는 마당이 있어, 흙에서 풀이 자란다. 풀 자라는 밭자락 있어, 밭 둘레로 열매나무 쑥쑥 크며 새잎과 새꽃 베푼다. 꽃이 피어나는 시골집에서 꽃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봉오리와 꽃망울 찬찬히 지켜보는 맛 남다르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꽃몽우리 시나브로 터지려는 모습을 바라본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였다가 천천히 겨울눈 맺더니, 이윽고 겨울눈 열리고 푸른 잎사귀 돋으면서, 마알간 꽃잎 벌어진다. 하루하루 아주 더디 이루어지는 꽃잔치이다.


  시골집은 풀집이면서 꽃집이다. 시골집에서 피어나는 꽃은 시골꽃이면서 집꽃이다. 시골마을은 풀마을이면서 꽃마을이다. 시골마을에서 흐드러지는 꽃은 마을꽃이면서 또 무슨 꽃일까. 우리 집 밭자락에서 자라는 모과나무에 바야흐로 발그락발그락 새 꽃송이 벌어진다. 하루쯤 있으면 활짝 터질까. 이틀쯤 있으면 한꺼번에 꽃잔치일까. 사흘쯤 있으면 우리 집에 모과꽃내음 물씬 감돌까.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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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2 02:09   좋아요 0 | URL
아 모과꽃 몽우리가 이렇게 생겼군요.
어서 활짝 핀 모과꽃을 보고 싶네요. ^^

숲노래 2013-04-22 02:35   좋아요 0 | URL
활짝 핀 데는 사진 찍기 힘든 데만 있어요 ㅠ.ㅜ
하루나 이틀 뒤에는 사진 찍기 좋은 자리에도
활짝 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