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키는 사람

 


  내가 바깥일을 보아야 할 때에 옆지기가 집을 지키면서 두 아이를 보살핍니다. 옆지기가 바깥일을 보는 동안 나는 집을 지키면서 두 아이를 돌봅니다. 집을 지키는 어버이는 밥을 짓고 옷을 빨며 아이들을 씻깁니다. 집에서 살림 꾸리는 어버이는 아이들과 놀고 말벗이 되며 하루를 온통 함께 얼크러져 지냅니다.


  집을 지키는 사람은 집지킴이입니다. 집지킴이 가운데에는 집순이가 있고 집돌이가 있습니다. 집순이는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집돌이는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좋아하는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다운 부드럽고 살가운 손길로 아이들을 아끼면서 집을 지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맑고 싱그러운 눈길로 아이들을 어루만지면서 집을 지킵니다.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면서 밝은 웃음을 선물받습니다. 아이들한테 꿈을 이어주면서 환한 노래를 선물받습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한솥지기 되어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때때로 돈을 벌러 집을 오래 비울 수 있겠지요. 때때로 공부를 하거나 아픈 몸을 다스리려고 집을 오래 떠날 수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들여 집에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거나 아픈 몸 다스리면서 돈을 무척 많이 쓸 수 있습니다. 한솥지기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면 반가울까요. 한솥지기가 돈을 많이 쓰면 서운할까요.


  더운 여름 유월 저녁에 아이들 밥 먹이고 쉬면서 이제 곧 재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자장노래로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하고 여러 날 지내는 삶에 차츰 익숙합니다. 즐겁게 놀고 사이좋게 어울립니다. 귀뚜라미 노랫소리 듣습니다. 곧 개구리도 밤노래잔치 베풀겠지요. 덥지만 포근한 시골 하루입니다. 4346.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잠들다

 


  낮에는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하고, 곧바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마실을 하던 어느 날,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단하게 잠든다. 이야, 두 아이를 하나씩 안고 내려야 하나. 작은아이는 옆지기가 안고 큰아이는 내가 안는다.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담은 무거운 가방 짊어지고 큰아이를 안으며 버스에서 내린다. 옆지기도 작은아이를 안고 내린다. 큰아이는 얼마 뒤 깨어나 “걸을래.” 하고 말한다. 잠에서 살짝 깬 큰아이가 “걸을래.” 하고 말할 적에는 아버지 가방 무거우니 짐을 덜어 주려는 마음이라고 느낀다. “괜찮니?” “응.” “그럼 조금 걸어 주렴.”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져서 깨어나지 않는다. 한참 신나게 놀고 뛰고 달렸으니. 아무 걱정 할 일 없이 실컷 노는 아이들. 아무렴, 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너희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믿고 실컷 놀았지. 너희도 네 어머니와 아버지를 믿고 실컷 놀며 곯아떨어지면 돼.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2 10:26   좋아요 0 | URL
힘은 드셨겠지만 ~
엄마도, 엄마 품에 앉겨 가는 산들보라도 다정히
참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숲노래 2013-06-12 10:33   좋아요 0 | URL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기는 해도
언제나 제가 잠든 아이를 안아야 하니
그야말로 아주 오랜만에
모처럼 한 장 찍었답니다~

이런 사진 남겨야
아이들도 무언가
나중에 알겠지요~ ^^;;;
 

[시골살이 일기 4] 하얀 꽃밭과 나비
― 시골에서 마시는 바람

 


  엊저녁 면사무소에서 마을방송을 한다. 이듬날 아침 일곱 시부터 아홉 시 사이에 ‘전체 방역’을 하니 ‘장독대 뚜껑을 닫’고, ‘창문도 닫’으며, ‘야외활동 하지 말’고, ‘아이들이 바깥에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한다. 고흥군 도화면 사무소에서 마을방송으로 알린 ‘전체 방역’이란 헬리콥터가 마을 휘 가로지르면서 농약을 뿌리는 ‘항공 방제’이다. 요즈음은 이런 ‘항공 방제’를 ‘친환경농약’을 뿌리며 흙일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몹시 궁금하다. ‘친환경’농약이라면서, 왜 장독대 뚜껑을 닫아야 하고 창문을 닫아야 할까. ‘친환경’이라면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고, 아이들이 바깥에 나오지 말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 입으로는 ‘친환경’을 읊지만, 막상 ‘환경과 가깝지’ 않은 농약일 뿐 아니라, 환경을 등진 농약이라고 알리는 노릇이다.


  일본사람 오제 아키라 님이 1980년대에 그린 만화책 《나츠코의 술》을 보면, ‘항공 방제’ 때문에 눈이 먼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항공 방제’를 하다가 헬리콥터가 떨어져 논에 처박히면서, 이 논은 농약덩이가 되어 아무도 이 논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가까이에 오지도 못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항공 방제’를 할 적에, ‘완전 무농약 유기농’으로 벼농사 짓는 이들이 퍽 넓은 논에 비닐을 덮어 농약이 떨어지지 못하게 막는 이야기가 나온다.


  면사무소 마을방송이 나온 이듬날 아침,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불고 빗줄기가 살짝 듣는다. 헬리콥터가 떴을까? ‘항공 방제’ 헬리콥터는 얼마쯤 되는 높이에서 날아갈까? 높은 데에서 날아가더라도 소리가 들릴 텐데 소리가 안 들린다. 바람 많이 불고 빗줄기까지 들으니 취소했을까?


  헬리콥터에서 농약을 뿌리면, 이 농약 때문에 들새와 멧새가 숨이 막히고 눈알이 튀어나오면서 죽는다. 농약 듬뿍 쐰 벌레나 개구리를 잡아먹는 들새와 멧새는 내장이 터지면서 죽는다. ‘항공 방제’는 ‘소리 없는 평화’를 부른다. 아니, 모든 소리가 사라진 숲을 부른다. 레이첼 카슨 님은 1950년대에 “침묵의 숲”, 곧 “소리 없는 숲”을 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10년대인 오늘날까지도 농약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자동차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숨이 막힌다면, 시골에서는 농약사랑에 허덕이면서 숨이 갑갑하다.


  돌울타리 사이로 이웃한 옆집 밭자락에서 하얗게 꽃을 피우며 나부끼는 풀포기를 바라본다. 어떤 씨앗 심어 이렇게 어여쁜 흰꽃 피어 꽃잔치·풀잔치 이루어 놓으셨을까. 하얀 꽃무리 사이사이 하얀 날갯짓 팔랑거리는 나비가 춤을 춘다. 서로서로 예쁘게 어울린다. 하얀 꽃에 내려앉은 나비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사진 몇 장 찍는다. 사진을 큼직하게 키워서 보아도 나비가 어디 깃들었는지 잘 안 보이지만, 흰나비는 흰꽃 사이에서 맑게 빛나는구나. 좋다. 얘들아, 우리 나비 구경하지 않겠니?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꽃이 무엇일까요?

appletreeje 2013-06-1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기 나비가 있네요~? ^^
보라빛 꽃송이 위로 사선에요.!! 나비랑 보니 한층 더 좋아요. *^^*

숲노래 2013-06-11 14:58   좋아요 0 | URL
네, 아래에서 오른쪽에 나비가 살짝 깃들었어요.
나비도 꽃도 곱지요.

어떤 나물로 심으신 풀 같은데...
이름은 아직... ^^;;;
 

아이 손을 바라보면

 


  글씨쓰기 놀이를 하는 아이 손을 바라본다. 늦은 저녁까지 잠들 생각 않는 두 아이하고 부대끼다가 나는 그만 큰아이 앞에 모로 누워서 글씨쓰기를 이끈다. 너희는 참 기운이 넘치네 하고 생각하다가, 곯아떨어질 만큼 놀지 못해서 늦은 저녁에도 기운이 넘칠 수 있겠다고 느낀다. 글씨쓰기 놀이를 하면서 연필 아닌 색연필 집는 큰아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렇게 해서야 언제 글씨를 익힐까 싶다가도, 아직 여섯 살인 큰아이가 굳이 벌써 글씨를 다 알 까닭 없겠다고 생각한다. 놀면서 글씨를 즐기면 되지. 저것 좀 보라구. 어느 빛깔로 글씨를 그릴까 하고 가만히 생각하면서 고르잖아. 아이 스스로 가장 예쁘다 싶은 빛깔로 알록달록 글씨쓰기 놀이를 하고 싶다잖아. 그래, 나는 네 아버지로서 네 손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은 어른입니까 24] 풀읽기
― 군대 사계청소(시계청소)가 저지른 짓

 


  네 식구 함께 시골집 떠나 도시로 마실을 오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에 중대장·대대장·연대장·사단장·군단장 같은 분들께서 우리한테 시킨 짓 ‘사계청소’가 우리를 어떻게 길들이거나 물들였는가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비무장지대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무장지대’인 휴전선 철책 둘레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며, 봄날 되고 여름날 맞이하면 날이면 날마다 해야 하는 숱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사계청소’였습니다. 한자말로 ‘사계청소’라 했는데, 이를 ‘시계청소’라고도 했습니다. ‘사계’라는 한자말 쓴 하사관, 이를테면 행정보급관은 ‘둘레에 있는 풀과 나무를 없애 멀리까지 잘 보이도록’ 하자는 뜻이요, ‘시계’라는 한자말 쓴 장교, 이를테면 중대장이나 대대장은 ‘보초를 서는 병사들 눈앞이 확 트여 저기 북녘 인민군 병사가 뭘 하는지 잘 보이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낫, 정글칼, 톱 들을 하나씩 들고 철책 둘레에 섭니다. 백육십 졸개(땅개, 육군 사병)는 한 줄로 서서 풀을 베고 나무를 자릅니다. 눈앞에 보이는 ‘푸른 빛깔’은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그야말로 작은 들풀 하나조차 남기지 않고 뽑고 베고 죽이고 짓밟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 무엇을 하느냐 하면 고엽제를 뿌립니다. 고엽제를 뿌려서 풀이 돋지 못하도록 해요. 고엽제는 맨손으로도 뿌리고, 바가지로도 퍼서 뿌리며, 하이바로도 담아 뿌려요. 철책 둘레에서 풀을 베고 죽이고 없애는 동안, 또 전역을 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 가룻덩어리가 고엽제였다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사계청소이든 시계청소이든 막일을 해야 하던 졸개(땅개, 육군 사병)들마다 팔과 다리와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피부병 걸린 까닭을 어느 누구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 해 동안 뒤탈을 앓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마취제 없이 칼로 생채기를 도려내기도 해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전역을 하고 열 몇 해 동안은, 군대에서 사계청소나 시계청소를 하며 고엽제를 쓴 대목이 엿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문득 지난날이 떠오르거나 어쩌다가 군대 적 일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있으면, 풀을 미워하고 나무를 몽땅 죽이도록 하는 군대 몸짓이란, 사람들(젊은 사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랑이나 맑은 꿈이 깃들지 못하도록 하려던 꿍꿍이였구나 싶어요. 군인이란 살인기계이니까, 군인이란 ‘내 이웃이나 동무라 할지라도 적군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거침없이 죽이도록 명령을 따라야 하는 졸개’이니까, 군인들 마음속에 푸른 빛깔과 씨앗과 생각이 깃들면 안 된다고 여겼구나 싶어요.


  그런데, 시골집 떠나 인천으로 나들이를 오는 동안, 시외버스가 서울 버스역에 닿고, 서울에서 전철로 갈아타서 인천으로 오면서, 둘레에서 풀이나 나무를 거의 못 봅니다. 서울도 인천도 풀과 나무는 제자리를 못 찾습니다. 부산도 그렇고 대구도 그래요. 광주라고 다를 수 없고, 울산이라고 낫지 않아요. 마산 진해 창원을 마창진으로 엮어 엄청나게 큰 도시로 바꾸었다지만, 마창진이라는 데에 풀숲과 나무숲 얼마나 있는가요.


  풀이 마음껏 자라지 못하는 곳에 사랑이 자라지 못합니다. 나무가 흐드러지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곳에 꿈이 흐드러지지 못합니다. 꽃이 곱다시 빛나지 못하는 곳에 생각이 곱다시 빛나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 나라 도시는 모두 군대와 같습니다. 회사도 공공기관도 일꾼(사람들)을 군인처럼 다뤄요. 회사원도 공무원도 마치 군인처럼 위계질서와 명령만 받아들여요. 게다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마치고 사회에서 일자리 얻으려는 푸름이와 젊은이도 군인과 똑같은 매무새나 넋이 되고 맙니다.


  군대를 가서 여러 해 지내는 일은 얼마나 나라사랑 될까요. 군대에서 이웃사랑 동무사랑 하나도 배우지 않으면서 사람 죽이는 솜씨를 배우는 한편, 풀과 나무와 꽃을 짓밟는 일을 끝없이 할 때에, 어떤 나라사랑 될까요. 풀사랑과 나무사랑과 꽃사랑을 하지 못한다면, 나라사랑이나 지구사랑 이룰 수 있을까요.


  가만히 눈을 감다가 눈을 다시 뜹니다. 서울 벗어난 전철이 인천으로 달리는 바깥을 바라보며 풀빛을 찾습니다. 전철역에는 풀포기 하나 없으나, 전철역과 전철역 사이에는 풀포기 제법 있습니다. 골목집 사이사이 우람한 나무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파트 높직한 데에는 아무런 풀포기도 나무도 안 보입니다. 전철은 동인천역에 닿고, 네 식구는 내립니다. 사람들은 쉽게 새치기를 하고, 표를 끊은 뒤 저마다 갈 곳을 찾아갑니다. 동인천역 뒤쪽은 너른터 만든다며 골목집 허물어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벽돌을 깔아 놓았습니다. 나무는 어디에서 자라야 하고 풀은 어디서 돋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푸른 숨결 마셔야 목숨을 잇는데, 도시에 풀과 나무와 꽃이 제대로 자랄 수 없으면, 사람은 무엇을 마시면서 삶을 일구는지 모르겠습니다. 4346.6.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