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사름벼리 웃네 (2014.9.2.)



  그림순이가 그림종이를 조그맣게 오려서 쪽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참 바라보다가 그림종이 하나를 살며시 든다. 그림순이가 알아챈다. ‘응?’ 하면서 고개를 들다가 빈 종이를 든 줄 깨닫고는 다시 그림놀이에 빠져든다. 나는 그림순이 곁에서 ‘그림어버이’가 되자고 생각하면서, 그림순이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작게 그림 하나를 그린다. 내가 아이를 바라볼 적에 가장 기쁘다고 느끼는 모습을 그린다. 단출하게 석석 그린다. 그림순이가 아주 좋아하는 빛깔로 그린다. 그림을 마친 뒤 “사름벼리 웃네” 여섯 글자를 넣는다. 웃는 아이 가슴에 별과 사랑을 하나씩 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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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틀 만에 읍내마실



  곁님이 열이틀 만에 읍내마실을 함께한다. 셋째 아이가 두 달 동안 곁님 몸에서 살다가 떠난 지 열이틀이 흘렀다. 이제 조금 걸어서 다닐 만하다 싶어 읍내에 살짝 다녀온다. 지난 열이틀 동안 눈코 뜰 사이 없이 몹시 바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니, 바삐 이것저것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생각을 다스릴 겨를을 내지 못했다. 마침 읍내마실을 하던 날이 장날이라,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곁님과 두 아이는 자리에 앉고 나는 가방과 짐을 지키면서 선다. 모처럼 아이들이 내 곁에 없으니 홀가분한 몸이 되고, 홀가분한 몸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셋째 아이가 스치고 지나간 나날을 되새긴다.


  셋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우리한테 찾아왔을까. 셋째는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또 어떤 노래를 듣고 싶어서 우리한테 찾아왔을까.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우리 집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더듬는다. 두 아이는 모두 사랑이고 기쁨이다. 사랑과 기쁨이 어우러져 언제나 웃음이고 노래이다. 셋째 아이도 틀림없이 사랑이고 기쁨일 테지. 사랑과 기쁨이 어우러져 웃음이요 노래일 테지.


  셋째 아이를 뒤꼍 무화과나무 둘레에 묻고 난 뒤, 어쩐지 자꾸 그쪽에 발걸음을 한다. 무화과나무 둘레에서 돋는 가을풀을 날마다 뜯는다. 셋째 아이를 묻은 자리 옆에 탱자씨를 심기도 했는데, 이 아이가 탱자나무에 숨결을 담아서 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 집 뒤꼍 울타리를 따라 무화과나무와 탱자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덮으면 얼마나 이쁠까 하고 헤아려 본다.


  아침 낮 저녁으로 뒤꼍에 올라 이웃걷기를 한다. 찬찬히 뒤꼍을 거닐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셋째를 묻고 첫째랑 둘째랑 곁님이랑 지내는 이 보금자리를 푸르게 가꾸는 길을 생각한다. 한 해가 저무는 십일월에 내 삶을 새로운 생각으로 짓는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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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9] 입가심 까망알

― 밥도 주전부리도 흙에서



  까망알은 입가심입니다. 아침에 밥을 먹기 앞서 살살 훑어 입에 털어넣으면 입가심입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햇볕을 쬐다가 살그마니 슬슬 훑어 입에 집어넣으면 주전부리입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흙에서 얻습니다. 쌀밥도 보리밥도 수수밥도 콩밥도 모두 흙에서 얻습니다. 아이들이 맛나게 먹는 옥수수도 흙에서 얻고, 수박이랑 딸기도 흙에서 얻습니다. 포도랑 능금이랑 배랑 복숭아랑 모두 흙에서 얻어요. 이리 보거나 저리 살피거나 모두 흙에서 자라 우리 몸으로 들어옵니다.


  누군가 물을 테지요. 뭍고기나 물고기는 흙에서 안 오지 않느냐 하고. 네, 얼핏 보면 이렇게 여길 만해요. 그러나, 뭍고기는 풀을 먹고 자랍니다. 사람이 먹는 뭍고기는 모두 풀을 밥으로 삼는 짐승입니다. 바다나 냇물에서 낚는 물고기도 흙에서 비롯해요. 물고기가 어디에 알을 낳을까요? 시멘트바닥에 알을 낳을까요? 아니에요. 물고기는 흙바닥에 알을 낳아요. 돌 틈에 알을 낳는다 하더라도, 냇물이 흐르는 곳에 모래나 흙이 있어야 돌 틈도 있습니다. 바다는 어떠할까요? 바닷가 갯흙은 숲에서 흘러내려온 흙과 모래가 쌓여 이룹니다. 숲흙이 있어야 갯벌이 생기고, 갯벌이 생기면서 영양물질이 바다로 흘러들어요. 바다도 바닥은 흙입니다.


  흙을 밟기에 삶을 꾸립니다. 흙을 가꾸기에 삶을 누립니다. 흙을 아끼기에 삶을 사랑합니다. 흙을 돌보기에 삶을 노래합니다.


  입가심 까망알을 먹으려고 흙을 밟습니다. 아이와 함께 흙을 밟고, 풀을 스칩니다. 주전부리 까망알을 찾으려고 흙을 밟습니다. 아이랑 나란히 흙을 만지고, 풀내음을 맡습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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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거리는 작은아이는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모처럼 네 사람이 함께 읍내마실을 한다. 작은아이를 안아서 버스에 태우는데, 작은아이가 아버지더러 “돈, 돈.” 한다. 두툼한 옷을 입어 몸무게가 이십 킬로그램이 넘을 아이를 한손에 안고 버스에 오르자니 미처 작은아이한테 버스삯을 쥐어 주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 따라 작은아이가 “내가 내려고 했는데, 내가 내려고 했는데!” 하면서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징징댄다. 아버지가 잘못했구나. 그냥 너한테 종이돈 석 장을 쥐어 줄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네가 버스삯을 내면 되지. 모처럼 버스를 타기 때문에 모처럼 버스삯 낼 자리가 생겼는데 네가 이러한 재미를 누리지 못했구나. 그렇지만 너희는 이렇게 버스에 타기만 해도 재미있으니, 얼른 울음을 그치고 신나게 바깥마실을 누리자.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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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귀후비기



  얼마 앞서까지 거의 못 느끼다가, 오늘 새삼스레 징허게 느낀다. 두 아이 귀를 후비는데 등허리가 몹시 결린다. 큰아이 귀를 두 쪽 모두 후비고 나서 작은아이를 무릎에 누여 귀를 후비는데 등허리가 자꾸 찌릿찌릿한다. 작은아이는 간지럽다면서 자꾸 웃고 몸을 흔든다.


  내가 몇 살 때였을까. 아마 일곱 살이나 여덟 살 때였을까. 아직 혼자서 귀를 후비지 못하던 퍽 어릴 적인데, 어머니가 내 귀를 후비시면서 “아이고, 허리야!” 하고 짧게 읊던 말이 내 마음에 오랫동안 울렸다. 그무렵 나는 어머니가 왜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지 몰랐다. 오늘 우리 작은아이가 하듯이 간지럽다고 클클거릴 뿐이었다. 다만, 어머니가 짧게 읊은 한 마디가 내 마음에 남아서 두고두고 울렸다.


  오늘 비로소 우리 어머니가 내 귀를 후비다가 짧게 읊은 말마디를 몸으로 느낀다. 나도 그만 우리 어머니처럼 “아이고, 허리야!” 하고 똑같이 읊는다. 작은아이 귀를 다 후비고 무릎에서 일으킨 뒤 등허리를 톡톡 털고 일어서는데, 그야말로 등허리가 찡찡 결린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쉬지 못하고 움직이던 어머니가 아이들 귀를 후빈다면서 가만히 꼼짝 않고 앉아서 온마음을 모아야 하는 일은 등허리를 힘들게 하는구나.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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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11-03 14:11   좋아요 0 | URL
전 어릴적에 할머니가 귀 후벼 주셨어요~^^
가족모두 아프지 마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숲노래 2014-11-03 14:29   좋아요 0 | URL
오, 할머니가 손녀를 귀여워 하시면서
알뜰히 후벼 주셨겠지요?

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길은
거의 받은 적이 없어서... @.@

좀 누웠더니 등허리가 한결 나았습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