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0.12.
 : 아기수레에 아이를 처음으로 태우고 달리다



- 지난주에 노란 허머 자전거를 고쳤다. 안장과 앞브레이크와 앞쇼바와 기어줄과 브레이크줄과 뒷톱니와 체인을 갈았다. 나중에 더 고칠 곳이 있으나 먼저 이곳만 고쳤다. 그러나, 말이 몇 곳을 고쳤다뿐, 따지고 보면 몸통을 빼고 모조리 고쳐야 하는 자전거인 셈이다. 높은 급수 부품을 쓰는 사람한테는 아무것 아닐 테지만, 요 몇 가지 부품을 갈아치우는 데에 십팔만 원이 들었다. 여기에 삼만 원을 얹으면 삼천리 R-7 자전거 한 대 값이 나온다.

- 지난주에 자전거를 고치면서 20인치 바퀴 한 벌을 새로 샀다. 아기수레에 달린 자전거 바퀴를 갈려고 샀다. 오늘 드디어 아기수레 바퀴를 갈려고 튜브까지 벗겨 보는데, 바퀴뼈대 안쪽에 대는 고무띠 한쪽이 끊어져 있다. 아기수레 한쪽 튜브가 자꾸 구멍이 나서 까닭을 알 길이 없었는데, 바퀴뼈대 안쪽 고무띠가 끊어진 바람에 바퀴살을 여미는 끝쪽 뾰족한 데에 튜브가 자꾸 찔리며 구멍이 났구나 싶다. 다른 바퀴도 안쪽 고무띠가 살짝 접혀 있는 바람에 튜브에 구멍이 날 뻔했다.

- 고무띠 끊어진 한쪽은 신문지를 작게 접어서 대놓는다. 땜질로 이렇게 해 놓는다. 이렇게 해 놓은 채 자전거집까지 끌고 가서 갈든지, 자전거집에서 고무띠를 사와서 갈든지 해야지.

- 오랜만에 바퀴를 갈아 본다. 손맛이 즐겁다. 옆지기를 만나고 옆지기가 아이를 배며 옆지기가 아이를 낳은 뒤로 자전거를 손질하여 신나게 타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 아기수레를 써 본 지도 퍽 오래되었다. 옆지기가 아직 아이를 낳기 앞서 명절날 가래떡을 뽑는다 하여 수레를 달고 떡집을 오갔을 때가 이태 앞서이다.

- 아이랑 옆지기 모두 마당으로 나오라고 부른다. 바퀴를 달고 수레 안쪽을 닦는다. 수레에 바퀴를 달고 자전거 뒤쪽하고 잇는다. 수레에 담요 한 장을 깔고 아이를 앉힌다. 아이한테 작은 담요 두 장을 얹어 준다. 살짝 졸린 아이인데 꽤 좋아한다. “좋아! 좋아!” 하고 외친다. 어서 달리란 뜻인가.

- 어디까지 달려 볼까. 오늘은 처음 달리는 날이니까 가볍게 큰길가 보리밥집까지 다녀올까. 보리밥집에서 아이 까까하고 보리술 두 병을 사 볼까. 마당을 살며시 반 바퀴를 돌고 나서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은 밭 옆을 달린다. 동네 이웃한테 인사를 하고 논을 옆으로 끼는 시골길을 달린다. 한창 벼베기를 하거나 밭을 갈아엎는 때라 트랙터 바퀴에서 떨어진 논흙이나 밭흙이 시골길에 점점이 떨어진 채 이어져 있다. 흙덩이를 밟을 때마다 자전거는 덜컹덜컹. 뒤를 돌아보며 “괜찮아?” 하고 물으니 “좋아!” 하고 대꾸. 졸립지만 이렇게 수레를 타고 함께 달리니 무척 좋은가 보다.

- 아이 몸무게를 헤아린다면 아이보다 세 곱은 무거운 책짐을 수레에 실을 뿐 아니라 등에는 가방 가득 책을 넣은 채 오르막을 얼마나 오르내렸던가. 등이 홀가분한데다 고작 십 몇 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아이를 태우고 달리니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다.

- 보리밥집에 닿을 무렵 아이는 뒤에서 “다아 왔다!” 하고 외친다. 아이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구나. 자전거를 멈추고 안전띠를 끌러 아이를 내린다. 아이는 아이 까까 하나를 집는다. 엄마 까까를 하나 더 고르고 보리건빵 하나를 또 고른 다음 보리술 두 병을 셈한다. 팔천 원.

- 오던 길을 되짚어 달린다. 집을 나설 때에는 줄곧 “좋아!” 하고 외쳤으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조용하다. 아빠하고 자전거를 처음으로 함께 달린 느낌이 어떠하려나. 아빠는 2005년 무렵에 이 아기수레를 처음 장만했지 싶은데, 드디어 다섯 해 만에 이 아기수레에 참말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달렸구나. 요 몇 해에 걸쳐 ‘자전거쪽지’를 좀처럼 못 쓰며 지냈는데, 띄엄띄엄 되더라도 오늘부터 차근차근 적어 보아야겠다. 아이를 수레에 태운 첫 날이 10월 12일, 가을이 무르익으며 겨울이 다가오는 철이라 겨울날 아이를 태우고 달리자면 아이가 애먹을 텐데, 추운 날 수레를 타고 달리다가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맞이해 보면, 우리 아이도 이렇게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 어떠한가를 살며시 느끼겠지. 내일은 수레에 깃대를 꽂아 큰길을 달릴 때에 자동차가 우리 수레를 잘 알아보도록 해야겠다. 쌓인 짐더미에서 깃대를 얼른 찾아내야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즐거운어치 2010-10-12 23:21   좋아요 1 | URL
부럽네요, 아기수레를 끄는 아빠나 수레를 탄 아가 모두가. 우리 딸래미도 저 나이 때 저런 거 구해다가 태워줄걸. 그러저나 저 아가는 지금 무얼 생각하나. 좀 뿌듯해하는 얼굴 같기도 하고, 아빠 자전거 타는 솜씨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숲노래 2010-10-13 04:04   좋아요 1 | URL
졸려서 그래요. 낮잠을 자 준다면 한껏 들떠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을 텐데요..
ㅠ.ㅜ
오늘은 방방 뛰면서 놀지 않으랴 싶어요~
요 수레에는 48킬로그램까지 태울 수 있으니
아이가 컸어도 얼마든지 태울 수 있답니다~
 


 내 발바닥과 고무신


 새 고무신을 신으면 보름쯤 발등 끝하고 뒷꿈치가 까진다. 제아무리 굳은살이 딱딱하게 박혀 있더라도 새 고무신에는 견디지 못한다. 까져서 피가 흐른다. 양말을 신으면 좀 다르겠지. 양말을 안 신는 맨발로 살아가면 새 고무신이 처음에는 퍽 힘들다. 그러나 내가 땅을 늘 밟으며 농사짓는 사람이었다면 발등 끝이랑 뒷꿈치가 안 까지리라 본다. 맨발로 날마다 열 몇 시간씩 흙을 밟으며 풀이랑 살았으면 새 고무신을 신으며 발이 아플 일이 없을 뿐더러, 맨발로 어디로든 홀가분하게 다니지 않겠는가.

 사흘에 걸쳐 인천과 서울을 오락가락하며 참 많이 걸어다니다가 책으로 꽉 찬 큰 베낭을 짊어지고 충주 산골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발바닥을 쪼물딱쪼물딱 만져 준다. 발가락 끝부터 뒷꿈치 위쪽까지 단단하면서 조금 욱신거린다.

 문득 군대에 있을 적이 떠오른다. 군대에서 훈련을 한다며 걸을 때에는 열 몇 시간을 한 차례조차 안 쉬며 걷기도 하는데, 군대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걸을 때에는 발에 물집이 잡힌다. 한겨울에도 군화 신은 발에는 땀이 찬다. 군인들 신발은 바람이 들지 않으며 두꺼운 양말을 신으니까.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몸을 씻고 비로소 느긋이 드러누울 때 발바닥을 만지작거리면 허연 살덩이가 말랑말랑하다. 군인은 아무리 많이 오래 걸어도 발바닥에 꾸덕살이 박히기 어렵다. 후끈후끈하며 땀이 가득 차는 좁은 데에 갇히는 발은 냄새를 끌어안을 뿐이다. 발이 숨을 쉬지 못한다.

 고무신을 맨발로 신으면 발에 땀이 차지 않는다. 금세 땀이 다 마르니까. 발은 늘 숨을 쉬고 얇은 고무 바닥 하나인 신발은 발바닥이 스스로 단단해지도록 이끈다. 이런 신발 한 켤레가 고작 3000원이니 나로서는 다른 어떤 신을 신을 수 없다. 신나게 고무신을 신으면 열 달이나 열두 달이면 뒷굽이나 바닥이나 옆이나 모두 닳아 더는 발가락을 꿰기 어렵다. 밑창이 찢어져 꿰매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무신인데, 이제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 아니고는 신을 일이 없을 뿐더러 농사짓는 사람들은 으레 손으로 농사짓기보다 기계로 농사를 지어 버릇하기 때문에 웬만한 농사꾼 아니면 발이 까지도록 하는 고무신을 반기거나 찾아서 즐기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할 테지. 진작부터 ‘한국 공장’이 아닌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고무신이다. 그나마 고무신을 애써 찾는 시골사람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중국 공장에서도 더 만들지 않는단다. 3000원짜리 ‘참 고무신’은 자취를 감추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5000원짜리 ‘무늬만 고무신’을 판다. 이제 내가 몇 켤레 미리 사 둔 고무신이 다 닳아 버리면 나로서는 고무신을 더는 못 신으려나. 참 고무신을 더는 장만할 수 없으면, 내 발바닥은 내가 딛는 땅을 얼마나 살가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4343.10.10.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걸레와 글쓰기

 걸레를 손으로 빨아 무릎을 꿇고 방바닥을 훔치면, 내가 얼마만 한 방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좋을까를 알 수 있다. 연필을 손으로 깎아 조그마한 쪽종이 하나, 이를테면 껌종이라든지 부동산에서 골목마다 붙이는 전세방 알림종이를 길에서 주워 여기에 몇 줄 글월을 적바림해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글을 써서 나누어야 좋을까를 헤아릴 수 있다. 내가 땀흘려 일하여 번 돈을, 그러니까 텃밭농사를 지어 배추 몇 포기나 무 몇 뿌리를 저잣거리 한 귀퉁이에 자리를 얻어 길장사를 해서 번 돈을 손에 쥐고 다리품을 팔아 책방마실을 하는 가운데 책 하나를 장만해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 내 삶을 일구어야 아름다운가를 깨달을 수 있다. (4343.10.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와 글쓰기


 아이랑 함께 돌아다니자면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거나 생각에 젖는다거나 수첩에 무언가 적바림할 겨를을 낼 수 없다. 아이를 노상 바라보며 손을 잡아야 하니까. 나는 오늘 모처럼 홀로 홀가분하게 골목마실을 다닐 수 있다. 틀림없이 퍽 먼길을 오래도록 신나게 걸어다닐 수 있겠지. 오늘은 이대로 하루를 즐기자. 저녁에는 일산으로 가서 아이랑 옆지기랑 장모님이며 식구들이랑 오붓하게 지내자.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는 가운데 씻기고 입히며 치우던 손을 사진찍고 글쓰고 책읽는 데에 쓰자. (4343.10.2.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사랑의 꿈’


 지난 사흘에 걸쳐 바깥마실을 했다. 애 아빠는 서울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인천에 가서 다섯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며 다리가 퉁퉁 부은 채 곧바로 일산으로 넘어가 옆지기 살붙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일산 비닐집에서 이틀을 묵고 오늘 아침 열 시 반에 길을 나서 낮 네 시 무렵에 겨우 충주 산골마을 집으로 돌아온다. 이래저래 여섯 시간이 걸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고속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시골버스를 기다리는데 삼십 분이 넘도록 안 오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내가 시간표를 잘못 보았다. 충주 시내 쪽 버스 시간을 봤어야 했는데 음성 읍내 쪽 버스 시간을 보고 말았다. 그예 길에서 삼십 분 동안 아이를 안고 있던 셈.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 타고 삯 만 원을 치러 산골집으로 들어오다. 팔과 다리 힘이 다 풀려 후들후들 떨며 아이를 방바닥에 드러눕히는데, 방바닥에 드러눕히니 비로소 깨어난다. 조금 더 자 주면 안 되련? 참 힘들어 죽겠구나. 아이는 고단하면서 또 일어나서 놀려 하고, 애 아빠는 그만 뻗어 버리고 만다. 뻗어 버렸으나 아이가 어리광에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히유. 잠들지 못하는 잠결에 아이가 배고파 하는구나 싶어 어기적 일어나 생협에서 사 온 우리밀라면 한 봉을 끓인다. 옆지기는 국물을 먹겠다고 하니, 감자 두 알과 애호박 조금과 무 조금에다가 버섯 세 송이하고 곤약 몇 조각을 썰어 넣는다. 버섯은 맨 나중에 넣는다. 새우젓과 액상물로 간을 맞추고 라면양념은 1/4을 넣는다. 생협 라면이더라도 양념은 살짝만 넣고 싶다. 건더기가 훨씬 많은 라면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한 다음 이듬날 먹을 쌀과 콩을 씻어 불려놓는다. 아이는 아무래도 잠들 듯하지 않아 애 아빠는 더 버티며 일손이라도 붙잡으려 한다. 인천마실을 하며 찍은 골목 사진 364장을 셈틀로 옮기며 raw파일을 jpeg파일로 바꾼다. 364장 모두 안 흔들리며 빛이 제대로 맞았다면 그지없이 좋았을 테지만, 몸은 몸대로 힘들고 날씨는 날씨대로 궂은 탓에 입맛을 다시는 사진이 자꾸 보인다. 가로로 한 번 찍고 세로로 다시 찍은 사진은 겨우 한 장을 살릴 수 있다. 몇 달 사이에 텅 비고 만 도화2동 142번지 안쪽 골목 사진 가운데,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 담벼락에 돌로 시멘트를 벗겨 글자를 남긴 “사랑의 꿈” 사진이 살짝 흔들렸다. 맞은편 벽에 몸을 기대어 찍었는데 흔들리다니. 이 사진을 찍을 때에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흔들리니 슬프다. 다시 가서 찍어야 하잖은가. 그러나 내 사진은 딱 한 번 찾아가서 찍는 사진이 아니다. 다만, 이 골목집들이 다음번에 찾아갈 때에 허물리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 모르겠다. 누가 “사랑의 집”이라는 글월을 새겼을는지 모를 노릇인데, 텅텅 비고 마는 동네에 해 놓는 낙서란 으레 짓궂거나 얄궂기 마련인데, 이 글월이라면 이 골목에서 살던 사람이 그예 다른 집으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발자국이 아닐까 싶다. 작고 좁다 하는 골목집에서 오래오래 살았던 사람은 으레 느낄 테지만, 퍽 많은 식구가 올망졸망 복닥이는 집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틀림없이 “사랑어린 집”이요 “사랑스런 집”이며 “사랑하는 집”이다. (4343.10.4.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