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5] 땅에서 숨을 쉰다
― 두 다리로 밟고 만지는 흙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일하다가 도시에서 죽는 사람이 차츰 늘어납니다. 앞으로는 오직 도시살이만 알고 시골살이는 하나도 모를 아이들과 젊은이들 무척 많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흐름이 되리라 느낍니다.


  시골살이가 아름답고 도시살이는 바보스럽다고 말할 마음 없습니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가장 즐거운 마음 되어 아름답게 살아가면 될 뿐입니다. 다만, 도시는 어떤 삶터이고 시골은 또 어떤 삶자락인 줄 제대로 알아야지 싶어요.


  여름날 도시는 몹시 덥습니다. 겨울날 도시는 매우 춥습니다. 도시는 햇볕을 받아들일 흙도 풀도 나무도 없습니다. 도시는 햇볕을 튕기되 도시 안에서 맴돌게 하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흙땅이 뒤덮인데다가 높직한 시멘트 건물 수두룩하게 있습니다. 여기에 자동차가 끝없이 달립니다. 수많은 기계가 움직이면서 새롭게 후끈거립니다. 도시는 온통 불덩어리라 할 만합니다. 하루 내내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하다 느끼기 어렵고, 에어컨 튼 방에서 벗어나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마는 감옥이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참말, 여름날 도시는 에어컨 있는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지요. 그런데 겨울날에는 난방기 있는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요. 여름이나 겨울이나, 또 봄이나 가을이나, 도시사람은 건물 안쪽에 옹크린 채 지냅니다. 하늘을 못 보고 땅을 못 보며 바람과 냇물과 빗물과 눈송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땅이 숨을 쉽니다. 땅이 숨을 쉬기에 풀과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며 자랍니다. 땅이 숨을 쉬기에 땅속에는 수많은 목숨이 얼크러져 땅이 기름지도록 북돋웁니다.


  사람은 하늘숨과 함께 땅숨을 쉽니다. 하늘숨이란 바람 숨결입니다. 땅숨이란, 풀과 나무가 자라도록 밑바탕이 되는 숨결입니다. 땅숨은 풀과 나무를 살찌워 푸른 숨결 일굽니다. 곧, 사람은 하늘숨·땅숨·풀숨, 이렇게 세 가지 숨을 마십니다. 그리고, 빗방울과 눈송이를 먹거나 시냇물이나 도랑물이나 샘물이나 우물물을 먹어, ‘물숨’ 하나를 더 마시지요.


  시골에서 살든 도시에서 살든, 두 다리로 흙을 밟고 두 손으로 흙을 만질 수 있어야, 더위를 타지 않습니다. 아니, 다리와 손으로 흙을 보듬어야 여름을 한껏 누립니다. 온몸으로 흙을 부대끼며 흙내음 맡을 적에 날씨를 깨닫고 제철을 실컷 즐깁니다. 네 식구 시골에서 살며 가장 즐거운 하나 꼽으라면, 바로 하늘숨·땅숨·풀숨·물숨 싱그러이 누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풀과 흙이랑 놀 수 있어 더없이 좋습니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살이 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배웅

 


  잘 다녀오라고 배웅한다. 지난 4월에 이어 6월에 다시 한 차례 미국 람타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옆지기를 배웅한다. 가는 길에 빗줄기 살짝 들고, 빗길에 큰가방 끌며 우산 쓰고 가다가 어디에선가 우산을 잃었단다. 괜찮아. 우산은 잃어도 누군가 그 우산 고맙게 쓸 테니까.


  군내버스에 큰가방 싣고 손 흔들어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잠에서 깬 채 마루문에 붙어서 마당을 내다본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으니 아이들 딴에 걱정스러웠나 보다. 얘들아, 그러게 어제 일찍 자고 오늘 일찍 일어났으면 함께 배웅할 수 있었잖니.


  옆지기를 배웅한 지 어느새 닷새 흐른다. 닷새 동안 눈하고 코가 어디에 빠졌는지 잘 모르기도 했지만, 눈하고 코가 어디에 붙었는가는 잘 느끼며 지낸다. 둘레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무슨 돈으로 옆지기를 미국까지 보내 공부를 시켜 주느냐고. 나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딱히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얘기를 할 만하다면 벌써 했을 텐데, 처음부터 ‘물어 볼 만한 이야기’를 물어 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야기를 할 수 없기도 하다. 옆지기 공부하러 떠난 지 닷새째 된 오늘, 비로소 한 마디를 해 본다면, 집안에 아픈 사람 있어 약값 치러야 할 때에 ‘약값 아깝다’고 여기는 집식구 있을까요, 하고 묻고 싶다. 그뿐이다. 마음과 몸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다스리는 배움길 떠나는 사람한테 들려줄 말이란, 느긋하고 사랑스럽게 꿈을 가슴에 담아 기쁘게 돌아오기를 바라요, 하는 한 마디라고 느낀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6 07:53   좋아요 0 | URL
이궁, 벼리와 보라.. 어머니 배웅 못 했네요..
그렇치만 어머니 안 계시는 동안, 아버지랑 씩씩하고 즐겁게
무럭무럭 오손도손~잘 지내리라 생각합니다. ^^

말 없는 한 장의 사진이,
참 많은 이야기를 빗소리처럼 정답고
아름답게 들려주네요..

숲노래 2013-06-16 09:55   좋아요 0 | URL
옆지기가 이렇게 곧잘 길게 집을 비우니
저는 오히려
집안일과 아이돌보기를
새롭고 깊이 배우기도 해요 ^^
 

집을 지키는 사람

 


  내가 바깥일을 보아야 할 때에 옆지기가 집을 지키면서 두 아이를 보살핍니다. 옆지기가 바깥일을 보는 동안 나는 집을 지키면서 두 아이를 돌봅니다. 집을 지키는 어버이는 밥을 짓고 옷을 빨며 아이들을 씻깁니다. 집에서 살림 꾸리는 어버이는 아이들과 놀고 말벗이 되며 하루를 온통 함께 얼크러져 지냅니다.


  집을 지키는 사람은 집지킴이입니다. 집지킴이 가운데에는 집순이가 있고 집돌이가 있습니다. 집순이는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집돌이는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좋아하는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다운 부드럽고 살가운 손길로 아이들을 아끼면서 집을 지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맑고 싱그러운 눈길로 아이들을 어루만지면서 집을 지킵니다.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면서 밝은 웃음을 선물받습니다. 아이들한테 꿈을 이어주면서 환한 노래를 선물받습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한솥지기 되어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때때로 돈을 벌러 집을 오래 비울 수 있겠지요. 때때로 공부를 하거나 아픈 몸을 다스리려고 집을 오래 떠날 수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들여 집에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거나 아픈 몸 다스리면서 돈을 무척 많이 쓸 수 있습니다. 한솥지기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면 반가울까요. 한솥지기가 돈을 많이 쓰면 서운할까요.


  더운 여름 유월 저녁에 아이들 밥 먹이고 쉬면서 이제 곧 재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자장노래로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하고 여러 날 지내는 삶에 차츰 익숙합니다. 즐겁게 놀고 사이좋게 어울립니다. 귀뚜라미 노랫소리 듣습니다. 곧 개구리도 밤노래잔치 베풀겠지요. 덥지만 포근한 시골 하루입니다. 4346.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잠들다

 


  낮에는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하고, 곧바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마실을 하던 어느 날,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단하게 잠든다. 이야, 두 아이를 하나씩 안고 내려야 하나. 작은아이는 옆지기가 안고 큰아이는 내가 안는다.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담은 무거운 가방 짊어지고 큰아이를 안으며 버스에서 내린다. 옆지기도 작은아이를 안고 내린다. 큰아이는 얼마 뒤 깨어나 “걸을래.” 하고 말한다. 잠에서 살짝 깬 큰아이가 “걸을래.” 하고 말할 적에는 아버지 가방 무거우니 짐을 덜어 주려는 마음이라고 느낀다. “괜찮니?” “응.” “그럼 조금 걸어 주렴.”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져서 깨어나지 않는다. 한참 신나게 놀고 뛰고 달렸으니. 아무 걱정 할 일 없이 실컷 노는 아이들. 아무렴, 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너희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믿고 실컷 놀았지. 너희도 네 어머니와 아버지를 믿고 실컷 놀며 곯아떨어지면 돼.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2 10:26   좋아요 0 | URL
힘은 드셨겠지만 ~
엄마도, 엄마 품에 앉겨 가는 산들보라도 다정히
참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숲노래 2013-06-12 10:33   좋아요 0 | URL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기는 해도
언제나 제가 잠든 아이를 안아야 하니
그야말로 아주 오랜만에
모처럼 한 장 찍었답니다~

이런 사진 남겨야
아이들도 무언가
나중에 알겠지요~ ^^;;;
 

[시골살이 일기 4] 하얀 꽃밭과 나비
― 시골에서 마시는 바람

 


  엊저녁 면사무소에서 마을방송을 한다. 이듬날 아침 일곱 시부터 아홉 시 사이에 ‘전체 방역’을 하니 ‘장독대 뚜껑을 닫’고, ‘창문도 닫’으며, ‘야외활동 하지 말’고, ‘아이들이 바깥에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한다. 고흥군 도화면 사무소에서 마을방송으로 알린 ‘전체 방역’이란 헬리콥터가 마을 휘 가로지르면서 농약을 뿌리는 ‘항공 방제’이다. 요즈음은 이런 ‘항공 방제’를 ‘친환경농약’을 뿌리며 흙일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몹시 궁금하다. ‘친환경’농약이라면서, 왜 장독대 뚜껑을 닫아야 하고 창문을 닫아야 할까. ‘친환경’이라면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고, 아이들이 바깥에 나오지 말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 입으로는 ‘친환경’을 읊지만, 막상 ‘환경과 가깝지’ 않은 농약일 뿐 아니라, 환경을 등진 농약이라고 알리는 노릇이다.


  일본사람 오제 아키라 님이 1980년대에 그린 만화책 《나츠코의 술》을 보면, ‘항공 방제’ 때문에 눈이 먼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항공 방제’를 하다가 헬리콥터가 떨어져 논에 처박히면서, 이 논은 농약덩이가 되어 아무도 이 논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가까이에 오지도 못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항공 방제’를 할 적에, ‘완전 무농약 유기농’으로 벼농사 짓는 이들이 퍽 넓은 논에 비닐을 덮어 농약이 떨어지지 못하게 막는 이야기가 나온다.


  면사무소 마을방송이 나온 이듬날 아침,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불고 빗줄기가 살짝 듣는다. 헬리콥터가 떴을까? ‘항공 방제’ 헬리콥터는 얼마쯤 되는 높이에서 날아갈까? 높은 데에서 날아가더라도 소리가 들릴 텐데 소리가 안 들린다. 바람 많이 불고 빗줄기까지 들으니 취소했을까?


  헬리콥터에서 농약을 뿌리면, 이 농약 때문에 들새와 멧새가 숨이 막히고 눈알이 튀어나오면서 죽는다. 농약 듬뿍 쐰 벌레나 개구리를 잡아먹는 들새와 멧새는 내장이 터지면서 죽는다. ‘항공 방제’는 ‘소리 없는 평화’를 부른다. 아니, 모든 소리가 사라진 숲을 부른다. 레이첼 카슨 님은 1950년대에 “침묵의 숲”, 곧 “소리 없는 숲”을 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10년대인 오늘날까지도 농약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자동차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숨이 막힌다면, 시골에서는 농약사랑에 허덕이면서 숨이 갑갑하다.


  돌울타리 사이로 이웃한 옆집 밭자락에서 하얗게 꽃을 피우며 나부끼는 풀포기를 바라본다. 어떤 씨앗 심어 이렇게 어여쁜 흰꽃 피어 꽃잔치·풀잔치 이루어 놓으셨을까. 하얀 꽃무리 사이사이 하얀 날갯짓 팔랑거리는 나비가 춤을 춘다. 서로서로 예쁘게 어울린다. 하얀 꽃에 내려앉은 나비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사진 몇 장 찍는다. 사진을 큼직하게 키워서 보아도 나비가 어디 깃들었는지 잘 안 보이지만, 흰나비는 흰꽃 사이에서 맑게 빛나는구나. 좋다. 얘들아, 우리 나비 구경하지 않겠니?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꽃이 무엇일까요?

appletreeje 2013-06-1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기 나비가 있네요~? ^^
보라빛 꽃송이 위로 사선에요.!! 나비랑 보니 한층 더 좋아요. *^^*

숲노래 2013-06-11 14:58   좋아요 0 | URL
네, 아래에서 오른쪽에 나비가 살짝 깃들었어요.
나비도 꽃도 곱지요.

어떤 나물로 심으신 풀 같은데...
이름은 아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