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 있으면

 


  아이들과 무엇을 할 때에 가장 즐겁고 신날까 하고 돌아본다. 바다에 갈 적에, 마을 빨래터에서 물놀이 할 적에, 들길을 거닐 적에, 마당에서 함께 놀 적에, 피아노를 칠 적에, 나란히 엎드려 그림을 그릴 적에, …… 참 좋다. 옆지기는 숲에 깃들어 숲바람 마실 적에 아주 좋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아이들과 우람한 나무 곁에 서서 나무내음 맡고 나무살결 어루만지면서 함께 있으면 아주 좋다. 나무그늘에 드러누워 한잠 자도 좋고, 아이들이 나무를 타며 노는 모습 지켜보아도 좋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나부터 어릴 적에 나무타기 몹시 좋아했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어림하며 되게 높이 올라간 적 있다. 되게 높이 올라간 다음 어떻게 내려와야 좋을는지 몰라 한참 애먹기도 했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며 땅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 찧은 적도 있다. 올라갈 때에는 몰랐지만, 내려올 때에는 붙잡을 것이 거의 없더라. 어쩌면 나는 내가 어릴 적 나무를 타며 놀던 모습을 내 아이한테서 새롭게 읽으면서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는다 할는지 모른다. 스스로 누린 아름다운 삶을 아이들이 누리는 아름다운 삶에 비추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할까.


  옆지기는 어린 나날 숲에서 놀던 일이 오래도록 가슴에 아로새겨지면서 숲마실을 아주 좋아하리라 느낀다. 나는 숲 없는 도시 한복판에서 태어나 자란 터라, 골목동네에서 우람한 나무 만나 나무를 만지고 나무를 타면서 논 일이 오래오래 깊이깊이 아로새겨졌다고 느낀다. 나무를 보면 설레고, 나무를 쓰다듬으면 따스하며, 나무를 떠올리면 온몸이 즐겁다.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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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22:58   좋아요 0 | URL
샤름벼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사진들을 보며 얼마나 행복해할지..절로 아름답습니다. ^^

숲노래 2013-05-26 23:26   좋아요 0 | URL
어린이인 오늘도 즐겁게 놀아야지요~
날마다 어여쁜 사진
적어도 한 장씩은 찍자고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답니다 @.@
 

지켜보기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지켜본다. 나는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옆지기와 나란히 지켜본다. 서로서로 지켜본다. 즐겁게 놀자면서 지켜보고, 즐겁게 놀라며 지켜본다. 함께 살아가는 사이 되고, 함께 크며 튼튼하게 어깨를 겯는 동무 된다. 4346.5.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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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4 11:19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사랑의 눈길로 살뜰하게 지켜보며 사는 일은,
언제나 참 아름다워요..^^

숲노래 2013-05-24 11:48   좋아요 0 | URL
더 따스하고 더 즐겁게 마주보면서 하루하루 누릴 때에
사랑이 되는구나 싶어요
 

웃는 달, 웃는 오이

 


  동그랗게 썬 오이를 먹던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 이거 달이야?” “아니. 보름달이야.” “오잉? 그러면 이거는? 이거 달이야?” “아니. 그건 초승달이야. 달은 동그랄 때에는 보름달이고, 가느다랄 때에는 초승달이고, 반토막일 때에는 반달이야.” 잘 알아들었을까? 한창 뭔가를 쪼물딱쪼물딱하더니 빙긋 웃는다. 뭔데? 오이를 조금씩 잘라서 먹고 붙여서 “아버지, 이거 웃는 달이야.” 하면서, ‘웃는 오이’를 만들어 밥상 귀퉁이에 올린다. 작은아이도 옆에서 “웅는 달. 웅는 달.” 하고 누나 말을 따라하려고 애쓴다. 4346.5.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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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2] 방송읽기
― 무엇을 보고 들어야 즐거울까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갈 때에 곧잘 버스 일꾼이 라디오를 켭니다. 군내버스 20분을 조용히 시골길 누비며 다닐 때가 있지만, 시골길 누비면서도 라디오 소리에 두 귀가 멍멍할 때가 꽤 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읍에서 순천을 오갈 적에는 거의 언제나 버스 일꾼이 라디오를 틉니다. 시외버스로 고흥과 순천을 오가는 한 시간 길에는 거의 언제나 두 귀 멍멍한 채 있어야 합니다.


  시외버스 일꾼은 시외버스에 어른이 타건 아이가 타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타건 푸름이가 타건 어르신이 타건 대수로이 살피지 않습니다. 그저 버스 일꾼 스스로 들으려 하는 라디오를 켭니다.


  가끔 도시로 가서 시내버스를 탈 적에는 좀 다르다고 느끼곤 합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자동차 너무 많고, 사람들 지나치게 많아서, 도시 시내버스 일꾼으로서는 라디오라도 켜지 않으면 골이 아프겠구나 싶어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손전화 소리와 수다 떠는 소리에서 홀가분하면서 도시 시내버스를 몰자면, 라디오란 더할 나위 없는 길벗이 되리라 느껴요.


  시골 군내버스는 퍽 달라요.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는 앞에서나 옆에서나 뒤에서나 숲을 보고 들을 봅니다. 때로는 냇물을 보고 바닷물을 봅니다. 눈을 맑게 틔우고 생각을 환하게 여는 푸른 빛깔을 한 가득 바라보면서 버스를 몰 수 있어요. 그러니, 시골 군내버스 일꾼은 굳이 라디오를 안 켜도 됩니다. 게다가, 시골 할매나 할배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가 있고, 갓 태어난 아기들 무럭무럭 자라 어린이 되고 푸름이 되며 어른 되는 흐름을 죽 지켜보기도 하기에,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새록새록 누립니다. 따로 라디오를 헤아릴 틈이 없다 할 만해요.


  도시에서 택시를 모는 일꾼이 손님들 기다리면서 텔레비전을 볼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루 내내 찻길에서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시달리면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맡을 뿐 아니라, 열 몇 시간 좁은 자동차에 갇히다시피 들어앉아 일을 해야 하니, 택시 일꾼 또한 버스 일꾼처럼 라디오가 길벗이요 텔레비전이 삶벗 되리라 느껴요.


  그러면,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버스와 택시 일꾼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채우는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빚을까요. 사람들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는 이야기가 새벽부터 밤까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나요. 치거나 박거나 싸우거나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방송은 아닌가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이야기는 뒤로 밀린 채, 갖가지 정치 다툼·경제 다툼·외교 다툼 따위만 다루다가는, 차별 문제·반민주 문제·막개발 문제조차 제대로 못 다루는 방송이지 않나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는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건드리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영화나 연속극이나 운동경기나 새소식이나 정보나 토론이나 연설 들은 사람들 생각을 어떻게 움직이려는지 궁금합니다.

  고흥읍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이웃도시 순천으로 마실을 가서 한나절 지내고는 다시 고흥읍으로 와서 군내버스로 갈아타고는 시골마을 우리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시외버스 타고 오가는 동안 내내 라디오 소리에 귀가 멍멍했고, 군내버스에 내리자마자 마을 어귀부터 훅 끼치는 고소하고 시원한 들바람에 개구리 노랫소리 가득 울려퍼집니다. 개구리 노랫소리 사이사이 아직 나즈막하다 싶은 풀벌레 노랫소리 섞입니다. 멧새 노랫소리는 개구리 노랫소리에 그예 파묻힙니다. 머잖아 이 밤에 개똥벌레 불꽃춤잔치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밤노래잔치 즐겁고, 해마다 다시 마주하는 개똥벌레 불꽃춤잔치 반갑습니다. 하늘 올려다보면 별이 쏟아지고, 멀리 내다보면 까만 밤하늘 가로지르는 멧자락 얼핏설핏 보입니다.


  라디오 방송 가운데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즈음 개구리 노랫소리나 제비 노랫소리 들려주는 적은 아직 없습니다. 텔레비전 방송 가운데 세 시간이나 네 시간 즈음 바람소리와 햇살내음이랑 풀노래랑 바다물결 골고루 보여주는 적은 아직 없습니다. 바람 따라 풀이 눕고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를 오래오래 들려주는 라디오 방송이 있을까요. 고래가 노니는 춤사위를 오래도록 보여주는 텔레비전 방송이 있을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밭이 될까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지구별 사람들한테 어떤 사랑이나 꿈이 될 만할까요. 우리들은 꿈과 사랑을 헤아리면서 방송을 마주하는 삶인가요 아닌가요. 4346.5.2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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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자전거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운 다음, 아이들 이모부더러 자전거를 몰아 보라 한다. 집에서 면소재지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이 길에는 자전거 타기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그럭저럭 갈 만하고, 두 아이와 수레를 붙인 무거운 자전거도 이럭저럭 끌 만하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샛자전거와 수레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를 들여다본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는 맛 어떠하니. 이모부가 달리는 자전거 맛은 아버지가 달리는 자전거 맛하고 얼마나 다르니.


  자전거로 함께 달리면서 바람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맡는다. 자전거로 나란히 달리면서 멧새와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길바닥을 볼볼 기는 풀벌레 바라보고, 이웃마을 논과 밭을 내다본다. 우리를 둘러싼 마을과 숲과 멧골을 천천히 천천히 헤아린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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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1 13:1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저까지 마음이 싱그러워 지네요.
^^ 근데 자전거가 씽씽 달리고 있나봐요.
산들보라의 꼭 잡은 두 손과 얼굴을 보니까요.~^^

숲노래 2013-05-21 16:17   좋아요 0 | URL
네, 달리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달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전거마실' 모습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