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다 차린 뒤



  밥을 다 차린 뒤 으레 사진기를 찾는다. 찬거리가 푸지든 몇 없든 한두 장 사진으로 건사한다. 곁님이랑 아이하고 누리는 밥이 어떠한가 돌아본다. 처음에는 밥차림을 사진으로 찍을 생각을 안 했지만, 우리 밥차림을 수수하게 사진으로 담자고 생각한 어느 날부터 밥차림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느낀다. 밥 한 그릇은 손으로 수저를 들어 입으로 넣으면서 먹을 뿐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빛깔과 무늬를 바라보는구나 하고 느낀다. 똑같은 밥과 반찬이어도 접시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겉모습으로만 밥차림을 따질 수 없다. 밥 한 그릇으로 몸을 살찌우려는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느낀다. 밥 한 그릇을 빌어 마음을 담고, 밥 한 그릇을 거쳐 마음을 나눈다.


  손이 바쁘면 아이들을 부른다. “벼리야, 보라야, 아버지한테 사진기를 가져다주렴.” 아이들은 사진기 하나를 둘이 함께 든다. 작은아이가 혼자 들 만한 무게이지만, 두 아이는 놀이를 하듯이 사진기를 천천히 나른다. “자, 사진기 가져왔어요.” “고마워.” 사진 한 장 찰칵 찍고 수저를 든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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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는다


  큰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곧바로 물려받는다. 작은아이는 큰아이한테서 물려받는다. 어버이는 큰아이한테 무엇이든 곧바로 물려준다. 큰아이는 이제 무엇이든 작은아이한테 물려주는 자리에 선다.

  그런데, 큰아이로서는 무엇이든 동생한테 물려주는 일이 가끔 못마땅하다. 동생한테 주고 싶지 않아서 얼굴이 굳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곁님과 나는 큰아이한테 이야기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무엇이든 다 주었단다. 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너한테 무엇이든 다 주었단다. 그리고 너는 네 동생한테 무엇이든 다 줄 때란다.’

  주면 사라지지 않는다. 주지 않기에 사라진다. 주면 없어지지 않는다. 주기에 더욱 커지고 아름답게 거듭난다.

  작은아이는 누나 옷을 물려입고, 작은아이는 누나 몸짓을 따라하며, 작은아이는 누나 말씨를 고스란히 좇는다. 누나가 가는 곳마다 꽁무니에 따라붙어 달린다. 누나가 하는 놀이마다 저도 같이 하겠다면서 엉겨붙는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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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1-12 01:20   좋아요 0 | URL
주면 사라지지 않는다. 주지 않기에 사라진다. 주면 없어지지 않는다. 주기에 더욱 커지고
아름답게 거듭난다.-

참말 맞는 말씀이세요~
하루의 마무리를 하며, 아름답게 거듭날 꿈을...저도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평화롭고 좋은 밤, 되세요~*^^*

숲노래 2014-11-12 01:39   좋아요 0 | URL
하루 마무리를 하고 잠드실 적에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즐거운 이야기를 그리면서
사랑스러운 꿈 꾸셔요~~~

하늘바람 2014-11-12 11:12   좋아요 0 | URL
님과 곁님 두아이들 아름다워서 눈물나네요

숲노래 2014-11-12 15:03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도
아이들과 언제나 아름다우셔요
 

아이와 살면서



  아이와 살면서 생각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우리한테 아름다운 웃음과 노래를 늘 선물하지 싶어요. 그래서 나는 아이한테 다시금 웃음과 노래를 선물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또 나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하고, 이제 나는 거듭 아이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합니다. 서로서로 선물을 나누고, 서로서로 웃음과 노래를 새로 짓습니다. 그래, 이런 기쁨을 누리려고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삶을 짓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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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보금자리 2 (2014.10.31.)



  우리 보금자리를 헤아리는 그림을 마무리짓는다. 별비와 사랑비와 꽃비가 내리는 사이사이 별과 사랑과 꽃을 하나하나 그린다. 온누리에 별과 사랑과 꽃이 쏟아져서 흐드러지기를 바란다. 우리 보금자리에도, 이웃 보금자리에도, 골고루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칠 수 있기를 빈다. 다 같이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꿈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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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썰기



  파를 썰 때면 으레 어릴 적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나한테 처음 부엌칼을 쥐도록 하던 일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는데, 거의 안 떠오르지만, 아마 파썰기가 아니었을까. 처음 파를 썰던 때에는 큰파는 그야말로 크구나 하고 여겼다. 어쩌면 이렇게 파는 클까 하고 생각했다. 아이 몸에서 자라 어른 몸이 된 오늘날, 나는 두 아이를 먹여살리는 밥을 짓는다. 어른 몸으로 큰파를 썰 때면, 큰파라 하지만 그리 크지도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큰파를 어른 입에 맞게 굵게 썰면, 아이들이 먹기에 퍽 나쁘다. 큰파를 아이들이 먹도록 하자면, 가로로도 썰고 세로로도 썰면서 조그마한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작으면서 고운 빛이 어우러지도록 썰면, 두 아이가 아버지 곁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묻는다. “뭐 썰어?” “파.” “파?” “응.” “아, 우리 집 마당에도 심은 그 커다란 파?” “응.”


  파를 잘게 썰면서 파한테 말을 건다. 얘야, 우리 집 아이들한테 곱게 스며들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맛난 밥이 되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푸른 숨결이 되어 주렴.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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